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 춘추 전국 시대 孔子 영화

이 영화는 공자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사극으로, 내용은 앞 부분 절반 정도는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정치와 전쟁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고, 뒷 부분 절반 정도는 떠돌이 공자가 제자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유랑하면서 사는 내용입니다. 앞 부분에서는 전투 장면을 화려하게 꾸미고 공자가 계략을 잘 꾸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공자의 유능한 면을 강조하려고 하고 있고, 뒷 부분에서는 후대에는 그야말로 거성 중의 거성으로 추앙 받게 되는 공자가 얼마나 초라하게 고생하며 살았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자: 개봉 때의 부제는 공자 - 춘추 전국 시대 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일단 재미난 대목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소품, 의상, 세트들입니다. 결코 고증을 정확하게 맞춰서 생생하게 실감이 감돌게 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고증이 멋을 부리는 부분 부분들은 눈에 들어 오도록 신경을 써서 만들어 놓앗습니다. 몇몇 한국 TV물이 "위대한 민족"을 목아프게 부르짖으면서 내용을 홍보하는데도 이 나라 저 나라 영화에서 대충 베껴온 소품과 의상으로 때우는 불쌍한 모양의 평균치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입니다. 정확한 고증과 영상화가 쉽지 않았기에 춘추시대 분위기만으로 버티기보다는 진한시대의 소품과 의상을 대폭 참고한 분위기가 난다는 한계는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고풍스러운 옛 분위기가 감돌게 하는 정도는 성공하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재질이 명백히 드러나는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덮어 쓰고 있는 모양은 예스럽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궁전 건축물의 모습과 궁전 내부도 지나치게 과하게 꾸미지 않아서 통일제국 이전의 작은 나라 왕 답게 해 놓았으면서도 옛 임금 다운 권위와 사치는 느낄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죽간과 전서체로 적혀 있는 한자와 같은 전형적인 소품 부터 술잔이나 몇몇 갑옷의 모양까지 특징적인 춘추전국시대의 유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그럴싸한 느낌을 더해 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영화에 잠깐잠깐 등장하는 차(車)들도 볼거리 입니다. 전차와 수레를 중심으로 병력과 고관대작들의 문화를 표현하는 춘추 전국 시대만의 향취를 제대로 느낄만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소품 고증 뿐만 아니라 대사도 간만에 고전 사극 풍입니다. 어색한 조잡한 대사들과 함께 엮여 있어서 구닥다리 풍으로 들릴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운율과 경쾌한 박자감각을 살리는 고풍스러운 말투는 분위기에 어울리고 듣기만해도 정말 몇 천년전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른 예법으로 지냈구나하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합니다. 괜히 폼만 잔뜩 잡고 "말 잘하는 듯 들리게 하는 멋진 말", 명대사이지만 따지고보면 아무 것도 아닌 소리를 줄줄 읊조리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하면, 그나마 예스러운 운율로 풍류라도 꾸미는 이 영화의 대사에는 장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줄거리가 멀쩡한 부분에 한해서, 이 영화의 대사들은 문자를 쓰기는 써도 쓸데 없이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분위기 없이 잘 짜여져 있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 쓰려는 공자님)

인물 중에는 공자의 정적으로 나오는 노나라의 권세가 대신이 극적으로 무척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자의 개혁정치에 반대하는 보수 정치인으로 나오는 데, 마구잡이식으로 흉악한 악당이 아니라, 적당한 살벌하면서 나름대로의 도덕과 원칙을 갖고 있는 튼튼한 인물로 꾸몄습니다. 배우가 워낙에 듬직하게 연기를 하고 있기도 해서, 결코 공자에게 만만찮은 상대로 보인다는 긴장감을 생기게 하기도 하거니와, 반대로 이 인물을 공자가 압도해 갈 때는 일이 풀리고 있다는 느낌도 확실히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이 인물 덕분에 단순한 막싸움이 아니라 치밀하고 교묘한 입체적인 정치싸움이라는 구도가 잡히면서 이야기를 진지하고 현실감 있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악역의 측근 배역을 조금 더 경망스럽고 단순한 녀석으로 배치한 것도 잘 한 일이었습니다. 이 경망스러운 측근이 잘 되어 있기에 악역 인물의 묵직하고 통찰력 있다는 특징은 비교되어 더욱더 두드러집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멍청한 인물인 측근과 보다 지능적인 악역과 함게 나오는 장면 또는 두 인물의 직접 대화하는 장면들이 나올때 마다, 이를 통해서 복잡한 정치싸움의 상황을 관객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전달해 주고 해설해 주는 기능도 아주 자연스럽게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경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도 우리쪽도 비슷한 구도)

음악도 음악 자체만 떼어 놓고 보면 나쁜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곡은 무난하게 어울리는 듯 하다고 느꼈고, 연주와 녹음 수준은 충분히 빼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음악으로서는 문제가 많기는 합니다. 중반 이후에는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장면들에 음악이 아무렇게나 깔려서 괜히 억지로 감정을 짜내 보려고 강제로 벌주 먹이는 듯이 음악소리가 어색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정도로 음악 만드려면 사람들이 고생 참 많이 했을텐데 이걸 이렇게 못써먹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돌아보면 희로애락이 오가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라면 그에 걸맞게 음악도 조정되어야 할텐데, 지나치게 감흥이 터져나오는 분위기의 격정적인 음악만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내용이 흔들흔들 하는데 음악은 대충 그냥 끌어다 붙이니까, 정성스레 만든 깨끗한 음악들이 불필요한 군더더기처럼 잡다해 보이기만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정나라 음악은 아닌데......)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는 후반부에 가면 줄거리의 갈등구조도 망가지고, 인물들의 개성이나 긴장감도 확 없어져 버리면서 점점 더 이상해집니다. 좀 과장 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편집을 포기한 수준으로 툭툭 이야기를 끊어서 각각의 장면들만을 나누어 던지면서 시간을 때우는 수준으로 전락합니다. 주인공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전달됩니다만, 주인공들이 누구 때문에 또는 왜 고생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고생을 벗어날 수 있는지, 무엇을 목표로 고생하고 있는지, 주인공들은 누구와 또는 무엇과 맞서서 대립하고 있는지, "아이고 힘들어" 하는 느낌 이외에 절망이든 희망이든 노력이든 좌절이든 도대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당연히 흡인력도 아슬아슬함도 없고, "쟤네들 언제까지 저러나 보자"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겨우겨우 영화를 지켜보게 하는 수준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영화 후반부의 줄거리를 어떻게 꾸며야 할 지, 어떤 내용을 문제로 삼아서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꾸며낼지 제대로 된 결정 없이 영화를 찍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공자에 대해서 적당한 일화, 공자와 제자들의 주변에 생긴 사건 등등을 다큐멘터리에 깔리는 자료화면 같은 식으로 하나하나 별개로 찍어 놓기만 한 것입니다. 그래놓고, 이걸 어떻게 이어 붙일지 별 뾰족한 수도 없고, 어떻게 배치해 놓아야지 앞뒤 잘 연결되면서 장엄한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나올지 사연을 만들 수 없으니까, 그냥 찍어놓은 장면 1번부터, 10번까지 차례대로 나오게 하고, 연결장면은 MS파워포인트의 "흐려졌다 나타내기" 슬라이드 전환 효과로 해놓으면 발표시간은 가겠다고 상상한 듯 보일 지경입니다.


(다음 장면으로 빨리 안넘어가나)

이 영화의 전반부는 이렇지는 않았고 훨씬 더 긴밀한 이야기로 영화가 펼쳐집니다만, 따지고보면 첫 삽 뜰 때부터 새만금 사업처럼 위험한 엉성한 맛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혜성처럼 등장한 개혁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역사의 고아하면서도 장중한 고대문명스러운 이야기를 멋드러지게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전쟁도 하고 정치도 하고 궁중비사도 좀 나오고 해야될 듯 해서 이런 이야기로 꾸며 놓은 것입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공자는 신분이 미천하지만 똑똑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개혁 정치가로 여러 보수 정치인들이 견제하는 가운데 굳세게 개혁 정책을 밀어 붙이고, 외교와 정치에서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기존 세력의 높은 벽에 부딛혀 좌절하며 괴로워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영웅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듣는다면 쓰던 연적을 면상에다가 집어 던질만한 말입니다만, 이런 이야기 구도에서 영화 속 공자의 모습은 고려시대말 신돈에 가깝습니다.

물론 공자가 실제 정치에서 활약한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신돈처럼 활약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리가 "공자"라면 떠올리는 많은 모습과 일화들은 신돈과 같은 사나운 괴짜 개혁 정치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물며 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신이나 제갈공명과 같이 한미한 출신이지만 유방/유비에게 발탁되어 대군을 이끌고 기묘한 속임수로 적을 물리치는 전략가의 모습으로 화려한 영화의 초점을 두려고한다면 확확 어긋나기 쉬울 것입니다.


(천하를 솥 발 처럼 나누어 보자는 것이오.)

막말은 막말입니다만, 그래도 어쨌거나 이런 방향으로 그냥 계속 밀어붙여도 좀 더 재미난 영화가 나오기는 했을 겁니다. "허준"에 나오는 양예수는 기록에 나오는 양예수와 전혀 다른 형태로 움직이는 악당이지만 덕분에 이야기의 대립구도는 흥미진진하기 이를데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데우스" 는 또 어떻습니까. 영화 속에 나오는 살리에르는 실제 살리에르에 대한 기록 거리가 멀지만 엄청나게 멋진 이야기를 장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눈 딱감고, "공자가 사실은 싸움도 잘했음"이러면서 확 밀어 붙여보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졸병들과 항상 같이 생활하면서 군사들을 열광시킨 장군시절의 궁예나 인덕을 내세워 인기를 끈 유비와 같은 인물을 생각해 본다면, "형벌과 법령이 아니라 인의와 예악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공자의 사상을 병사 훈련이나 전쟁에 개입시켜도 나름대로 줄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차마 그렇게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자니, 공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룰만한 건수가 워낙에 별로 없는 데다가, 공자가 고생한 이야기를 집어 넣어서 위대한 사상가와 그를 몰라준 사람들 때문에 생긴 지금 돌아보면 애가 타기 그지 없는 시련 같은 것을 그리고 싶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앞부분 이야기의 꽉짜인 전형적인 영웅담 느낌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뒷부분의 이야기는 제대로 갖다 붙이기를 포기한 수준으로 그냥 책에 있는 항목에 맞춰 하나하나 찍은 장면들을 차례대로 내보내는 수준에 그칩니다.


(지루하면 전차 타고 싸움도 좀 하고)

결국 둘다 말아 먹었습니다. 그나마 앞부분은 라면 먹고 출출할 때 찬밥 먹는 수준으로 그렇게 좋은 요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아쉬운대로 먹을만한 음식입니다만, 뒷부분은 개태사 가마솥에 꿀꿀이죽 말아 먹듯 아주 심하게 말아 먹었다고 느꼈습니다. 좀 재미있게 만든 앞부분과 의무감으로 이야기 거리만 던져 놓은 뒷부분을 억지로 연결한 결과, 도대체 공자가 "왜 저렇게 고생스럽게 떠돌이 생활을 하나"하는 줄거리에 핵심이 되어야할 이야기거리 조차 제대로 표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공자가 왜, 무엇을 목표로 떠돌이 생활을 했느냐 하는 문제는 유학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은 소재로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진중하게 사연을 잡아낸 것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사연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래봐야, 공자가 빗속에서 허탈한 웃음을 망연자실하게 웃는 장면 정도가 전부인데, 이런 별 대립도 복선도 없는 단순한 감정 표출 장면은 잠시 시간 때우는 정도라서 차인표의 "분노의 양치질" 연기 정도처럼 보일 수준이었습니다. 더우기 학습과 교육을 중시한 공자 사상의 독특한 특징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살벌한 세계와 고아한 인의 사상의 대조와 같은 핵심적인 소재를 묘사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앞서서 편집을 포기한 듯하다고는 했습니다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된 편집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화를 찍어다 놨는데 사력을 다해서 최대한 볼만하게 편집해서 겨우겨우 유지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방랑의 길을 떠난 것인가?)

앞 부분도 아쉬운 면은 적지 않았습니다. 뒷부분이 이렇듯 이상하다보니, "개혁 정치가"로서 공자를 바라보았다는 식의 묘사 역시 가뿐하지 못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전형적인 틀에 맞추어 이야기를 꾸미다 보니 많은 영화의 표현이 가능성 엎이 진부해지고 상투적으로 가라앉아 버린 실망스러운 대목이 많았습니다. 단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 아류작등에 퍼져 있는 유행을 따라서 그저 전쟁터의 모습을 무자비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해버린 모양은 공자를 소재로한 영화다운 예스러움이나, 역사를 소재로한 영화라는 현실감을 날려 버리는 면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자와 보수 정치인들의 대립을 묘사하는 영화 장면들은 로마시대를 묘사한 영화와 TV에서 로마 원로원을 묘사하는 방식을 베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의원"들이 환호하고 웃고 지지하고 야유하는 모습의 표현과 연출은 확실히 영화/TV속 로마 원로원 묘사, 또는 이와 궤를 같이하는 빅토리아시대 영국 의회 묘사에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국 고대 문명 특유의 향취도 없고, 춘추시대, 노나라, 공자의 느낌을 더 잘살려주려는 배려도 없습니다. 정치 토론 장면은 이렇게 찍더라 싶은 것을 어색하게 따라해서 강제로 씌워놓은 듯해 보였습니다. 이 보다는 차라리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손권을 찾아간 제갈량이 토론을 벌이는 장면의 묘사를 따라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삼환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노나라를 더 사랑한 것입니다!)

이런 점은 위나라 후궁과의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과 비교해 보자면 훨씬 더 잘 드러납니다. 이 장면은 앞뒤 연결이 성의 없는 후반부에 속하는 이야기인데다가 별 대단한 파국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시선을 빼앗고 볼거리는 더욱 풍성했던 대목이었습니다. 공자에 관한 일화 중에 극적인 호기심이 충분한 부분을 소재로 택해와서 살리고 있기도 한데다가, 장면을 꾸민 잔잔한 소재들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공자가 "시경"을 편찬해 가르친다는 사실을 끌어오고, "시경"에서 조선후기 이후 현대까지 우리나라에도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인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하는 친숙한 대목을 활용해서 대사를 주고 받는 부분은 단연 동양 고대의 대학자를 다루는 이야기다운 운치가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부류의 컴퓨터 그래픽 대전쟁 장면을 모방하는 대목이나 로마 사극을 따라하는 부분들 보다는 이런 면면들을 좀 더 찾아내고, 최대한 후반부도 수습해나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다 못해, 공자가 높은 벼슬을 하게 된 후에도 문을 드나들때마다 정식으로 꼬박꼬박 예를 갖추는 모습이 앞부분에 나오는 데, 이런 장면 같은 것들은 복선으로 활용해서 좀 더 재미난 이야기거리, 멋진 장면으로 후반부에도 큰 비중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위나라의 후궁)

결국, 이 영화는 볼만한 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반부를 과감하게 "개혁정치인 천재 전략가 공자"로 출발한 것 치고는, 공자와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다른 소재들을 결합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나머지 절반 정도를 겨우겨우 이런저런 멋있는 촬영과 과장된 음악으로 때워내는 듯한 형국에 머무른 것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공자를 다룬 이야기로서는 10년 전쯤에 애니매이션으로 나왔던 "공자전" 같이 차라리 좀 더 고즈넉하고 느긋한 분위기로 공자 일대기를 일화와 명언 중심으로 엮었던 것이 차라리 나아 보입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보자면, 대체 공자가 대사로는 입에 담고 있는 "인의로서 나라를 다스린다"는게 뭘 어쩌자는 건지 보여주지도 않는데, 그러면서 시간 끌다가 후반부 장면에서 주윤발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와서 긴시간 동안 감격의 울부짖음을 하는 장면 즈음에 이르면 "왜저러나" 싶은 민망한 기분을 느끼는 관객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 밖에...

"춘추"가 영화에서 소재로 잠깐 나옵니다. 춘추에서는 "춘추필법"으로 표현 하나하나 글자 한 글자 한 글자를 사건을 바라보는 비평을 담아서 써낸 것이 유명한 만큼, 공자가 어떤 인물을 평할 때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느냐를 두고 논쟁을 하는 장면이나 고뇌하는 장면, 내지는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투고 갈등의 단초가 되는 장면 뭐 이런게 나와도 재밌을 성 싶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자 한 글자, 표현 하나로 역적이네 역심을 품었네 하면서 필화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또 유교 문화권 특유의 묘미니만큼, 문장의 표현과 글자에 얽힌 갈등이나 다툼을 소재로 좀 많이 등장시켜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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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성당거사 2010/02/19 09:03 # 답글

    영화가 별로라는 말을 들었는데, 게렉터님의 설명을 보자니 영화 자체를 안 봐도 뭐가 문제일지 충분히 알 것 같군요. 늘 그렇듯 재밌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0/02/22 22:28 #

    그래도 사극 좋아하시면 한 번 볼만은 합니다. 예스러운 대사나 몇몇 장면들은 사극스러운 맛이 간만에 풍성한 느낌이 나는 순간이 있기는 합니다.
  • Santalinus 2010/02/19 16:23 # 삭제 답글

    애니메이션 공자는 명작이었었죠... 비슷한 패턴으로 실사영화가 생긴다면 참 좋을 텐데요..
  • 게렉터 2010/02/22 22:29 #

    애니매이션이 아닌 보통 영화로 만들면 지나치게 진지한 느낌이 나서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평이 너무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기는 합니다만, 뭐가 더 나아보이냐 하면, 확실히 이 영화보다는 애니매이션판 "공자전"입니다.
  • 게렉터 2010/02/22 22:30 # 답글

    FELIX 님의 덧글에 덧글을 단다고 하다가 잘못해서 지워버렸습니다. 이런 바보스러울 때가... 고마운 덧글이었는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 ㅋㅋㅋ 2010/02/25 16:22 # 삭제 답글

    애니메이션 공자는 무엇인가요...?

    어릴적에 공자 위인전기 읽었을때 계속 떠돌아다니기만 해서 유명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 게렉터 2010/03/02 22:35 # 답글

    정확한 제목은 "공자전" 입니다. 쉽게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공자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하는 단막극 애니매이션 입니다.
  • blue 2010/04/04 11:06 # 답글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연출한 '공자전'은 숨겨진 명작이었던 같습니다. 유강진 님이 맡은 공자도 정말 그럴싸해 보였고, 공자가 자신의 이상을 펼쳐보려 했으나 좌절하고 유랑을 시작한 모습 그리고 노년에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등도 좋았습니다.
  • 게렉터 2010/05/29 10:00 #

    저 역시 재밌게 보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걸객 2010/05/29 03:12 # 삭제 답글

    여담이지만, 실제로 공자가 무예와 전술에도 능했다는 썰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자의 가문이 본래 무관 가문이었고, 공자의 아버지도 출중한 무인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한 듯합니다....

    이러한 점과는 상관없이 영화 자체는 별로였습니다-_-
    중국 정부에서 이 영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당시 잘나가던 아바타를 일부 지역에서 일시 상영금지했던 일화는
    유명하죠-_-

    6,70년대만 해도 문화 대혁명이니 뭐니 하며 공자를 못잡아먹을듯 증오하던 친구들이 오늘날에는 갑자기 공자를 비행기 태워주는 영화를 만들다니.... 과연 역사는 아이러니인가 봅니다....
  • 게렉터 2010/05/29 10:01 #

    문화대혁명 시절과 지금의 천민자본주의화된 일부 중국 도시 문화를 비교해 보는 기사거리들은 이제 뭐 별 특이한 사항으로 언급도 못되는 수준이니, 세상이 뒤집히는 것도 잠깐인가 합니다.
  • 2010/09/25 16:59 # 답글

    아 정말 이 영화 보고 느낀 제 심정을 제대로 표현해주셨습니다.

    (천하를 솥발처럼ㅋㅋㅋㅋ)
  • 게렉터 2010/10/03 22:42 #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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