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월양소 (花月良宵, Hong Kong Rhapsody, 화월춘야, 1968) 영화

1968년에 홍콩 쇼브라더스에서 제작한 "화월양소(花月良宵, Hong Kong Rhapsody)"라는 영화는 제목만 봐서는 무슨 영화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꽃, 달, 고즈넉한 깊은 밤" 정도의 뜻인데, 어느 시 구절이 되었건, 어느 노래 가사가 되었건 상투적으로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나온 이 영화 예고편은 본편 내용을 거의 짐작할 수 없는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출연진과 제목을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은 대강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데려온 뮤지컬 연출의 달인 이노우에 우메지(井上梅次)가 감독을 맡았고, 주연은 홍콩 쇼브라더스 로맨틱 코메디의 간판 남자 주인공인 진후(陳厚)와 전성기의 이청(李菁, 리칭)이 맡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영화도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 전성기에 나온 전형적인 홍콩 쇼브라더스 뮤지컬 영화 입니다.


(마지막 쇼 장면)

영화가 시작될 때 보면, 남자 주인공 진후는 홍콩의 클럽에서 나름대로 알아주는 마술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진후는 마술사 답게 각종 임기응변과 둘러대기에 능숙한 인물로서, 감언이설로 돈 꾸어가기, 빚쟁이들 틈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에 달인인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인 만큼, 언제나 여유만만한 태도로 낙천적인 미소를 지닌 사람으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상당히 문제가 많은 수준의 바람둥이 입니다. 이 영화에서 진후는 시작하자마자 여자들 사이에서 농간 부리다가 두들겨 맞습니다. 이런 진후 앞에 옛날 마술사 선배의 딸이 찾아 오면서, 진후의 삶은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마술사 선배의 딸은 "스잔나"에서 한국 관객들까지 모조리 "리칭, 리칭, 오오오오, 리칭-" 거리게 만들어버린 전성기의 이청입니다. 이쯤 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줄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쇼 판에서 닳아빠질대로 닳아빠진 바람둥이 남자 주인공 진후와 이제 처음 이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진하고 착한 여자 주인공 이청이 어떻게 저떻게 얽히면서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이 영화도 따지고 보자면, 대체로 전체적인 구도나 방향은 뭐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반부는 상당히 신선하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진후와 이청은 자연스럽게 엮이며, 두 인물들의 성격이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제시되면서도, 내용은 항상 "이렇게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긴박감이 있습니다. 무대에 당장 출연해야 하는 무대 뒤편의 긴장감을, 빚쟁이에게 쫓기고, 양다리 걸치다가 들통나서 난감해하는 진후의 갈등에 결합시켜 재미나게 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요리조리 임기응변으로 빠져나가는 진후의 여유 부리는 모습으로 인물의 개성도 잘 그려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이청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이청의 성격도 그려내면서, 두 사람의 대조를 통해서 더 상황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극중극인 무대 마술쇼 자체도 깔끔한 60년대 쇼로 잘 잡혀 있는 것도 볼거리가 됩니다.

그 다음에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한번 꺾입니다. 두 사람이 고이 마술쇼 하면서 먹고사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갑자기 정체 불명의 어느 백만장자 저택에 우연히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지금 그냥 살아도 될 듯한 집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주인도 없고, 경비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20년간의 사연이 얽혀 있는 집이라는 복선만 꺼내 늘어 놓습니다. 무슨 유령의 집이나 저주 받은 비밀 이야기로 넘어가도 될 판입니다. 처음에는 쇼 판의 가난한 무명 젊은이들의 낙천적인 역경 극복의 이야기처럼 시작했습니다만, 상당히 의외의 진행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이야기 변화가 빠르고 시원하게 넘어가면서도,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야기 배경과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에서도 진후와 이청의 성격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꼼꼼하게 연결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통에, 지루하지 않고 계속 호기심을 생기게 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영화에서 진후는 이청이 처음에 어린 남자아이라고 착각했는데, 이청이 사실은 꽃다운 스무살 소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이청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전혀 다른 분위기인 마술쇼 이야기와 "수수께끼의 집" 이야기를 관통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색다른 국면으로 이어집니다. 두 사람은 요란뻑적지근한 파티에 참여하게 되고, 여기에 맞춰서 "수수께끼의 집"에 관한 비밀이 풀립니다. 그러고 나면 이야기는 어느 괴짜 백만장자가 가난하지만 착하고 재능있는 여자아이를 양녀로 삼는 전통적인 이야기로 변신하게 됩니다. 백만장자와 양녀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이나, 유산을 노리고 양녀의 어두운 과거에 엉겨 붙는 추잡한 공갈협박범 같은 소재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이런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흐름이라서 사람을 빨아들이는 맛이 있으면서도, 주인공의 성격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하게 이어져서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이무렵까지 보다보면, 이 영화의 진정한 목표가 분명하게 들어옵니다. 이 영화는 여자주인공 이청의 매력을 과시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되는 동안, 영화에서는 달라지는 배경, 다양한 상황, 거기다가 공상 장면, 꿈장면 등등을 갖다 붙여서, 이청이 갖가지 모습으로 웃고, 울고, 춤추고 노래하게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 분위기의 가련한 고아도 되고,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옷을 걸친 갑부집 따님도 되고, 선녀도 되고, 파티를 즐기는 소녀도 되고, 황제의 후궁도 되고, 꿈많은 연예인 지망생도 되고, 그야말로 쇼를 하는 것입니다.

전체 구성 자체도 따지고보면 이청에 딱 맞춰져 있다고 해도 크게 들린 말이 아닙니다. 이청은 그 매력으로 홍콩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영화 배우"라고 할 때 처음 떠올리게 되는 그런 배우의 모습과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카메오 수준으로 하리리(何莉莉, 리리 호)가 출연하기도 합니다만, 이청은 하리리 같이 화려하고 압도적인 미모를 과시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청이 진후의 아내이기도 했던 낙체(樂蒂)처럼 얼음장 같이 차갑거나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듯해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청은 그야말로 복스러워 보이는 볼에 매력의 절반이 있는 사람이고, 그야말로 천진난만해 보일 수 있는 어린애 같은 느낌이 또 매력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잔나"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영화에서 이청이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처음 사회에 나온 순진한 아가씨 역할을 하는 모습은 완벽합니다. 거기에 바람둥이 진후의 모습과 대조되고, 진후가 항상 봐오던 연예계의 아가씨들과 비교되는 모습은 더욱 이청의 매력을 더합니다. 그렇게해서, 이 영화는 여러가지 빌미로, 이청에게 갖가지 역할을 다 시켜 보려고 만든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청은 이 영화 속에서 카니발 행진 과 같은 요란한 춤부터, 인력거를 타고 비단 치파오를 뽐내는 전통적인 "홍콩 아가씨" 쇼까지 다 소화해 내고 있고, 영화의 분량 자체도 해볼만한 왠갖 것을 모조리 다해보자니 살짝 긴 편이라서, 편집을 무리하게 해서 쳐낸 흔적이 눈에 뜨일정도 입니다.

결말에 대해서까지 어느 정도 꺼내 놓고 보자면, 이 영화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뮤지컬 영화들이 종종 사용하는 방식대로, "뮤지컬을 만드는 것에 대한 뮤지컬"인 것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나, "만화영춘 (萬花迎春, The Dancing Millionairess, 1964)" 처럼, 이 영화 "화월양소"도 결국에는 극중극 "화월양소"라는 제목의 뮤지컬 쇼를 만드는 이야기로 빠지게 됩니다. 앞서 늘어 놓은 여러가지 갈등 구도가 있는 만큼, "화월양소" 뮤지컬 쇼를 개봉해서 부드럽게 공연을 마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마지막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극중극을 만드는 이야기라는 특징도 제대로 써먹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심 줄거리와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도 극중극의 한장면이라는 핑계로 마음껏 끼워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극중극 장면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이청의 다양한 춤들을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더하여, 다른 홍콩 쇼브라더스사의 간판 배우들과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의 뮤지컬 연출 솜씨들도 이래저래 늘어 놓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즈음에 가면 "파리의 아메리카인"에 나오는 막판 긴 춤 장면과 맞먹을 정도로, 영화 자체와 직접 연결 없이 그냥 순수하게 그 장면 자체만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여러가지 쇼 장면들이 나옵니다. 거의 반시간 정도 동안 왠갖 노래와 춤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바꿔가면서 계속 나옵니다. 리허설 하는 장면이라면서 나오고, 이런 장면을 구상해봤는데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다른 춤이 또 나오고, 실제 공연 장면에서 다른 것이 나오고. 계속 나옵니다.

60년대 록큰롤에 맞춰서 유행하는 춤을 신나게 추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오페라 "카르멘" 분위기가 물씬다는 이야기를 스탠리 도넌 분위기로 선명한 기승전결 구도를 넣어서 펼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극중극이나 상상 장면을 핑계로 이청의 각선미나 농염한 표정연기를 자랑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수법으로 줄거리상으로 이청을 그저 어린 소녀로만 끌고가고 있으면서도, 춤과 노래 장면에서는 다른 면모도 얼마든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이런저런 춤장면들은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단 출연진들의 춤솜씨 기본기 자체가 어느 정도 이상입니다. 거기다가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가 그동안 뮤지컬 영화들을 찍으며 모아놓은 밑천도 잘 살아 나고 있습니다. 60년대 분위기가 그야말로 물씬 풍기는 상쾌한 다양한 유채색 색채들과 재미나게 만들어 놓은 세트들은 언제나처럼 볼만합니다. 공상 장면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연출들은 특수효과가 한계를 보이는 부분이 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분위기를 흐릴정도도 아니고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재미납니다.

화려함, 화려함, 화려함만을 부르짖다가 좀 과해져서 "빨간 새 옷" 처럼 살짝 조잡해 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가지 색깔로 점을 치는 늙은이를 등장시켜 옴니버스 쇼로 만들어보이는 부분처럼,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 고유의 멋을 보이는 면도 충실합니다. 무대위에 올리는 것보다 돈을 많이 퍼넣어서, 무대 뮤지컬보다 많은 출연진들이 무대 뮤지컬 보다 거창한 무대 미술을 써먹는 뮤지컬 영화의 경쟁력도 꽤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재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연기력이 합치되는 부분은 뮤지컬 영화의 흥겨운 맛이 물씬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처음 진후와 이청이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마술쇼 부분은 대표적입니다. 진후의 능청스러운 마술사 연기에 이청의 고전적인 노래가 기막히게 비교 대조되고, 마술쇼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들도 딱 떨어지는 화면 편집을 통해 깔끔하게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진후와 이청이 처음 만났을 때, 즉흥적으로 펼쳐보이는 마술쇼)

아쉬운 부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전혀 다음 이야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이야기가 터져 나오던 전반부에 비하면, 후반부는 좀 심심합니다. 이야기가 백만장자 늙은이와 가난한 양녀로 굳어진 후부터는 딱 그대로 흘러갑니다. 상당수 고딕풍 연애 소설들이나, 영구 나오는 연속극 "여로"에까지 심심하면 나오는 것인만큼, 그냥 악당의 흉계로 주인공 "들장미 소녀 캔디"는 오해를 당해서 시련을 당하고, 나중에 진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후회하면서 미안해 하고 뭐 그런 내용입니다.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냥 한심하고 혐오스럽기만한 악당을 위한 악당도 한 명 등장하고, 악당은 더 한심해 보이기 위해서, 바보짓도 하면서 코메디도 합니다. 자빠지고 넘어지고 말더듬고 그럽니다.

그러다보니, 전반부에 비해서, 후반부는 오해가 풀리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게 된다거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 지 기다리게 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냥 줄거리가 필요하니까, 억지로 오해를 만들었다가, 상영시간이 좀 흐른 뒤에 갑자기 우연히 확 오해 풀리게 한다는 작위적인 느낌이 납니다. 별 이야기를 잘 꾸밀 수가 없으니까, "우연"의 극이라 할 수 있는 천재지변을 개입시키기도 합니다. 오해 생기고 갈등 풀리는 느낌을 강조하게 하기 위해서, 별 복선도 없었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서 주인공이 나자빠지기도 했다가, 또 갑자기 폭풍 속에서 멀쩡하게 잘 돌아다니기도 하다가 하면서 감정과 이야기를 짜맞추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막판즈음 되면, 써먹을 노래가 좀 떨어져서, 했던 노래 울궈먹기가 지나치게 반복되는데다가, 행복한 감정을 노래한답시고, "나는야 세계 최강의 바람둥이 아무도 나를 당하지 못하네" 하는 가사를 가진 노래를 사랑하는 남녀가 부르는 등 좀 부실한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결말 부분에 이르면, 그런 노래를 부르는 행동 자체가, 빈털털이 주제에 그나마 복잡한 세상 살이 와중에 힘을 내보려는 읊조려 보려는 농담이라는 반어적인 성격이 생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 소재며 갈등이 워낙 단순해서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잘 표현해 낼 수 있을만큼 정교하지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것들이 결정적인 흠은 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후반부에는 이야기가 너무 가짜 같이 전락해버린 대신에, 극중극을 핑계로 전체 이야기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되어주는 여러가지 쇼 장면들이 우수수 나옵니다. 이게 그냥 공연 실황 영상 보는 것처럼, 충분히 볼거리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이청은 온갖 작위적인 상황에서도, 60, 70년대 과장된 성우 연기와 어울리던 배우들이 꿈꾸던 그 모습 그대로 훌륭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영화 속에 녹아든 그 멋진 재능을 마음껏 살립니다. 춤추는 장면들은 전통 황매조 영화 출연 경력이 속 빈 강정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훌륭하고, 참 억지 눈물이다 싶은 줄거리 속에서도, 이청이 눈물 흘리면 진짜 눈물처럼 보일만큼, 스튜디오 영화사의 간판 영화배우 실력이 이런 것이라며 보란듯이 과시합니다.

진후 역시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반 사기꾼이라 할 정도로 여유만 부리는 유쾌한 모습을 보여 주고 그런 성격을 조금도 잃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빚쟁이 무명 마술사일 뿐이라는 현실적인 번민을 아주 살며시 드리우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진후의 연기는 북경어 후시 녹음으로 더빙되어 있는 당시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에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수수께끼의 집"에 얽힌 수수께끼가 대강 풀린 뒤에, 궁지에 몰린 진후가 뻔뻔한 얼굴로 임기응변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모습은 대표적입니다. 연극 장면처럼 크고 과장된 몸짓과 시선처리를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후시 녹음으로 대사를 입히는 영화의 상황에 맞게 연기합니다. 영화 화면 속에서 잡히는 다른 인물들의 구도와 영화 화면 속에서 세심하게 드러나는 표정연기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극중극)

전체적으로 40, 50년대 헐리우드 MGM 뮤지컬 코메디 들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써먹을만한 줄거리 요소, 장면 구성 방식들을 잘 모아 놓은 형태의 영화입니다. 잘 짜여 있는 이야기가 멋을 화끈하게 뿜어내는 명작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영화 화면의 모습 속에 인물과 세트의 좌우 대칭과 단절감, 연결감이 변화하는 것을 잘 응용하는 미술적인 화면 구성들은 군데군데 꽤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많습니다. 거기에, 다양한 구경거리들과, 춤 장면 속에 녹아 있는 홍콩 예찬에, 고생하는 도시 젊은이들에 대한 낙천적인 줄거리가 담겨 있는 영화는 공허한 수준은 넘어 섭니다.

온갖 일이 있었던 고생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가고, 그날밤 호젓한 공원에 둘이서만 만나서, 앞으로의 사랑을 노래하며 고요한 달빛 아래 웃는 장면은 언제 봐도 운치가 있습니다.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 전성기의 뮤지컬 대표작,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의 홍콩 초기 시절 대표작으로 꼽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아쉬운 부분은 영화 음악에 남아 있는 약점들이었습니다. 진짜 춤장면이나 노래 장면 외에는 고전 미국 영화들의 영화 음악을 모방해온 부분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들은 연주하며, 녹음하며, 매우 듣기 좋습니다.

하지만, 새로 작곡해서 영화속에 집어 넣은 노래들은 그보다는 대체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들었니다. 대체로 노래들이 영화 속 다른 음악들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부족한 평이한 창가(唱歌)조로 되어 있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부르게 되는 노래인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그것이 바로 낙원이고, 그것이 바로 샹그릴라~" 어쩌고 하는 노래는 가사며, 곡조며 지나치게 밋밋했습니다. 새마을 운동 노래로 어울릴법 하기는 해도, 화려한 뮤지컬 쇼 속의 낙천적인 낭만을 노래한다고 하기에는 좀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가 싶었습니다.


그 밖에...

이 영화 속에서 이청의 노래 장면은 진평(秦萍)이 더빙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 속 극중극인 "화월양소"에서는 진평이 직접 출연해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평은 영화 "화월양소"에서는 이청의 노래 더빙을 했고, 영화 "화월양소"안에 있는 영화 속 뮤지컬쇼 "화월양소"에서는 직접 출연해 노래를 한 것입니다. 그런즉, 이 영화의 이야기를 액자 구성이라고 본다면, 진평은 액자 안과 액자 밖에서 일종의 1인 2역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화월춘야(花月春夜)" 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고, "스잔나" 폭풍 직후에 이청의 매력이 제대로 먹혀 들어서 나름대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정자, 이씨스터즈, 블루벨즈의 노래와 함께 녹음된 OST 앨범이 판매되기도 했는데, 역시 꽤 팔려서 지금도 이 음반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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