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Percy Jackson & The Olympians: The Lightning Thief 영화

포스터를 보는 순간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즉시 "해리포터" 시리즈 아류작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심지어 포스터에 씌여 있는 제목 글꼴만 봐도 해리포터 시리즈 아류작으로 기획된 영화라는 예감이 들만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봐도 해리포터 시리즈 아류작 맞습니다. 윤곽을 해리포터 시리즈와 비슷하게 만들고 연출도 비스무레하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다른 능력과 조건을 가진 인물, 조금 색다른 배경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그 약간의 다른 정도가 이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할 때 흥미를 끌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뭐가 해리포터랑 다른지, 어떤 성격의 주인공이 나와서 어떤 배경에서 "마법의 학교"로 들락날락하는지, 영화 보기 전에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이런 점들이 조금은 더 호기심을 자아내는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포스터라면 언제나 "~시작된다"라는 말을 집어 넣는 이 이상한 상투성)

"해리포터랑 다르게 보이려고 이렇게 했구나" 하고 구경하는 작은 재미를 느끼기에는 좀 김이 샐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해리포터 시리즈랑 배경을 다르게 해보려고한 점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배경을 "미국 하면 생각나는 미국"으로 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괴물과 마법 같은 신비로운 요소들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제우스, 포세이돈, 아테나 같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지금 세계에서도 그대로 "신"이라면서 그냥 확 나와 버립니다. "그리스" 본토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를 믿는 그리스 정교를 따르고 있는 마당이니, 이런 세상이라면 실제 "신"은 여러 명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인간 중에 그 신을 진지하게 믿는 교인과 종교단체는 하나도 없는 독특한 모양이 됩니다. 뭐, 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 속의 신은 말이 "신"이지 그냥 무당들이 접신할 때 말하는 초능력 괴물 내지는 요정 정도의 위치에서 힘만 좀 셀 정도일 뿐입니다.

세계 제일의 기독교 국가에서 대리석상과 초능력 무기를 좋아하는 여러 거인 같은 것들이 "신"이라고 날뛰는 모습은 일견 좀 어긋나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화려한 문화를 로마제국에 비견하는 방식도 낯선 것이 아닌만큼 오묘한 운치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대 미국 사회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들이 그대로 있다는 식으로 묘사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며 놓은 전례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1980년대판 "환상특급"(Twilight Zone) 이야기 중에 "Ye Gods"라는 편에서는 짤막한 이야기 속에 "신"이라면서 그냥 우스꽝스럽게 풍자된 미국 상류사회 사람처럼 가볍게 심술과 욕심, 연애와 질투로 서로 갈등을 엮어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비교적 선명하고 친근하고 쉽게 쉽게 펼쳐보일 건 수가 많은 배경을 택했습니다. 60, 7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헤라클레스" 영화 시리즈들을 만들어 내던 때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여러가지 형태로 멋있게 보여줄 방법도 분명히 다양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일단은 안전하고도 익숙한 모양대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갈등구조와 인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해리포터 영화나 그 아류작 영화를 단 한 편이라도 보았다면, 이 인물은 해리포터에서 누구에 해당하고, 이 사람은 해리포터에서 누구에 해당한다고 쉽게쉽게 짚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성격, 관계, 자주하는 대사들까지 매우 많이 참조되어 있습니다. 마법 학교도 나오고, 주인공이 사실은 대단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고 그렇습니다.

60억 인구중에서도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인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마땅한 "개성"이란 것이 이 영화에서는 무척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덕택에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이나 사건을 실감나고 생생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무대 위 가짜로 꾸며 놓은 세상에서 장난하는 듯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형화된 무협지가 쏟아지던 시절에 흔히 자주 나오던 "큰 사연을 겪은 남자 주인공이 있다 - 기이한 인연으로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 악당과 싸우고 그 과정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에게 미친듯이 인기를 얻는다" 식으로 진행되던 그 판에 박힌 듯한 "무협지 세상에서만 항상 일어나는 이야기" 같은 향취가 감돕니다. 말하자면, 해리포터 아류작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는 "포ㅌㅕㅂ지" 정도라고 할만한 어떤 틀에 끼워 맞추는 정형시 같은 이야기 틀이 따로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웃기는 주인공 친구 조연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이야기를 했는데, 워낙에 이야기가 거창하게 커지면서 화려해진 요즘 진짜 "해리포터" 시리즈에 비하면, 이 영화는 좀 더 단순하고 쉽게쉽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맛이 있기도 합니다. 소박하고 간략하면서 순간순간 잔재미가 많았던 초기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전형적으로 따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요즘 진짜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확실히 다르기는 다릅니다. 어찌보면, "아류작"이라는 것을 만들 때, 어떻게 핵심을 가져와서 꾸며내야지 좋은 점을 잘 흉내낼 수 있는지 그야말로 "아류작" 답게 경제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조연)

정말로 아쉬웠던 대목은 미술 표현, 시각 표현이 좀 더 좋았으면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야기를 대거 소재와 배경으로 가져온 영화인데, 이 분야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그림에서부터 시각적인 자료가 넘쳐나는 판이지 않습니까? 그런 기대에 비하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마법들, 초능력들, 괴물들, 신화적인 건축과 신들의 모습은 좀 재미가 없습니다.

1983년작 이탈리아 영화 "헤라클레스" (Hercules/Ercole) http://gerecter.egloos.com/2918012 에 나오는 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들이 기계 괴물로 나오는 모양 같은 것은, 비록 너무 괴상하다고 악평을 받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 있노라면 그 모양만으로 확실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큼직큼직한 괴물들은 컴퓨터 게임에서부터 TV광고까지 언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그런 컴퓨터 그래픽 괴물들을 별 특징 없이 꾸며 놓은 모양인데다가, 그 동작과 동작을 담아내는 연출의 모양도 딱히 극적인 대목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속의 "마법 학교"는 그냥 특징적인 주제를 내세운 아이들 여름 캠프 학교 정도로 보일 뿐이고, 좀 좋아 보일 때에도 TV물에서 예산 아끼려고 꾸며 놓는 간략한 세트 정도로 보이는 정도 입니다.

그리스-로마 신들의 모습은 거인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신이 거인의 모양을 갖고 있다면 그 거대한 크기가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혹은 재미있는 장면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뭔가 연출을 좀 더 특색있게 해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자꾸 들었습니다. 지옥의 광경이나 천상의 신전과 같은 곳의 모양도 옛 그림에서 보이는 흔한 모습을 그대로 한 번 더 큰 재미 없이 재현하는 것 보다야, 좀 더 거창하고 좀 더 독특하게 표현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80년대판 "환상특급"에서는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 이야기를 현대의 답답한 관료주의 은행처럼 꾸며 놓고 보여주는 대목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방향에서 뭔가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광경을 보고 있을까?)

왜인고 하니, 이 영화에서 재미난 부분이라는 것은, 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널리 알려진 부분들을 살짝살짝 농담거리로 활용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패러디물처럼 영화가 웃기게 흘러갈 때가 많고, 이런 것들이 꽤 재미나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리스의 영웅들은 "-우스" "-레스" 로 끝나는 이름들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 미국 아이들 사이에 이런 영웅들이 끼어 있다면 이름이 좀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혹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러가지 보물들, 무기들의 모습을 요즘 세태에 맞게 조금 변형해본다면 어떤 모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하 세계로 가는 통로나 올림푸스 산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거리들은 계속해서 자꾸 나타나면서 흥미를 끌고 웃음을 짓게하고, 나아가서 다른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등장인물, 마법의 물건들은 어떻게 생겼을 지 궁금해하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 초반즈음에 "하데스"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할 때 즈음이면, 관객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하데스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자'하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를 계속 지켜보게 해 주고, 적당히 흥겹고 재미난 이야기거리들을 자꾸 던져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포스터가 스포일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편에서 이런 점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널리 알려진 부분들이 현대 사회 속에 어떻게 녹아 있느냐 하는 부분이 재미거리가 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만큼 현대 사회의 어느 분야를 보여주느냐 하는 부분도 눈에 뜨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영화 줄거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는데, 적당히 볼만합니다. 미국에서 인상적인 곳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지역을 주로 골라 놓았는데, 그래서 전에 비슷한 것, 닮은 이야기들을 여러번 본 적 있다는 생각이 들 법은 합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미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긴 모험을 한다는 느낌도 물씬 나거니와 꼭 다룰 것은 다룬다는 양상으로 잠깐잠깐 짭짤한 재미거리로 균형을 갖춰 주는 맛도 괜찮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이 영화는 비슷한 부류의 영화를 다시 또 반복하는 뼈대 대로 만들 되, 워낙에 소재가 풍부한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사용해서 최소한의 특징을 잡아낸 영화 정도로 요약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정도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도 미술적인 표현에 인상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무척 아쉬운 부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거리를 짜내고 최소한의 방어는 해내기 위해 웃긴 장면, 가벼운 흥미 거리, 이야기를 빠르게 풀어내는 재주 등등은 또 그런데로 값을 해내는 부분도 있는 영화 였습니다.

재미가 없을 만한 대목이나 지루할만한 부분에서는 깜짝 놀라게하는 것을 튀어나오게 한다든가, 선정성에 일단 목표를 둔 징그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을 잠깐 튀어나오게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전체 균형을 흐릴만큼 흉악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영화를 멋지게 만들 밑천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그래도 지겹지는 않잖아"라고 할 수 있게 되도록 막아내자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들과 같이하는 미국 유람" 정도의 내용이 이 영화의 내용인만큼, 속편이 나온다면, 줄거리가 이어지는 것도 이어지는 것이지만, 배경을 바꿔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들과 같이 하는 유럽 유람",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들과 같이 하는 아시아 유람" 같이 계속 속편을 만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기기 좋은 영화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만, "전설의 고향" 귀신에도 며칠밤 잠못이루기 마련인 관객이라면 놀래키는 장면, 징그러운 장면은 좀 무시무시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덧글

  • 영춰 2010/02/23 00:47 # 답글

    (한국의 포스터라면 언제나 "~시작된다"라는 말을 집어 넣는 이 이상한 상투성)
    (내가 웃기는 주인공 친구 조연이다!)

    진지한 듯 보이는 글 속에 가끔씩 보이는 유머센스에 오늘도 한번 시원하게 웃고 갑니다.
  • 진성당거사 2010/02/23 12:04 # 답글

    "영화 속의 신은 말이 "신"이지 그냥 무당들이 접신할 때 말하는 초능력 괴물 내지는 요정 정도의 위치에서 힘만 좀 셀 정도일 뿐"
    저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지요.
  • 원한의 거리 2010/05/29 03:08 # 삭제 답글

    웃기는 주인공 친구 조연은 대게 안경을 쓴 비리비리하고 꾀죄죄한 백인친구나
    유색인종이 대부분이죠.

    클리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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