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 쏘는 고구려 사람) 신라 건복(建福), 인평(仁平) 연간에 어떤 고구려 병졸이 당나라와 싸우는 싸움터에 나갔다. (건복, 인평은 신라의 연호로 6세기말과 7세기초를 말함) 그리하여, 수많은 싸움터를 돌아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싸움터에서 물러나서 이 고구려 병졸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며,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 비참하고 허무하다 하여, 괴로워 하였다. 마침 시절은, 사월 초파일이라, 절에 수천 수백 연등을 색색깔로 환하게 밝히고, 성의 남녀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노니는 때였다. 그 노랫소리를 듣고, 병졸은 절에 찾아가, 마침 명망 높은 승려가 있는 것을 보았다. 병졸은 연등 불빛과 고운 노랫소리에 자뭇 묘한 마음이 되어, 승려 앞에 찾아가 물었다. "싸움터에서 수천, 수만명이 죽기에, 하늘아래 고귀하다는 사람이 파리와 개미의 먹이가 되며 썩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저또한 그러한 일과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죽음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찌 하면 좋습니까?" 승려가 병졸을 보고 되묻기를, "자네가 비록 싸움터에서 칼질, 창질만 하는 것을 보았다하나, 불경에 이르기를, 반드시 하나가 곧 여러 가지라 하였으니, 그 와중에도 부처의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네. 자네가 그 동안 부처의 깨달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무엇 하나라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병졸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승려에게 들려 주었다. 제가 당나라와 처음 싸움에 나갔을 때, 우리 고구려 군사가 이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군사들은 그리하여 여러 당나라 군사를 사로 잡게 되었는데, 저는 당나라 군사의 중랑장(中郎將) 하나를 사로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써서 물었으니, 당나라 중랑장이 답하기로, "내 성은 위(韋)이며, 이름은 극근(克勤)인데, 당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니, 이후로, 위극근은 매양 당나라로 돌아가기를 틈을 엿보았기에, 우리 병졸들은 위극근을 다스리기에 귀찮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기는 했으나, 당나라 군사는 멀리 도망가고 위극근이 사로잡혀 있는 곳은, 고구려의 성이었으므로, 위극근은 뜻한대로 당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다시 글을 써서 물어보기를, "너는 학문을 익힌 적이 있는가?" 하니, 위극근이 답하기로, "어려서부터, 불교의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쉼없이 읽기 시작하여, 배우고 익혔으므로, 중랑장이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금강반야바라밀경, 곧 금강경은, 도술과 유학을 하는 무리들까지 널리 읽는 유명한 경전이므로, 금강경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강경은 인도의 사위국(舍圍國, 곧 슈라바스티)이라는 곳에서 석가모니가 제자 수보리(須菩提)에게 내려준 가르침을 적은 것이었으며, 수보리 또한 본시 장사치였으면서도, 누구 보다 공(空)을 깊게 깨달은 자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로 잡은 당나라 군사 위극근은 이러한 금강경을, 출세를 위하여 어릴때 부터 익혔으며, 또한, 결국 지금은 사람을 죽이고 창칼질을 하는 군사가 되었다 하니,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위극근은 고구려에서 붙잡혀 사는 것에 익숙해진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유심히 살펴 본즉, 위극근은 항상 몰래 당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금강경을 기이하고 신비한 책이라 여기고, 금강경 속에 도술과 신선의 뜻이 깃들어 있는 듯 여기면서, 항상 금강경 글귀를 중얼거리면서, 당나라에 갈 것을 신이한 술법에 비는 듯 하였습니다. 후에 당나라의 이세민이 황제가 되어 크게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로 쳐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구려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나라 군사가 쳐들어 왔다. 이세민이 쳐들어 왔다" 하므로, 드디어 위극근 또한 몰래 기뻐하며, 드디어 당나라 군사로 돌아갈 때가 찾아 왔다 생각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고구려에 있는 위극근은 하루 하루, 오늘은 당나라 군사가 어디까지 왔는가, 내일은 또 자기가 있는 곳에 올것인가 하며, 목을 빼고 당나라 군사가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군사가 힘에 부치어, 고구려 군사를 완전히 깨뜨리지 못했으므로, 마침내, 당나라 군사는 위극근이 있는 곳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그만 멈추게 되었습니다. 위극근은 크게 안타까워 하여, 탄식하였습니다. 이내 당나라 군사가 곧 멀어져 후퇴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위극근은 당나라로 돌아갈 날이 끝나는 듯 하여, 속이 끓고 장이 뒤집힐 듯 보였습니다. 결국 위극근은 그러다가, 마침, 깊은 밤, 몰래 고구려 성에서 빠져나와, 당나라 군사가 있는 곳 까지 뛰어서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니, 위극근이 달도 뜨지 않고 별빛 조차 없는 깊은 밤길에 몰래 성벽을 넘어 서쪽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당나라 군사가 있는 곳 까지 길은 먼데, 보이는 것은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막막하고, 또 갑갑하였습니다. 저는 위극근은 이내 밤길에 길을 잃고 헤메다 붙잡혀 죽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밤이 깜깜하니, 위극근은 진흙구덩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듯한 마음이었을 것이고, 또, 천길 깊이의 바닷물속에 있는, 볕이 들지 않는 만장 길이의 굴속에, 또한 깊은 흙더미가 있어 묻혀 있는 듯 하였을 것입니다. 위극근이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기가 이와 같았으니, 곧 위극근은 흥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위극근은 목숨을 버리는 듯 뛰어나온 자신의 처지가 한탄 스럽고, 또한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으며, 곧 고구려 병졸에게 잡혀 죽일 때가 되었구나 생각한 듯 싶었습니다. 마침내, 위극근은 죽음을 앞두고 가만히 어릴 때 익히던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금강경 경문을 외며 위극근이 떨고 있으니, 갑자기 위극근 앞에 붉고 노란 불덩어리가 하나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구려 병사와 성을 둘러 보았으나, 누구도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성밖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오직 그 노란 불덩어리 하나만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빛이 없는 깊은 밤에, 사람의 얼굴들도 잘 보이지 않는데, 멀리서 고구려 병사들이 뒤를 좇아 "죽여라" "잡아라" 하는 소리만 들려오고, 그 사이에 허공에 불덩어리가 가만히 빛나고 있으니, 그 광경에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위극근은 곧 허공에 뜬 불덩어리의 빛을 보고 길을 알아 서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위극근이 눈물을 흘리며 금강경을 계속 외웠습니다. 그랬더니, 불덩어리가 앞서 움직이며 위극근이 가는 길을 밝혀 주어, 당나라 군사로 가는 길을 이끌었습니다. 불덩어리는 마치 횃불이 공중에 떠 있는 듯 하였는데, 이내, 불덩어리와 금강경을 읊는 위극근이 어둠속으로 점점 멀어지므로, 위극근이 도망하는데 따라 불덩어리는 점차 작아져,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위극근이 우리 고구려 성벽에서 빠져 나와 십리밖의 당나라 군사 진영까지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망하여, 입을 멀리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듯 성밖의 밤은 그저 깜깜하기만 한데, 먼데서 금강경 읽는 소리만 가만히 들려오는 듯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병졸이 승려에게 말하기로, "이 일이야말로,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그랬더니, 승려가 껄껄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승려가 웃으며 말하기를, "석가모니께서 사화외도(事火外道)를 멀리하라 하였거늘, 어찌 하늘에 떠다니는 불 따위를 영험한 것이라 생각하고, 날아다니는 빛덩어리가 신이라고 여기며, 그런 신기한 요괴 장난질 같은 일따위가 부처의 깨달음이라 생각하는가? 하늘에 본시 불덩어리가 스스로 떠다니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거늘, 어찌 부처의 깨달음이 세상의 이치와 다르겠는가? 이것은 아마도 누군가 몰래 위극근을 위해 횃불을 밝혀 준 것을, 멀리서 보고 잘못 생각한 것이리라. 이러한 기이한 일이 자세히 살펴지지 않은 것을 보니, 필시 이것은 성안에 있는 고구려 병사 하나가 배반하여 위극근을 몰래 도와주어 도망치게 해 주고는, 자신이 배반한 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다시 성안으로 돌아와 '어제 밤에 본 것은 부처님의 조화다'라고 소문을 낸 것임에 틀림 없다. 위극근이 학식이 깊고, 당나라의 중랑장이니, 아마 재물과 보석 따위로 고구려 병사를 꾀어 성밖으로 밤에 몰래 도망친 것이리라." 하였다. 이야기를 한 고구려 병졸이 승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따지며, "그렇다면, 왜 위극근이 밤길에 금강경을 외운 것입니까?" 했더니, 승려가 답하기로, "그것은 깊은 밤에 위극근이 서로 긴밀히 내통하기 위해, 비밀히 서로 통하여 사용하는 신호가 아니었겠는가? 고구려 사람과 당나라 사람이 서로 알아 들을 만한 말을 할 때에, 범어(梵語) 가 나오는 금강경 구절 한 구절 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승려가 다시 웃으며, "자네가 하는 이야기가 그러하니, 어찌, 자네가 생사의 번뇌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니, 연등 불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절 안에 앉은 병졸은 혼자 한참 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 원본 출전 보응기(報應記) *11. 위극근(韋克勤) 이 이야기의 원 줄거리는 보응기에 있는 내용을 충분히 따랐으며, 주인공이 당나라 사람이었던 이야기를, 관찰자 시각인 고구려 사람으로 서술을 바꾸었고, 장면 묘사만 보충했습니다. 위극근 이야기 시작 하기 전의 도입부와 끝나고 뒤에 나오는 해설은 제가 생각한 이야기를 그냥 임의로 꾸며서 덧붙여 놓은 것입니다. 아직 지구상의 어느 한 곳은 부처님 오신 날이지 싶어 한 번 올려 봅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에 포함된 11회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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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카니지/ 감사합니다.
m..
by 게렉터 at 08:42 Film 2.0 07년 2월호(321.. by 볕뉘 at 07/22 http://www.dvdprime.. by miziwang at 07/21 어제나 저제나 하고 기.. by shuha at 07/21 음 별로 공감은 가지 않지.. by 곰돌군 at 07/21 잘 읽었습니다~ by kisnelis at 07/21 으아 제가 읽은 것중 가장.. by 살모넬라 at 07/21 다행히도(?) 스토리는.. by 잠본이 at 07/20 조무래기 처리하는 부분.. by 타누키 at 07/20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 by 예영 at 07/20 창이: 정체를 드러내보.. by 동사서독 at 07/20 기대했던 리뷰 감사합니다. by 뚱띠이 at 07/20 이걸 보고 나니 [다찌마.. by marlowe at 07/20 멋진 리뷰 항상 감사드.. by 더카니지 at 07/20 학창시절에 가장 흥미롭.. by 냐옹쟁이 at 07/19 브이에 관한 글을 살펴.. by 짱깨 at 07/18 이거 낚시할때 팁 있습니.. by 요하니 at 07/18 아롱쿠스/ 정말 박동룡 .. by 게렉터 at 07/18 너무 소심하신 것 같습니.. by ydhoney at 07/17 31-2 애피소드는 환상여.. by 냐옹쟁이 at 07/1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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