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교 (趙州石橋)

(신라 조각상)

신라가 삼국을 한 집안으로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에, 북쪽에서 배 한척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서라벌 사람들이 북쪽 변방의 물건들 중에 진귀한 것이 있는가 구경하러 모여들었으니, 대개 양의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나 순록의 뿔을 깎아 만든 물건들이 많았고, 부여와 패려의 땅에서만 나온다는 약초들이 비싼 값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배에서 내린 사람 중에 한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있었다. 옷을 보니 옛 고구려 땅에서 온 사람인듯 보였다. 노인의 옷은 낡았고 얼굴은 말랐으나, 눈빛이 영롱하고 또한 굳게 다문 입이 자뭇 위엄이 있어서, 그저 주린배를 채워 보려고 노를 젓느라 배를 타는 날품팔이 같지만은 않아 보였다.

노인은 무거운 것이 들어 있어 보이는 아주 큰 보따리를 하나 지니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소나 말과 같아 보일 정도로 커 보였다. 마침내 사람들이 노인 앞을 많이 지나다니게 되자, 그 앞에서 보따리를 풀어 놓았으니, 그 안에는 커다란 돌로된 사자상 둘이 들어 있었다.

돌 사자의 모양은 서로 닮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것이 한편으로는 엄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면서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여, 금새라도 뛰어다닐듯 보였다. 가만히 보니, 돌에 사자의 갈기 털 하나하나, 가죽 힘줄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새겨서 그 세밀하고 아름답기가 결코 보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때 한 진골 부자의 졸개가 있어서, 노인의 사자상을 보고 이야기 하였다.

"참으로 노인장의 사자상은 아름답기가 대단하오. 남산 절집마다 등잔을 밝히고 있는 사자상 중에 노인장의 사자상보다 나은 것이 몇이나 있겠소? 노인장의 사자상을 사들여 주인 어르신의 대문안 뜰에 세워 두려고 하니, 금 1근에 그 사자상을 파시오."

말을 마치며, 진골 부자의 하인은 황금을 꺼내며 사자상을 가져 가려 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으며, 사자상을 집어가지 못하도록 팔지 않았다.

그러자, 한 승려가 그 모습을 보고 노인에게 이야기 하였다.

"저자가 비록 서라벌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갑부의 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물건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어찌 이와 같이 귀한 물건에 겨우 금 1근을 말하는가, 이는 도리어 귀한 물건을 파는 노인장을 욕하는 것이다.

노인장의 사자상은 참으로 그 모습을 보는자 마다 가슴이 떨리고 겁이 나지 않는자가 없을 듯하니, 그 기운이 넘치기가 대단하오. 옛날 백제 임금이 세상에서 기이한 돌과 바위를 모으고 괴상한 장식과 조각을 좋아했다고하나, 어찌 그 중에서도 이와 같은 것이 있었겠소. 노인장의 사자상을 사들여 큰 절에 두고, 부처를 공경하도록 고요히 모셔두려 하니, 금 10근에 그 사자상을 파시오."

말을 마치며, 그 승려는 황금을 꺼내 놓고는 사자상을 가져 가려 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으며, 사자상을 집어가지 못하도록 팔지 않았다.

그러자, 한 화랑이 그 모습을 보고, 노인에게 이야기 하였다.

"저 자가 비록 금강경, 법화경, 반야경을 읽어, 소승과 대승의 이치를 함께 깨달은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물건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어찌 이와 같이 귀한 물건에 겨우 금 10근을 말하는가. 이는 도리어 귀한 물건을 파는 노인장을 욕하는 것이다.

노인장, 노인장의 사자상은 정교하고 세밀하기가 가히 고금에 보기 드문즉, 이는 수십명의 공장이들이 한데 힘을 합하여 정성을 기울여 몇날며칠 수고를 곁들이고 그 지혜와 마음을 모아 만든 것이니, 그 솜씨가 대단하오. 지금 태대각간의 묘에 열 두 가지 동물을 새긴 돌조각이 있으니 사람들마다 그 솜씨를 칭송하나, 어찌 그 열둘을 모두 합친들 이와 같겠소. 노인장의 사자상을 사들여 나정(蘿井)과 대나무 숲 앞에 세워두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사자상 앞에 절을 하며 옛 솜씨를 우러러 칭송하도록 하려 하니, 금 100근에 그 사자상을 파시오." (태대각간이란 김유신을 말함)

말을 마치며, 그 화랑은 황금을 꺼내 놓고는 사자상을 가져 가려 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으며, 사자상을 집어가지 못하도록 팔지 않았다.

노인이 100근의 금과도 사자상을 바꾸려하지 않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 모두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자, 그 소란한 기색을 듣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삽시간에 노인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돌사자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자상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100근의 금에도 팔지 않는 물건을 감히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노인에게 진골 부자의 하인이 물었다.

"도대체, 그 돌사자는 어디에서 누가 만든 것이기에 1근의 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오?"

노인이 답하기로,

"그것은 말할 수 없소."

하였다. 그러자 노인에게 승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 돌사자에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10근의 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오?"

노인이 답하기로,

"그것도 말할 수 없소."

하였다. 그러자 노인에게 화랑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인장께서는 누구시에, 도대체 100근의 금으로도 살 수 없는 돌사자를 들고 다니며 팔아 보려고 하고 계시오?"

노인이 답하기로,

"그것 또한 역시 말할 수 없소."

하였다.

그랬더니 세 사람이 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도대체 그 전말도 알 수 없는 물건을, 그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어찌 백근보다 많은 금을 주고 살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모여 들었던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며, 세 사람의 말이 옳고 노인이 이상한 사람이라며 욕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한참 만에 노인은 실망한 기색으로 다시 돌사자를 보자기로 싸면서 탄식하였다.

"세상에 보기 드문 보물인즉, 세상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찌 제값을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게 노인이 돌사자를 싸서 떠나가려는데, 그때 마침, 많은 사람을 행렬로 세워 이끌고 한 귀한 사람이 나타났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가축을 이끌고 나타났으니, 가죽으로 만든 옷에 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 무리 였다. 하는 말과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니, 그 사람들은 신라 조정에 들어왔다 나가는 돌궐 사람들이었다.

나타난 돌궐 사람들 중에서 그 우두머리가 직접 노인 앞으로 나왔다. 돌궐 사람들의 우두머리는 직접 찬찬히 돌 사자를 살펴보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여봐라. 내가 이 노인장에게 돌사자의 값을 치르려하니, 우리가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꺼내고, 여기에 신라 조정에서 받은 보물 중에 내어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이 앞에 쌓아서 노인장에게 바쳐라."

그리하여, 단숨에 노인앞에 왠갖 금은붙이와 보석으로 꾸민 여러 장신구들이 수북수북 쌓였으며, 아름다운 비단과 진기한 보화를 모아 놓은 궤짝들이 계속 줄지어 늘어섰다. 그에 더하여, 돌궐 사람들은 귀한 말 스무 마리와 낙타 열 마리를 내어 놓았으며, 또한 칼 잘 쓰는 사람 다섯명, 활 잘 쓰는 사람 다섯명, 창 잘 던지는 사람 다섯명을 더하여 내어놓았고, 마지막으로 돌궐인들이 붙잡아 끌고 다닌 당나라 미녀 다섯명, 안남국 미녀 다섯명, 대식국 미녀 다섯명을 모두 내어 놓았다.

그러자, 그제서야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사자를 주고는 물러났다. 노인은 그 모든 보물들을 지니고 다시 배에 올라서서, 뱃사공에게 금덩이 하나를 쥐어주며,

"이 배를 내가 모두 사려고 하니, 지금 내가 말하는대로 가자."

하고는 순식간에 바다 저편으로 표표히 사라졌다.

돌궐 사람이 어마어마한 값을 치르고 돌사자를 산 것을 보고, 처음 돌사자를 사려 하던 진골 부자의 하인과 승려와 화랑은 자뭇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세 사람은 돌사자를 산 돌궐 사람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물었다.

"비록 저 노인의 돌사자는 그 만든 솜씨가 오묘한 것은 사실이나, 무릇 신라에는 돌을 깎아 모양을 만드는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며, 또한 삼국이 한 집안이 된 뒤로는 천하의 보물과 같은 돌조각을 만들어내는 백제의 박사들 또한 서라벌에서 찾아 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공께서는 돌사자 둘을 두고 그토록 귀한 값을 쳐 준 것입니까?"

돌궐 사람은 아무 답을 하지 않고, 말없이 세 사람 앞을 지나 북쪽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세 사람은 더욱 사연이 궁금하고 이상히 여겨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세 사람이 계속 돌궐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다니니, 배가 바다를 떠나기 직전에 뱃전에서 돌궐 사람 중에 말먹이는 아이 하나가 있어서, 그 아이가 세 사람에게 사연을 이야기 해주었다.

"옛날 당나라의 조주(趙州) 땅에는 돌로 만든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여서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세하게 깎아 놓은 다리의 조각과 장식은 마치 칼날 처럼 날카로웠고, 불꽃이 타오르는 듯 화려하였으므로, 멀리서 보면 다리가 마치 둥근달이 막 물에서 떠오르는 것 처럼 빛을 내는 듯 보였고, 가까이서 볼 때에는 무지개가 물위에 걸려서 용이 물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옛 한문 표현에서는 무지개 자체를 용과 같은 형태에 울긋불긋한 무지개 색깔을 가진 괴물로 묘사함)

얼마전에 신라에 들어오지 못한 고구려의 남은 떠돌아다니는 병졸의 무리들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변경을 소란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무리가 힘을 얻고, 돌궐 사람들과 거란 사람들과 한 데 뭉쳐서 당나라의 큰 골치거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주인은 돌궐 사람 중에 싸움을 잘하는 묵철(默啜)의 무리가 되어 당나라의 조주, 정주 지역을 들어가 분탕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사람, 돌궐 사람, 거란 사람이 함께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휩쓸어 지나갔는데, 이에 길을 지나기 위해 조주의 유명한 돌다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다리 앞에 이르자 사람들이 타고 있던 말이 저마다 다리 앞에 꿇어 앉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성질 급한 고구려 사람들은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잘라버리려고 겁을 주었으나, 그래도 말은 꼼짝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인이 말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가는데, 자세히 보니 다리 위에 푸른 용이 한마리가 엎드려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인은 용을 보고 겁을 먹어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으며, 우리 주인 뒤를 따라 오던 많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겁을 먹고 숨을 죽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곧 청룡이 사람들을 보고 몸을 흔들며 마구 소리치면서 빠르게 움직이니, 사람들은 모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저마다 뿔뿔히 흩어져 정신없이 도망쳤으니, 우리 주인은 그 때 사흘을 꼬박 계속 도망쳤다고 합니다.

후에 고구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래 조주의 돌다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돌다리 난간 위에 우뚝하니 자리잡고 있는 돌사자였는데, 그 모습이 과연 대단하였다 합니다. 그것을 신라 태종이 백제를 합치던 무렵에, 한 고구려의 첩자가 몰래 깊은 밤에 돌다리로 숨어들어서 난간에서 돌사자를 떼어간 일이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 첩자가 다리에서 돌사자를 떼어갔더니, 마치 다리의 모양이 발이 잘린 말이나, 날개가 잘린 솔개와 같아 보여서 매우 측은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사람들이 돌사자를 새로 만들어 붙였으나, 결코 그 모습이 옛날만하지 못했다합니다. 그리하여, 고구려 사람들은 그때부터, 조주의 돌다리가 고구려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말을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인은 발해 임금의 신하가 되어 옛날 해모수와 해부루의 땅에서 큰 무리를 거느리고 산과 강을 뜰로 삼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우리 주인에게 조주 돌다리에 있던 돌사자는 성난 대군을 막아내고 십만 도적떼를 쫓아내며, 한 나라를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 보물이라 할만합니다. 어찌, 조주의 돌다리가, 황룡사의 장륙상이나, 신라 조정의 만파식적 만한 값이 못된다 하겠습니까?

오늘 돌사자를 들고 나온 노인장은 필시 그때에 조주의 돌다리에서 돌사자를 훔쳐갔던 고구려의 첩자였을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바뀌고 삼국이 한 집안이 되었다고는하나, 혹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자신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돌사자가 나온 곳을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돌궐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는 그대로 떠나갔다.

다음날부터 진골 부자의 하인과, 승려와, 화랑은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으나 돌사자의 간곳을 아는 사람은 그후로는 아무도 없었다.

- 원본 출전 태평광기(太平廣記)


*14. 조주석교(趙州石橋)
"태평광기"의 이야기는 중국쪽 시각에서 본 조주 석교에 대한 설화의 서술입니다. 임의로 조선후기 역관의 치부담을 쌓은 이야기의 형태를 빌려서 훔친 돌사자를 팔아보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거꾸로 옛일을 돌이켜 보는 형태로 꾸며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에 포함된 14회 이야기 입니다.
by 게렉터 | 2008/11/08 12:17 | 기타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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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오거 at 2008/11/08 13:18
와...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D
Commented by 마무리 at 2008/11/08 20:56
재미 좋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백혼 at 2008/11/10 00:0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포스팅 활동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만파식적이 원래 만만파파식적인 겁니까?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8/11/16 23:48
오거, 마무리/ 감사합니다.

백혼/ 기록에 따르면, 만파식적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으면서 기분좋아서 업그레이드 이름으로 만만파파식적이라는 이름을 새로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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