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마을 (The 'Burbs, 1989) 영화

"유령 마을 (The 'Burbs)"은 그 줄거리 뼈대만 놓고 보자면,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하는 공포 영화를 농담거리로 삼은 코메디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수수께끼의 집이 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나, 어떤 저주나 비밀을 잘못 건드린 사람이 그 집에 걸려 들어서 섬뜩한 일을 당한다는 류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전형적인" 공포물 내용이라는 생각을 코메디의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멀쩡하고 단조로운 보통 미국 교외 마을을 무대로 해서, 거기에 있는 살짝 한심한 매우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른하다면 나른할 정도로 평화로운 배경에서, 이 멀쩡한 양반들이 뭔 초등학생들 홍콩 할매 귀신 무서워하는 듯한 분위기로 우스꽝스럽게 미치광이 살인마니, 악마 숭배자의 저주니 하는 소문을 운운하게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판 제목은 살짝 조잡한 맛이 있는 "유령" "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주인공인 톰 행크스는 잠깐 회사에 휴가를 냈습니다. 그런데 휴가라고 관광지에 가봤자 번잡스럽고 골치아픈 일만 생길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는 생각도 할만합니다. 그렇다면, 휴가 내놓고, 한 며칠 집에서 푹 쉬면서 그냥 TV야구중계나 보고, 비디오나 몇 개 빌려다 보면서, 유유자적, 뒹굴뒹굴하면서 피자나 좀 시켜 먹고, 늦잠도 자고, 편안하게 쉬어 보자는 것도 누구나 한 번 꿈꿔볼만한 휴가 계획 입니다.

그렇게 해서, 톰 행크스는 한 며칠 집에서 조용히 머물려고 하는데, 그러자니,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별 관심 없었던 동네의 이런저런 사정과 이야기 거리들이 좀 더 가깝게 다가 오게 됩니다. 옆집 친구와 잡담도 많이 하게 되고, 옛날 이 동네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게 됩니다. 아침에 출근하느라 정신 없을 때는 차 밀릴 걱정하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백수가 되어 할 일 없이 괜히 길을 나설때에는,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금지 되어 있습니다. 한번 더 신고가 들어올 시에는 우리측 요원을 보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따위의 안내문 같은 것을 좀 유심히 읽어보게 되기 마련 아닙니까?


(동네 아저씨들: 좌측 헛소문 잘 퍼뜨리는 수다쟁이, 우측 그냥 집에서 편히 쉬면서 휴가를 보내려는 주인공)

그리하여,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톰 행크스 바로 옆 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에 대한 추측과 불안입니다. 이사 오면 떡이라도 돌리면서, 뭐 이런저런 인사도 하고 가끔 아주머니들끼리 같이 모여서 남편 욕이나 동네 잘하는 미장원 이야기도 좀 하고, 집값 떨어질 것 같은 사태가 발생하려 하면 다같이 일치단결하여 "구청장은 자폭하라"하면서 꽹가리 치고 징치면서 시위도 좀 하고 뭐 그러면서 정겨운 이웃이 되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새로 이사 온 집은 아무 소식도 없고, 뭐하고 사는 지 정체 불명이고, 심지어 가족이 몇 명인지조차 잘 알 수 없을 정도 입니다. 그러면서 집 모양새는 점점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도록 변해 가는 것이, 마치 "그 집 아줌마는 직업이 무당이고, 그 집 아저씨는 원양어선 타고 나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교도소에 있다" 같은 소문이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단 말입니다.

그 와중에 소문 잘 퍼뜨리고 다니고 이런 저런 남 이야기 하는데 인생을 바친듯한 수다스러운 옆집 친구가 각종 헛소리를 늘어 놓고 있어서, 뭔 토막살인이라는 둥, 시체 은닉이라는 둥, 엽기적인 살인마의 소굴이라는 둥 여러가지 괴상한 억측을 주절거립니다. 거기다가 앞집에 사는 해병전우회 활동 - 영화상에서 정말 베트남전 참전 해병전우회로 보입니다 - 을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애국 돌격대원스러운 아저씨는 "우리 마을의 평화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운하면서 헛소리의 심각성을 더욱더 더해 줍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갈등은 과연 정체 불명의 옆집 주민이 진짜 살인마 악마숭배자인가, 아니면 그냥 은둔형 외토리일 뿐인가 하는 것이 중심 입니다. 뭐 살인마가 무슨 붕어빵 장사도 아니니, 마을마다 한 명씩 있을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당연히, 옆집 주민이 좀 이상해 보인다고 해도, 악마숭배자 살인마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상 사리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톰 행크스는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헛소리 하지마. 그냥 잔디 관리 좀 안하고 좀 지저분하게 사는 것 같다고 해서 무조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엽기적인 살인마냐?"

라면서, 최대한 착하고 멀쩡한 행동을 하게 하고 헛소문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태도가 당연히 합당한 맨정신 가진 사람의 태도이기에, 관객들은 평범한 사람의 사는 모습대로 사는 주인공 톰 행크스의 태도에 쉽게 감정 이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톰 행크스 주변 사람들은,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사실이라면. 그러면 모두 끝장이야. 우리 모두 사탄의 제물이 되는 거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계속 소문을 만들고 겁을 줍니다. 자꾸만 그러니, 그냥 헛생각 접고 조용히 쉬려고 하는 톰 행크스도 조금씩 조금씩 "혹시...?" "만약에...?" 하면서 계속 의아한 생각을 품고, 옆집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자꾸만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관객도 톰 행크스를 따라서, "진짜 옆집 사람의 정체가 살인마 아닐까?" 하는 의심을 문득문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비교적 멀쩡한 동네 아낙네들과 별로 안멀쩡한 상태로 빠져 버린 해병전우회 아저씨)

이 영화는 결말 직전까지 조금씩 조금씩 옆 집 사람의 정체를 밝혀주면서도, 이러한 갈등을 결코 깔끔하게 풀어 놓지 않습니다. 옆집 사람과 한 마디 대화를 해 보면, 뭔가 이상한 인간인것 같은데, 그렇다고 악마의 처삼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밤에 뒷마당을 파고 뭘 묻는 것을 보니, 좀 수상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거기에서 좀비가 기어 나오거나, 방사능 괴물이 장풍 쓰면서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자기가 자기집 뒷마당 좀 파헤치는 것을 두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점차 이 의심스러운 "유령의 집"에 대한 사실들을 하나 둘 흘리면서도, 이 영화는 결말 직전까지, 이 집이 진짜 악마의 저주가 걸린 집인지, 아니면 그냥 철없는 옆집 아저씨들이 자기들끼리 "밤 12시가 되면 학교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 움직이면서 암소핫 가사에 맞춰 춤을 춘다더라" 하는 괴담을 주고 받으며 덜덜 떨고 있는 영구짓 하고 있는 것인지, 관객들이 계속 궁금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줄거리를 가지고 계속 관객들이 이야기를 따라오게 하면서, 웃음거리들을 계속 빚어내는 게 이 영화의 구성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터무니 없어 보이는 수준의 헛소문을 주고 받으면서, "사실은 이 아파트가 있던 자리가 공동묘지였기 때문에, 밤 12시만 되면 엘레베이터에서 성묘철에 국화꽃 팔던 할머니가 '생계를 위협하는 아파트 건설 물러가라' 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돌아다닌다더라" 따위의 소리나 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계속해서 풍자하는 것입니다. 맨날 이런류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 놓는 수다쟁이 친구나, "우와 진짜 캡이다!" 같은 대사를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영혼을 담아 읊조리는 살짝 얼빠진 동네 청년의 대화하는 태도를 통해서 이런 점들이 말 한마디 한마디 나눌때마다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으워어어어어: 얼빠진 비명소리)

여기에다가 연출로 장난을 쳐 보는 부분이나, 전통적인 영구 코메디도 틈틈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터무니 없는 헛소문 수준의 문제를 두고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는 등장인물들의 태도를 비아냥 거리듯이 극도로 화끈한 음악으로 풍자하는 부분이 꽤 여러 곳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혀 보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이 아저씨들은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의 유치한 초조함을 묘사하기 위해서, 초인종을 누르려고 다가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 배경 음악으로 서부 영화에서 운명의 결전을 앞두고 깔아넣는 장중한 음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병전우회 아저씨가 별것도 아닌 상황에서 어림없이 베트남전의 비장함을 거칠게 읊조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괜히 영화 "패튼대전차군단"의 신화적인 트럼펫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울립니다. 음악만 이런 풍자에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옆집 사람이 살인마라는 생각에 고민 하다가 밤이 되어 꿈을 꾸니까 "교장 선생님이 초 사이어인으로 변신해서 학생들을 다 죽인다"라는 수준의 가당찮은 악몽을 꾸는 장면도 나오고, 사소한 것에 겁먹은 웃긴 표정이나, 쓸데 없이 비장해 하는 장황한 대사에 이르기까지, 풍자적인 웃음들이 자주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어리"를 먹는 톰 행크스의 괴로워하는 표정이라든가, 상당한 미인인 해병전우회 아저씨의 아내가 구사하는 정통 "미국식 금발 미녀" 코메디도 군데군데 들어가 있고,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고민하고 흥분하고 말싸움하고 미안해하는 감정들을 적절히 과장해서 코메디물에 어울리게 풀어내는 톰 행크스의 개인기 코메디들도 여러모로 잡혀 있습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은, 차분한 태도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아내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 역을 맡은 캐리 피셔는 아주 합당한 충고와 사려깊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한심한 고민에 왔다갔다 하는 톰 행크스의 모습이 더 잘 잡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캐리 피셔는 철 없는 애들이 전설의 고향 잘못보고 잠 못 자서 밤새고 학교에서 퍼질러자는 것을 돌보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캐리 피셔가 이렇게 안정감 있는 믿음직한 아내의 모습을 연기하는 모습은 꽤 훌륭합니다. 그래서, 이 한심한 양반들아, 그냥 공주마마 말씀만 고이 잘 따르면, 멀고먼 옛날 머나먼 어느 은하계에서처럼 우주의 평화가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마누라(조선시대에 세자빈 급에게 썼던 표현이니까)님 말 잘 듣고 착하게 살면 될텐데)

그렇게 저렇게 해서, 이야기 전체가 팽팽한 갈등 구조를 갖고 끝까지 이어지고, 그 속에서 재미나게 즐길만한 농담거리가 좀 있다고 할만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조금은 부족한 면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 집이 과연 악마의 집인가, 아니면 그냥 옆집인가?" 하는 의문이 점점 커지는 숙도가 썩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류의 이야기는 점점 갈등이 커지고 일이 꼬이고 잘못 엮여서, 나중에는 엄청난 대소동이 되어 난장판, 대혼란이 벌어지는 것이 화끈한 절정과 결말에 어울리는 내용일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도 그런 방향을 따라 갑니다. 이 영화에서는 막판에 폭발 장면도 한 번 화끈하게 터져 주는데, 80년대 액션 영화에서 잘 다져진 헐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 기술이 아주 깔끔하게 뽑혀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폭발 장면 자체가 아주 깔끔하게 잘 짜여 있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폭발 장면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만큼, 이야기가 점점 꼬이고 휘말리면서 커져가고 불어나는 느낌이 잘 묘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의 영구스러운 고민이 일대 소동으로 번진다는 점층법이 그다지 잘 묘사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노력은 꽤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숫자를 늘리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자빠지고 넘어지는 강도를 높이기도 하고, 결말 부분에 가면 급격한 국면 전환이 팍팍 일어나서 대소동 영화의 결말다운 달리고 부수고 자빠지고 하는 크게 터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갈등에 참가하는 주요 인물들은 결말 직전까지, 주인공, 수다쟁이, 해병전우회 세 명 뿐이고, 폭발 장면 직전까지는 시각적으로 효과가 있는 사고를 치지도 않기 때문에, 정말로 엉망으로 일이 꼬인 대소동이 일어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평화로운 미국 교외 마을에서 주민들끼리, 싱거운 소리 주고 받는 것이 폭발장면 직전까지의 영화 내용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싱거운 소리들을 별로 웃기는 수준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영화내용 전체가 그저 싱겁게만 느껴질 위험도 있습니다.


(미국식 금발 미녀 농담에 뛰어드신 분)

또 한가지 약간 부족하다 싶은 대목은, 영화의 주제를 그려낸 방식입니다. 이 영화는 거의 홍보 영화나 공익 광고에 필적할만한 수준으로 상당히 선명한 주제가 있는 영화 입니다. 얼핏 보면 이 영화의 주제란 것은 80년대에 집권해서 세계에 신(新)냉전 분위기를 잠시 불러일으켰던,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정신을 꾸짖는 듯 합니다. 해병전우회 아저씨가 꽤 멋진 사나이인듯하게 행동하는 면이 있고, 그 아내가 젊고 아름다운 금발 미녀이면서도, 상당한 조롱거리처럼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일단 80년대 그 바닥 분위기의 풍자라면 풍자입니다. 게다가 이 해병전우회 아저씨가 등장할 때마다, 연개소문이나 이의방, 이의민 등을 연상시키는 인간인 "패튼"을 상징하는 음악이 흐른다는 것도 조롱이라면 조롱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의 성이 "럼스필드(Rumsfield)"라는 것도 결코 가볍지 않은 어감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미국 공화당 욕하는 영화도 아니고, 해병전우회를 욕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 영화가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은, 평범하고 평화롭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듯 묘사되는 "착한 미국 시민"인 미국 중산층 교외 거주자들이, 헛소문과 괴상한 발상에 얼마나 쉽게 휘둘리고, 그 결과 얼마나 이상한 결단을 행하는 지 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탄의 음모 같은 신비주의에서부터, 외국에서 온 듯한 낯선 이방인에 대한 흉흉한 뒷이야기 같은 외국인 혐오증 스러운 이야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잘못 빠질 수 있는 잡사상에 잡다하게도 걸려 듭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고, 우리 가족과 우리 마을의 평화를 위해 행동한다"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뒤에 맹목적으로 돌격하기 시작하면, 별별 범죄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해괴한 상상으로 왠갖 핑계로 자기들의 정신나간 행동의 이유를 만들어댄다는 것을 즐거운 풍자극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톰 행크스는 옆집 사는 사람에 대해 여러가지 의심을 품다 못해, 엑소시스트에서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까지 별별 흉악한 왠갖 나쁜놈들이 다 옆집 사는 사람의 정체라고 의심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해병전우회 아저씨)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이런 다소 중후한 주제가 웃음 속에서 재치있고 멋지게 표출되는 수준에는 못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가 막판에 일장연설을 하게 해서, 톰 행크스의 깨달음을 사설조로 연설하는 것을 통해서 이런 주제를 말할 뿐입니다. 톰 행크스가 외치는 소리를 대강 옮겨보자면,

"옆집 양반이 괴상한 나쁜놈이라고 하면서 설쳤지만, 남에 대한 흉흉한 소문 내고 법 어기고 행패 부리고 한 것은 정작 우리 아니냐? 우리는 마을의 안전을 위협하는 옆집의 나쁜놈을 위해서 이렇게 행동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마을의 안전을 위협하는 나쁜놈이 된 것 아니냐?"

정도 입니다. 처절한 반성이라면 반성조로 되어 있는 연설인데, 이 연설은 선량해 보이는 중산층 백인 사회가 갖고 있는 약간의 문제들과 이상한 성향들이 뭉치고 연결되면, 민주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연결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확대 해석을 하자면, 보통 사람들이 지루한 동네에서 살며 보여주는 작은 모습 하나하나들이 결국은 이래 저래 모이고 뭉쳐서, 사회 분위기와 정치 세력을 뒤흔들고, 마침내 전쟁으로도 연결 되고 마약 문제로도 연결 되는 것 아니냐는 듯한 분위기를 깔아 보는 것입니다.

이런류의 주제는 어찌보면 윤리학의 중대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심리묘사가 잘 다루어져야 하는 면도 있기에 사실 잘 그려내기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런 한계를 별로 잘 극복하지 못해서, 이런 영화 주제와 영화 전체의 구도나 웃음의 형태는 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공주마마님은 슬럼프 시절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연기 잘함)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보면, 유니버설 영화사의 상표인 지구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지구가 부드럽게 확대되면서, 북미대륙이 보이고, 미국이 보이고, 미국의 한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의 집이 보이는, 수천킬로미터에 걸친 확대 효과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애니매이션, 특수효과가 나옵니다. 이 효과 자체도 구글 어스 같은 것이 발달해 있던 시절도 아닐 때 나온 것 치고는 무척 수준 높고 멋진 가치 있는 것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시작 장면 연출을 통해서, 상징적인 효과도 상당합니다. 이 마을에서 사람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이, 지구상의 마을이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해병전우회, 수다쟁이, 휴가내고 집에서 잠시 뒹굴거려보려는 직장인, 등등의 인물이 별세계에 있는 특이한 인간들이 아니라,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사는 우리 마을 모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멋드러진 시작 장면 연출에 비하면, 조금 늘어지는 영화 중반이나, 막판에 일장연설로 주제를 늘어놓는 방식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요리조리 과장하는 감정 연기로 코메디를 잘 해내면서도 공감할만한 사실적인 느낌도 적당히 견지하는 톰 행크스의 실력이나, 완전히 역할에 어울리는 캐리 피셔의 모습이 없었다면 이러한 영화의 단점은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를 설명하는 일장연설"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장면 조차도, 톰 행크스 개인기를 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몸짓 코메디를 살짝 섞어 어색함을 최대한 줄였기에, 그나마 품질을 건사할만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연출 자체는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잘 보이도록 건실하고, 동네 사람들이 옆집을 멀리서 넘겨다 보는 여러 시선들을 화면 속에서 잘 살리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세트 자체가 전형적인 미국 교외 마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세트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마당이 딸린 2층 목조 건물로 되어 있는 미국 교외 마을의 모습을 살려서, 옆집을 건너다 보고, 그런 동네에서 옆집 사람을 지켜보며 욕할 때 어떤 시선을 갖게 되는지 하는 것도 화면 속에 재미나게 담겨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앞집 사람이 보는 시각과 뒷집 사람이 보는 시각으로 번갈아 보면서 보여주면서, 긴장감이나 호기심을 살리는 연출 같은 것도 요소요소 매끄럽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여러 사람의 시점 변화, 시각차이를 화면에서 잘 표출하는 것은 연극이나 만화에서는 쉽게 해낼 수 없는 영화만의 묘미가 있는 장면이라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다만, 앞집, 뒷집, 옆집의 모양과 위치가 생생하게 현실감 있고 입체감 있게 와닿는 수준은 아닙니다. 별로 그래서 크게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 속 집들과 거리들의 공간감이 좀 더 선명했으면, 여러가지 추격전 장면이나 막판 대소동 장면에서의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을 좀 더 색다르게 살릴 수도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그 밖에...

나온지 거의 20년 지난 영화인데다가, 걸작/대작 칭호를 많이 받은 영화도 아닙니다만, 미국 팬들이 상당히 많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만을 다루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웹사이트가 꽤 있습니다.

조 단테가 전성기 시절에 감독을 맡은 영화 입니다. 그렘린2 와 이너스페이스 사이에 찍은 영화이니 만큼, 좀 쉬어가는 느낌으로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 모습을 가볍게 그려 보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각본을 맡은 사람은 다나 올슨인데, "투명인간의 사랑 (Memoirs of an Invisible Man)", "조지 오브 더 정글 (George of the Jungle)" 같은 영화의 각본을 맡은 사람입니다.

"위기의 주부들" 같은 TV쇼나 "몬스터 하우스" 같은 최근 영화에 나름대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덧글

  • 愚公 2008/07/07 14:50 # 답글

    중반부까지는 약간 루즈하다가 결말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 잠본이 2008/07/07 17:24 # 답글

    저 아줌마가 누군가 했더니 캐리피셔 OTL
  • marlowe 2008/07/07 18:20 # 답글

    두 번째 사진의 수다장이 친구는 어떻게 보면 쟌 마이클 빈센트같고, 또 어찌보면 데이빗 보위 같군요.
  • Nurung 2008/07/07 22:23 # 답글

    정말 재밌게 봤었죠. 옆집 아줌마 무지 쎅시했었는데.
  • 黑白 2008/07/07 23:07 # 답글

    링크납치할께요.
  • joyce 2008/07/08 00:21 # 답글

    정말 재밌었지요. 조 단테 영화는 다 좋다는...

    톰 행크스와 수다쟁이 친구가 바보스럽게 비명을 지를 때 카메라도 앞뒤로 흔들렸던 게 기억나는군요.
  • 풍신 2008/07/08 06:01 # 답글

    저 작품 이후에도 상당히 많은 이웃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작품이 많았죠.(아무것도 아닌 이웃도 있고, 정말 테러리스트나 살인자인 이웃도 있고...) 제 기억에 가장 오래된(?) 이웃에 대한 불신을 말하며 사회풍자를 한 작품이 이 영화인듯...
  • 뚱띠이 2008/07/08 11:41 # 답글

    재미있게 본 영화지요...추억이 새록새록...
  • 게렉터 2008/07/08 12:31 # 답글

    愚公/ 결말은 "크라임웨이브 (Crimewave, 1985)" 같은 영화처럼 갑작스럽게 내달리는 맛이 있어서 나름대로 대소동 영화의 마무리다웠다고 생각합니다.

    잠본이/ 뭐 그래도, 이 영화에서 정말 마누라 시키는대로 말잘듣고 살고 싶게 만드는 모습으로 잘 나와 주십니다.

    marlowe/ 릭 더코먼(Ric Ducommun) 입니다. ... 데이빗 보위라 하시면, 데이빗 보위가 상당히 고통스러워할 듯 합니다.

    Nurung/ "쎅시"한 외모자체보다도, "금발 미녀" 코메디를 잘 연기해내고 있기 때문에 그 인상이 은근슬쩍 더 강조되는 맛이 있습니다.

    黑白/ 링크는 언제나 자유입니다.

    joyce/ 맞습니다. 카메라도 그야말로 코메디 쇼라는 느낌으로 흥겹게 흔들려 줍니다.

    풍신/ 좀 심각한 분위기로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꽤 있습니다. 하다못해,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같은 영화도 이웃 불신을 풍자한다면 풍자합니다.

    뚱띠이/ 우연히 TV에서 밤에 마주쳐서 보면 재미난데, 막상 기대를 하고 보면 또 좀 싱거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 b612 2008/07/08 13:58 # 답글

    안녕하세요. 애독자입니다. 글 내용과 상관없는 얘긴데, 게렉터님이라면 혹시 아실까 싶어서 여쭤봅니다. 80년대 TV에서 봤던 외화인데, 고등학생인 주인공(남), 친구(남), 여자친구 셋이서 친구 아버지의 엄청 좋은 자동차를 몰래 끌고 나갔다가 벌어지는 소동입니다. 자세한 건 기억 안나고 차 가지고 나간거 들키지 않기 위해 자동차의 마일수를 줄이려고 후진하던가... 여자친구 이름이 스노얀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자동차 대소동>이란 제목의 영화가 아닌가 했는데 전혀 다른 영화네요.
  • 게렉터 2008/07/08 17:20 # 답글

    b612/ 말씀하신 영화는 "페리스의 해방 Ferris Bueller's Day Off" 아닌가 싶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소개해 드린 적도 있는데, 이 글 http://gerecter.egloos.com/3274486 입니다.
  • 그리워라 2008/07/09 10:43 # 삭제 답글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네요.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지막엔 은근히 반전도 있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톰 행크스 옆에서 충동질 하는 친구 캐릭터가 너무 얄미워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 게렉터 2008/07/11 15:26 # 답글

    그리워라 충동질하는 친구가 수다스러운 말투하며, 톰 행크스와 코메디 장단도 참 잘맞았다고 생각합니다.
  • b612 2008/07/12 00:26 # 삭제 답글

    페리스는 커서 가제트 형사가 되었군요!!!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었네요.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 한자락을 게렉터님 덕분에 찾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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