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경찰에 자문을 제공하는 물리학교수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추리물로, 대도시의 한 소형 아파트에서 일어난 도시락집 주인 아주머니의 우발적인 살인을 캐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핵심내용은 도시락집 주인 아주머니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그 옆집에 사는 수학 교사가 술수를 부렸기 때문에, 이 수학 교사가 어떻게 범행을 숨겼는지 그 꾀를 밝혀 내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터도 있습니다만, 이 사람은 물리학교수도 아니고, 수학 교사도 아니고, 심지어 도시락집 주인 아주머니도 아니고, 아주 아주 비중 작은 역할입니다.)

장수한 TV추리극 "형사 콜롬보" http://gerecter.egloos.com/3705692 처럼, 이 영화도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다 보여주고 출발하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는 것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형사 콜롬보" 이야기는 이렇게 출발해서 콜롬보가 어떻게 범죄자에게 접근해 나가고, 범죄자의 어떤 허점을 파고들어서 결국 사건을 파헤치는지 그 콜롬보의 정교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미 관객들이 다 알고 있는 범인은 서서히 콜롬보가 접근해 오는 데 따라서 들킬까봐 겁먹고, 짜증내고, 초조해 합니다. 이런 범인의 감정 동요와 콜롬보와 범인 사이의 긴장감 있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감정을 이끌고 갑니다. 일본에서 소위 "도서 추리물"이라고 불리우는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보여주고 시작하는 이야기들 중에 상당수가 이런 식일 것입니다.


(콜롬보가 "아차차,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하면서 범인 만나는 듯한 장면)

이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비록 범인을 먼저 보여주면서 출발하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전형적인 형사 콜롬보 이야기와는 약간 다릅니다. 살인하는 순간까지는 모두 보여주지만, 어떻게 해서 범행을 감추었는지 살인하고 뒷수습하는 과정과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살인해놓고 안한척 하는지, 그런 내용은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줍니다만, 범인이 어떤식으로 범행을 했기에 경찰을 속일 수 있는지 하는 점은 관객들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의 경찰, 탐정들과 함께 도대체 범인이 어떻게 해서 경찰들을 속였는지 그 속임수를 같이 추리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즉, 범인은 누구인지 알려주지만, 범행 과정은 세세하게 다 보여주지 않고 숨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범인의 속임수가 무엇인지는 영화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어떤 범인이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미리 다 알려준 뒤 그 들통나는 과정만 보여주는 추리물과,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단서가 없는 살인을 저질렀는지 계속 궁금하게 하다가 막판에 탐정이 시원하게 풀어주는 추리물. 그 둘 사이의 중간 쯤 되는 모양으로 해 놓았습니다. 추리물 중에는 이런 식으로 섞어서 짜 놓은 이야기들도 꽤 있고, 아닌게 아니라 "형사 콜롬보"에도 종종 나오는 것입니다. "수사반장" 이야기들 중에도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즉, 이런 이야기들의 특징들도 선명하다면 선명한 편입니다.


(범인은 바로 이 도시락 가게 주인 아주머니)

이 영화가 이렇게 이야기를 짜놓은 그 장점은 범인의 인간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수수께끼 풀이의 긴장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꾸미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혔기 때문에 범인의 감정 동요나 범인의 인간상에 대해서 깊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범인은 어떤 슬픔과 어떤 고통을 느끼고 살고, 어떤 욕심과 어떤 갈등을 품고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인까지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감정과 갈등이 극한에 가까워지는 상황인 만큼, "사람을 죽일 만큼" 인간의 감정이 치솟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맞아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사람의 성격과 면면을 세세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범인을 세세하게 집중해서 보여주고 그 속마음을 드러내 펼쳐주면서도, 범행의 결정적인 부분은 안보여주었기 때문에, 어떤 꾀를 써서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고 했는지 하는 궁금증은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속임수를 써서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영화를 보면서 관객도 같이 의심하고 궁리하고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은 그대로 살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런 점은 꽤 잘 살아 있고, 이것은 이 영화에서 나쁘지 않은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살인을 저지른 도시락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살인 뒷수습을 하는 수학 교사는 그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꽤 그럴싸하게 화면에 잘 드러납니다. 수학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괴상한 성격에서부터 꿈을 잃고 좌절한 처지라든가, 사교적이지 않고 소심하면서 인정이 있는 성격 등등은 이 인물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이 인물이 느끼는 쓸쓸한 외로움도 적당히 펼쳐져 있고, 뾰족한 결론도 없고 삶에 힘은 빠졌지만 수학에 대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은 아련하게 남아 있는 처량하고 구슬픈 처지도 자주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화 막판에 이 양반이 울적하게 누워서 천장 얼룩을 보면서 멍하니 4색문제를 고민하는 장면은 심지어 소재도 연출도 좀 구닥다리인 기색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이 인물의 고민과 처지가 영화 전체에 걸쳐서 구석구석 잘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그렇게 진부하게 "수학 좋아하는 괴짜의 슬픔"을 보여주는 그 장면 조차도 별로 심하게 어색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수학 과목 판서에만 애써 열중해 보려는 수학 교사)

영화 연출과 연기도 이런 면에 대해서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별다른 대사나 구구한 설명 없이 좀 어질러져 있고 어두컴컴한 방안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주인공의 외롭고 쓸쓸한 처지를 드러내버리는 세트와 화면 구성부터 마찬가지 입니다. 노숙자들이 거니는 길거리나 평화롭고 활기차 보이지만 스스로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삭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도시의 정경도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립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거대한 대량 살육이나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라나 조직의 운명과 관계 있는 엄청난 음모를 다루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도시 한 켠에서 도시락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입니다. 그래서 영화속에서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연출의 현장감을 잘 살려서, 이런 사소하고 평범한 살인이 도리어 그만큼 가깝게 평범한 사람의 일반적인 인생에 닿아있는 느낌을 느끼게 합니다.

무슨 엄청난 적그리스도 악마의 처삼촌 같은 살인마가 폭탄테러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외로움과 서글픈 좌절들이 어떻게 인생을 끝내는 일과 연결될 수 있는지 와닿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 하나하나로서 생각할 수 있는 감성을 건드립니다. 작다면 작은 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결말에 이르면 이것이 인간성이나 인생의 의미에 대한 보편성 있는 질문과도 이어지도록 어떤 거룩한 서사시 같은 느낌을 비치게 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꼭 운전 면허 딸 때 교통 안전 홍보 영화처럼 마지막에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도란도란 대놓고 교훈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과연 사랑과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물론 이런 시도가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결말 즈음에 이렇게 중후하고 심각한 느낌을 터뜨려 보기 위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눈물을 흘리거나 철퍼덕 주저앉거나 하는 장면들을 줄줄히 집어 넣었습니다. 감정 표현의 길이라든가 방식이 별로 잘 잡혀 있지 못한 면도 있고, 화면 연출도 좀 답답한 그냥 항상 보던 신파극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확 와닿는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음악 사용 역시 많이 부실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움직이는데 따라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자체가 충분히 아름답다거나 독특한 멋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배경음악이 갑작스레 나오는 것이 실감나는 느낌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수학 교사의 연기 자체가 처음부터 초지 일관 그럴듯해서 영 이상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내내 그냥 울적한 표정 하나만 짓고 말도 많지 않고, 감정 분출도 거의 없이 그냥 조용히 있던 등장인물이 마지막에 급격하게 감정을 변화시키면서 정신없이 마음을 터뜨리게 해 놓았는데, 이것이 특유의 연기 실력과 연결되면서 화끈하게 대조 효과를 주는 맛이 있었습니다. 좀 가짜 갖고 억지 같다 싶으면서도, 그 굳건하던 사람의 마음이 확 터져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자기도 모르게 확확 슬퍼지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말 없고, 무표정하고, 살짝 울적한 듯한 수학 교사)

이 영화가 아쉬운 부분은 대체로 사건을 풀이하는 탐정 쪽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범인이 사용한 기묘한 속임수를 하나 둘 고민하고 파헤치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면도 강한 영화인 만큼,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탐정역할의 인물도 중요한 면이 많습니다. 궁리의 절묘함과 통쾌함을 안겨주는 역할도 해야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어려운 문제에 고민하고 답답해하는 관객의 감정을 더 커지게하고 더 흥미롭게 이끄는 관객의 분신 같은 역할을 해야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관객들은 이 탐정과 같은 편에서서 탐정의 추리를 주목하게 되므로, 이 탐정을 쳐다보고 있는 때가 많고, 따라서 탐정이 관객들에게 매력을 보여준다든가 웃긴다든가 하는 면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 틀은 그럴듯하게 출발했습니다. 냉정하고 철저하고 두뇌의 명석함이 막강한 물리학자로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잘난척을 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크고, 자신만만함이 오만과 자아도취에 가까울 정도로 넘치는 인물입니다. 대체로 고전적인 명탐정인 "셜록 홈즈"에서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 인물이고, 잘난척 하는 태도가 막강해서 웃음마저 자아내는 면이 있으면서, 약간은 염세적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소위 "까칠 매력남"으로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남자의 모습은 "하우스"에 등장하는 하우스 박사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지 싶습니다.


(이런 멋진 캠퍼스에, 물리학을 강의하는 잘생긴 젊은 교수라니. 이야기 거리가 드브로이 물질파처럼 넘실거리는구나)

그러나, 시즌1과 시즌2에서 하우스 박사가 강렬한 개성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막강한 농담, 몸코미디등을 마구 휘몰아치면서 보여주었던데 비하면, 이 영화 속 탐정인 물리학자는 재미 없는 편입니다. 물리학이나 과학 계통의 지식을 선보이는 면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교수라는 면이 재미나게 이야기 속에서 활용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양반이 탐정질하는데 써먹는 유일한 밑천은 범행의 공모자인 수학 교사와 대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에 그 수학 교사의 성격을 떠올리면서 "그 녀석 성격이라면 이렇게 했을거다"라고 때려잡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야 냉철한 천재 물리학자 보다는 혈액형 잘 맞추던 모씨의 옛날 애인이나 수원에서 유명하다는 팔달 미녀 보살 같은 점쟁이에게 더 어울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 영화의 탐정이 대충 눈치로 때려잡는 사기꾼 비슷한 점쟁이여서, 용의자들과 관련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건을 추리하려고 하는 이야기로 꾸몄다면 지금 이 영화속의 싱거운 물리학자 탐정보다 더 웃긴 맛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논리와 과학만을 중시하고 자아도취에 깊게 빠진 인물이라는 성격상의 특성이 중요하게 강조되는 대목도 거의 없습니다. 옛 친구인 수학 교사를 만났을 때, 특히 등산 같이 갈 때 장면에서는, 착하고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아저씨일 뿐입니다. 영화 속에서 수학 교사가 사용한 속임수를 파헤치는 결정적인 기술도 논리, 과학, 냉철함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 수학 교사의 습성과 심리를 따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추리는 논리, 증거, 어쩌고 운운하는 하우스나 셜록 홈즈 보다는 차라리 인간 습성에 천착하는 마플 여사 같은 할머니나, 마음 푸근한 아저씨스러운 브라운 신부 쪽에 더 어울리는 수법입니다. 하다못해 탐정의 잘난 척하는 성격으로 웃기거나 하는 대목도 거의 없습니다.


(귀납적인 이론에 근거하여 보건데, 가장 먼저 발견되는 이 영화의 치명적인 오류는 물리학 강의에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탐정의 비중이 약하다보니, 나름대로 탐정이 겪는 고난이라든가 위기상을 만들어보기 위해서 물리학자 탐정과 수학 교사가 같이 엄청나게 살벌한 눈 덮힌 산으로 등산 가는 이야기가 중간에 잠시 나오게 하기도 했습니다. 고생도 작살나게 많이하고, 죽을 뻔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심각해 보이는 이야기도 단 둘이 많이 하는 시간을 잡아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것도 딱히 잘 어울린다거나 이야기를 돋군다거나 하는 면은 없습니다. 이 영화는 눈덮힌 산의 산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도시 외곽을 주무대로 해서, 소시민의 살인을 소재로 하고, 이런 공감이 있는 분위기에서 감흥을 자아내는 것이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굉장히 동떨어지는 거대한 산맥과 히말라야 일대의 신화를 연상케하는 탈속적인 배경으로 이야기가 확 건너 뛰어 버려서 전문 산악인의 모험 같은 이야기로 흐르는 것이 좀 어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와트슨 박사" 역할을 맡고 있는 탐정의 친구, 조수, 동료, 졸개 정도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무슨 재미난 면면이 있나 하면 그것도 좀 아닙니다. "냉정한 남자" - "감성적인 여자"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통 그대로 따라가게 만든 여자 조수 비스무레한 경찰이 한 명 나와 있기는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가끔 "과학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버뮤다 삼각지대의 공포 특집기사 실어 보낼 때 덧붙이곤 하는 재미 없는 대사만 몇 마디 할 뿐입니다.

다행인 것은, 탐정 역할을 맡은 배우의 겉모습이 워낙에 눈에 뜨이게 훤칠하고 날카로운 멋부림이 있어서 그냥 겉모습의 분위기는 충분히 어울리는 것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탐정 쪽의 이야기가 약한 것이 영화 전체를 망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더하여 이 양반이 연기도 그 정도에는 어울렸습니다. 복잡 다단한 면은 없어도 대강 분위기 잡는 정도는 훌륭하게 맞아떨어지게 해 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날카롭고 냉정하고 매우 지식이 풍부하고 멋있고 빈틈 없는 물리학자 탐정)

이 영화는 속임수를 파헤치는 부분은 사실 거의 정통파 정공법 추리 소설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탐정 역할 쪽이 충분하지 못해서 확실하게 영화의 멋으로 내뿜어지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형태는 범죄나 심리보다는 "추리"와 수수께끼 풀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그야말로 전통적인 추리물 그대로에서 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지켜보면 화면에 단서들이 펼쳐지고, 수사하면서 조사되는 내용들은 하나하나 따져볼만한 수수께끼의 요소들이 됩니다. 그래서 수첩에 증거들을 표시해가면서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이 재미가 되는 이야기들이 있듯이, 이 영화는 정말로 옛날 전통 추리물 처럼 영화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관객이 직접 "내가 추측하건데 진상은 이런 것이다"하고 따져볼 수 있도록, 영화 속에 펼쳐지는 단서, 증거물, 사건 현장의 모습 같은 것들을 주목하고 고민해볼만하게 해 놓았습니다.


(사건 현장과 사건 현장에 펼쳐진 단서들을 보러 가는 길)

그러고 보면, 이렇게 사건의 수수께끼와 단서를 같이 보여주고 관객과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전통적인 추리물은 80년대 이후로는 거의 TV극에서만 자주 나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좀 넘겨 짚어 보자면, 그래서 이 영화의 부족한 부분들은 이런 내용은 60분이 안되는 TV극 연작에 적합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제작진들이 거기에 굳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시간 짜리 영화로 만든 이야기로 지금 이 영화를 보다보면 중간중간 느릿느릿한 부분이라든가 좀 지루하다 싶은 느낌이 과한 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탐정의 인물과 형사들의 개성이 조금밖에 묘사되지 못한 것도 TV 시리즈로 꾸미면 해결될만 합니다. 매편마다 바뀌는 사건들 사이에서 틈틈히 조금씩 꾸려나가도 여러 편 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모여서 충분히 보여줄 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 영화 마지막에 탐정과 탐정 조수가 앉아 있다가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어쩌고 하는 마무리는 눈에 뜨이는 헛점처럼 느껴졌습니다. 뭔가 2시간짜리 영화에 어울리는 중후한 끝을 갖다 붙이고 싶은데, 별 방법이 없으니까 교훈과 의미를 정리하는 대사를 등장인물들이 대놓고 나누는 시간을 보내게 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이 대목은 황급히 만들어 갖다 붙였는지, 편집이나 음악의 연결도 나중에 급하게 때운 것처럼 어긋나버리고 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이렇습니다만, "용의자 X의 헌신"은 그래도 범인은 알려주되, 범행 수법은 다 알려주지 않는 부류의 추리 소설 형식을 어느정도 잘 살리고 있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좌절한 사람의 외로운 심성은 영화 속에서 적절히 연출되어 있어서, 어둡고 슬픈 느낌은 남습니다. 동시에, 과학수사의 화려한 시험장비들이 없이도 단서들과 진술의 상황을 따져서 풀어내는 오래된 옛 추리물의 느낌은 요즘 영화 중에는 드문 면이 있어서 찾아 볼만한 이야기거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괴팍한 탐정, 단서와 진술을 늘어놓고 조합해서 속임수를 파헤치는 이야기는 예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가 정말 유행했던 20세기 초를 무대로 하는 것이 어울리기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자 살인"의 무대에서 이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차분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도 어울렸지 싶습니다. 현대 도시의 삭막함을 영화 속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면, 그래도 복고적인 느낌이라도 들도록, 70, 80년대 정도를 무대로 해도 어땠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원작부터가 물리학교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 소설이고, 이미 TV물로 나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덧글

  • 초딩KIN 2009/04/13 19:36 # 답글

    "영화만"으로 놓고보면 거의 맞는 말씀입니다만 드라마 "갈릴레오"와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유카와 교수의 이미지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영화로 연결되는 것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먹힐까는 쵸큼... 역시나 영화 한편으로만 따지면 교수의 케릭이 딱 잡히지 않는게 사실인거 같네요..
  • 風木景 2009/04/13 20:37 # 답글

    유아적인 움직임으로 천장에 그어지는 4색문제들과 함께 "옆나라와 같은 색이 되어서는 안 돼.."라고 읊조리는 그 장면이 참 슬펐던 것 같아요. 영화판과 TV판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스페셜드라마에서부터 4색문제, 4색문제거리길래 (스페셜드라마에 유가와의 학생시절이 나오거든요) 단순히 '뭔가 어려운 거에 취미들인' 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의 상황에 대한 비유인걸 알고나니 아, 싶더라구요. 한국의 고질적인 무단편집만 없었더라면 더 기분좋게 봤을 영화였는데 말이에요(심지어 BGM 흐르는 와중에도 툭툭 잘라대니.. 이거원..).
  • Ringo 2009/04/14 04:51 # 답글

    드라마를 모르셨군요.
    드라마에서도 유카와 교수의 강의에는 여성이 거의 90%에 달합니다. (남학생을 본 기억이 별로 없군요)
    왜냐면, 유카와 교수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주기적으로 만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거죠.

    드라마 10편에서는 모두 물리,화학,생명공학 (말 그대로 과학)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갑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범인을 은닉한 천재수학자가 유카와 교수와 친구 라는 것 말고는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물리학자가 경찰수사를 하고 있는거지요.
    그래서 저처럼 드라마처럼 해결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본 사람들은 "어째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을 듯.
  • marlowe 2009/04/14 12:59 # 답글

    결말에서 신파극으로 변하는 게 아쉽더군요.
    특히 수학자가 왜 그런 헌신을 했느냐는 걸 직접 보여준 건 사족이라고 생각해요.

    어제 메가박스에서 봤는 데, 옆에서 계속 떠드는 커플이 있어서 짜증이 났습니다.
    한 소리 해도 잠깐 조용할 뿐이더군요.
  • 에른스트 2009/04/18 14:12 # 삭제 답글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이준님 블로그에서 성대중의 청성잡기에서 '삼랑전'이야기에 대한 트랙백을 올린다고 하셨는데 왜 안 올리십니까?

    한국에서만 인기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인기없다는게 주제였습니다. (헤르만 헤세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나왔음) 그때 게렉터님은

    삼랑전이라고, 장안의 화제였으나 정작 일본인에게 물어보면 모른다는 소설이 있잖습니까, 그 소설에 대해 트랙백을 준비하신다는데 검색해봐도 없습니다.
  • 몽크~ 2009/04/19 10:55 # 삭제 답글

    글을 읽으니 왠지 몽크가 떠오르네요. 이런 방식의 수사물이 많나 봅니다. 탐정 몽크~
  • 2011/06/07 11: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1/06/07 21:48 #

    저는 영화가 좀 지나치게 우울하지 않은가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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