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김포 공항 정체불명 가방 사건 기타

- 갑자기 생각나서 자료 찾아서 한 번 써 봅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것은 80년대에 벌어진 괴이한 실제 사건을, 한국편집기자회 발간 자료에 기초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4년전인, 1984년 여름. 그 때는 30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가 보름이 넘도록 이어지던 그야말로 한여름 중의 한 여름, 가장 더운 날씨가 끝도 없이 계속되던 무렵이었습니다.

8월 10일.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정오 무렵. 김포세관 감시과의 허반장은 김포공항의 탑승구 앞 대기실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복을 입고 걷고 있는, 허반장에게, 항공기를 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40대 아주머니가 다가왔습니다. 아주머니가 허반장에게 말했습니다.

"타이항공 비행기를 타러가던 사람이 가방을 놔두고 비행기를 타 버린 것 같아요."

허반장이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공중전화 박스 앞에 갈색 가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허반장은 가방 주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가, 항공기의 이착륙 시간을 보았습니다. 시각표를 보니 타이항공 627편이 11시 40분 이륙으로 대만으로 떠난 것이 보였습니다. 허반장은, 가방의 주인이 가방을 깜빡 잊고 놓아두고, 대만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방을 열어 보니, 옷가지와 화장품 따위가 들어 있을 뿐이어서, 분실물로 생각하고 잠시, 사무실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덥디 더운 정오가 바쁜 공항 업무속에서 지나갔습니다. 더워서 지치고, 사람이 많아 바쁜 와중에, 시간은 흘러흘러갔습니다. 그리하여,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공항을 내려 쪼일 무렵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더위가 가시는 듯도 하여,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나던, 4시 30분. 김포공항 치안본부 분실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여기는 대만이오. 갈색 가방 속에 10만 달러가 들어 있소. 누가 돈을 몰래 들고 나가려다가 출국대합실 4번 출구 앞에 놓아 둔 것이 있을 것이오. 확인해 보시오."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전화 였는데, 치안본부에서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장난인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전화의 목소리가 답하기를,

"나는 왕이오."

라고 했습니다. 아마, 성이 왕(王)씨 라는 뜻으로 한 말인 듯 합니다. 그리고 계속 말하기를,

"내가 원한이 있어서 알리는 것이오. 더이상 묻지 마시오."

그리고는 전화가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치안본부에서 이러한 연락이 오자, 경찰은 곧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허반장이 사무실에 분실물로 맡아 놓은 가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경찰은 문제의 가방을 열어서, 내부를 뒤졌는데, 거기서 선물꾸러미 같은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포장지는 색동포장지였고, 포장지를 뜯자, 은박지로 감싸놓은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은박지를 뜯어 보니, 은박지 안에는 도화지로 감싸져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이 도화지는 검은 절연테이프를 붙여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테이프와 도화지를 찢어 내자, 드디어 내용물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1백달러 짜리 지폐 다발들이었습니다. 백장 묶음 9개, 70장 묶음 한 뭉치. 도합 10만 달러 가량의 거액이었습니다. 백주대낮의 김포공항에서,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돈 10만 달러가 든 가방이 난데 없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돈을 담아 두었던 가방은 루이뷔통 가방으로 크기는 가로 60센티미, 세로 40센티미터, 두께 25센티미터로, 통상적인 여행가방 크기였습니다. 이 가방은 경찰 조사 결과, 한국제 가짜 모조품으로 드러났습니다. 한편, 가방에는 중국식 남자 바지 4벌, 화장품 4 종류, 구두, 세면도구, 휴대용 손수레, 고려인삼 1병이 있었습니다. 돈이 가장 아래에 놓여 있고, 이런 물건들이 그 위에 쌓여 있는 형태로 가방을 쌌던 것입니다.

그리고, 5시 50분쯤. 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앞서 전화 했던 "왕"이었습니다.

"가방을 찾았소?"
"누구신지 알려 주십시오."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신문사에 알리겠소."
"10만달러나 되는 분실된 돈을 알려 주셨으니, 신고보상금을 드리겠습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

그러자 답이 없이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경찰은 대체 누가, 왜, 어디서 전화를 걸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이 가방이 X레이 보안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경찰은 철저히 돈과 가방을 조사했습니다. 돈은 모두 위조지폐가 아닌 진짜 100달러 짜리 돈이었습니다. 돈 중에서 70장짜리 묶음에, 일본의 연호인 "쇼와(昭和)" 를 사용해서, "쇼와 59년 7월 23일" 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카시마(高島)" 라는 도장도 찍혀 있었습니다. 경찰은 일본과도 연결되어 있는 무슨 범죄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추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운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공항에서 벌어진 이 알 수 없는 사건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계속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10만 달러가 든 가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1984년 8월 10일. 수수께끼의 김포 공항 10만 달러 가방 사건은, 이것이 사건 기록의 전부 입니다. 여름낮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공항에 나타난, 이 영문모를 돈가방. 이 돈가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왜? 무엇 때문에?




덧붙임: 이런 미해결 사건은 알려진 사건 부분 자체만 그대로 사용하게 하고, 어떤 사연인지는 모두 상상해 보게 해서, 각기 다른 추정으로 여러가지 극을 꾸미면 재밌을 것입니다. 그래서 8부작 시리즈를 만들지만, 8명의 감독과 작가가, 똑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생각한 8개의 다른 이야기로 TV시리즈로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이 발견되는 사연, 등장인물들의 대사, 경찰의 대응 같은 것은 똑같이 펼쳐져서 8부작에서 각 회마다 한 번씩 8번 반복되지만, 또 각 회마다, 숨겨진 사연이라든가, 말의 의미, 행동을 한 이유, 심지어 공포물인지, 추리물인지, 코메디물인지, 멜로물인지도 감독, 작가 개성에 따라서 전혀 다른 추측으로 이야기가 나오도록 꾸며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거 언제 여름특선 시리즈로 한 번 하면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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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1949년 서대문 되살아 뛰어간 시체 사건 2014-12-16 21:30:05 #

    ... 이 끝난지도 65년이나 지났으니, 그 추운 새벽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 전에 1984년 김포공항 돈가방 사건 http://gerecter.egloos.com/3734241 을 이야기 할 때에도 꺼냈던 이야기인데, 이런 수수께끼의 사건을 두고 도대체 그 진상이 무엇인지를 여러 작가들에게 과제로 던지고 ... more

덧글

  • 老姜君 2008/05/07 22:55 # 답글

    정말 묘한 사건입니다?
  • 게렉터 2008/05/07 23:07 # 답글

    이런 미해결 사건은 알려진 사건 부분 자체만 그대로 사용하게 하고, 어떤 사연인지는 모두 상상해 보게 해서, 각기 다른 추정으로 여러가지 극을 꾸미면 재밌을 것입니다. 그래서 8부작 시리즈를 만들지만, 8명의 감독과 작가가, 똑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생각한 8개의 다른 이야기로 TV시리즈로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이 발견되는 사연, 등장인물들의 대사, 경찰의 대응 같은 것은 똑같이 펼쳐져서 8부작에서 각 회마다 한 번씩 8번 반복되지만, 또 각 회마다, 숨겨진 사연이라든가, 말의 의미, 행동을 한 이유, 심지어 공포물인지, 추리물인지, 코메디물인지, 멜로물인지도 감독, 작가 개성에 따라서 전혀 다른 추측으로 이야기가 나오도록 꾸며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거 언제 여름특선 시리즈로 한 번 하면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 잠본이 2008/05/07 23:14 # 답글

    전혀 으스스할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으스스하군요 (...)
  • croydon 2008/05/07 23:22 # 답글

    잠본이// 저도 막 그렇게 쓰려고 했는데 저만의 느낌이 아니군요..
    이전에 게렉터 님의 심야 이야기 시리즈들을 읽어서 그랬을까
    무서운 얘기가 전혀 아닌데도 상당히 불길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실제로) 돋았습니다.
    천천히 한발 한발 이야기를 진전시키면서 문장을 쉼표로 자주 끊는 특유의 문체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

    본문도 재밌지만 게렉터님 리플의 아이디어도 좋은데요?
  • Hong 2008/05/07 23:53 # 답글

    우왓, 리플 아이디어 진짜 멋진데요?ㅋ
  • 풍신 2008/05/08 00:43 # 답글

    꽤나 흥미로운데요.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좋고...(그나저나 그 10만달러의 이후 행방은?)
  • 민서 2008/05/08 09:53 # 답글

    요즘 같으면 주인 없는 가방을 태연히 사무실에 보관하지 않았겠군요.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해서 소동을 피웠을텐데요.
  • 이준님 2008/05/08 13:41 # 답글

    여명의 눈동자 4권에 보면 뭐 여관에서 잠자는 아가씨 강간하려고 옷 찢다가 팬티속에 거액의 돈(일제 기준으로 수천원)이 들어 있는 걸 보고 신고해서 수사한 끝에 “독립단 소탕”하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거기서 강간범이 그냥 여자를 죽였다면-애초 계획대로- 아마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겠지요. 19금이 아니라서 그렇지 저 이야기도 대공 용의점이 있는 모 사건인데 “이게 내 돈”이라고 해서 밝힐수 없는 지저분한- 북한이 연계되어 있거나 아니면 마약관련 돈이거나 그런 가능성이 있군요
  • 주코프 2008/05/08 23:22 # 삭제 답글

    대만화교-조총련-야쿠자-빠칭코-금전사기-앙금-원한-복수의 키워드가 떠오른다는..
  • 주코프 2008/05/08 23:25 # 삭제 답글

    쇼와 59년이면 사건발생 1년전인 1984년 7월, 일본계 모 은행의 "타카시마"라는 성씨의 행원이 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판명됩니다만..일본과의 커넥션이라면 적어도 1년이상으로 사건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요..
  • 시무언 2008/05/09 01:00 # 삭제 답글

    진짜 미스테리로군요. 위 리플처럼 8가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것도 재밌을것 같습니다
  • MCtheMad 2008/05/09 11:14 # 답글

    8가지 극의 등장 배우는 전부 같아야 할텐데~!
    배우가 연기할때 무지 헷갈릴거 같아요 ㅎ
  • 게렉터 2008/05/12 00:38 # 답글

    잠본이, croydon/ 알 수 없이 갑자기 나타난 물건이라는 면에서 뭔가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이 서려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풍신/ 그냥 국고로 환수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시무언, Hong, MctheMad/ 꼭 이 이야기가 아니라도, 비슷한 시리즈가 한 번 나오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그냥 유명한 정인숙 살해 사건 같은 것이라도 말입니다.

    민서/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87년도 아닌 85년이니 더 테러에 무감각할 시절이지 싶습니다.

    주코프, 이준님/ 아닌게 아니라, 당시 자료를 보면, 경찰이 소위 "코리안 커넥션" 그러니까, 히로뽕 관련한 대만/동남아조직 - 일본조직이 한국 조직과 어떻게 엮여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점에 가장 초점을 맞춰서 수사를 합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것도 더 이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위에 나타난 일만 놓고 봐도, 어떻게 해야 저런 줄거리로 흘러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딱이 아귀가 맞는 평범한 내막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 2011/05/25 19:30 # 삭제 답글

    괴담 관련 사이트에서 이 글이 링크로 걸려져 있더라구요.나중에 시간나면 소설 소재로 써 보면 좋겠어요.스크랩해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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