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영화

저는 2009년 3월 5일에 올린,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올 한 해 동안 영화나 TV물에 관한 글, 18편을 이곳에 썼습니다. 몇 편 안되는 글이고 대부분 상반기에 글을 올렸기 때문에 정말로 2009년에 제가 본 영화들을 충분히 써 놓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2009년도 이제 다 지난 만큼, 2009년에 이 곳에 올린 글에 나온 영화들 증에서 가장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꼽아보려 합니다.

연기가 좋은 영화, 감독의 재량을 기준으로 연출이 좋은 영화, 연기-연출 이외의 다른 부분이 좋은 영화에 대해서 각각 한 편씩을 선정했고, 종합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 한편을 꼽았습니다.

2009년 하반기에는 글 분량에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에는 더 많은 이야기 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고로 작년, 지난번, "2008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영화: "애꾸눈 박", "황야의 독수리"
2. 가장 좋은 연출을 보여준 영화: "소소자 (양척로호, 兩隻老虎, Run Tiger Run, 호랑이님께서 둘씩이나, 1984)", "007 퀀텀 오브 솔러스"
3. 가장 좋은 기술을 보여준 영화: "오둔인술 (五遁忍術, Five Element Ninja, Chinese Super Ninjas, 1982)",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4. 올해 게시한 영화 중 가장 좋은 영화(올해 개봉작 제외): "천잠변 (天蠶變, Bastard Swordsman, 1983)"
5. 2008년의 영화: "멋진 하루"


1.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영화: "그랜 토리노" ( http://gerecter.egloos.com/4260615 )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할은 경제 위기로 더욱 쇠락해만가는 미국 미시간의 교외에서 고집불통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입니다. 이 노인 주인공은 영화에서 동네의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어울리며 빚는 이야기를 보여 주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상당히 전통적인 "성격 괴팍한 영감"을 주인공으로 하는 웃기고 흥미로운 희극적인 모습으로 영화의 잔재미를 주고 지루함을 없애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재미나고 웃긴 대목만 모아 보면 서부 영화 주인공 같은 옛날 모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실주의적면서도 건조하게 가라앉은 진짜 같은 무거운 모습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하고 진지하고 살짝 어두운 영화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여줍니다. 희극적인 순간과 사실주의 연기가 혼합된 모습은 옛날 "더티 해리" 영화 때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들고 범죄와 싸우는 영웅적인 형사가 아니라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다가 은퇴해서 재미없게 하루하루 보내는 동네 늙은이 연기에서도 그런 수법을 활용하는 모습은 결코 아무나 보여 줄 수 없는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가장 좋은 연출을 보여준 영화: "춘몽" ( http://gerecter.egloos.com/4521115 )

60년대 한국영화인 "춘몽"은 치과에 남자 주인공이 와서 같이 치과에 온 여자 주인공과 함께 이를 치료하고 집에 가는 것이 영화 내용의 전부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걸로 어떻게 재미난 영화를 만들었는고 하니, 마취약 때문에 살짝 몽롱해진 치과에 온 남자 주인공의 망상을 중심으로 온갖 사람들의 공상, 상상을 마음껏 버무려서 화면에 펼쳐 놓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영화계가 표절로 악명이 높던 시절, 이 영화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중저예산 완전성인용 영화의 각본을 표절해서 불법으로 각본을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연출 방식을 바꾸고, 편집과 화면 구성, 시각적인 표현 방식을 바꿔서 아주 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로 바꿔 놓았습니다. 오페라 연출을 보면, 바로크 무렵 이탈리아풍이 되는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 모습을 현대의 대기업 재벌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다거나 하면서 "재해석" 어쩌고 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비교해 보면, 이 영화 "춘몽"이 표절각본을 들고 전혀 다른 영화를 보여주면서 별별 장면을 마음껏 다 보여주려고 했던 과격무쌍한 연출쇼는 꽤나 신기한 볼거리입니다.


3. 가장 좋은 기술을 보여준 영화: "여" ( http://gerecter.egloos.com/4530475 )

60년대 한국영화 "여"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보여준 정점의 배우 문희, 완숙한 경지에서 확고히 위치를 굳건히 한 배우 김지미, 전성기를 뒤로한 살짝 흘러가는 분위기의 명배우 최은희가 한 부분씩을 맡아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는 영화입니다. 세 이야기에서 세 여자 배우들은 한국영화사상 최강의 남자주인공인 신성일과 각각 짝을 이루어 배우의 실력과 장기에 딱 맞춘 배역을 보여주었습니다.

문희의 이야기는 흡인력이 넘치는 초반부에 비해서 이야기가 허망하게 별 내용도 없이 시간만 끌다가 그냥 멋쩍게 끝이나고, 도플갱어와 호접몽을 결합한 환상적인 수수께끼를 보여주었던 김지미의 이야기는 도저히 수수께끼의 답을 보여줄 수 없어서 "알고 보니 꿈이 었다"와 별다를바 없이 대충 마무리짓고 맙니다. 최은희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짜임새가 있습니다만, 최은희의 외모가 배역에 약간 어울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발적인 개인감정의 이야기가 6.25 전쟁고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공익광고 같은 이야기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해지는 60,70년대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아주 전형적인 사례처럼 펼쳐집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장점들은 곱씹어 볼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전혀 별개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용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 매체의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해 보려는 재미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문희의 이야기에서 도입부 연출은 기술적으로 탁월하며, 최은희의 이야기에서 넝마주이들을 이용해서 화면을 꾸미는 모양등의 몇몇 화면 구성은 그럴싸합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충분한 구상도 넉넉한 예산도 없이 급히 모아 놓은 기획이었다고 할만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인력만큼은 당시 한국영화계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감독들을 끌어다 놓고 "바쁘지만 어떻게든 좀 영화라고 할만한 걸 찍어 주십쇼."라고 해서 튀어나온 듯한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잘 준비되고 다듬은 도전이라거나, 모범적인 외국영화를 보고 따라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헐레벌떡 급히라도 그럭저럭 짜낼 수 있는 레파토리"라는 측면에서 그 시절 한국영화의 기본기 수준이 어떤지 확인해볼만할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영화의 소재와 구성은 이 정도로 신기한 틀을 갖추고 있으니, 지금 돌아보기에는 꽤 재미난 구경거리입니다.


4. 2009년의 영화: "더 리더" ( http://gerecter.egloos.com/4274191 )

70, 80년대 한국영화 중에는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소재로 이목을 끌어서 장사를 하는게 본심이면서, 슬쩍 매우 심각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를 하나 끼워넣어서 고결하고도 진지한 작품인척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자주인공이 유격전을 벌이면서 기관총 들고 싸우다가 넘어질 때 어떤식으로 옷이 찢어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영화인 주제에, 악당들을 공산당으로 설정해서 이 영화가 이데올로기 대립에 대한 무슨 성찰이나, 사회의 정신적 자산이 되는 반공영화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더 리더"도 그 정도 수준에서 그쳐버리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피끓는 10대 소년이 그 아줌마네 집으로 밤마다 가는 걸 보았다네 어쩌고저쩌고 하는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어느 남자 중학교를 떠돌법한 가십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대충 팔아먹습니다. 그러면 너무 유치해 보일 듯 하니까, 후반부에 독일 역사와 정치에 관한 심각한 소재를 하나 언급해 놓으면 충격적인 문제작으로 진지해 보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말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리더"는 그 수준을 당당하게 넘어 섰습니다. 오히려 그러려니 하는 고정관념을 역이용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를 자꾸 궁금하게 만드는 케이트 윈슬렛의 흥미진진한 여자 주인공 연기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 여자주인공에게는 사실성이 넘친다거나, 감정이입을 100%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그렇게 잘 이해되지 않을 법한 인물을 흥미롭고 그럴싸하게 연기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공감이 되지 않고 마는게 아니라, "왜 저럴까?" "왜 그랬을까?" 하는 점이 자꾸만 궁금해질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습니다.

랄프 파인즈의 멋진 목소리를 제대로 활용하면서, 감정이 이지러지는 모습을 화면으로 담아내면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로잡는 장면 연출들은 출중합니다. 시각적인 인상과 충격을 이용해서 짧게 보여준 앞쪽의 이야기가 중반 이후로 계속되는 이야기들에서 복선과 여운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놓은 구성도 되짚어볼만 합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읽은 책이어서 감히 할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얽힌 결과로 이 영화는 영화보다 훨씬 더 화제거리였던 책보다 오히려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덧글

  • 진성당거사 2010/01/03 19:00 # 답글

    지난 한 해 동안 쓰신 리뷰들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 게렉터 2010/01/04 22:16 #

    감사합니다. 항상 들러서 좋은 응원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 이준님 2010/01/03 19:56 # 답글

    지난 한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 게렉터 2010/01/04 22:16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더불어 "그 친구"분께도 새해 인사 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뚱띠이 2010/01/03 20:54 # 답글

    그란 토리노 본다면서 못 본 영화지요....
  • 게렉터 2010/01/04 22:17 #

    이제 IPTV 에서 찾아 볼 수 있는 VOD에도 나오고 있으니 보실 기회는 이리저리 찾아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샤린로즈 2010/01/04 00:23 # 답글

    뭔가 마이너한 영화인데 .. 내가 볼수 없는 영화가 너무 많다 ;;
  • 게렉터 2010/01/04 22:18 #

    영화 네 편 중 두 편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내어 놓은 영화이니 그렇게 보시기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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