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벽화) 신라가 삼국을 한 집안으로 한 지 얼마지 지나지 않았을 때에, 서라벌에서 두 사람이 세상에 용이라는 동물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둘 중에 대야성에서 온 사람은 용이 있다고 하고 있었고, 금관경에서 온 사람은 용이 없다고 하고 있었다. 대야성에서 온 사람이 말 하기를, "옛날 해모수가 다섯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이야기는 세살바기 어린아이도 알거니와, 백제의 서울이 불타 그 임금이 남쪽으로 도망칠 무렵에 검은 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고기(古記)에도 똑똑히 나와있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서울 거리 마다 우뚝하게 보이는 저 아홉층 탑이야말로, 무릇 천하의 명찰이라하는 황룡사이니, 바로 저 황룡사가 누른 용이 날아간 자리를 옛날 조정에서 기이하게 여겨서 세운 곳이지 않은가? 그대는 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옛 성인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것이요, 옛 사관들이 야비하게 붓을 놀렸다고 하는 것이요, 나아가 성상께서 망령된 자의 후손이라 하는 것이니, 어찌 그대가 옳겠는가? 그대가 옳다면 그대는 옛 성인들과 현인들과 조정을 욕하는 것이나 진배없네." 하니, 그 말을 다 듣고 금관경에서 온 사람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답하기를, "해모수의 이야기는 부여와 고구려의 임금들을 높이고자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간신배들이 떠들어댄 허황한 아첨에 지나지 않고, 자비 마립간 때에 다섯 장군을 보내어 백제를 구할 때에 검은 용이라 하는 것은 검게 타오르는 연기와 먹구름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물며 황룡사는 애초에 불법(佛法)의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니,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황룡사의 황룡은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황룡의 신기루를 본 것이라하는 것이 도리어 더욱 부처의 도리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리하여, 용이 있다, 용이 없다 하는 두 사람의 말다툼이 좀채 끝나지 않으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러고 있으니, 개 중에 옛 고구려 땅에서 온 사람이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분께서 이처럼 용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긴 이야기를 하고 계시니, 저는 제가 용에 대해 보고 겪은 일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옛날 인평(仁平) 연간에 당나라 임금 이세민이 고구려로 군사들을 이끌고 크게 쳐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인평은 신라의 연호로 634년에서 647년 사이를 말함) 수십만명에 이르는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 벌판을 새까맣게 뒤덮으니, 요하 동쪽 천리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곽과 요새마다 병사를 늘렸으니, 날마다 큰 싸움이 벌어져 들판에는 고구려 사람과 당나라 사람들의 시체가 끝도 없이 널브러져 있어서, 치우는 사람도 없이 수만마리 까마귀 떼의 먹이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때에 병사가 되었으므로, 개평현성(蓋平縣城) 밖에 진을 치고 있는 고구려 군사 무리에 하나가 되어, 당나라 군사들이 머지 않은 곳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곳은 이미 많은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라서, 밭고랑 마다 죽은 사람의 피가 고여 엉겨 붙어 있고, 걸어다니다보면 진흙바닥에 사람의 손이나 발이 잘려서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저는 다른 병사들이 잠을 편히 잘 수 있도록 천막 앞을 지키는 번을 맡아, 밤새 천막 앞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달도 없는 초하룻날 밤인데,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어서 그나마 별빛도 드물었습니다. 그런즉, 사방은 어둡고, 멀리 당나라 군사들이 밝혀 놓은 횃불만 수백 수천이 늘어선 모양이 깜빡깜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고구려 군사와 당나라 군사들이 깊은 밤에 서로 겁을 주어 잠을 못자게 하려고 함성을 질러대니, 밤을 틈타 적이 기습을 하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나 놀라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밤에 마음을 졸이며 천막 앞을 오가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천둥이 치는 소리 같은 것이 크게 울리더니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지는 듯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높은 하늘 남쪽 저편에서부터, 커다란 흰 것이 하늘 높이 날아와 저편 북쪽 하늘로 지나가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여, 고개를 들어 보는 하늘을 온통 덮고 지나갈 정도 였습니다. 그 흰 것은 마치 은이나 백금처럼 번쩍거리는 것이었는데, 깊은 밤인데도 그 번쩍이는 빛이 매우 강하여 눈부시기가 극심했으며, 바로 머리 위로 지나갈 때는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빛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날아가는 빠르기는 번개가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언뜻 쳐다 보면서도 그 모양새를 제대로 알아 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순간에 언뜻 드는 느낌이 마치 커다란 산이 갑자기 하늘 높은 곳으로 솟구쳐 뛰어올라 대낮의 태양처럼 타오르며 날아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간에 사람들이 말하는 용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이 날아간 북쪽으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멀리 하늘에서 언뜻언뜻 번쩍이는 것이 보이기에, 걸음을 재촉하여 밤길을 한참 걸어갔으니, 고구려 군사들의 진이 있는 곳에서 족히 십리는 나와 걸었습니다. 거기에는 높다란 바위 산이 있었는데, 바위산 안쪽이 깊게 움푹 파여 있어서 마치 성벽을 두른 것과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런즉, 그 모양새가 마치 하늘을 날아갔던 것이 그 바위산 안쪽으로 숨어들어간 듯 하였습니다. 흰 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저는 바위산 위로 기어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산의 바위는 마치 사람이 깎고 다듬은 것처럼 소용돌이 치는 모양이어서, 산의 바위와 쌓인 돌들이 벽돌을 쌓아서 둥글게 담을 쌓은 것과 같아 보였습니다. 어찌하여 태초부터 솟아난 바위산의 모양이 마치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 것처럼 매끈하게 둥근 것인지 참으로 기괴하다 생각하였으니, 올라가서 보니, 그 바위산의 모양은 커다란 그릇과 같았습니다. 만약 그 키가 백리쯤 되는 거인이 있어서 그 커다란 손으로 산의 바위를 깎아 그릇을 만든다면, 바로 그 바위산의 모양과 꼭 같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생각하기로, '혹시 원래는 보통의 바위산이 있었던 것을 아까 날아갔던 그 흰 용과 같은 것이 조화를 부려서 이렇게 그릇모양과 같은 동그란 구멍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여겼습니다. 바위산 꼭대기를 지나서 바위산 안쪽에 움푹 패인 곳으로 들어가면서 살펴보니, 그 바닥에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이는 매우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넓이도 꽤나 넓어 보였습니다. 밤에 보는 연못물은 마치 먹물처럼 검디 검어 보통 연못과 달라 보였고, 또한 물이 고인 곳에서 흔히 나는 물풀 냄새나 물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서, 그저 빗물이 고이거나 시냇물이 흘러든 연못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연못 옆에는 우물과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모양이 깊은 바닥까지 뚫려 있는 듯 보였으며, 우물 앞은 은으로 만든것과 같은 덮개로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우물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그 은으로 만든 덮개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나니, 마치 통로와 계단 같은 것이 있어서, 우물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저는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이 연못이 용이 사는 연못이라하면, 이 안에 흰 용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물 안으로 저는 들어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으며, 고금천하의 어느 누구 하나 이런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물 안에 들어가보니, 우물 안이 마치 또한 넓은 벌판에서 보는 하늘과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물 안에 커다란 하늘이 있으니, 이날은 달도 없는 초하루 밤이었으나, 우물 속 하늘을 보는 저의 눈 앞에는 보통 달보다 수십배는 되어보이는 보름달이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주위를 온갖 기이한 별들이 빽빽히 들어차서 빛을 뿜고 있으니, 그 붉고 푸르고 누른 온갖 빛깔의 별빛이 쏟아내리듯이 휘감겨 올라서, 그만 입을 딱 벌려서 혼자서 길게 놀라는 소리를 지를 정도 였습니다. 저는 우물 속 하늘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여 저도 모르게 한 발 두 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으나,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별세계로 영영 떨어지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너무나 신비로운 광경에 겁을 먹고 저는 다시 우물 밖으로 돌아 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대낮과 같았습니다. 밝은 낮에 다시 보니, 연못 주위에는 검게 그을려 불타 죽은 사슴이며 노루와 같은 산짐승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습니다. 우물속으로 용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독한 기운을 뿜어 많은 짐승들을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저는 긴 싸움에 배가 고파 그저 타죽은 짐승들을 뜯어 먹으며, 정신 없이 배를 채웠습니다. 이내 기운을 차려, 산 밖으로 다시 나와 보니, 놀랍게도 고구려 군사와 당나라 군사와 싸우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씨의 세상이 망하고, 세상이 바뀌어 삼국이 한 집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연씨의 세상이 망했다는 것은 대막리지에 올라있던 연개소문이 죽고 그 아들들이 다툼 끝에 망했다는 것을 말함) 하룻밤 연못을 구경하고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고 나왔더니, 그 사이에 우물 밖에서는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도 믿지 못하여, 며칠 동안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그동안 일어난 일을 물으며 어안이 벙벙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바위산은 산이 마치 성벽과 같은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석성산(石城山)이라 하니, 주위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위산 안의 연못과 우물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 또한 나중에 다시 바위산에 들어가 그 우물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만, 그저 황량한 돌무지의 바위판이 펼쳐져 있을 뿐으로, 도무지 하늘을 들여다 보던 그 우물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옛 고구려 땅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용이 있다고 하던 대야성에서 온 사람은 황홀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과연 삼한에 다시 없는 괴이한 이야기다. 어찌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흰 용이 없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용이 없다고 하던 금관경에서 온 사람은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내, 대야성에서 온 사람은 기분이 좋아서, 옛 고구려땅에서 온 사람에게 좋은 안주와 아름다운 술을 사주며, 흥겹게 같이 취하며 즐거워 하였다. 한참을 먹고 마시다가, 옛 고구려 땅에서 온 사람이 술에 취하여, 자리를 떠나가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금관경에서 온 사람이, 그제서야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대야성에서 온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술잔을 들고 있는데, 금관경에서 온 사람이 그 옆구리를 찌르며 말하였다. "저 자는 당나라 군사가 무서워서 밤에 도망친 죄를 지은 군졸에 불과하다. 무릇 벗과 형제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같이 싸우던 병사들이 피를 쏟고 뼈가 부러져 죽어 갈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하고 묻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울 것이니, 어떤 거짓말을 못하고 무슨 까닭을 지어내지 못하겠는가. 그대는 적병이 무서워서 산속으로 도망쳐서 산짐승을 잡아먹으며 숨어 있다가 싸움이 끝나서 기어나온 자가 자기 죄를 가리고자 꾸며내어 둘러대는 허황한 이야기를 믿는가?" 그 말을 듣자, 대야성에서 온 사람은 웃음을 멈추었다. - 원본 출전 성경통지(盛京通志) *13. 석성산(石城山) "성경통지"에 나와 있는 기록 석성산에 용담이 있다는 묘사이며, 조선후기의 학자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에 석성산에 대한 기록이 이것저것 모여 있는 것이 있어서, 이것들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았습니다. 구체적인 묘사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1609년의 괴이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빛 같은 것에 대한 목격담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에 포함된 13회 이야기 입니다. ** 지난 2주일 동안 너무 글을 뜸하게 올린 듯하여 죄송합니다. 앞으로 2주일 동안에는 가능하면 이틀에 한 번 꼴로는 짧은 글이나마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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