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형사 마리 영화

1975년작 한국 영화 "여자 형사 마리"는 총쏘고 주먹질하고 살벌하게 말하는데 이력이난 형사 여자 주인공이 홍콩의 마약 밀매 조직과 싸우는 이야기 입니다. 이 영화는 마약 밀매범들의 자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운데,주인공이 두들겨 패거나, 악당들에 붙잡혀 맞거나 하는 장면들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대체로 추악한 놈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거친 여자 주인공이 여러가지 상황을 돌파하면서 다 박살내버린다는 내용이며,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마땅히 사진이 잘 없습니다만... 여자 형사 마리)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영 되기도 했고, 필름도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케이블TV등을 통해서 최근에도 심야시간에 방영되기도 한 영화입니다. 그런즉,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꽤나 알려져 있는 영화 입니다. 하지만, 결코, 이 영화에 대해서 옳은 이야기를 풀어 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영화 제목인 "여자 형사 마리"만 봐도 그렇습니다. 왜 주인공 이름이 "마리"입니까? "마리아"도 아니고, "매리"도 아니고, 하필이면 "마리"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이 영화의 제작사인 신필름이 당시 홍콩 영화사들과 합작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거나, 혹은 여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지금은 패션 디자이너로 더 유명한 왕년의 가수 루비나가 연기하고 있다거나 하는 말들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은수의 다른 영화들을 살펴본다거나 하는 것은 일단 나중에 심심할 때 생각해 볼만한 내용정도 입니다.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의 성격이나 자극적인 장면들을 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나 그 아류작들인 소위 "호스테스 영화"들과 연결시켜서 말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역시 정석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쓸데 없이 여자 등장인물들이 고통 받고 고생하는 장면이나, 괜히 여자 등장 인물들의 옷이 찢어지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60년대말과 70년대에는 세상에 동시상영 영화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들이 무척 많이 나온 바 있습니다. 여기에 TV가 널리 퍼지면서, "영화관에서는 TV에서는 못보여주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다소 과격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따라서 수많은 트래쉬 무비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완전성인용" 영화들도 대거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중에는 아리따운 여자 배우들이 흡혈귀, 괴물이나 살인마 희생양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한무더기 나왔는가하면, 살벌한 곳을 무대로 슬쩍슬쩍 변태적인 소재를 등장시키는 "여자 감방" (women in prison) 영화들도 자주 나왔습니다.

그런 동시상영 영화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 중에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영화들이 바로 여자 주인공이 싸움질하는 영화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후반에 예스마담 시리즈와 땡큐마담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대충 "마담물" 정도로 흔히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런 영화들을 상당히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어여쁜 여자 주인공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내용은 강렬한 볼거리가 되기도 하면서, 거기에 섞어서 보통 싸움 영화보다 더 처절하고 파괴적인 감상을 넣기에 유리한 면도 있고, 여자 배우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선전하기도 좋았던 것입니다. 혹자는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권총으로 북군 탈영병 면상을 날려버리는 장면을 여자 주인공이 싸움질 하는 영화의 원조라고 떠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동시상영 영화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로 만들어진 "마담물"이라고 하면 핵심을 잘 짚었는가 하면, 저는 그것도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를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하는 내용은, 바로, 이 영화가 1974년 일본에서 제작한 "여자 깡패 형사 더티 마리(すけばん刑事 ダーティ・マリー, 스케반 형사 더티 매리)"의 모방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의외로 "마리"인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가, 일본 영화 "여자 깡패 형사 더티 마리"를 따라해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여자 깡패 형사 더티 마리"는 그에 앞서 나온 일본 영화 "야쿠자 형사" 시리즈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 입니다. "야쿠자 형사" 시리즈는, 마치 "무간도", "페이스 오프"나 우리 영화 "목포는 항구다" 처럼, 형사가 야쿠자 조직에 들어가서 야쿠자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물 입니다. 이 "야쿠자 형사"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동시상영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야쿠자 형사" 의 주인공을 여자가 맡게 해서 "마담물"로 꾸미고, 이 영화에 여자 주인공의 몸매 자랑하는 장면을 대거 집어 넣어 "완전성인용" 으로 완성시키자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 "야쿠자 형사" 시리즈의 마담물 판인, "여자 깡패 형사(すけばん刑事, 스케반 형사)" 시리즈들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다 70년대 거친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 중에 최고 걸작인 미국의 "더티 해리(Dirty Harry)" 시리즈를 일본에서는 "더티 하리" 시리즈라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 운율을 맞춰서 영화 제목을 "더티 마리"라고 붙인 영화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를 한국의 신필름에서 모방해서 만든 결과가 바로 "여자 형사 마리"인 것입니다. "여자 깡패 형사 더티 마리"의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 일본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과 몇몇 싸움 장면, 병원 싸움 장면과 건물 옥상 싸움 장면 등등, 상당부분을 "여자 형사 마리"에서 직접적으로 모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60년대말부터, 일본 영화 중에는 이런 중저예산 완전성인용 영화로서 다소 과감한 시도나 해괴한 장면이 가득한 영화들, 혹은 터무니 없이 잔인하거나 미풍양속을 아주 제대로 파묻어 버리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한국 영화사들은 그런 영화를 짭짤하게 모방한 영화들을 제작해댄 것입니다. 일본의 "도쿠가와 여인 형벌사(徳川女刑罰史)"의 영향을 받아 만든 "이조 여인 잔혹사"는 영화의 소재와 구성만 모방해서 새로운 성격의 영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경우입니다만, 반대로 그냥 자비심 없게 마구 닥치는대로 베껴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여자 감방 영화인 "여죄수 701호"(女囚701號, 사소리 さそり 시리즈, Female Prisoner #701) 시리즈 가 나와서 유행하자, "여죄수 407호(女囚407號, 여수 407호)"를 제작해 버렸는데, 이 영화 "여죄수 407호"는 스스로 영화에서 감독 소개하는 자막에 "거장 신상옥 감독"이라고 써넣는 신필름 사장 신상옥이 직접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 일본 영화 모방작 한국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감옥에서 고문 받는 장면이 이유없이 계속 줄줄이 나오면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까봐,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독립운동과 연결된 한국인 여자를 괴롭힌다"라는 것을 이유로 삼아서 줄거리를 꾸며 놓았습니다. 아마 일본의 "여죄수 701호" 제작진이 보았다면, 일종의 적반하장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여자 형사 마리"는 제목부터 대놓고 모방하는 영화이면서도, 의외로 상당히 영화가 살펴가면서 구경해 볼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또 좀 괴이한 사연이 있습니다.

영화를 별생각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베껴 만들다 보면, 모방하는 원판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만 퍼날라 오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영화의 전체적인 수준이 너덜너덜 걸레가 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 "이블 데드"를 베껴서 저주 받은 담요가 등장하는 "이 데드"를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영화 제작진은 아마 잔인한 장면만 죽자고 집어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감독님, 여기 이 장면에서는 뼈가 나와야 되는데요. 피 날리는 특수효과에 돈 다 날려서 뼈는 소품이 당장 없는데요."
"그러면, 어디 할인점에 가서 사골이라도 사와서 한번 찍어 보세."
"그런데, 이 뼈가 여자 주인공 뼈인데, 소 사골뼈로 하면 너무 커보이지 않을까요?"
"그러면 사골을 좀 깎아 보든가."
"뼈라서 커터 칼로는 잘 안깎이는데요."
"그럼, 빼빠로."
"빼빠로... 가 뭡니까?"
"빼빠를 이용해서 깎아 보라고."
"빼빠...?"
"그 왜, 나무 같은 거 다듬는 빼빠 있잖아. 빼빠."
"아아... 샌드페이퍼요?"
"그래, 샌드빼빠."
"그런데, 샌드페이퍼로 소 사골을 언제 여자 주인공 다리 굵기로 깎을 수 있을까요."

이따위 짓으로 시간 날리다가 결국 편집도 녹음도 음악도 다 망쳐버리고, 아마 터무니 없는 트래쉬 무비를 만들고 말 것입니다. 다른 예로, "원초적 본능"을 베껴서 영화를 만드는데, 주인공을 재수하는 여학생으로 해서 "원초적 수능"을 만든다고 해 봅시다. 그렇게 된다면, 제작진에서는 어떻게든 노출장면을 찍는데 영혼을 불태울 것입니다.

"어머, 감독님, 이런 장면은 계약에 없었잖아요."
"이해해주세요. 체리씨. 이 장면 없으면 영화가 안됩니다."
"그래도, 전 도저히 이런 장면은 못 찍겠는데요."
"체리씨. 저 좀 살려주십쇼. 이렇게 빕니다. 이 장면 못찍으면 영화 엎어집니다. 그러면, 체리씨 영화 데뷔도 그냥 같이 엎어지는 거 아닙니까. 5년전에 체리씨 히트곡 '오빠는 다음 사분기까지 내꺼야' 이후에 히트곡이 없는데. 이 영화는 잘 돼야지요. 체리씨도 살고, 저도 사는 길입니다. 제발 도와 주십시오."

이따위 짓 하면서 시간 낭비, 돈 낭비한 결과로 나온 고달픈 영화들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데, 멀리 갈것도 없이, 조직폭력배라는 소재와 영화배우들의 개인기 코메디만 대강 엮어내면 수백만명 관객이 몰릴지도 모를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망한 "조폭코메디"들도 얼추 비슷한 궤에 들어가지 싶습니다.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도 비슷한 출발선에 있었습니다. 일본의 완전성인용 영화를 모방해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일본 영화의 자극적인 내용들을 영화에 그대로 집어 넣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을 묶어 놓고 채찍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을 빌면 "몹쓸곳"이라는 업체에서는 손님들에게 유리창 건너편에서 여자들이 목욕하고 있는 목욕탕을 감상하게 해주면서 장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만 쓸데 없이 마구 퍼부어 대면서 관객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거나, 혹은 어떻게든 여자 배우들 몸매 자랑하는 장면을 닥치는대로 집어 넣으면서 영화를 채우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다름아닌, 70년대 당시 한국의 심의와 검열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장면, 노출 장면을 길게 집어 넣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세계 각국의 동시상영 영화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들을 심심하면 잔인한 장면 괜히 많이 만들다가 영화가 삼천포로 빠져 버리거나, 아니면 여자 주인공 옷찢어지는 장면을 여러가지로 연출하는데 시간을 소모해버리다가 역시나 삼천포로 질주해가는 영화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2000년대 한국 영화만 해도, 강렬한 싸움 장면을 보여준답시고 괜히 쓰잘데 없이 잔인한 장면을 길게 집어 넣어서 영화가 흘러가는 박자와 감상을 완전히 끊어 먹어버리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좀 경우는 다르지만, 하다못해 "청연" 같은 영화만 해도 길게 고문 장면만 좀 줄였어도 영화 전체 분위기를 상당히 바꿔 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는 자극적인 장면에 치중하는 동시상영 영화관용 중저예산 잡탕 영화와 같은 길을 걷는 영화이면서도, 심의와 검열때문에 그런 장면에 빠져버리는 것이 강제로 금지당해버렸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는 일본 영화 하나를 줄기차게 베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영화 상영 시간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다 복잡한 이야기, 보다 다양한 소재, 보다 많은 장면들을 더 가져와서 자꾸만 다채롭게 모아놓게 되었습니다. 일본 영화 "여자 깡패 형사 더티 마리"는 여자 배우들 몸매 자랑에 아주 깊숙히 빠져 있는 영화인데 비해서, 그 모방작인 "여자 형사 마리"는 그런 장면들을 오래 보여주면 경찰에 붙들려가거나 중앙정보부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다 못베꼈던 것입니다. 대신에 다른 볼거리, 다른 이야기거리를 그만큼 만들어 넣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모아서 넣어 놓은 이야기 거리들도 아주 참신하고 개성이 넘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자 형사 마리"에서 거친 형사 마리의 가장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싸움 장면은 술집에서 싸우다가 무기가 없으니까, 안주 먹던 포크로 악당의 손등을 공격해버리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싸우다가 여자 주인공이 포크로 공격하는 장면은 일본의 마담물인, "여필살권(女必殺拳, Sister Street Fighter)" 시리즈에서 역시 멋드러지게 나온 적 있는 장면입니다. 여자 형사 마리의 멋드러진 옷차림 중에 가장 신기하고 재미나 보이는 것은 온통 빨강색으로 번쩍거리는 옷입니다. 하지만, 이런 옷차림 역시 일본의 마담물인 "불량 소녀 두목" 시리즈에서 한번 써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의 그럴싸해 보이는 장면들은 대부분 일본의 다른 영화에서 참고해 온 장면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재미난 것들을 이것저것 잘 추려서 모아서 붙여 놓고 연결해 놓은 모양은 꽤 재미납니다. 조금 좋은 쪽으로 심하게 과장하자면, 마치 "킬 빌"이나, "짝패" 같은 영화처럼, 살짝 잊혀질만한 영화들의 신기한 장면들을 화려하게 이어붙여서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요란한 쇼로 꾸민 듯한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앞부분에서 주인공은 퇴폐적인 쇼를 하는 클럽을 찾아갑니다. 만약 어지간한 완전성인용 영화였다면, 이 퇴폐적인 쇼 장면 자체를 영화에서 한참 보여줬을 것입니다. 그 길로 영화가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안합니다. 못합니다. 그래서, 잠깐 쇼를 언뜻 비춰주고, 좀 맛이 간듯한 손님들만 좋아하고 있다는 점과 어떤 사람들은 쇼를 보면서 오히려 매우 불쾌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지체없이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영화가 쇼 장면 자체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추잡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우리의 주인공 마리가 뛰어들었다는 분위기를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역할만하고 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이 마약 조직에 끌려들어간 애인을 쫓기 위해 마약 조직에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고, 마약 조직의 인간들과 엮이고 싸우고 하는 와중에, 범인 잡는데 반쯤 미친 듯한 좀 악랄한 국제경찰 형사가 개입하고 하는 이야기 줄거리 조차도, "야쿠자 형사" 시리즈나 "여자 깡패 형사"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꽤 재미나게 모아놓은 느낌이 납니다.

게다가 분명히 다른 영화들을 모방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 놓은 장면들도 확실히 있습니다. 영화 배경으로 따지자면, 막판에 병원 영안실에서 싸우는 장면의 기괴한 분위기가 아주 그럴듯합니다. 병원에서 나온 시체들을 세척, 혹은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시체들이 액체 위에 둥둥 떠다니게 해 놓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여자 주인공이 악당을 두들겨 패버리는 장면은 확실히 전위적인 면이 있습니다. 목숨이나 살인 같은 소재를 환상적인 느낌으로 배열하면서, 피튀기는 싸움 자체가 공포물 처럼 음산한 분위기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싸움 장면 중에는 마지막 결말 장면이 역시 인상적입니다. 이 부분은 결말을 언급하게 됩니다만, 역시 원래 어느 영화에 나와서 영감을 얻은 장면일지 궁금할 정도로 인상을 주는 연출입니다.

악당 총두목이 푸른 하늘 아래 옥상에서 주인공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하는데, 이 장면에서 갑자기 순간적으로 과거 회상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평화롭던 시절 푸른 하늘 아래 모터 보트 위에서 주인공의 애인이 주인공의 목을 끌어안고 서로 입을 맞추던 기억이 화면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애인이 목을 끌어안은 모습과, 살인자가 목을 조르는 모습이 번갈아 가면서 재빠르게 나옵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처지를 생각할 때 생기는 격정적인 감상과 거기에서 터져나오는 짜증나서 세상 다 엎어버리고 싶은 화난 기분 같은 것이 전해질만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이 괴성을 지르면서 목조르고 있던 악당을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모방 관계에 관한 이야기와 그럴듯해 보이는 면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좀 심각할 정도로 재미를 무너뜨리는 부분이 그득그득하기도 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제목부터가, "여자 형사 마리"고 분명히 일종의 마담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일단 싸움 장면을 못만들었습니다. 싸움은 가짜로 장난치는 것 같아 보이는 장면들이 정말 많고, 특히 굉장히 싸움 잘하는 살벌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 주인공이 싸움 동작이 아주 엉성합니다. 그래서, 오토바이들의 위협을 받으며 위험한 싸움을 펼치는 앞부분에서는 주인공이 오토바이 사이에서 뭔 깡총거리면서 체조를 하는듯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합니다. 총을 쏘는 장면이 무척 많이 나오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총소리 녹음도 이상하고, 총의 파괴력도, 총을 맞은 사람의 상처는 옷에 빨간 물감 칠하면 세탁비 아까워서인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아주 큰 문제입니다.

옥상 위에서 벌어지는 막판 결투는 그나마 여자 주인공이 좀 밀리는 형국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의 동작이 엉성한 것이 잘 가려져서 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막판 결투에는 갑자기 한동안 70년대 한국영화의 비웃음 거리였던 "나 잡아 봐라" 추격전이 나와버려서 분위기를 확 흐려 버립니다. 이렇게 싸움 장면이 추레한 것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맡은 루비나가 겉모습은 아주 멋지게 잘 어울리기에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영화속 여자 형사의 살짝 기괴한 가죽 옷들이 매우 잘 어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키가 훤칠하여 덩치에도 위압감이 있는데다가, 이목구비도 무척 선이 날카롭기에 사람 패고 다니는 무서운 여자 형사 역할로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이 영화의 치명적인 문제는 후시 녹음 대사들입니다. 이 영화는 내용이 마약으로 찌든 세계를 뒤집고 다니는 여자 형사 이야기라서, 대사 내용들이 살벌하고 냉랭하게 실감나야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냥 영화 변사의 해설투나, 따분하게 대사 발음만을 전달하는 관습적인 연기에 치우쳐져 있는 성우의 후시 녹음 연기는 분위기를 아주 흐립니다. 그나마 분위기만 흐리는 정도라면 괜찮을 텐데, 몇몇 부분에서는 영화의 격렬한 동작이나 극단적인 감정을 후시 녹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긴박한 영화 화면과 나중에 녹음된 대사가 안맞는데다가, 거기에 후시 녹음을 고려한 배우들이 판토마임으로 과장된 연기를 해버리기 까지 해서, 심각한 장면이 아주 우스꽝스러워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흉악한 인간들과 불안한 상황으로 점철된 영화치고, 싸움 장면을 제외하면 화면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범하고 차분하기만 하다는 점도 무척 답답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무시무시한 악당 두목으로 바로 그 사미자가 나옵니다. 사미자는 악당에 꽤 잘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이 무서운 사미자의 모습이 그냥 단순하고 건조하게 TV 아침 연속극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볍게 아침 밥상 의논하는 구도로 잡혀 있습니다.

음악 역시 비슷한 형태로 구멍이 큽니다. 이 영화에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야쿠자 영화의 화려한 재즈와 록큰롤음악을 그대로 베껴온 부분이 많습니다. 이부분들은 음악이 아주 신나고 듣기 좋고 영화 화면에도 절묘하게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장면들은 매우 대조적으로 질이 떨어집니다. 주인공이 놀랐다 싶을 때는, "도시(CB)~"하고 화음한번 울리고 말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신필름 영화사 창고에 처박아뒀다가 급하게 꺼내온 것으로 짐작내는 싱겁게 녹음된 가곡조의 썰렁한 음악을 대강 아무렇게나 때려박고 맙니다.

당시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도 어김없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계획을 제대로 못하고 찍고, 시나리오 대로 제대로 편집을 못하고 찍어서, 영화 이야기에 중간 부분이 그냥 뻥 뚫려서 날아가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버리는 이상한 부분들이 몇몇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여자 주인공은 막판에 죽을 위기에 놓이는 부분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두들겨 맞았고, 유산을 하게 되었고 - 이 역시 일본 영화에서 베껴온 상황입니다. - 의식이 혼미한데, 사방에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불타고 있는 집에 갇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겠습니까? 안가르쳐 줍니다. 갑자기 다음 장면으로 건너가더니 여자 주인공이 아무 다른 이야기 없이 멀쩡하게 악당들의 비밀 기지에 위장하고 잠입해 있습니다.

이렇게 편집이 산만한 가운데 억지로 강제로 이야기를 이어 붙이다가 엉성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반전"이 나오는 장면에서, 악당이 말없이 바로 죽이면 되는데 괜히 장황하게 이 소리 저 소리 하면서 시간 끌다가 주인공에게 반격 당해 죽는 장면은 007 제임스 본드 영화 악당들도 줄기차게 펼친 것인 만큼 가히 친숙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정도가 극히 심해서, 악당이 주인공 죽이기 전에, 별 복선도 없이 문득 이상한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러고 나서 "우하하하! 바보 같은 놈, 넌 속았다. 왜냐면..." 하면서, 자신의 과거, 지금까지 줄거리에 대한 개략적인 정리, 현재 상황, 반전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 자신의 심경, 앞으로의 계획 등등에 대해서 모두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왜 악랄무쌍한 사기꾼 악당이 갑자기 EBS 방송 강의 하는 강사처럼 기나긴 요약 정리를 해주는 것인지. 이후에 이어지는 싸움 장면에서 화장실 타일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 서로 멱살잡고 뒹구는 격렬한 대목이 없었다면, 정말 누추하기만한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형사 마리"는 일본 야쿠자 영화의 영향을 받아 나온 많은 한국 깡패 영화들의 와중에 확실히 독특한 색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당시의 글램록 가수들이나 글램록 가수들을 베낀 일본가수들을 모방한 독특한 눈화장으로 은근슬쩍 좀 변태적인 느낌을 선보이기도 했던, 가수 루비나가 아주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는 점은 정말 분명합니다. 스스로 형사면서 열받아서 마약밀매법들을 광기서린 눈빛으로 고문해버리는 표정은 후시 녹음의 밋밋한 대사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진짜 같습니다. 이 주인공 배우의 위력 때문에,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여자 배우와는 별 내용도 없으면서도 마치 장금이와 한상궁을 연상시키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꽤 그럴싸해보입니다. 뭐 대사 자체도 한상궁의 마지막 대사를 한번 읊어댑니다만.

다른 배우들도 무척 배역에 맞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윤일봉은 날렵한 실력있는 국제경찰 요원을 연기하는데, 그런 모습은 그 젊은 윤일봉의 모습 그대로 잘 들어맞으면서, 이 인간의 어두운 악마 같은 면을 연기할 때는 또 그대로 자연스럽게 잘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사미자가 마약 조직 두목으로 나오는 것이 요즘에는 농담거리로 언급되는 일이 많습니다만, 그 모습도 결코 연기가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그외에 "공포의 이중인간"에서 되살아난 시체 역할로 본격적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던 김옥진이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다른 인물들과 대조적으로 매우 평화롭게 사는 착한 아가씨 역할을 맡았는데, 그 모습도 김옥진 배우 자체의 매력과 잘 맞아 떨어지는 아름다움이 충분합니다.


(신문에 실린 영화 장면 속의 김옥진)

한국 옛날 활극 이야기를 할 때 한 번쯤은 다양한 이야기거리로 짚어볼만한 영화가 이 영화, "여자 형사 마리" 아닌가 싶습니다. 표절 문제에서 검열 문제까지, 배우들의 과거 모습에서 한국 영화의 특수 촬영 기술까지 많은 내용을 떠올릴 단서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병원 간호사들이 위급할 때는 단체로 메스를 표창처럼 던지는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내용이 문득 튀어나와버려서, 보는 사람을 놀랍고도 황당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 순간은, 또한 이런 중저예산 옛날 영화를 보는 유쾌한 맛이 있습니다.


그 밖에...

문제의 간호사들이 위급해지자 단체로 메스를 표창처럼 던져버리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에도 박동룡 http://gerecter.egloos.com/3825648 은 악당 졸개로 등장합니다. 배신하기도 하고 배신 당하기도 하고,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영화 전체 등장 인물 중에서 대여섯번째 정도는 됩니다.

영화 내용이나 소재에 연결되는 다른 영화가 떠오르시는 분, 이 영화의 이 내용은 어느 영화에서 모방한 것 처럼 보인다, 어떤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처럼 보인다 싶은 생각 어렴풋하게라도 떠오르신다면, 무엇이든지 간단하게라도 덧글에서 언급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촬영된 장면이 꽤 많은데, 홍콩 영화사와 어떤 식으로 합작을 한 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한국 영화 중에는 홍콩 영화사와 힘을 합해서 찍고 서로 편집을 달리해서 홍콩판과 한국판의 두가지 영화를 결과로 뽑아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워낙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한국 배우라서 그런 경우 같지도 않아서 혹시 다른 사연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최근 개봉되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 열차를 타라"에서 박시연이 연기하는 인물의 극중 이름이 "마리"인데, 이것은 아마도 바로 이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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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huha 2008/07/25 18:30 # 삭제 답글

    아아 이 영화에도 박동룡씨의 용안이..
  • marlowe 2008/07/28 15:32 # 답글

    007 아류작 중 하나인 [A Man Called Dagger] (1967)에서 사우나 문을 잠그고서 안에 있는 여자에게 정보를 캐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봉춘에서 [대거라 불리운 사나이]로 방영했는 데, 박일씨가 주인공 더빙을 맡았죠.
  • 게렉터 2008/07/29 08:51 # 답글

    shuha/ 앞으로 소개해드릴 영화 중에도 박동룡이 나오는 부분은 꼭꼭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마 여기서 이야기되는 80년대 이전 어지간한 한국영화는 모두 포함될지 싶습니다.

    marlowe/ 장면은 기억 못하는데 "대거라 불리운 사나이"는 007 영화에서 이름을 드날린 강철 이빨 사나이 조스가 007 영화보다 앞서서 등장한 007 아류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개 말씀 감사합니다.
  • 변태마귀 2008/08/15 21:53 # 삭제 답글

    아주 어린 시절 극장에서 봤던 '여형사 마리'가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영화 소개를 보게 되었네요.

    게렉터님의 소개를 보기 전까진, 다른 장면은 하나도 기억안나고 목욕탕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남자들이 둥둥 떠있는 곳에서-무슨 약품을 풀어서 다 독살되었다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형사 마리가 격투를 벌인다는 하이라이트 장면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목욕탕이 아니라 시체보관소 였군요 -.-; - 케이블에서 이 영화를 때때로 하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케이블을 비롯해, TV를 안본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으니.

    소개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장면들이 떠오르는 게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게렉터 2008/09/01 13:24 # 답글

    변태마귀/ 이 영화에는 목욕탕도 한 번 나옵니다. 퇴폐업소에서 손님들이 유리창 너머에서 구경하는 곳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섞여서 착각하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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