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Gran Torino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고집불통의 퉁명스러운 영감님으로 나와서는, 슬럼화가 꾸역꾸역 진행되어가고 있는 분위기 살벌한 동네에서 욕 많이 하는 독거노인으로 사는 것이 "그랜 토리노"의 내용입니다. 동네가 슬럼화 되면서 아시아계인 "몽"족들이 동네에 많이 몰려와 살게 되는데, 그러면서 무서운 영감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사람들과 엮이면서 서로 영향과 감정을 주고 받고 웃고 울고 하는 내용으로 영화는 흘러가게 됩니다.


(포스터는 좀 무시무시합니다만)

(그러니까 정수만 놓고 보면, 사실은 "유치원에 간 사나이"와 비슷합니다.)

이 영화는 슬럼이 되어 가는 껄렁한 동네를 사실주의로 그려내는 분위기가 팍팍 납니다. 더군다나 영화가 전개되는 모양이나 결말에서 부각되는 내용도 이런 류의 영화에서 다루는 "인간승리"류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진부하거나 답답하다고만 하기에는 좀 재미난 구석이 있는데, 우선 이 영화는 기본적인 재미를 시트콤 처럼 꾸며 놓은 대사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식이 많고 표현이 다채로운 재치있는 대사들이 많고, 다소간 과장된 취향과 행동양식이 뚜렷한 인물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하고, 대충 어림없는 우연이 엮이기도 하면서 차차 사람들이 친해지는, 뭐 그런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정말로 코미디물처럼 웃긴 대사들과 웃긴 상황들을 연출해 나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이런 내용들은 좀 웃기고, 재미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탈리아인 이발사가 등장하는 부분들이나 건설현장 반장 즈음에 해당하는 인물과 얽히는 잠시 동안의 이야기는 그냥 전형적인 시트콤 속의 한 장면입니다. 살벌한 대사를 하는 고집불통 영감님이지만 극적인 구조상에서는 도덕과 주인공으로서의 멋을 튼튼히 지킬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저렇게 성격이 더러운 영감님이 있고 그걸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정말로 상종하기 어려운 추악한 인간인 점도 간간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결국에는 모두가 웃으면서 귀엽게 보이기 마련인 정통 시트콤스러운 수준에서 강제로 붙들어 놓았습니다.


(급자상(quick-friendly) 모드)

그러니까, 막상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을 따져보자면 사실을 잘 그려낸다거나, 그래서 입체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극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상당히 사건의 비약이 많이 일어나는 "굿 윌 헌팅"속의 등장인물들이나, "여인의 향기"속의 등장인물들과 비교해 보아도, 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더 단순하고 그저 귀엽게 웃길 수 있는 착하기만한 사람들입니다. "굿 윌 헌팅"의 천재소년에 비하면 이 영화 속의 "타오"는 그냥 줄기차게 순진하기만할 뿐이고, "여인의 향기"의 영감님에 비하면 이 영화 속의 "코왈스키"는 끝까지 자신만의 도덕을 엄격하게 지켜나가는 거친 사나이일 뿐입니다.


(맷 데이먼은 아니구나/ 영감님도 알파치노는 아니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난 면은 바로 이렇게 시트콤 같은 재미를 위해서 꾸미고 짜놓은 내용으로 영화를 꾸미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중후하고 날카로운 현실소재의 진지한 분위기가 굳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고집불통 영감님이 자신의 "고집불통 영감"이라는 인물을 코미디 소재로 활용해서 거의 재롱부리듯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이 재미의 절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경제불황으로 파탄이 난 우울한 미국 교외의 시대상에서부터, 한 평생을 전통적인 가치 속에서 보수적인 남자로 살아온 인간이 삶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복합적인 회한을 진지하게 다루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점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가지 큰 축으로 생각되는 것 중에 첫번째는 다채로운 욕설에 절묘하게 섞여든 대사들입니다. 재치있는 대사의 재미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이런 걸 억지로 넣다보면, 현실감 없이 재담, 농담 아이디어 많다고 자랑하는 데 푹 빠져서, 주인공들이 상황에 녹아들지 않은 비현실적인 대사만 길게 떠들고 있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꽤 멀쩡한 영화인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만해도, 재미난 대사들이 영화 속에 녹아든다기보다는 그냥 재담을 이리저리 많이 알고 있다고 그 숫자를 보여주는 어색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로맨틱 코메디"라고 포스터에 콱콱 박아 넣은 영화도 그렇게 빠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인 사회의 인종 문제, 교외지역의 슬럼화등등을 다루는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가 대사 농담따먹기에 빠진다면 그야말로 가짜 같아 보일 위험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육두문자들과 관용화된 욕설에 다채로운 비아냥 수법들을 잘 연결해서 버무려 놓았고, 이런 내용들이 풍부한 대사의 재미로 부드럽게 엮이게 해 놓았습니다. 인터넷 속어 몇 개를 억지로 집어 넣거나, 문장 앞 뒤에 쌍시옷 소리만 몇 개 들어간다고 갑자기 갑갑한 대사가 진짜 말 같은 생동감있는 대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냥 화가 나서 입에서 감탄사처럼 확 튀어나오는 욕설에, 짜증나서 욕할 때 상대방의 단점이나 특징을 저주하는 것, 화를 돋구기 위해 놀려대는 말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껄렁하게 말하는 내용이 아주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이래저래 재미난 말들을 좌르르 잘 풀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썩은 쓰레기 같은 생일 선물이라니, 에라이al;sfhasilzkbvklz)

여기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도 한몫 발휘했습니다. 거의 모든 80, 90년대의 "터프가이 형사"영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더티 해리"시리즈에서 연마된 폼 잡기 기술이 훌륭하게 작렬하는 것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죽거리는 말을 살벌하게 내 뱉을 때면, 정말 "더티 해리"가 늙어서 은퇴한 시대를 다룬 무슨 패러디 코메디라도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 모습과 말하는 표정, 목소리에는 근엄하면서 퉁명스러운 모습이 충실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티 해리" 시절에 비하면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이나 긴나긴 언어유희 스러운 대사를 하는 대목을 풀어내는 솜씨는 비할바 없이 더욱더 막강해 져 있습니다.


(더티 해리 시절)

(그랜 토리노 시절)

이런 실력을 최고조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여자 주인공급 인물에게 "그림 좋은데"라면서 그 때 그 시절 수법 그대로 나타난 조무래기 악당들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내쫓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시무시한 거친 사나이로 나타나서 조무래기 악당들을 겁먹을 만하게 할 수 있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재미난 대사도 잘 해 냅니다. 이 장면에서는 이 조무래기 악당들의 연기도 매우 뛰어나서, 야비한 양아치들이 어떤 식으로 살짝살짝 겁먹고 당황하면서 내쫓기는지 설득력있게 연기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더티 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삶의 굴곡을 겪은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욕설, 비아냥과 섞어서 잘 엮어 놓은 대사 외에, 두번째로 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린 장점은 화면에 비치는 집들과 조명을 잘 맞춰 놓은 부분들입니다.

이 영화는 "로저와 나" 같은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미국내 제조업 쇠퇴로 슬럼화된 교외 중산층 거주 지역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빈집, 수리가 되지 않은 부실한 집들이 많고, 점점 치안이 불안해 지면서 백인들은 일제히 지역을 떠나가고, 집값이 싸지면서 빈민계층들과 다른 인종들의 비중이 늘어는 인종문제의 양상 등등이 영화 속의 화면에 부드럽게 담기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사는 마을은 포드 자동차 공장과 관련해서 발전했던 지역을 다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속에서 포드 자동차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교외 마을이 쇠락한 모습은 최근의 미국 자동차 업계의 몰락이나, 북미FTA와 경제세계화로 인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간 일자리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풍기도록 영화 속 동네를 다루어 보여 주면서도, 배경의 역할에 멈추면서 이야기 내용과 어울리도록 잘 조율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단순하고 직접적인 상징으로는 "잔디"가 노골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기 집의 잔디를 산뜻하게 열심히 잘 관리하는데 사력을 다합니다. 점점 동네가 슬럼으로 변해 가면서 잔디가 가꾸어진 집은 찾아보기 어려워지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잔디 가꾸는 장면을 진지하게 여러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막판에 아예 대놓고 이런 삶의 굴곡을 겪는 주인공이 스스로에 대한 존엄의 표현으로 한참 화면 속에서 펼쳐지기도 합니다.


(동네 양아치들과 영감님)

여기에 더하여, 텅빈 사람 없는 거리를 나른한 오후 햇살 속에서 잡아낸 것도 아주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하면 "로보캅"의 디트로이트 거리 같은 어둡고 외진 밤거리로 꾸미는 것이 극적인 "정통파" 방식입니다. 실제로 어둡고 외진 밤거리에 범죄가 많이 벌어지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멀쩡한 대낮 오후를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곳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낮, 활발한 생명력이 넘치는 시간이 아니라, 할일없는 놈팽이들이 방황하는 시간, 할 일 없고 무의미한 시간으로 대낮 오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배경 음악도 별로 안나오고, 활발히 일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나른하게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에 할일 없는 놈들이 시간 때우고 배회하는 모습만 헐렁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 분위기에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고, 은퇴한지 한참 지난 영감님 주인공의 쓸쓸한 감상도 돋굽니다. 더군다나, 이런 대낮에 범죄가 벌어지게 해서 더 사실적이고, 더 인상적으로 "참 동네 개판이구나"하는 생각을 심어주기에도 좋게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서, 이 영화에서는 눈부신 듯한 태양의 빛을 화면 속에 잘 보여주면서도, 쇠락한 마을 답게 우중충한 무채색 빛깔의 도로, 건물, 철조망 같은 것들이 잘 어울리도록 해놓았습니다. 이런 수법들은 십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른한 대낮)

이 영화의 한계는 역시나 줄거리의 기둥이 너무나 진부한 구도라는 것입니다. 즉 이 영화는 19세기 때부터 유행한, 강인한 백인 주인공이 "착한 원주민"들과 교류하는 이야기의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강인한 백인 주인공은 "착한 원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인간적인 감성을 자극 받고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서 영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대사를 들려주는 원주민 주술사도 등장하고, 주인공을 따르는 "프라이데이"에 해당하는 인물이나, 주인공과 원주민 집단의 연결끈이 되어주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포카혼타스"스러운 여자 주인공도 등장합니다. 즉, 이 영화 속에서 인종이라든지 다문화를 줄거리 속 요소로 써먹는 수법은 틀에 박힌 재미 없는 것으로 이 영화에 들어 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최근의 현실을 냉랭하게 반영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대사들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다른 인종의 문화에 뛰어든 백인"이야기의 구닥다리 수법은 아주 어울리지 않습니다. "포카혼타스"역의 여자 주인공이 몽족의 고유문화를 해설하는 장면이라든가 기타 "포카혼타스"스러운 역할을 할 때마다 확확 안 진지해지고, 안 그럴싸해 보이는 느낌이 났습니다.

하다못해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같은 영화만 하더라도 억지로 "포카혼타스"를 등장시키는 지경의 전형적인 "원주민 만난 백인" 이야기에서는 확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포카혼타스)

그런 틀을 따라간다고 해도 나름대로 갈등이 충실하고 절정과 결말이 박력이 있다면 뭐 맨날 하던 이야기를 익숙하고 충실하게 잘 뽑아냈다는 생각이라도 해 볼만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결말을 돋구어 내기 위해서, 기독교적인 주제의식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소재 하나를 아주 확실하고도 노골적이고도 허구헌날 써먹는 방법으로 한 번 써먹습니다. 이런 내용의 복선으로 써먹고, 기독교 소재를 더욱 더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이 영화에서는 카톨릭 기독교의 신부와 성당을 중요한 등장인물과 장소로 많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전 작업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문제는 결말이 이런 기독교적인 주제의식으로 치닫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그냥 우연히 이렇게 되었다"에 필적할만큼 대충 그냥 일이 벌어졌다고 치면서 억지로 때우고 넘어갑니다.

기독교 결말을 위해서는 누구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하고, 그러면 누구는 어떤 감흥을 느끼고 뭐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별로 그런 일이 일어날만한 마땅한 조건도 상황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억지로 그런일을 벌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쓰는 수법이 성공하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범죄 심리학의 대가이면서, 유도심문을 비롯한 화술의 천재이면서, 동시에 지나가는 사람 1,2,3도 마침 그때에 적절히 있어야만 하는 과한 우연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은 놈(the good)'이니까", 그냥 벌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사건이 막 벌어지는게 너무 심하니까, 나중에 영화속의 배역 두 명이 매우 뻣뻣하게 서로 "관객에게 영화 화면과 대사로 표현이 안된 내용에서 억지 쓴 부분의 핑계를 대주는 대화"를 나누어서 관객에게 억지로 해설해주는 대사가 잠시 나오기도 합니다.


(심지 굳건해 보이는 젊은 신부님이 나오는 것도 정석이라면 정석)

그래서 이 영화 속에는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인종문제가 풍부한 사실성이 아니라 케케묵은 방식으로 답답한 이야기로 펼쳐진다는 느낌이 상당히 있습니다. 망해가는 미국 교외 지역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장점이었던 영화에서 인종문제라는 소재가 이 정도로 나타나는데 그치는 것은 분명히 부실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우기 일상적인 생활과 교외 동네 모습을 소재로 하면서도 대사와 인물 구도, 살벌한 동네 분위기를 이용해서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려고 하는 이 영화의 발단을 생각하면 더 문제가 크게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다문화 사회를 다룰 때 쓰는 진부한 선악구도, 뻣뻣한 인물역할에 그나마 기독교식으로 감동적인 내용을 펼쳐지게 하려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거짓 꾸민 이야기 같은 느낌이 더 튀어나와 보여서 더욱더 어색하게 느껴 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총"을 이용해서 나쁜 원주민들을 물리쳐주고 착한 원주민을 도와준 백인 영웅 분위기)

이런저런 면이 있는 영화입니다만, 그래도 조그마한 기술들, 세세한 솜씨들이 면면히 살아 있는 구석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장점이 좀 더 가깝게 다가오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일 TV 연속극에서 다루는 가장 진부한 소재에 해당할만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우악스럽게 "감동의 시간"을 보내는데 쓰지 않고 살짝 암시만 하면서 넘어가는 수법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고 주인공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서 등장인물들이 별별 거지같은 인종차별 대사를 줄줄이 내뱉게 합니다만, 동네에서 기관단총들고 설치는 판국이다보니까 아무리 심한 욕설을 해도 총질, 주먹질 안하는 사람이면 도리어 착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꾸민 것도 잘 먹혔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거친 분위기가 살아 있게 하면서도 그래도 착한 사람, 그래도 친근감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충분히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밖에...

이 영화에 나오는 "몽"족은 한자문화권에서는 통상적으로 묘족(苗族)의 갈래로 간주되는 소수민족으로 보입니다. 묘족의 소수민족 문화를 직접/간접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하는 영화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나 "동방불패"일 것입니다. 블로그에 덧글을 달아주신 분께서 몽족 지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묘족이라는 표현은 한족의 자기 중심적인 표현으로 몽족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일정정도 있다고 합니다.


(동방불패의 묘족 종교지도자. 이 영화 속에도 나옵니다. 임청하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만.)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나오고, 집안을 지키기 위한 총으로 한국전쟁 당시에 사용되던 M1을 씁니다. M1의 전설적인 튼튼함을 강조하기 위한 대목인지?

코메디스러운 대사나 상황과 현실주의 영화 같은 수법이 엮이는 영화에서 나른한 오후의 감상을 이용하는 모양은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와 비슷해 보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비판적인 소재를 거의 다룰 필요가 없었던 두 영화가 이 영화보다는 좀 더 정교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생활 소음을 많이 들려주다가, 가끔씩 한 번 사용하는 음악이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던 것도 중반까지는 썩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하루" 같은 영화의 음악 사용과 비슷한 실력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도대체 "그랜 토리노"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그게 스포일러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밝혀 보자면, "그랜 토리노"는 포드사가 잘나가던 시대의 자동차 이름입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업 중심도시인 토리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인데, 카톨릭과 관련된 사건, 장소로 토리노가 유명한 곳이다 보니, 이 영화가 다루는 기독교적인 내용과 부합하는 어감도 좀 납니다. 토리노와 자동차가 엮인 영화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마이클 케인 나오는 1969년판 "이탈리안 잡"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중국 자동차회사에 서구 자동차회사가 기술을 이전해주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 됩니다. "그랜 토리노"는 아시아 자동차 회사들 때문에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망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2009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2010-01-03 18:19:41 #

    ... (天蠶變, Bastard Swordsman, 1983)" 5. 2008년의 영화: "멋진 하루" 1.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영화: "그랜 토리노" ( http://gerecter.egloos.com/4260615 )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할은 영화 내용은 경제 위기로 더욱 쇠락해만가는 미국 미시간의 교외에서 고집불통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 more

  • 게렉터블로그 : 게렉터블로그 가나다순 영화목록 (2014년 10월초 정리) 2014-10-04 21:24:14 #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그녀 (Her, 2013) 그때 그 사람들 그래비티 (Gravity, 2013)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그린 호넷 (The Green Hornet, 2011) 금보살 金菩薩 The Golden Buddha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길다 Gild ... more

덧글

  • 얼운 2009/03/24 09:53 # 답글

    밸리 타고 왔습니다.
  • 게렉터 2009/03/24 09:57 # 답글

    얼운/ 안녕하세요!
  • 오리지날U 2009/03/24 10:05 # 답글

    1빠












    ..이렇게 해놓고 가면 비웃으시겠죠? ㅎㅎ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오리지날U 2009/03/24 10:06 #

    쳇; 역시 선리플 후감상 인가 !
  • 가고일 2009/03/24 10:12 # 답글

    그랜 토리노....라는 제목만 들으면
    고집쎈 이탈리아 이민 1세 노인의 이야기로 들리겠더군요.ㅡㅡ;
  • 2009/03/24 10: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큐팁 2009/03/24 10:26 # 답글

    그르게요..중국이 피아트에 기술이전비로 제공한 4백만 달러가 바로 찰리 크로커의 목적이었으니..
  • 큐팁 2009/03/24 10:28 # 답글

    참..그랜 토리노는 '스타스키와 허치'로 인해 전설적인 차량이되었지요..듀크 오브 해저드의 닷지처럼..^^
  • marlowe 2009/03/24 11:01 # 답글

    갱 멤버 중 한 명이 가슴에 家庭이라고 문신 새긴 걸 보고 뿜었습니다.

  • 깊고푸른 2009/03/24 14:44 # 답글

    나름 감동적이던데요..
    말씀대로 약간 작위적이긴 했지만요..
  • 몽몽이 2009/03/24 19:49 # 삭제 답글

    요즘 이거말고 볼만한 영화가 없는 것 같다능...
  • 뚱띠이 2009/03/24 20:17 # 답글

    전설적인 튼튼함이라하면 모신나강이.....

    그나저나 동쪽숲영감님의 포스는 언제나...ㅎㄷㄷㄷㄷㄷ
  • spike0000 2009/03/25 02:02 # 답글

    그란 '투리스모' 와 헷갈려서 무슨 할배 레이싱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군요.
  • 게렉터 2009/03/30 13:05 # 답글

    오리지날U/ 하하. 감사합니다.

    가고일/ 저는 좀 더 확 종교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비공개/ 감사합니다. 본문중에 소개하였습니다.

    큐팁/ 역시 미국에서는 TV에서 나왔던 그 모습이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marlowe/ 아마 폭력조직을 "family"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보려고 한 장면이지 싶었습니다.

    깊고푸른/ 저 역시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몽몽이/ "더 리더"도 꽤 괜찮게 보았습니다. 시대나 방향은 다르지만 취향은 비슷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뚱띠이/ 정말 "포스" 굉장하십니다. 돌던 헛소문대로, "더티 해리" 마지막 편에 출연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spike0000/ 감사합니다. 말씀듣고보니, "할배(!) 레이싱" 영화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