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류타투 (第三類打鬥, 제삼류타문, 지옥, 地獄, Heaven And Hell, 1979) 영화

"제삼류타문" 혹은 "지옥"이라고도 불리우는 1979년작 홍콩 쇼브라더스 제작 영화인 "제삼류타투(第三類打鬥)"는 한중일 영화계에서 60, 70년대에 종종 나오던 소위 "지옥" 영화 입니다. 일종의 환상 서사시 풍의 영화인데, 환상 세계로 나니아나 중간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마들이 득실대는 지옥이 나오는 영화인 것입니다.


(지옥의 입구. 줄 서 있는 죽은 사람들)

이런 류의 영화 내용은 지옥의 악마들과 악마들이 죽은 사람들을 다루는 각종 다양한 방식을 소재로 해서 사후세계의 괴이하고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경이 배경이니 만큼, 유황불에 사람 태우고 창칼로 뒤덮힌 산을 맨손 맨발로 오르는 형벌을 가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해서 살짝 공포물 분위기를 섞는 것이 보통입니다. 중세 불교 문학 중에 지옥의 광경과 각종 형벌을 장황하게 읊은 것들이 많은 만큼, 이런 영화도 대체로 불교 계열의 종교 색채를 가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영화 "제삼류타투"는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일단 중반까지 지옥 비슷한 것도 안나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가서 별해괴한 갖가지 악마들의 고문을 구경하다가 어찌저찌하여 지상에 돌아와 착한 마음 먹고 산다"라는 전형적인 지옥물 줄거리를 따르지도 않습니다. 70년대 한국영화인 "대지옥" 같은 지옥 영화를 필두로 상당수 지옥 영화들이 사극 색채가 완연한 것이 보통인데, 이 영화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런즉, 지금에 와서 이 영화를 본다면, "지옥 영화"인 듯한 70년대 말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라는 것 정도만 예상한 상황에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상당히 괴이쩍게 구성된 이 영화의 흐름과 형식 자체를 신기하게 느껴면서, "대체 뭐 어떻게 결론을 맺으려고 영화가 이렇게 날뛰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지켜 보는 것입니다.


(지옥 이야기 와중에 이상한 핑계로 갑자기 나와버리는 "그림 좋은데~" 장면. 볼것도 없이 다음 장면은 악당이 주인공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연결됨)

그 형식을 살펴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하면 대뜸 화면에 커다랗게 "천당" 이라는 자막을 보여주고, 신선들이 노닐고, 선녀들이 댄스하는 도교 계열의 천상계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나서 출연진들을 비롯한 제작진들에 대한 자막을 보여주는데, 왠지 그 내용이 좀 짧아 보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것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천당", "인간", "지옥"의 세 막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한 막마다, "천당", "인간", "지옥"이라는 제목과 함께 각 부분에 출연하는 출연자 명단과 제작진을 다시 자막으로 보여주는 구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세 개의 작은 영화가 연결된 형태로 되어 있는 듯 하게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당에서 벌어지는 일,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지옥에서 벌어지는 일을 각각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세 이야기가 연결되는 이유는, 세가지 배경에서 한 명의 불쌍한 영혼이 천당에서 인간 세상으로 떨어지고, 인간 세상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면서 보고 겪는 모험을 다루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형태는 천상세계에서 인간세계로 떨어져 모험을 겪는 이야기의 대표작인 "구운몽"에서 부터, 송강 정철이 술먹고 졸다가 꿈 꾼 내용 써놓은 "관동별곡"의 한 대목까지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것을 가져와 놓은 것입니다. 심지어, 천당에서 인간으로 떨어지는 이유도, 극히 전형적인 "천도 복숭아 관리를 잘못해서..." 운운 입니다.


(천당에서 천도 복숭아 잘못 건드리는 순간)

여기까지라면, 연결이 상당히 끈끈하게 되어 있는 형식의 옴니버스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포 룸"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첫번째 방에서는 이상한 자칭 마녀 아주머니들이랑 소동에 휘말리고, 두번째 방에서는 어린아이 돌본다고 골치아파 하는 것으로 소재가 바뀐 것처럼, 이 영화의 첫번째 부분에서는 배경이 신선과 선녀들의 구름 궁전이고, 세번째 부분에서는 배경이 마귀와 나찰들의 불지옥이라는 식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다른 조건, 다른 인물들과 모험을 겪는 내용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세 개 있는 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보면,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바로, 선녀 역할을 맡은 이림림(李琳琳) 입니다. 그리고 이 선녀를 짝사랑하는 견우 비슷한 천상의 청년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는, 바로 "깡따위"라고 불리우던 강대위가 나옵니다. 이림림과 강대위는 실제로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 배우들이니 만큼, 둘은 장단도 잘맞고, 연극 무대 처럼 되어 있는 현실감이 상당히 부족한 천상 세계 세트에서 나름대로 그런 연극적인 맛을 살려서 연기도 재미나게 합니다. 대강 얼핏보면, 이 강대위와 이림림이 천당, 인간, 지옥을 넘나들며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면서 세 탕의 이야기를 펼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년의 애틋한 불멸의 인연 어쩌고 저쩌고..."하는 90년대에 미친듯이 남용되었던 한국 영화/만화/"새로운 감각"의 TV극 줄거리를 하나 펼칠듯 해 보입니다.


(분장 때문에 멍청해 보이지만 하여간 깡따위!)

그런데, "천당"편 막판을 넘어갈 때 즈음 보다보면, 좀 이야기가 엉뚱해집니다. 방금전까지 진정한 주인공 같았던, 강대위와 이림림에서, 영화의 초점이 어느 천당 수문장으로 급격히 바뀝니다. 이 천당 수문장은 강대위와 이림림을 측은히 여기고 있어서, 천당의 병사들에게 반역자로 몰리게 되어 막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천당에서 한 10분쯤 이야기를 펼쳤던 진짜 주인공들은 강대위와 이림림이었지만, 막상, 천당에서 인간으로 떨어지는 장본인은 강대위나 이림림이 아니라, 천당 수문장을 연기한 이강(李剛)인 것입니다.


(이림림이 위기에 처하지만 그 다음 장면은...)

(떨어지는 순간의 이강)

그래서 이야기가 2막인 "인간"편으로 넘어가면, 이강은 인간 세계에서 홍콩의 택시 기사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이강인 듯 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인간"편이 펼쳐지면, 이강이 홍콩에서 택시 몰고 다니면서, 한강은 남북을 가르고 구룡반도 앞바다도 남북을 가르네 하는 책을 쓰고 "콴룽"은 우리말로 쓰면 "관용(寬容)"이 되지만, 홍콩 사람들이 말하는 콴룽은 관용과는 뜻이 다른 개념이다라는 말을 읊조리는 줄거리가 펼쳐질 법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간편이 시작될 때, 이강이 택시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합니다만, "나는 홍콩의 택시 운전사"가 이 영화 인간편의 줄거리가 아니라,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부성(傅聲)과 진니(Jenny Tseung)가 영화 주인공으로 활약합니다.


(부성과 진니)

인간편은 사실적인 배경을 완전히 버리고, 현대적인 미술로 만든 상징적인 오페라 세트 같은 완전한 무대 미술로 배경을 꾸며 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일부러 역설적인 느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인간"편의 배경을 가장 추상적으로 짜놓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인간편은 뮤지컬로 연출해서, 등장인물들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고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이 영화는 전체에 걸쳐서 격투장면, 무술장면들이 대체로 실감나는 느낌 보다는, 빠른 동작과 힘을 중시한 춤처럼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뮤지컬로 되어 있는 인간 편의 이야기에는 아예 대놓고 알록달록한 삽화 같은 무대에서, 발레 형태로 되어 있는 춤으로 격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싸움 장면)

이야기가 좀 해괴하게 돌아간다 싶은데, 보고 있으면, 인간편에서 조직폭력배 두목 같은 놈하고 복성과 진니가 잘못 얽힌 까닭으로 위기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한 택시 기사가 복성-진니를 구해줍니다. 당연히 이 택시 기사는 천당에서 인간으로 떨어졌던, 그 천당 수문장이고, 어찌저찌하여, 다시 이 택시 기사는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악당에게 잘못걸린 인간편 여자주인공)

인간편 이야기는 천당 수문장이었고, 택시 기사인, 이강을 완전히 제외하고 복성과 진니를 주인공으로 해서 흘러 갔습니다만, 이렇게 해서, 인간에서 지옥으로 넘어갈 때는 다시 이강으로 이야기 초점이 바뀌어서 넘어 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얼핏 예상되는 것이, 그렇다면, 지옥에서도 진짜 주인공은 이강이 아니라, 다른 인물로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강은 그 이야기 속에 막판에 잠시 개입만 하는 것 아닌가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또 그렇게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이강은 지옥에서 약에 취해 허무하게 죽은 어떤 아가씨를 만나기는 합니다만, 이 사람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이강은 지옥에서는 한동안 꼭 진짜 지옥 영화 주인공인것처럼 비중을 갖고 움직입니다. 염라대왕 앞에서 "저는 억울하게 떨어졌습니다" 하는 지옥 영화 주인공들의 고정 대사도 한 번 읊어주고, 불지옥, 사람 반으로 쪼개 버리는 지옥 등등을 구경도 합니다. 강대위-이림림이 주인공이고 잠시 이강이 나왔던 천당편, 복성-진니가 주인공이었고 잠시 이강이 나왔던 인간편과 좀 다른 구도로 진행됩니다. 이강이 분명한 주인공으로 지옥 구경하는 이야기로 한참 흘러가기에 어딘가 좀 어색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게 괜히 길게 많이 나옴)

그러나, 지옥편에서 이렇게 뜸을 들인 것은 사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옥편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이강 한 명이 아니라, 이강을 포함해 무려 다섯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다섯명의 남자들이 주인공이라면 생각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양반 이름을 확인해 보면, 아니나 다를까 장철입니다. 바로, 이 영화의 지옥편을 장식하는 다섯 주인공들은, 장철이 감독을 맡은 영화 중에서 후기작 무술 영화에서 곧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베놈스(Venoms) 5인조들에서 대거 따온 것입니다.

보통 주먹질하는 권격-쿵푸 영화들은 민국초나 현대의 20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고, 신비한 배경으로 장풍쓰고 이상한 무기 쓰면서 싸우는 이야기는 사극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독(五毒)"은 신비한 소재들과 명나라 이전 배경의 묘한 운치를 잘 살리는 사극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주먹질을 하고 현실감있게 발길질을 하는 권격-쿵푸 영화의 싸움을 재미나게 버무려 넣은 영화였습니다. "오독"에서 무술하는 역할로 등장했던 다섯명의 무술 배우들은,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비슷한 역할로 70년대 후반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 후기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이 다섯 배우들은 장철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에 특히 자주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에서도 다섯명이 어찌저찌 저승에서 의기투합하는 주인공들로 대거 투입 되었던 것입니다.


(지옥의 5인조)

여기까지 보고 나면, 드디어 이 영화의 근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지옥 영화가 아니고, 지옥을 배경으로 한다는 핑계로 공상적인 이야기나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펼치는 환상물이 중심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연예인 총출동쇼의 의미가 가장 강한 영화였던 것입니다. 강대위, 복성, 이림림, 진니, 그리고 베놈스 5인조 라는 당시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명물 배우들을 떼거리로 모두 모아서 보여주고, 그 장기자랑을 잔뜩 시켜주는 기회를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꾸며 놓은 것입니다. 그러자니, 각각의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짤막짤막한 장면장면, 짧은 이야기들 여러가지가 주르르 연결될 수 있는 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천당, 인간, 지옥 세 가지 배경을 거치면서, 환생하고, 거듭나는 이야기로 꾸몄다는 것이고, 자꾸 배경과 만나는 인물을 바꾸고, 여러가지 인생이 교차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림림 춤추는 장면)

그런즉, 이 영화는 별 이유도 없이 지옥에 왕림한 보살의 조화로 갑자기 급격히 다섯명이 의기 투합해서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섯명이 의기 투합해서 뭉치고 나면,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섯명이 보살 앞에 좌선한 상태에서 각자 자기가 왜 지옥에 떨어졌는지, 그 사연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 진행입니다.

지옥에는 시간이 영원한 고로, 다섯명 중에 어떤 사람은 청나라 때 사람, 어떤 사람은 흘러간 팝송 시대의 사람, 어떤 사람은 요즘 사람 등등으로 배경도 달라서, 각자 자신의 시대를 배경으로 무술하면서 싸우다가 죽은 과거를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해서, 이강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 배우들이 여러 시대, 여러 형태로 무술하면서 죽고 지옥에 온 사연을 보여줍니다. 왜 보살이 지옥에서 다섯사람 모아 놓고, 당시상황 재연 장면을 이렇게 오래하는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하여간, 지옥에 모인 이 사람들의 전생을 회상하면서, 주먹질 발길질하며 싸우다가 피뿌리고 죽는 맨날보던 그 바닥 영화 장면들을 다양하게 압축해서 줄줄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권도 사나이: 물론 잠시후 피뿌리며 죽음)

네 명의 무술 전문 배우들이 자신들이 살아 생전 어쩌다 죽었는지 보여주는 회상장면들은 모두 볼만합니다. 넷 다 무술 솜씨도 좋고, 연출도 모범적입니다. 빠르게 다가가서 때리는 장면과 싸우는 얼굴 표정들이 부드럽게 어울려 담기도록 절묘하게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이 넷 중에는 칼질의 달인에서 맨손 주먹질 잘하는 사람도 나오고, "태권도" 전문가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그럴듯하게 본 것은 짧은 단검을 양손에 하나씩 둘 잡고,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생전 이야기 자체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10년간 이날을 위해 무술을 갈고 닦았다. 아버님의 원수, 내 칼을 받아라!"라는 것입니다. 코메디물에서도 끝없이 풍자된 정통 이야기 그대로 끌고온 것 뿐입니다. 이 사람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의 분량 자체도 10분 남짓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짧은 단검 둘을 특색있게 휘두르면서 긴칼을 잡은 여러명을 가뿐히 제압하는 모습은 잘 만들어져 있고, 하나도 안 지루하고, 재미있고 신납니다.


(양손에 든 단검 두 자루)

네 명의 생전 이야기에서, 네 명 모두 죽을 때는 약간 처절하게 죽습니다. 하다 못해 총 한발 맞고 단순하게 죽는 사람 조차도, 총 맞아서 피튀기는 모습과 아파하는 표정이 다소간 강조되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반대로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은 그다지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당시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의 전통적인 특수효과의 한계와 살짝 가리는 촬영방식 때문에 잔인한 행동 자체는 충분히 전달되면서도, 나름대로 수위는 조절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지옥의 고문을 묘사하면서, 사람을 꽤나 끔찍하게 다루는 내용들이 핏물과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묘사하는 특수효과가 별로 없고, 사용한 특수효과도 성격이 상징적인 것에 그쳐서 그다지 노골적으로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연예인 운동회 프로그램 소도구와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엄청 잔혹한 고문임)

이렇게 저렇게 해서, 3막에 걸쳐 배경을 바꿔가며, 일고 여덟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엮어서 보여준 이 영화는 곧 결말을 향해 달려 갑니다. 내용이 워낙 이렇게 오락가락했고 초점도 없는 탓에, 영화의 결말을 맺는 것은 좀 어려운 상황이지 싶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는 결말이 좀 부실할 뿐입니다. 결말에서, 지옥에 온 보살은 부처님의 자비로 지옥의 영혼을 구제해 "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어찌된 영문인지, 놀랍게도, "너희들 다섯의 용사가 힘을 합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알아서, 지옥의 악마들을 두들겨 패버리고 탈출하거라" 라는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해서, 역대 지옥 영화 사상 볼 수 없었던, 지옥에 있던 싸움꾼 다섯명이 악마들을 두들겨 패고, 지옥을 벗어나는 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달아 버립니다.


(문제의 보살: 쇼브라더스 서유기 영화에서 삼장법사 의상과 같은 것을 빌려 입었음)

애초에, 이 영화는 영화 속 지옥 자체가 장대하고 현란한 느낌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악마, 초열지옥, 냉지옥 같은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데 그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자그대로 이 "지옥의 특전대"가 지옥의 악마들을 두들겨 패는 모습들도 좀 엉성한 장난 처럼 느껴질 뿐,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느낌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옥에 잡혀 있는 영혼들이 대반란을 일으켜, 악마들을 몰아내고 지옥을 벗어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매우 웅장하고 거룩한 내용이 될 수도 있을 법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저, 급하게 영화를 끝맺어야 하는데, "무술 잘하는 배우가 다섯명이나 있으니까 하여간 주먹질 하다가 끝내자"라는 제작비 부족의 결과로 느껴질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장면 자체도, 파티 용품 점에서 파는 할로윈 가면 뒤집어쓴 엑스트라들이 열댓명 쯤 서 있으면, 그걸 쇼브라더스 간판 배우들이 두들겨 패는 장면으로 보일 뿐입니다.


(할로윈 가면 뒤집어쓴 엑스트라들을 한 판 두들겨 팬 후 걸어나가는 쇼브라더스 간판 배우들)

결과적으로 꽉 짜인 조직적인 내용으로 충실한 이야기거리를 전달해주지는 못하는 영화입니다. 전통적인 "지옥 영화"로서 보여주는 악마들이 지옥에서 고문하는 장면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들려주는 신선한 형식의 영화 사이에서 비중조절이 좀 이상하게 된 면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통적인 지옥 묘사는 좀 더 비중을 확 줄여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여러 주연급 배우들을 우수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당, 인간, 지옥을 오가면서,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인생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교차하는 이야기들을 보여줍니다. 그런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이 저마다 주인공이 되는 처절한 사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오묘하게 불교의 연기설이나, 제법무아론과 맞아들어가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각자 개성이 있는 인생이 처절한 죽음을 맞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연이 불과 5분, 10분만에 하나 뚝딱 기승전결 다 내달리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특이한 구성으로 교차하는 느낌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려보는게 좋았지 싶습니다.


(이 인간들은...)

(동물로 환생: 축생도)

어찌 보면, 한치 앞을 알 수 없이, 형식과 분위기를 마구 바꾸어 가는 이야기라서 그 전위적인 연결 때문에 신기한 맛이 강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형식상의 개성이 강한 영화들 치고는, 지루함이 전혀 없고 장면 장면은 상당히 재밌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빨리 넘어가면서 바뀌고, 유명 배우들이 각자 적역을 맡아서 잔뜩 나오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전개가 선명하고, 무술장면들은 후반부가 튼실합니다. 그렇다면, 황당하게 넘어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여러 홍콩 쇼브라더스 배우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쇼를 한 번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흥겹게 보고 넘기기에도 무리가 없는 영화 입니다.

그렇게 흥겹게 보고 넘길 영화 치고는, 죽은 사람을 악마가 고문하는 지옥 이야기가 영화 절반의 배경이라는 것이 또 특징적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전체적으로 조금만 더 조율이 되었으면, 조금만 더 정교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인 느낌은 유지한다고 해도, 분장이나 세트 배경 미술 같은 것은 분명히 더 그럴싸하게, 혹은 더 재미나게 꾸며볼 수 있었지 싶습니다.


(하여간 바닥에 연기만 깔리면 신비한 세트)

이것은 확실히 잘 다듬어 놓은 부분이 보이기에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인간편에서, 70년대식 록큰롤과 조성을 자유롭게 오가는 현대음악, 멋드러진 재즈 연주가 어울리는 음악은 꽤 듣기 좋습니다.


그 밖에...

잔인한 내용이 별로 안잔인한 연출로 자주 나오는 전개라든가, 쓸데 없이 배우들이 웃통을 벗어던지는 습성. 좀 낯간지러운 뮤지컬 장면 등등은 "금연자(방랑의 결투)", "대도가왕", "잔결" 등등으로 이어지는 장철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불교영화 형태로 만든 정통 "지옥 영화"들이 좀 보고 싶어졌습니다. 옛날에는 부처님 오신날 마다 그런 영화들 많이도 틀어주던데, 요즘에도 케이블TV 같은 곳에서는, 흘러간 옛 영화 구경거리 삼아 틀어줘도, 틀어준 영화 무한반복보다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목 "제3류타투" 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제3종 근접 조우)"를 빗대어 지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지와의 조우"를 영화를 중국어권에서 "제삼류접촉(第三類接觸)" 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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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8/06/16 07:16 # 답글

    모처럼의 장철과 부성의 조합이 이런 희한한 결과라니...
  • 이준님 2008/06/16 08:56 # 답글

    1. 그러고보니 "효자 목련의 설화"를 극화한 괴작도 있었지요

    2. 일본에서는 의외로 현대를 무대로 한 지옥작도 많지요 당대의 흉악범의 미래를 그리는 식으로요

    3. 불교물과는 거리가 멀지만 잡탕 장르괴작 "사후 세계"도 있었지요. 김희갑옹의 몸연기가 걸작이었습니다.
  • rumic71 2008/06/16 11:04 # 답글

    나카가와 노부오의 '지옥'에서는 고문도 고문이지만 '다음코너'로 옮겨갈 때 망자들을 뺑뺑이 돌리는 게 유독 인상깊었습니다.
  • 이준님 2008/06/16 19:07 # 답글

    PS: 안정효 선생은 어느 책에서 "한국에서 당시 -50~60년대- 볼거리 없는 관객들을 노려서 영화 하나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잡탕으로 섞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관객들은 "스타"도 보고 여러 이야기도 즐기는 뭐 그런 효과를 노릴수 있다고 합니다. (안 선생이 예를 든 영화는 김승호-엄앵란-황해가 나온 노다지 관련 "드라마"(를 빌미로 한 액션. 애정. 서사. 잡탕)였지요. 이것도 뭐 그런 타입으로 볼수 있겠군요
  • 귀공자 2008/06/21 23:41 # 삭제 답글

    홍콩의 택시드라이버 이강을 말씀하시면서 홍세화를 패러디하신거 최고입니다 으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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