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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가 파장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던, 1983년. 홍콩 쇼브라더스사는 홍콩에서 방영된 TV연속극 "천잠변"의 영화판을 내놓습니다. 서소강(徐少強)이 주연을 맡고, 노준곡(魯俊谷)이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영화 내용은 신비적인 색채가 강한 무당파와 무적문이라는 파벌이 서로 대결을 벌이는 상황을 배경으로, 무당파에서 맨날 박대 받고 있는 비천한 최하급 제자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입니다.
![]() (괴롭힘은 자기가 당하고, 처벌도 자기가 당하는 이 억울함) "천잠변"의 훌륭한 점은 일단은 그 무술 장면입니다. 이 영화 속의 무술장면은 빠르고 신나며, 1대1 대결 부터, 여러 명이 단체로 싸우는 싸움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고 현란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술의 종류도 가지가지입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소위 "권격"물이라는 주먹질하고 발길질 하는 "쿵후" 싸움에서, 전통적인 칼질하고 창질하는 "무협"영화의 무술들, 그리고, 70년대말, 80년대초부터 부상하던 장풍쓰고 날아다니는 특수효과 초능력 무술까지 다양하게 나옵니다. ![]() (장풍 비스무레한 것 받아랏!) 이 영화는 세가지 중에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셋다 골고루 잘 다루고 있습니다. 셋다 다루다가 이도저도 아니고 망하기 쉬울 위험도 있었을 텐데,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이 무기를 집었다가 놓고, 장풍을 쓰기 위해 기를 모았다가, 장풍을 쓴 뒤에 다시 칼질을 하는 등등 싸움의 구성을 지혜롭게 잘 짜 놓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상황에 따라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의 종류가 다르게 되어 있기도 하고, 완급이 조절되며 흘러가는 줄거리 속에서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번갈아 가며 잘 어울려 나오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싸움 장면들이 잘 되어 있는 또다른 중요한 부분은 빠르게 넘어가는 화면 설정이 무척 좋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빠르고 요란한 싸움을 보여주는데, 타격감이 잘 느껴지고, 싸움의 중요한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소리와 움직임에 맞춰서 잘게 화면이 잘려서 휙휙 넘어가며 바뀝니다. 그러면서, 긴박감 있게 싸움 상황을 살피는 느낌이 나도록, 그렇게 빠르게 싸우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기도 하고, 중요한 장면일 경우에는 일부러 화면을 다각도로 전환시켜 가면서 강렬함을 돋구기도 합니다. ![]() (칼싸움 도중에 갑자기)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는 싸움 장면이 아니라도, 이렇게 역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잘 활용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걸어가는 주인공을 따라 화면이 움직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 화면이 빙 한바퀴 돌기도 하는 것이, 과장 없이 시선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화속에 녹아 있습니다. 중요한 "반전"에 해당하는 대사를 할 때는, 대사의 한 단어, 한 단어 마다 화면을 잡은 각도가 바뀌면서 강조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 (무당파 본산) 장면들 중에는, 주인공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나무가지를 밟고 다시 뛸때, 나무가지를 밟는 발만 가까이 찍어서 잠깐 후다닥 보여주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등등의 "홍콩 무술 영화" 특유의 구성방식도 꽤 많습니다. 이런 연출을 너무 남용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거니와, 자칫 영화의 상황을 알아보기 어렵게 되는 문제점도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도 지혜롭게 조율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칼싸움 솜씨를 가진 배우들의 기본기를 바닥에 충실하게 깔고 이야기가 진행하고 있으며, 그런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은 오히려 10년 후쯤에 나오는 다른 홍콩 무술 영화들의 화려하고 요란한 장면들보다 낫다면 낫지 모자라지 않을 지경입니다. ![]() (객잔난투) 빠른 칼 싸움 장면과 상황 변화를 돋구어 주는 이런 빠른 화면 전환들 외에도, 다른 부분도 무술 장면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게 잘 맞춰져 있습니다. 무술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보이기 위해서, 필름 돌아가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찍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수법을 너무 심하게 쓰면 어색하기도 하고, 뭔 무성영화 시절 찰리 채플린 코메디 같아 보이기도 해서, 좀 우스꽝스러워질 우려도 있습니다. "천잠변"에서는 그런 부분도 상당히 잘 조절해서 무난하게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맞고 자빠질 때, 고이 자빠지지 않고, 탁자나 의자 위로 쓰러지게 하고 탁자와 의자가 박살나게 하는 수법 역시 잘되어 있습니다. 싸움의 힘이 강조되고, 부서지고 쪼개지는 화면과 소리가 흥을 돋구기도 합니다. ![]() (오른쪽 단역배우가 탁자 위에 떨어져 굳이 탁자를 부수면서 자빠짐) 싸움 장면 중에는 무술 장면 연출의 기교를 일부러 과시하는 듯한 장면도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언제나 나오기 마련인 식당에서 싸우는 장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위층과 아래층을 넘나들며 어지럽게 집기를 부수면서 싸우는데, 수십명의 인간들이 마구 뛰어다니면서 싸웁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 많은 사람들의 동작과 칼 휘두르는 방향을 열심히 궁리하고 고민해 짜넣느라 공들인 것이 잘 느껴집니다. 싸움 장면 중에 백미에 해당하는 장면은 무당파 사람들이 진을 짜서 줄지어 칼싸움 하는 장면입니다. 두 세 명 정도의 상대방을 향해 30, 40명 정도의 무당파 사람들이 대형을 바꾸고,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하면서 싸우는데, 꽤 인상적입니다. 칼 싸움 자체가 앞뒤로 어지럽게 춤을 추듯이 칼을 휘두르는 모양이 화려하기도 하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줄지어 빠르게 뛰어다니는 모양도 신기합니다. 치어리더 쇼 같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칼을 휘두르고, 기합소리를 넣으면서 물러나고 공격하는 모습과 이 모습이 잘 보이도록 휙힉넘어다니는 화면은 분명히 특유의 맛이 있었습니다. ![]() (떼거리 칼싸움) 싸움 장면들이 잘 짜여져 있는데 비하면, 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에 비교해 보면 약간 부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무당파와 무적문의 뿌리 깊은 대립을 소재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그 대립은 슬그머니 중심에서 빠져 버립니다. 중요한 듯 보였던 인물들의 비중이 슬그머니 줄어드는가 하면, 약간은 엉뚱해 보이는 "비밀"이 튀어나오면서, 영화 갈등의 방향이 좀 뒤틀리기도 합니다. 요컨데, 처음 시작 할 때 보면, 이 영화는 무당파 대 무적문의 양자 대결 구도 였는데, 이게 3자 대립 구도로 넘어가는 것이, 좀 무리도 있고, 엉성한면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도 영화의 재미를 확 흐릴 정도는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적역을 맡아서, 연기를 잘하고 있고, 특히, 여자 주인공 격의 인물을 연기하는 유설화(劉雪華)의 모습은 훌륭합니다. 역에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연기로 매력을 드러내면서도 줄거리나 싸움 장면을 전혀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잘 녹아 있습니다. 무술 장면으로 넘어갈 때도 제 몫을 잘 합니다. 중간에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잠깐 있는데, 이 부분은 중국 전통 음악의 멋을 영화 속 분위기에 잘 결합하면서, 그런 매력과 영화의 향취를 더 돋구고 있습니다. 음악에 따라 부드럽게 흘러가는 화면 구도도 썩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 ![]() (유설화)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그 이야기 구도가 바뀌면서 헛점이 좀 드러나기는 해도, 그것을 붙잡아매 주기 위해서, 주인공의 성격과 상황이 무척 분명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쉽게 잘 되는 편입니다. 맨날 구박 받고, 괴롭힘 당하는 힘없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이 주인공이 엄청난 고수들 사이에서 서서히 위치를 찾아가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감정을 따라가며 즐기기 좋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했던 일이 꼬이고 안풀리기도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응원과 동정을 받고, 따라서 충분히 이야기 중심 위치를 지킵니다. 주인공은 "연애편지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읽히기"라는 고금에 널리퍼진 망신도 당하므로, 관객들이 느끼는 바는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가운데, 줄거리의 몇몇 복선 요소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도, 전체 이야기를 잘 잡아 주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라면 스포일러 입니다만, 애초에 "천잠변(天蠶變)"이라는 제목 부터가,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와 나비로 변해 날아오르는 은근한 복선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 부터 시작해서,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라든가, 앞쪽 사건에서의 이해 관계가 뒤쪽 사건의 동기와 감정을 끌어내는 이유로 활용되는 것들도 그럭저럭 잘 짜여 있습니다. 때문에, 아주 절묘하고, 흡인력 있는 줄거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영화 속에 펼쳐지는 여러가지 싸움 장면들을 잘 지켜보면서 따라갈 수 있는 뼈대로는 문제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 (비웃음 당해 고통받는 주인공) 끝으로, 한 가지 지적하자면, 역시나 특수효과를 환상적인 무술 장면에 결합하는 부분들은 기술이 미숙해 보이는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특수효과 기술 자체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고, 기를 모아서 장풍을 발사하려다가 기를 모으는데 실패하는 장면처럼, 표현 자체는 별 무리가 없는데, 어딘지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나서 심각한 분위기에는 도움이 안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것들 중에는, 굉장히 자주 나오는 소재 중의 하나인, 실력 높은 고수가 실력 낮은 하수에게 소위 "내공을 전달해준다" 라는 장면도 있습니다. 앞뒤로 앉아서 등짝과 어깨죽지 부분을 내리치는 그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데, 역시, 빈틈이 좀 보입니다. 더이상 크게 잘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실감나는 듯 꾸미거나, 혹은 더 거창해 보이도록, 연출 방법이나 인물들의 동작을 개선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 (내공전수) 그렇다고는 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싸움 장면 중심으로 전개되어 유려하게 끝나는 영화를 보고나면, 이게, 농익은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 무술영화 제작기술의 정통이구나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또 저런 장풍 쏘는 특수 효과 같은 것은 약간 부실한 듯 해야 또 더 그런 영화다워 보인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더우기 막판쯤 되면, "스파이더맨"이나 "판타스틱4"보다 훨씬 더 무모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때문에, 화면을 지켜보게하는 신기한 맛은 충분히 있는 영화입니다. ![]() (문자 그대로, 칼을 잡는 칼잡이) 그 밖에... 이 영화는 속편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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