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호랑이 영화

1965년작 "광야의 호랑이"는 한국영화 만주물로, 내용은 50, 60년대에 무척이나 쏟아져 나왔던 미국의 2차대전 특공대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는 실제로 2차대전 특공대 영화로, 이 영화에 나오는 특공대의 목표 역시, 당시 영화속 특공대 답게 "철교"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자비심 없이 다른 영화의 음악을 마구 가져다 쓰는 등등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만, 또 그런만큼, 이런저런 2차대전 특공대 영화의 재미난 요소들을 잘 맞춰넣어 보는 재미가 좀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광야의 호랑이)

그런 한편으로 이 영화는 그렇게 특공대 영화의 재미거리들을 짜맞추면서도 나름대로 짜맞추는 개성이 뚜렷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나치들이 지키고 있는 철교를 폭파하기 위해 천신만고를 겪는 연합군 특공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만, 그 배경을 일본군들이 지키고 있는 만주벌판의 외딴 철교로 잡았습니다.

그렇게해서 네델란드나 프랑스의 철교로 뛰어드는 연합군 특공대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배경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다른 내용을 집어넣었는고하니, 배경이 만주벌판이니까, 이 영화는 2차대전 영화 중에서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떠도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따라한 것입니다. 사하라 사막을 떠도는 병사들의 모습은 먹을 것도 없고, 길도 제대로 알기 힘든 거친 만주의 황야를 떠도는 대원들의 모습으로 조절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사막에서 튀어나오는 알제리인 병사들이나 베두인족 총잡이들 역할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애매한 관계에 있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병사들이 맡게 한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조절해서 조합해 넣은 결과는 꽤 괜찮아서, 만주라는 독특한 배경에서 2차대전 특공대 이야기와 북아프리카 병사들 이야기가 부드럽게 섞여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것은,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왠갖 잡다한 문화가 뒤섞이는 한국영화 만주물의 특징을 잘 살린 결과라고 할만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재미난 특공대 영화의 필수요건인 특공대원 개개인의 개성도 아주 잘 살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줄거리상의 인물들 자체도 개성이 넘치는데다가, 그 역할을 아주 제격에 맡는 명배우들이 잘 맡아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황해나, 장혁의 연기는 정말로 그 인물 자체같은 사실감이 넘쳐서, 여러 인간들이 각자 감정을 교류하고 같이 고생하면서 나아가는 특공대 영화에 매우 잘 맞습니다.

이렇게 좋은 면이 꽤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결정적인 문제도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이자,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인물이어야할 김혜정의 배역이 아주 부실하게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도 김혜정이고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인물도 김혜정이고, 문제의 철교를 가장 폭파하고 싶어하는 인물도, 철교 폭파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도 김혜정이고, 출연하는 시간을 이래저래 따져봐도 김혜정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목 "광야의 호랑이"는 김혜정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 신영균입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김혜정이 기관단총을 갈기면서 필사적인 돌격을 하며 설칠것 같지만, 김혜정은 "호랑이, 싸랑해요~" 같은 대사를 읊조리면서 신영균에게 안기는 그냥 "주인공 애인" 역할 정도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김혜정은 총질하는 용사로 처음에 등장했지만, 실제로 영화 이야기가 진행되면 다소곳하고 착한 60년대 인기 여배우 모습에 그칠 뿐입니다. 김혜정은 싸움에서는 일본군 한 명 목졸라 쓰러뜨리는 장면 하나 외에는 거의 아무 활약도 없고, 맨날 총뺏기고 인질로 잡히고 하는 역할만 맡을 뿐입니다. 무시무시한 총잡이 전사이기는 커녕, 영화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허구헌날 "희롱"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영화 화면 속에서도 배우가 총소리 터지는 것을 무서워해서 총쏘는 장면 하나 시원하게 잡힌 것이 없습니다.

이런 점은 무척 아까운 것이, 이 영화 속에서 잘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역시나 전성기 김혜정의 매력은 군데군데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풍채가 좋은 편인 김혜정의 몸집 자체가 기관총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싸우는 만주물의 싸움꾼으로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엎어졌다가 고개를 돌려서 상대방을 올려다보며 노려보는 눈빛이라든가, 헝클어진 머리칼로 고개를 젖힌채 정신이 희미해지는 표정을 짓는 장면 등등에서는 그 아름다운 자태가 확연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속에서 김혜정은 스스로 제대로 결단하나 내리는 것 없이 그냥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고, 용맹하고 강인한 무서운 특공대원처럼 등장했으면서도, 싸움하나 멋지게 펼치지 않으니, 보다보면 무척 답답한 것입니다. 그냥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덕분에 영화도 좀 꼬여버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영화를 끝까지 전체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 시작되면, 해설로 만주에 "용문교"라는 일본군의 철교가 있는데, 연합군에게 중요한 목표지만 번번히 파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해설로 나옵니다. 용문교는 병사들이 기어올라가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화면에 나오고, 그 교각의 크기가 병사들 한 명 한 명 보다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기 때문에 확실히 위압감 있는 다리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사람이, 특공대원이 이겨내기 어려운 어떤 크고 무서운 괴물 같은 느낌을 살짝 풍깁니다. 이런 점은 특공대 영화의 목표물을 보여주는 정석이 잘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정규군의 공격이 잘 먹히지 않자, 광복군 소속 특공대들이 용문교를 공격합니다만, 역시 실패합니다. 광복군 특공대원 중에 특공대 대장의 딸이 김혜정인데, 모두다 총살당하고, 김혜정은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가 요행 신영균에게 구출됩니다. 일본군은 김혜정에게 "광야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립군 요원이 누구인지 정보를 알려주면 살려주겠다고하는데, 김혜정은 몰라서 답을 못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광야의 호랑이가 굉장한 요원이라는 복선은 충분히 깔아줍니다.

신영균은 김혜정을 구해준 뒤 표표히 떠나면서, 이름도 안가르쳐주고, 언젠가 또 만날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개폼을 잡으며 사라집니다. 여기까지는 신영균도 말타는 모습하며, 그 멧집 좋은 덩치로 김혜정을 데리고 움직이는 모습이 듬직하기도 해서 꽤 멀쩡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 영화에서 김혜정을 제대로 표현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게 됩니다. 김혜정은 중국 국민당 국부군 사령부로 찾아가서, 무기와 대원을 지원해주면 다시 용문교 폭파 특공대로 나서겠다고 합니다. 용문교 폭파에 한이 맺혀 집요하게 달려드는 그 처절한 이야기의 단초로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의상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특공대 대원이고, 특공대 대장의 딸이라고는 해도, 하필이면 여기가 무슨 가요무대도 아닌데, 은색 반짝이 의상을 입고 국민당 사령부로 찾아가는 것 입니다. 처음 보고 있으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데, 한참을 보다보면 눈덮힌 만주벌판에서 돌아다닐때 잘 눈에 뜨이지 말라고 입는 일종의 위장용 의상이라는 짐작을 겨우겨우 할 수 있습니다.

중국군에서는 외국인에게 정규군 병력을 붙여줄 수는 없으니 고민 끝에, 한국인 죄수들이 붙잡혀 있는데, 이 죄수들을 매우 위험한 임무인 용문교 폭파에 동원해 보라는 의견을 줍니다. 죄수들이 목숨을 걸고 엄청나게 위험한 임무에 나선다는 것도 종종 특공대 영화에 나오는 것인데, 이 영화도 그런 점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이 이야기가 나온 바로 직후에, 특공대 대원이 될 다섯명의 죄수들이 감방에서 설치고 탈출하려는 모습을 줄줄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다섯명의 죄수들이 특공대가 될 죄수들이라는 별 설명없이도, 관객입장에서 저런 놈이 특공대가 되는구나, 하면서 대원들의 모습, 특징, 개성을 발빠르고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합니다.

특공대 대원들은 황해가 연기하는 두더지와 허장강이 연기하는 월선을 필두로, 돼지, 꼬마와 당시의 인기 코메디언 서영춘이 연기하는 염소까지 모두 겉모습도 말투와 행동도 선명하게 다른 사람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성격은 물론이요 각자 주특기도 뚜렷하게 다르게 되어 있어서, 개성이 풍성한 특공대 대원으로 잘 잡혀 있습니다. 두더지는 가장 매섭고 강한 범죄자로 쌍권총을 쓰는 뛰어난 총잡이이고, 허장강은 엉큼하고 능구렁이 같은 꿍꿍이가 많은 범죄자로 꾀가 많고 지략이 풍부하고 베짱좋은 농담을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돼지는 뚝심많고 무뚝뚝하며 고집센 죄수로 단도를 잘 던지는 것이 특기이고, 꼬마는 줄타기를 잘하는 포로로 일본군 학도병 출신으로 다른 죄수들에 비하면 양심적이고 착한 것이 특징입니다. 염소는 좀 겁이 많고 수다스러운 특공대의 떠벌이로 변장과 자잘한 사기치기가 특징인 인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죄수들이 특공대가 되는 영화의 가장 큰 과제는 도대체 이런 나쁜놈들이 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서 특공임무를 완수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중간에 도망치거나, 도주해도 될 것 아닙니까? 이 내용은 사실 이런 이야기의 중요한 고비이자, 어떻게 보면 핵심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 목숨 다 아깝기는 매한가지인데,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나서서 싸우고 싶은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것을 아예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 붙여서, 이기심이 많고 별다른 애국심이나 규율에 대한 책임감도 없는 범죄자들에게 갖다 옮겨 본 것입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라면,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어느정도 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정말로 아무 부담없이 도망칠만한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이야기를 펼쳐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전쟁터의 괴상한 상황과 전쟁, 국가, 도덕의 복잡한 윤리문제를 극적으로 풀어내기에 적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 "광야의 호랑이"는 이런 점에서 실패해버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영화의 기둥이 되어야할 김혜정이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죄수들이 왜 용문교를 폭파하려고 고생하며 싸워나가는지 이유를 표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죄수들은 툭하면 서로 싸우고, 양민을 괴롭히면서도 별다른 죄책감도 없는 진짜 더러운 놈들입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왜 죽을 가능성이 무진장 높은 용문교 폭파작전에 꾸역꾸역 뛰어드는지 제대로 안가르쳐 줘버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전쟁 상황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나 아슬아슬함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편입니다.

제대로 표현이 안되어 있기는 하지만, 보다보면 아마 대강 상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만주 벌판 황야 한 가운데로 나갈때까지는 추격병들에 잡힐까봐 고이 복종하는 척 하고 온 것이지 싶습니다. 황야에서 이 범죄자들은 자신을 인솔하는 김혜정을 공격한 뒤에 도주하려고 하는데, 이때 갑자기 몰려든 공산당 팔로군 군대에게 당해서 모든 장비와 식량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물자가 없으니 황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을까지는 또 같이 동행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 다음 마을에서는 영화의 표현대로라면 "곰 같은 놈"인 신영균을 만나기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신영균에게 맞아죽을까봐 다섯명의 범죄자들이 고분고분 신영균을 따라다니면서 죽음의 임무에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영균이 "곰 같은 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특공대 대원들이기 때문에 이 범죄자들에게 기관총과 수류탄까지 다 지급해줬는데, 난동 한 번 제대로 안 부리고 도망치려는 시도 한 번 제대로 안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해 놓아봤자, 사실 별 말은 안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나마 이 영화에는 이 정도의 별 말도 안되는 수준의 이유조차도 별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것 보다는 애초에 이 범죄자들을 이끄는 진짜 특공대원 김혜정에게 무슨 역할을 주는 것이 좋았지 싶습니다. 김혜정이 매섭게 특공대를 관리하고, 특공대들에게 어떤 약속과 제안으로 나름대로 범죄자들이 협조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밝혀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김혜정은 명색이 특공대 정예대원이면서도, 히죽거리면서 비웃는 범죄자들에게 간단히 총을 빼앗기고 범죄자들의 장난거리로 전락하기 일수입니다. 허장강은 김혜정을 붙잡아 끌고 가면서 여유롭게,

"신부를 데려가는 신랑이 신방을 차려놓지는 못하여, 그저 황야의 들판일뿐이로만, 그래도 천지신명이 이렇게 그대로 내려다 보고 있는 곳이니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 않소?"

따위의 말을 읊조릴 정도이기까지 합니다. 범죄자들이 진짜 도덕 모르는 이기적인 놈들이라는 느낌을 풍기기에는 좋습니다만, 그래놓고 김혜정이 헤어나올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는 반대로 이야기가 무척 답답해져 버립니다. 더우기, 이런 이기적인 놈들이 대체 왜 목숨걸고 싸우는지 안가르쳐 주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사악한 놈으로 표현된 것마저도 별 쓸데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후, 일행은 한 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을에는 "친일분자를 처단하고" 어쩌고 하는 격문이 붙어 있습니다. 공산당 팔로군이 습격해 휩쓸고간 마을인 것입니다. 이 영화는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에 나온 것으로, 공산당은 일단 악당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공산당 팔로군을 거의 무슨 마적떼거리 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부 사항을 보면, 실제 40년대 사항이 어느 정도 엿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공산당 팔로군들은 스스로 공산 혁명을 일으키는 군대임을 자처했기 때문에, 일본군과 친하게 지낸 부자들, 혹은 그런 혐의를 씌운 사람들을 처벌 - 약탈하면서, 물자도 얻고 동시에 반대 백성들의 민심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당시의 인기 코메디언 양훈이 팔로군들에게 당한 중국인 부자로 잠깐 나오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범죄자들은 약탈 당한 집을 보자, 범죄자의 흥분이 치솟아, 자기들도 약탈을 하면서 행패를 부리려고 합니다. 이들을 이끄는 가장 매서운 범죄자 황해의 대사인즉,

"오늘을 너희들의 생일 잔치로 알아라! 우하하하!"

입니다.

그러나, 이 집에는 정보를 전해듣고 기다리고 있던 10년째 이름을 날리며 활약하고 있는, 불사조 같은 독립군 요원 신영균이 있었습니다. 신영균은 정체를 알려주겠다면서 가슴팍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호랑이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신치고는 아직 검은색 붓으로 칠한 물감이 마르지도 않은 것이 너무 드러나서 좀 조악한 면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리하여, 스스로 "광야의 호랑이"가 자신이라는 정체를 드러낸 신영균은 일단 먼저 반항하는 황해를 두들겨 패버리고, 반항하면 다 죽여버릴 기세로 범죄자들을 제압합니다. 그리하여 신영균은 특공대장이 되어 특공대를 이끌고 용문교까지 이끌고 가려 합니다. 신영균에게 두들겨 맞은 황해는 신영균과 언젠가 다시 한 번 결투를 해서 이기겠다고 이를 갑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 개성 강한 대원들로 되어 있는 특공대 대원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일본군 감시망을 뚫고, 용문교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공산당 팔로군들에게 약탈당한 마을에서 한 번 싸우고, 검문소 처럼 생긴 언덕위의 일본군 부대에서 한 번 싸우고, 호수인지 강물인지 위에 지어져 있는 수상촌(水上村) 형태의 일본군들과도 한 번 싸운 끝에, 드디어 용문교에 도착합니다. 대원들은 죽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마지막 폭파임무를 앞두고 잠을 청하고, 허장강은 김혜정을 붙들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면서, 개죽음 당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같이 홍콩으로 도망가서 자기가 숨겨놓은 예금으로 잘먹고 잘살자고 합니다. 물론, 김혜정은 이를 거절합니다.

다음날, 용문교 철교 폭파 작전이 시작됩니다. 작전은 특공대원 염소가 인근 마을 주민으로 위장하고 공산당 팔로군이 공격해왔다고 헛소문을 내서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면 총잡이 황해가 철교 위에서 남은 적들을 기관총으로 제압하고, 줄타기를 잘하는 꼬마가 줄을 타고 철교 교각에 올라가 폭탄을 장치하는 것입니다. 월선과 돼지는 이것을 엄호하기 위해 엄호사격을 준비하고, 신영균과 김혜정은 뒤에서 이 모든것을 감독하면서 최후의 순간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용문교는 여전히 거창해 보이고, 지금껏 싸움에 내부 분란을 겪으며 목표물 바로 앞까지 온 상황이라는 생각에 꽤 긴장감이 흐릅니다.

하지만, 지금껏 복선으로 조금씩 암시되어 있던 내부의 배신자가 이 모든 것을 방해합니다. 배신자는 바로 돼지로, 자신의 부모가 일본군 특무대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배신을 할 수 밖에 없다고하면서, 소리를 질러 일본군들에게 적이 왔다고 알리고, 도화선을 자신의 무기인 단도로 끊어버립니다. 상황은 낭패로 치달아, 꼬마, 염소 등은 죽게 되고, 황해는 30년 앞선 람보가 되어 기관총을 맨손으로 치켜들고 마구 난사해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일본군과 맞서다가 나뒹굴어 떨어지게 됩니다.

눈앞에서 또한번 실패할 상황이 되자, 언제나 용문교 폭파만을 생각해 왔던 김혜정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용문교를 폭파하겠다는 생각에 극히 흥분된 표정을 짓습니다. 김혜정은 화약을 들고 도화선이 남아있는곳 까지 뛰어가면서 화약을 뿌리고는 거기에 불을 붙여서 도화선에 불을 당긴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혜정이 미친척하고 탄환이 빗발치는데 화약을 들고 뛰려고 하자, 특공대원 월선. 그러니까 허장강이 나서서 말립니다. 그리고,

"이건, 여자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닌 것 같군."

이라고 한 뒤에, 자기가 대신 나서겠다고 합니다. 언제나 음흉하게 웃으면서 여유로운 베짱부리는 농담을 읊조리던 허장강에게 이 대사는 꽤 멋지게 어울립니다. 하지만, 다음에, 별 필요 없이 "내가 이렇게 목숨을 거는 이유는 조국에 대한 양심 때문일까. 돈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계집때문일까" 운운하면서 좀 이상한 장황한 마지막 남길말을 하는 통에 좀 구구해져 버립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또 그럴싸합니다. 허장강은 비장한 각오로 화약을 들고 뛰어나가는데, 허장강이 나서려고 하자마자, 바로 코앞으로 총알이 날아와 제대로 출발도 못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출발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절망적이고도 절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사실적이고도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허장강은 결국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력하지만, 일본군의 탄환에 쓰러집니다.

일이 이쯤되자, 신영균은 김혜정과 함께 돌격하여, 총알로 도화선 끝을 쏘아 맞춰서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는 다소 황당한 제안을 합니다. 기관단총을 마구 난사하면서 설친 끝에, 도화선에는 정말로 불이 붙습니다. 그러나, 김혜정은 안타깝게도 그와중에 총을 맞아 죽어가게 됩니다.

이부분의 연출은 매우 아깝니다. 멋진 장면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영화내내 한이 맺혀 자나깨나 용문교 폭파만을 생각하던 김혜정의 눈앞에서, 드디어 그 용문교가 폭파되는 결정적인 장면아닙니까. 그런데, 김혜정이 그 순간 죽어가고 있습니다. 김혜정은 자기가 죽으면서 동시에 용문교도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마치 김혜정이 용문교를 위해서 살아온 것 처럼, 그 의지나 집착을 강렬하게 혹은 허무하고도 아련하게 보여줄 수도 있었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장면에서 영화는 신영균에게 감격적인 대사를 하게 하고, 잡다하게도 김혜정은 신영균 품에 안겨, "선생님, 마지막으로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요. 사랑해써요. 호랑이." 운운하는 특공대원이 아니라 뭔 이수일 심순애 같은 대사만 재미없게 읊조리게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신영균이 죽은 시체들을 보면서, 장황하게 한 마디씩 시적인 대사를 읊는데, 별로 감격적일 것은 없는 상투적으로 그냥 한마디씩 위로하는 대사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소모한 뒤에, 황해가 피를 흘리며 다가와서 신영균과 마지막으로 결투를 하자고 청하는 것입니다. 황해는 네 말만 믿고 죽도록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영광도 없고 승리의 쾌감도 없고 그냥 비참한 죽음 뿐이라면서 신영균을 욕합니다. 두 사람은 열발자국 물러선 뒤에 총을 쏘는 서부영화식 결투를 합니다만, 방아쇠를 당겨야할 순간, 둘 다 서로 같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습니다. 서로서로의 양심의 가책과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발견한 것을 표현한 것인데, 앞뒤 사연이 잘 맞지는 않지만, 하여간 열발작 물러선 뒤에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순간에 같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 자체는 꽤 멀쩡합니다. 소위 "죄수의 딜레마"를 영화 소재 속에 집어 넣은 것 중에서는 순간적인 장면 연출자체는 썩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신영균은 "또 불사조 광야의 호랑이인 나혼자 살아남았네. 아 외롭고도 허무해라" 하면서 엉엉 울면서 표표히 길을 떠나는 것이 끝입니다. 그토록 강인하고 거칠었던 별별 잔혹한 전쟁터의 비참함을 헤치고 다녔던 "광야의 호랑이"가 고작 3일 동안 범죄자 출신 특공대와 함께 했다고 이렇게 눈물을 철철 흘리는 것은 도리어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는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끝없는 허무함을 느낀 신영균이 그냥 쓸쓸하고도 고달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슬픔을 끝까지 억누르는 듯한 무표정한 모습으로 떠나는 편이 더 그럴싸했지 싶습니다.

이 영화 "광야의 호랑이"는 기술은 썩 괜찮은 축에 속하는 영화 입니다. 내용 중에 등장하는 무기와 화약, 폭파효과는 국방부의 실탄지원을 받았는지 아주 훌륭하고, 황야를 헤메던 특공대 대원을 공산당 팔로군들이 지평선 저쪽에서 나타나 포위해버리는 장면에서는, 웅장하고 화려한 면모도 충분히 살아 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엑스트라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를 조정하는 것과 넓게 펼쳐진 들판의 지평선을 잘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수백명 정도의 엑스트라만 사용하면서도 수천명 정도의 굉장히 많은 병력이 사방에서 몰려와 에워싸는 거창한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또, 총싸움 장면도 멋진 것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특히, 폐허가된 마을에서 일본군 병력이 쳐들어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하는 장면은 연출이 상당히 훌륭한 축에 속합니다. 집안, 지붕위, 닭장속, 여러 군데에 숨어 있는 특공대 대원들을 번갈아가면서 잘 들어오게 보여주고, 각각 대원들의 표정과 긴장감을 화면에 담아내면서, 몰려오다가 몰살당하는 일본군들의 모습도 탄환이 날아가는 소리에 맞춰 잘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는 화면이 짧게 끊겨서 빠르게 넘어가서 속도감과 번쩐번쩍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잘 전해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화면이 요동치면서 정신없는 전투의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돌아보자면, 만주물의 개성도 살아 있고, 그러면서 2차대전 특공대 영화다운 요소들도 정석을 대강 맛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너무나 힘없는 김혜정과 그나마 이상한 사랑과 순정의 이야기로 잘못 빠져 보이는 그 부분이 가장 큰 흠이고, 동시에 이 부분이 제대로 보충되어서 "도대체 저 불한당 같은 놈들이 왜 특공임무에 목숨을 거나"하는 결정적인 헛점도 메꾸어져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남아 있는 영화의 모양은 이런 부분에 비는 구석이 있어서, 그냥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 않을 때는 대강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사라졌다가 다시 밝아지면서 그냥 어찌저찌 해결된 셈 치고 다음 이야기가 나오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양은 상당히 매끄러운 편인 이 영화의 편집기술에도 흠이 생기게 해버렸습니다.


그 밖에...

2차대전 특공대 영화 답게, 독일군 군복 입고 독일군인척 하는 것도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한국영화 만주물이기 때문에 일본군 군복 입고 일본사람인척 합니다. 실제로 일본군이나 만주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한국인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독일군 군복입고 변장하는 미군 특공대 이야기보다는 더 현실적인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결전에 보면, 서영춘이 도망칠때, 뒤에서 총알이 쏟아지는데, 화면이 도망치는 서영춘에 맞춰서 같이 부드럽게 뒤로 물러서도록 촬영된 부분이 있습니다. 보기드문 현란한 촬영기술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별 결정적인 장면이 아닌 무의미한 싱거운 장면에 쓰여버렸습니다.

서영춘은 마지막 죽을 때 원래는 대사 없이 죽는데, 특공대의 수다쟁이 떠벌이 치고, 너무 대사 없이 오래 비틀거리기 때문인지, 서영춘이 후시녹음 하는 도중에 추임새로, 괜히 "어이쿠, 두더지형, 나도 총 좀. 나도 총 좀 갖다 줘" 운운하는 별로 안 웃기고 안 맞는 대사를 슬쩍 즉흥적으로 끼워넣어서 녹음해 놓았습니다.

이 영화에 관한 KMDB 자료에는 60년대에 악역으로 유명했던 배우 장혁이 나와야 할 자리에 대신 9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끈 젊은 배우 장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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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08/10/10 00:42 # 답글

    아~ 다른건 잘눈에 안들어오는데.... 나바론 요새....ㅠㅠ;;
    안쏘니 퀸 대인..ㅠㅠ;;
  • 박민성 2008/10/10 01:52 # 답글

    KMDB 덕분에 장혁은 '시간을 달리는 청년'이 되었군요^^
  • 2008/10/10 11: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uha 2008/10/10 20:43 # 삭제 답글

    제목은 광야의 호랑이 인데 정작 호랑이의 비중은....
  • 게렉터 2008/11/07 11:15 # 답글

    닥슈나이더/ "나바론 영화"류의 영화들과 나가는 방향이 비슷한 영화이고, 수준도 나름대로 갖출법한 것은 갖추고 있는 편이라서, 이 영화 기억되고 회자되는 일이 많습니다.

    박민성, 비공개/ 사진만 좀 이상한 듯 보입니다.

    shuha/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그냥 멧집만 좀 좋을 뿐 참 재미도 없고 개성도 부족하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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