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퀀텀 오브 솔러스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는 22편까지 장수한 시리즈 영화의 주인공을 또 들이미는 영화의 최신작인 만큼, 기본 내용은 초특급 뛰어난 우리의 제임스 본드가 나와서 두 시간 동안 열나고 빛나게 잘 싸운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이 잘싸우는 사나이 제임스 본드는 완연히 자리 잡은 모습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허를 찌르는 맛이 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 양반 모양새가 80년대에 한참 유행했던 무뚝뚝하고 냉소적이고 냉철하고 겁나는 근육질 기관총 난사쟁이라는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난사인지 조준사격인지)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의 태도나 활약하는 모양은 80년대의 실베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월츠제네거가 돈 많이 받고 연기하던 인물들이나, 척 노리스와 스티븐 시걸이 돈 좀 덜 받고 연기하던 인물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맨날 무표정한 얼굴로 싸돌아다니면서 거침없이 두들겨 패버리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별 말도 없이 인상쓰고 있다가 가끔 냉소적인 농담이나 한두마디 틱틱 읊조리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규칙이나 예의는 상당히 무시하는 인간인고로, 상관인 "국장님"은 골칫덩이로 여기고 있지만은 그래도 일은 어떻게든 해결하는 가장 듬직한 최고의 부하라는 내용도 어김없이 따라 붙습니다.

굳이 그 시절의 다른 영화와 견주어 보자면, 이 영화 속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80년대 실베스타 스탤론이 무뚝뚝하면서 엄청나게 총싸움 잘하는 형사로 나왔던 "코브라" 정도와 갖다 붙여 볼만 합니다. "코브라" 영화 속 실베스타 스탤론 모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선글라스도 이 영화에서도 한 번 쓰고 나와 줍니다. 말은 없고, 거칠고, 상관이고 규칙이고 나발이고, 하여간 나쁜놈을 작살내기 위해서 겁도 없이 다 부수고 다니고, 이 인간이 정신이 정상인지 어떤지도 분명치 않은데 그래도 왠지 여자들은 좋아하고, 그렇습니다.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영화 출연작 중에서 견주어 보자면, 대충 "터미네이터" 쪽이 가까운데, 자동차 추격전에서 주인공의 태도는 확실히 터미네이터 시리즈스러운 맛이 강하거니와, 화장실 문고리를 부수는 장면은 "터미네이터" 영화 속의 장면과 거의 같은 내용이라고 할만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80년대 주인공이라도,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가벼운 코메디 연기에 밑천을 갖고 있던, "레밍턴스틸"의 피어스 브로스넌 모습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이 영화는 람보와 코만도류의 말없고 힘센 사나이 주인공이 설치고 다니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주인공이 피흘리며 상처 났는데 무심한 표정으로 옷을 찢어서 묶어 응급처치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80년대의 "코브라", 실베스타 스탤론)

(2000년대의 "007 퀀텀 오브 솔러스", 다니엘 크레이그)

그런 80년대 영화들은 기실 따지고 보자면 70년대 샌프란시스코 형사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껄렁하니 말없게 조용히 폭력이 넘치는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80년대 유행에 맞는 폭발 장면과 기관총 장면으로 계승된 것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무뚝뚝하고 비정/냉철한 주인공이 첩보물 속에서 싸우는 모양은 골라 보자면, 일본 만화 "고르고13"과 아주 비슷한 느낌도 많이 납니다. 특히나 그냥 신나고 화려하게 박살내 없애고 끝나면 깔끔한 마무리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울적하고 씁쓸하고 암울한 느낌으로 폼잡는 모양이 아주 "고르고13"처럼 맞아 떨어집니다.

아직도 계속 연재가 이어지고 있는 "고르고13"이 60년대 말에 처음 연재가 시작될 때 제임스 본드가 불러일으킨 첩보물 유행에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점을 짚어보면, 이승철이 10대 취향 맞춰 보려고 TV 농담 프로그램 뛰어다닐 때 소녀시대는 "소녀시대"를 부르는 모양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르고13)

(제임스 본드)

그리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번 영화는 그런 인물을 등장시켜서 결과적으로 꽤나 성격 있고 볼 것 많은 모양으로 구성해내는데 성공했다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저그런 재탕, 답답한 철지난 이야기 수준은 훌쩍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눈에 확 뜨이는 점은 그렇게 주인공의 태도는 20년전쯤에나 많이 유행했던 옛날 영화 주인공 같이 잡아 놓고는, 보여 줄때는 "본 울티메이텀"이나, 최근의 "이글 아이"에 나온 방법으로 화면을 꾸몄다는 것이 었습니다. 싸움에 맞춰서 화면이 번쩍거리듯이 움직이고 후다다닥 편집이 내달리면서 어지럽게 각도와 위치가 휙휙 넘어가는 매우 짧고 빠른 화면 연출로 싸움 장면을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먹질 소리 총 갈기는 소리 자동차 부딪히는 모양에 따라서 화면이 마구 뒤바뀌는 모양은 제대로 알아먹기 어려울 정도로 무자비하게 뒤흔들리는데, 그래도 "이글 아이" 같은데 나오는 몇몇 장면처럼 정말로 알아먹기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그 영향을 받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전쟁영화에서 전쟁터의 혼란상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이 흔들리고 음향효과에 맞춰 뒤집히던 그 감흥이 람보 같은 주인공이 죽어라 싸우는 모습에 씌워졌고, MTV 뮤직 비디오에서 심장 박동수를 올리기 위해 짧게 잘리치면서 번개같이 화면 전환되는 그 속도도 달라 붙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빠르고 속도를 높여서 만든 화면은 성의있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불안한 배경을 가슴에 와닿게 하면서도 박력있는 파괴감도 살려줘서, 이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도 독하게 침착한 주인공의 실력과 성격을 보여주는데도 안성맞춤이었다는 느낌이 났습니다.

옛날에 왕가위 감독이 유행할 때 대충 화면 색깔 이상하게 만든 뒤에 화면을 좌우로 비틀비틀 흔들어대면 "몽환적인 연출"이라고 우겨대던 잡스러운 장면들이 넘쳐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도 사실 좀 잘못했으면 화면 헷갈리게 흔들어대면서 빠르게 왔다갔다 화면 비추는 시점만 아무렇게나 팍팍 넘기기만 하면서 대강 때웠다고 스스로 좋아하는 조악한 수준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화면 전환을 거치면서 유지되고 연결되는 심상을 살리는 기술에다가, 시점을 오가면서 감상과 속도감을 조절하는 솜씨를 이용하려고 공을 많이 들인 듯 보였습니다.


(심문 받을 붙잡힌 악당)

간단한 예로는 이탈리아에서 말타고 경주하는 축제가 벌어지는 것을 배경으로 그 한 구석에서 제임스 본드와 M이 악당을 붙잡아 놓고 심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줄거리 요소는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본드가 악당을 붙잡아 놓고 MI6 요원들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악당은 꼼짝없이 붙들려 있습니다. 그 악당을 조용한 지하실로 끌고 들어 왔습니다. 이제는 입을 잘 열지 않는 악당을 심문하기 위해서 주인공들이 고심하는 지루하고 골치아픈 가라앉은 대결의 느낌이 될 것입니다. 그냥 줄거리만 나열하면 그런 내용에서 멈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 지하실 바깥의 행사장에서 축제 행상 때문에 내달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축제의 말과 기수들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경주가 시작 되기 전의 웅성거리는 분위기와 함께 심문 장면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경주가 시작되기 직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있는 축제 장면이 화면 속에 깔려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임스 본드가 악당을 다 잘 붙잡아 놓고 곱게 심문하는 장면속으로도 팽팽하고 뭔가 일이 터질것 같은 느낌이 스며들었습니다.

축제의 장면들과 축제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 소음에, 악당과 M, 제임스 본드의 표정과 말을 잘 섞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고 말이 달려 나갈 것 입니다. 그런 터져나가기 직전의 긴장감, 불안감이 스며들어 온 것 때문에, 심문하는 이 인간이 뭔가 엄청난 소리를 하거나 말도 안되는 비장의 무기를 들이대거나 하면서 난리를 칠 것 같습니다. 하다 못해 열받은 제임스 본드가 성질이 뻗쳐서 "사진 찍지마!" 한 다음에 그냥 심문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앞뒤 안가리고 악당을 잔인하게 죽여 없애 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생깁니다. 무슨 일이 터질까 어떻게 될까 시선을 붙잡습니다. 그래고 뒤이어서 기대대로 필사적으로 뛰고 달리고 치고 받고 하면서 싸우는 장면이 터져나오면 더 그럴싸해지는 것입니다.


(경주 시작!)

좀 더 신기한 것으로는 이탈리아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종탑에서 싸우다가 떨어지는 장면에서 화면이 떨어지는 사람을 따라 이동하는 부분 같은 것이 단연 와닿을만 합니다. 싸우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화면이 같이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맨이 제임스 본드 옆에서 같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내린 것처럼 화면이 만들어져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런 연출은 80년대 일본 애니매이션의 공중전 장면이나 로봇이 격투하는 장면 같은 데서 아주 극단적으로 묘사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백발의 미사일이 주인공을 격추하러 날아가는데, 그 사이를 엄청난 조종술로 기막히게 묘기처럼 피해가면서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 탄막을 뚫고 목표물로 돌진해가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연출할 때, 마치 미사일에 카메라를 붙여서 영화를 찍거나 비오듯 미사일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신나간 경지로 조종하는 주인공의 비행기 바로 옆에서 못지 않은 솜씨로 카메라가 스스로 날아다니면서 찍어야 찍을 수 있는 모양으로 화면을 꾸몄습니다. 실제로 카메라가 날아다니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화면을 만들면 되니까, 과감하게 그런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한때는 애니매이션에서만 가능했던, 시점이 기막히게 날아다니면서 화면을 보여주는 기술들이 심심찮게 잘 박혀 있습니다. 정신 없는 싸움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힘이나 충격을 전달해주는데도 감각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정말로 헷갈리게 핑핑 돌아가는 격투의 와중에 주인공이 반사적으로 매우 빠르고 정교한 판단을 내린다는 점도 빠르면서도 잘 알아 볼 수 있게 보여줍니다.

총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 늦게 줍으면 악당에게 총맞아 줍습니다. 영화속에서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보통의 흔한 방식은 아마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줘서 그 때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과 총을 먼저 줍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관객에게 확실히 전달하려는 것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왠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그 빠른 속도를 그대로 살리되, 화면이 이동할 때 느껴지는 절묘한 가속도와 발빠른 화면 전환을 통해서, 느린 동작 같은 것 없이 그런 장면을 충실하게 전해 줍니다.


(높은 곳에서 달리고 떨어지고 매달리고)

이런 장면 연출에 걸맞게 어울리는 것이 사실성을 강조하는 느낌이 있는 격투, 무예들입니다. 이 영화에서 싸우는 솜씨는 타격감이나 중량감이 충분히 느껴지게 되어 있고 화려한 몸의 동작을 강조하기 보다는 사람을 아프게 두들겼다는 충격을 강조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뼈부러지는 소리나, 붉은 피가 주먹질에 맞춰 튀기는 것을 살짝 살짝 넣어서 효과를 더 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빠른 속도와 힘을 다하는 근육의 긴장, 헉헉거리는 숨소리까지 열심히, 실력 좋게 싸운다는 것을 잘 전달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한국식 액션" 운운하면서 맨날 그저그런 깡패 싸움 장면만 반복하던 몇몇 한국 영화들을 부끄럽게할만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처럼 굳이 칼로 손가락 자르는 장면 보여주는 류의 맨날 보여주던 흉악한 장면 또 펼쳐지는 것 없이도, 싸움이 처절하고 파괴적인 느낌이 삽니다. 람보스러운 주인공이 사람 두들겨 패 죽여도 별 감정의 동요도 없는 코만도스러운 인간이라는 점이 살짝 살벌하게 표현되도록 해 줍니다. 아이티에서 주먹질하며 싸우는 장면은 표본이라할만합니다.

한편, 엘레베이터에서 한순간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다 두들겨 패버리는 장면은 사실 성룡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의 재치있는 솜씨를 강조하기 위해 나오는 구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의 연출방식과 어울리면 이게 성룡나오는 것 같은 웃기고 흥겨운 느낌과는 많이 달라집니다. 성료 영화 억지로 따라하는 조잡한 모양에서 벗어나서, 우울하고 살벌하고 솜씨는 무진장 좋은 최강의 특수요원이 군더더기 없이 깔금하게 폼잡는 장면의 하나로 타오르는 것입니다.


(살벌한 싸움)

이 영화는 이런 몇몇 부분 뿐만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촬영, 편집, 음향, 음악의 기술이 꽤나 뛰어나 보입니다. 대놓고 돈을 들이고 장기를 자랑하는 부분 이외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부분들도 말끔하다는 것입니다. 구분을 해 보자면, 빠른 화면 전환과 살벌한 느낌을 강조하는 격투가 어울리는 것 등등은 이 영화만의 특징적인 부분이 잘 보이는 내용 내지는 요즘 영화 기술의 도전과 성취가 잘드러나는 대목들이라고 할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 외에 좀 진부하게 해먹던 것 또 하는 것도, 잘 꾸며서 재미나도록 잘 다듬어서 보기 좋게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공연에서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푸치니의 "토스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장면은 공연 중에 장중하고 거창하고 화려한 음악이 웅장하게 울려펴지는 것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배경으로 어울려드는, 수많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고전미로 치장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성악가들의 목소리와 화려하게 치장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현실적이고 살벌한 총질과 싸움질에 기묘하게 어울려들면서 모순적인 대조를 살리면서, 동시에 운명과 상징의 장엄한 느낌도 터뜨리는 모양 역시 정석대로입니다.

여기에 이 영화 속 줄거리에 깔려 있는 007과 베스퍼의 사연이 오페라 "토스카"의 분위기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는 것 역시 잘 갖다 맞춰 놓았습니다.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라 트라비아타"를 보게되는 장면이나, "문스트럭"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라 보엠"을 보려고 이끄는 내용과 견줄만 합니다.


(오페라라면, 나는 스카르피아 역할이란 말인가?)

이런 내용들이 어울려서 펼쳐지는 모양새는 훌륭합니다. 특히나 드디어 제임스 본드가 악당 일당들의 뒤에 따라붙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 상의 전환점과 연결되면서, 제임스 본드의 영웅적인 위치를 노골적으로 쇼하는 장면 없이도 은근히 느껴지게 합니다. 다른 영화에서 보던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만큼 잘 꾸며 놓은 것이 결코 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오페라 공연을 사람들이 옷 빼입고 와서 고아한 사교 파티 기회로 활용하는 그 공연장 안팍의 묘사는 아주 훌륭합니다. 진짜 오페라 공연장의 VIP석 주변을 영화 찍으면서 찍어서 이렇게 맞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제임스 본드가 좋은 옷 입고 폼잡는 클래식 공연장이라는 멋부리는 느낌이 풍성하게 넘치면서도, 정말 실제 요즘 그런 곳의 모습 같은 사실성, 실제감도 딱 떨어집니다. 한국 TV연속극에서 여자 주인공이 실장님을 따라가면, 외국인들 대충 섭외해서 국제적인 외교 행사처럼 꾸며 놓은 곳에서 가짜로 춤추는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강 대충 때려잡은 요한 슈트라우스2세 음악이 아무거나 흘러나오고 있다가, 여자 주인공이 발 밟고 실장님은 허허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그런 모양 보다 여러가지로 나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따지고보면 그나마 제임스 본드는 "실장님"이 아닌, "중령님")

그 외에도 뮤직 비디오나 사실주의 영화에서부터 개척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연출들이 잘 응용되어 있는 모습들도 군데군데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좀 정신없고 당황했을 때 주로 나오는 것으로, 연결되는 주인공의 동작을 중간 과정은 잘라내면서 연속으로 달아서 보여주는 수법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빗고 겉옷을 입고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해 봅시다. 이럴때 거울 앞에 있는 주인공이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빗고, 겉옷을 입는 동작을 연속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꼭 연결 동작을 찍는 것처럼 하나의 시점으로 화면 구도는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넥타이를 매기 시작하는 장면을 잠깐 보여주다가, 살짝 건너뛰어서 머리를 빗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러다가 또 살짝 건너뛰어서 겉옷을 입는 동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끝도 없이 나오는 연출 방식인데, 이 영화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사람 두들겨 팬다음에 능숙하게 뒷처리하는 장면에서 이 방식을 응용했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사람 패 죽인 뒤에 약간 격앙된 감정과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있는 당황한 느낌을 살짝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살인을 한 직후면서도 능숙하게 신속한 동작으로 뒷처리를 줄기차게 가다듬는 모습이 나오는 까닭에 주인공이 냉정한 경험 많은 전문가라는 사실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

이때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성을 더 잘 전달해주기 위해서, 배경음악과 인위적인 음향효과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오직 주인공의 모습과 표정만이 화면에 보이게 했습니다. 이 인간의 성격과 심정에 대해서 관객은 한 번더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옷에 피를 철철 바르고도 태연자약)

이 영화의 장점들이 이런 줄거리와 이야기 소재를 갖다 놓고 그 위에서 꾸며 놓은 연출과 촬영 기술들이었다면, 단점들은 줄거리나 이야기 소재 자체에 부족함이 있는 것으로 묶어 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이야기 내용 자체가 TV쇼 "앨리어스"와 "LOST"가 그 극단을 보여준 무조건 이상한 내용을 마구 흩뿌린 뒤에, 그 뒷수습은 "다음편에서 어떻게 되겠지"로 미루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음모와 비밀조직, 영문을 알 수 없는 괴이한 상황, 괴상한 비밀의 단서, 어딘가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을 듯한 인물 등등이 슬쩍슬쩍 등장해줍니다만, 영화 내용에는 막상 끝까지 봐 봐야 결론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뭔가 임무가 있고 싸울 건덕지가 있어야지 제임스 본드가 설치게해 줄 수 있으니까 대강 신기한 상황을 던져 놓고, 에라 "다음편에 계속..." 으로 때우자 해버리는 것들이 태반입니다.

약간 스포일러 일 수 있겠습니다만, 예를 들면, 막판에 악당 한 놈이 "'퀀텀'(quantum)에 대해서 다 이야기 해 줬잖아!" 라고 합니다, 그러나 관객은 그 퀀텀이라는 게 뭐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악당이 리보프 선생이 쓴 책을 들고 양자역학 강의를 007에게 해 준건지, 아니면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하드디스크 생산기업의 부침에 대해 들려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둘 다 아니지 싶은데, 이거야 속편 내용이 구상되는대로 꾸며서 대충 둘러대려고 관객들에게 안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본드, 언제부터 우리가 J.J.애브럼스나 따라하게 된건가?/ 다음편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수께끼가 넘치는 묘한 분위기를 살리면서 신기하고 거창한 내용들을 잘 꾸며 낼 수 있다면야, 이렇게 영화의 핵심 소재들을 대충 속편에서 어떻게 때워 보자고 엉성하게 넘어가는 것도, 도리어 기대를 돋구고 점차 정체를 파헤치는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수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신기하고 거창한 소재를 싸움과 갈등에서 환상적으로 드러내는데 부족하고, 부실한 면이 있습니다. 주어진 싸움 장면에 대해서는 화면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부분부분 나타나는 내용들이 성의 있는 대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소재나, 세계를 모험하는 최고의 첩보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장엄하다면 장엄하고 신난다면 신나는 큼지막한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자 주인공을 납치해가는 악당의 차를 쫓기 위해서 시내에 대형 탱크를 타고 뛰어들어서 도로를 다 박살내 가면서 뻑적지근한 추격전을 펼친다는 류의 유쾌할만큼 신나는 소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피 마르소가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려 사랑을 속삭이면서 "당신에게 이 세계를 모두 줄텐데"라고 속삭이는데, 뭔 답답한 정신나간 미친 맛 간 바보 천치 영구 온달인지, 감히 그런 소피 마르소 얼굴에다가 대고, "이 세계 모두라는 것이 충분하지는 않지." 읊조려버리는 놀라운 낭만을 이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의 절정부분에서는 사막에서 수소 가스가 터지는 가운데 싸우는데, 오히려 이 싸움의 운동감과 힘은 앞의 여러 다른 보통 싸움 보다 부족합니다. 주인공은 겉옷으로 얼굴만 가리고 있으면 어떠한 폭발 속에서도 "튕겨나가서" 살아남는 허황된 영화속 세상을 다시 한 번 관객이 싱겁게 맛볼 수 있는 기회 정도에 그칩니다.


(악당 소굴을 박살내면서 끝나는 것이 시리즈의 전통이라면 전통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복수, 감정, 운운하는 개인적인 뒤틀린 심사가 그렇게 공감이 가느냐 하면 그것도 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면 줄거리를 이어나가는 힘 정도는 있어서, "색즉시공" 막판 눈물바다나, "두사부일체" 막판 눈물바다 보다야 사정이 낫습니다. 하지만, 오갈데 없이 사막에 떨어진 살인자 둘이서 갑자기 시적인 대사를 낯뜨겁지도 않은지 줄줄이 장황하게 읊어대며 이상한 쓸쓸한 분위기 잡아대면서 "명대사"만들기 대회를 둘이서 펼치는 것이 딱히 배우들이 인상쓰는 것 만큼 와닿는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때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이번 사막장면이 좀 더 구구한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전체 줄거리 자체도 흥미로운 맛이 없고 식상한 맛을 억지로 피하려고 노력한 척 하려다가 더 추해지는 면도 좀 드러납니다. 이 영화는 미국 정보부가 대놓고 악당들로 등장하고, 주인공편인 영국 정보부도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야비한 인간들이 득세하는 것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3세계 중심으로 꾸며 세계관을 따라가면서 참신한 구도를 이용해서, 주인공이 "빌어먹을 우리나라가 제일 나쁜 나라네"라면서 회의감에 젖는 더 골치아픈 진짜 스파이 영화처럼 밀어붙여 볼 듯한 느낌도 언뜻 비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이런 구도는 정말로 핵심 요소로 잡히지도 못했고, 색다는 관점을 환기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이야기 만들거리를 잘 꾸미지 못해서 할 이야기가 부족해지니까, 막판에는 더럽고 추하게 사는 원주민들이 물이 없어서 목말라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온 영웅이 구원해주면 원주민들이 좋아하게 된다는 정반대의 줄거리로 꺾어버리고 맙니다. 일본사람들이 괜히 한국사람 욕할 때, "한국사람은 예의 없이 말소리가 시끄럽다"고 하고, 한국사람이 괜히 중국사람 욕할 때, "중국사람은 예의 없이 말소리가 시끄럽다"고 하고, 중국사람이 괜히 필리핀 사람 욕할 때 "필리핀 사람은 예의 없이 말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는 그 편견의 도미노를 이 영화 속에서도 똑똑히 지켜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가 하나라는 증거인지?

냉전시대의 정치 구도에서 벗어난 요즘 정치 상황을 반영해야된다는 생각은 나름대로 과시하려고 해 봤지만, 그래봐야 별 의미 없이 그냥 미국 정보부 욕하는 대사와 콧수염 난 살찐 사람 한 명이 "멍청한 공화당원" 이라는 놀림거리로 나타난데 그쳐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좀 소재의 참신한 맛이나 재미난 배경이 좀 부족하다보니, 환상적이고 영웅적인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 옛날 시리즈에서 잘 먹혔던 것을 재탕하는 형식으로 꾸며서 그나마 방어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이런것이 또 스포일러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007 골드핑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자재만 바꿔서 또 써먹고 있고, "007 문레이커"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으로 소문났던 장면을 상대만 살짝 바꿔서 또 써먹고 있습니다. 옛날에 괴이하고 신기한 것으로 성공했던 것이니 만큼, 보는 순간의 느낌은 재미나고, 옛날 시리즈 팬들에게는 반가운 맛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앞뒤 맞지 않고 흐름이 좀 부자연스러운데 재미거리 하나 추가해 보려고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이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효과에는 못미쳤다고 생각합니다.


(......)

차라리 세계 각지로 배경을 재빨리 이동하는 구성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세계 이곳 저곳의 이국적인 향취를 좀 잘 담아내는 시간과 화면을 갖추는데 좀 더 노력하는 쪽이 좋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만한 관광 홍보 자료 따위는 압도해 버릴 만큼, 여행 가고 싶고 휴가 가고 싶은 마음을 자아내게 해서는 그 자체를 여유로운 즐길 거리로 만들어주는 영화같이 해낼 수도 있었지 싶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007 어나더데이(Die Another Day)" 못지 않게, 세계 이쪽과 저쪽으로 배경이 바꿔넘어가며 연결되는 흐름이 아주 경쾌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이런 점에 별로 큰 공을 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냉정하고 빠른 싸움 장면에 여유로운 관광지 보여주기 장면이 안 맞아서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만, 좀 쓸데 없이 장황하게 아무것도 없는 사막 풍경을 연거푸 계속 자주 많이 보여주는 후반부를 생각한다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탈리아 이곳저곳의 모습들은 좀 더 여유를 갖고 화면에 담아내도 나쁘지 않았지 싶고, 아이티나 볼리비아 거리의 모습에서도 좀 더 특징적인 인물이나 풍정을 배경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사막에서 왜 이렇게 오래 찍는 겁니까?)

배우들을 보자면, 제임스 본드 영화니 만큼,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왕이고, 그 밖의 조연급 인물들은 좀 부실한 면이 이리저리 보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영화의 핵심인 무뚝뚝하고 냉철하면서 엄청나게 솜씨는 좋은 굳은 인간을 연기하는 모습이 출중하고,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그런 속에 슬쩍 어딘지 마음이 동요하는 구석이나, 감정이 흔들리는 구석이 조금씩 베어 나오는 모습을 거의 나노 기술 수준으로 세밀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떡대 좋은 모습도 이 영화 속 주인공에는 그만이고, 피튀기면서 주먹질하는 싸움 연기도 깔끔합니다.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시간동안 "M" 역할을 연기해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물론이고 피어스 브로스넌보다도 007 시리즈에 더 오래 붙어 있는 배우가 된 주디 덴치는 이 영화에서는 약간 흠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M"은 대사가 좀 많은 편인데, 워낙에 대사가 특수조직에서 "조직의 위기에 분노하는 국장님" 대사의 틀 속에 답답하게 가짜 같이 심심하게 짜맞춰져 있는 것들이 많아서, 약간 대사 연기가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재떨이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할 때 다니엘 크레이그와의 그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듯한 모습은 더할나위 없습니다만, 그런 부분이 많지는 않아 보여습니다.

다른 두 명의 주요 여자 배우들은 한 명은 좀 진지하게 등장하고 한 명은 좀 가볍게 등장하는데, 사실 영화 속에서 역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여자 주인공은 그냥 "도와줘요 본드~" 수준에 그치고 있고, 두 배우들은 그 "도와줘요 본드~"는 잘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볼리비아의 내란음모살인을 꿈꾸는 장군 나부랭이나 오스트리아의 항공사 직원 같은 더 작은 역할들이 연기가 작지만 철저해 보였습니다. 이 영화속에서 볼리비아는 차지철 정도의 인간이라도 민주화 투사로 보일 정도의 나라로 묘사되어 있어서, 나오는 군인들마다 모두 야밤에 부하랑 여대생 불러다 놓고 술먹다가 술취해서 열받은 부하에게 총 맞고 죽을 것처럼 아주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목 마른데 시바스 리갈은 혹시 없나?)

확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거리라고 할 수는 없는 내용이고, 도취될 수 있는 명장면, 아름다운 정경은 없는 영화입니다만, 흘러간 유행이지 싶었던 막강하고 무표정한 사나이 주인공을, 최신 유행 연출 속에서 화려하게 표현한 그 인물만은 또록또록 볼거리가 되어준 영화였습니다. 꼭 재잘거리면서 농담을 안하고, 딱히 꽃미남 머리 모양을 과시하며 가다듬는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 없는 그 사람이 노란 샤쓰 입고 있는 것을 어쩐지 누군가 좋아할 수 있고 어쩐지 맘에 들어 할 수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연출 상의 기술과 거기에 맞아 떨어지는 음향 외에, 음악 또한 여기에 충분히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주제가 부터가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만, 신나고 재미난 곡이고, 중간의 오페라 장면에서 오페라 연주 솜씨도 어떻게 잘 섭외했는지 그때 그 공연 실황을 구하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음악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리듬감도 첨가한 편곡도 한 번 듣기에 좋은데다가, 여러가지 악기로 변주되어 짤막하게 깔리는 제임스 본드 주제곡들 역시 훌륭합니다. 특히, 제임스 본드가 여유 만만하게 호텔 난간을 이용해서 탈출할 때 중후하게 깔려드는 주제곡은 제임스 본드 영화의 제임스 본드 폼잡기가 무엇인지 진수를 보여줍니다.



그 밖에...

성능 좋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제외하면 "제임스 본드 특수무기"는 거의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MI6 정보국에서 사용하는 전산체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눈여겨 볼만한 볼거리입니다. YouTube에서 대학 연구실의 새로운 연구 결과라면서 유행하던 동영상,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실의 새로운 연구결과라면서 유행하던 동영상 등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입력방식, 표시방식들이 더 깔끔하고 더 빠른 모습으로 재미나게 펼쳐집니다.

"카지노 로얄"이 60년대판으로 나온 것이 먼저 나온 것으로 친다면, 참으로 오랫만에 제목이 Ian Fleming의 원작 소설의 제목대로 나온 새 영화입니다. "Quantum of Solace"는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단편 소설 제목인데, 이 영화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영화 주제가의 제목은 "Another Way to Die"인데, 지금껏의 007 시리즈의 일반적인 통례와는 달리 영화 제목과 상관 없는 주제가 제목이 붙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로 등장했던 전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007 두번 산다" 내지는 조지 레젠비 이후로,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에 이르기까지 여유로운 유머 감각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40년 가까이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이어졌다고 할만합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티모시 달튼도 여기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실패를 맛보았고, 다니엘 크레이그 역시 전편에서는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스퍼랑 기차 안에서 농담 따먹기도 하고 턱시도 입고 거울 보면서 장난도 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전통을 다 때려치우고, 그냥 말없고 무서운 놈으로 변했습니다. 농담을 하긴 하는데, 다 비아냥 거리는 욕으로써 하는 농담 정도 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워낙 잘 어울리게 연기하고 있기에, 저는 전편 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습니다.

007 시리즈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배역이었던 Q는 이번에도 전편에 이어서 전혀 언급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습니다. 또한,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이외에 가장 중요한 고정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머니페니 역시 전혀 언급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M에게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비서 역할의 인물이 머니페니가 되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굳이 등장을 시키지 않는 것을 보면, 제작진 쪽에서 특별한 이야기거리에 엮어서 멋진 등장을 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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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8/11/16 23:41 # 답글

    머니페니가 없는 대신에 팍삭 삭아버린 펠릭스 라이터가 나왔으니 이거 참 오묘합니다. ('중령님' 이라기보다 '함장님'이지요)
  • 동사서독 2008/11/17 00:09 # 답글

    불스원샷....을 '원샷'하신 그분께 삼가 조의를 ....
  • pseudo 2008/11/17 01:31 # 답글

    매번 글을 잘 읽고 가지만 오늘은 유달리 더 눈에 잘 들어오는군요-
    맛있게 잘 읽고 갑니다.
  • 2008/11/17 10: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가명라이더 2008/11/17 17:13 # 답글

    제임스 본드는 예비역 해군중령이니까 중령님이 맞지 않나요?
  • rumic71 2008/11/22 00:53 #

    중령 계급인데 2차대전 때 함장을 했으니까요. 죽은 쿼렐(살인번호에 나오는)이 본드를 늘 함장님(캡틴)이라고 불렀댔지요. 케네디가 007을 좋아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 shuha 2008/11/17 17:53 # 삭제 답글

    다니엘 크레이그를 볼때마다.. 푸틴이 떠오르는건 저뿐인가요?
  • 주코프 2008/11/17 19:46 # 삭제 답글

    머리가 좀더 벗겨진 후의 다니엘..헐리우드의 푸틴 관련 영화로 노후는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까요..
  • rumic71 2008/11/22 00:53 #

    사실 다니엘은 007보다도 나폴레옹 솔로의 일리야를 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터인데...
  • 2008/11/24 19: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나나 2008/12/17 13:49 # 삭제 답글

    http://www.kprca.or.kr/content/contents_view.asp?CD_IDX=20&gotoPage2=1
    게렉터님께서 전문 분야별 블로그 100선에 뽑혔네요.
  • 게렉터 2009/01/01 13:14 # 답글

    덧들 달아 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약속과 달리 블로그에 자주 들르지 못해서 제때 덧글 달아드리지 못해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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