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말, 80년대초에 나온 제목을 알 수 없는 단편집
옛날 어느 여름 낮 동안에 괜히 빠져서 읽었던 단편집 한 권이 생각 났습니다. 70년대말 80년대초 쯤에 나온 우리나라 책인데, 어떤 신문사, 잡지사 내지는 주부/직장인 문예공모를 주최하는 어떤 곳에서 펴낸 듯한 책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단편이 이십여개쯤 실린 책이었는데, 단편들 자체는 서로 다른 유명 작가들이 쓴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단편집의 제목이나, 내용, 작가들이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고사하고, 줄거리 자체도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대강 제가 지어내서 채워 넣은 것들도 많습니다. 혹시, 아래 내용을 읽어 보시고, 어디서 본 듯 하다, 혹은 작가가 누구인 듯 하다. 같은 것이 생각나는 것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아무거나 간략하게라도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서 소개드리는 각 단편들의 제목은 제가 임의로 마음대로 붙인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은 대부분 내용들이 다소 통속적이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절정-결말 부분이 상당히 뻔해서 딱히 별로 감동적인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기억하는 내용이 더 부정확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야기들 중에는 70년대말 80년대초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도 있고, 그 시절 관습이나 생각의 한계에 지나치게 갇혀 있는 것들도 있지 싶습니다.

기억나는 이야기들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아홉수

아홉수를 두려워 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9세에 모친이 사망했고, 19세에는 모친 사망후 새 여자에게 집도 땅도 다 갖다 바쳐서 땡전 한 푼 안남긴 상태로 부친 사망. 29세에는 남자가 은행 직원에게 열렬한 짝사랑에 빠져 적금을 들고, 적금 부으러 갈때마다 얼굴보고 대화하면서 짝사랑을 불태우지만, 적금 찾는 날 고백하려고 갔더니, 이미 애인이 있어 다정한 상황인 것을 하필이면 그날 목격하고 크게 실망하여 포기 합니다.

이후 남자는 유난히 술퍼먹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면서 39세까지 사는데. 39세 되던해에, 이 해에 노총각 신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홉수의 저주 때문에 영원히 총각으로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연말이 다가 옵니다. 남자는 겁어 덜컥나서 무슨 수라도 써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그래서, 수첩을 펼쳐서 적혀 있는 여자 전화번호 마다 무조건 다 전화에서 어떻게든 작은 인연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태반이 바뀐 전화번호이고, 상당수는 이미 유부녀가 된 전화번호 등등입니다. 전화해서, 전화 건 상대의 남동생이 받길래, "아는 사람이니, 일단 누님을 바꿔 주십시오." 했더니, "아는 사람이라는 양반이 어찌 누나가 미국으로 이민 간 것도 모르오?" 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는 계속된 전화 실패에 깊게 절망하다가, 수첩에서 낯익고 친숙해 보이는 여자 이름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화를 겁니다. 전화 받는 여자의 목소리가 친근감 있는 것을 깨닫고, 이번에는 뭔가 잘풀리겠구나, 하고, "절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하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수화기 저쪽에서, "대체 이게 얼마만이냐"면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 놓기에 알고보니, 그 전화번호는 자기 이모(...)의 전화번호.

결국 남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29세때 짝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여자의 연락처를 구해서 전화 해 봤더니, 전화를 받은 여자는 대화 끝에 확인해 본즉, 적금 들어서 꼬박꼬박 자주 은행에 찾아오던 남자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기뻐하여 대화를 더 하다보니, 일이 놀랍게도 아주 잘 풀려, 그날 즉시 그 여자와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여자와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남자는 매우 긴장하고 기대 합니다. 나타난 여자는 10년이 지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아줌마가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보고 매우 반가워 하면서, 말을 하는데, 처음 꺼내는 말이 자기 아이들 교육보험 든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남자에게도 보험을 들라고 권합니다. 정신이 멍해진 주인공 남자에게 마지막 묻는 질문이, 아주 현실적인 걸작.

"그런데, 선생님, 자녀분은 몇 명이세요?"

(이 이야기는 아마 작가가 전상국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 삭발

두 남자가 이발소에서 삭발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왜 삭발하는지 안가르쳐 줍니다. 삭발한 두 사람이 길을 나서서 걸어가면서, 사연이 조금씩 밝혀집니다. 두 사람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불황으로 잘린 사람들이고, 여름이 되어 남들 다 바캉스 가서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만나 즐거이 노니는데, 자기는 돈 아끼려고 소주 사먹으면서 밤새 괴로워해야 하는 청춘임을 고달파하는 처지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제서야 두 남자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명승지에 있는 불상 앞에 사람들이 절하고 시주한다고 돈을 놓아두고 가는 것에 영감을 얻어, 두 남자는 가짜 승려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종종 오가는 어느산 동굴에다가, 불상을 하나 구해다가 놓아두고, 불경을 외면서, 승려인척 행세합니다. 그러면서 동굴에 찾아온 사람들이 불상앞에 시주하는 돈을 챙깁니다. 하루만에 쌓이는 돈의 액수가 공장에서 일하는 하루치 임금의 10배에 가까운 것에 감격하는 두 남자.

두 남자는 딱 보름만 이짓을 해서 돈을 모은 뒤에, 그 돈으로 해운대에 가서 화려한 바캉스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날 깡패들이 와서, 자릿세를 내라고 행패를 부리고, 돈을 다 털어가고, 불상을 다 부숴버린다는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두 남자는 억울하고 안타깝고 허탈해서, 눈물을 흘리며 부서진 불상 조각을 붙들고, 흐느낍니다. 그러면서 무심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되네이는데, 가짜 승려이지만, 그 불경을 외는 태도가 그때는 정말 진심이었다는 묘사가 덧붙습니다.



3. 실책

주인공은 열렬한 야구광인데, 일요일에 중요한 고교 야구 게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 일로 출근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을 닮은 주인공의 아들 둘이, 아버지에게 야구장에 가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데, 주인공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아들 둘에게 TV중계방송을 보라고 하고, 나중에 별일 없는 일요일에 야구장에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그리하여, 일요일에 출근을 하는데, 주인공의 아내는 아들 둘이 너무 심하게 졸라대는 통에, 아들 둘을 친구 삼촌을 따라 야구장에 가게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면, 정직하게 아버지 말을 어기고 야구장에 가고야 말았다고, 바른대로 말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합니다.

월요일 아침. 아침식사 식탁이 왠지 무거운 분위기 입니다. 주인공은 아들 둘이, 야구장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친구 삼촌을 따라 야구장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래봤자 별일도 아닌데, 괜히 아들들이 겁먹어서 아침식사 분위기가 안좋았다고 생각하고 우습게 여깁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자, 주인공의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아이들에게 야구장에 가지 말고, TV중계방송이나 보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TV중계방송을 봤다면 그야말로 큰 일 났을 거예요."

라고 합니다.

말인 즉슨, 아이들을 보내놓고, 아내는 왜 부자간에 야구를 저렇게 좋아하나 싶어, 아내가 TV중계방송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보니 TV중계방송에서, "부녀가 정답게 야구를 보는 광경"이라면서, 한 나이 많은 남자와 거의 딸 뻘로 보이는 여자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 남녀는 사실 부녀관계는 아니었는데, 지나치게 다정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TV 화면에 얼굴이 비치는데, 그 남녀중에 남자가 바로 주인공이었습니다. 즉, 주인공은 바람 피운 상대와 야구장에 같이 가려고, 회사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아이들은 집에 남아 있게하려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 묘사가 좀 특이한데, 주인공에게 분노한 표정으로 손톱으로 할퀴려 달려드는 아내의 손가락을 보면서, 주인공은 야구장에서 질겅이던 오징어 다리 10개가 자신을 습격하는 듯 보인다는 생각을 합니다.

(막판에 오징어 다리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왜 하필 오징어 다리의 심상으로 연결한 것인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짐작해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4. 과외 인생

어떤 학벌이 부족한 부부가, 외동 아들을 얻는데, 이 아들이 아기 때 책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신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조기 교육 과외를 시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에서 곧 잘합니다. 하지만, 과외했던 범위를 넘어서면, 형편없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아들에게 온 힘을 다해 과외를 시킵니다. 아들은 과외 덕분에 대강대강 때우면서 성적을 유지해 나갑니다. 그러나, 과외 없이는 아무것도 못 따라가는 성격이 됩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가서도 과외를 시키고, 취업과외도 시켜서, 겨우 취직을 시킵니다. 이제 부모는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이야기는 까만 옛날 이야기로 치고, 아들이 사람 구실 하나만 잘 하게 해야 겠다 싶어, 회사에서 필요한 대인관계 과외나, 회사 업무처리에 관환 과외,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법에 관한 과외 같은 것을 시켜서 한 사람 구실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어서, 도대체 결혼 생활은 어떻게 아들에게 가르칠지 막막합니다. 아들은 과외 없이는 아무것도 혼자 제대로 결단내리고 헤쳐나가지 못하는 상태. 결국, 부부는 아들이 신부와 신혼 여행을 갈 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결혼생활에 경험이 많은 한 남자를 과외선생으로 딸려 보냅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 보니, 신부는 아들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외 선생 남자의 팔짱을 끼고 돌아왔다는 이야기.

(아마 80년대 "과외 금지" 정책이 회자되던, 그런 시사적인 분위기와 궤를 같이하는 이야기지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전형적인 과장된 풍자 우화 느낌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귀

결혼한 부부가 있는데, 아내가 차를 한 잔 타와서 맛이 어떤지 물어 봅니다. 남편은 "괜찮은 것 같다" 정도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상하게 매우 실망한 눈치. 남편은 뭔가 이상해서 이리저리 보다가, 아내가 새로 입은 잠옷을 몰라봐서 실망한 것인가 짐작합니다. 남편은 옷 칭찬 안해줘서 기분 나빴냐고 물어보는데, 그러자 아내는 더욱 짜증냅니다. 이것이 영문 모를 부부싸움으로 화해서, 아내는 집을 나가려 합니다. 아내는 속아서 결혼했다 운운 합니다.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남편은,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아내는 약간 외모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인데, 남편은 연애할 때 입버릇처럼 "자기는 굉장히 아름다워." 운운 했으므로, 아내는 기분 띄워주려고 아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또 "아름다워"라고 아부하는 남편에게 "어디가 어름다워요?" 라고 되묻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막상 그렇게 물어보니, 답할 것이 막막해서 좀 헤멥니다. 그러다가 얼렁뚱땅, "당신은 귀가 매우 아름다워" 라고 말해서 때웁니다. - 그녀의 귀를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콜럼버스의 발견과 같은 감격이었다 어쩌고 저쩌고 라고 그때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얼굴이 발그레 해지며, 기쁜 듯한 표정.

연애하던 시절의 그런저런 일을 떠올린 남편은 그제야, 아내가 귀를 뚫어 새 귀고리를 하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남편은 "잠깐만! 당신은 가도 좋지만, 당신 귀는 놓고가. 당신 귀 없이는 난 못살아" 라는, 프리온이 파괴될 정도의 온도로 낯을 뜨겁게 하는 대사를 하고, 그러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다시 안기면서, 부부는 대화합과 평화의 미래로 나간다는 이야기.



6. 좋아 하네

한 병사가 총상을 입은 채로 괴로워 하면서, 강물에 떠밀려 오는 것이 시작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워 하면서 온갖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잃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여자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차립니다. 그곳은 한 병원이었고, 그 여자 목소리는 병원의 간호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곳은 월남전이 한창인 베트남인 것입니다.

주인공을 보살펴주는 간호사는 프랑스인 혼혈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인데, 한눈에 주인공과 마음이 오가게 됩니다. 주인공은 수색대의 정예 대원으로, 총상에 맞아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는데, 간호사는 그 다리는 곧 낫게 되어 걸을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무의미한 낙관주의라고 비웃으면서도, 다리가 잘려나가고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모양이나마 있는게 낫고, 모양만 있는 것 보다는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사는 주인공을 잘 돌보아주고, 주인공은 정말로, 점차 다리를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간호사와 감정이 깊어져, 어느날 간호사는 누워있는 주인공에게 입을 맞춥니다. 그런데, 순간, 주인공은 고향에 두고온 애인 생각이 강하게 떠오릅니다. 이후, 주인공은 간호사와 상당히 각별하게 지내는데, 순간 순간 마다 고향의 애인 생각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이 거의 회복이 되었을 즈음, 간호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인공을 붙들고, 결혼하자고 고백합니다. 간호사는 결혼해서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그 말을 듣고 딱히 무슨 결론을 내리지도 않고 잠시 멍해집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쳇, 좋아 하네-"

라고 읊조립니다. 용케 그 말을 들은, 간호사는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물어봅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간호사를 비아냥 거렸다고 할수는 없어서, 대강 둘러댑니다. 그래서, 그냥 문자그대로, 그 말은 한국어로, "like" 라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주인공은 다 낫게 되고, 제대를 명 받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주인공이 돌아가게 된다는 말을 듣자, 간호사는 눈물을 흘리며 주인공의 손을 잡습니다. 주인공은 한국으로 가서, 제대 절차를 마친 뒤에, 한국의 본가에 이야기 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베트남에 와서 간호사를 데려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고향의 애인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간호사는 간호사 제복 대신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차려 입고 주인공을 떠나보내려 항구에 나옵니다. 한국으로 떠나가는 주인공을 부두에서 바라다 보며, 간호사는 눈물을 흘리고, 손수건을 흔들며, 하염없이 외칩니다.

"좋아 하네- 좋아 하네- 좋아 하네-"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 중에 꽤 그럴듯한 축에 속하는 것으로, 무거운 소재를 문자그대로 "반어적"인 풍자와 함께 표현했습니다. 울적한 내용을 냉소적인 느낌을 섞어 극적인 구성으로 잘 연결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7. 난봉꾼의 아내

맨날 바람 피우고 다니는 난봉꾼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인 주인공이 10살 아래의 어린 아내와 마지막으로 결혼합니다. 난봉꾼 친구들은 어린 아내와 결혼한 주인공이 사기꾼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면서, 또 부러워 합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친구들이 바람피우는게 아내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을 비웃으면서, 자기 아내는 나이가 어린 신세대라서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이해한다고 자랑합니다. 이 주인공이라는 작자의 말이, 자고로 영웅은 호색이라면서, 이름난 왕이나, 대단한 권력자라면야, 많은 여자를 거느리는 것이야말로 진장한 위대함의 상징이므로, 자기 아내는 오히려 주인공이 바람을 피우는 것쯤, 되려 남자 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이런 주인공의 팔자를 놀랍게 여깁니다.

주인공은 하루는 자기 아내가 TV프로그램에 섭외되었다고 해서, 또 아내 자랑하려고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아내가 출연한 TV프로그램을 봅니다.

그 TV프로그램은 "아침마당"류의 이야기인데, "남편을 꽉 잡고 사는 법"이라는 주제로, 아내가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각서를 한 장 보여주는데, 각서의 내용인즉, 남편 친구들이 볼 때는 아내가 바람피우는데 매우 관대한 척 연기 해 주는대신, 실제로 그 외의 경우에는 아내에게 무조건 순종하면서 아내를 하늘처럼 떠받들면서 살기로 20년간 계약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세부 묘사며, 걸쭉한 대사며, 하는 것이 좀 잡다한 면이 있는데, 아마 글쓴이가, 김홍신일 겁니다.)



8. 시골의 5인조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낯선 서울 남자 여러명을 묘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진지한 분위기와 달리 이 사람들은 친구 결혼하는 데 함 팔러 온 함진아비들 입니다. 이 양반들은 함 팔면서 난리 치고, 가끔은 소란과 시비, 격투를 불사하면서까지 함을 팔아서 한몫 잡아온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먼 시골마을에 결혼한 한 친구를 위해서, 함팔러 와서는, 시골 마을의 초라함과, 함을 팔기 위해서 상대해야 하는, 처가 식구가 신부 증조부인 90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회의감을 느낍니다. 결국 함 팔아 봐야 그 돈으로 술먹고 허무하게 써 없애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이번에는 그냥 난리치지 말고 조용하게 함을 넘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신부집에 오니, 온 시골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뻑적지근하게 함을 지고 가는지 구경하려고 기대하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심심하게 함을 넘기려고 하니까, 실망한 나머지 증조부가 도리어 분노해서는 당장 함 다시팔라고 호통을 쳐서, 난감해 한다는 이야기.



9. 인간사

주인공이 유령인 이야기로, 초반은 사후세계에 대한 설명 입니다. 주인공은 진지하게 사귀던 여자를 버리고, - 본문 중에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다" 등등의 "개소리"를 하면서 여자와 헤어졌다고 자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 돈 많은 여자와 결혼했는데, 신혼 때 아내가 운전하다가 앞 차 잘못 들이 받아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자신이 사망하는 바람에 저승으로 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설명에 따르면, 사후세계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언제나 할 수 있는 세상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후세계에는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지만, 지옥이라는 것도, 강제로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왠갖 이상한 짓을 다 해보다가 유황불에 굽히고 칼로 뒤덥힌 산을 기어오르는 짓도 한 번 해보고 싶어진 영혼들이 가보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극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뒷부분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과 별 상관이 없어서, 주인공이 유령이 되어, 인간 세상에 다시 한 번 구경 와서 목격하는 짤막한 내용입니다. 유령 주인공은 깊은 밤, 어느 외진 곳에서 이별을 하는 남녀를 봅니다. 여자는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남자는 매우 차가운 상태. 눈물을 흘리며 붙잡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남자는 매정하게 떠납니다.

떠나는 두 남녀가 개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 유령인 주인공이 갑자기 나타나는데, 남자는 놀라 나자빠져서 개천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자는 워낙 이별때문에 절망한 상태라 유령에도 무서움을 느끼지 못해서 그대로 있습니다. 개천에 빠져서 허우적 대며 죽어가는 남자가 손을 내밀며 살려달라고 하자, 여자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내밀어 남자를 끌어내 줍니다. 마지막 부분 묘사가 좀 기억에 남는데, "여자는 차디찬 손으로, 이제는 잡는 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아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뭐 이 비슷한 문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 시아버지 술상

이 이야기는 뭔가 좀 정상적인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제가 줄거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강 구도는 이렇습니다. 한 친구가 있어서 친구와 만나면 결혼한 시댁이야기와 결혼생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친구가 있어서 거기에 대해 짜증을 내는 노처녀 입니다.

결혼한 친구는, 시아버지가 매우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아침에 일어나서 해장술로 한 잔, 삼시세끼 반주로 한 잔씩, 오후 간식 혹은 밤에 자기 전에 한 잔. 총 하루에 다섯번씩 주안상을 꼬박꼬박 차려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노처녀인 친구는, 그런 말도 안되는 것에 고통받아야 하는 시집 살이라니, 자기는 그래서라도 결혼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결혼한 친구는 그렇게 주안상을 차려줄 때마다, 시아버지가 매우 즐거워하면서, 며느리를 잘 두었다고 감격하는 모습이 삶의 큰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노처녀 친구는 묘한 질투 같은 것을 느낍니다. 여기까지도 사실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뒤 이어지는 이야기는 좀 더 이상합니다. 시아버지가 병에 걸려서 의사가 술을 끊으라고 하는 바람에 더이상 하루에 주안상 다섯번 차리는 일이 이제는 없어지게 됩니다. 결혼한 친구는 그러자, 삶의 행복의 한 부분이 사라졌노라고 실망감을 느끼는데,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당신이 술상 차리느라 힘들어 하시는 것을 못보셔서, 실은 일부러 꾀병을 부리시면서 술을 끊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귀뜸을 해줍니다.

그 말을 듣고, 결혼한 친구가 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대체, 뭔 이야기이고, 어떤 갈등구도로 짠 이야기인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 도봉산

이것은 거의 수필 투의 글입니다. 앞부분에서, 여자 주인공이 친구와 함께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잡지나 신문에 나는 스캔들 기사 중에, "사랑은 했지만 손도 한 번 안 잡았다"라는 소위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이야기를 혐오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거짓말이나, 위선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자기 생각에는 사랑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자연적이어야 하므로, "사랑은 했지만 손도 한 번 안잡았다"라는 상황자체가 매우 억지스럽고 역겹다는 것입니다.

이후, 이야기는 이어져서, 그런 주인공이 대학 동아리에서, 등산모임에 참가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등산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서 강하게 암시한 끝에, 그 남학생과 일요일날 단 둘이 도봉산에 올라가자는 약속을 잡습니다.

주인공과 짝사랑하던 남학생은 그리하여, 도봉산에 올라가는데, 두 사람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매우 서먹해 합니다. 두 사람은 도봉산 정상에서 극히 심심하며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하는 변변찮은 시간을 길게 보냅니다. 마침내, 남학생이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하자, 주인공은 속으로 매우 실망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남학생이 주인공을 껴안으려 합니다.

주인공은 마음에도 없이 반사적으로 남학생을 밀쳐냅니다. 그러자, 남학생은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는 도망치듯 혼자 산을 내려갑니다. 주인공은 남학생과의 포옹을 싫어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이제 짝사랑하는 저 남학생과는 영원히 더 이상 인연이 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척 아쉬워 합니다.



12. 악동과 신부

주인공은 어릴 때 동네에 소문난 악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와 악함의 선두를 다투는 동네의 다른 악동이, 성당에 다니면서 개과천선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느껴 주인공은 성당에 다니게 됩니다.

주인공은 성당에서 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온갖 악행을 무용담 처럼 늘어 놓고, 신부가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것을 묘하게 즐기게 됩니다. 그것을 주인공이 좋아했는지, 아니면, 주인공이 정말로 죄책감이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는지, 주인공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은 매우 열심히 고해성사를 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악행을 부풀리기도 하고, 옛날 저지른 잘못이나, 대강 생각만 했던 나쁜짓을 지어내서 고해성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년 되지 않아, 주인공은 시들해 져서 성당을 다니지 않게 되고, 이후로, 성당을 다니면서 그렇게 과장된 고해성사를 했던 일이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꺼림칙한 기억으로 남아 알 수 없이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수십년 후, 중년이 된 주인공은 홀로 낚시를 갔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 그 때 그 신부를 만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소설가가 되었다고 신부에게 말하고, 신부는 어린 시절 부터 주인공의 이야기하는 솜씨가 대단했다고 말하면서, 자기도 주인공의 소설을 읽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신부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묘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신부에게 자신이 구상한 소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이 살인범을 알고 있고, 주인공이 살인범이 살인을 하도록 동기를 제공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소설 주인공의 직업은 신부로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신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갑자기 자신이 2년전에 스스로 파문하여, 카톨릭을 떠났으며, 이제는 자기가 신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두 사람은 빈 낚시대만 들여다 보며, 이후로 별 말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이 신부가 대체 왜 종교를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이후로, 예전에 갖고 있던 고해성사의 추억에 대한 이상한 기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진지하고, 인간 심리에 대한 상징성 같은 것도 있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명확한 줄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강 기억나는 것만 어떻게 말이 되도록 엮어 보았습니다.)



13. 상전벽해

이것도 거의 수필 형식으로 된 이야기 입니다. 오랫만에 고향 친구가 어머님 환갑잔치를 한다고 해서, 얼굴 본지 오래된 사람들을 만나러 주인공이 가 봅니다. 다들 사장, 상무, 이사들이고, 환갑잔치도 TV아나운서 불러서 사회보게 하고, 음식이며, 널찍한 공간이며 매우 으리으리해서 주인공은 큰 위화감을 느낍니다.

주인공은 그렇게 쓸쓸하게 있다가, 10대 시절 뽕밭에서 만나 뜨거운 마음을 불태웠던 첫사랑을 발견하고, 반가워 합니다. 첫사랑도 너무 나이가 많이 든 것 같아서, 서글퍼하는데, 그나마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도, 사실은 첫사랑의 동생이었던가, 조카였던가로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정말 자신이 나이가 많이 들었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고 허무해하는 감정을 느낍니다.



14. 선보기

주인공은 스물일곱살의 아가씨로, 대학을 마치고 집에 있으면서, 이리저리 신랑감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그러다가 의사 신랑감을 소개 받습니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의사의 아내가 되는 것을 꿈꾸던 적이 있었으므로, 많은 기대를 하고 선 자리에 나갑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모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짐짓 자애로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머나, 지난 번에 편찮으셨던 곳은 요즘 좀 어떠세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즐거워 합니다.

선보러 가서 만난 사람은, 좀 굳세고 거칠면서 순박하게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약간 재미없다 싶은 사람이면서도, 착해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이 남자의 매력을 하나 둘 살펴보다가, 남자가 무슨 진료를 하는 의사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수의사"라고 대답을 하고, 주인공은 크게 실망을 합니다.

주인공은 그 때부터, 남자의 모습이 마치 투박한 소백정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고, 가축 내장과 애완동물 가죽을 주므르던 손으로 자신을 밤에 더듬게 된다고 생각하며 기겁을 합니다. 그리고, 동물을 싫어하는 주인공에게, 동물을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말하기를,

"저는 동물을 무척 사랑합니다. 소, 돼지, 모두 저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물론 아내가 생긴다면 아내를 더 사랑하겠지만 말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웃으며 덧붙이기를,

"저는 돼지보다 아내를 사랑할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대강 둘러대고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 나옵니다. 남자는, "그럼 저는 튼겁니까?" 하고 묻고는, 떠나는 주인공의 등 뒤에 대고 마지막으로 뭐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그 때 남자가 마지막으로 뭐라고 말했는지는, 이후로도 영영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세세한 묘사들, 하나하나의 표현들 속에 농담들을 꽤 끼워 넣은 이야기 아니었나 싶습니다.)



15. 완벽한 사회

미래 사회를 그린 이야기인데,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노인 문제가 심화되어 노인복지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세금이 부과되는 사회를 비현실적인 희극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목표치의 세금을 안내면 징역을 살면서 중노동을 해야 하므로, 매우 괴롭게 살게 됩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기를 낳으려고 하고, 남녀는 결혼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결혼판에서는, 세금을 내느라 정신없이 고통스러운 젊은 남자들 보다는, 여유롭게 복지 사회를 즐기는 노인들이 인기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젊은 여자와 노인으로 된 부부가 매우 많아집니다. 배가 부른 여자가 노인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는 모습이 가장 전형적인 남녀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남자는 젊을 때 세금을 낸다고 괴롭게 살게 되고,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연령이 되고 나면 이혼을 당하게 되므로, 늙어서 외롭게 살게 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대통령은 조금만 잘못하면 사형시켜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통령은 꺼리고, 정년이 긴 말단 공무원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내용도 있고, 이런 사회가 온 이유가, 예전에 가족계획을 하고, 아기 없는 부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역사가 있는데, 이런 역사를 역사 기록관들만 알고 있고, 쉬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츠츠이 야스다카가 반쯤은 지면 채우려고 급하게 생각나는대로 쓰자는 의도로, 반쯤은 웃기려는 의도로 쓰던 옛 소설과 매우 분위기가 흡사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소 가벼우면서도 자극적인 묘사들도 그런 느낌입니다.)


16. 알수 없는 일

주인공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비밀 때문에 괴로워 합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밤이 되면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주인공은 이러한 야뇨증 버릇이 아주 어릴 때는 오히려 없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갑자기 생겨버린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외국에 있어서, 어머니하고만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외국에서 돌아오는데,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매우 낯설게 여겨서, 아버지를 전혀 반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이후, 밤에 잘 때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끼어서 자기가 잠이 들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자고 있고, 자신이 한켠으로 밀려나 자고 있는 것을 번번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던 새벽 어느날,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 어머니가 자기를 옆으로 밀쳐 놓고 건너 넘어가 아버지 옆에 눕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러자,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로 다시 파고들어 잠을 자는데, 그날 그만, 이불을 적시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날 이후로, 야뇨증 때문에 번번히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여러가지로 방법을 알아보고, 또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야뇨증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결혼하고, 신혼 여행을 갔을 때, 왠갖 약물과 여러가지 수단을 이용해서, 간신히 야뇨증을 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주인공은 항상 노심초사하고, 조심, 또 조심하고, 여러모로 조절하여, 이후, 아내와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첫 아기를 낳게 되고, 아내가 아기를 돌보면서 자게 되자, 주인공은 다시 야뇨증을 겪게 됩니다. 아내는, 놀라면서 말하기를,

"어머나, 이게 뭐야. 아기 귀저기 빨기도 귀찮은데. 당신까지. 혹시 당신 아기 한테 질투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내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좀 고리타분한 데가 있는 정신분석학 입문서에 나올 법한 소재를 거의 그대로 우화, 예화 처럼 옮긴 이야기 라고 생각합니다.)


17. 카드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대단한 미남이나 부자는 아니지만, 명문대를 졸업한 총명한 사람으로 나름대로 일에 성실한 면을 잘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무실에서 책상을 서로 마주하고 있기에,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이 남자가 요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의아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때는 세상이 들뜬 연말연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겨울 이었습니다. 남자에게는 하루에도 여러가지, 여러 통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마다 계속 오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오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묻습니다.

"저는 다해야 한두통 올까 말까인데, 매일매일 그렇게 카드가 오는 걸 보니, 인기 굉장히 많은가 봐요?"
"다, 뭔 소용이랍니까."

그리고, 남자는 부질 없다는 듯이, 그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한 번씩 쓰윽 훑어보고는 그냥 다 쓰레기 통에 버려 버립니다. 그런 일이, 두어번 반복되자, 여자는 더욱 의아해져서 묻습니다.

"그래도 남이 정성을 다해 보내 준 카드인데, 그렇게 버려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아요?"
"제가 기다리고 바라는 카드가 워낙에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정작 꼭 기다리는 카드는 한 장도 오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여자는 호기심을 느낍니다.

"혹시, 뭐,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그 사랑하는 애인 카드를 기다리는 거예요?"

여자는, 농담 반, 장난 반으로, 한 번 떠 보듯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의외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예. 맞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서, 항상 생각에서 지우지를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람 한테서는 아무 연락도 없고, 엉뚱한 카드만 자꾸 오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예요?"
"굉장히 똑똑하고요, 같이 있으면 엄청 재밌고. 또 정말 많이 예쁘고요."
"어디에 사는 사람인데요?"
"이 삭막한 도시에."
"그럼 그냥 연락하고 만나면 되는 거 아니예요?"
"모르겠어요. 잘 되면, 저만을 사랑한다고 크리스마스 카드로 말해 줘야 할텐데. 그게 참..."

그 말을 듣고, 여자가 남자 표정을 보니, 남자는 정말로 신실한 사랑에 푹 빠져 있는 것 처럼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자는 묘한 질투심과 함께, 이상한 쓸쓸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 감정은 자꾸 커져서, 여자는 그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게 됩니다.

퇴근 후, 여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장 삽니다. 누가 산 카드 인지 취향이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매우 평범한 카드를 고르고, 여자는 타이프라이터로 카드에 글자를 써 넣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해요."

여자는 그리고, 보내는 주소를 밝히지 않은 채, 그 카드를 남자에게 보냅니다.

이튿날, 남자는 또 다시 여러통의 카드를 받습니다. 남자는 카드를 하나 둘 살펴보다가, 카드 한 장을 유심히 살펴 봅니다. 여자가 보니, 그 카드는 어제 자신이 사서 보낸 카드였습니다. 그 카드를 보고 나더니, 남자의 얼굴이 환히 밝아집니다.

"왔어요! 카드가 왔어요!"

남자는 흥분해서 즐거워 합니다. 남자는 그리고, 매우 기뻐하면서, 다른 카드들을 다 휴지통에 쓸어 넣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카드 하나만 들고 좋아서 흥겨워 합니다. 여자는 남자 휴지통에 쓸어 넣어버린 카드들 중에, 혹시 진짜로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카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는 그저 좋아하면서,

"야, 이런 날은 축하해야죠. 제가 점심 사겠습니다.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라고 합니다. 여자는 혼란스러워서, 그냥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에 일을 좀 더 하겠다고 합니다.

남자가 기뻐하며,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간 후. 여자는 남자가 카드를 버린 쓰레기통을 뒤집니다. 남자가 펼쳐 보지도 않고 내던져 버린 그 카드들 중에, 혹시 정말로 남자가 기다리는 카드가 섞여 있으면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버려진 그 카드들이 모두 같은 글씨, 같은 펜으로 쓰여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남자의 글씨였습니다. 바로 그 때, 사무실로, 여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나도,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해요. 어서 나와요."

그것은 남자의 전화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장 잘 기억하고 있어서, 비교적 또렷하게 줄거리가 생각납니다. O. 헨리 풍의 고전적인 낭만적인 도시 이야기)
by 게렉터 | 2008/05/11 23:55 | 기타 | 트랙백(1) | 덧글(20)
트랙백 주소 : http://gerecter.egloos.com/tb/373930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MuZz eXpress.. at 2009/08/15 16:59

제목 : 이 동화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
70년대말, 80년대초에 나온 제목을 알 수 없는 단편집트랙백걸린 글을 읽다가 생각이 나서 하는 포스팅.한참 어릴때의 얘긴데, 무슨 학원같은걸 다니면서 거기 대기실에 있던 책 중에서 하날뽑아읽었었다.하도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건 동화의 내용과 신동우 화백의 삽화뿐인데신동우 화백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그림은 다들 알고있겠지어릴적에 봤던 다른 동화들은 다 내용을 까먹은것에 비해 이 동화만 유독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이유는 모르겠지만.----......more

Commented by 다인 at 2008/05/12 00:20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5/12 00:58
엄청난 기억력이시군요 OTL
마지막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드네요. 남자의 낚시가 좀 무섭긴 하지만;;;
Commented by 잎둘 at 2008/05/12 02:29
저 이야기들 중 몇개는 익숙하네요. 저도 읽었었나.....
Commented by 혈견화 at 2008/05/12 03:19
프리온을 파괴할 만한 낯뜨거운 대사를 저도 좀 연마해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Clio at 2008/05/12 07:15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시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아일보사에서 펴낸 꽁트집 "(新作 꽁뜨 32人選)하느님 맙소사 " 가 아닌가 싶은데요. 1967년에 처음 발매되었고 1980년 9월에 여성동아의 별책 부록으로 다시 한 번 펴냈던 것 같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따라가시면 수록 작품들의 목록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http://nl.empas.com/search/nl_detail.html?bo=0&wv=53&e=1&vt=N&i=110971608&sn=KMO200132274&q=%D4%D4%E4%AC%EC%ED%DC%C3%DE%E4&q2=%D4%D4%E4%AC+%EC%ED%DC%C3%DE%E4&f=C&dc=0
Commented by NINA at 2008/05/12 08:20
매우 재미있게 잘 읽고, 기억력이 무척 좋으시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내신 Clio님도 정말 대단하세요! 와아 역시 사서님이시군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8/05/12 11:21
재미있게 봤습니다. 프리온이 파괴될 정도의 대사를 저도 하고 싶군요.^^
Commented by 정시퇴근 at 2008/05/12 11:26
와 즐겁게 읽었습니다. 기억력이 너무 좋으신거 같아요!
Commented by jun at 2008/05/12 21:25
저도 어렸을 적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삽화가 들어있던 책이었는데..삽화가 약간 러프한 그림체였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이미지가 15번 이야기에 곁들렸던 그림인데..공원에서 노인과 젊은 임신한 여성들이 같이 걸어가고 있는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오랫만에 어려서 읽은 책이 기억이 나서 좋았습니다..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t 2008/05/13 00:51
님은 참.....
어떤 분인가요?? 놀랍고 신기하네요..
Commented by 시무언 at 2008/05/13 10:17
저런 대사만 하면 변성 프리온은 걱정할 필요가 없군요
Commented by shuha at 2008/05/14 03:39
엇, 먼저 댓글을 다신분이 계시군요. 다른건 몰라도 좋아하네- 를 보는순간 하느님 맙소사가 맞다..란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_-;
제가 너댓살 이던 무렵.. 집에 있던 책을 읽어댔는데 그중 한권 이었던 걸로 기억.. 쿨럭 뭔가 분한데요
Commented by 들쮜 at 2008/05/14 17:32
6번은 전설의 "웃기네" 이야기와 거의 같군요;;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무명씨 at 2008/05/15 03:00
베트남 여자 얘기를 보니 안정효의 하얀전쟁에 나오는 에피소드도 생각이 나는군요.

한국군인이 베트남 여자한테 '씨발놈아'를 반대의 의미로 가르쳤더니 '잘가세요 씨발놈아' 하더라죠.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8/05/15 08:53
shuha, june, Clio/ 감사합니다. 하느님 맙소사 맞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 이름과 내용으로 볼 때, 60년대 후반에 나올 만한 책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확한 출간 시기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잠본이, NINA, 정시퇴근, 난/ 별로 기억력 안 대단한 것이, 기억 나는 줄거리만 쓰고, 기억 안나는 부분은 그냥 다 지어내서 채운 이야기입니다.

혈견화, 뚱띠이, 시무언/ 그러나, 저런 낯 뜨거운 대사를 실제로 사용하다가는 자기 얼굴까지 다 타버릴 위험이 큽니다.

다인/ 감사합니다.

무명씨/ 육두문자는 살짝 가려 주시거나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쮜/ "웃기네"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Commented by 무명씨 at 2008/05/15 10:40
원문을 그대로 옮겼는데 기분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지우려고 해도 비밀번호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틀려서 난감하군요.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8/05/15 10:49
무명씨/ 뭐 괜찮습니다. 재미난 이야기 곁들여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huha at 2008/05/15 21:57
웃기네 얘기는 제 기억이 맞다면, 좋아하네 랑 똑같은 스토리 인데, 좋아하네 대신 웃기네 ...라고 불렀던가 그랬을 겁니다.

그 월남전 당시 낭만주의 스타일로 떠돌던 얘기라..-_- (생각해 보면 참 기분 나쁜 로맨스 이긴 하네요. 침략하러 간 주제에 현지 처라...

이거 뭐 양키들 오리엔탈리즘도 아니고)
Commented by log㉦ at 2009/02/10 23:08
게릭터님 게시물 정말 재밋게 읽었습니다. 기억력이 대단하시군요...

10번째 시아버지의 술상 편은 제가 나름대로 글쓴이의 의도를 짐작해 보건데...

아마도 대략 인간의 가식적인 면을 비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루에 다섯번씩 술상을 차리는데 즐거워 할 며느리가 있을리 만무 함에도 정작 며느리는 노처녀 친구 앞에서 착한 며느리로 비취지길 원해 삶의 행복이라고 가식과 허세를 떱니다.

시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때도 이 시아버지라는 인간은 실재 병에 걸려 술을 못마시는 것이 안타깝고 원통한 생각이 듦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를 생각해서 꾀병을 부린다고 가식을 부립니다. (달리 생각해서 아들이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던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혹은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내에게 거짓을 말을 한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술상을 더 이상 차리지 않아도 되어 맘 속으로는 날아갈 듯 기쁘지만 착한 며느리 행세를 하기 위해 며느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악어의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노처녀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나름 성공했다, 잘산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실상 가식과 거짓의 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뭐 이런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요?
Commented by log㉦ at 2009/02/10 23:26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결혼 = 사회적 성공, 며느리 = 성공한 자, 노처녀 = 실패한 자,

그리고 시아버지 = 성공하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장애물 내지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귀찮고 힘든 일들 (피나는 노력, 엄격한 자기 관리,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등)

그러니까 노처녀로 등장하는 실패한 자는
"인생을 즐기는 것일 뿐"이고 시아버지로 상징되는 그런 일들에 말리기 싫어서
자신은 능력은 있으나 일부러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는 변명과 핑계를 늘어 놓는
냐약한 인물을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와 상반대는 성격을 가진 며느리는 진심으로 그런 고난까지도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공과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라는 것을 비유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졸면서 쓰다보니 글의 두서가 없고 해괴한 문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그러운 맘으로 양해해주세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