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아 잘있거라 영화

1962년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물론 두만강이 잘 있다는 내용의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 중에도 그런것이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단연 언급될만한 장면은, 지금은 나이든 고단수 주부로 주부대상 아침 토크쇼에 자주 출연하는 엄앵란이 여학생으로 나와서는, 그 여학생 엄앵란이 설원 한 복판에 서서 밀려드는 적들을 기관단총을 마구 난사해 쓸어버리면서 괴성을 지르는 대목입니다. 엄앵란의 이 장면의 한순간만 놓고보면, 어찌보면 일본영화 "세라복과 기관총" 같은 영화보다 더 화끈하다면 화끈한 영화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만강아 잘있거라" 포스터)

이 영화를 차근차근 설명해 보자면, 이 영화는 "만주물 아닌 만주물"이라 할만한 영화입니다. 이를 테면, 동부 팬실배니아 주의 목장이 배경으로 되어 있는 미국 영화를 생각해 봅시다. 배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동부이지만, 서부에서 흘러들어온 총잡이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영화내내 서부로 가서 어디를 개척한다든지, 서부의 총잡이 누구가 원수라든지 하는 이야기만 계속 나온다고 해봅시다. 그래서 동부의 목장을 배경으로 총잡이들끼리 결투도 하고 단체 총싸움도 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는 배경은 "동부"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서부 영화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을법 합니다.

이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가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총잡이들과 독립군요원, 일본군들이 나와서 산과 들에서 총싸움 하는 내용입니다만, 영화의 배경은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 입니다. 무슨 사연인고 하니, 만주의 광복군 기지에서 합류하려고 하는 총잡이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건너가기위해, 산과 들을 지나는 긴긴 여정에서 적들과 싸우는 내용이 영화의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사연을 겪고, 또 이 여러 독립운동하는 학생들이 피를 보기도 하면서, 결국 만주로 넘어가기 직전 두만강 언저리 산기슭까지 모여듭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갈 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를 보게 하는 궁금증입니다. 이제부터는 거기에 대한 답을 포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으로 이 영화를 보면, 우선 드는 생각은 이 영화가 뭔 1930년대 고전 영화 같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현재 남아 있는 판은 보존 상태가 꽤나 안좋아서, 화면에서 거의 항상 이리저리 부서져 있습니다. 거기다가 필름이 군데군데 잘못되어 날아간 부분도 아주 많아 보이고, 음향이 이상하게 파괴된 부분도 상당합니다. 거기다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아직도 무성영화식의 틀에 박힌 과장된 연기나, 무언극 무대에서나 어울릴법한 유성영화에 별로 적합하지 않게 연기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편집기술이 안좋고 표현이 안좋아서 잘 못알아볼 장면과, 영화 필름의 보존 상태가 안좋아서 못알아볼 장면들이 난무하는 까닭에, 이 영화의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은 뚝뚝끊기는 이상한 장면들이 너무 많고, 때문에 줄거리와 대사를 정확히 이해하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상당히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 영화에는 좀 부실한 점들이 있는데, 정리해 보자면, 대략 네 가지 정도 입니다.

우선 첫번째는 총싸움 장면이 좀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한 엄앵란이 총쏘는 장면을 빼면 별 힘있는 장면은 없고, 그나마 엄앵란이 총쏘는 장면은 아주 짧게 별로 강조도 안되어 앞뒤 이상한 상황에서 그냥 툭 튀어나와 잠깐 스쳐나갈 뿐입니다. 그외에는 좋은 장면이 그야말로 별로 없어서,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다가 총을 맞자 픽 쓰러져서 굴러떨어져서는 길 옆의 진흙탕에 처박히는 장면이 그냥 모범적으로 연출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런 한두 장면에서 총싸움의 힘이나 아슬아슬함, 죽을 때의 비정함과 비참함이 좀 묘사되어 있을 뿐, 대부분의 장면은 총쏘는 것은 그냥 총쏘는 장면대로 나오는 것이고, 그래서 누가 죽든지 살든지 하는 것은 총싸움 모습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각본상 계획대로 엎어지든지 말든지 하는 식일 뿐입니다.

두번째는 아군들의 개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대략 세 부류 정도로 나뉘는 아군들이 서로 여러가지 사연과 상황을 갖고 나뉘어서 흩어져서 만주로 가기위해 두만강으로 모여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영화 내용이 크게 세 줄기로 나뉘어져서 펼쳐지다가 끝날즈음이 되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형태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줄기로 나뉘는 아군들의 모습이 누가 누구인지, 누가 냉철한 사람이고, 누가 흥분 잘하는 사람인지 잘 알아볼 수도 없게 되어 있습니다. 좀 부주의하게 보다보면, 한참 싸움을 하고 있는데, 두만강으로 모여드는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느 쪽 사람의 총싸움을 보여주는 것인지 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악당들의 개성이 선명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보면 더욱 안타까워 보입니다. 악당들은 무서운 일본군 장교인 장동휘와, 친일파 부자 사업가 허장강, 그리고 좀 졸렬한 일본군 끄나풀 등등으로 하는 일도, 모습도, 성격도 뚜렷이 대비되면서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이 영화가 부실한 점은 역시 편집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세 줄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건너다니면서 번갈아 보여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한쪽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다른 쪽 이야기로 건너가서 알아보기 쉽게 한다든가 하는 기술도 없고, 반대로 한쪽 이야기를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고 궁금증을 불타오르게 하면서 슬쩍 다른족 이야기를 보여주는 기술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좀 무의미한 총싸움 장면이나 단역이 쓰러지는 장면을 길게 잡아내다가, 정작 중요한 총싸움 장면이나 중심인물이 죽는 장면은 대강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넘어가기도 하는 부족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각본과 촬영이 명확한 계획으로 잘 진행되지 못했고, 편집기술도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이런 몰골이 되었지 싶습니다.

네번째 문제점은 김혜정이 나오는 부분이 뜸만 좀 들이다가 아무 영향 없이 그냥 휙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김혜정은, 독립운동가 학생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산골 처녀로 나옵니다. 김혜정은 독립운동가 학생의 원래 애인인 엄앵란에게 질투가 생기는데, 김혜정과 엄앵란이 워낙 다른 분위기의 배우라서 대조도 좋고, 이런 사랑과 질투의 마음을 먹는 김혜정의 모습과 대사는 잘 잡혀 있어서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생각도 생깁니다. 더군다나, 독립운동가 학생과 엄앵란 사이에는 이미 깊은 오해와 반목의 골이 있기 때문에, 김혜정이 치명적인 농간을 부려서, 두 애인이 사랑하면서도 서로 총질하는 이야기나 파국적은 이야기로 치달을만도 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로 꼭 넘어갈 것 처럼 흘러가면서도, 막상 두 사람이 만나면, 그냥 어물쩡 김혜정 이야기는 없던것으로 하고 휙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매력 넘치는 60년대의 대표배우 김혜정이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복선을 풀어놓고,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모양은 엉성하기도 하고,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영화를 돌아보면, 사실 이 영화의 애초 방향과 각본은 무척 좋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곳,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영화 내용을 꽉 채울 수 있었고, 많은 다른 사람들의 각자 다른 사연들이 영화 맨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는 줄거리 구조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역사의 거대한 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다는 영화 소재와 아주 잘 맞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서너명, 너댓명 되는 독립운동가들이 항상 적들에게 쫓기고, 산속에서 고생하고, 항상 수많은 일본 헌병대의 위력에 고생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절정장면 직전에 이렇게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이 두만강의 산속 요새에 집결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때 사람들을 보면, 거의 수백명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이 무렵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서로 분리되어 진행되던 줄거리도 하나로 합쳐져서 오직 두만강 일원의 모험 하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꽤 많은 세력이 모였고, 한 가지만 해내면 만주로 갈 수 있고, 이 정도면 거의 목적을 완료한 것 아닌가 하는 뿌듯함이랄까,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우여곡절로 결국, 이 독립군 대부대는 일본군 대병력과 마주쳐서 결국 가장 큰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전이라면 반전입니다만,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모여든 독립운동가들, 수많은 일본군들 혈전끝에, 두만강 바로 앞에서 모두가 다 전멸을 해 버립니다.

그 결과, 결국 영화의 대단원에서는, 겨우 서너명만 살아 남아 마지막으로 두만강을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눈덮힌 두만강가의 산에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고, 두만강을 건너겠다고 독립운동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은 허무하게도 모두 전멸해버리는 것입니다. 엄앵란은 두만강을 목전에 앞두고 전투중에 죽은 애인을 안고 눈밭에서 서럽게 소리내어 웁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남은 사람 극소수만 만주로 떠나가는 그 모습은, 허무함과 비극적인 정서를 살리기도 하고, 눈밭에 점점이 버려진 시체의 미술적인 모습이 장중함을 살리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해도 안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꿋꿋이 해나가는 어떤 이상주의적인 운동이요, 반대로 실존주의 스러운 허무함이 넘실거리는 어떤 행동 아닌가 하는, 그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도 마지막 결전이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마지막 결전 장면에서 스키를 타고 돌격하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이 실제 눈 덮힌 산에서 촬영된 모양이 꽤 화려하고 규모가 큰 볼거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영화 배우들의 연기를 보자면, 일단 김혜정은 정말 무성영화나 1930년대 영화 배우 처럼 보입니다. 분장 부터가 아주 그런 분위기이고, 배우의 의상이나 역할도, 본격적으로 김혜정이 미모를 과시하던 시기와는 아주 달라서 붓으로 그린 듯한 뚜렷한 선만 흑백 화면 속에서 빛나는 것이, 지금 보면 좀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악역을 연기한 장동휘는 술취해서 객기부리는 모습은 아주 진짜같고, 그외에 음흉한 모습, 느물거리는 모습 등등도 모두 극적인 효과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훌륭하게 만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중에서도 가장 좋은 여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역시 엄앵란입니다.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은 무척 충실해서, 항상 정석대로 잘 보여주고, 과장된 분위기가 많은 이야기인데 감정이 격한 부분을 포함해서 대체로 항상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도 뛰어난 대목입니다. 막판의 서러운 울음은 진짜처럼 진지한 설득력이 있게 힘을 퍼부어 연기하는 위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게해서, 평범한 여학생이 서서히 비극의 소용돌이와 총싸움하며 죽이고 살리는 전투에 빠진다는 느낌도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래서 교복을 입고 연애편지를 읽고 쓰는 영화 앞부분의 엄앵란 모습과, 영화 결말에 이르러 눈밭에서 기관단총을 달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잘 연결되고, 또 멋있게 대조되는 듯 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드는 생각은, 이 영화의 소재나 이야기 구성이 중간부분에서는 한국전쟁 빨치산 영화에서 가져온 부분도 많다는 것입니다. 항상 대병력에 쫓기면서 산에서 숨어 다니며 고생하는 조그마한 작은 부대의 모습은 한국전쟁 영화에서 낙오된 공비들의 모습을 묘사할 때나,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들을 묘사할 때 자주 나오던 것입니다.

실제로 옥수수를 먹는 장면의 묘사는 빨치산 나오는 영화에서 무척 자주 보던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악당이 아닌, 영화속에서 착한 사람들에 속하는 인물들이 이런 빨치산스러운 행보를 걷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게 묘사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두만강으로 탈출하는 독립운동가들은 평시에 일본군 경찰, 헌병을 피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한국전쟁 때 공산당 빨치산들은 당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시에 정규군대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 움직이는 것이라서, 영화속에서 보여줄 거리들은 차이가 크다면 크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몰래 산을 돌아다니는 게릴라"를 영화 제작진이 묘사하다보니, 자꾸만 습관적으로 공산당 빨치산 묘사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에서도 좀 더 다른 이야기를 찾아내서 대체하는 것이 좋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만은, 반대로 이런 빨치산스러운 이야기 때문에, 또, 만주물다운 면이 살기도 합니다. "두만강아, 잘있거라"는 만주가 안나오는 만주물입니다만은, 그래도, 역시 만주물이라면, 말타고 달리는 적을 몰래 급습하는 총잡이 독립군 같은 장면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밖에...

60년대 초에 나름대로 광고도 많이되고 흥행도 꽤 한 영화입니다. 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의 총싸움하는 활극 영화 중에 초기작으로 이 영화 기억하시는 분 꽤 계실줄 압니다.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가장 경력 깊은 거장 대접을 받는 감독의 첫번째 영화가 나름대로 당시 다른 영화들에 비해 괜찮은 점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한데, 그 영화의 보존상태가 이렇게 나쁘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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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박민성 2008/09/17 11:50 # 답글

    이렇게까지 보존상태가 나쁠수가..
    스크린샷만 보고 언제쯤 만들어진 영화인지를 추측하라고 하면
    60년대 영화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 정도네요
  • 임양성 2008/09/17 13:20 # 삭제 답글

    말로만 듣던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의 내용 소개와 좋은 분석으로 이 영황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작품들의 제작이 한국 영화의 오늘이 있게 된 배경이고, 임권택감독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겠지요...
  • 愚公 2008/09/17 15:39 # 답글

    보존은 뭐... '인식부족'이 기본이겠지만 항상 귀결점은 예산이죠. -_-

    Q: 혹시 이 영화에 김지미 씨가 나오나요?
  • 2008/09/18 17: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뚱띠이 2008/09/19 13:50 # 답글

    사진만 보면 50년대 영화로 봐도 되겠는데요?
  • 게렉터 2008/10/05 15:40 # 답글

    비공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덧글때문에 정말 귀한 구경 잘 했습니다.

    뚱띠이/ 50년대 한국영화도 보존 상태 좋은 것은 저것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미국영화나 일본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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