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 60년대 TV판 시즌5를 중심으로 (The Avengers, 아벤저, 60년대판 "전격 제로 작전") 영화

60년대에는 TV에서 첩보물이 유행했고, 꽤 중요한 전환점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미국 TV에서는 첩보물의 쌍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순수 첩보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과 첩보 코메디물 "겟 스마트(Get Smart)" 가 60년대 후반을 수놓았고, 그 외에도 "나폴레옹 솔로(The Man from UNCLE )", "I Spy" 등등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첩보물은 영국 TV에서 조금 더 먼저나와서 인기를 끈 것인 듯 합니다. 그 영국 첩보물 중에서 최강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래도,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장수하며 나왔으며, 70년대에도 속편이 다시 나온, "어벤저(The Avengers)"를 꼽을만 할 것입니다.


(The Avengers 시작 장면)

기본 구도는 남, 녀 두 특수 요원이 짝이 되어 수수께끼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악의 무리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한가지 특징은 이야기가 좀 괴이한 사건들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영국 교외에서 호랑이에게 공격받아 죽은 사람들이 발견 된다거나, 금성에서 온 외계인에게 공격 받아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발견되는 등등 따위 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영국 경찰이 사건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특수 요원인 주인공들이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특수 요원 신분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첩보물이라고 하기에는, 첩보사건만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들은 단순한 범죄 조직과 싸울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좀 기이한 사건이 벌어져서 호기심을 생기게하고, SF 분위기가 아주 살짝 가미된 사건들로 연결될 때도 많으며, 이런 악당들이 대체로 특수한 능력이나, 괴기스러운 SF 첨단 과학 기술 따위를 범죄에 써먹으려고하는 때가 많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들이 특수 요원 다운 뛰어난 활약상을 잘 보여줄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괴이한 일이 생기고, 뛰어난 주인공들이 맞서 싸워서 한 에피소드에 한 건씩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은 사실 좀 평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사반장"에서 "맥가이버", "레밍턴스틸", "블루문 특급 Moonlighting" 하다 못해, "시티 헌터" 만화도 비슷한 형태입니다. 이런 많은 이야기와 다른 "어벤저"의 독특한 점은 바로 이야기가 매우 여유만만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여유만만한 정도가 매우 드높아서,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줄줄이 총맞고 칼맞아 쓰러져도, 두 주인공들이 서로 바라보면서, "많이도 죽는군" 운운하면서 농담따먹기나 할 뿐입니다.

여기에 이 이야기 특유의 인물 구도가 겹쳐져서, 개성은 더 강해집니다. 주인공들이 워낙에 숙달된 요원이고, 갖가지 기지와 지혜가 넘치는 인물들이며, 베짱도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시한 폭탄이 굴러다니고, 기관총이 사방에서 난사하는 위험한 상황을 맥주 한 잔 마시고, 팝콘 하나 씹어 먹듯 하는 사람인 것처럼, 목에 칼이 들어오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칼에 남의 목이 들어오건, 거의 장난스러울 정도로 여유만만한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말의 운율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수많은 농담 대사들과 결합해서, 한바탕 신나고 즐거운 TV쇼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들은 제임스 본드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어벤저"가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보다 먼저 나왔으니, 영화 속 제임스 본드의 모습과 "어벤저"가 서로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인공 특수요원들은,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추리를 하고, 어림없을 정도로 놀라운 싸움 실력과 행운을 보여주면서, 항상 위험과 함께 살면서, 싱긋이 웃으며 베짱만 죽자고 부려댑니다. 주인공들의 배경이나, 가정,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채 내용을 꾸려 간다는 것도 상당히 제임스 본드 스럽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주 중요한 부분이 제임스 본드와 다른데, 여자에게 인기 많은 분위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결정적인 차이 입니다. 특히 이 때문에, 남자 주인공인 존 스티드의 모습은 아주 개성적으로 잡혔습니다. 남자 주인공 존 스티드는 제임스 본드와는 정반대로 살짝 금욕적인 느낌이 나는 정도로 꾸며져 있는 것입니다.

일단 존 스티드는 그 겉모습이 정통파 19세기 영국 신사 입니다. 당장에 처삼촌 장례식에 가도 될만한 단정한 검은 정장 차림에, 특유의 가히 시대 착오적인 느낌마저 드는 "19세기 영국 신사" 모자를 쓰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검은 우산을 손에 붙여 놓은 듯 항상 떨어뜨려 놓는 일 없이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싸움 방식 중에서 가장 능한 것은 권투도 주짓수도 아닌 "펜싱"이고, 살짝만 미소를 머금은 좀 무표정한 인상에, 부유해 보일만큼 살집있는 늙수레한 얼굴로, 거의 절대적으로 정중한 말투만 사용하면서, 항상 친절한 듯한 차분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런 독특한 인물은 옛날 신사 답다는 느낌이 겉모습에서부터 거의 상징적으로 풀풀 피어 오릅니다. 때문에, 일단 제임스 본드 처럼 여유 부리는 것 부터가 크게 유리해 졌습니다. 주인공 존 스티드는 뛰어다니는 장면 조차 거의 나오지 않고, 항상 걸어다닙니다. 커다란 검은 우산을 들고 예절이 온 몸에 배인 태도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냥 별 대사 안하고, 왔다갔다 하기만 해도 절로 좀 심하게 여유 있어 보이는 인물 같습니다. 여자 주인공인 에마 필에게 항상 극도로 정중하게 "필 부인(Mrs. Peel)" 이라고 부릅니다. "이쁜이"나 "깜찍이" 는 커녕, 그냥 "에마"라고만 부를 때도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다가, 존 스티드를 맡은 배우, 패트릭 맥니의 교묘한 연기가 덧붙여지면 또 새로운 느낌이 납니다. 분명히 제임스 본드와 비교하면, 존 스티드는 겉모습은 훨씬 더 정중하고, 여자 관계도 평화로울 법 합니다. 하지만, 여유롭게 중얼거리는 농담을 들어볼작시면, 또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패트릭 맥니가 연기하는 존 스티드의 모습은 이러한 정중한 모습은 그야말로 첩보원, 특수 요원스러운 철저하게 통제된 모습의 결과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은연 중에 본심은 장난스러운 구색도 있고, 오히려 더 강렬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도 가끔 풍겨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주인공 존 스티드는 상당히 생동감 있는 인물인 듯한 느낌도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존 스티드의 기본 바탕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신사 다운 차림의 특수 요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살짝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느낌도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면서도, 이와 같은 풍부한 개성과, 정말로 저런 신사의 행태가 몸에 착 붙은 듯 연기하는 패트릭 맥니 덕분에, 마치, 저 패트릭 맥니가 그대로, 존 스티드 인 것처럼 느껴지고, 정말로, 저런 괴상한 정체 불명의 19세기 영국 신사 차림으로 수수께끼 같은 환상적인 사건들만 헤집고 다니는, 특수 요원이 영국 어딘가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임스 본드에 비교해 볼때, 이 이야기에서 서로에게 끌리는 남녀에 관한 이야기는 배제되어 있는 편인 까닭에 또다른 중요한 점 한가지도 아주 잘 살아 났습니다. 그것은, 남자 주인공 존 스티드와 여자 주인공 에마 필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로 장단 맞추는 은근한 만담들을 매우 잘 늘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TV물의 여자 주인공은, 속편을 제외한 1961년에서 1969년의 기간 동안, 총 3명이 바뀌어 가며 나왔습니다. 맨 처음에는 아예 여자 주인공 없이, 이안 헨드리가 연기한 데이비드 닐이라는 남자 의사가 나와서 존 스티드와 함께 일했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셜록 홈즈 - 와트슨 박사 분위기와도 흡사한 것입니다.

본궤도에 오른, 시즌2 부터, 여자 주인공이 존 스티드와 함께 손발을 맞추며 활약 하는데, 처음에는 캐시 게일 이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을 오너 블랙맨이 맡아서 연기했습니다. 오너 블랙맨은 007에 나왔던 바로 그 여자 배우 맞습니다. 여자 등장인물 이름이 우스꽝스러운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에서도 가히 최악으로 손꼽히는 "푸시 갈로아" 역으로 "007 골드 핑거"로 나온 배우인데, "어벤저" 에서도 몇년간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한편 마지막 6시즌에서는 타라 킹 이라는 여자 주인공을 린다 도슨(Linda Thorson)이 맡아서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전성기이자, 중기인, 시즌4와 시즌5에 활약했던 배우가 바로, 다이아나 리그이고, 다이아나 리그가 연기한 인물이, 존 스티드와 가장 훌륭하게 장단이 맞아 들었던 인물인, 에마 필 이었습니다. 다이아나 리그는 007 시리즈의 여자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역으로 손꼽히는 "007 여왕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의 여자 주인공을 맡았던 바로 그 다이아나 리그 입니다.

다이아나 리그는 에마 필 역할을 맡아서,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유능한 특수 요원의 모습을 매우 멋지게 연기해냈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모습을 마음껏 과시했으며, 정교하게 박자가 맞아드는 만담들을 상대역 배우인 패트릭 맥니와 아름답게 일구어냈습니다. 앞서 언급한 존 스티드라는 인물의 재미난 특징들이 완성된 것도, 사실 에마 필과 함께 등장 하면서 였습니다. 사실 초창기만 해도, 존 스티드는 싸움 잘하는 거친 사나이의 모습도 좀 있었습니다만, 항상 에마 필을 "필 부인"이라고 부르고, 활달하고도 품위가 철철 넘치는 에마 필과 같이 활약하면서, 존 스티드 까지도 매우 정중하고도 여유만만한 인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 다이아나 리그의 인물, 에마 필이 나오는 것들 중에서도 시즌5를 특별히 주목하는 까닭은 시즌5 는 현재 컬러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67년에 나온 시즌5 부터는 영국 TV에 방송되었던 것이, 미국 TV로도 방송하기로 하면서, 컬러 TV 방송을 전면적으로 준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영국 방영 당시에는 흑백으로 방영되었지만,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컬러로 촬영되었습니다. 때문에, 현재로는 이전 시즌 보다 훨씬 좋은 기술로 촬영된 컬러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들 하면 딱 떠오를만한 모습)

이 TV물이 본격적으로 여러나라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시즌5가 "The Avengers in Colour" 라는 제목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즌5 의 몇몇 에피소드들의 내용을, 전체적인 결말까지 밝혀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금성에서 사랑을 담아 (From Venus With Love)
금성을 천체 망원경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굉음과 함께 머리가 백발로 변하면서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을 이상한 둥근 빛 덩어리가 따라다니고, 굉음과 함께 사람들이 더욱 죽어나간다. 마치 외계인 비행체의 공격인듯 하다. 진상은 레이저 무기를 갖게된 학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레이저 무기로, 천문학 클럽 회원들을 죽인 것. 천문학 클럽의 결정 때문에 공교롭게도 일제히 금성을 보았던 것.


* 숨어 있는 호랑이 (The Hidden Tiger)
영국 런던의 교외 사람들이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 맹수에게 살해 당한 듯이 발견된다.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은 맹수 사냥 전문가와 함께 사건을 조사한다. 진상은, 애완 고양이를 키우고 훈련시키고 판매하는 열렬한 고양이 팬의 회사에서, 고양이를 미치게 해서 사람을 습격하도록 특수 훈련을 시켜, 자신의 암살 능력을 키우려 한 것.


* 서사시 (Epic)
한 광기어린 영화 감독이 버려진 영화 세트장에서 자신의 마지막 걸작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온갖 역사적 배경의 서사시들이 뒤엉킨 어림없는 영화를 파천황의 대걸작이라면서, 맛간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고 난리치고 있다. 이 영화 감독이 에마 필을 붙잡아서, 실제처럼 실감나게 사람과 격투하고 잡아 죽이는 장면을 영화에 담기 위해, 에마 필을 공격하고, 죽이려 한다. 영화 세트 장에서 여러 시대 배경의 세트에서 에마 필이 위기에 놓이고, 마침내 존 스티드와 힘을 합해 영화 감독을 물리친다.


* 7인의 능력자 (The Superlative Seven)
존 스티드는 정체 불명의 초정장에 초대를 받는다. 가장 무도회 같아 보였는데, 장소는 비행기 안이었으며, 비행기는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진상은, 비행기 안에 초청장을 받고 모인 사람들이 각각 무예, 살인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이 사람들을 어느 섬에 모아 놓고, 특별히 훈련시킨 암살조직을 시험하기 위해 싸우게 했던 것이다.


* 역으로 가는 길에 생긴 일 (A Funny Thing Happened)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은 첩보전과 암살음모가 열차와 관련하여 수상한 점이 있는 것임을 눈치 챈다. 진상은, 정보를 빼돌려 마이크로 필름으로 만들어서 조그맣게 기차표에다 붙여 놓으면, 기차표를 검사하는 사람으로 위장한 첩보원이, 표를 검사할때, 표를 검사하는 척 하면서, 표에 구멍내는 기계로 작은 둥근 원을 종이에 뚫어서, 그 기차표에 붙여 놓은 마이크로 필름을 정확히 잘라내어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입수한 정보로 악당들은 영국 수상이 탄 열차를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존 스티드, 에마 필, 그리고 한 철도 팬 할아버지의 활약으로 음모는 무산된다.


* 누가 누군지 (Who's Who)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은 다른 요원들이 암살되는 사건을 조사하며, 다른 첩보원들과 접선하려 하다가, 매복해 있던 악당들에게 납치된다. 악당들은 기억을 교환하는 기계를 이용해서,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의 몸 속에 악당 2인조의 기억을 이식하여,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을 악당으로 만들고, 악당들을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의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악당이 된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이 조직 내부에서 요원들을 마구 죽여버리는 위기가 발생한다. 결말은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악당들이 스스로 악당들인척 하고 상대방을 역으로 속여서 적을 이기는 것.


* 살인자 마을 (Murdersville)
에마 필은 이상한 마을에서 자신의 친구가 살해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봐도 답이 없는 완전 범죄이다. 무슨 수로든 진상을 파헤치려 하다보니,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기도 하고, 에마 필 역시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진상은 이 마을은 완전 범죄를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하고 있는 곳으로, 살인 청부를 받으면, 사람을 죽게 한 뒤에,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 짜고, 알리바이와 사건 목격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완전 범죄를 성공시키고, 대신에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완전 범죄 청부 살인을 줄줄이 성공시키고 받은 대가로 모두 부유해진다는 것이었다. 존 스티드가 등장하면서, 에마 필은 구출되고, 마을의 음모를 분쇄한다.


시즌5에서 활약하면서, "어벤저"를 경지에 올려 놓은, 에마 필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해서, 매우 총명한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존 스티드 못지 않은 여유만만함도 보여 주었습니다. 언제나 밝고 가벼운 농담을 항상 읊조리는데, 그 모습은 매우 우아하고 강해 보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언제나 믿을만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에마 필은 예리한 유머 감각과 놀라운 베짱을 갖고 있을 뿐만아니라, 추리력과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며,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 능력도 대단한, 거의 "앨리어스 Alias"의 시드니를 능가할 법한 실력자 입니다.

특히, 에마 필은 맨손 무예에 매우 뛰어난 인물로 나와 있습니다. 주로 유도와 가라데 기술들을 많이 사용하는 듯 한데, 위급한 상황 마다 그 아름다운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적을 발차기와 내던지기로 두들겨 패버리는 모습은 에마 필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때문에, 이야기 중에는 여자 주인공인 에마 필이 위기에 놓인 존 스티드를 구해주는 대목도 무척 많았습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을 자주 구해주는 싸움 잘하는 여자 등장 인물은 "원더 우먼"이 난리를 치기 전까지 TV물에서는 상당히 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에마 필 처럼 침착하고 맑은 모습과 강인하고 유능한 모습이 아름답게 조화된 인물은 매우 드물다 할만 합니다.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이 에마 필이라는 인물이 종종 페미니즘 평론에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믿음직하면서도 언제나 명랑한 유유자적함이 넘치는 숙녀, 에마 필이 존 스티드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의 감정 흐름으로 연결 됩니다. 여기에 또 매우 묘한 면이 있는데, 결코 내용 중에 에마 필과 존 스티드의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직접 호감을 표시하는 장면은 커녕, 호감을 표시하려고 마음먹는 장면 조차 안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봐도 에마 필은 매력적인 여자고, 에마 필이 남자 주인공인 존 스티드의 목숨을 수없이 구해주고, 게다가 존 스티드와 에마 필은 엄청나게 죽이 잘 맞습니다. 특히, 두 사람은 동료로서 매우 친해서, 서로가 서로의 집에 매우 자주 찾아가고, 같이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술 한잔 마시는 일도 매우 잦습니다. 그렇게 에마 필이 존 스티드에게 무척 친근한 상대입니다.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면, 존 스티드는 당연히 에마 필에게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존 스티드가 에마 필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묘사는 거의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도, 이야기를 지켜보다보면, 꼭 존 스티드가 에마 필을 좀 좋아하는 듯한 느낌이 은근히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에마 필도 존 스티드가 싫지는 않은 듯한 느낌도 좀 납니다. 이 분위기는 참으로 절묘하게 은은합니다. 어찌보면, 대본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묘사가 안되어 있지만, 에마 필과 존 스티드를 연기하는, 다이아나 리그와 패트릭 맥니가 말투 하나하나, 눈빛과 서로 바라 보는 표정 하나하나를 요령있게 연기해서 그런 묘한 느낌을 집어 넣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런, 두 사람 관계가 매우 친밀하면서도, 연인 사이로서는 전혀 묘사되지 안는 분위기는, 이야기 고유의 멋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는데도 큰 도움이 되어서, 특히 이런 류의 감정 동요를 숨기고 있는 영국 신사, 존 스티드의 인물 표현에 많은 도움이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사람에게, 꼬박 꼬박, "필 부인"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나오면, 시청자에게 괜히 두 사람 사이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마 필이라는 인물이 이야기에 공헌하는 또다른 큰 줄기 하나는, 그 미술적인 요소 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에마 필은 아래위가 한벌로 연결된 활동하기 좋은 몸에 붙는 좀 특이한 옷을 거의 매번 입고 나옵니다. 발차기 하고, 주먹으로 악당들을 넘어뜨리는 무예 동작에 잘 어울리라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70년대에 나온 영화들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당장에, "엇 이소룡 노랑색 체육복이다!" 싶은 느낌이 나는 그런, 옷들을 에마 필이 끝도 없이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옷들은, 기본적으로는, 에마 필 자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격투 장면과 같은 활동적인 모습을 살릴 수 있게, 그야말로 이소룡 풍으로 꾸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원색이나 형광색 빛깔과, 과감하게 죽죽 뻗는 선이 살아나는 옷으로 꾸며지면서, 좀 더 미술적인 특색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60년대 첩보물 특유의 초현실주의 미술, 조금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꾸미는 강렬한 세트, 의상으로 도움을 팍팍 주게된 것입니다.

물론, 제임스 본드 영화 악당들이 막판 기지에서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기지의 광경 만큼 막가지는 않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고급 아파트를 묘사하고, 첨단 기술을 핑계로 만화 같은 색깔과 치장을 보여주던 본격적인 예시에 비하면, 좀 무덤덤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소 상징적인 세트와 미술 표현이 부분부분 필요 한 곳에서 꼬박꼬박 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에마 필, 고유의 "에마 필 옷"과 한 데 어울리면, 효과가 배가 되고, 미술 표현이 재미난 느낌이 확 더 살아 납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풍 스러운, 존 스티드의 신사 복장 마저, 그런 환상적인 묘사의 일환으로 한데 느껴지면서, 무척 잘 어울립니다. 이런 표현은, "배트맨" 영화 같은데에서 볼 수있는 요란한 색채로 가득한 악당들과 고딕적인 근엄함이 뒤 섞이는 분위기와, 미술 면에서 보면 닮은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벤저"는 그러면서도, 어두운 느낌이나 불안한 느낌이 거의 없이, 밝고 느긋한 느낌을 충실히 지킨다는 면에서 확연한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TV쇼는 에마 필 역할을 맡은 다이아나 리그가, 촬영이 너무 힘든 데 비해, 출연료가 너무 작아서, 손을 털고 나가면서,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마지막 시즌이 하나 더 나온 뒤에 종영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1961년부터, 1969년까지, 1960년대를 수놓은 영국 TV 첩보물의 최고로서 위치는 워낙에 굳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향수를 업고 1970년대에, 속편인, "The New Avengers"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다이아나 리그는 안나오지만, 존 스티드 역할을 맡은 패트릭 맥니는 그대로 나왔습니다. 이 속편 시리즈는 "전격 제로 작전" 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방영되어 꽤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원판 "The Avengers"도 70년대 초에 KBS를 통해 국내에 "아벤저"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재미난 웃음들입니다. 영구짓을 해서 벌이는 폭소 같은 것은 거의 전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농담과 가벼운 장난스러움 들은 끝없이 넘쳐나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배를 잡고 웃을 만한 장면은 없어도, 그 가볍고 태평한 미소를 언제나 즐길 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사에서 말의 박자 감각과 경쾌한 운율을 가벼운 농담에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솜씨와 결합되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미션 임파서블"의 비밀 지령 전달 장면과 비슷하게, 시즌5에는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특수 요원들을 호출하는 장면이 시작 부분에 짤막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We're needed" 라는 대사를 읊조리면서, 특수 요원 호출 신호를 받는 장면인데, 항상 아주 살짝 장난스러운 가볍고 소박한 장면으로 되어 있어서, "미션 임파서블" 분위기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간혹 TV의 특성을 살려서, 극 외부의 효과와 연결되는 매우 현대적인 패러디 코메디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 에마 필이, MGM 로고의 표효하는 사자를 흉내내는 장면일 것입니다.

풍자적인 것도 있습니다. 쓸데 없이 멋있게 보이려고, 괜히 기관이나 단체의 이름을 알파벳 약자로 짓는 것은 웃음거리로 매우 애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알파벳 약자들은 억지로 끼워맞춰서 자음과 모음을 연결해 발음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작명자가 좋아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새가 조롱할만한 것들도 많습니다. 별별 사소하고 쓸데 없는 단체들이, ABORCASHAATA, BEB, FOG, GONN, MAUD, MOD, PANSAC, PURRR, RANSACK, REMAK, SCAPINA, SMOG, TAF, TOHE 등등의 약자로 된 이름을 달고 장난삼아, 농담삼아, 조롱삼아, 풍자삼아 계속 나옵니다.

대체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21세기 한국의 단체 이름이나, 국가 기관,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목은 아직도, 저런 알파벳 약자로 이름 붙이는 것이 최첨단 유행의 아름다움이라는 망상을, 누군가 품고 있는 듯 합니다. 한국어와 한글을 쓰는 한국의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을 왜 NEIS 라고 이름 붙이고, "나이스"라고 읽으면서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왜 대한민국의 국토해양정보관을 왜 CODIL 이라고 이름 붙이고, "코딜"이라고 읽으면서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여전히 좀 이해하기 어려습니다.


그 밖에...

음악도 썩 잘 만들어져서 좋은 연주로 녹음 되어 있습니다.

"The Avengers" 라는 제목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첩보물 제목으로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내용과 관계 없이 붙였다는 것이 정설로 돌고 있습니다.

"어벤저"는 무척 팬들이 많은 TV물이기 때문에, http://theavengers.tv/ 같은 사이트를 차분히 살펴보면 다양한 많은 정보들이 무척 풍부하게 보입니다.

최근에는 우마 서먼이 나오는 90년대의 영화판 "어벤저"가 훨씬 더 접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 영화판 "어벤저"는 제작비에 비하면 흥행 대실패로 불리우는 것으로, 실제로 60년대 TV판 "어벤저"의 멋을 즐기기는 좀 어렵습니다.

남자 주인공 패트릭 맥니 역시, 다이아나 리그 처럼, 007 뷰 투 어 킬 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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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4, 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03-16 19:58:52 #

    ... 이 영화의 두번째 특징은 스파이의 개성에서 영국 첩보물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어벤저”를 따라 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아벤저” http://gerecter.egloos.com/3693423 라는 이름으로도 방영되었고, 속편 시리즈가 "전격 제로 작전"이라는 제목으로도 방영되었으며, 1998년에 영화판으로 “어벤저”라는 이름으로 ... more

덧글

  • 鷄르베로스 2008/04/08 02:41 # 답글

    ㄷㄷㄷ

    글과 관계없이 게릭터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그리 오래전은 아닌데 도통 기억이 안나는 미드(?)가 하나 있어서 ...
    전격z작전과 거의 비슷한 시기라 생각되는데
    주인공은 남2 여1 입니다.
    첩보기관이고 선참이 위에 언급하신 존 스티드'와 비슷한 비쥬얼입니다.
    남자주인공 하나는 말이 주인공이지 그냥 듣보잡 수준이었는데
    여자주인공의 특기가 마치 춘리처럼 발을 잘썼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적이 첩보기관 시물레이션(?) 사격장의 훈련용탄에 독침을 투약하여 첩보국의 요원들을 암살하는 부분인데 주인공 여성이 한방 , 선참 남주인공은 세발자전거 타는 어린이로 변장한 적요원에게 추돌로 한방
    결국 존재감 제로의 남주인공이 해독제를 찾는다는 내용.

    혹시 뭔지 아시나해서 한번 여쭤보네요.
  • 게렉터 2008/04/08 09:07 # 답글

    鷄르베로스/ 말씀하신 에피소드가 바로, "The Avengers"의 속편 시리즈로, 국내에서 "전격 제로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The New Avengers"의 "Target!" 이라는 에피소드 입니다. 이 링크 http://theavengers.tv/forever/newave-6.htm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鷄르베로스 2008/04/08 09:41 # 답글

    --;
    서울역광장에서 역전앞이 어디죠? 라고 물었군요.
    감사합니다.핍박을 받으며 봤던거라 뜨문뜨문 생각이 나는군요.
    ^^;
  • rumic71 2008/04/08 13:08 # 답글

    오너 블랙맨과 다이아나 리그는 물론, 패트릭 맥니마저 007로 끌려간(?), 요컨대 007의 텃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리즈였지요.
  • 뚱띠이 2008/04/08 17:56 # 답글

    당시 드라마는 좀 느린듯하면서도 오히려 몰입감이 있어 좋습니다.
  • 페니웨이™ 2008/04/09 12:36 # 삭제 답글

    극장판을 리메이크된 [어벤져]는 대략 괴작이었던.. ㅡㅡ;;
  • 게렉터 2008/04/16 22:00 # 답글

    rumic71/ 위에 언급된 웹사이트에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정말 한 두명이 아니라, 우루루 쏟아집니다.

    뚱띠이/ "어벤저"는 느긋한 느낌이 특히 재미납니다.

    페니웨이/ 그래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도 참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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