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투 유마 (3:10 To Yuma, 유마 가는 3시 10분 열차, 2008) 영화

영화가 시작되면, 크리스찬 베일의 가족들은 어느 외딴 서부 목장에서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난한 농부인 크리스찬 베일이, 어떻게 유마 가는 3시 10분 열차를 두고 총알 수백발이 쏟아지는 총격전 이야기로 이어지는지 지켜보게 하면서 흘러가게 됩니다.


(소먹일 풀 자라는 거 궁리하던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3:10 투 유마" 이야기의 골자는 거의 60년 가까이 전에 유행했던 서부극에서 가장 중심 줄거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여러 명의 서부 사나이 일행이 미국 서부의 자연을 가로 질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파해 간다는 것입니다. 길은 험난하고, 일행 들 끼리 싸울 때도 있고, 그런 저런 사연 와중에 서로 친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이나, 도착한 후에 최후의 대결전을 하면서 마무리 짓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서부극의 중심 줄거리로 무척이나 많이 활용된 가장 큰 이유는, 실제 카우보이 무용담이 이런 이야기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19세기말 농업 형태가 바뀌기 전까지, 내지는 소년 조셉이 가시철조망을 발명하기 전까지, 카우보이들은 소를 잘 먹이기 위해서 소떼들을 몰고 험난한 먼길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모험이 생겼고, 많은 다툼도 있었기에 모험담과 무용담들이 생긴 것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떼지어 이동하는 이야기들은 애초부터, 자주 나왔습니다. 같이 길을 가면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 그 개성을 뽐내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베짱을 부리면서 "미국식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멋을 부렸습니다.


(유마행 기차역으로 가는 길)

"3:10 투 유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은 역시 주인공인 두 사람에 의해 확실하게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악명 높고, 엄청나게 베짱 잘부리고, 지독하게 폼을 잡는 무법자를 러셀 크로우가 연기하고 있습니다. 한편 성실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인내심 있고, 오기를 부리고, 열등감도 조금 느끼고 있는 가난한 농부를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두 인물이 처음 등장해서 하는 행동부터,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소소한 말들, 사용하는 단어들, 주위 사람들의 구도 같은 것들이 완전히 상반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은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것은 영화 전체 분위기의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성격 대립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갈등을 계속 자아내기도 하고,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우세한 상황이 되었나, 열세한 상황이 되었나가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계속 긴장감을 줄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보면, 두 사람의 대립은, "과연 부당한 세상에서 성실하게 살아본답시고 발버둥 치는게 어디까지 의미있는 것인가" 하는 인생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도 합니다.


(농부, 크리스천 베일)

이 영화의 좋은 장점 중에 하나는 이런 두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올망졸망한 줄거리 요소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자 등장 인물들과의 대사 주고 받는 장면을 써먹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는 힘이 넘치고 사람을 두렵게 하는 멋쟁이 악당이고, 크리스찬 베일은 뭔가 억울한게 많은 힘없는 사람임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러셀 크로우는 항상 여자 등장 인물들에게 자신감 넘치게 행동하고, 여자 등장 인물들은 은근히 러셀 크로우에게 끌리는 듯 행동합니다. 반면에 크리스찬 베일은 주눅든 듯 행동하고, 크리스찬 베일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한 그의 아내 조차도, 영화 속에서는 굳이 크리스찬 베일과 언쟁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여자 등장 인물들의 비중은 매우 적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이 영화 중심 줄거리와는 그다지 별 상관도 없고 신경도 많이 쓸 필요 없는 덤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듯 간간히 배치해 둔 이야기들을 지나가면서, 이 영화는 그런 남녀관계의 미묘한 면을 이용해서, 두 사람의 성격과 위치를 무척 비교되게 드러냅니다. 동시에, 그런 남녀관계에 얽힌 작은 대사와 행동들 속에서도, 역시 러셀 크로우의 행동은 결코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가 돌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이 종잡을 수 없을만큼, 막나가는 인간이라는 것도 암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도 "take care" 같은 말을 복선으로 두어번 활용하는 것도 묘하게 불길한 맛이 있어서 이야기 분위기를 살립니다.


(여자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크지만, 그래봤자 10분 나올까말까)

줄거리 중에 또 한가지 재밌는 점은 나름대로 인과관계가 눈에 잘 들어오도록 꾸며 놓았다는 것입니다. 전체 내용이, 가난한 농사꾼이 갑자기 악명 높은 범죄자가 싸돌아다니며 총질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다보니, 결국은 "우연히 어찌하다보니 시간과 장소가 맞아떨어져서" 가 진짜 이야기의 원인이요, 이유가 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는 대사의 배치와 인물의 등장/퇴장을 잘 살펴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감정변화에 이유가 잘 보이도록 해 놓았습니다.

"가난한 서부 개척 농민의 고달픔"이 첫번째 원인으로 출발해서, 그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 그 일에 대한 주인공의 행동이 나오고, 그 행동으로 인해, 악당의 행동과 한 단계 더 얽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본격적인 갈등이 개시 되기 전까지 도입부가 좀 긴 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 거리들이 충실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인과관계 묘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식으로 주인공의 상황과 심정이 사건의 이유로 제시되고, 이것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악당의 상황과 엉키면서 서서히 상황이 악화되고 일이 꼬여가는 과정이 실감나서, 볼만하게 돌아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5,6초 나오는 곁다리 장면에 불과하지만 인물의 성격이 꽤나 분명히 드러남)

영화 소재에서 다른 재미있는 것은, 어지간한 서부 영화의 흥행작들이 다루었던 중대한 소재들이 무척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실제 서부 개척 시대 혼란상의 가장 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혼란상과, 철도 산업의 자본주의 부작용은 꽤 중대한 소재로 개입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남북전쟁 참전 경력은 중요한 소재로 계속 언급되고, 또 철도 회사가 주요한 이야기 갈등 요소로 개입하기도 합니다.

특히 철도 산업의 경우에는, 마지막 결판이 열차가 3시 10분에 역에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상에서도 상징적으로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농부 주인공이 간절히 기다리는 "비구름"과 더불어, 증기기관차가 태양을 가리고 그 연기가 구름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상당히 그럴듯하고 거창하게 열차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 전체의 결말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야기 구조 상으로도 강조되기 때문에, 철도는 실제로 강조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철도 회사는 돈이 많아서 나의 먹잇감)

물론, 이 영화는 "속 석양의 무법자" http://gerecter.egloos.com/3472034 처럼 본격적으로 남북전쟁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http://gerecter.egloos.com/2401579 처럼 철도 자체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 구도에서는 괜히 그런 내용을 지나치게 많이 투입하지 않고 자제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어떤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들다가 산만해질 우려가 있었다는 생각도 드는데, 거기서는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지금 "3:10 투 유마"에서 이 정도로 남북전쟁과 철도 소재를 계속 언급되고 분위기 자아내는 소재로만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게 수위를 잘 조절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성공한 서부 영화의 이야기 거리들이 나옵니다. 뜸들인 사연에 비해서는 무진장 싱겁지만, 아파치 부족의 공격도 소재로 등장하고, "셰인" 같은 영화처럼,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난 떠돌이 인물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관찰하면서 이야기에 잔재미를 주는 것도 나옵니다. 악당들이 뒷골목, 지붕 위, 건물 뒤 등등 여러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조준하고 몰려드는 모습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후반부 총싸움 장면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또 가끔 종종 "특이한 서부 영화"로 이야기거리가 되곤 하던, 19세기 후반 서부의 중국인 막일꾼들도 소재로 나옵니다.

이렇게 튼실하게 보강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현실감 생기는 인물의 번민과 의지, 개성이 볼거리입니다. 막가는 범죄자 러셀 크로우와, 고달픈 서부 개척민으로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감정이입하기 좋은 소시민 농부 크리스천 베일의 선명한 성격 대조가, 이 영화에서 아마 제일 재미난 부분이라고 할만하겠습니다.


(무기나 얼굴 표정 부터 대조적)

이 영화의 결정적인 약점은 부실하고, 또 터무니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 결말입니다. 결말만 빼놓으면, 영화가 흘러가는 모양새는 꽤 정석대로 였습니다. 느릿느릿 초반에는 시간을 끌고, 점차 사건들이 벌어지고, 이야기가 점점 빨라지다가, 막판에는 총알이 빗발치고 다이너마이트가 펑펑 터지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흐름만 보면, "속 석양의 무법자"나, "속 황야의 무법자" 같은 60년대 중반 이후에 흥행한 서부 영화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말인 즉슨, 결말에서 뭔가 제대로 터져 주기만 하면, 장중한 대단원의 맛을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구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이 영화의 결판은 매우 이상합니다. 보통 이런 영화는 막판에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거나, 혹은 중반까지 쌓아왔던 작은 복선이 커지면서 의외의 사태로 이야기가 돌파되는 것이 흥겨울 것입니다. 내지는 파국적인 비극의 서글픔이 살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빽 투 더 퓨처 2" 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맥플라이가 탈출하기 위해서, 이 영화의 핵심주제라고도 할 수있는 것이 화끈하게 등장해 어찌보면 초현실적인 멋을 보여줍니다. "빽 투 더 퓨처 2" 결말 장면만 해도, 도무지 막막한 상황을 제시해 놓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중절모 쓴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걸어오면서 "시간여행" 소재 영화의 핵심을 짚어버리는 장중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3:10 투 유마"는 해괴하게도, 갑자기 악당인 러셀 크로우의 이유없이 "선행"을 하려고 해서 이야기가 뒤바뀌어 버립니다. 선행을 하려는 이유는 멋부리려고 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데이트 하기 전에, 구두에 광내면서 멋부려 보려는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 걸고, 엉뚱한 사람 쏘아 죽일 결심을 하는 커다란 병화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멋부리고 싶어서"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서 폼 잡기지, 정말 러셀 크로우의 행동은 사실 "왜저라나" 싶을 만큼 안어울렸습니다. "결국 영화라는게 LA 근처에서 카메라 세워두고 짜고하는 쇼일 뿐이지"라는 느낌만 키울 뿐이었습니다.


(인상쓰기는, 그래봤자 가짜총 아니면, 가짜총알 아냐?)

돈 2백달러에 고민하던 농부와 인정사정 없는 살벌한 무법자의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막판에는 갑자기 명예와 의리를 위해 살고 죽는 이상한 느낌이 언뜻 비칩니다. 그것도, 뭔 "전쟁터의 영광"스러운 느낌이 서려 있는 좀 엉뚱한 것입니다.

러셀 크로우에게 출연료를 가장 많이 줬는데, 러셀 크로우가 갑자기 멋있는 행동도 좀 많이 해보겠다고 요구했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어림없이 휘청거린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는 영화 끝까지 주요 조연 한 명이 자꾸 활약하는데, 이것도 그다지 의미있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될성부른 떡잎 배우에게 출연분량을 억지로 늘여주려고 한 것 이외에 대체 무슨 재미에 큰 도움이 되나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시 10분까지 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일부러 관객들에게 들려주어서, 초조하고, 긴장되는 느낌을 한껏 주었지 않습니까? 그런 수법은 좋았습니다. 관객들도 대체 3시 10분에 어떻게 될 것인지 기대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런만큼, 막판 결전은 주인공의 처연하면서도 화려한 고독한 결투가 되는 편이 더 좋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악당 떼거리 등장)

두 주인공 배우들의 연기는 멋집니다. 한 7,8년 전 같으면, 우직한 농사꾼을 러셀 크로우가 연기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뺀질이 악당을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반대로 되어 있는데, 둘 다 무척 잘 어울리고, 특히 크리스찬 베일은 대다수 장면에서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과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좋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엇나가면서, 그만큼씩 맺히는 것이 생기는 그 모습이 표정이며, 마른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악당 2인자 인물을 잘 설정해 놓아서 크리스천 베일과 러셀 크로우를 더 돋구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악당 러셀 크로우는 폼 잡고 멋을 부려야 하기 때문에 추잡한 짓을 직접 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많이 나오면 안됩니다. 그래서, 추잡한 짓을 도맡아 하는 악당 2인자가 활약하게 한 것입니다. 보통 이런 "악당이 악당인 것 티내려고 등장하는" 악당 2인자는 그냥 사악하기만하고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 싶은 그야말로, "영화속 악당" 같은 인간에 그칠 때도 많습니다.

"3:10 투 유마"에 나온 악당 2인자도 대체로 그런 틀 안에 있겠습니다만, 조금은 더 복잡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 인간은 약간 신경증적인 느낌이 서려 있는데다가, 사악한 악당치고는 인상이 좀 불쌍하고 맺힌 것 많게 하고 나옵니다. 이 영화에는 남북전쟁 관련 소재가 가끔 언급되는데, 이 인간은 전쟁 끝난지 한참 지난 시대가 되어 이미 북군 USA의 천하인데도, 뭔 짓거리인지 "남군" 군복을 입고 싸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하며, 사실과 감정을 전달하는 대사라기 보다는, 스스로 다짐하려고 되뇌이는 듯한 투로 대사를 많이 하게 되어 있다는 점도 묘합니다. 그래서 어딘가 사연 많은 듯 보이는 악당이 생겼습니다. 이런 것들도 이 인간의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러고 있으니까 많이 남군 군복 같지는 않아 보임)

끝으로 갈 수록, 영화의 분위기는 홍콩 느와르 영화 류에서 볼 수 있었던, 허무주의 비극에 살작 걸쳐 있는 범죄물 느낌이 많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 구절을 읊조리는 장면이라든가, 사악하지만 인기있는 악당과, 그 악당을 관찰하는 성실한 주인공의 시점, 주인공과 악당의 묘한 관계 같은 것이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납니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결국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총탄이 마구 휘몰아치며 끝맺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다소 고전적인 서부극 이야기 속에 섞여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자면, 그리고 결말에 굳이 좀 더 의미를 두자면, 결국 이 영화는 80, 90년대에, "네오 느와르" 영화가 나오고 어쩌고 하던 시기에 몇 편 나왔던, "영건" 류의 영화와 상당히 닮은 영화입니다. "델마와 루이스" 같은 영화도, 배경이 현대라서 그렇지 넓게 보면, 비슷한 한통속이라고 할만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 보다 좀 더 역사적인 소재에, 좀 더 옛날 서부극 느낌이 많이 나게 꾸민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꽤 멋진 경치가 있는 곳이 배경인 만큼, 좀 더 멋지게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이나 미술에서도 한두장면 정도는 좀 과감하게 꾸며서, 총싸움 장면이 조금은 더 강렬하게 묘사되어도 좋지 않았겠나 싶어서, 그 역시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나마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터널 공사장에서 벌어지는 대목이, 장면 구도가 좀 괜찮은 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이 영화는 글렌 포드와 반 헤플린이 나오는 1957년작 "3:10 투 유마"를 토대로 만든 영화입니다. 1957년작 영화는 델머 데이브스 (Delmer Daves) 가 감독을 맡았는데, 이 사람은 감독작보다는 각본에 참여한 영화들이 더 유명하지 싶습니다. 1939년판 "Love Affair"와 1957년판 "An Affair to Remember"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이 영화의 이상한 결말은 1957년판 영화의 이야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데, 훨씬 덜 이상하고, 이해갈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후반부에 악당들이 수적인 우세를 확보하기 위해서 돈을 몇백 달러 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주인공측은 고생을 하는데,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돈 쓰는 것이라면, 주인공 쪽이 훨씬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흉악한 악당 보다는, 철도회사를 끼고 있는 주인공측이 신용도 훨씬 더 높을 테고, 그게 아니라도 악당들은 그 자체로 현상금도 걸려 있을테니 말입니다. 악당들이 돈 써서 사람 모으니까, 주인공 편에서는 완전히 망했다는 듯 망연자실하는데, 좀 이상했습니다.


핑백

덧글

  • marlowe 2008/03/03 08:39 # 답글

    확실히 결말이 어색하더군요.
    원판도 보고 싶어지네요.
    피터 폰다가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그가 가장 터프하게 나온 캐릭터일 듯....)
  • 뚱띠이 2008/03/03 13:29 # 답글

    흐음...........조금식 댕기네요...요즘 서부극은 많이 저어했는데....
  • 오리지날U 2008/03/03 17:34 # 답글

    영화를 띄엄띄엄 보셨군요..
    맥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결말 부분이 이상하다거나 하는.. 그런 느낌은 안 들 텐데 말이죠.

    게다가 악당들이 돈으로 수적인 우세를 점하는 게 이해 안 간다는 것도...
    물론 말씀하신대로 철도회사 직원을 끼고 있는 주인공 쪽이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들은 고립돼있었죠 ! 돈이고 뭐고 컨벤션 주민들에게 말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마을 치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안관 무리들 조차 두 손을 번쩍 들고 나가버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디 매수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 게렉터 2008/03/04 09:14 # 답글

    marlowe/ 전체 이야기로는 옛날 영화가 조금 더 나은데,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라든가, 인물들의 멋부리기 같은 면은 이번 영화가 나았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뚱띠이/ 미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보더라도 또 다른 방향으로 이럭저럭 흥미가 생기는 부분도 있는 영화입니다.
  • 게렉터 2008/03/04 09:24 # 답글

    오리지날U/ 띄엄띄엄 보지 않았습니다만, 결말 부분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벤 웨이드가 댄에게 "이제는 아들도 갔는데 때려 치워라"고 해서, 그냥 그대로 도망치려고 하다가는, 곧 마음을 고쳐 먹는 계기라고 나오는게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우기 막판에 "Nooooo!" 한 뒤에 총질하는 것도 좀 납득하기 어려웠고 말입니다.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도,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해서 그렇지,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악당들이야 말로 백주 대낮에 방탄복, 갑옷도 없이, 보안관까지 우리편인 생전 처음보는 마을에 기어 들어온 것 아닙니까?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편이, 건물 창문에다 데고,

    "저자식들은 현상금이 1백달러 씩이고, 우리도 현금으로 2백달러 더 걸겠다."

    했다고 합시다. 눈앞에 훤히 보이는 현상금 걸린 악당 패거리를 죽이고 돈을 받는게 더 쉽지, 건물 안에 숨어 있는 보안관을 죽이고 악당이 약속대로 돈 2백달러 주기를 바라는게 더 쉽겠습니까? 영화에서도 악당들은 돈 계산 잘하려고 하기는 커녕, 자기 두목 쪽으로 조준했다고 도와주던 주민들을 쏴 죽여 버리는 놈들이지 않습니까?
  • Kuma 2008/03/06 14:21 # 삭제 답글

    저도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의문이 많았지만 아래와 같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1. 벤의 부하들과 같은 방법인 돈으로 매수하여 그 상황을 빠져나올 생각을 못한 건
    그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그가 댄을 고용한 이유는 '총을 쏠 줄 아는 싸고 저렴'한 가격의 퇴역군인이었기때문이지
    실력이 있고 확실한 운반책이라서 고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발할 당시는 벤을 사로잡았다는 공명심과 부하들을 따돌렸다는 공무원(이라고 봐도 되겠지요.)스러운 안이한 발상으로
    낙낙하게 시작했으나 마지막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일에 어쩔줄 몰라하며 대신 총알받이로 나서겠다는
    댄의 조건을 수용한 거라고 보는게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가 댄이 내건 조건을 끝까지 이행해주진 않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증인은 댄의 어린 아들만 남은 셈이니까요.

    2. 벤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빌어먹을 주정뱅이와 더러운 창녀의 그곳에서 기어나온'이라고 언급한 헌터를 죽입니다.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말을 던질 때만해도 친근함까지 표하며 웃어넘기던 그가 부모를 모욕하는 말엔 가차없는 응징을 가하지요.
    자신의 터부라 생각되는 부분을 건드리는 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부모에게 버림받은 일은 아직까지도 아물지않은 상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벤에게 댄은 자신이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자식앞에서 당당하고자 노력하는 댄.
    그를 위해 벤은 편한 길을 '조금 불편하게 돌아가는 걸 감수'합니다.

    댄이 벤을 유마행 열차에 태우려는 이유는 그저 자식에게 당당한 모습을 하나는 가지고 싶다는 겁니다.

    맘이 통하는 사내를 만난 김에 돈도 주고 귀찮은 탈옥도 면해보려 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사내가 생에 단 한 번의 당당함을 위해 노력한다는데.
    그래서 벤은 귀찮지만 자신이 앞장서 열차를 향해 달려갑니다.

    3. 이렇게 보면 마지막에 자신의 본질이 아닌 살아남기위해 뒤집어 썼을 뿐인 악당이라는 허울을
    쫓아온 찰스프린스와 나머지 부하들을 다 없애는 것도 납득하기가 쉬워집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유일한 대상인(극중에선 댄이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댄을
    껍대기인 자신밖에 모르던 자신의 과거에게 살해당한 거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4. 제 해석은 '영화속의 이야기'가 기준입니다.
    게렉터씨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제작관련 내역까지 아우르자면
    이런 해석은 불가능 하지요. 하지만 영화자체를 즐기는 방법에 제반사항까지
    모두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니 이런 즐기는 방법도 어떨까 생각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