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Nine 영화

조선시대 궁궐에서 직위가 낮은 궁녀들의 호칭 중에 "나인(內人)"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 영화 "나인"은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왜 제목이 '나인'인거야?" 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영화 자체만 봐서는 제목 조차도 제대로 종잡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역시도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이 그나마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따라가기에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부유하고 명망 있는 중년 남자의 개인적인 번민을 다루는 것인데, 분위기가 처질만하면 썩 잘만든 신나는 노래와 춤 장면들이 줄거리와는 별 관계 없이 때때로 나와 주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지상 최대의 쇼"라는 홍보 문구도 옛날 브로드웨이 분위기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아도, 도대체 슬프게 갈지, 웃기게 갈지, 풍자적으로 갈지, 격정적으로 갈지, 어떤 분위기로 흐를지 짐작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연 어떤 분위기로 흐를지, 주인공이 겪는 위기는 무엇이고, 과연 어떻게 풀릴지, 찬찬히 구경하는 것이 흥미를 느끼기에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좀 더 이 영화의 줄거리 얼개를 밝혀 보자면, 이런 겁니다. 이 영화는 꽤나 성공한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인 명망가로 나타나는데, 폼 잡는 것에 비해서 일은 잘 풀리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천재적인 예술가요 그럴싸한 신사인냥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여자 문제도 꼬이고, 이리저리 구구하게 핑계를 짜내보지만 일은 자꾸만 더 안풀립니다. 그러다보니까, 꾸며 놓은 멀끔한 사회적인 지위와는 달리, 행동 틈틈히 우스꽝스럽게 추하고 비굴한 모습들이 언뜻언뜻 비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갈등은 말하자면, 한국영화 "생활의 발견"이나 "해변의 여인" 같은 분위기 입니다. 줄거리 갈등을 이런식으로 짜 놓은 영화들은 한국영화에서 한 때 상당히 유행이라면 유행한 적도 있지 싶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희곡에나 나올법한 태도로 "예술가 폼잡기"를 하지만 알고보면 "백수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실업자"에 불과한 작가들이 주인공이라거나, 사회의 정치적 정의와 인간의 철학적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때우며 살지만 주변에서는 인간관계가 참 구질구질한 놈이라는 평판 밖에 남는 것이 없는 대학 강사가 주인공이라거나, 뭐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90년대 후반에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판도 키우고 해외에도 알려져나갈 때, 이런 부류의 영화들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 싶습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을 다룬 영화들은 그럴듯한 척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데, 그 허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추잡한 모습이나 초라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되, 보통 남녀 관계 문제 속에서 초라한 꼴을 꺼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 "나인" 역시 주인공의 여자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주인공의 심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만들었고, 주요한 사건들도 어떤 여자를 만나서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좀 "추해보일 정도로 속 보이는 방식"으로 유혹이 오가느냐 하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만도 합니다.


(추해보이는 고민)

그래서 "나인"이 앞서 예를 든 영화와 비슷한 계열로 묶어 놓고 생각해 보면 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뭐니뭐니 해도,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그것도, 정통파 브로드웨이 엑스트라바간자 풍의 "뮤지컬"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한창 유행하던 때의 한국영화들은 영화의 연기도 그렇고 연출도 그렇고 "사실주의" 수법을 절절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에서부터 연기하는 방식까지 그렇습니다. 화려하게 관객들을 현혹하는 옷차림보다는 초라해 보이는 모습에서 더 구구해 보이는 면이 어울리도록 그냥 고만고만한 잡다한 옷을 입혔습니다. 배경음악은 적절히 제약되고, 대사는 말이 좀 헛나오고 자연스럽게 말을 더듬는 것도 그대로 담아 냅니다. 단어의 발음과 운율을 중시하는 연극풍의 대사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나인"은 아닙니다. 평범한 옷차림에, 사실적인 대사라니? "나인"에서 여자 주인공은 폭발하는 조명 속에서 번쩍거리는 비키니 의상을 입은 수십명의 댄서들과 함께 화려하게 노래하며 의자춤을 춥니다.


(Make a musical!)

이렇게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서, 이 영화는 노래로 대사를 전달하고 춤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버렸습니다. 주인공이 품고 있는 환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느낌으로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줄거리 진행과는 관계 없이, 현재 진행 상황에 적합한 무대쇼를 줄거리 진행을 잠시 멈추고 그때 그때 끼워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시카고"와 비슷한 형식인데, 현실 이야기와 노래/춤 장면의 이야기가 "시카고" 보다 더 분명하게 분리되어서 따로 펼쳐집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격과 이야기의 구조에도 "평균적인 수순"에서 손을 좀 봤습니다. 일단 주인공의 비굴함을 적정 선으로 조정했습니다. 이 영화의 갈등 구도를 볼작시면 주인공은 추한 모습, 나이 값 못하는 모습을 좀 더 보이는 편이 극적인 힘이 더 살 겁니다. 아마 주인공이 잘한 것 하나도 없는 주제에 괜히 죄 없는 아내에게 역정내는 모습 같은 것이 하나 쯤 들어가는 편이 이야기를 격하게 만들기에는 그만일 것 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했습니다. 주인공은 대단해 보이는 명망과는 달리 초라한 인간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어쨌거나 끝까지 봐도 대충 멋있고, 그럭저럭 돈값을 하면서, 적당히 분위기 잡으며 삽니다. 이야기는 정말로 어두운 소재를 이야기할 때에도 그래도 그렇게 절망적이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멋부리며 사는 이야기의 화려하게 들뜬 분위기를 최소한은 깔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울적해 보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줄거리나 인물이 일단 선명함을 좀 잃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냥 이렇게 대충 끝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발단-전개"는 자극적인 문제만 신나게 제시하다가, 막상 "절정-결말" 없이 그냥 확 끝나버리는 몇몇 "사랑과 전쟁" TV 에피소드 같은 허한 느낌도 납니다. 니콜 키드만의 배역은 정말 역할이 작게 쪼그라 들어 있고, 나오는 장면이 꽤 많은 편인 소피아 로렌의 위치도 결정적인 전환점을 와닿게 보여주기에는 흐릿합니다. 노래와 춤 장면과 전체적인 줄거리 구성이 그다지 잘 어울릴만하지 않은 것을 서로 붙여 놓은 까닭에, 영화를 보면서 노래와 이야기가 서로서로 갉아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었습니다.


(역할이 출연료 돈값을 마땅히 못하는 듯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를 꾸며 놓은 구성은 50년대 무렵의 MGM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보여주기 좋은 유행한 좋은 노래를 일단 선정해 놓고, 이런 것들을 엮어서 보여 줄 수 있는 줄거리를 대강 이 핑계 저 핑계 대어서 엮어 놓는 것 말입니다. "온 더 타운(On the Town)"이나, "파리의 아메리카인(American in Paris)" 같은 대표적인 영화도 따지고보면 이런 축에 속할 것입니다. 이 영화 "나인" 역시 좋은 노래를 작곡하고 적당한 춤을 안무해서 따로 마련해 놓은 뒤에, 작가가 써온 좋아하는 줄거리를 따로 가져와서 나중에 섞은 것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MGM 뮤지컬 보다도 "나인"은 좀 더 부족합니다. 워낙에 흥겨운 뮤지컬 쇼에는 쉽게 같다 붙이기 어려운 소재로 줄거리를 갖다 대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성기 MGM 뮤지컬들은 그래도 기본 바탕은 "낙천적인 남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보다는 좀 더 차분하지만 그래도 명랑한 여자 주인공, 선남선녀가 만나서 잠시 사랑을 못이룰 뻔 하다가 사랑을 이룬다"는 정도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랑 노래들을 엮어 놓으면 그런데로 어울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에, 음악과 춤도 최고의 것들이 가장 멋지게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에서는 주인공이 망한 영화를 성공시킬 전혀 다른 전기를 찾아내고 희망찬 미래를 다시 다짐하는 순간에 전설적인 빗속에서 춤추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악대차(Band Wagon)"에서는 고생 끝에 만들어낸 공연이 개봉되는 순간에 40, 50년대 느와르 영화 패러디의 최고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멋진 극중극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 "나인"에서는 결코 가장 뛰어난 노래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장 멋진 춤이 가장 중요한 줄거리의 전환점을 장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노래는 좀 듣기 좋고, 어떤 춤은 눈을 사로잡는 대목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노래라고 해서 줄거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니고, 아름다운 춤이 절정 순간을 꾸며주지는 못합니다. 뮤지컬 영화라면, "프로듀서스"처럼 도대체 영화 전체에 걸쳐서 만들어온 뮤지컬이 뭔가 궁금해 하는 것이 터져나오고 이야기가 반전을 이루는 시점에서 어떤 뮤지컬 가사도 도전하기 어려울 만한 "히틀러의 봄날"이 흘러나오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아슬아슬한 탈출 작전의 순간은 수미쌍관 법으로 만든 귀에 익은 노래로 멋지게 장식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인"은 가장 화려하고 즐거운 곡이 앞뒤 이야기 연결에 별 상관 없는 주인공의 막연한 공상 장면 같은 것에 나왔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출발은 힘있고 기대가 부풀어 오르게 강하게 당기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어울리는 것이 부족해서, 음악과 춤이 보기에 아주 나쁘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음악들이 가끔씩은 좀 고루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녹음과 연주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훌륭하고, 좌중을 사로잡는 조명과 화면에 담기는 춤 동작들은 박진감 넘칩니다. 음악이 고루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음악들은 대체로 혁신적인 유행곡들을 담기보다는 전통 방식대로 한 느낌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전성기의 전형적인 합창곡들이나, 이미 또다른 전통이 되어버린 앤드루 로이드 웨버 초기의 뮤지컬 넘버 풍으로 익숙하고 "뮤지컬 쇼" 하면 딱 떠오를만한 곡들로 꾸몄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만큼 안이하게 대충 때운 것이 아니라, 익숙하게 많이 해본 것,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은 일을 한 만큼, 솜씨 좋게 꼼꼼하게 잘 다듬어서 풍성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전통이 전통인지라는 저는 오히려 "맘마미아"류의 영화들보다 음악은 더 재미나다고 느꼈습니다.

노래와 안무들이 전통 방식을 따르지만 편곡이나 춤들을 화면에 격렬하게 담아내는 방식은 MTV 시절 이후의 현란한 뮤직비디오 수법도 충분히 활용 되었습니다. "코러스 라인" 같은 영화와 비슷한 모양인데, 더 화려한 곡들이 많고, 춤들도 훨씬 더 다채로워 보입니다. 특히 조명은 기막힌 수준입니다.

화면은 강조할 부분을 정확히 찾아다니면서 연주와 딱 들어 맞게 어울려서 편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에서 첫 노래가 들려나오는 대목에서, 주인공은 뭐 옷차림 행색은 좀 그럴 듯 하기는 하지만 하여간 중늙은이인데, 다짜고짜 이 중늙은이에게 우리의 니콜 키드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도록 다가와서 확 영혼을 불태우는 입맞춤을 퍼부어 버립니다. 이게 뭡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화면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노래와 춤 동작에 빠져 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노래와 춤)

또 한가지 이 영화가 줄거리를 음악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대목은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60년대 이탈리아 입니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영화들이 이제 막 이탈리아에서 나오고, "비틀즈" 차림이 이탈리아에서도 유행하던 옛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시대는 대충 무시하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2000년대 지금 관객들이 보기에 딱 인물에 맞아 떨어지도록 가꾸고 꾸몄습니다. 보기 좋고 멋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60년대 복고풍이 어울릴만한 부분들은 잘 포착해서 눈에 뜨이게 심어 놓았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정장 차림이 배우의 연기와 결합해서 최고의 효과를 거두는 모양이나, 감탄할 만한 자동차의 모습은 60년대 007 영화 "골드 핑거"의 제임스 본드 모습과 2009년 연말에 나온 패션 잡지 화보 중에서 좋은 것만 골라 놓은 듯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사람들의 차림새와 행색은 선명하게 개성이 있으면서도, 절대 과하지 않고 아름다운 수준을 유지하도록 멋있게 가꿔져 있습니다.

이렇게 멋드러진 옷차림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한 덕분에, 구질구질한 중년 남자의 칙칙한 고민으로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줄거리면서도, 화려하고 신나는 브로드웨이쇼 노래가 사이사이 끼어드는 감상이 그나마 덜 어색해 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화려한 배우들, 연예인들이 가득 있는 이탈리아 영화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멋진 차림새들을 끼워 넣어서 영화의 분위기를 가꾼다는 다는 시도가 꽤 먹힐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점을 제작진이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조명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색채 선정도 현실감을 깨지 않는 수준을 잘 지키면서도 무척 화사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색채를 화려하게 강조하다보면, 좀 꿈 같은 몽상 분위기로 빠지기 쉬운데 그런 느낌 없이 실재감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색깔을 잘 배합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흰 빛의 호텔과 기차역 주변의 회색 빛의 대조, 저녁 식사 무렵을 꾸미는 노랑색의 따뜻한 빛깔이나, 기자 회견 장면의 눈에 뜨이지 않지만 알록달록 재미난 색깔의 배치들은 기억에 남을만 합니다.


(패션)

그래서인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나게 본 노래 장면은 패션쇼를 소재로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장기인 화려한 조명은 카메라 플래쉬를 나타내면서 마구 작렬하고, 뮤지컬식 재즈 넘버의 틀을 갖추고 있으되, 닳고 닳은 21세기 뮤직비디오의 기술이 갖가지로 힘을 발휘하는 빠르고 강한 곡조가 흐르고, 노래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갖가지로 들려 주면서 적재적소에 넘치는 악기 소리도 가득 늘려주는 구성하며, 이 영화 OST 한 번 사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만한 부분이었습니다.

줄거리와 노래가 엇나가는 구도를 막아내면서 영화를 건사하기 위해서 개인기가 힘을 쓸 수 있도록 해 놓은 부분들도 성의가 엿보이는 편입니다. 주디 덴치는 이번에도 다져진 연기 실력으로 왠갖 역할에도 문제가 없구나 싶고, 소피아 로렌은 소피아 로렌 정도 되는 이름값을 가진 배우가 등장하면서 "소피아 로렌 급은 되어 보인다" 싶은 느낌이 드는 그 후광 효과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았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개인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페넬로페 크루즈의 몸매 자랑 노래 입니다. 전성기 페넬로페 크루즈가 보여주던 그 뇌쇄적인 실력을 마음껏 몸과 마음을 다해 보여 주는 노래와 춤을 맡았습니다. 노래도, 목소리도, 동작도 전성기 시절 페넬로페 크루즈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 차는 느낌입니다. 이런류의 과감한 춤과 노래의 표준과 핵심을 똑똑히 따라가면서도, 이런 "몸매 자랑"에 결코 빠질 수 없는 "파격적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부분도 선명하게 추가해 놓았습니다.


(페넬로페 크루즈)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영화 "나인"은 디즈니 애니매이션 제작진이 춤과 노래로 "극장전" 각본을 극화한 것 비스무레 해서, 이래저래 영화를 충분히 무르익게 보여주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기 쉬워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소한 결합으로 만든 영화를 그래도 재미나고 건실하게 완성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도들을 결합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부분들을 즐겁게 느낄 수 있다면,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특유의 감상과 개성적인 구경거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건질 거리를 잡아 낼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좋게 보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도 듭니다. 굳이 어둑어둑하게 서글픈 궁상만 떠는 분위기로 영화를 끝내고 "어느나라 사회의 위선을 피부에 와닿게 그려 냈다"는 잘못하면 좀 식상한 평가에 머물고 마는 영화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비슷하게 출발하면서도 이렇게 좀 어림없어 보이는 화려한 춤과 노래를 근사하게 풀어 놓고, 뭐 고민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느냐,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열심히 살아보자는 식의 낙천적인 분위기를, 대놓고 설교하지 않아도 그 신나는 음악이 은근히 이끌어 내는 느낌도 꽤 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60년대 이탈리아가 배경인 만큼, 중간의 식당 "브레인 스토밍 회의" 장면 즈음에서, 식당의 가수가 썩 듣기 좋게, "Quando, Quando, Quando"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습니다. OST에는 안 실릴 지도 모르겠는데, 이 노래 부르는 것도 가만 들어 보면 보통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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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0/01/05 21:47 # 답글

    제목이 나인인 이유는 좀 모호하지만 주인공이 만들려고 하다가 못 만드는 영화가 주인공이 찍는 9번째 작품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컴백하여 다시 찍는 영화의 제목이 '나인'이 되어버리지만)
    개인적으론 주인공 1 + 주변 여인들 7 + 영화 1 이라는 숫자놀음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건 그냥 짐작일 뿐이고.
    원작 뮤지컬 자체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 '8과 2분의1'에서 영감을 얻은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잘 만들긴 했는데 확실히 시카고에 비해 뭔가 확 터지는 임팩트가 없는게 아쉽달까;;;
  • 게렉터 2010/01/10 21:14 #

    어쨌거나 제목 자체는 8과 1/2 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만든 면이 제일 클 겁니다.
  • 샤린로즈 2010/01/05 22:00 # 답글

    누가 그러더군요
    이영화는 망사의 망사를 위한 망사에 의한 영화라고.
  • 게렉터 2010/01/10 21:15 #

    페넬로페 크루즈 노래 장면에서는 당연한 말일 수 있을 겁니다.
  • 반모 2010/01/06 00:51 # 답글

    뮤지컬로도 별로였는데 영화도 별로라 아쉬웠어요.=_;;
  • 게렉터 2010/01/10 21:15 #

    뮤지컬로 꾸민 모양과 영화로 꾸민 모양이나 결말이나, 분위기가 좀 다르다면 많이 다르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영화가 좀 더 낫다는 쪽입니다.
  • 망량 2010/01/08 01:12 # 답글

    흥행 성적이 너무 처참하게 망해버렸더군요.. ㅠㅠ
  • 게렉터 2010/01/10 21:16 #

    아주 심하게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 아쉽습니다.
  • 2010/01/08 15: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0/01/10 21:16 #

    저도 "디스트릭트9"과 "9"를 헷갈렸드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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