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신상 (1984년판, 布衣神相, Return of the Bastard Swordsman) 영화

나름대로 볼만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천잠변" http://gerecter.egloos.com/3645104 을 1983년에 내놓은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는, 이듬해 그 속편인 "포의신상"을 만들었습니다. 홍콩 쇼브라더스의 말기 영화인 이 영화는 시작하면서, 앞 이야기인 "천잠변"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볼작시면, 일단은 "천잠변"의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 입니다.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냥 고이 천잠변 다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협물의 등장인물인 "포의신상" 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천잠변 이야기에 뛰어들어 활약하는 살짝 꼬인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새로 나타난 "포의신상"과 "천잠변"에서도 나왔던 여자 주인공)

"포의신상"은, 선전할 때는 살짝 과장해서 김용, 고룡의 뒤를 잇는 무협 작가라고 소개하는 온서안(温瑞安)이 쓴 "포의신상"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기록을 보면 1983년에 홍콩 aTV 를 통해, 포의신상 시리즈 하나가 TV극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천잠변"이 천잠변 TV 시리즈가 나온 뒤에 나온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TV극과도 무슨 상관이 있을 듯 합니다. 정확한 이유가 뭐였든지 간에, 이 영화, "포의신상"은 "천잠변" 이야기 속에 포의신상이 어느날 갑자기 왠지 나타나서, 길가다가 "천잠변" 등장 인물을 만나 엮이는 형태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포의신상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싸돌아다니는 관상쟁이, 포의신상)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천잠변"에서 최강의 자리를 놓고 대결하던, "무당파"와 "무적문"이라는 두 당파는 갑자기 나타난 제3의 세력 때문에 대결 구도가 엉성하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잠변" 마지막에 우리의 주인공이 대활약을 하는 바람에 제3의 세력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다시 "무당파"와 "무적문"의 두 당파가 최강의 자리를 놓고 대결하는 것이 중심 줄거리가 됩니다. 다만, 이번에도 또다른 제3의 세력이 등장해서 두 당파의 대결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온 일본 최강의 고수라는 칼잡이 들이 문제의 제3의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화를 볼때면 언제나 익숙하기까지한 "일본인 악역")

이 영화는 일단 "천잠변"의 장점은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습니다. 무술 장면들이 빠르고 화려하고, 다양한 여러가지 종류의 무술들을 빠르게 넘어가는 화면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칼싸움, 주먹질, 발차기, 특수효과로 날아다니며 장풍 쓰는 것, 가지가지 다 나옵니다. 더군다나, 초반에는 비교적 평범한 칼싸움과 주먹질이 많이 나오고, 중반에는 좀 더 화려하고 기교적인 싸움들이 등장하며, 막판에는 특수효과로 펑펑 터지고 뭔 레이저총 같은 것을 쏘는 식으로 넘어갑니다. 때문에, "점점 말도 안되게" 변해간다는 전체적인 흐름속에서 부드럽게 점층법을 이루고 있는 듯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주요 등장 인물들부터, 단역 까지 모두 영화에서 보여주는 칼싸움 장면에 잘 단련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싸움 장면들을 신나고 요란하게 잘 펼치고 있습니다. 무술영화의 과장 장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한 명이서 수십명 상대해서 단숨에 다 쓰려뜨려 버리는 장면도 부드럽게 잘 되어 있고, 그런 장면들이 이야기 속에 필요하게 잘 들어가 있어서, "과연 굉장히 강한 놈이구나" 하는 감상을 관객에게 전해주는데도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주먹이 나가는 데 따라 화면이 끊겨 넘어가고, 칼이 움직이는 데 따라서 화면이 힘있게 움직여서, 휙휙휙 화면이 넘어가며 싸움을 보여주는데, 이번에도 솜씨가 좋습니다. 무술의 타격감과 움직이는 속도가 잘 전달 됩니다.


(싸움이 끝나고 난 뒤)

다만, 여러가지 무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신기하다거나 개성적인 것은 비교적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런 장면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있어도, 보기 좋게 잘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장사상과 숙명론에 쩔어 있는 유유자적한 포의신상이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는 장면은 꽤 재미납니다. 이 부분은 성룡 영화의 웃긴 무술 장면과 비슷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포의신상은 무모하게 돌격해 오는 적들을 재치있고 발랄한 몸동작으로 장난치듯 제압해 버리는데, 재미납니다. 뿐만아니라, 그 여유만만한 모습이 사람의 관상을 보고 운명을 내다보며,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 운운하는 인물의 성격도 잘 드러냅니다.

아쉬운 점은 그런 장면들이 조금 밖에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의신상"의 성격을 느끼고, "이 사람 대단한 양반이구만"하고 감상을 느끼기에는 족하지만, 그런 장면 자체를 즐겁게 즐기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 중에서 포의신상이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조무래기를 가볍게 제압하며 여유부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모범적입니다. "식당에서 무술 실력으로 압도해 잘난척 하기"는 "대취협 http://gerecter.egloos.com/2987678 " 때무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이런 영화의 장면이었습니다. 무술 영화라면 한 번쯤은 꼭 나옴직한 장면인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기술도 묘기처럼 멋지고, 화면도 멋지게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게중에서도 모범적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속에서의 역할이나 분량은 확실히 짤막한 것이어서, 매우 아쉬웠습니다.


(손을 빼 보시겠소?)

막판에 장풍쓰고 날아다니면서 벌이는 결전도 비슷합니다. 어차피 현실감을 상당부분 버리고 찍는 이야기가 이런 장면인 만큼, 이런 장면은 괴이한 기술과 환상적인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맛일 것입니다. "포의신상"에서도, 일본 최고의 고수라는 자가, "자기 심장을 부풀리는 기술"이라는 어지간해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을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을 부풀려서 뭐 어떻게 저떻게 공격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화면에 표현되는 시각적인 표현을 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척이나 황당한 기술들이 작렬하는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눈으로 보기에는 별로 요란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공포의 심장 부풀리기 공격)

이야기 구성 역시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무당파와 무적문의 양자 대결 구도, 대립구도가 영화 후반까지 적절히 이어집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도 잘 나뉘어져 있습니다. 무당파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고, "한편 그 시각에, 무적문에서는..." 같은 자막이 적당할만큼, 대응되는 무적문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뒤이어 나오면서, 번갈아가면서 진행됩니다. 그래서, 무당파와 무적문이 대립하는 가운데, 제3의 세력인 일본고수가 섞이면서 어떻게 일이 꼬여가는지 선명하게 잘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무적문의 아지트)

하지만, 그에 반해, 이번에는 깊게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하거나,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싶은 인물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무당파의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주인공급 서소강(徐少強)의 배역은 주요 싸움 장면에서만 활약할 뿐,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등장을 별로 안합니다. 한편, "포의신상"을 연기하는 유영(劉永)은 언제나 유유자적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읊조리는 특이한 인물이면서 대단한 무술로 멋을 부리는 인물이라서 개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유영"은 어디까지나, "길가다가 심심해서 사건에 뛰어들어 도와주는 인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절박함도 없고, 감정의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분량이 굉장히 많지만 갈등구도에서는 "조연"의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비중이 높아도 될법한 유설화(劉雪華) 같은 여자 등장인물들은 아예 하는 일이 없는데 가깝습니다. 출연 분량이나 대사가 적기도 하고, 그나마 하는 역할이 대부분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대사를 거드는 들러리 역할만 할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 변화라든가, 집착, 갈등 같은 것도 거의 묘사되고 있지 않아서, 좀 더 인물을 튼실히 할 기회를 놓쳤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물이 받침이 될 때, 싸움을 할 때, 응원하게 되기도 하고, 위험할 때는 아슬아슬한 느낌도 커져서 더 재미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면은 보기 좋은 무술 장면과 견주어 보면 좀 아깝습니다.


(비중 팍 줄어든채 국떠먹고 있는 유설화)

(유설화)

물론, 당파간의 대립구도에 의해서 서로 싸우는 것이 명확해서, 이야기 흐름은 잘 들어오고 있고, 어떻게 사건이 풀려나가는 것인지 충분히 뼈대는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고수들은 한국 영화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나쁜 일본 악당"의 전형적인 행동을 하고 있고,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 가면, "나도 중국인이니, 중국인끼리 힘을 합쳐 일본인과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류의, 정말로 한국 독립군 활극에서 허구헌날 나오던 구도까지 잠깐 나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조금 심심하다 싶기는 해도, 대강대강 이해될만큼 무난하게 흘러간다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본인 답게 표창을 쓰는 모습 - 좀 크긴 하지만...)

중심 이야기로 적극적으로 포섭되지는 못했지만, 곁가지 재미거리가 자주 등장해서, 지루함을 덜어주는 것도 잘 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인공급 인물들은 감정 묘사가 별로 안되어 있는데 비해서, 일종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무적문 두목은 재미난 감정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천하제일의 고수이며, 따라서 횡포도 많이 부리고, 전형적인 무술영화 악당처럼, "우하하하하" 하고 웃는 인물인데, 그런 삶을 살면서 느끼는 허무감이라든가, 비애 같은 것이 슬쩍 표현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꽤 특색있습니다. 이 인물의 비중이 좀 작고, 무적문 두목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영화 줄거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곁가지이기는 합니다만, 보기에는 신선하다면 신선하기도 합니다.


(무적문 두목)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고개 까지 뒤로 젖히는 것이 멋)

그외에, 유영, 유설화, 서소강 일행이 돌아다니는 모험 중에도 재미난 소재는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나옵니다. 천년묵은 산삼 이라든가, 달과 해의 기를 빨아들이는 신기한 돌, 엄청난 기술을 가진 신비의 의사 같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나옵니다. 어느것 하나 아주 결정적인 것은 없습니다만, 호기심을 주면서 시간을 때우는 역할은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제 몫은 합니다.

그런 장면 중에서, "독이 든 물잔 세 개를 마시는 내기"를 하는 장면 같은 것은 썩 멋지게 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무술 실력과 빠른 화면 연출로, 현실 세계에서 보기 힘든 기이한 상황을 영화 속에서 잘 느껴지게 보여줍니다. 이런 류의 장면들이 다른 소재를 표현할 때도 좀 더 많이 나왔다든가, 이런 재미난 장면들이 곁가지 장면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으로 잘 활용되었다면 훨씬 더 멋진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독이 든 물 잔 세 개를 앞에 두고 - 아가씨가 든 상자 속에는 천년 묵은 산삼이 들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당파간의 대립구도가 잡혀 있는 가운데, 개성적인 주인공들이 일행을 이루어 여행하면서, 이상한 것을 만나며 벌이는, 마치 롤플레잉 게임과도 같은 모험물 요소가 상당히 개입된 이야기입니다. 이런 부류의 무술 영화는 한때 참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 "포의신상"은 1984년작 영화로서,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장된 효과 들이 아직 만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성장단계에서 옛날 무술 영화식 기술과 새 기술이 변화해 나가는 가운데, 나름대로 성취를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잘 단련된 노련한 무술 실력을 과시하는 전통적인 장면들과, 그리고 가끔 개입되는 신기하고 묘한 환상적인 소재들이 한데로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특히 역시나, 속도감 있게 수없이 짧게 끊겨 넘어가는 번쩍이는 화면 전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여겨 볼만합니다.


(달과 해의 기운을 빨아들인 돌, 위에 누워 있는 주인공)


그 밖에...

제가 아는 한, 이 1984년작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포의신상" 줄거리에 해당하는 진짜 온서안의 포의신상 이야기는 없지 싶습니다. 무협지를 거의 모르기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료로 봐서는 이 영화의 내용은 그냥 상관없는 "천잠변"이야기에, 재미삼아 포의신상을 한 번 등장시켜서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렇게 재미삼아 포의신상을 한 번 등장시킨 이야기, 원작 TV극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에는 작은 역이지만, 나열 도 살짝 코메디 배역을 맡아서 나옵니다.)

"천잠변"의 감독을 맡았던 노준곡(魯俊谷)이 그대로 감독을 맡았고, "천잠변"의 주요 주인공 인물은 다 다시 나옵니다.

저에게는 거의 반전이었습니다만, "심장 부풀리기 필살기"란 이런 것입니다.

심장을 부풀리면서, 심장 박동 소리를 멀리까지 들리게 낮은 음파로 퍼뜨립니다. 이걸로, 상대방의 심장 박동을 원격조정(!)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을 힘을 못쓰게 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상대방에게 바짝 붙은 채, 심장을 부풀려, 심장 박동 소리로 상대방의 심장 박동을 원격 조정해서, 상대방의 피를 혈관 밖으로 터뜨려 버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아아아... 무서운 일본 고수의 필살기. 덜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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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8/03/06 00:15 # 답글

    온서안이 고룡의 스타일을 계승한 것은 대체로 인정되더군요. 다만 안 좋은 점에서...
  • marlowe 2008/03/06 13:45 # 답글

    에드가 앨런 포에 대한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지존무상]의 독약 마시는 장면은 여기서 나온 거군요.
  • PERIDOT 2008/03/06 16:12 # 답글

    우려먹기인가요.
  • 게렉터 2008/03/07 11:21 # 답글

    rumic71/ 무협지를 잘 모르기에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말씀 덧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marlowe/ 그러고 보면 비슷하기도 한데,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되어 있는 것 하며, 감정은 꽤 다릅니다. 결정적으로, 저 물잔 세 개에는 모두 독이 다 들어 있고, 마시는 사람도, 세 잔 다 마시려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할까요?

    PERIDOT/ 우려먹기라고 보기에는 어떤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단초가 된 포의신상 TV극 자체가, "천잠변"에 연장선상에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말입니다. 뭐, 둘이 상당히 비슷한 영화로서 나란히 나온 것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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