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려객(句驪客)

(고구려 벽화)

신라 미추이사금때에, 신라 조정에서는 나라 사람들을 풍족하게 하고자 백성들의 만가지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없었다. 조정에서는 농사를 잘 짓는 묘한 이치를 깨달은 농사꾼들을 찾아 그 농사 짓는 좋은 방법을 알아서 널리 퍼뜨렸는가 하면, 물고기를 잡고, 베를 짜는 사람들에게도 그 재주를 따지고 밝혀 퍼뜨리는 일에 힘을 다하였다. 때문에 나날이 나라 사람들은 풍족해졌다.

마침, 조정에서는 장사꾼들에게 장사를 잘 하는 법에 대해서도 그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대의 대신이었던 부도(夫道)에게 말을 묻게 되었다. 부도는 가난한 집안의 사람이었으나 글재주가 뛰어나며 숫자와 이치를 따지는 데에 밝으면서도 마음이 너그럽고 덕이 있어서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때문에 선대에 부도는 이찬의 자리로 뽑혀 조정 일을 하게 되었는데, 미추이사금이 보위에 오르자 부도는 늙음을 핑계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곧 무릇 조정 사람들이 부도에게 장사를 잘하는 이치를 물었다. 그러자, 부도는 답하기를,

"소신은 한미한 집안의 못난 백성일뿐입니다. 감히 어찌 이사금께 티끌만한 작은 일이라도 가르치는 말씀을 아뢸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아무런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에서 세 번 거듭 청하자, 마침내 부도는 마지못해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하였다.

"소신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봄마다 굶주리고 가을마다 추위에 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소신이 지금 비단옷을 걸치고 무릇 사람들이 '찬'이라 부르며 업드려 절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내린 복과 같은 것으로 오직 조정에서 선대에 베푼 큰 은혜 입니다. 이처럼 소신이 조정에 입은 은덕이 크오니, 오늘 한갓 바람 같은 헛된 이야기일 지언정 돌이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들려주는 부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선대에서 크신 은덕으로 소신을 이찬으로 삼으셨으니, 제가 하는 일은 조정의 창고를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만에 온나라에 흉년이 크게 들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도적이 많아지고 굶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마침내 조정에서는 창고 문을 열어 굶고 병든 사람들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조정의 창고에 있는 금은과 곡식을 풀어서 사람들을 먹이고, 약을 사고 의원을 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때, 특히 그 솜씨가 오묘하다하여 칭송 받는 사람이 있었으니, 고구려 사람으로 '구려객(句驪客)'이라 불리우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은 병든 우리 백성들을 고쳐 산 사람으로 만드는 의술을 베풀었 습니다. 그런데 구려객은 그 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므로, 신라 사람들 중에서도 구려객을 극진히 공격하여, 마치 무당이 모시는 귀신이나 백년 묵은 호랑이와 천년 묵은 곰처럼 받들어 모시는 무리들이 생길 정도 였습니다. 저 또한 구려객이야말로, 병든 백성들을 돕는 귀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구려객이 신라에 머무는 1백일 동안 마치 부모를 모시듯 정성껏 구려객을 섬겼습니다.

이에 구려객이 신라를 떠나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기 전 저와 같이 술잔을 나누었는데, 이때 문득 제가 눈물을 흘렸으므로, 구려객이 의아해 하여 묻기를,

"이찬 각하께서는 어찌하여 맑은 술과 좋은 고기를 즐기시는 데 눈물을 보이십니까?"

하였으므로, 제가 답하기를,

"공께서는 죽어가는 목숨을 되돌리기를 어린아이가 윷판의 윷을 뒤집듯 하시는 분이시오니, 공의 덕으로 살아난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공께서  떠나시면 앞으로 남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을 때에 누가 곁에 있어 그 목숨을 되살리겠습니다. 저는 그 일이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을 흘립니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구려객은 제 손을 부여 잡고 말하기를,

"삼한백국의 많은 곳들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으나, 공과 같이 어진 분이 이처럼 극진한 마음으로 저를 대접해준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삼한제일의 의원이라 이름을 얻게 되었으므로 지금껏 수많은 부자와 대신들의 병을 고쳐주고 이미 억만금의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런즉, 제가 공께 베풀어 도울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라 하였습니다. 이에 제가 다시 답하기를,

"저는 비록 미천한 태생으로 내일 아침 먹을 양식을 잠자리에 들면서 고민하며 자라왔기는 하나, 하늘의 도움으로 이사금께서 베푸신 크신 은덕을 입어, 지금은 조정의 관리가 되어 풍족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직 저의 바람은 제가 재물이나 귀한 것을 갖는 것이 아니오라, 오직 조정을 위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공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이름 높은 의원이신데, 지금 이곳을 떠나시려 하시니, 병든 자들마다 안타까워 합니다. 하오니, 공께서 의술을 갖추게 된 이치를 몇 마디 말이나 몇 글자 글로 남겨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저는 공께 한 톨의 쌀알도, 한 알갱이의 금은 가루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공께서 사람을 살리는 의술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기꺼이 새겨 듣고 잊지 않도록 손 발 바닥에라도 그 말씀을 표시하여 온 나라 백성들을 살리는 데 쓰려 합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한참 동안 말없이 구려객은 고민하면서 두 항아리의 술을 모두 비웠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찬 각하께서 이처럼 말씀하시니, 의원 평생에 하지 않기로 맹세 했던 말씀을 아뢰고 오늘부터 의원 일을 그만 두고자 합니다.

제가 방방곡곡에 이름을 떨친 의원이 된 묘한 이치는 이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고구려 임금의 병을 돌보던 의원 중에 시의(侍醫) 관직에 있던 가장 솜씨가 좋은 의원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시의는 조정의 벼슬에서 물러 나면서, 경치 좋은 산골짜기에 좋은 집을 짓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기거하면서 여생을 편안히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의는 자신의 의술이 끊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여, 무릇 사람들에게 자신으로부터 의술을 배우고 싶은 자들은 모두 모이라 하였습니다.

시의의 솜씨는 이때 고구려 제일이라 불리웠으므로, 가난하여 할 일이 없는 자나, 의술로 큰 돈을 벌고 싶은 자, 의원들 중에 더 좋은 솜씨를 익히고 싶은 자들이 구름처럼 시의의 집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저 또한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었으나 무릇 큰 재물을 모으고 이름을 떨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므로, 시의에게 의술을 배워 보리라 생각하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시의가 말하기를,

'의술을 배우는 것은 독한 끈기와 바른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나를 스승으로 받들어 오직 한 가지 허드렛일을 갈고 닦아 그 솜씨가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의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의 집의 밭농사와 빨래를 시키고 담장을 고치고 지붕을 얹고 마당을 쓸고 방을 닦는 온갖 허드렛일들을 시켰습니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것이라고는 흙에서 약초를 뽑는 것이라든가, 침을 꽂았다가 빼는 것 같은 하잘 것 없는 일들만 계속해서 갈고 닦으라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의는 의술을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노비처럼 부리며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거짓말로 자기 재산을 불리는 도둑이나 다름 없다.' 라고 하면서 집에서 떠나 갔습니다. 그런데 1년째 되는 날 시의가 의술을 배우러 모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갈고 닦은 것을 보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마다 약초를 뽑는 재주와 침을 꽂았다가 빼는 솜씨를 보여 주었습니다. 1년 동안 익힌 것이라고는 오직 그 한가지 뿐이었으므로, 그 움직임은 민첩하고 능숙하였으나, 시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는 의술에 밝은 의원들이나 보고 솜씨가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같은 것을 계속 익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5년 동안 오직 한 가지 일만을 익히면서 시의 집의 허드렛일을 더 하였습니다. 그 동안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의술을 배운다면, 언제 시의의 신묘한 의술을 배워 병자를 고치고 재물을 모으겠는가?' 라고 화를 내며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5년째 되던해에 다시 시의가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갈고 닦은 것을 보여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 소소한 재주를 그 동안 익힌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시의는 만족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그 정도로는 유심히 설명하고 살펴본 뒤에야 그 재주가 좋음을 알아 볼 수 있을 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같은 것을 익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시 1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제자들이 시의를 욕하면서 그 곁은 떠나 같습니다. 다만 저는 어차피 부모와 처자식이 없는 몸으로 그나마 밥을 얻어 먹고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시의의 집이었으므로 계속 시의 곁에 남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시의의 하나 뿐인 제자가 되어 오직 한 가지 재주만을 끊임 없이 익혔습니다. 제가 익힌 재주는 침을 꽂았다가 다시 뽑는 것이었는데, 살갖 사이에 아파지지 않는 빈틈을 한 곳 정해 놓고 정확히 침을 꽂았다가 뽑는 일만을 한없이 계속 하였습니다.

마침내 10년째 되는 날, 시의가 저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네가 침을 꽂았다가 뽑는 재주를 선보일 때에, 한 번 가지도 않은 먼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만 있는 사이에 섞여 있는 데, 다만 잠깐 손놀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눈에 뜨일 수 있겠느냐?"

저는 답하기를,

'침을 꽂았다가 빼는 재주는 오직 한 가지 익힐 것으로 삼은 것이었으므로 끊임 없이 많이 익혔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 때 고구려 조정에 오나라의 손권이 사신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고구려는 위나라와 더 친하였으므로, 위나라의 적인 오나라의 사신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하여, 손권이 보낸 사신의 목을 베어 버리고, 그 사신의 목을 위나라의 임금 조예에게 주려고 위나라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소식을 듣고 시의가 말하기를,

'손권이 보낸 사신의 잘린 목을 들고 위나라의 조예에게 가는 무리들을 따라 위나라로 가도록 하여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시의와 함께 위나라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위나라의 사람들이 길을 따라 오가고 있는 가운데 서 있는데, 시의가 말하기를,

'너의 재주를 보여 보아라.'

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십육년 동안 오직 한 가지만 연습해 온 침을 꽂았다가 빼는 재주를 위나라 사람들 앞에서 선 보였습니다.

저는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에 예리한 바늘을 대어 머리카락을 반으로 쪼개고, 반으로 쪼개진 머리카락을 다시 반으로 쪼개었습니다. 그러자, 그 재주를 신기하게 여기고, 길을 지나던 어린아이들이 여럿 모여 들어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바늘을 가다듬어 머리카락 한 올을 더욱 쪼개어 머리카락 한 올을 열 가닥으로 쪼개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재주를 신기하게 여기고, 모여 들었던 어린아이들 곁에 어린아이의 부모들이 같이 모여서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십육년 동안 계속 사용해 왔던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고 가는 바늘을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바늘을 꺼내 드니, 그 바늘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는 신기하게 여겨, 위나라 서울의 길가던 사람 수백이 모여들어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바늘을 잡고 열가닥으로 쪼갠 가늘디 가는 머리카락의 한 가운데에 찔러 넣었습니다. 그 바늘을 찌른 위치와 방법은 그동안 끝없이 갈고 닦아 수만, 수억번을 되풀이해 온 것이었기에 개미 더듬이 끝의 먼지 만큼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의 살갖에 아프지 않은 틈을 찾아 바늘을 꽂았다가 빼는 것과 꼭같이 열 개로 쪼갠 머리카락 가운데에 틈을 찾아 바늘을 꽂았습니다.

그러자, 열가닥으로 조갠 머리카락을 바늘로 꿰뚫었다가 뽑았는데도, 머리카락은 꺾이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아무 차이 없이 그대로 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모여 있던 수백명의 위나라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여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날뛰는가 하며, 대단한 재주를 보았다 하여 무수히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고구려 사람으로 그 이야기가 널리 퍼져서, '구려객'이라는 별명을 떨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시의는 크게 기뻐하며, 저에게 말하기를,

'드디어, 너의 재주가 큰 재물을 얻을 높은 의원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세상에 나가서 의원 노릇을 하며 병을 고치라.'

하였습니다. 저는 의아해 하여, 시의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께 배운 재주라고는 예리하게 침을 꽂았다가 다시 뽑는 것 단 한가지 뿐이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을 고치지도 못하고, 기운이 없는 사람을 일으키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비록 침을 꽂는 재주는 자뭇 묘하여 사람의 눈길을 끌 수 있으나, 어느 병이 들었을 때 어느 자리에 어떻게 침을 꽂아야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이제 제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시니, 오늘부터 스승님께서 증세를 살피고 병을 고치는 이치를 하나 둘 밝혀 알려 주시면 제자가 하나 둘 배워서 의원이 될 수는 있겠으나, 어찌 침을 꽂는 재주가 기이한 것만으로 큰 의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시의가 답하였습니다.

'무릇 놀라운 이치와 기묘한 학문으로 의술을 깨우쳐 사람의 병을 고쳐서 큰 재물을 얻으려면 고치기 어려운 병을 찾아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고치기 어려운 기이한 병에 걸린 사람이 많지 않으며, 또한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이 가난할지 부유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용케 절묘한 학문으로 사람을 구한다고 하여도, 비록 재물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는 또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록 아름답고 커 보이는 솜씨이기는 하나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의원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파 드러눕는 많은 사소한 병들은 걸리는 사람들도 많고, 그 중에 부유한 사람들도 많으니 병을 고쳐서 재물을 얻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병에 걸렸다가 낫는 이치란 것이, 아무 치료도 하지 않아도 앓던 사람이 스스로 깨우치고 낫는 때가 매우 많다.

그러므로, 의원이라하면서 아무 치료도 하지 않아도 병자가 나을 때 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병을 고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의원이 화려한 옷을 입고 높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이름을 퍼뜨리고 또한 눈을 잡아끄는 번쩍거리는 재주를 보여주면, 병 든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재주를 가진 용한 의원이다'라고 생각하고 큰 돈도 아까워하지 않고 모시기 마련이며, 저절로 병자의 병이 나은 것도 대단한 솜씨를 가진 의원의 높은 재주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반대로 사람들은 백가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병이 있음도 알고 있으니, 혹여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하여도, 세상에 대단한 의원의 놀라운 솜씨 조차도 고칠 수 없는 깊은 병이었다고 여길 뿐, 이름난 의원을 탓하는 일은 많지 않은 것이다.

너는 이제, 시의인 나의 제자라 할 수 있으니 높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할 수 있고, 또한 삼한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구려객으로 널리 이름이 퍼졌으니 이름난 의원의 행세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보면 사람들의 눈을 끌어, 과연 훌륭한 재주를 가진 의원인 듯 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마치 아리따운 옷을 입은 여인 백명이 춤을 추고 천명의 악사들이 함께 악기를 연주하여 노래를 들려주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놀라게 할 만하지 않으냐. 다만 화려한 옷이 없으니, 내가 너에게 학을 타고 날아가 신선에게 의술을 배운 사람인듯 보이는 좋은 옷을 내려 주마.'

그리고 시의는 저에게 비단과 흰 베로 만든 정갈한 옷을 주었습니다. 시의는 덧붙이기를,

'이제, 너는 이름난 의원이라 하면서 사람들이 대단하다 여길만한 복잡하고 오묘한 이름과 재주를 뽐내며 다니도록 하라. 그러면 그것만으로, 수많은 부유한 자들이 앞다투어 너에게 찾아와 재물을 바칠 것이니, 너는 다만 그 옆에 앉아서 자연히 병이 낫기 까지 기다렸다가 재물을 얻어 떠나면 되는 것이고, 혹여 병이 스스로 낫지 않고 환자가 죽거든, 슬퍼하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힘을 다하여 환자를 고치려 하였으나 너무 병이 깊어 다스릴 수 없었다고 하라. 가끔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기이하다 여기면서 너를 높여 받들도록 머리카락을 바늘로 꿰는 재주 같은 것을 한 두 번씩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저는 한 동안 멍하니 있었으니, 이내 저에게 시의가 책 한 권을 던져 주며 말하기를,

'다만, 의원이라 이름하는 자로서 약을 쓰고 병을 보는 것을 아주 모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내외 의서 164권 중에 가장 쉽고 간단한 첫번째 책을 줄터이니 이 책을 외우고, 동네의 한미한 의원 노인에게 그 뜻을 익히는 것은 빠뜨리지 않도록 하라.'

라고 하고, 이내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시의의 간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시의가 가르쳐 준대로 삼한의 방방곡곡 마다를 찾아 다니며 의원 노릇을 하여, 한 평생 막대한 재산을 모았으며, 세상에 구려객이라하면 제일의 의원으로 모두가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뛰어난 의원의 이치란 오직 이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려객의 이야기가 끝이나자, 구려객은 다시 한 번 한 항아리의 술을 마시고 "내가 이제 더 이상 의원 노릇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라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 하더니, 그 길로 신라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묘한 이치로, 세상의 많은 물건을 팔고 장사를 하여 돈을 남기는 것이란 다 이와 같지 않은가 합니다.

부도가 이와 같이 이야기를 마치고 공손히 절을 하고 나서 다시 허름한 자신의 집으로 표표히 물러 나니, 이야기를 들은 조정의 사람들마다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 원본 출전 유양잡조(酉陽雜俎)


*15. 구려객(句驪客)
유양잡조에 실린 "구려객" 이야기는 구려객이 머리카락을 바늘로 꿰었던 재주에 대한 묘사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연결되도록, 사연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들, 당시 의술에 대한 이야기들은 당시를 묘사한 다른 기록에서 가져와 끼워 넣은 것이고, 전체 줄거리는 조선후기의 의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섞어서 꾸며 보았습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 되거나 역사와 지나치게 어긋나는 부분이 보일 경우에 지적해 주시면 최대한 신속히 반영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에 포함된 15회 이야기 입니다.
by 게렉터 | 2009/07/16 23:35 | 기타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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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타라쿠 at 2009/07/16 23:54
허어..참... 시의 고놈 참.
Commented by hammol at 2009/07/17 13:07
보편타당 R&D 법칙입니다.
Commented by 박달재 at 2009/07/17 22:03
너무 재미있어 한숨에 15개 이야기를 다 읽었습니다. 특히 이번 이야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소위 '비법' 이란건 별거없다는데 더더욱 웃음이... 재미난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9/07/20 01:30
스타라쿠/ 구려객은 원전에 나오는 인물이나, 시의는 다른 설화속 인물들을 참조하여 제가 적당히 지어낸 인물입니다.

hammol/ 뭐, razzle, dazzle 아니겠습니까.

박달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차근차근 조금씩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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