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터즈: 거친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영화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중반 이후는 2차 대전 특공대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한편, 레지스탕스 영화처럼 특공대와 함께 엮이게 되는 프랑스 민간인의 사연도 같이 소개하는 영화입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싸움 장면 또는 폭파 장면이 화려하지는 않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대신에 이런저런 형태의 살인 장면이 있고 몰래 잠입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특공대 영화 특유의 아슬아슬함이 있어서 적당히 재미를 살리는 수준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특징은 복고풍일 것입니다. 매끈한 요즘 촬영, 편집, 연출 기술로 뽑아낸 영화입니다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 때 유행했다가 철이 지난 60,70년대 2차대전 특공대 영화들의 특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터)

60, 70년대에 유행한 2차대전 영화들을 굳이 둘로 나눠보자면, 역사적인 사건을 거창하고 웅장하게 보여주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나 "머나먼 다리" 같은 한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실록물"을 한 축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또 한 가지는 "독수리 요새"나 "나바론 요새" 같은 "특공대 이야기"가 한 무리일 것입니다. 이런 특공대 이야기들은 줄거리 구조만 보면 보통 첩보활극과 큰 차이가 없다면 없을 수 있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악당들이 "나치" 만큼 나쁜 놈들이고 전쟁 상황이니까 충직하고 착한 주인공일지라도 마음껏 총질을 해도 무방하다는 배경을 제공해서 더 과감하게, 더 아슬아슬하게 싸운다는 특징이 있었지 싶습니다.

요즘 2차대전 영화들은 대체로 "실록물"을 기초로 해서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거창하고 웅장한 사건들을 보여주되, 그 사건들을 겪는 보통 사람 개개인의 느낌, 기분을 같이 보여주는 방식이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장면이 영화 가치의 절반을 때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물론이요, 상륙 작전 이후 종전까지의 주요 전투를 하나하나 짚어나가되 한 중대 사람들이 겪는 감상을 같이 담고 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도 비슷합니다. 좀 더 개인의 극적인 상황에 치중한 "진주만"이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들도 그 틀은 비슷한 계열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영화들에 비해 옛날에 유행한 특공대 영화들은 일단 역사적 사실과 큰 관계 없이 영화 줄거리의 갈등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고, 구체적인 2차대전의 어떤 상황이나 사건과도 별 관계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2차 대전이 "사악한 죽일 악당 군인들이 많은 곳" 정도의 총 쏠 수 있는 전쟁 중인 배경 역할만 하면 그만인, 적당히 꾸며낸 이야기들이 많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은 실제 전쟁의 주요 사건과는 별도로 특공대 용사들의 활약이나, 극한 상황에서의 고민, 내부의 반목 등등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 그 자체를 영화의 중심에서 삼곤 했습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특급비밀" 같은 첩보물에 나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옛날 2차대전 특공대 영화들 중에 다른 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크게 미친 어떤 큰 전환점 같은 영화를 꼽는다면, 역시 "특공대작전(The Dirty Dozen)"을 꼽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 "특공대작전"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들을 무뚝뚝하고 성실한 모범 군인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특공대" 영화인대도 불구하고 주인공 특공대 대원들을 "양아치들"로 했다는 것입니다. "특공대작전"에서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을 뽑아서 일반 군인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는 것을 소재로 해서, 별별 이상한 범죄자들을 특공대 대원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쳤던 것입니다.

"특공대작전" 같이 양아치 대원들이 활약하게 하다보니, 일단 대원들의 성격과 특징을 훨씬 더 이상하고 재미나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대원들 중에는 억울하게 양아치 무리에 섞인 나름대로 건실한 인간 부터, 웃기고 재치있는 사기꾼이라든가, 다른 양아치들을 중후하게 제압하는 두목형 인물에, 진짜 겁나고 무서운 살인자 등등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애초에 "보통사람이 아니다"라는 게 발판이었으니까, 더 극단적이고 더 재미난 인물을 투입시키기에 좋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개성이 강한 인물들, 더군다나 범죄자들이 엮이다보니, 내부의 갈등도 더 깊고 살벌하게 꾸며낼 수도 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림없는 껄렁한 인간들이 대의명분이나 세계평화와는 진지하게 신경도 안쓰는 태도로 전쟁에 출연하다보니까, 전쟁 상황에서의 기묘한 농담이나 과감한 풍자 장면을 넣기도 좋아진 면이 있습니다.


(특공대작전)

그래서 이런 "특공대작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껄렁한 특공대 대원이 등장하는 2차대전 특공대 영화들은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한참 쏟아져서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부류의 2차대전 특공대 영화들이 몇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예가 만주에서 독립군 게릴라가 일본군이 지키는 철교를 폭파시키려고 싸우는 "광야의 호랑이" http://gerecter.egloos.com/3935647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많은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방향으로 인물 구도와 이야기를 꾸민 것을 일단 출발로 했습니다. 이런 영화의 특징대로 껄렁하기 그지 없는 특공대 대원들이 나와서 적당히 비아냥 거리는 듯한 웃음을 줄줄 늘어 놓으면서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그 시절의 2차대전 특공대 영화들, 내지는 그 시절 비스무레한 게릴라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전쟁 배경에 어울리되 아주 "실록물"풍은 아니도록 적당히 채도가 떨어지는 다소 우울한 색감이라든가, 주요 인물이 죽어나가면서 끝을 맺는 허무주의의 쓸쓸한 맛이 있으면서도 풍자의 웃음이 꼭 막판에 끼어드는 결말을 만드는 모양도 그렇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영화등에서 많이 쓰였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주제곡을 장황하게 깔아주면서 감정을 달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수법 역시도 강한 복고풍 요소였지 싶습니다.


(칙칙한 색감과 허무주의적인 마지막)

특히, 음악은 70년대풍을 슬쩍 왜곡해서 써먹는 선곡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소 과장되게 울려퍼지는 음악들이 직설적이고 과감하게 감정을 자아내도록 했습니다. 그 곡조 자체도 허무주의 정서를 애잔하게 끌어내오는 식입니다만, 또 평범하게 그냥 끼워 넣는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미션" 같은 영화에서도 "가브리엘의 오보에"같은 음악이 흐를 때 음악이 은근하게 조정되면서 서서히 화면에 맞춰 흐르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명한 곡조가 격렬하게 먼저 터져 나오면서 거기에 따라 적극적으로 화면이 움직이게 하고 느린 동작이나 확대, 축소 장면 같은 것들을 꾸미기도 하는 오페라스러운 감정 과장으로 해 놓았습니다. 이런 음악은 인위적으로 복고풍으로 꾸민 좀 환상적인 이 영화의 내용에 들어 맞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사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극단적인 상황과 처절한 감상을 인공적으로 펼쳐 구경시켜 주는 화려한 쇼라는 느낌을 내면서, 더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듯 했다는 것입니다.


(음악으로 분위기를 안 잡아 줬으면 더더욱 훨씬 역할이 적게 보였을 배역)

아쉽게도, 이렇게 저렇게 끌어다 모은 옛 영화들의 재미거리들이 훌륭하게 버무려지는 수준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전체를 흐르는 큰 몸통이 되는 줄거리 구조가 강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니다. 재미난 인물들, 상황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들이 처음 부터 끝을 관통하면서 성장해 나간다든가, 망해간다든가, 울다가 웃는다든가, 웃다가 운다든가 하는, 2시간을 틀어쥐는 힘줄이 없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는 인물들의 겪는 감정과 그 변화들을 영화 전체에 걸쳐서 충분히 와닿게 전해 전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예 망해버린 영화들 중에서도, 보다보면 이 영화 비슷한 문제 때문에 망친 것들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각 재미난 장면도 있고, 몇몇 흥미로운 출발점도 찾았는데,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사연으로 2시간 동안 계속 관객들을 빨려들게 하기는 어렵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이럴 때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말도 안되는 우연이나 터무니 없는 억지 주장을 하는 인물을 내세워서 억지로 억지로 이야기들을 개떡같이 덕지덕지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고, 겨우겨우 이야기 구조를 세우다보니까 초반부에는 주인공 처럼 보였던 인물이 갑자기 별 비중 없는 인물로 전락하거나, 아무 쓸데 없는 사소한 악당이 비웃음살만큼 어림없이 대단한 척 하며 설치게되면서 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60, 70년대 우리나라의 트래쉬무비들을 보면, 아예 대범하게 영화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 안보여줘 버리고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라는 태도로 엉뚱한 다른 이야기로 확 마구잡이로 건너 뛰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멋있는 배우도 마지막 결전에 제대로 동참 못합니다.)

따지고보자면야, 이 영화는 적어도 결코 초라하게 영화가 그런 식으로 망해버리도록 아주 줄을 확 놓아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형식 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대책이라면 대책이 있었습니다. 전체 영화를 절이나 부(chapter)로 나누어 놓는 방식으로 이런 단점을 묻어보려고 한 것입니다. 즉 영화 안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저마다 조그마한 작은 부로 쪼개져서 각각 다른 주인공들을 내새우며 나오는 것입니다. 1부에서는 유태인 색출 작업을 벌이고 있는 나치를 소재로한 짧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2부에서는 양아치 특공대의 행패를 보여주고, 또 다른 부에서는 침투 비밀 작전을 위해 첩보원과 접선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또 다른 부에서는 전쟁 상황의 비극적인 남녀관계 이야기 비스무레한 것을 보여주는 식입니다. 그래서 한 부 안에서 짤막하게 나름대로 한 가지 이야기거리, 보여줄 거리를 열심히 보여주고, 끝나면 다른 부에서 별도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영화 상영시간 전체를 집중하게 해서 끌고나가는 힘이 약해서 잘못하면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겅중겅중 건너뛰면서 흘러갈 것 같으니까, 짧게 짧게 별도의 짧은 이야기들로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형식은 모양새를 갖춰 놓는데는 그나마 괜찮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정말로 이야기가 그 짧은 부 하나에만 작게 갇히는 느낌도 듭니다. 20분, 25분짜리 짧은 단편 영화들을 여러 개가 모인 정도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짧은 이야기들이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처럼 짧은 대신에 강렬하게 극단적인 상황이나 반전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적당히 시작해서, 적당히 여운을 남기며 이런 배경이 있거니, 이런 사건도 있거니, 하면서 대충 흥미로운 인물, 배경을 전해주는 정도 입니다. 마지막 부를 제외하면 썩 신기한 구경거리를 제시해 주는 수준도 아닙니다. 긴 영화나 연속극에서 흥미로운 전개 장면에 해당할 법한 이야기를 20분, 25분만 따로 떼어내서 보여주는 느낌 정도라는 것입니다.


(내 활약은 좀 허무하게 끝을 맺는구나)

그나마 마지막 부의 경우에는 다른 부에서 벌어졌던 여러가지 사연들과 인물들이 함께 모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여러가지 일을 저지르면서 가장 커다란 싸움이 벌어지게 해서 영화를 하나로 잘 묶어 보고, 앞의 이야기들을 돌이켜보게 해서 "그게 복선이었지롱" 하면서 전체를 아울러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뒷처리, 뒷수습을 하고 있기는 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부족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따로 진행되던 이야기들이 엮이는 이야기치고는, 교묘한 줄거리나 기묘한 인간관계의 연결이 절묘한 맛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는 영화 극장에서 신분을 숨기고 일하고 있는 유대인과 양아치 특공대들이 부/절 별로 나눠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 영화에서 더 흥미진진하게 활약했던 "양아치 특공대"들은 가장 큰 마지막 결전에서는 재미없게도 활약을 거의 안하고 그냥 구석에 묶인 채 가만히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어째 양말 한 짝만 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났습니다.


(극장에서 신분을 숨기고 일하는 유대인)

사실 부와 절로 나뉘어진 형식이 오히려 전체 극을 더 촘촘하고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드문 것이 아닙니다.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갈 수록 과감하게 전혀 다른 놀라운 국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이렇게 짧게 잘려 있는 부와 절로 나뉘어진 형식이, 오히려 이야기 전체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악당의 기지에 잠입해서 일전 끝에 악당을 처치했습니다. 그런데, 악당을 때려 눕히고 보니, 왠걸, 지금까지의 복선과 수수께끼가 일거에 들어맞을 듯한 더 큰 배후, 진정한 최후의 악당 총두목의 정체가 나타날 것 같은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순간, 어떻게 되나 궁금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한바탕 격전을 치른 주인공이 표표히 떠나가면서 더 큰 모험을 찾아가려는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부와 절이 끝나고 화면이 어두워집니다. 몇 초 안되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화면이 밝아모녀 다음 부/절의 제목이 화면에 다시 나타납니다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관객들은, 남녀주인공이 입을 맞추려는 순간 끝이 난 주말연속극의 다음주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 부가 끝나고 다음 부가 시작되는 그 잠시 잠깐의 순간, 더 궁금증과 기대감은 커지고 더 빠져들게 됩니다. 잠깐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이야기를 더 끓어오르게 하고, 기대감 속에서 여유롭지만 더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영화를 작은 이야기들로 끊어 놓은 것은 큰 이야기로 잘 조립하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모양을 갖추기 위해 나누어 놓은 수준일 뿐 인 듯 했습니다.

작은 이야기들로 나눠 놓지 않고는 기대할 수 없는 그만의 다른 재미를 주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특공대(사실 한국영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유격대") 이야기는 좀 포기하고, 유대인이 어떻게해서 신분을 숨기고 극장까지 흘러들었는지 사연을 좀 보여 준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유대인 이야기를 "파리 대탈출(La Grande Vadrouille /Don't Look Now - We're Being Shot At/ 지붕 위의 병사들)"에 나오는 "막간휴식"을 외치는 지휘자의 이야기 처럼 더 단순하고 짤막한 관찰자, 참여자로 할 수는 없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나마 전체 흐름에 걸쳐서 이어지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일한 끈이 될 수 있도록 활약해주는 악역)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하면 강렬한 장면도, 기교적인 이야기도 없는 편이고, 애초에 특징적인 보여줄 거리로 준비했던 복고풍 요소들도 치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 였습니다. 영화의 길이가 다소간 긴 편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런 특색이 부족하고 좀 산만한 느낌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브레드 피트가 개인기로 웃겨주는 게 좀 부족한가?)

그래도 개개의 이야기들은 최고의 솜씨라 할 수 있을만한 수법으로 절묘하게 화면에 담겨 있습니다. 이상하고 기괴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신기한 화면이나 번쩍거리는 시각적인 충격에 치중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류의 특공대 영화에서 보여 줄 수 있는 팽팽한 긴장, 대립을 보여주는 화면 구성의 표준을 모범답안 처럼 딱 떨어지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갑자기 펑하고 뭘 터지게 해서 억지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올까 말까 싶게 해서 조마조마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데 없이 피튀기는 끔찍한 장면을 확 눈앞에 들이대서 깜짝 놀래키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편법 없이 그냥 정공법으로 긴장감을 자아내고 끌어올립니다.

"히치콕과의 대화" 같은 책에는 "폭탄이 숨겨져 있는 데 멋모르고 주변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느낌"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어떤 식으로 영화로 꾸며서 보여주는 것이 그런 책에서 말하는 사례인지, 그야말로 "바로 이런 거다" 싶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피 튀길 때는 놀래키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대놓고 칼질하는 거지)

도입부에 나치 장교가 프랑스의 평화로운 한 농가를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런 수법의 지침서와 같습니다. 누가 봐도 나치 장교라면 "나쁜 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나름대로 예의바르고 어찌 보면 친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프랑스 농부는 긴장한 표정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까? 궁금해집니다. 이 나치 장교의 본 모습은 무엇입니까? 프랑스 농부는 억울한 일이나 비참한 일을 안 당하겠습니까?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담아내는 수법이나, 우유를 따르고 먹는 소리와 무시무시한 적막한 공기를 들려주는 수법은 정말로 교과서스럽습니다.

관객들은 숨겨진 비밀을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나치 장교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화면이 슬쩍 움직여서 농부도 나치 장교도 보지 못하는 부분을 화면에서 슬쩍 잠깐 보여줍니다. 화면에 비밀이 드러납니다. 관객들이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그야 말로 영화 연출 답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라면 이렇게 하면 욕먹기 쉽습니다. 나치 장교가 보는 일, 무엇이 벌어지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슬쩍 화면이 한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이 1인칭 시점의 이야기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만 전해줄 수 있는 상황을 살짝 끼워 넣은 것입니다. 소설로 이런 이야기를 썼다면 읽는 사람들마다 "시점이 않맞는다"고 "비평"이라는 것들을 올려대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억지로 단락을 나누어 놓든지,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라고 억지로 제목을 하나 붙여 놓거나 하지 않으면 어색하고 옳지 않은 글을 썼다고 지적당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조차도 완벽하게 두 가지 시점을 자연스럽게 합쳐 놓으려면 무대 장치나 소도구의 힘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영화에서는 부드럽게 해낼 수 있습니다.


(농부의 마음속은? 장교의 속셈은?)

2차 대전 특공대 영화라면 당연히 나오기 마련인 "독일군복 입고 독일군인척 하기"를 소재로 하는 술집 장면에서, 이런 수법은 더욱더 달아 오릅니다. 비밀이 밝혀지면 어쩌나, 이제 큰일났다 들통나겠다. 하는 그 피말리는 느낌을 전해주기 위해서 한 단계 한 단계 가스렌지의 손잡이를 돌리듯이 불길이 거세 집니다.

한 마디 말 한 마디 말을 주고 받을 때마다, 사람들의 긴장한 표정, 긴장하지 않은 듯 연기하는 표정들이 사이사이에 끼어 듭니다. 위험한 순간, 거짓말을 하면서 떨리는 심정이 들 때 마다, 말과 말 사이에 잠깐 씩 침묵이 감도는 것도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 시간의 틈과 눈치를 보는 시선을 담아내는 수법이 영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화면으로 담아내는 것들이 백마디 말로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보다 수많은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이런 것들도 그야말로 교과서라 할만합니다.


(으하하하! 우리도 독일군복 입고 있으니 독일군이에요!)

배우들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역시 악역 독일인 장교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의 솜씨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부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통 이런 날카롭고 집요한 2차대전 악당 장교는 -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나카무라"라고 불리기에 딱 맞는 역할 말입니다. - 배우의 외모로 한 수 집어 먹고 가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에드 해리스 같은 배우라면 "무시무시한 지옥 끝까지 따라다니는 않는 나치 장교" 역할로 그만일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프 발츠는 외모와 말투를 무섭고 차갑게 꾸미는 전형적인 수법을 넘어 섰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성실하고 충직한 군인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이바닥 인간 치고는 별로 그렇게 차갑고 인정 없게 생긴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보통 군인 연기에 맞춰서 잠깐씩 번득이는 표정과 몇 마디 재수 없는 말투를 살짝살짝 끼워 넣는데, 그때 그때마다 섬뜩할만큼 꼭 "진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인물이 깊어 보이고, 성격도 더 뚜렷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반대로 좀 멍청한 웃긴 표정 지어도 잘 어울릴 법 합니다만)

브래드 피트는 웃겨 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테네시 출신이라면서 테네시 사투리를 걸쭉하게 풀어주면서 양아치처럼 말해대는 모습이 재밌기는 합니다. 하지만, 너무 "촌스럽게 보여서 웃기려는 사투리 연기"처럼만 말하는 느낌이 나서, 가끔 필요할 때도 있는 사실적인 느낌이나 진지한 감상을 방해하는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좀 답답한 상황에서 얼굴 표정이 구겨지는 모양하며, 영화에서 필요한 수준으로 웃음은 멋지게 전해 줍니다. 다른 배우들 중에서는, 혼자서 상황을 주도하는 장면이 작아서 눈에 좀 덜뜨이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마치 마를린 디트리히 처럼 나타나서 스파이를 연기하고 있는 다이안 크루거의 실력도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우리나라 영화, TV에서 일제 악당의 전형적인 이름을 "나카무라"라고 하게 된 것의 연원은 어디서 부터 찾아야 하겠습니까? 가깝게는 "유머1번지"에 나오던 "괜찮아유"에서 최양락이 김학래의 조상을 욕할 때 일본 순사 "나카무라"하고 친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던 것이 생각나고, 멀게는 "황야의 독수리" http://gerecter.egloos.com/3887086 같은 독립군 만주물에서 일본군 악당 중에 "나카무라"가 나오는 것도 생각이 납니다. 역대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나카무라"를 모아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 일제시대에 이름을 남긴 "나카무라"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덧글

  • nishi 2010/01/10 21:35 # 답글

    2차 대전 특공대 영화라면 당연히 나오기 마련인 "독일군복 입고 독일군인척 하기"를 소재로 하는 술집 장면에서, 이런 수법은 더욱더 닳아 오릅니다.

    ====
    에서 닳아 오릅니다라고 쓰셨는데 제가 보기에 달아 오릅니다라고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0/01/10 21:44 #

    당연합니다. 저도 올리고 읽어 보다가 바로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rumic71 2010/01/10 22:30 # 답글

    원조 <바스타즈>인 'V2폭파작전'도 잠깐 소개해주셨어야...
  • 게렉터 2010/01/16 00:53 #

    제가 영화 내용만 어렴풋 기억날 뿐 재밌게 봤는지 어떘는지 잘 생각이 안나서 감히 뭐라고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1/11 00:29 # 답글

    잘 읽었습니다. V2폭파작전도 소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2
  • 게렉터 2010/01/16 00:53 #

    감사합니다. 제가 영화 내용만 어렴풋 기억날 뿐 재밌게 봤는지 어떘는지 잘 생각이 안나서 감히 뭐라고 이야기를 못했습니다........2
  • 2010/01/11 08: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1/11 09: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0/01/16 00:53 #

    덕택에 훨씬 더 인상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디지츠 2010/01/11 11:02 # 삭제 답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군요.
    잘 보았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치밀했던 악당이 뭘 믿고 브래드피트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브래드피트가 그나마 활약을 할 수 있지는 않았겠죠.
    그것이 제일 찜찜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마에 나치 쌔우는 거.
    득의양양하게 새기긴 합니다만,
    솔직히 밥상은 발츠가 다 차려주고 그 기대에 배신한 거밖에 없는데
    통쾌한 음악은 왜 나오는 것이며 거기서 그런 결말은 뭘 의미하려고 하는건지..
    하여간 뒤 안 닦고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 게렉터 2010/01/16 00:55 #

    사실 딱 그정도로 죽어나간 뒤에 뭔가 쓸쓸한 농담 비슷한 것하나가 따라 붙는 것이 "특공대작전" 이후의 비스무레한 전형적인 결말이지 싶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 잠본이 2010/01/11 21:15 # 답글

    뭔가 참 때깔은 좋은데 좀 뜬금없는 영화라는 느낌이었죠(...)
  • 게렉터 2010/01/16 00:56 #

    그나마 작정하고 "때깔 좋게" 만든 같은 제작진들의 영화보다는 그런 점도 약간 약해서, 저는 사실은 기대보다는 약간 실망했습니다.
  • shuha 2010/01/13 00:46 # 삭제 답글

    전 다른건 다 둘째치고 타란티노 스러운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좀 듬성듬성한 편집도 용서 했습니다. '작전명 발키리' 에서야 역사를 다 알고 있지만.. 관객이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 기대를 보기좋게 넘어서버리는 엔딩이라니. 괜찮은 배신감 이었죠 ㅎㅎ
  • 게렉터 2010/01/16 00:55 #

    저는 굳이 "고위급"들이 죽는 장면까지 필요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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