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무법자 영화

1970년작 한국영화 "당나귀 무법자"는 구봉서가 주인공 당나귀 무법자로 나오는 패러디 코메디 서부영화로, 이 영화에서 패러디하려는 것은 60년대 중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던 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 영화들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영화는 배우들이 적역을 맡았고, 의상, 세트, 소품이 상당히 재미나다는점은 훌륭합니다만, 촬영과 편집, 각본, 후시 녹음 작업에 헛점이 너무 많아서, 트래쉬 무비스러움도 상당합니다.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포함한 면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다름아닌 "말죽거리"인데, 포스터에 "천하 복부인들의 놀이터"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귀 무법자"는 처음 시작하면, 술집 하나, 보안관 사무소 하나, 장의사집 하나 씩 늘어서 있는 서부 영화에는 거의 언제나 나오는 서부의 마을 거리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실내 세트 촬영으로 되어 있는데, 좀 소박하고 조명 사용도 그냥 무대 연출식이라서, 아주 세트임이 뻔히 보이는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트는 무대극의 세트처럼 되어 있다는 점이 나름대로 운치도 있고, 장난스럽고 비현실적인 면이 많은 패러디 코메디의 배경으로서는 오히려 나쁘지 않습니다.

서부 영화속 마을 거리의 모습들을 올망졸망 잘 담고 있고, 명랑한 코메디 영화 분위기에 어울리게 알록달록한 유채색으로 잘 연결되는 색채를 표현하기에도 좋아서 사실 세트는 꽤 상쾌합니다. 이 세트가 보여주고 있는 서부 마을 거리라는 배경은 앞으로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활용되고, 계속해서 이 영화에서 좋은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에는 건물들의 간판이나 포스터에 나오는 글씨를 마치 알파벳처럼 한글 풀어쓰기로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글 글자체도 간판에 쓰이는 영문 알파벳 글꼴 모양으로 살짝 바꿔 넣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Wanted"라고 인쇄되어야할 포스터에는, "ㅎ ㅕ ㄴ ㅅ ㅏ ㅇ ㅅ ㅜ ㅂ ㅐ" 라고 한글 자모를 분리해서 영문 알파벳 비슷한 느낌이 나는 글씨체로 인쇄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도 눈으로 보고 읽다보면 좀 재미납니다. 여기에 따르면, 중요한 무대가 되는 술집의 이름은 "쿠카라촤"(정확히는 쿠카라초ㅑ)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니, "라 쿠카라차"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곳입니다.

영화 막이 오르자 마자, 이 영화에서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남자가 죽어 엎어져 있고, 악당 떼거리들은 낄낄대면서 살인한 후에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인질이 된 셈인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역이 떨면서 괴로워하고 있고, 그 옆에는 서영춘이 역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악당들은 서영춘도 죽여버릴까 하다가, 서영춘에게 도박을 하게 하는데, 동전을 던져서 권총으로 쏘아 맞히면 보안관 자리에 서영춘을 앉게 해주고, 동전을 못 맞히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서영춘은 튀겨올린 동전을 맞추는 것은 터무니없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안하려고 하는데, 흉악한 악당들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권총을 뽑고 던진 동전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다행히도 탄환은 우연히 요행 동전을 꿰뚫어서, 서영춘은 살아남는데는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마을은 이 흉악한 악당 패거리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서영춘을 허수아비 보안관으로 세워 놓게 됩니다. 이런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도입부는 끝이나고, 주제가와 함께 "당나귀 무법자"라는 제목과 제작진과 출연진의 이름들을 알려 주기 시작합니다.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만,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상당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일단, 서영춘의 농담이 각본상에서 잘 조율된 것이 아니라, 그냥 대강 때워지나가는 이야기 중에 서영춘이 억지로 개인기와 웃긴 말투, 유행어를 많이 쓰는 것으로 웃기려고 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서영춘이 후시녹음 할때 즉흥적으로 집어넣는 것들이라서, 영화 화면과는 거의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 것들이고 영화 앞뒤와 잘 어울리게 연결되지도 않아서, 영화 화면에 보이는 내용과 연결되는 박자감각이나, 긴장감을 주는 연출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웃긴 장면이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모두가 대체로 후시녹음할 때 코메디언들이 웃긴 억양으로 말하는 것 대다수며, 그나마 각본과 촬영단계에서 계획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개인기로 억지로 억지로 짜내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일부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후시녹음 즉흥 개인기 코메디가 끝도없이 실패해버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묻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웃기겠답시고 넣은 장면들은 거의 전부가 좀 싱겁고 재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에, "셰인"이나 "OK 목장의 결투" 같은 영화처럼 여러 남자들이 중창, 합창하는 곡으로 되어 있는 살짝 민속적인 느낌이 나는 주제가가 흘러 나옵니다. 주제가 자체도 그런 여러 곡들을 참고한 곡으로 되어 있는데 노래 자체는 상당히 듣기 좋습니다. 이 영화는 내용 자체가 패러디라는 생각 때문인지 이후로는 그냥 무자비하게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의 주제곡을 도용한 뒤 연주만 다시 해서 집어 넣은 부분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악들은 좀 너무 반복되고 지겨운 면이 있어서, 사실 이 영화 주제가로 처음 나오는 "당나귀 무법자" 노래를 좀 변주하거나 다른 연주로 노래를 불러서 영화 배경음악으로 활용했으면 아마 훨씬 더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이 영화의 주제곡은 나쁘지 않습니다. 딱히 뭐 아주 감동적인 곡은 아닙니다만, 비슷한 서부 영화 주제곡과 정말 매우 비슷하고, 노래는 "꽃집의 아가씨" 때부터 명망을 드날린 명가수 "봉봉 사중창단"이 맡아서, 그 분위기도 잘 살리면서 노래를 불렀으며, 가사도 적절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와 함께 주인공인 구봉서가, 당나귀를 타고 대지를 가로질러가게 되고, 마침내, 구봉서가 서영춘이 허수아비 보안관으로 잡혀 있는 악당의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본론의 시작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다 소개되고, 구봉서가 처음 이 악당들이 지배하고 있는 마을의 술집에 도착하여, 악당들에 대해 시비와 긴장감을 주며 맞서 싸우는 부분까지는 의외로 상당히 정통파 방식대로 잘 되어 있습니다. 악당들은 처음보는 구봉서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괴롭힙니다만, 구봉서는 베짱좋은 태도로 버티고 몇대 두들겨 맞는데도, "맞는 연습은 이제 충분히 했다" 운운하고, 기타 연주를 하며 음유시인처럼 노래를 흥얼거려서 대강 둘러대며 버티는 것입니다.

구봉서의 그 모습을 보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어느 목장 주인 아주머니가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구봉서를 목장의 일꾼으로 고용합니다. 목장 주인 아주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는 당시 활약하던 코메디언 백금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자료들에는 백금녀 이름이 안나와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구봉서는 목장 주인 아주머니의 제안을 수락하여, 목장에 일하러 가는데, 목장에 가보니, 키울 가축이라면서 소나 말 대신 닭들이 있습니다. 구봉서가 뭔 목장이랍시고 있는 가축이 닭이냐고 좀 황당해 하니까, 목장 주인 아주머니는,

"이게 다 5개년 계획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외에 변변한 남자라고는 없는 이 동네에서 구봉서가 일꾼으로 오니까 사정없이 추파를 던지는 목장 주인 아주머니의 딸 셋이 나오기도 합니다. 딸 셋은 나름대로 멀끔한 배우들이라서, 코메디 영화에 가끔 자주 나오는 볼품없는 남자 코메디언을 둘러싸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이라는 구도를 대강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뿐으로, 이 영화에서 이 딸 셋은 괜히 얼굴 들이미는 시간이 많을 뿐, 재미난 장면은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나서 뭔가 웃겨 보겠다고, 목장 주인 아주머니가 배탈이 나자 구봉서가 배 맛사지를 해주는 장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배를 한 번 건드릴 때 마다, 북소리나, 악기 연주하는 소리 같은 것이 납니다. 그러자 구봉서는 툭툭 배를 건드려서 장단 맞춰 소리를 내다가 결국 배탈난 아주머니 배를 두들겨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1악장 부분을 연주하기에 이르릅니다. 전위적이라면, 매우 전위적인 코메디인데, 촬영이나 화면 분할, 녹음이 잘 조화되어 있지 않아서, 별로 재미나지는 않습니다.

대강 이 이상한 전위적인 코메디를 할 때 즈음이 영화의 1/4즈음이 진행되었을 때지 싶은데, 이후부터, 이 영화의 촬영과 꾸민 모양새는 급격히 무너져 내립니다.

화면을 돌리거나 다가가면서 찍거나 할 때 배우들을 제대로 화면에 보여주는 수준도 해내지 못할 만큼 촬영을 후다닥 대충대충해 버렸습니다. 정말로 개봉을 앞두고 급조해서 찍은 듯하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 것이, 화면에 별 쓸데 없이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잘못 찍히거나, 배우들이 연기하다 실수한 장면 같은 것도, 다시 찍지 않고 그냥 다 남아 있습니다. 후시 녹음과 대사, 연기가 거의 전혀 맞지 않고, 뭔가 재치있는 명쾌한 농담을 읊을 것처럼 말하다가 아무 재미 없는 말을 말하는 김새는 짓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양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편집도 아주 날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다가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보여주는 장면으로 넘어갈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아 볼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이후부터, 이 영화는 "무법자 시리즈(dollar 시리즈)"나 "장고" 영화에 나오는 명장면을 그냥 하나씩 구봉서와 양훈 등등이 따라서 이것저것 해 봅니다. 패러디 코메디를 펼치려고 한다니, 나름대로 그렇게 따라하고 있는 이탈리아산 서부영화들의 명잔면에다가 무슨 풍자를 갖다 붙이든지, 내용을 살짝 살짝 변형해서 웃긴 내용을 집어 넣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이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별 웃긴 내용 없이 그냥 그대로 따라할 뿐입니다. 구봉서는 "황야의 무법자(DVD출시제목. A Fistful Of Dollars)"에 나오는 것처럼 몰래 일을 꾸미려다가 악당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고, "장고"처럼 악당에게 당해 손을 다치게 됩니다. 그 영화들의 장면과 워낙 비슷하게 흘러가기에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나 "못말리는 람보" 처럼 그렇게 하다가 꼭 살짝 웃길것 같아보입니다. 정말 그럴 것 같은데, 참 헛헛하게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따라하기만 하고 끝입니다. 패러디 영화인데, 패러디를 안하는 것입니다.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장면이 나오기만 할 뿐입니다. 뭔가 나올듯 나올듯 한데 그냥 넘어가는 이런 것을 계속해서 줄줄이 보는 것도 참 기묘한 감상이기는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신에, 이 영화는 그런 와중에 코메디언들이 표정을 좀 웃기게 해서 뭔가 웃기려는 시도를 해 본다든가, 후시 녹음 대사를 집어 넣을 때, 웃겨보겠다고 즉흥 코메디 대사나, 웃긴 말투, 억양으로 몇마디 중얼거려 보는 것이 웃기는 방향의 주력입니다. 서영춘의 서영춘 말투나 구봉서의 몇몇 표정들은 개인기 실력이 있어보인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워낙 촬영된 영화 필름 자체가 코메디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못한 것이라서, 정작 웃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개인기의 모습들, 잡다하고 시끄럽게 들릴 때가 도리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 자잘하게 웃기려고 하는 소재들을 모아봐야, 목장 주인 아주머니의 옷의 엉덩이 부분이 찢어진 것으로 어떻게 웃기려고 하는 것이라든가, 성의 없는 코메디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불멸의 소재인 "남자 코메디언이 여장하기"가 한 번 등장할 뿐입니다.

본격적인 진짜 패러디는 굵직한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이 마을의 악당이 워낙 악명이 높다보니, 내로라 하는 서부의 사나이들이 줄줄이 찾아와서 대결을 신청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오느냐 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나이"와 "성은 '장'씨요, 돌림자로는 '고'를 쓰는 사람, 곧 장고" 등등이 옵니다. 이 인간들이 나타나서, "나와 대결을 하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나이시다!" 운운하는 장면은 꽤 흥미진진합니다. 이탈리아산 서부영화들을 줄줄히 패러디 코메디로 꾸며 보겠다는 영화의 원래 의도와도 잘 부합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거나 말거나, 이것도 앞서 말한대로, 이렇게 해서 뭔가 재치있고 웃긴것을 보여줄법 하지만 그냥 허무하게 그대로 끝입니다. 이렇게 찾아온 사람들은 그냥 "총을 뽑아라" "네가 먼저 뽑아라" 한 뒤에, 악당 두목을 보고 총을 쏘고, 쓰러지면서 끝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타나는 도전자들마다 기괴한 개성을 갖고 있다든가,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할이나 장고의 모습을 풍자해서 뭔가 웃긴짓을 하나 둘 해야 할 법한데, 안합니다. 그냥 정식으로 마주보고 총을 한번 쏘고 끝입니다. 보고 있으면 무척 허무한데, 그나마 왠갖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리프, 엘리 월러크 등등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 어떤 분위기라도 살텐데, 이렇게 나타나는 도전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아버지 뻘 되는 사람"과 "장고" 둘 뿐이라서 무척 부족합니다.

이렇게 도전자가 결투를 해서 죽고 나면, 마을의 정신나간 장의사가 나타납니다. 이 장의사는 쓰러져 죽은 장고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의 소지품을 뒤진뒤에,

"나도 공짜로 챙기지는 않는다구. 이봐 황천길에 여자 냄새나 많이 맡아라."

라면서 시체 옆에 여자 속옷을 하나씩 던져 줍니다. 이 역시 상당히 전위적인 코메디로 차라리 넣지 않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봉서는 악당들에게 붙잡히지만, 술집 바텐더가 목숨걸고 도와주는 바람에 구봉서는 살아나게 됩니다. 술집 바텐더가 왜 별 이유도 없이 자기가 죽을 것을 각오해가며 구봉서를 그렇게 열심히 도와줬는지는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술집 바텐더가 술통에 구봉서를 담아서 운반해준 까닭에 구봉서는 일하던 목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만신창이가된 구봉서는 목장에서 모래에 묻혀서 모래찜질을 합니다. 기가막힌 회복 방법이지 싶은데, 왜 약도 안먹고 붕대도 안감고, 여타 응급치료도 없이 갑자기 모래찜질을 하면서 자고 있는지는 앞뒤 아무 장면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봉서를 목장의 세 딸들이 지켜보며 둘러앉아 있습니다. 세 사람은 뭐라고 말다툼을 하더니, 갑자기 돌아가면서 구봉서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서로 구봉서를 남편으로 삼고 싶어하는 세 자매의 다툼이 그렇게 표현된 것인데, 악당하고 싸우는 이야기나 구봉서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괜히 나오는 장면입니다.

서로 싸우면서 마구 구봉서에게 입술을 파묻고 있는 세 아가씨들을 잠시 보여주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서영춘이 뛰어와서, 구봉서에게 구봉서가 악당을 상대하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고 하면서, 큰일 났다고 합니다. 결국 구봉서는 모래찜질을 중단하고 악당에게 가게 됩니다.

구봉서는 악당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악당과 함께 "총을 뽑아라" "네가 먼저 뽑아라" 대사를 나눈뒤에 총으로 악당을 쏘아 죽입니다.

그게 끝입니다. 즉, 이 영화에 나오는 악당물리치는 방법이란,

1. 악당 앞에 간다.
2. 총을 뽑는다.
3. 악당을 죽인다.

이걸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다른 묘사는 없어서 어떻게 해서 구봉서가 이겼는지, 왜 지금까지는 안싸우고 그따위로 살았는지 그런 것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좀 당황스러운데, 그 당황도 잠시, 이후에 서영춘이 늘어서 있는 악당 부하들을 툭툭 치면서 장시간동안 혼자서 개인기 농담을 중얼중얼합니다. 역시나, 아무런 각본상의 조율이나, 짜놓은 농담 없이, 그냥 후시 녹음 할 때 개인기로 아무렇게나 나오는데로 이소리 저소리 중얼거릴 뿐이어서, 영화 이야기를 중간에 썰렁하게 끊어먹고 장시간 계속 서영춘이 왔다갔다하지만, 웃긴 내용, 재미난 대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봉서는 이제 또 마을을 표표히 떠나갑니다. 지금껏 목장에서 닭치면서 잘 살다가 왜 악당을 죽인 뒤에는 떠나가는지는, 역시 안가르쳐주기 때문에 모릅니다. 대신에 떠나다 말고, 왜 악당을 진작에 죽이지 않았는지 이유를 가르쳐 주...지는 않고, 이유 비스무레한 설명을 하나 해 줍니다.

"나는 천하 제일의 총잡이로 99명의 총잡이를 죽였소. 그런데, 한 점쟁이 노파가 말하기를, 내가 100명의 총잡이를 죽이게 되면, 그 때는 나도 죽는다고 하였소. 그래서 나는 더이상 총싸움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았던 것이오."

조용히 살려고 하면, 악당이 득실득실해서 마을 입구의 우물지키는 사람이 절대 가지말라는 그런 곳에 가지를 말 일이지, 대체 왜 이런 곳에 왔는지부터가 좀 괴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더욱 아까운 것은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라도 있었다면 미리부터 좀 알려주고, 이야기 거리로 써먹는 편이 훨씬 좋아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구봉서가 엄청나게 총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지만, 점쟁이의 예언때문에 악당들을 참고 있으면서 맞고만 있는 장면이 꽤 감정이 생기는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구봉서가 도저히 참지 못해서, 예언이고 뭐고 총을 쏠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이 모습은 긴장감을 생기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다 끝난 다음에, "사실은 어떤 점쟁이 노파가" 운운하면서 이런 사연을 알려주는데 그치니 그저 황당하기만 합니다.

이런 사연이 막판에 황당하게 나오는 것조차도, 또 다른 영화 패러디라고 볼 수도 있으니, 그것도 무슨 전위적인 코메디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연을 느끼기에는 그런 내용을 읊는 대사가 별로 강조되어 있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황당한 코메디라는 점을 느끼면서 좀 웃을 수 있도록 웃음을 풀어내려는 추가 대사, 동작, 여유를 갖는 시간도 전혀 없습니다.

구봉서가 마을을 떠나오자, 처음 구봉서가 마을에 들어설때 구봉서를 보았던 우물지기를 마주칩니다. "이 마을에 들어간 사람은 본 적이 있어도 살아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던, 우물지기는 살아서 나오는 구봉서를 보고 놀라워합니다. 구봉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물지기에게 몇마디 해줍니다. 그리고, 구봉서가 갑자기 황야의 들판에서 푹 쓰러져 죽으면서(!) 끝이 납니다. 구봉서는 이렇게 갑작스레 죽으면서, 문득 "아- 점쟁이 노파의 말이 맞았구나" 라고 하는게 마지막 대사입니다.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이 영화는 이게 진짜 끝은 아닙니다. "끝"이나 "안녕히"라는 글자도 아직 화면에 안나오지 않았습니까! 구봉서가 쓰러져 죽어 있자, 갑자기 어디선가 "컷!" 소리가 나오면서, 영화 촬영진과 다른 제작진들이 몰려 나옵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구봉서는 일어납니다. 그리고 구봉서가 제작진과 함께 서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구봉서 입니다. 제가 제 소원이던 서부영화에 이렇게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재미나게 보셨습니까."

그렇게 구봉서는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드디어 화면에는 "안녕하 가십시오"라는 자막이 커다랗게 뜨면서 영화는 정말로 막을 내립니다.

다시 처음부터 정리해보자면, 이 영화는 세트와 의상은 매우 흥미롭게 되어있고, 각본의 뼈대도 꽤 괜찮았습니다. 악당이 차지한 마을이 있고, 그 악당에게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이 계속 도전해 오는데 자꾸만 패하자, 결국 마지막에는 "당나귀 무법자"인 주인공이 도전해서 이긴다는 것은 패러디 코메디 영화의 형태로 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만 제작기간과 예산을 거의 다 쓴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촬영 시간만 채우다 보니까, 거기에 정작 웃길 내용을 마땅히 집어넣은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린 괴상한 모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나 인물 설정도 아까운 구석이 매우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악당 두목 산쵸 역을 맡은 양훈입니다. 서영춘, 구봉서와 함께 당대를 풍미하던 코메디언 양훈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코메디언으로서의 모습은 거의 전혀 드러내지 않고, 그냥 추악하고 무자비한 쓰레기같은 술주정뱅이 악당 두목 연기만 합니다. 연기는 매우 정확하고, 정말로 실제로 있는 악당인듯할 정도로 개성과 사실성도 충분합니다. 양훈과 잘 맞아 떨어지는 상대 배역의 내용만 충분했어도 영화가 살아날 지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훈과 상대역이 되었을만한 배우는 악당 두목에게 사로잡힌 여자 역을 연기하는 오경아 입니다. 이 배역은 눈화장과 옷차림이 아주 썩잘어울려서 정말로 "카르멘" 같은 오페라의 남미 분위기 풍기는 아가씨나, 서부 영화의 매력적인 멕시코계 여자 주인공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배역에는 번번한 대사 하나 없고, 더우기 주인공 구봉서와의 사랑이 싹트고 어쩌고 할 법도 해볼만한 출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가면 꼭 없던 사람인것처럼 스윽 사라져 버리면서 이야기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등, 아주 비정상적으로 이야기에서 비중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웃기고 가벼운 영화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양훈이 침대에서 괴롭히는 장면은 이상하게 사실적인 분위기로 상당히 긴 시간동안 보여줘버립니다. 이런 것은 사실 트래쉬 무비로 전락하는 몇몇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문제겠습니다만.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구봉서의 모습은 깔끔하게 멋지지는 않아도, 서부 영화속 꾀돌이 조연급 정도로는 부족함이 없게 잘 어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대사가 제대로 구성된 것이 없어서 그렇지, 허수아비 보안관 서영춘도 겉모습은 나쁘지 않습니다. 더우기 이 영화속의 수많은 악당 부하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 선정과 의상, 세트가 좋다는 생각은 더 많이 들게 됩니다. 악당 부하들은 숫자가 많은데, 저마다 똑똑한 놈, 멍청한 놈, 날카롭고 매정한 놈, 엉성하고 산만한 놈, 힘이 센 놈, 총을 잘 쏘는 놈 등등으로 특징이 구분되어 있고, 옷차림도 무대 미술 같은 세트를 쓰는 영화의 색채와 어울리는 정도로 여러가지 색깔로 알록달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는 많고 출연 시간은 짧지만, 다양한 면면들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중반 이후로는 워낙 막찍어버려서, 각본도 없이 즉흥으로 찍고, 잘못 찍었는데 그냥 그 필름 그대로 써버린 것도 보이고 해서, 아무래도 트래쉬 무비의 길에 빠져버리는 부분이 커져가게 됩니다. 조금만 성의를 다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찍었으면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정상적으로 웃긴 내용은 잘 집어 넣지 못했다고 해도, 지금 영화 군데군데에 들어가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방가르드한 농담 장면이라도 대거 잘 짜여서 들어갔다면, 보면서 신기한 재미는 충분할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밖에...

영화 속에서 구봉서는 성은 "당"이고, 이름은 "나귀"라는 이름의 떠돌이로 나오는데, "쇠죽거리"에서 왔다고 합니다. "당나귀 무법자"가 "당나귀" 무법자인 이유는 사실 코메디언 구봉서의 별명이 코메디 무대에서 실제로 당나귀였기 때문입니다. 메뚜기 유재석 같은 것에 비하면, 그렇게 압도적으로 널리 퍼진 별명이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삭발하기 이전 시절의 조춘이 악당 부하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조춘은 삭발하기 이전에는 멧집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도 해서, 싸움을 잘하는 험악한 악당 역할에 매섭고 날카로운 표정이 잘 어울리는, 훌륭한 적역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장고"를 패러디해서, 성은 "장"씨고, 이름은 "고"인 한국사람이 나오는데, 똑같은 패러디 코메디가, 한참 후에 나오는 "삿갓 쓴 장고"라는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김인문이 장고로 나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안일남은 자료를 보면 이 영화가 유일한 감독작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을 듣자, 구봉서는 "음... 이태리 놈이군" 이라고 읊조립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당시 이탈리아산 서부영화에서 유명해졌기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이 영화에도 박동룡 http://gerecter.egloos.com/3825648 이 나옵니다. 이 영화 출연진 소개 자막에는 박동'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동룡은 바로 악당 두목에게 도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 역할로 나옵니다. 영화 갈등 구조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입니다만, 나오는 시간으로 따지면 한 3,4분쯤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자, 박동룡은 "마카로니 웨스트"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산 서부영화들을 미국에서는 별칭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라고하고, 그 말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에는 주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이름으로 퍼졌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서부에서 온 것은 아니고, 이탈리아산 서부영화 속 서부에서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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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09/06 01: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ozet 2008/09/06 01:59 # 답글

    영상자료원에서 지난 주에 보았어요..
    정말 제가 본 엔딩 중 가장 뻔뻔한 엔딩이란 생각이 들더군뇨 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조춘 말고 산초의 심복 중 가장 높은 사람으로 나온 배우하고.. 중간에 구봉서가 여배우를 구출하려고 바텐더가 속일때 같이 총을 수거(?)하던 배우분도 요즘도 자주 보이는 분들이더군뇨..
  • ShuhA 2008/09/06 03:01 # 삭제 답글

    할말이 없게 만드는 엔딩이군요..;;;
  • 이준님 2008/09/06 09:05 # 답글

    1. 비행기 추락으로 서울에 불시착한 타잔이 여러 모험을 겪다가 한국 처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하고 "미국 국무부가 보낸 특별기" 편으로 귀국한다는 내용의 "타잔 서울에 오다"라는 영화도 있었지요.

    ...물론 거기서 타잔은 구봉서 선생이었습니다. OTL;;
  • 뚫후룩 2008/09/06 11:19 # 답글

    22년쯤 전에 본 영화군요. 갓 비디오 데크를 사서 마구 빌려보던 테잎 중에 들어있었던.
  • 뚱띠이 2008/09/06 23:52 # 답글

    뭔가 20% 부족한 영화였군요
  • 이준님 2008/09/07 19:04 # 답글

    추가: 양훈선생이 본업인 코미디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역으로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은 이만희 감독의 "싸릿골의 신화"가 있지요. 여기서는 싸릿골 뒤편 암자의 "누덕거사"로 나옵니다. 원작은 나름대로 코믹한 모습입니다만 여기서는 상당히 근엄하게 나오지요. 사실 영화 자체도 원작과 달리 사실적인 ,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이라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 게렉터 2008/09/09 02:26 # 답글

    비공개/ 지적 감사합니다.

    cozet/ 따지고보면 배우들의 면면은 꽤나 멀쩡한 영화였습니다.

    ShuhA/ 어찌 보면 기왕 저렇게 나간것, 얼토당토 않은 패러디 장면들이 좀 더 많이 난무하는 형식으로 정신없게 꾸몄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준님/ "싸릿골의 신화"에서는 저는 왠지 그 거사도 웃긴 느낌이라고 막연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진지한 역할이었다니, 다시 정신차리고 한 번 봐야 되겠습니다.

    뚫후룩/ 요즘에는 이 영화 비디오 테입 구하기는 약간 힘이 들지 싶습니다. 비디오판은 또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뚱띠이/ 20%를 채우기가 그다지 어렵잖아 보이기에 더 안타까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 서울남자 2008/12/31 23:36 # 삭제 답글

    1970년 제가 국민학교 3학년때 아버지 지갑에서 몰래 돈을 뽑아 친구들과 극장에서 본 영화입니다.
    그냥 한번 검색해보았는데 이렇게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여간 그때 기억으로는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그리고 여자 코미디언인 이순주씨등이 출연한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38년전이 엊그제정도로 느껴집니다
  • 게렉터 2009/01/01 12:58 # 답글

    서울남자/ 코메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다보니 개봉당시에는 어린 관객들에게도 흥미를 많이 끌었나 봅니다. 혹시 시간나서 다시 들러 주신다면, 개봉당시에 영화 보실 때에 얼마나 재밌게 보셨는지, 개봉 당시 관객반응은 어땠는지 하는 것들도 궁금합니다.
  • 계륵 2010/05/19 01:11 # 삭제 답글

    이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는 이번 5월달 계휙전에서 보고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조춘하고 박동룡이 동시에 출현하는 영화가 기획전 목록 작품중에 2개나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나왔고, 한용철 주연의 '돌아온 외다리'에서도 킬러 3인조로 출현해서 강한 인상을
    남겼죠
  • 게렉터 2010/05/23 11:13 #

    옳습니다. 외다리 시리즈는 1974년 한해를 전후로 해서 우르르 고속으로 쏟아져 나와버렸기에 영화 편마다 박동룡도 꼬박꼬박 작은 역할로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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