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女) 영화

1968년작 한국 영화, "여(女)"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린 영화배우, 신성일이 거물급 여자 배우 세 명과 짝을 바꿔 가며 찍은 환상물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약간 기괴한 소재를 다루는 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편 모두 남자 주인공은 신성일이지만, 여자 주인공은 저마다 다르고 영화의 각본과 감독도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 영화 포스터)

세 편 모두, 출발과 사용하는 소재는 상당한 흥미를 끕니다만, 전체적인 얼개나 절정/결말의 구성은 부족한 데가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편 모두 기괴한 상황을 고안해 내서 들이미는 데 까지는 썩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내서 해결하느냐 하는 데서 미끄러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고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수수께끼 문제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는데, 도무지 문제를 만든 사람도 해답은 명쾌하게 만들어내지 못한 모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영화를 보면서, 어떤 소재, 어떤 상황을 제시하는지, 그 첫머리를 보고 신기해 하는 것이 가장 재밌는 순간이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이 영화 속에 들어 있는 세 편의 이야기들을 각각 어떻게 짜놓았는지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시정(詩情)"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는 첫머리가 흥미진진하고 연출도 그럴싸하고 흡인력도 강합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중반부 이후로 급격하게 우스꽝스럽고 재미없어지는 정도가 세 편 중에 가장 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주인공은 60년대 여자 영화 배우 트로이카로 명성을 드날렸던 문희가 맡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을 확 "클리프 행어" 장면으로 해버리면서 막바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영화입니다. 문자 그대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어느 깊은 산 암벽에 매달려 있는 신성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신성일이 왜 저렇게 깊은 산 속에 오게 되었으며, 어쩌다가 저렇게 위험하게 벼랑에 매달리게 되었는지 바로 호기심이 생기면서 영화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벼랑에 매달린 신성일이 살아 날 수 있을지 떨어질 지 아슬아슬해 하면서 어떻게 다음으로 연결될 지 궁금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극적"인 구성입니다. 관객은 신성일의 친지도 아니고, 신성일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도 전혀 모르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저 사람이 하여간 괴로워하면서 벼랑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그럭저럭 긴장감과 함께 "어떻게 되려나"하는 호기심이 확 생기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성일의 연기도 썩 좋아서, 영화 화면에 감정을 알아 보기 쉽게 드러내는 표정의 과장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현실다운 진짜 같은 느낌도 풍부합니다.

결국 다음 장면에서 신성일은 벼랑에서 떨어지고, 부상을 입게 됩니다. 신성일은 그탓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대충 기면서 바위틈 사이로 깊은 산속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계속 굴러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성일은 지쳐서 주저 앉게 되고, 그대로 꼼짝 못하고 쓰러진 채 드러누워서 비몽사몽간에 밤을 맞게 됩니다.

밤이 되자 화면에는 까만 밤하늘에 뜬 반달 같은 것이 하나 나옵니다. 그리고 화면은 그대로 가만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드러누워서 의식이 점점 흐려지면서 죽어가는 신성일의 시선 처럼 보입니다. 화면에 나온 반달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신성일이 정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인가 싶습니다. 화면의 반달은 조금씩 더 흔들리더니 조금씩 빛이 강해지고 커집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빛은 형체를 갖습니다. 그것은 등불입니다. 눈앞에 보이던 반달 같은 빛은 멀리서 보이던 등불이었던 것입니다. 등불은 이쪽으로 점차 다가오고 있으므로 점점 더 형체가 뚜렷해 집니다. 등불을 든 사람은 두 명의 여자 입니다. 이렇게 깊은 산 속에 어떻게 해서 저런 두 여자가 있는 것입니까? 등불을 든 두 사람은 신성일에게 다가옵니다. 여자 중에 더 어리고 젊은 쪽의 여자가 하는 말이 신성일의 귀에 꿈결처럼 메아리칩니다. 쓰러져 있던 신성일은 두 여자에게 구출되어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 부분의 연출은 훌륭합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깊은 숲속에 들어와서 부상을 당한 그 적막한 심정이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멀리서 보이던 불빛이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등불임이 드러나는 방식도 재미납니다. 저 불빛이 무엇일까? 사람이구나, 이제 살았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하는 누구일까?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궁금해 하게 됩니다. 바로 영화 속의 신성일이 궁금해하면서 느낄 감정을 관객이 똑같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 대사도 없고, 무슨 다른 해설로 설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화면에서 신성일이 보는 것을 보면서 극중인물과 같은 장면을 화면 밖 객석에 앉아서 그대로 느끼게 됩니다. 관객은 영화속의 신성일이 보는 것을 보면서 영화 속 신성일과 똑같은 마음으로 완전히 이입해서 눈앞에 펼쳐지는 빛과 형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고민하고 추측하고 깨닫습니다.

이 영화 속 장면의 분위기가 훨씬 간촐하기는 합니다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유명한 오마 샤리프의 등장 장면을 방불케 하는 데가 있습니다.

잠시 후, 신성일은 깊은 밤 어느 방안에서 눈을 뜹니다. 그 산 속에 있는 외딴 산장인 듯 한데, 어떤 연유로 이렇게 깊은 산에 있는 산장이 있는지, 자신을 구출해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 도무지 알 길은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생각과 궁금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신성일은 좌우를 두리번 거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내지는 "인기척이 없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영화에서는 계속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똑, 똑, 똑 들려주고 있습니다. 일부러 소리를 들려주어서 그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안들릴만큼 고요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에 자주 쓰는 방법이고, "길을 잃은 사람이 귀곡산장에 가는 영화"에서 자주 쓰는 방식이지만 기본기가 훌륭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고, 두 여자의 정체는 몹시 궁금합니다.

두 여자는 조금 나이든 중장년층 정도의 여자와 그 딸 내지는 조카뻘 쯤 되어 보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입니다. 어린 여자의 목소리는 괜히 공허하게 울림이 많게 되어 있고, 자꾸 한 말을 반복하는 등 정신이 좀 이상한 듯, 정상이 아닌 듯 보입니다. 반면에 늙은 여자는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무슨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범죄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입니까? 길 잃은 사람이 나오면 해치는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입니까? 궁금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어두운 늙은 여자와 약간 정신이 이상한 듯한 밝은 어린 여자의 구도는 리처드 매서슨의 한 단편 소설을 연상하게 합니다.

곧 늙은 여자가 나타납니다. 별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어두운 탓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까맣게만 보입니다. 얼굴이 안 보이고 윤곽만 보이는 그 영상 때문에 알 수 없는 느낌, 불길한 호기심은 더 커집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연결해서 붙여넣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신성일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쩌다가 여기에 왔고 왜 길을 잃었는지 하는 궁금함은 모두 잊게 됩니다. 대신에 신성일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도 모르면서도, 관객들은 모두 신성일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어, 오직 이 이상한 두 여자의 사연과 정체가 궁금하다는 생각만을 영화 속 신성일과 똑같이 하게 됩니다. 더 큰 수수께끼가 나타나면서 앞의 수수께끼는 잊혀지고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인 주인공을 오히려 친근하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습니다. 감정이입을 중요시하는 이야기들에서 쓰는 기술이고, 반전으로 엮어 쓰기에도 좋은 기술인데, 이 영화에서도 이만하면 매끄럽게 해내고 있습니다. "로스트", "앨리어스" 같은 소위 말하는 "떡밥극"에서는 아예 대량생산으로 써먹는 그 기술이, 이 영화에도 잘 녹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이 이야기의 도입부 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아쉬운 점은 허망하게도 이게 이 영화에서 건질 전부라는 것 입니다. 이제부터, 영화는 별로 재미도 없고, 이야기 전개도 싱겁고 느리고, 끝까지 봐 보았자 딱히 대단한 반전이나 강렬한 결말도 없이 썰렁할 뿐입니다.

두 여자의 정체는 유모와 아씨입니다. 현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아씨"라는 인물은 좀 안어울리는데, 그러고보면, 굉장한 귀족급의 부자인가 봅니다. 당연히 문희가 아씨 역할을 맡았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깊은 산속에 있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이유는 아씨가 남녀간의 애정이 있는 속세를 피하고자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까지만 꺾어 놓으면 음침하고 살벌한 욕망과 금기가 넘실거리는 괴기스러운 배경으로 그만이겠습니다. 하지만, 아씨가 왜 속세를 피하고자 하는지는 좀 허망합니다. 이유란 아씨가 어릴 적부터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왜 속세를 떠나는 이유가 되느냐 싶은데, 영화 속에서 하는 이야기는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도 저버리고 살겠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좀 막나가는 구석이 있는만큼 조금 더 정신병적이고 광기어린 분위기로 만들었으면 훨씬 그럴듯했을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아씨"라는 인물은 말하는 투나 말하는 대사나 결코 맨정신은 아닌 듯 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햇습니다. 대신에 이 영화는 이 아씨가 신성일과 첫눈에 갑자기 사랑에 빠지면서, 애절한 사랑이야기 연기를 문희에게 시키는데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광기 어린 괴기물 분위기는 다 날려 버립니다.

그나마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무슨 수가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신성일이 집에 갔다가 결혼을 허락 받고 10일만에 돌아오겠다고 하는데, 신성일은 1개월 이상 시간을 소모하고, 게다가 너무나 깊은 산속에 아씨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산속에서 헤메게 됩니다. 신성일이 늦게 도착해 보니, 아씨는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유품으로 남기고 죽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인지 뭔지 갑자기 필름이 확 잘리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립니다. 이게 뭡니까? 아씨는 왜 죽은 것입니까? 자살한 것입니까? 병으로 죽은 것입니까? 신성일은 왜 1개월 이상이나 넘는 시간이 걸린 것입니까? 유모는 죽어가는 아씨를 보면서,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되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아무것도 알 수 없이 그냥 대충 "이건 그냥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라고 밀어 붙이면서 영화가 스윽 흘러가버립니다. 추측하건데, 영화를 찍으면서 아씨가 신성일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한다는 식으로도 한 번 생각하고 찍어 봤다가, 아씨가 불쌍하게 병으로 죽어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촬영하기도 해봤다가 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무슨 시간 제한 같은 것이 있어서 아씨가 기다리고 있는데 딱 하루를 못 기다리고 안타깝게 죽는 장면, 그런 것도 나오면 괜찮겠다 싶어서 촬영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찍어 놓고 보니까, 뭘 어떻게 엮어서 이야기로 꾸며야 할 지 끝까지 만족할만한 답을 찾아내지 못해서, 대충 얼기설기 차례대로 그냥 보여줘 버리고 말아버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다보니, 영화상의 세세한 표현도 형편 없어져서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신성일과 문희가 열렬한 사랑을 서로 고백하는 내용은 모두 다 좀 뜬금없고 이상하고, 특히 "불임"에 대한 갈등을 제시하기 위해 문득 신성일이 당시 영화 특유의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성우 목소리로 "나는 삼대독자야." 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아주 이상합니다. 토끼들이 산속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그 사이의 계곡에서 무슨 비파 같은 것을 켜는 시늉을 하는 문희의 모습이 "선녀"처럼 꾸며져 있는 모양도 좀 조악하고, 이 영화 전체에서 세 가지 이야기 모두에 걸쳐 지겹게 반복되는 배경음악도 아주 답답합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환상"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이야기로, 이번 이야기에서 신성일과 짝을 이루고 있는 상대역은 김지미가 맡았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여자주인공 문희가 10대 후반으로 신성일보다 어린 소녀를 연기했다면, 이 이야기에서 김지미는 신성일과 비슷한 나이 또래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형식이 재미난 면 한 가지와 소재가 재미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형식입니다. 이 이야기는 맨 처음 시작하면서 서울역 앞의 아침 거리를 보여주고, 바쁘게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큰 길을 오가는 차량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곧이어 서울역 맞은 편에 있는 한 가게를 보여 줍니다. 모 화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가게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가게로 보입니다. 곧 가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주인 신성일을 보여주고, 신성일이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가게 문을 여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일주일이 좀 못되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거의 똑같이 이 서울에 아침이 찾아오고, 신성일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같은 영화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이, 이렇게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아침을 똑같이 반복해서 거듭 보여주는 것은 우선은 주인공의 생활이 단조롭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단조롭게 사는 주인공이 갖고 있는 인생의 의미라든가, 심심하게 사는 주인공이 하루하루 무엇에 그나마 흥미를 느끼는지에 집중하게 해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영화에서 "또 다른 하루가 밝았구나" 하는 점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막이 오르고 내리는 것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매번 똑같이 펼쳐지는 이 신성일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하루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어제까지 펼쳐졌던 사건은 오늘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 하는 기대감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런 형식에 담겨서 펼쳐지는 이 영화의 소재는 일종의 "도플갱어" 이야기 입니다. 무엇인고 하니, 서울역 앞에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처녀가 사람을 찾아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신성일이 아는 가발공장 공장장인 "김여사"와 똑같이 생긴 것입니다. 신성일은 가발공장 공장장에게 혹시 쌍둥이 동생이 있는지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이 길을 잃고 헤메는 처녀의 정체를 알기 위해 접근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 되는 것이라고는 없이 도통 수수께끼 같은 상황만 펼쳐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철두철미하게 사업을 처리하는 능숙한 비즈니스우먼인 가발공장 공장장 김여사와, 40년대에나 어울릴법한 구식 한복을 입고 서울역 앞의 길을 이리저리 헤메이며 두리번거리는 어리벙벙하기 그지 없는 시골 처녀가 똑같이 생긴 것입니까?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이 수수께끼는 더 이상해집니다. 일단 남자주인공 신성일은 공장장 김여사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고, 어느 정도 흑심을 품고 있기도 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접근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신성일은 김여사가 구경하고 있는 재판의 방청석 뒷자리에 앉아 몰래 김여사의 귀에다 "김여사의 몸과 똑같이 생긴 마네킹을 구할 수 없을까요" 따위의 대사를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서울역 앞을 헤메는 시골처녀가 뭔가 정상적인 인물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시골처녀는 매일 아침마다 서울역 앞에 나와서 헤메고 있는데, 이런 어리벙벙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사기치는 사람들에게 사기도 좀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함 없이 매일 아침 눈에 뜨입니다. 신성일이 말을 걸어보면, 이 시골처녀의 이름은 "김순자"로 얼굴도 모르는 "철수"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서울에 찾아왔다는데, 대뜸 신성일이 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품는 엉뚱하기 그지 없는 사람입니다. 더우기 이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맨날 시골에서 갓 올라온 모양으로 서울역 앞에서 헤메며 그 철수라는 사람을 찾아 다닌 것이 무려 8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니면 정신 나간 헛소린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기이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매일 아침 같은 형식으로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 장면을 보여주면서 점차 이 영화는 흘러갑니다. 수수께끼는 흥미롭고, 남녀 주인공 배우들의 모습은 잘 들어 맞습니다. 멀쩡한 가게 주인이면서 슬쩍 바람끼 있어 보이는 신성일의 모습은 딱 맞아 떨어지고, 공장장 김여사와 시골처녀 김순자를 동시에 연기하고 있는 김지미의 모습도 꽤 괜찮습니다. 김지미의 나이에는 김여사가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만, 김순자의 모습도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결론은 무엇이고, 이렇듯 이상한 일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까? 멀쩡하게 직업을 갖고 튼튼하게 공장을 운영해나가고 있는 김여사는 그렇다치고, 도무지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정체 불명인 김순자의 정체는 뭡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이렇게 판을 짜는 것 까지는 꽤 멋드러지게 흥미진진했습니다만, 두고 보아도 별 결론은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김순자의 옷을 풀어헤치는 신성일의 모습이라든가, 김순자가 금발 가발을 머리에 쓰고 해괴하게 자이브 댄스를 추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이상한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별로 앞뒤에 연결되는 사연이 말이 된다거나, 그게 무슨 뚜렷한 반전이나 복선으로 활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결말부터 말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신성일이 아침마다 목격한 서울역앞을 배회하는 시골처녀 김순자는 신성일의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꿈이었다" 반전의 변형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흥미로운 출발과 몇몇 재미있는 장면은 구상했는데, 어떻게 진상을 드러내야 할지 도대체 방법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환상이었다"로 처리하고 때워버린 듯한 느낌이 많이 납니다. 신성일의 태도는 오락가락하고, 애초에 신비의 인물로 되어 있는 김순자는 더욱더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김지미의 이런 저런 재미난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생각나는 신기한 장면들을 일단 찍어서 끼워넣고 보다보니, 도무지 앞뒤 연결은 되지 않게되었다 싶은 느낌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영화를 끝까지 봐도 딱히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첫번째 이야기인 "시정"보다 좀 더 나은 것은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말이 되게 정리하기 위해서 막판에 꽤 가다듬어 놓고 보강해 놓은 내용들이 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이야기 막판에 신성일이 우연히 사모해 왔던 김여사의 애인으로 보이는 중늙은이 남자를 목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장면 다음부터, 신성일은 시골처녀 김순자는 환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성일이 만난 시골처녀 김순자는 신성일이 마음에 품고 있던 김여사에 대한 망상이다"라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성일은 빈틈 없는 비즈니스 우먼 김여사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접근하지 못하고 짝사랑만 하다보니까 김여사와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처녀 김순자를 망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김여사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짝사랑의 산통은 깨어지고, 망상은 깨어져서 김순자의 환상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줄거리라고 꿰어 맞춰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디까지나 이런 줄거리는 나중에 꿰어 맞춰 본 것이고, 영화 전체의 모양은 결코 이렇게 선명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고 준비할 때는 이런 식의 결말과 진상으로 처리할 것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급하게 그나마 말이 되는 방식으로 맞춘 결론이 이렇다 싶습니다.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조금은 더 연관관계나 상징관계를 보충하고, 복선이나 줄거리의 연결고리가 더 튼튼해 지는 것이 멀쩡해 보였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도감이라든가, 감정의 변화 같은 것이 거의 전혀 조절되고 있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영화 같은 느낌이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이 장면 저 장면 따로 상관없이 생각나는 데로 찍어 놓고 나중에 최대한 말이 되게 조합한 듯 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 외에 이 이야기에서 재미난 요소 한 가지는, 맨 처음 나왔던 이야기인 "시정"과의 연결되는 듯 안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무엇인고하니,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신성일이 가발공장의 김여사를 만나는 까닭은 신성일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멀쩡한 독신 남자가 왜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것입니까? 더군다나 그것을 왜 가발로 만들어서 갖고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 옴니버스 영화의 관객이라면 당연히 앞의 이야기인 "시정"편을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등산을 한 그 신성일이 죽은 문희의 머리카락을 유품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 머리카락을 가발로 만들어서 갖고 있으려고 한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첫번째 이야기와 두번째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인지, 혹은 첫번째 이야기의 신성일과 두번째 이야기의 신성일이 같은 사람인지 어떤지는 분명하게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신성일의 직업이나 거처가 묘사된 적이 없기 때문에 두번째 이야기의 신성일이 그 신성일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두번째 이야기의 신성일 역시 자기가 어떻게 머리카락을 구했는지, 자기가 등산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두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인지,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연결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별개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는 구성은 무척 재미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형식은 "영화"와 "영화배우"라는 것의 특징을 교묘하게 활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산에서 머리카락을 얻어 온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그 얼마후에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머리카락을 가발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동일한 사람의 연결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연결 될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한 사람이 겪는 연결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라면 달라집니다. 바로 신성일은 일년에도 몇십편씩 서로 다른 역할, 서로 다른 인물로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로 영화 속에서 출연하는 영화배우 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우리가 신성일을 보면, 똑같이 생긴 신성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화라면 다른 인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맨발의 청춘"의 신성일과 "별들의 고향"의 신성일은 둘 다 똑같이 신성일처럼 생겼고, 둘 다 매우 비스무레한 미래가 불투명한 날건달 청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두 영화의 신성일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이 영화는 이것을 역이용합니다. 같은 신성일이 연결될 수도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앞의 신성일과 지금의 신성일이 다른 영화의 다른 인물인지, 연결되는 영화의 같은 인물인지 알 수 없게 해 놓았습니다. 옴니버스 영화로 세 개의 구별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 덩어리의 영화로 보고 연결되는 한 인물로 봐야 합니까? 아니면 세 개의 잘려 있는 이야기로 보고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로 보아야 합니까? 일부러 모호하게 해 놓았습니다. 이런 구성은 시도 자체로 재미거리가 될만한 구성 수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아쉬운 것은 이렇게 재미난 수법으로 이야기들을 배치해 놓았지만, 그냥 그렇게 "신기하네" 싶은 것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영화 전체의 주제와 줄거리 구성은 이런 교묘한 구성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이런 배치의 덕을 보는 부분도 적습니다. 이야기가 연결되는 듯 끊어지는 듯한 이 구성 덕분에 감정이나 인물이 강조되는 효과는 미미합니다.

그렇게 꾸밀 수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세번째 이야기를 보면, 가발을 잃어버린 신성일이 가발의 새 주인이 된 최은희를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첫번째 이야기의 신성일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열정 넘치는 청년이었고, 두번째 이야기의 신성일이 평범한 가게 주인으로 거래처 김여사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사나이인데 비해서, 이 세번째 이야기의 신성일은 희롱과 쉰 수작으로 닳고 닳은 생 날건달 같은 인간입니다. 점차적으로 신성일이라는 인물이 타락해 간다는 느낌도 좀 납니다. 이 점층법 덕분에, 세 편의 이야기가 엮이는 듯 마는 듯한 그 신기한 가능성은 마지막까지 분명히 살아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하면, 비교적 구성이 확실하고 절정 장면과 결말 장면도 각각의 모양이 조금은 분명한 형태입니다. 특히, 이 세번째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하면 상대도 되지 않을만큼 파격적이고 과격한 소재를 써먹는만큼, 이야기의 불길한 분위기라든가, 무슨 일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기괴한 긴장감도 음험하게 살아 있습니다. 도대체 그 과격한 소재란 무엇인고 하니,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고질적이고 고전적인 소재를 아주 정면으로 눈앞에 들이대는 것입니다. 바로, 날건달 신성일이 마음잡고 평화롭게 사는 어머니뻘 되는 최은희에게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꽤 멋드러진 옷을 파는 호사스런 가게의 주인인 최은희는 썩 멋있어 보이는 귀부인 입니다. 이 최은희는 6.25때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최은희의 잃어버린 아들 흉내를 꼭 같이 따라하는 신성일이 최은희 앞에 나타나 건들건들 최은희에게 이상하고 해괴한 수작을 거는 것입니다. 신성일은 최은희에게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주겠다면서 자기 친구인 어떤 흉악범을 소개시켜주는가하면, 동시에 최은희를 유혹하는 헛소리를 하면서 최은희가 갖고 있는 가발 중에 옛날에 자기가 갖고 있었던 것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정신나간 놈을 최은희가 상대할 필요는 전혀 없을 법 합니다. 하지만, 최은희는 평생 6.25때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한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6.25때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신성일이나, 신성일이 소개해준 고아였던 흉악범 둘 다 최은희는 자꾸 미련이 남아서 만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신성일은 계속 최은희의 주위를 맴돌면서, 끈적한 관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결국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이 이야기의 결말은 변태스러운 상황으로 모두가 죽어버리는 대파국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파국으로 치닫는 복선도 대충은 갖추어져 있고, 점차 이야기가 강렬해지다가 막판에 해괴하게 충격을 퍼부으면서 끝나버리는 점점 심해지는 크레센도의 정도도 대강은 적절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세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멀쩡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갖출 수 있을 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너무 파격적인 소재를 심하게 밀어붙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막판 무렵에 확 기운이 빠집니다. 이것은 어쩌면 그저 60, 70년대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영화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마지막에는 난데 없이 갑자기 새마을운동 스러운 공익광고 같은 주제로 끝나버리는 관습에 빠져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비도덕적이고 과격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를 주욱 끌고 나가다가 두 주인공이 괴기스럽게 죽어버리는 것을 결말로 보여주면서도, 갑자기 놀랍게도 "아아아, 이것이 6.25가 남긴 전쟁고아의 비극이 아닌가! 아아아. 6.25의 비극을 이제는 씻어버리자" 라는 편지 읽는 소리 같은 것이 어디선가 튀어 나오면서, 갑자기 6.25 관련 홍보물로 돌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난데 없이 "사실은 악당의 배우는 공산당 간첩이었지롱" 이라면서 마지막 순간에는 반공물로 돌변해 버리는 한국 영화들은 그야말로 수 없이 많았습니다. 못지 않게 많았던 것이, 신나는 활극을 벌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 마디 말도 없었던 "독립 운동"을 위해 만주로 주인공이 떠나면서 끝이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이 세번째 이야기는 그나마 "전쟁 고아 문제"니까 소재는 참신한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침 없이 금기를 작살내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대돌변하여, 밝은 사회를 위한 공익 홍보물 교훈을 읊조리면서 끝을 맺는 모양새는 무척 괴상합니다.

그외에도, 세번째 이야기는 모양이 좀 튼실했던 덕분으로 조금만 더 꾸몄으면 좋았겠다 싶은 대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이야기 속에는 참신하고 그럴듯한 장면들이 별 비중을 얻지 못하고 잠깐 밖에 안나타나고 사소하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쉽게 눈에 뜨이는 예는 이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자주 등장하는 "양아치"들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양아치는 문자그대로의 양아치로,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거나 동냥을 수입원으로 하여 대충 서로 모여서 다리 밑에 천막치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입니다. 이들은 떨어진 군복을 주워 입고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으로도 기이한데, 미군 록큰롤 음반 같은 것을 어디서 구해와서 그 "양아치" 같은 몰골로 서로 어울려서 정신 나간 것처럼 마구 막춤을 춥니다.

몇몇 장면에서 이 양아치들은 넝마주이를 위한 거대한 쓰레기 망태를 등에 매고 한강변을 줄지어서 걸어갑니다. 그 모습이 널찍한 영화 화면에 담기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 양아치들은 그렇게 줄지어 걸어가면서 쓰레기를 줍는 양철 집게를 탁탁 쳐서 마치 군악대의 작은북 소리와 같은 장단을 맞추면서 걷는데, 그 풍경은, 과연 제3세계 영화에서만 담아낼 수 있는 정취가 강렬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성 넘치고 힘이 넘치는 모습들을 별로 오래 보여주지도 않고, 많이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에서 중요한 것으로 별로 부각시키지도 않아서 잠깐 그저 스쳐지나가고 맙니다. 나중에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뭐가 더 재밌고 멋있는지 보일텐데, 당시에 찍으면서는 깨달을 수 없었던 아쉬운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TV 사극들이 우리 역사에 있는 진짜 재미거리는 놓쳐버리고, 그저 멋있을 줄 알고 중국 무협물이나 미국 영화에서 베껴온 번쩍거리기만하는 알 수 없는 장신구와 갑옷을 잔뜩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형국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양아치들의 천막이 있는 한강변에 대조적으로 늘어서 있는 호화로운 신식 강변 아파트들의 모습도 좋은 예입니다. 이때의 강변 아파트들은 그런 종류의 아파트들로는 처음 건설된 것들이라 세대수도 많지 않고, 특히 한강 고수부지가 생기기 전이기 때문에 한강에는 모랫벌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모습이 볼만해 집니다. 그 한강변 모래판에 아파트가 서 있는 광경은 마치 사막에 외로이 서 있는 신비로운 성과 같은 이상한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다리 밑의 천막과 강가의 쓰레기 장을 다니는 양아치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 화면은 꽉 들어 찹니다. 특히나, 그 호화로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바로 아들을 찾고 있는 최은희이고, 최은희의 잃어버린 아들과 다를바 없는 처지의 불우한 아이들이 곧 그 양아치들이기 때문에 극적인 효과도 선명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장면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정도에 그치고 맙니다.

그외에 신성일이 가발들의 머리카락에 목졸려 죽는 환상을 보는 장면에서 특수촬영이 너무 초라해서 좀 우스꽝스럽다든가, 중간에 나오는 격투 장면의 싸움이 극히 가짜 같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딱 한가지 밖에 없는 음악이 속터진다는 점은 정말 아주 부아가 치밉니다. 영화 내용을 보면 장중한 묵시록적인 음악도 어울릴 법 하고, 혹은 슬쩍 퇴폐적인 재즈나 블루스도 잘 들어맞을 법합니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이 영화 전체의 주제곡으로 잡혀서 세 이야기 모두에 걸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상한 동요 같은 음악만 단조롭게 계속 들려옵니다. 이 잡스러운 음악 때문에 음산하고 무거운 영화의 악마적인 분위기가 팍팍 깨져 나가는 부분도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최은희가 배역에 좀 어울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꽤 들었습니다. 최은희의 연기는 부드럽고 멀쩡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성일과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만드는 그 유혹의 느낌을 살리려면, 다른 배우의 외모가 훨씬 더 좋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은희는 얼굴도 강건해 보이는데다가 체형도 풍채가 좋아서, 이 이야기의 불길하게 관능적인 감상과는 별로 들어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차라리 두 번째 이야기에서 김여사로 나왔던 김지미가 좀 더 늙어 보이는 분장을 하고 나왔다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느 날건달이 최은희를 유혹하기 위해, 최은희와 어느 클럽에서 술자리를 같이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 날건달은 슬쩍 최은희의 스커트 위에 술을 쏟아 버리더니, "젖었군" 정도의 대사를 읊조린 뒤에 닦아 준다면서, 손수건을 꺼내 최은희의 다리를 닦는 겁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 놓고 다시 돌아보면,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첫번째 이야기보다는 두번째 이야기가 낫고, 두번째 이야기 보다는 세번째 이야기가 낫고, 세번째 이야기는 대충 멀쩡한 영화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기에 그래서 세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밌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역시 세번째 이야기는 과격한 소재 하나만을 놓고 밀어붙이는 힘에 너무 매달리고 있는 느낌이 컸습니다. 그 탓에 인물들에 대한 표현이나 상황에 대한 이입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드러나는 본론이 너무 싱거워서 그렇지, 워낙에 흥미진진하게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던 첫번째 이야기의 신비로운 도입부라든가, 자기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도플갱어를 만난다는 소재를 다루는 두번째 이야기도 그렇다면 나름대로의 맛은 뒤지지 않는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두번째 이야기는 간신히 겨우 모양을 맞춰놓은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김지미라는 배우의 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판을 잘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문희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첫번째 이야기나, 최은희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세번째 이야기와는 확실히 대조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여(女)"는 영화를 이루고 있는 세 편의 이야기 모두, 소재와 시작이 모두 흥미로운데 비해서, 결말은 하나 같이 싱겁고 부족하기에,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보기에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소재로 이렇게 꾸며 보면 어떨까. 나라면 이 영화를 그렇게 시작했다면 그렇게 끌고가서는 저렇게 끝내보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보기에 무척 좋은 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41년전 영화를 다시 돌아보고는 오히려 신선한 소재와 착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지금 보기에는 나름의 가치가 또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

세 명의 거물급 여자 배우가 신성일이 차례로 짝이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제목을 "여"라고 붙였겠습니다만, 소재나 줄거리만 본다면야, 영화의 제목은 "머리카락"이나 "가발"이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울릴법 합니다.

산속에서 수수께끼의 두 여자를 만나는 첫번째 이야기는 정진우가 감독을 맡았고, 짝사랑하는 김여사의 도플갱어 시골처녀를 만나는 두번째 이야기는 유현목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감독은 김기영이 맡았습니다.

김기영이 감독을 맡은 영화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다" 어미로 끝나는 극단적 문어체 대사를 이 영화의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보기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옛 한국 영화의 영화 대사들은 도무지 실제 말하는 것 같지 않은 문어체 때문에 현실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런데, 김기영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 중에는 아예 적극적으로 현실성을 포기하고 문어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버리는 대사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사 자체를 아예 일종의 산문시처럼 꾸며서, 영화 속 등장 인물이 격정적으로 읊어대게 한 것입니다. 이때 대사의 각운을 종결 어미 "-다."로 맞추는데, 이게 또 등장하는 것입니다.

장면 연출이 꼭 교과서가 있어서 그것을 따라한 것처럼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장면이나 소재가 어디서 봄직하다는 대목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 영화에 소개된 이야기들과 같은 소재, 같은 줄거리를 가진 다른 영화, 연극, 소설 같은 것을 아시는 분 있으시다면 대강 떠오르는 생각이라도 짧게 알려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별로 구체적으로 닮은 구석은 없더라도 전체적인 모양새에서 영향 관계나 모방 관계가 있음직해보이는 다른 영화를 언급해 주셔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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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9/22 12: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09/11/03 12:33 #

    감사합니다.
  • 진성당거사 2009/09/22 17:05 # 답글

    일단 이제야 다시 생각났지만......'나는 삼대독자야'의 압박이..........ㄷㄷㄷ;;

    첫번째 에피소드 부분에서 로케를 했던 산은 거의 틀림없이 혜음령 고개와 속리산 계곡에서 찍은게 분명한데, 두 산세의 지형이 워낙 달라서 서로 따로 노는듯한 분위기가 어쩔 수 없더군요. 첫번째 에피소드는 일본 괴기물의 걸작, '콰이단 (괴담)'의 첫번째 에피소드랑 유사해보입니다.

    믿을만한 증언에 따르면 유현목 감독이 이 영화의 기획단계에서 영향을 많이 행사했다고 하는데, 사실 두번째와 세번째 에피소드는 개별의 장편영화로 만들려던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옴니버스 구성으로 만들어버린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이 영화를 보다보면, 뭔가 잘 될 수 있었는데 안된 영화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저 기막힌 배역들이 온통 낭비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영상자료원에서 입수한 꽤 낡은 카피로 보았습니다만, 이게 DVD로 나왔는지요? 제가 봤던 것보다는 화질이 양호해보입니다.
  • 게렉터 2009/11/03 12:33 #

    일반 판매용 DVD는 없고, 영상자료원에 보관용 DVD만 있는 것으로 압니다.
  • 2009/09/22 17: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09/11/03 12:35 #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자료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찾아가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www.kmdb.or.kr 의 VOD 서비스에서는 고전 영화 VOD 서비스로는 세계 최고급 수준의 VOD 서비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백편이 넘는 수준의 한국 고전 영화를 정식으로 인터넷을 통해 방안에서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보는 VHS 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화질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FAZZ 2009/09/23 18:47 # 삭제 답글

    재미있게 글 읽다가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뭐랄까 뒤통수 맞는 반전이라고 할까요? ^^
    요즘 취향에 맞게 저 에피소드들을 각색하면 꽤 괜찮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 게렉터 2009/11/03 12:35 #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특히 첫번째 이야기의 출발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 드라고 2009/09/24 10:08 # 삭제 답글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전 이 내용 그대로 화면이나 음악만 좀 세련되게 바꿔서 리메이크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등장인물도 요즘의 인기스타들로.
  • 게렉터 2009/11/03 12:35 #

    텔레비전 단막극으로 하기에 좋은 내용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김지훈 2009/09/30 01:33 # 삭제 답글

    마침 오늘 영상자료원에서 감상했네요.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 흥미로웠습니다만, 두번째 유현목 감독 작품의 반복의 형식미도 인상깊었습니다. 첫번째 정진우 감독의 작품은 조금더 다듬어졌으면 깊은 산속의 안개 속 미스테리한 에로티시즘이 잘 표현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게렉터 2009/11/03 12:36 #

    세번째 이야기는 다른 두 이야기에 비해서는 아주 멀쩡하고 틀이 잡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배우만 최은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았어도 훨씬 더 좋아지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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