살인자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영화

1959년작, "살인자의 해부"는 당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멋드러진 재즈 연주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그냥 평범한 마을 주민인듯한 주인공 제임스 스튜어트가 등장하면서 시작합니다. 앞부분의 영화는 상당히 천천히 진행 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낚시 갔다가 집에 돌아온 것인데, 상당히 천천히 진행되기에 아무것도 모른채 영화를 본다면, 대체 일이 어떻게 풀려서 이 영화가 "살인자의 해부"라는 제목에 걸맞게 되는지 궁금증이 생길 정도입니다. 결국 계속 지켜 보다보면, 제임스 스튜어트의 직업이 변호사임이 드러납니다. 영화의 본론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 변호를 맡는 것으로, 사건을 알아가고 재판을 겪어가면서 영화가 흘러갑니다.


(낚시 갔다 온 동안 뭔 일 없었나?)

"살인자의 해부"의 장점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첫번째 장점은 천천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건의 내용을 밝혀 나가면서, 흥미를 끌도록 이야기 거리를 하나 둘 파헤치는 배분이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 될 때는 대체 제임스 스튜어트의 직업이 뭐고, 어떻게 해서 살인에 얽혀드는지 궁금하게 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어떤 살인 사건인지, 동기는 뭐고, 범행 수법은 정확히 어땠는지, 거짓말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정확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지, 누가 정말 나쁜 놈인지, 이 상황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사건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 둘 계속 이야기 거리가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펼쳐지게 됩니다.

TV극 "수사반장"의 80년대 이야기들을 보면, 처음부터 현행범으로 범인을 검거하면서 시작해서 "범인을 잡는다"는 입장에서만 보면 더도 덜도 알것도 없이 그냥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결론이 나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그렇게 해놓고는 살인사건에 얽힌 기구한 사연이나, 범인의 살해 동기나, 범죄의 특이하고 이상한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범죄자, 피해자의 성격과 삶을 무슨 비밀처럼 서서히 조금씩 밝혀 냅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범인의 독특한 성격이나 인생역정을 이야기거리로 뽑아내는 것으로 재미를 이어갑니다. "살인자의 해부'도 종류를 구분하자면 그런 류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맞아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참고인 - 어떤 사연이 있는 사람일까나?)

이 영화에 나오는 살인은 "살인"이라는 점에서만 보면 틀림 없이 살인입니다. 사람들이 다 지켜 보는 앞에서 용의자는 권총 방아쇠를 당겨 희생자를 살해했고,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인정해서 자수한 사건입니다. 더우기 살인의 동기도 비교적 명확하고, 주인공은 트레일러를 끌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사는 하급 장교인 까닭에 - 한국전쟁 참전용사 입니다. - 딱히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헤쳐나올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흥미를 자아내는 절정은 이런 상황에서 대체 주인공이 중형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수를 써야 하는지, 무슨 계략을 짜내서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갈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대목입니다. 미국의 현행 법령과 재판 체계를 이리저리 뒤집고 비집어서, 이같이 뻔하고 멀쩡한 살인 사건을 두고 어떻게 틈을 비집고 나갈지, 노력하고 고민하고 도전하는 주인공의 활약이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첫번째 핵심입니다.


(재판중 초조해 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핵심에 막바로 처음부터 최대한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줄거리로 나아가기 위한, 복선들과 상황 설명을 하는 것으로 영화의 절반정도를 소비해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느긋하게 주인공 변호사가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의 여러 측면을 하나 둘 살펴보게 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놓고, 가면 갈 수록 점점 사건을 극적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접어들어 재판이 진행되면서 대사의 속도, 주고 받는 말의 양, 사건진행의 복잡함이 급격히 심화됩니다.

점차적으로 빨라졌다가, 화려하게 절정으로 치닫는 그 속도조절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초반부에 시간을 많이 들여서 제시해 놓은 복선들도 잘 써먹고 있어서, "바 뒤편 선반을 뒤져보기" 같은 것을 한참 후에 복선으로 써먹는 수법 같은 것은 치밀하게 사건들이 엮여 있는 그 생동감 넘치는 상황이 몰입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마치 정말로 그런 사건이 벌어져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이 영화속에 펼쳐지는 마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는 것들이 다 복선)

하지만 이런 형식에는 사실 치명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초반부가 너무 지겨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 자체를 성폭행과 간통이 범벅이 된 것으로 해서 자극적인 소재를 은근히 조금씩 늘어놓아서, 관객을 묶어 놓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는, 관심이 생기고 흥미를 자아내는 성격의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보여줘서 관객에게 현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처럼 생생하고 사실적인 인물군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변호사, 주인공의 동료, 주인공 사무실의 경리직원 등등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인간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훌륭한 개성이 있는 인물입니다. 주인공이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만다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더더욱 재미납니다. 살인사건을 저지른 용의자만 해도, 전통적인 미군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건들거리는 유머 감각있는 남자"의 모습을 바탕으로 출발해서, 좀 더 현실적이고 복잡한 감정까지 담아낼 수 있도록 좀 더 다음어져 있습니다. 살인 사건의 목격자나, 증인들, 판사 등등까지, 상대적으로 출연분량이 작은 사람들까지도, 각자의 성격과 배경, 경험과 인생관이 엿보이도록 깊이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변호사님, 뭐, 나 이런 놈이예요.)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흥미진진한 인물은 여자 주인공인 리 레믹 입니다. 리 레믹은 기본적으로는 느와르 영화의 위험한 여자 주인공 인물과 비슷한 배경으로 출발합니다.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주인공을 두고 묘한 농담을 잘 읊으며, 주인공을 조금씩 조금씩 유혹해서 끌어들이는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범죄에 관련된 리 레믹과, 범죄를 조사하는 제임스 스튜어트가 서서히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부분은 훗날의 "원초적 본능"에서 "텔미썸딩" 까지 이어지는 많은 영화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장면에서는 꼭 담배를 들고 있는 게 우리들의 전통적인 풍습이죠.)

이 영화 속 리 레믹의 인물은 그런 전형 뿐만 아니라 독특한 느낌 또한 풍부합니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정직함과는 거리가 먼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살짝 "인생 막산다" 싶은 느낌으로, 상식에 어긋나는 대사나 좀 무성의해 보이는 듯한 태도를 툭툭 던지면서, 기묘하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총질해서 사람 죽이고 주먹질로 면상을 난타한 악몽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자기 애완견이 귀엽다는 이야기를 섞어내서, 어찌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사람이 믿을만하지 못한 느낌 때문에 이 사람이랑 엮이면 큰일나겠다 싶은 두렵게 느껴지는 분위기도 깔고 있습니다.

리 레믹의 연기 역시 거의 완벽한 수준이라서, 대체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어디까지 다 믿어야 하나, 하는 의심을 관객이 품게해서, 재판이 어떻게 꼬일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을 품게하고, 영화의 아슬아슬함을 생기게하는 복선도 됩니다.


(제 말을 믿으라니까요)

위 내용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어 퓨 굿맨" 같은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와 별다를바 없는 수법을 개척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렇게 충실하고 사실감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그 배우들의 연기폭을 이용한 사연 많은 인물들을 이용해서 또 한가지 재미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영화 "살인자의 해부"는, 선악구도에서 벗어나서, 변호사와 재판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하나의 직업과 업무로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영웅적인 변론을 펼치는 "앵무새 죽이기"나, 전쟁의 비인간성에 도전하기 위해 변론을 펼치는 "영광의 길"과 많이 다릅니다. 주인공인 변호사의 편이 결코 검사의 편에 비해 "선하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살인자를 변호하고 있습니다만,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 살인자를 정말로 구해주어야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관객들도, 과연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사람 죽인 사람이 형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뭔가 잘못되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끊임없이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는 단지 자신의 일로 변호를 맡았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하고 있을 뿐 입니다. 붕어빵 장수가 맛있는 붕어빵을 굽기 위해 노력하고, 자동차 정비공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차량을 진단하고 수리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이 영화 주인공은 자기가 맡은 사람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정의와 선악에 대한 도덕적인 사명감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사건 내용 자체도 그런 사명감이 엮일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일하고 돈 벌고 동료들과 함께 먹고 사는 과정으로 재판과 변론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동료와 함께 찐 계란 까 먹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속에서, 재판 제도와 법망의 여러 자잘한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입체적이고, 더 사실적이고, 더 날카로운 묘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배심원들을 자극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나가기 위해, 어떤 수법을 쓰고, 어떤 재판 기술을 활용해 나갈 수 있는지, 다양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자잘하고 치졸한 것도 있고, 과감하고 기교적인 것도 있습니다. 길이가 긴 영화라서 여러가지 많이 보여줍니다. 심금을 울리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없고,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 그래서 더 그럴듯하고 진짜 쓰일만하 변호사 기술이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영화나 TV에서 미국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쓰는 고전적인 수법들을 사실감있게 나열하는데는 이 영화 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세세한 내용들은 영화를 지켜 보는 관객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도 되어 주고, 지나치게 치사하거나 혹은 치졸할만큼 절묘한 것들이 있어서 웃음거리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속에 나오는 배심원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술수들이 미국 사법제도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분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이야기를 좀 더 발전시켜 상상해본다면,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단계까지 과감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습니다만, 어느 정도 분위기는 충분히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그렇게 지나치게 무겁고 장중하게 나가지 않은 점을 이용해서 이 영화는 법정에서 오가는 농담들을 잘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대사 속에서 활용하고 이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지켜보는 잔재미를 자아내고, 등장인물의 재치를 표현하는데도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몇몇 농담들은 꽤 운치있고, 검사가 이혼 이라는 소재로 교묘하게 말의 인과관계를 맞춰서 증인을 압박하고, 배심원에게 인상을 남기려고 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넘칩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희로애락과 감정들이 좀 더 사실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변호사 주인공은 무슨 자유의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마의 대리인도 아닙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변호사가 돈 받을 계약하는 부분도 차근차근 따져서 보여주고 있고,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미시간 주 마을의 배경에 대한 소재도 계속해서 제시 됩니다. 영화의 본론과 전혀 관계 없이, 변호사가 재즈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 치기를 즐기는 취미가 있다는 것도 시간을 들여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재판을 놓고 으르렁 대며 겨루고 있으면서도, 검사-변호사-판사 등등이 나름대로 업계 사람으로 이면에서는 서로 서로 이해하며 친분이 있다는 점도 조금씩 이야기 거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악을 응징하고, 억울한 사람을 구해내는, "포청천"이나 "박봉숙 변호사"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앨리 맥빌(앨리의 사랑 만들기)"이나 "보스턴 리걸" 같은 40년 정도 후에 유행하는 이야기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앨리 맥빌"처럼 코메디를 위해 과격하게 비현실적으로 나가는 부분은 거의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더 매끄럽게 이 바닥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재판에서 "정의의 편" 사도로 용맹하게 맞서 싸우게 해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주인공이 맡겨진 일에서 최대한 정성을 다하고 노력하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유쾌하게 인간미를 보여주는 그 모습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배심원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배심원들과 같은 시선을 두고 말하는 변호사)

영화의 연출은 초반에는 그냥 편안하게 상황을 지켜 볼 수 있도록, 차분하고 심심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 꼭 필요한 부분에서 역동적인 화면의 이동을 이용해서 긴박한 상황과 심정적인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흘러가던 이야기가 속도감이 있게 치달을 때는 화면도 자신감 있게 따라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빠르게 말을 주고 받고, 추궁하듯이 물으며,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가는 혼란스러운 재판장 광경은 박자감 넘치게 꽉 짜여져서 연기하도록 잘 지휘되고 있습니다.

몇몇 장면 구성은 멋있게 되어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검사가 증인을 압박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증인이 변호사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그 앞을 가리고 서는, 교묘한 수법을 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변호사는 검사에게 그러지 말라고 항의 합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영화의 화면은 증인의 시각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관객은 증인의 시선을 대신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번에 검사가 질문할 때, 정말로 검사가 한 발짝 선 자리를 옮겨 서서 변호사의 얼굴을 가리는 것이 화면에 보입니다. 관객의 시선은 검사가 우리편인 변호사를 가리고 위압적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됩니다. 화면에 주인공의 얼굴은 더이상 보이지 않고, 검사의 냉정한 표정만 보이는 것입니다. "말할때 위치 선정"이라는 사소한 수작이, 재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기묘한 역설의 재미가 생생하게 화면으로 표현됩니다. 관객은 "증인을 막아서지 말라"는 변호사의 요청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증인의 불안한 심정이 되어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재판 중 증인과 범죄자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감정교류 묘사)

영화에서 아쉬운 점을 찾는다면, 역시 꽤 길이가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좀 싱겁다는 점일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영화는 그냥 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이고, 그것을 다루는 태도도 변호사의 생활의 일부를 다루듯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단한 사상이나, 치밀한 풍자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난 반전이나, 극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엄청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로 흥미가 생기고, 절정과 결말은 성명하고, 영화의 개성도 풍부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좀 싱겁다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평범한 사건만 맡으니까 사무실에 돈이 없어서 제 월급도 제대로 못주잖아요. 사장님.)

내용이 사실적으로 재판의 면면을 파헤치는 면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극적인 상황이나 기발한 농담 같은 것도 그 정도에 한계가 있습니다. 깊게 사람을 뒤흔들거나 정말로 무릎을 탁 치게 할만큼 기막힌 것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형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변호사가 이리저리 궁리하고 고민해보는 방법들도, 특이하기는 하지만 강렬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피고인측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아주 높다고 하기도 어렵고, 정말로 팽팽한 대결이라고 관객들이 한껏 몰입할 만큼 갈등의 초점이 선명한 것도 아닙니다. 결말에 따라 붙는 사연이, "생활과 직업의 일부로서 재판"이라는 면에 어울려서 부드럽게 끝을 내주는 기교는 있습니다. 그래서 다 보고나서 여운이 남도록 허무하지 않도록 꾸며놓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재판결과만 놓고보면 좀 밍밍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모로, 최고의 배우들이 나오는 2시간자리 영화보다는, 비슷한 형식으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는, TV단막극 시리즈나, TV 연속극에 좀 더 적합할 법한 내용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더 프랙티스" 같은 TV극으로 꾸민다면, 영화속에 개성이 분명한 변호사, 경리, 동료 등등의 인물이 계속 활용되면서 계속해서 사연과 사건들을 쌓아나가면서 여러가지 삶과 사건, 인간과 법의 모습들을 흥미롭게 그려나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는 미시간 저 동네에 저런 사람들이 열심히 살면서 재판을 준비하고 변호사 일을 한다는 인물의 생동감이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드디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재판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 직원들. 구성진 재즈 피아노와 함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재즈 음악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유행에 잘 들어 맞는다는 생각이 들고, 그 자유롭고도 유머가 섞인 듯한 곡조는, 정의-불의 보다는 변호실력과 법논리의 싸움으로 점차 쇠락해 가는 재판의 의미에 대해서, 냉정하게 관조한다는 느낌도 은근슬쩍 풍기고 있습니다. 물론, 매우 쉽게 감정과 대사가 전달되도록 잘 드러내 연기하면서도, 완벽한 사실감을 유지하는 제임스 스튜어트의 훌륭한 연기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연기와 함께 영화가 끝나갈 때쯤, 여운을 남겨서, 영화가 끝나고 난다음에도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주는 묘한 결말이 나옵니다. 그걸 지켜보노라면, 뭐 인생살이 그렇게 분명하게 검은 돌, 흰 돌이 나뉘는 게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밖에...

여자 주인공 "리 레믹"은 우리나라에서는 좀 이름이 덜 알려진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멘"에서 어머니로 출연한 모습은 널리 기억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 검사의 추궁에 시달리는 리 레믹)

(20년후 출연한 다른 흥행작 영화에서 악마에 시달리는 리 레믹)

이 영화에는 조지 C. 스콧도 꽤 비중있는 역할로 나옵니다.

"로라", "돌아오지 않는 강", "영광의 탈출(엑소더스)" 등의 영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토 프레밍거가 감독을 맡은 영화중에는 후기작 축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당시의 극적인 영화들에 비해 매우 현실감 있는 대사와 인물설정으로 당시 큰 화제거리 였다고 합니다. 확실히 낭만에 쩔어서 멋있는 대사와 독백을 읊어대는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 범죄물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범죄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욕설이나 노골적인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기도 해서 당시에는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선악이 불분명한 인물들이 공감을 이끄는 행동을 하고, 법과 재판을 다루는데도, 주인공과 상대방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는 면에서, 또한 보기에 따라서는 재판이 정의를 심판하기 보다는 어떤 기술적인 협상에 불과하도록 묘사한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IMDB Trivia의 자료를 보면, 시카고에서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고,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버지는 너무 영화가 욕을 많이 먹자, 자기가 살던 지역에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이 나오는 영화인데도 영화를 보지 말라고 신문광고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포스터도 매우 유명한 영화 입니다.

음악이 좋다는 평이 많은 영화이니만큼, 이 영화를 보면 음악 담당이 누구인지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별 생각 없이 영화 다 보고, 음악이 좋던데, 누가 만든 건가, 싶어서 찾아보고는 깜작 놀랜 경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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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일등 2008/02/14 23:46 # 삭제 답글

    일등!
  • FAZZ 2008/02/15 00:07 # 답글

    하하 포스팅 제목만 보고 몇년전에 개봉했던 아나토미의 원제였나 했습니다.
  • 2008/02/15 00:3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누렁이 2008/02/15 02:21 # 답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솔바스의 포스터도 아주 좋아해서 이베이에 멋모르고 비딩했다가
    너무 비싸서 그냥 모른 척 안사버린 적도 있네요.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좋은 글 내내 감사드리고 있어요.
  • 뚱띠이 2008/02/15 13:43 # 답글

    언제나처럼 좋은 영화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식 저는 옛날 헐리우드 영화나 흘러간 배우들의 능력을 요즘 배우들이 쫓지 못한다고 한숨을 쉽니다.

    이게 단순한 향수일까요? 요즘 작품들이 과도하게 가벼운 것일까요?
  • rild 2008/02/16 01:03 # 삭제 답글

    허락에 힘입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http://storyberry.com/?document_srl=12876&id=rild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더라도 미숙한 팬의 실수라고 생각해 주세요.
  • 행복한 스마일 2008/04/04 01:05 # 삭제 답글

    아~ 영화관련 블로그를 찾고 있엇는데^^
    넘 만족스런 블로그네요^^
    글들도 하나같이 넘 재미있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잘 쓰셨네요~

    저도 영화와 관련된 블로그를 만들려고 노력중인데..
    자주 와서 보고 갈께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블로깅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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