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스파이 Duplicity 영화

"더블 스파이"는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클라이브 오웬이 역시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는 것으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두 사람은 속고 속이는 관계로 출발하는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이 들고 친해지고, 그러면서 둘이서 손잡고 한 껀 큰 스파이 짓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현란한 총격전이나 화려한 특수무기 같은 것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고, 그저 여유로운 코미디 풍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몰아치게 짜넣은 웃긴 농담이나 폭소를 유발하는 몸코미디 같은 것은 거의 없는 편인 영화 입니다.


(왜 그렇게 쳐다봐?/ 가까이서 보니까 보톡스 티 많이 나네)

이 영화는 그 출발점이나 영화의 줄거리, 몇몇 특출나게 재미난 부분을 놓고 보면, 좀더 경쾌하고 요란뻑적지근한 대소동 코미디풍으로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알만한 기업의 총수 두 사람이 초등학생 닭싸움하다가 열받아서 싸우는 모양새로 싸움박질을 벌이는 것이 흥겨이 묘사되어 있는 영화 제목 나오는 장면 부터가 그렇습니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관중들이 한 등장인물의 이름을 연호하는 장면은 "앨리의 사랑만들기(Ally McBeal)"의 한 대목과 거의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한쪽 기업의 총수 역할을 맡은 폴 지아매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미디 연기의 끈을 놓지 않고 웃긴 표정과 웃긴 말투를 선보이고 있고, 절정 장면에서는 일류 코미디언다운 모습으로 마음놓고 그 솜씨를 뽐내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양새는 사기꾼들의 천역덕스러운 거짓말로 웃기는 사기꾼 영화들의 코미디 요소들을 따라가는 면이 많습니다. 관객이 "어쩜 저럴수가!" 라면서 정색하고 사기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면서 웃게 되는 "매버릭"이나 "화려한 사기꾼 (화려한 동업자, Dirty Rotten Scoundrels)" 같은 사기꾼 영화와 흡사한 대목은 꽤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것 때문에 경박한 말다툼을 벌이고 등장인물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양은 이런류의 사기꾼 영화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펼쳐보이는 보통의 모양에서 별로 멀지 않습니다. 영화가 맨 마지막 끝나는 부분에서 주인공들의 대사와 동작, 화면 연출은 실제로 그런 류의 많은 사기꾼 코미디 영화의 결말 부분을 가꾸는 방식 그대로 짜놓기도 했습니다.


(너 쳤냐 쳤어? / 내가 치긴 뭘치냐 이 사기꾼아 너나 사기를 치지 마라)

특히 이 영화가 코미디언들이 주도하면서 대사와 동작을 많이 뿌리는 전통적인 코미디들과 가장 딱 맞아 떨어졌던 부분은 남녀 주인공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리따운 모습의 다소 신비로운 여자 주인공과 그 여자 주인공과 경쟁 내지는 협력 관계에 있지만 살짝 여자 주인공에게 당하는 듯한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전형적인 2인조 코미디의 정석입니다. 일단 고래로 내려오는 약삭빠르고 여유로운 사람 - 순진하면서 감정 잘 변하는 사람 구도로 웃기는 것을 다채롭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남자 주인공은 그 속마음과 사연을 관객들이 다 알 수 있게 해 놓고, 여자 주인공은 비교적 알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로 해 놓은 것도 표준입니다. 여자 주인공 때문에 남자 주인공이 여러가지로 휘둘리는 감정과 고생하는 모습들을 웃기게 과장해서 보여주면서 웃음을 만들어내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순박한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이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돕기도 하고 여자주인공에게 골탕먹기도 하는 느낌을 같이 느끼면서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두 사람이 서로 속이려고 하는 이야기나, 서로 경쟁하는 이야기라거나, 사기나 스파이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이런 구도는 더욱 잘 맞아 떨어질 것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영화속의 소위 "금발 미녀"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관계들을 보다보면, 여기에 딱맞아 떨어지는 표본 같은 것들도 꽤 있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나는 결백하다 (To Catch A Thief)" 는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클라이브 오웬과 줄리아 로버츠도 극중에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나누어서 분담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예의 늘씬하고 당당한 모습이 적당히 어울리고, 클라이브 오웬도 그 굵고 힘있어 보이는 모습이 날렵한 여자 주인공에 비해서는 좀 더 순박하고 투박한 면이 있는 느낌을 잘 살려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생각을 알 수 없군. 오 마이 줄리아 너는 행복 한거니?)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이 영화가 출발과 바탕이 이렇게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웃고 떠들고 시끄럽고 요란한 정통파 코미디로 달려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마지막 최후의 결말 장면에서 약간 썰렁하게 새어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클라이브 오웬을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코미디 영화 다운 과장된 웃긴 표정 짓기나 웃긴 목소리로 감정을 떠들어대는 "웃기려고 과장하는 코미디 연기"를 거의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예외는 폴 지아매티의 모습들인데 그 모양은 분량도 많지 않거니와 그나마 그 정도도 그렇게 본격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만, 폴 지아매티의 코미디 연기 솜씨는 엄청나게 훌륭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 입니다. 웃기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재미난 음악도 없고, 영화에서 웃긴 대목을 고조시키기 위해 긴장을 높인다거나 하는 음악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이 웃기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분은 많지 않고, 그나마 풍자적으로 은은하게 깔리는 냉소를 돕는 수준입니다. 자빠지고 넘어지거나 당황하거나 놀라는 표정을 적재적소에 집어넣는 몸코미디스러운 상황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난 몸과 마음을 바쳐, 양쪽으로 웃긴다)

이렇게 전형적인 방식으로 웃기는 것을 줄여버린 선택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겠습니다. 일단 저는 단점이 좀 더 컸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웃긴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인물 구도 때문에 그랬습니다. 거기다가 결말을 꾸민 방식에서는 사실 전형적인 코미디로 돌아가기까지 하니까, 영화 전체에 좀 더 웃긴 느낌이 더 많이, 더 중앙돌파식으로 대놓고 들어가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는 많았는데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으니까 아쉬웠습니다.

물론 뻔하고 항상 하는 방법 대로 웃긴 장면을 꾸미는 대신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다른 것들도 재미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멋지고 흥겨운 맛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흥취가 서려있는 현대적인 재즈 음악을 잘 활용하고 있고, 주요 등장 인물들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근사한 정장 차림을 상쾌하게 뽐내는 맛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괜히 웃기려고 용쓰는 장면 없이 차분하게 풀어내는 연출 방법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화에 사실적인 느낌이 좀 더 감돌게 된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감정을 드러내는 위치에 있는 남자주인공 클라이브 오웬의 심경 변화와 행동이 더 진지하게 다가 온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망가지는 코미디가 가끔 나타날 때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느낌이 좀 더 부각되는 효과도 괜찮았습니다.

이런 점들은 "오션스 일레븐"이나 "오션스 트웰브" 같은 영화와 통하는 구석도 상당히 있습니다. 폭소를 몰고 오는 바보짓 같은 것이 있는 영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유쾌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서려 있는 가운데 꽤 멋있는 주인공에게 영화 보는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관객을 멋에 취하게 하면서 여유롭고 상쾌한 영화 속의 음악과 패션도 즐기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이래저래 살펴보자면, 이 영화도 애초의 목표는 그런류의 경박하지 않은 여유로운 분위기의 사기꾼 영화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지 클루니 저리 가라)

그렇습니다만, 그 방향으로도 확 멀리 밀고 나가는데는 좀 부족한 면이 있지 싶었습니다. 듣기 좋은 음악이기는 합니다만, 영화 속 화면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거나,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정말로 노래와 화면의 모양에 감격하게 되는 경지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습니다. 멋있는 남녀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화면 구도나 연출 방식에서 좀 더 화려하거나 재미가 많은 기교 같은 것들을 구경시켜 주는 것은 어땠겠나 싶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이 그렇다고 해서 나쁜편은 아니고, 영화 출연진 이름 보여주는 시작 부분 장면의 보여주는 수법 같은 것들은 또 기교적으로 재미난 맛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더 밀어 붙여서, 그런 걸 좀 더 많이 보여줬으면 그러면 더 여유만만하게 더 멋부리는 영화로 보기 좋을 수 있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하다 못해 남녀 주인공들의 능력이나 기술을 과시하는 폼잡기 장면이나 돈을 좀 때려 넣은 총싸움 장면이나 도주, 폭파 장면 뭐 그런거라도 어떻게 잘 끼워넣을 수 없었나 하는 생각마저 좀 듭니다. 물론 그런 내용과는 딱히 잘 떨어지는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남녀주인공들이 최고의 전문가로 나오고 그 직업 세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육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대체 어떤 면에서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지 별로 보여주는 장면이 없으니 흥이 좀 덜 살아나는 면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슛뎀업"에서처럼 클라이브 오웬이 엄청나게 싸움을 잘한다든지, "오션" 시리즈의 모 장면처럼 줄리아 로버츠의 외모가 매우 특출나다는 것을 화끈하게 과시할 수 있는 장면 정도가 끼어든다든가 하는 식으로 몇 부분 정도는 어떤식으로든지 영화의 방향에 맞는 적절한 폼잡기 장면이 좀 더 터져나오는 대목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좀 더 제임스 본드 류의 관광지 홍보형 영화처럼 꾸며도 될법한 모양)

역시, 다보고 나면, 웃긴 장면, 웃긴 대사의 기억이 좀 더 남는 영화라서, 이 영화에서 코미디를 좀 더 끌어내지 못한 것이 다시 한 번 아쉽습니다. 굳이 마이클 J. 폭스나, 빌 머레이 같은 뛰어난 코미디 배우의 재간 부리기가 아니더라도 은근하게 조금 더 웃음을 많이 집어 넣는 방법은 있었을 것입니다. 사기꾼 이야기를 다룬 "매치스틱 맨" 같은 영화는 이 영화보다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사람의 감정을 다루게 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등장인물의 행동에 아주 약간씩 과장을 집어 넣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코미디로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경쾌하게 잘 편집해서, 훨씬 웃기고 좀 더 등장인물들에게 애착이 가게 만들어 냈습니다.

재미난 면, 흥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만큼 아쉬운 면도 많이 보였던 영화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무리없이 즐길만하고, 그 구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앞뒤로 옮겨가며 사연을 밝혀내듯이 이야기를 꾸며 놓은 모양은 흥미있게 사건을 지켜보게 만들고 다음일이 어떻게 되는지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좋아서 기본기를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배경에서 기업간의 불법적인 경쟁들을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문화를 풍자를 팍팍 살려서 마치 대단한 전쟁인냥 우스꽝스럽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 놓았으면서도 지나치게 어색한 과장은 없어 보이게 조절해 놓았습니다. 이런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나게 지켜볼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양반들이 그토록 찾아 헤메는 기밀 정보란 핵무기도 아니고, 인공위성도 아니고, 뭐냐면...)

게다가 줄리아 로버츠가 복사기를 찾아 헤매는 대목 부분 같은 장면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맛을 살려서, 영화를 만드는 기본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정답과 같습니다. 이야기와 연출이 잘 맞아 떨어져서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맛이 살아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보다보면, 또, 이 영화에 추적 장면이나, 도주 장면 같은 신나는 장면이 좀 더 들어가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최근에 나온 제이슨 본 시리즈의 각본을 맡았던 토니 길로이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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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베이글주세요 2009/04/30 14:12 # 삭제 답글

    선리플 후감상
  • DECRO 2009/05/01 07:17 # 답글

    본다 본다 본다 하다가 못본 영화군요... 재미있어 보이던데.
  • 게렉터 2009/05/01 17:11 # 답글

    베이글주세요/ 저도 베이글 먹고 싶습니다.

    DECRO/ 영화 포스터 만든 내용이나 선전과는 다른 면이 있어서 관객들이 실망도 좀 하고, 그러다가 더 빨리 내려가버린 영화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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