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1986) 영화

졸작영화 http://gerecter.egloos.com/2913827 라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1986년작 한국영화. 어법에 맞게 말하자면, 졸작영화라 불리우기에 남는 게 없는 영화, "투명인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업자가된 주인공 이영하가 돈욕심에 산업 스파이짓을 하다가 사고로 투명인간이 되어서, 이런저런 모험을 겪는다는 내용입니다. SF 코메디 영화인데, 본격적인 코메디 영화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감정이 다소간 심각 하지만, 그래도 연출이나 영화 구성이 대체로 투명인간이 되어서 겪는 소동의 우스운 면을 자꾸만 건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투명인간 영화)
(문제의 투명인간 포스터)

이 영화는 트래쉬무비 수준으로 내려앉은 중저예산 영화의 표준스러운 예시로 적당한 영화입니다. 사실 "트래쉬 무비"라고는 해도, 영화가 부실한 면이 많으면서도 나름대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일면이 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Zombie vs. Ninja"판 "소화성 장의사" http://gerecter.egloos.com/3373261 같은 영화처럼, 너무 영화가 망가진 정도가 심해서 영화라는 행색 자체를 알아보는데 어려움이 큰, 너무 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바로 이 영화 1986년작 "투명인간"은 돈도 없고 의욕도 없는 와중에 대충 어떻게 이 장면 저 장면 억지로 억지로 때워서 해괴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트래쉬스러운 향취의 중간 표본으로 적당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영화의 종류 조차도, 50년대 미국 중저예산 영화시절 부터 고고히 내려오는 "중저예산 SF물"이니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일단 "투명인간"은 포스터만 보면 제목대로 투명인간을 묘사하는 특수효과 중심의 SF 영화라고 합니다. VTR 시대가 어쩌고라고 포스터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이런 영화를 볼 때 즐길 수 있는 특수효과를 보는 재미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묘한 현상을 어떻게 특수효과를 써서 화면으로 보여주는가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는 맛은 이 영화에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 영화의 특수효과에서 살펴 볼 수 있는 미술적인 개성도 없고, 영화 특수효과팀이 여러 기술에 도전해 보는 노력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냥 80년대 한국 영화계의 조악한 수준이 평범하게 그대로 답답한 마음으로 펼쳐지는 수준입니다.

이를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것들입니다. 투명인간의 동작을 묘사하기 위해서 철사나 실로 물건들을 이리 저리 끌어 당기고 있는데 화면에 그 철사와 실이 뻔하게 보이면서도 가려보려고 아무련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면을 합성할 때에는 합성이 "티가 나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화면 전체의 화질과 색감이 확 바뀌어 버립니다. 저는 이것이 화면 합성에는 텔레비전용 장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합성이 되어야 하는 부분만은 텔레비전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합성 작업을 한 다음에 영화 필름 사이사이에 따로 갖다 붙였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 배우 이영하가 나와서 어떻게 투명인간이랍시고 설치며 다니는 것인지는 여전히 궁금할만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트래쉬 무비"인만큼, 대체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어느 정도로 터무니 없이 펼치는지도 지금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호기심을 자아낼만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 황당하고 해괴한 일면을 하나 둘 살펴보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도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일들이 영화랍시고 화면에 펼쳐지는지 아무것도 모른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고 "참 황당하구나..." 하면서 충격을 받는 것이 가장 이 영화를 잘 보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교하건데, 이 영화는 일부러 줄거리를 마구 터무니 없게 만들어서 허탈하게 웃겨보려고한, 일본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 같은 영화보다, 오히러 더욱더 줄거리가 마구잡이로 나아가는 영화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제부터, 이 영화의 줄거리와 영화 면면을 하나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시청 근처 서소문 일대의 한 빌딩 옆면을 보여주면서, 주인공 이영하가 높은 빌딩의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멀쩡한 대낮에, 멀쩡하게 정장을 잘 차려 입은 이영하가 왜 이렇게 끝도 없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지, 가만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슬쩍 "왜 저러나"하는 관심을 끌어줍니다. 그러다 보면, 이영하의 화난 얼굴을 화면 가득 보여주다가, 화면을 바꿔서 이영하를 질책했던 이영하의 직장 상사의 얼굴을 또 화면 가득 보여줍니다. 내용인즉, 주인공은 직장 상사와 출동을 빚어서 열받아서 회사를 때려 치운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인데, 그 중 한 사람의 얼굴만 화면에 크게 잡아서 보여 주는 장면은, 재미납니다. 표정이 잘 살기도 하거니와, 속도감과 인상적인 박력을 주기에 좋아서, 어느날 갑자기 도시에서 한 직장인이 겪는 이상한 일을 소개해 준다는 영화의 흥미진진한 도입부로 적당합니다.

말인즉, 영화가 시작하는 맨 처음 장면은 아주 멀쩡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를 끝까지 살펴보면 이 멀쩡한 장면 조차도 장차 흘러갈 망가지는 영화의 전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첫머리에서 대화 장면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만을 커다랗게 화면에 담아서 살짝 왜곡해 주는 장면이 효과가 재밌기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것이 정말로 재밌으라고 잘 꾸민 결과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이 영화는 그냥 대화 장면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상습적으로 화면을 그렇게 찍어대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진이 그렇게 화면에 담아내는 것이 흥미로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다른 영화에서 보았는지, 아무 장면이나 마구 난잡하게 그렇게 얼굴만 커다랗게 화면에 보이게 영화를 막찍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요행 영화 첫장면에는 그것이 그럴싸해 보였던 것입니다.

이영하는 한 눈에 악당처럼 생긴 친구를 만납니다. 친구는 "친구 좋다는 게 뭐냐"라면서 귓속말로 이영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나쁜 범죄를 제안한 것인지, 이영하는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뭐 때문인지 가방을 열어 보여주고, 그 안에는 만원짜리가 여러 다발 들어 있습니다. 요즘 나온 영화 같으면 오만원짜리 다발들이 들어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면이 바뀌어, 멀쩡한 집 안마당에서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고, 한 아이가 전통 무용의 동작으로 추장되는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 팔을 잡아 움직이면서, "하나, 두울 세엣 네에엣" 하면서 숫자를 세고 있습니다.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면, 이 여자주인공이 어린이들에게 전통 무용을 가르쳐 주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과 여자주인공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인가 싶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좀 보다보면, 이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이 아이들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얼핏, 그렇다면 저 예닐곱명쯤 되는 아이들이 모두 남녀주인공들의 자식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아이들 중 몇몇이 여자 주인공을 "누나"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봐도 뭐가뭔지 도저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아이들은 여자주인공의 친동생들이거나, 아니면 오갈데 없는 아이들인데 어떤 인연으로 여자주인공이 같이 살면서 기르고 있거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어린이들이 이렇게 튀어나온 이유로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영화에 어쨌거나 주인공과 가까운 어린이들을 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제작진에서 품었기 때문으로 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잠시한 것인지, 아니면, "불쌍한 가난한 사람"을 영화 속에 등장시키려면 부모 없는 아이들이 나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뭐 그런 것일 겁니다.

장면이 바뀌면, 왠 나이트 클럽이 나옵니다. 이 나이트클럽에는 비키니를 입고 춤추는 여자가 한 명 잠깐 언뜻 비치고, 남자 주인공 이영하는 쓸쓸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참 동안 이 장면을 보여주는데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이영하는 여자 주인공과 길을 거니는데, 여자 주인공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런 모습 보이기 싫어요."

라고 합니다. 이게 뭔가... 하고 잠깐 추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아까 이영하가 나이트클럽에서 술먹을 때 언뜻 비쳤던 그 나이트 클럽의 비키니 댄서가 바로 여자 주인공이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나이트클럽 장면에서 이영하만 자꾸 보여줬기 때문에 무슨 장면인지 알 수는 없었는데, 사실 그 장면은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입니다.

즉, 제작진이 꿈꾸었던 줄거리 배경을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자주인공은 춤에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어린아이들에게 틈틈히 전통무용을 가르치면서 그 어린이들을 먹여 살리면서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직업은 나이트클럽의 비키니 댄서이며, 전체적으로 경제상황은 좀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남녀주인공 두 사람은 나이트클럽의 비키니 댄서라는 직업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곧 이영하는 여자주인공에게 친구가 돈가방을 보여주면서 제안한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확히 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범죄인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여자 주인공이 성우가 더빙한 간드러지는 과장된 목소리로 매우 심각하고 처절하게,

"안돼요. 우리는 정직하게 설아야 해요."

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남자 주인공은, "우리에게는 돈이 필요해." 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면서,

"정직하게 살아야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야."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예요."
"돈이 필요하다고."

라고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한 동안 울부짖습니다. 대사가 매우 간단하면서도 어색하고 뭐하자는 건지 계속 두 사람이 같은 대사를 반복 하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좀 못만들었다 싶습니다. 만약 어색하고 조악한 장면을 보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발이 열 개인 오징어라 하더라도 남아나는 발이 하다도 없을 정도로 아주 맥반석에서 구워서 오그라들듯이 점점 더 과감해지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남자 주인공은 돈을 벌기 위해서 범죄에 나서게 됩니다. 범죄인즉, 남자 주인공이 어떤 연구소에서 연구 논문이 담겨 있는 "필름"을 훔쳐서 문제의 악당 친구에 넘겨 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산업스파이짓을 하면 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깊은 밤 "맹견주의"라고 씌여 있는 연구소 건물에 몰래 살금살금 잠입합니다.

이때 "맹견주의"라고 씌여 있는 간판 옆에 아주 작은 애완견 한마리가 묶여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장면을 침입하고 있는 이영하가 보고 "킥킥"하고 한 번 히죽 웃습니다. 이렇게 웃기는 것은 혹시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를 뒤져보면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진부하디 진부하고 식상하디 식상한 농담을 그냥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고 있으면 좀 기운이 빠지는데, 사실, 이 장면에 대해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말하자면, 뭐랄까. 좀 무섭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방식으로 이게 "어떻게해서 웃긴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은 지금 이 "맹견주의" 장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필름을 훔치려고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옆 방에서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월화수목금금금 계속 실험을 하고 있던, 두 명의 연구원들에게 발각됩니다.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 연구원들은 연구가 성공만하면 전세계 사람들이 칭송할만한 연구를 하고 있는 "박사"학위를 가진 두 명인데, 뭔지는 알 수 없지만, "V2"라고 불리우는 액체를 20 밀리그램 정도 투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V2"라면 이 양반들이 남극에 기지를 만들고 숨어 있다는 나치의 잔당들이 숨겨놓은 비밀 지식을 발견해 놀라운 화학물질을 개발하는 것인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20 밀리그램 투여 하라면서 그냥 얼핏봐도 한 그 천배나 많아 보이는 20그램 정도의 액체를 투여하는 괴이한 장면을 잠시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투입하는 것은 희석액이고, 그걸 환산해 봤을 때 V2 만의 무게가 20 밀리그램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좀 샜습니다만, 그래서 이영하는 두 연구원들에게 발각되자, 흉기를 휘두르면서 "움직이지마!" 라고 소리치며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흉기라고 휘두르는 것이 실험실에 있던 "클램프"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해 보입니다. 두 명의 연구원들은 이영하가 휘둘러대는 클램프를 몹시 두려워하며 한동안 물러서서 우왕좌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패를 부리는 와중에 이영하는 실험대 위에 있던 액체들을 엎지르고, 그것들이 섞이면서 갑자기 이상한 기체 같은 것이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이 영하의 몸이 아래부분부터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이영하는 "실험실 마음대로 엎지르기" 덕분에 사고로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뭐 이렇게 투명인간이 되는 과정이 황당해!"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옛날부터 강물의 신의 딸이 속도위반으로 "알"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가하면, 곰이 쑥먹고 버틴 후에 여자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냥 마법과 같은 환상 같이 생각해서, 이 영화에 나오는 "약 뒤섞기 사고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정도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가 그나마 어떤 줄거리를 전달해주는 정상적인 이야기의 형체를 갖추고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제부터는,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신화나 환상이 보여주는 줄거리 구조 따위 마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놀라운 경지가 펼쳐집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 "투명인간"이 격렬하게 망가지면서 상상을 자꾸만 초월해나가는 험하디 험한 경지를 보여주는 그 진수는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연구원들과 실험실)

일단, 시작부터 무서운 것이, 갑자기 투명인간으로 변신한 이영하는 "아이고 어떡하지-" 하면서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으훠허허 우핫핫 내가 투명인간 으으하하하" 라면서 좀 좋아합니다. 이영하는 그리고 여자주인공에게 나타나는데, 여자주인공은 "이게 무슨 꼴이에요. 흑흑흑"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놀라워하고 슬퍼하는데, 뭐 많이 놀라거나 경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여자주인공이 "이러다가 큰일나면 어떻게 해요. 산업스파이 짓이 들킬때 들키더라도 병원에 가보자"고 설득하는 등의 극히 상식적인 말은 조금도, 한마디도, 꺼내지 않습니다.

화면은 바뀌어, 주인공은 사건을 의뢰했던 악당 친구를 찾아 갑니다. 다방에서 악당 친구를 만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귓속말로 작게 이야기 하기 때문에 악당친구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미친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수군거립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물건을 주고 받을 때 투명인간이 집어서 움직이기 때문에 허공에 돈봉투와 필름이 오락가락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놀라는 사람도 없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혼잣말 하는 것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킥킥거리며 정신 나간 놈이라고 비웃을 뿐입니다. 뭐, 문제의 논문이 담긴 "필름"이라는 것이 당연히 마이크로 필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화속에서 자동카메라에 담긴 그냥 필름으로 묘사되는 것 정도는 묘한 애교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렇게해서 악당 친구들에게 범죄의 대가로 "수표"를 받아 옵니다. 잠시후, 왠 아파트 단지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을 아무 대사도 음악도 없이 고정된 카메라로 한 참 보여준 뒤 - 왜 이러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잡이라 불리울만한 남기남 감독이 영화 상영 시간 채울 때 의미 없이 가끔 집어 넣던 사례가 유명하다면 유명합니다. - 여자 주인공이 "우리는 속았어요. 그 수표는 무거래 수표래요!" 라고 말합니다. 즉 범죄의 대가로 받은 수표는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속임수 였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분노하게 되고, 결국 악당 친구의 일당들과 폐차장에서 싸우게 됩니다.

폐차장에 도착하자, 조춘을 중요한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 악당들 앞에, 우선 여자주인공이 먼저 나타납니다. 여자 주인공은 아까의 처절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갑자기 씨익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주인공은 본시 태어날 때 부터 악당들과 폐차장에서 결투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성격인지 뭔지, 대뜸 해맑은 목소리로,

"인천씨이이! 힘내요~"

하고 희희낙락하면서 외칩니다. 어쩌면 이 여자 주인공은 졸지에 투명인간이 되었는데도, 별 고민도 걱정도 하지 않고 히죽거리기만하는 주인공에게 오염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주인공도 거기에 부합해서 친구를 흥겹게 두들겨 팹니다. 악당 친구는 부하들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소리지릅니다.

그러자, 악당 친구 부하로 나온 조춘이 소화기를 악당 친구 방향으로 막 뿌립니다. 아마 아직까지 이 영화의 방향에 대해서 정확히 느끼지 못한 관객들이라면, '앗, 소화기 가루를 뒤집어 쓰면 그 가루가 묻는 바람에 투명인간 주인공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합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몹시 한국 영화계를 평화롭게만 생각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냥 한참 소화기만 뿌리면서 악당들이 '어이쿠' '아이고오오'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씨익 웃으며 즐거워하는 여자 주인공을 한 번 보여주고는 갑자기 싸우는 장면이 확 하고 끝나버립니다.

소화기는 대체 왜 나온건지는 영영 결토 알 수 없습니다. 소화기는 그냥 깡패영화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에서 가끔 뿌리곤 하니까 그냥 뿌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투명인간에게 소화기를 뿌려서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있어서 나름대로 거기까지는 촬영을 했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준비가 안되어서 대충 거기까지만 찍고 때려 치워 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화기 뿌리며 싸우는 장면이 팍 짤려서 확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이 영화는 마구 정신 없이 치닫기 시작합니다. 다음 장면에 나오는 것 부터가 파괴적입니다. 이 장면은 투명인간이 여자주인공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가다보면, 시내 중심가의 도로 한 가운데에, 왠 여자 아이가 엎드려 퍼질러져 자고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여자아이가 길바닥에서 갑자기 자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좀 놀라기도 하고 교통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자,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가고 있던 투명인간은 차에서 내려서 그 여자아이를 안아서 들고 인도에 내려다 줍니다. 투명인간은 투명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는 공중에 붕 떠서 날아다니는 채로 인도까지 온 것으로 나옵니다.

여자아이는 인도에 내려오자 잠이 깨서 두리번거리고, 이 여자아이가 영문을 모른채 멀뚱멀뚱 두리번 거리는 모습과 그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쳐다보면서 신기해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예의 "얼굴만 화면 가득 보여주기" 기법으로 한동안 보여줍니다. 멀쩡한 여자아이가 왜 길바닥 한 복판에서 자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만, 왜 투명인간이 길에서 아이를 들고 가는지도 이상합니다. 무릇 투명인간이란 안보이는 사람이니까 길거리에서 함부로 다니면 교통사고 나서 죽기에 딱 좋은 상황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그런 여자아이를 구출하기에는 안좋은 환경에 놓인 인물이 투명인간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투명인간 원판에서부터 있는 내용입니다만, 도대체 이런 장면은 왜 나온 것입니까

제가 추정하는 것은, 이 영화는 투명인간을 일종의 초능력 영웅으로 그리려고 했는데, 슈퍼맨 같은 영화에서보면 교통사고 일어날 때 구출해주는 것이 초능력 영웅의 가장 흔한 활약으로 보이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개떡같이 따라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 해 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멋있어 보이는 것"을 괴상하게 베껴오는 나머지 터무니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서 조롱거리가 되어 극의 분위기를 망치는 전통은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계승이라면 계승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극은 화면이 멋있게 나와야 한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냥 아무 판타지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갑옷을 입고 고려시대 갑옷이니 삼국시대 갑옷이니 하면서 설치는 것과 비슷한 정신상태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영화 장면은 다른 추가 내용을 보여주는 것 아무것도 없이 다시 한 번 바뀝니다. 이번에는 길가는 누군가가 소매치기를 당합니다. 이번에도 투명인간이 소매치기를 쫓아 갑니다. 소매치기는 도망치면서 길가는 시민들에게 부딪히기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힘겹게 뜁니다. 투명인간은 안보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부딛히고 더 고생할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뭐, 바로 다음 장면만 보면 볼 수록 느껴지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는 지나친 꿈이요, 이룰 수 없는 부질없는 희망입니다. 그냥, 최소한의 영화로서의 구조를 갖추는 것만을 바라고 싶은 데 그것도 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다음 장면이라는 것은, 난데 없이 갑자기 나온 실내 수영장 장면입니다. 방금 전까지 소매치기가 돈을 훔쳐서 도망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실내 수영장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실내 수영장에는 평일 오후 시간대에평화롭게 운동을 하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한동안 펼쳐지는 실내 수영장 광경을 보면서, 이게 뭔가... 잠시 고민할 때 쯤,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관객의 뒤통수를 88미리 포로 때리는 것처럼 때립니다. 뭔고 하니,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나타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일단,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웃기다가 잘 안먹히면 한국영화와 TV에서 언제나 꺼내드는 악마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남자가 여장하기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웃기려고 하는 어떤 짓 아니겠는가 싶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그제서야 이게 뭘 묘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남자기 입은 비키니 수영복의 윗옷의 가슴부분에 돈다발을 숨겨 놓고 있습니다. 즉, 바로, 이 남자가 아까의 그 소매치기로, 이 남자는 쫓기다가 숨는답시고, 수영장으로 숨어든 것이고 수영장에서 완벽한 위장을 위해서 여장을 한 것이고, 장물인 도둑은 수영복 안에다 숨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다른 장면이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그냥 제 상상이자 짐작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보는 것이 어떻게든 이야기를 엮어 볼 수 있는 수법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남자의 수영복 윗옷을 투명인간이 벗겨버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돈을 챙긴 뒤에 어리벙벙한 그 남자를 물 속에 집어 넣는 것으로 이 대목은 사실상 끝이 납니다. "사실상"이라고한 것은, 그 이후에, 잠시 동안 이유없이 물속에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또다른 투명인간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영화는 또 한건의 소매치기를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셋방 얻을 돈인데..."라면서 목돈을 은행에서 찾아나오는 데, 그것을 오토바이 날치기가 급습하는 것입니다. 오토바이는 잽싸게 도망치기 때문에, 주인공 투명인간도 자동차를 타고 그 뒤를 쫓습니다. 오토바이는 요리조리 잘도 도망치는데, 길은 꽉 막혀 있어서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답답한 순간. 그리고, 이제 이 영화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황당무계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주인공 투명인간이 타고 있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입니다(!!!)


(실제 영화 장면)

주인공이 타고 있는 자동차는 그야말로 훨훨 하늘을 날아서 오토바이를 쫓아갑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자동차는 주인공이 투명인간으로 변할 때처럼 TV 영상 합성장치를 썼는지 조악한 화질에 걸레 같은 합성 기술로 되어 있습니다. 하여간 막무가내로 주인공의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서 오토바이 날치기를 뒤쫓습니다. 주인공 투명인간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는지, 하늘을 날아서 날치기를 쫓으면서도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서울 시내 도로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뻔도 한데, 그런 일도 없습니다. 그냥 자동차에 같이 타고있는 돈주인이 약간 걱정스러운 듯 "어머머..." 정도의 작은 놀라움을 표시하는 정도입니다.

다음 장면은 골목길 구석에서 훔친 돈을 나누는 날치기 일당들을 몰래 한 대씩 때려서 서로 이간질 시켜서 서로 싸우게 하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여주다가 걱정하는 돈주인의 얼굴을 잠시 보여주고 나니까, 투명인간에게 몰래 한 대씩 맞아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은 "야 왜 때려" "네가 날 때렸잖아" 라고 한 마디씩 하더니, 갑자기 훔쳤던 돈을 내던지고 도망쳐버립니다. 뭘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뭔 연출이 이따위인지 한숨이 나온다면, 바로 그것이 건전한 상식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냥 투명인간이 악당들을 단순히 두들겨 패서 훔친 돈을 되찾는다고 쉽게 보여줘도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르게 재밌게 표현해 보려고 하다가 도중에 촬영을 때려치워 버려서 이상하게 알 수 없이 악당들이 갑자기 훔친 돈을 내버리고 가는 장면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 장면은 화들짝하고 난데없이 여자주인공의 친구가 여자주인공과 같이 강변을 걷는 모습으로 연결됩니다. 이 친구는 여자주인공에게 자신의 걱정거리를 말합니다. 사채를 빌려 썼다가 집을 날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자주인공은 얼마나 엄청난 일에 휘말렸는지는 다 잊었는지 아니면 막나가는 영화의 여자 주인공 역할에 재미를 붙인 듯한 느낌을 스스로 감출 수 없는지, 해맑게 웃으면서, 자기네들이 해결해 주겠다고 나섭니다. 주인공 투명인간의 활약을 보여주는 또다른 장면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 친구가족은 갑자기 내쫓겨서 길바닥에서 이불을 덮고 밤을 지새야할 형편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날밤, 이 집 안에서는 집을 차지한 사채업자 세 명이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구운 오징어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사채업자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부하에게 소주를 따라보라고 하는데, 소주잔에 소주를 부으려고 할 때 투명인간이 소주병을 움직여서 악당 우두머리의 머리 위에 소주를 붓게 합니다. 영문을 모르며 소주를 뒤집어쓴 악당 우두머리는 놀라며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이 영화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구 하늘로 지구밖으로 은하수 밖으로 다른 우주로 다른 차원으로 마구 뛰어 오릅니다.

투명인간은 소주를 뒤집어 써서 분노한 사채업자 두목의 눈 앞에 구운 오징어를 들이 밀고 아래위로 흔듭니다. 사채업자는 구운 오징어가 눈 앞에 붕 떠올라서 아래위로 움직이자 놀랍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오묘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구운 오징어는 그 음악에 맞추어 장단이 맞게 아래위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주 뒤집어 쓴 상태로 공중에 붕 뜬 구운 오징어를 보고 놀랐던 사채업자 두목은 낄낄거리면서 재밌다고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채업자 두목은 공중에서 흔들리는 구운 오징어를 보고, 즐거워서 좋아합니다. 그리고는, 구운 오징어의 움직임에 따라 중얼거리면서 장단을 맞춥니다. 뭐라고 하냐면, 사채업자 악당두목은 흔들리는 구운 오징어 앞에서

"자잣~ 자자~ 잣잣자~ 자자잣~"

라고 합니다.

이런 장면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연결되어야 하겠습니까? 뭘 생각하는지 간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다음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버텨낸 관객들이라 할지라도, 그 바로 다음 장면의 압도적인 이상한 느낌에서 충격을 버티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투명인간은 문득 하얀 소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늘어 뜨린 처녀귀신으로 변신합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치고, - 그렇다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임은 자명합니다만 - 처녀귀신으로 변신한 투명인간은 아까 구운 오징어가 허공에서 흔들거리며 장단을 맞추더 바로 그 음악에 맞춰서 이리저리 막춤을 춥니다. 그리고, 그런 웃긴 흥겨운 음악에 맞춰서 투명인간이 변신한 처녀귀신이 막춤추는 장면을, 처녀귀신의 모습이 몇 가지로 바꾸는 동안 한참 동안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야, 사채업자들이 "이 집은 귀신나오는 집인가보다. 안되겠다. 도망치자~" 라면서 도망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다음 장면에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소망할만한 것은, 도대체 투명인간이 어떻게 처녀귀신으로 변신한 것인지 좀 해설을 해준다든가, 말이 되거나 말거냐 이 어처구니 없이 펼쳐졌던 장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무슨 뒷이야기를 보여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자동차가 왜 갑자기 하늘을 날아다녔는지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더 듣지 못했고 아무것도 더 알지 못한 상태인데, 투명인간 처녀귀신으로까지 변신했으니, 대뇌와 소뇌사이에 블랙홀이 생기는 듯한 그 파국적인 느낌을 감당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저질러진 일은 저질러졌다고 치고, 하다못해 사채업자가 도망쳤으니 여자주인공 친구가 투명인간에게 감사하는 장면이라도 잠깐 나와서 이야기가 어떻게 좀 다음으로 연결되는 구색이라도 갖출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런것들 대신에, 이 영화는 그 다음에 지금까지 살펴 본 이야기의 해괴한 정도를 한 번 더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사채업자들 앞에서 귀신으로 변신한 투명인간이 흥겹게 춤추는 장면을 보여준 바로 그 다음에 갑자기 아무 상관 없이 공터에서 여자주인공과 어린이들이 가만히 있는 장면을 한참 보여줍니다. 이게 뭔가 싶을 때, 여자주인공의 대화로부터, 어린이들 중에 한 명이 밤 늦은 시각까지 귀가 하지 않아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임을 간신히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입니까? 오호라. 문제의 어린이가 유괴를 당하거나 다른 사고를 당했고, 그러면 우리의 투명인간이 이 어린이를 구출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미안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어쩌고 하면서 글을 이어나가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잘난척 하는 자질 부족한 시사 평론가들이 독자들의 고정관념이라고 시사평론가 스스로 생각하는 점을 넘겨 짚어서 비웃을 때 자주 쓰는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 정말로 미안해서, "미안하지만"이라고 썼습니다. 정말로, 그 다음에 펼쳐지는 내용은 어느 누군가에게 누구 한 명은 미안함을 느껴야 할 내용들입니다. 이 다음 장면들은 어느 한 부분 조차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한 대목이므로, 유의 깊게 살펴봐야합니다.

이 영화 "투명인간"의 여자주인공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그 문제의 어린이는 잠시 후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등장합니다. 왜? 왜? 왜 그냥 아무일 없이 돌아온 것입니까? 투명인간이 구출해주는 이야기로 안 이어집니까? 이 어린이가 돌아오자, 여자주인공은 늦게까지 왔다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 벌로 회초리를 가져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늦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어린이들을 갑자기 회초리로 하나하나 1인당 두번씩 두들겨 팹니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도 없는데, 등장한 그 많은 어린이들이 종아리를 걷는 모습과 두 대 씩 휘갈김 당하는 모습을 차례대로 천천히 보여줍니다. 뭡니까?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리고 회초리를 때린후 여자주인공은 "얘들아..."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갑자기 어린이들을 얼싸 안고 웁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뭐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입니까?

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의아한 것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만, 이 영화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우리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하나 던져 줍니다. 어린이들이 잠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문제의 늦게 돌아온 어린이에게 "뭐하느라 늦게 왔냐?" 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이 어린이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여자 주인공이 어린이들과 떼거리로 공터에 모여서 밤늦게까지 기다리다가 갑자기 어린이 전원을 회초리로 두들겨 패는 장면을 한참 보여주었던 이 모든 이야기가 과연 무엇 때문인 것이겠습니까? 도대체 어디갔다왔냐는 동료 어린이의 질문에, 이 어린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코끼리가 면도 하는데 갔다 왔어."

?
??
???

코끼리가 면도 하는데...라니? 그게 뭡니까. 다시 한 번 똑똑히 되새겨 봐도 이 어린이의 답은 하나입니다. 다시 돌이켜 봅시다.

"코끼리가 면도 하는데 갔다 왔어."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말인지 혹시라도 짐작해보려면, 한국 트래쉬 무비의 전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본 적이 있는 상황에서, 80년대 중반의 코메디 업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인고 하니,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해답이 펼쳐집니다. 이 어린이의 회상장면이 이 다음에 펼쳐지는데, 그것은 바로, 코끼리가 이발소의 면도 보조로 나와서 어릿광대와 함께 웃기는 서커스 공연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다음 장면에서 이 영화 "투명인간"에는 투명인간 영화 본론이나, 투명인간이라는 영화 소재와 어떠한 상관도 관계도 없는 서커스 공연 장면의 녹화 장면이 한참 상영되게 됩니다. 이 서커스 공연은 외국인 서커스단으로 추정되는 한 서커스단의 공연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주일 내지는 이주일 닮은 꼴 배우가 함께 공연 일부에 동참하고 있는 내용이며, 그런즉슨 영화 촬영 무렵에 실제로 이루어진 서커스 공연으로 추정됩니다. 영화 속의 모든 이야기를 일시적으로 다 때려 치우고 다 중단한 상태에서, 어느 외국인 서커스단의 코끼리 공연, 호랑이 서커스 공연, 사자 서커스 공연, 강아지 조련 서커스 공연 등등을 진행하는 모습을 차례대로 여유롭게 계속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좀 화려한 볼거리나 이야기 거리가 있다 싶으면 한참 보여주면서 영화 상영 시간을 때우곤 하던 한국 중저예산 영화의 전통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치달은 모양새입니다. 60년대 한국 코메디 영화 중에는 영화 속에서 잠깐 등장한 나이트 클럽 장면 같은 것을 볼거리로 보여 준다고, 영화 본론과 아무 관계 없이 나이트 클럽의 쇼 장면을 이리저리 한참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고, 일본의 오사카 만국 박람회를 소재로한 몇몇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영화 본론과 상관 없이 그냥 오사카 만국 박람회의 신기한 모습들을 전하기 위해서 한참동안 홍보 영상 식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이 어떤 극한까지 밀린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투명인간" 영화 속의 서커스 장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다시 투명인간과 여자 주인공이 여유롭게 자동차를 타고 길을 지나다니고 있다가 - 뭐하러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계속 왔다갔다 하는지도 참 궁금합니다. - 투명인간의 착한 친구를 만납니다. 이 투명인간의 착한 친구는 아내가 도박에 빠져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투명인간은 친구 아내가 도박하는 곳에 가서 판을 엎어버립니다. 그리고

"대낮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

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오니까 당황한 것인지, 도박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아무말 없이 주춤하며 "어이쿠" "아이고" "어어어" "아이코" 뭐 이런 무의미한 대사만 중얼중얼 하는데, 투명인간은 소파도 아니고 쏘파도 아닌, "쑈파" 밑에 "대가리를 박으라"고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고, 그러자 도박하던 사람들이 머리를 박고 있는 틈을 타서 도박판의 돈을 모두 챙겨와서는 자기 친구에게 다 줍니다. 그리고 나서, 놀이공원에서 친구와 친구 아내, 그 딸이 만나서는 그 딸이 "우리 이제 옛날 처럼 같이 살 수 있는거지?" 어쩌고 하는 장면들을 구구하게 좀 더 주절주절 보여줍니다. "야아아아~ 우리는 이제 같이 살 수 있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저 멀리 달려나가는 딸아이 아역배우의 연기하는 모습이 좀 무서우면서도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 기억날만합니다.

이 영화는 이 뒤로도 계속 요동치며 날뛰기 시작합니다. 착한 친구의 조사로 악당 친구의 소재를 알아낸 주인공은 악당 친구에게 돈 내놓으라고 따지기 위해서, 악당 친구와 그 내연녀가 누워 있는 호텔에 나타나서는 갑자기 조선시대 풍의 장군 모습으로 변신(!!!!!) 해서 무섭게 겁을 줍니다. 악당 친구가 구구한 소리를 하자, 투명인간은 다시 영화 "람보 2편" 속의 람보로 변신(!!!!!!)해서 기관총을 들고 머리에 띠를 두른 채 겁을 주며 돈 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투명인간이 람보로 변신한다." 라니. 타이핑하는 손의 감각이 이상해질 정도의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되었거나, 이 영화에서는 다짜고짜 그런 장면이 화면에 막 튀어 나옵니다.

비슷하게, 이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은 애초에 자기가 털러 갔던 연구소에 가서는 마주쳤던 연구원들에게 자기를 원래대로 "환원"시킬 수 있는 "중화제"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연구원들은 자기들도 어떻게 주인공이 투명인간이 되었는지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투명인간에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중화제라는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투명인간은 조선시대에 사람을 처형하는 망나니로 변신해서 연구원들에게 겁을 주면서 어떻게든 중화제를 만들어 보라고 난리를 칩니다. 연구원들은 그 행패 때문에 땅에 엎어지지만, "그건 불가능해-" "그건 불가능해-" "그건 불가능해-" "그건 불가능해-"라는 한 가지 대사를 여러가지 억양으로 계속해서 반복해서 발음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 쯤 되면 각본이 있는데 질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각본이 아예 없는 것인지도 좀 궁금하긴 합니다.

그 외에도 어느 사장 아들의 결혼식을 방해하는 장면도 하나 나옵니다. 결혼하고 있는 어느 사장 아들을 투명인간이 간지럽히자 사장 아들이 결혼식하다말고 미치광이처럼 낄낄거리면서 웃어서 결혼식이 망하는 장면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왜 사장 아들의 결혼식을 방해하는지는 잘 안 가르쳐줘서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여자 주인공이 다른 말 없이 "그런 사람들은 혼이 좀 나야해요."라고 확 말해버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다음에 등장하는 사장의 얼굴을 보면, 바로 그 사장이 처음에 이영하를 해고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안나오지만, 추리해보자면 이 영화는 이영하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복수로 그 사장의 아들의 결혼을 방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대한 80년대식 안경을 쓴 아마추어 연기자인 신랑이 결혼식을 하다말고 간지럽다고 "우히히히 낄낄낄낄 우히히히히" 하고 기나길게 웃다가 갑자기 땅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면서 웃고, 사돈 되는 사람들이 "환자를 데려오다니, 이 결혼 취소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한참 보고 있을 때, 측은하기도하고 두렵기도하고 복합적인 감정으로 참 심란해졌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또다시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투명인간과 여자주인공이 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시청 앞에서 교통 체증 때문에 답답해 하는 데, 그러자, 투명인간이,

"이이이야아아아아아앗!"

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또다시 자동차가 하늘로 높이 날아오릅니다. 얼씨구.


(아...안돼...)

자동차는 하늘을 날아서, 여의도 일대와 잠실 일대를 날아갑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모습과 자동차 안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이이야아아아-" "꺄아아핫핫핫핫-" 하고 웃는 모습을 거의 대사 한마디, 설명 한 마디 없이 계속해서 반복하여 보여줍니다. 하늘을 난다는 자동차 안에서 여자 주인공이 깔깔 거리며 웃는 모습은 극히 어색하고 오갈데 없이 이상한데, 그 장면을 썰렁한 하늘 나는 자동차 모습과 함께 자꾸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5회 정도 "꺄아아핫핫핫핫-"하고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반복하지 싶은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전쟁 당시 놀라운 것이라고 소문이 돌던 전설적인 중공군의 세뇌 기술이 뭐 이런 비슷한 기분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배경음악은 갑자기 터무니 없이 화려하고 장엄한 뉴에이지 음악이 터져나와서 더 당혹스럽습니다.


(환호하는 남녀 주인공들의 모습 - 실제 영화 장면)

자, 그런데, 이 영화의 극단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투명인간이 말합니다.

"앗! 백차가 따라 붙었나 본데?"

여자 주인공이 "왜 백차가?" 라고 말하자, 투명인간은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그야,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니까 그렇지."라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그 순간 뭔가 확 치밀어 오르면서 스크린 위로 뭘 내던지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경건하지 못한 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스크린 위에는 놀라운 다음 장면이 펼쳐집니다.

경찰차도 날아서 뒤따라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경찰차를 피하려고 하다가, 자동차에서 나와서 한강 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이 껴안은 모습으로 한강으로 떨어지는 합성 영상은 고래로 보기 드물었던 조악함을 눈부시게, 아니, 눈아프게 자랑합니다.

다음 장면은 더더욱 관객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투명인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시청 앞에서 자동차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부터 경찰에 쫓겨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 까지는 투명인간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에라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어떻게 저떻게 하다보니까 영화 장면은 촬영은 했는데, 도저히 영화 전체 이야기 속에 이어지게 할 방법이 생각이 안날 경우에 난데 없이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이 꾼 꿈으로 처리해버리는 사례가 트래쉬 무비 중에는 종종 나타납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 이외에 "아라한"에 나오는 장면은 아주 선명한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이 나왔는지 짐작할만합니다. 제 짐작은 이렇습니다. 제작진들은 투명인간이 움직이는 모습을 위해서 TV용 화면 합성 장비를 어디에선가 확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화면 합성 장비로 무슨 신기한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것이 또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가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 같은 것도 찍을 수 있다"라고 알려주었고, 그래서 그냥 다짜고짜 어떻게 되었든 돈들여 구한 장비 써먹을 때 까지 써먹자고 생각하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이래저래 찍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연결해 보려고 했는데, 일부는 꿈 장면으로 처리했지만, 소매치기를 쫓는 한 장면은 어쩌다보니 그냥 남게 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이 변화무쌍한 영화는 점차 그 몸부림을 줄여나가면서 서서히 결말로 치닫습니다. 주인공이 황당한 꿈을 꾸고 깨어나서 괴로워하자, 여자 주인공은 "제가 박사님께 말씀드려 보겠어요"라고 하면서, 문제의 연구소를 찾아가 주인공을 원상태로 되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호쾌하게 깔깔거리면서 투명인간의 활약상을 유쾌하게 즐거워하던 시절은 어디로 갔는지 매우 심각하게 간청하는데, 뭐 달라질게 있겠습니까. 별다른 변화 없이 지루하게 자동차 타고 가는 장면과 대화 장면을 한참 보여주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역할인 내용입니다. 다만 이 내용은 바로 다음 장면의 단초가 되기는 하는데, 혼자 연구소에 찾아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여자 주인공이 악당 친구 일당들에게 유괴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이 왜 유괴를 당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악당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여자 주인공을 유괴하면 무슨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던 듯 보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분노한 투명인간이 쳐들어오게 하는 결과만을 낳았습니다. 투명인간은 악당들의 본거지인 이태원의 어떤 빌딩으로 쳐들어갑니다.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악당들의 본거지라면서 촬영한 곳이 사실은 "피자인"이라는 피자가게라는 점은 소소한 즐길거리입니다. 여자주인공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으로 조춘과 다른 악당 부하 한 명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조춘과 다른 악당은 서로 경쟁적으로 여자주인공을 건드리는데, 그러면서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쩌고 하는 쓰레기 같은 대사를 한 두 마디 정도 읊조립니다. 그리고 투명인간에게 두들겨 맞습니다.

악당 총두목인 남포동은 악당 친구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바닷가로 가고 있습니다. "배는 준비 되었겠지?" "내 딸은 보았나. 이제 자네도 자리를 잡아야지" 어쩌고 하면서,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 대충 베낀 대사를 잡다하게 몇 마디 중얼거립니다. 그런데 배를 준비했다는 곳은 어느 어촌이고, 배라고 있는 것은 그냥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을 아무렇게나 하나 골라서 찍어 놓은 것입니다. 저게 어떻게 일본까지 가는 배인가 싶은데, 뭘 생각했는지, 이 영화 형편에 또 굳이 "저 배로 큰 배 까지만 가면 됩니다"라고 한 마디 합니다. 쓸쓸하다고 해야할 지, 헛헛하다고 해야할 지 뭐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바닷가 개펄에서 두 악당들이 투명인간에게 얻어 맞고 들고 있던 가방을 빼앗깁니다. 가방 내용물로 보건데 이 사람들은 마약 밀매 일이 주 업종이었던듯 합니다. 투명인간과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두 악당들이 시커먼 개펄에서 싸웁니다. 그러다가 온몸에 진흙을 묻히면서 나자빠지는 모습은 다른 영화에서 쓰였다면 나름대로 강렬한 격투 장면으로 쓸 수도 있는 소재이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이 개펄 격투 장면에서는 양복 세탁비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정말로, 제 생각에는 이 장면까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백이면 백. 이 개펄 격투 장면에서 양복 세탁비 아깝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거라는 어떤 굳은 믿음이 치밀어 오릅니다.

영화 안에서 악당 총두목으로 되어 있는 사람까지 쓰러뜨리고, 연구소에서 자기가 훔쳐 냈던 연구 논문의 필름까지 되찾은 투명인간은 다시 연구소로 돌아가서 자신을 원상태로 돌려달라고 합니다. 여전히 연구원 두 사람은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속이 터진 투명인간 이영하는 소리지르며 행패를 부리면서 실험실을 엎어버립니다. 그러자, 이런 저런 약이 섞이면서 또 다시 무슨 기체가 나오고, 갑자기 우연히 사고로 다시 투명인간 이영하는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지켜보던 연구원 한명은, "이것은 기적이야. 또다른 기적이야"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연구원 한명이 "박사님, 이건 기적입니다. 또다른 기적이요." 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대답하기를 "이럴 수가. 이건 기적이야. 또다른 기적." 이라고 합니다. 성우들의 연기가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점을 연기하느라 아주 천천히 낱말을 발음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짧고 아무 내용도 없는 대사지만 지켜보는 관객의 그 답답한 심정은 상당히 큽니다. 한편, 원래대로 돌아온 이영하는 "으하하하하! 나는 오인촌! 오인촌이다! 나는 오인촌이다아아아아!" 라고 마구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때마침 연구소 바깥에 여자주인공이 찾아와서 멀리서 이름을 부르자, "미옥이! 미오오오오옥이이이이이!" 하고 길게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갑니다.

남녀 주인공은, 70년대 영화속에 무던히도 많이 나와서, 90년대 이후로는 끝없이도 TV 코미디물에서 패러디 되었던 그 모습 그대로, 멀리서 서로 "인초오온씨이이이이이!" "미오오오옥이이이이이!"라고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면서 달려와 감격어린 포옹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진정한 마지막 장면으로 어린이들과 남녀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전통 무용을 연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름대로 행복해진 일행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화면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은 어느 공터에서 한 어린이가 한복을 입고 혼자 외로이 서서는 한참 동안 느릿느릿 양팔을 앞뒤로 뒤흔드는 동작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어째 좀 쓸쓸한데, 그리고 화면에 "안녕히"라는 글자가 크게 나옵니다.

그러면, 뭐라 형용할 수 없다는 말로 조차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된 관객들이 "지금 이 극장이 있는 행성이 지구 맞습니까?" 라고 서로 묻고 싶어 하면서, 탈진 증세에 비틀거리며 하나 둘 극장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투명인간이기 때문에, 주인공 이영하의 실제 등장 장면이 무척 작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투명해서 배우가 안보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그나마 출연료가 많이 들었을 이영하의 출연료 조차도 아낄 수 있었던 교묘한 중저예산의 향취가 살짝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영하는 지금이야 멋있고 실력있는 중년 배우로서 위치가 확고합니다만 경력 초기에는 이런저런 괴상한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는데, 이 영화 "투명인간"은 그 중에서도 손꼽을만한 충격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투명인간 이영하가 갑자기 람보로 변신하는 장면이 있다거나 하다는 점은 놀라운 발견이라면 발견입니다.

요즘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비평만을 보다가 찾는다면, 이런 영화의 사례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라고도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70, 80년대 한국영화에서 이런 정도의 트래쉬 무비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이정도 상태의 영화는 널려 있습니다. 이보다 더 이상하고, 더욱 질이 나쁜 트래쉬 무비를 찾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 이런 트래쉬 무비들에 대해 좀 더 많은 경험과 이해를 갖추는 것은 영화의 위치와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습니다.

이런 어림도 없는 영화들이 끝도 없이 넘쳐났던 시대를 접하고 이해하면, 과연 요즘 우리가 보는 못만든 영화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지 시각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보는 시간이 아까운 쓰레기이다"라고 대충 뭉뚱그려서 욕하기 이전에 어떻게 해서 그 영화는 말아먹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해 가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없을 만한 졸작 영화라손 치더라도 어떤 내용 구조와 어떤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서 지적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따지게 되면서 토론과 비평은 더 재미나고 풍성하게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영화의 전통과 과거를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월등한 수준의 유지와 도전에 성공해 왔던 홍콩영화와 일본영화의 전통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그 계승관계와 위상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영화 내용은 전혀 아닙니다만, 제목과 소재 때문인지, 2009년 7월에 한국영상자료원의 "여귀재래"라는 제목의 공포영화 특선으로 묶여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의 한국영화는 한국영화 황금기인 60년대에 신성일 주연으로도 한 번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막연한 짐작입니다만, "환원"이나 "중화제" 같은 단어가 막연하게 사용되는 어감이나 80년대 일본식 "특촬물"의 에피소드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 중반부의 투명인간 활약상을 생각해 볼 때, 이 영화 자체가 어떤 일본 영화나 일본 TV극에서 영화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하고 잠시 상상해 보았습니다.

제 블로그에 덧글을 올려주신 rumic71님의 소개로 관련된 영화들의 자료를 찾아보니, 투명인간 영화들 간에는 대략 이런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선, 1969년에 나온 한국영화 "투명인간"은 줄거리를 비교해 볼 때, 1949년판 일본영화 "透明人間現わる"를 모방한 영화로 보입니다. 두 영화 모두, 악당과 대립관계에 있는 주인공이 애인의 아버지가 연구하던 약물을 이용해서 투명인간이 되고, 이후에 착한 투명인간과 나쁜 투명인간의 대립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나쁜 투명인간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약품을 찾으려고 행패를 부리다가 체포된다는 내용입니다. 투명인간에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약을 "환원제"라고 부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영화가 "透明人間現わる" 20년 먼저 나왔으니, 한국영화가 일본영화의 줄거리를 모방한 것이 어느 정도 자명해 보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1986년판 "투명인간"은 줄거리 안이 기록된 것을 보면, 원래는 이 1949년판 일본영화를 모방한 1969년판 한국영화 "투명인간"을 다시 모방, 변형한 영화로 보입니다. 애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줄거리는 기록이 사라졌지만, 이 영화도 원래 줄거리는 착한 투명인간과 나쁜 투명인간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같고, 마지막에 악당들이 투명인간에서 회복되는 약을 내놓으라고 하다가 체포되는 줄거리도 같습니다. 역시 투명인간에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약을 "환원제"라고 부르는 점도 같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영화 중간에 갑자기 여자주인공이 연구원에 찾아가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1969년판 영화나, 1949년판 일본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이 연구원의 딸로 설정되어 있었던 이야기를 무리하게 따라하려고 하다가 튀어나온 장면인듯 싶시도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위에서 소개해 드린 내용에서 보시다시피, 이 영화는 너무 영화 제작 기술이 부실했던 까닭에, 1949년판 일본영화를 2중으로 두 번에 걸쳐 모방해온 과거가 모두 지워질 만큼, 줄거리고 뭐고 무시해 버리고 마구잡이로 만들었고, 결국 매우 다른 내용으로 영화가 완성된 것입니다. (rumic71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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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9/07/20 02:36 # 답글

    1. 63빌딩이 건설된 이후에 저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잠시 충격을.
    2. 일본에도 물론 '투명인간' 시리즈가 있긴 합니다만 제목 이외에 영향받을 건덕지가 있을 성 싶지 않습니다...http://www.boople.com/bst/BPDVDdispatch?av_cd=1050427254
  • 이준님 2009/07/20 05:21 # 답글

    ...전 저걸 TV에서 봤습니다. --;;;

    같이 보던 동생이 그러더군요. "이영하. 돈 진짜 없나부다. 저런 영화에나 나오고"

    남포동은 더군다나 "하얀 양복"을 입고 열심히 갯벌을 구르는데서 더 인상적이더군요. 액션(?)이라고 할지 하는 장면은 나름 잘 찍었습니다.
  • 봄비 2009/07/20 08:19 # 삭제 답글

    이거 사건들만 놓고 보면 대여섯시간은 훌쩍 갈 스토린데요 --;; 얼마를 우겨넣은 거야
  • 효사도르 2009/07/20 11:20 # 답글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클레멘타인을 추천했습니다만...이런 명작이 있었을 줄이야...전 아직 멀었습니다...
  • 무설탕 2009/07/20 11:53 # 답글

    엄청 웃고 갑니다. 이걸 읽고 영화를 보면 적어도 웃을 수는 있을듯..ㅋㅋㅋㅋ
  • 뮤우 2009/07/20 13:13 # 답글

    읽다가 웃음 참느라 혼났습니다 ㅠㅠㅠ 앜.. 코끼리가 면도하는 걸 보고 왔어요 라니..ㅋㅋㅋㅋㅋㅋㅋ
  • Limgoon™ 2009/07/20 16:00 # 답글

    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절묘한 표현들 덕분에 한참 웃었습니다. ^^
  • 잠본이 2009/07/20 20:50 # 답글

    몇번씩이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위기를 넘기며 리뷰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OTL
  • shuha 2009/07/21 09:47 # 삭제 답글

    에이이잇 사소한 현실성 따윈 엿바꿔 먹으라고 해!!

    어차피 우리영화에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감독인 나도 기대 안해!

    ...라는 대략 대인배 적인 풍채가 엿보이는 군요.

    ->에..에드우드!?
  • ㅁㄹ 2009/07/22 17:14 # 삭제 답글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충격과 공포'군요... 진짜 경의를 표합니다
  • 게렉터 2009/07/22 19:40 # 답글

    이준님/ 역시 무적의 MBC 주말 "특선방화". 저는 MBC건 어디서건 다시 한 번 과감하게 아무 한국영화나 막틀어주는 낮 방송이 하나 있었으면 싶습니다.

    봄비/ 사실 별로 스토리랄 것은 없습니다. 위에 나온 장면들이 영화의 거의 전부입니다. 연결장면, 설명장면들이 다 없으니 말입니다.

    효사도르/ 70, 80년대 한국영화의 바닥을 치는 트래쉬무비들이 널려 있는 것에 비하면, 클레멘타인은 사실 멀쩡한 영화입니다.

    무설탕/ 웃으며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뮤우/ 시원하게 웃으시면서 다시 한 번 읽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Limgoon™/ 감사합니다. 너무 과한 표현 아닌가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잠본이/ 저는 즐겁다면 즐겁게 봤습니다. 예전부터 보고 싶어하기도 한 영화이고 말입니다.

    shuha/ 감독하신 분은 몇 편 감독 못하셨다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ㅁㄹ/저는 아직까지 "Rock n Roll Nighmare", "지옥의 늪"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이 매우 생생합니다.
  • 장난 2010/05/28 18:54 # 삭제 답글

    한국영상자료원의 자료를 보니 서울에서 동원한 관객이 969명이라더군요-_-
  • 게렉터 2010/05/29 10:01 #

    그나마 그 969명이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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