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2010) 영화

이런 류의 환상적인 내용을 다룬 책은 도대체 책 내용을 어디까지 어떻게 영화로 옮겼고 어떤 부분은 다르게 했느냐는 것을 모르고 보면서, "아 그 대목은 이렇게 표현 되었구나." "역시 그 부분은 옮기기가 어려웠는지 저렇게 돌려쳤네" 하면서 구경하는 것이 제맛일 것입니다. 이 영화도 그런 걸 깨달아가면서 반가워하기도 하고 실망도 하는게 보는 맛이지 싶습니다. 그래도,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대사부터 분위기까지 성분으로 보자면 책과 너무 과하게 비슷하지만 붙여 놓은 위치와 순서는 또 지나치게 다른 모양이 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저는 그 결과가 참신하고 즐겁기 보다는 지루하고도 공감할 구석은 적은 쪽에 좀 더 가깝게 보였습니다.


(앨리스가 전통대로 파란옷이기는 한데...)

이 영화는 속편 아닌 속편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어린아이 앨리스가 책에 나오는 모험을 한 번 겪었다고 치고, 이 영화는 그 어린이가 자라서 결혼할 나이 즈음 되어서 새로운 모험을 한 번 더 겪은 이야기를 다룬다는 듯이 내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만 이것이 진짜 "그 뒷이야기"류의 속편인 것만은 아닙니다. 속편 없이 끝난 이야기의 속편격인 이야기라면, "원작"의 이야기를 전제해 놓고 그 배경과 인물이 원작에서 벌인 일들을 울궈먹고 활용하고, 어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채워주고, 패러디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린이 앨리스가 겪은 일 다음에 일어난 이야기라는 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앨리스가 겪은 일들은 어렴풋한 꿈 같은 일에 불과하고 그나마 다 잊혀진 기억이라는 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원편의 인물, 배경에 대해서, 새롭게 하나 둘 제시해 나갈 뿐, 속편답게 이전 상황을 활용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들은 없습니다.

이런 어중간한 모양은 주인공인 앨리스를 꾸미는 데에도 그대로 끈적끈적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앨리스가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야 마땅하고 수줍어서 말도 못하는 시절도 지난 정도의 "어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겉모습이나 나이로 따지자면야 "청소년"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만, 그래도 귀여운 아기가 아니라 세상 이비를 아는 여자로 제시 되어 있습니다. 도입이나 결말 즈음에는 이러한 상황을 소재로 잠깐 써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는 그때 뿐으로, 멀쩡하게 다 큰 아가씨가 이야기 내내 "이상한 나라"에서는 그저 여덟살 아홉살 짜리 동화나라의 어린애와 똑같이 행동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대사를 읊을 뿐입니다.


(들어 보이잖아...)

무릇 어른이라면야, 개구리가 눈을 껌뻑이는 모습을 보고는 재밌어하기 보다는 징그러워하기 마련이고, 나이든 사람이라면, 무심코 음식을 집어 먹고나서 몸이 커졌을 때 어리둥절해하기 보다는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재미나게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인 동화적인 소재들과 충돌을 빚으면서 패러디로 웃길 수도 있고, 환상적인 느낌을 대조적으로 강조하면서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갈등을 뽑아내는 소재로 써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다 못해 질풍노도의 감정 변화와 반항심에 불타는 청소년 주인공으로 잡았다면 재미난 성격을 만들어주기에도 좋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끝없이 지긋지긋하게 나와서 답답할 정도인 "옛 동화를 비트는 21세기 애니매이션"에서는 거의 틀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이런 이야기거리를 써먹을 지경일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앨리스가 어른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재미거리는 거의 전혀 없습니다. 서울 시청에 취업하는 것이 꿈인 취업준비생 아리수씨는 거듭된 구직 실패로 이어진 긴 백수생활에 좌절과 우울함으로 가득찬 상황입니다. 그런데, 희망근로라면서 청년 인턴들을 잔뜩 고용해서 흰색 장미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해서 붉은 장미로 만드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당국을, 아리수씨가 본다면 어떤 식으로 반응하겠는가. 이런 류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특색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내용은 다 포기하고, 그저 책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때우고 마는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은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기 전의 앨리스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겁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으로 설정된 이야기 배경은 당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소품과 고증을 풍성하게 드러내서 현실감을 주면서도, 군데군데 적절한 과장과 파격으로 강조하는 부분도 남겨 두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나,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개척과 같은 배경을 살짝 깔아서, "전통적인 시대"가 막 끝나가려는 시대라는 분위기를 짧지만 충실하게 드러내 보이고, 여기에 맞춰서 전통적인 분위기에 적당히 반항적인 주인공의 성격과 그 불만감도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공감할만하게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영국을 배경으로한 대목에서는 심지어 인물들의 대립 관계와 그 상황 조차도 호기심을 끌고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바람 피우는 사람, 살짝 정신나간 친척, 일찍 세상을 뜬 주인공을 깊게 이해해주던 부모, 고루하고 엄격한 보호자, 납득할 수 없는 결혼, 영리하지만 순종적이지는 않은 주인공. 비슷한 시대 브론테 자매의 인기 소설에서부터, 어제 한국 TV에서 방영한 특급막장 연속극의 절정 부분까지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는 밑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정도 밑천을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쉽고 짧고 기억하기 좋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정말 그럴듯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막상 그래놓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벌어지는 "이상한 나라" 자체는 꼭 100년전쯤의 동화를 별 발전된 바 없이 흉내내 만든 아류작처럼 보이는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라비린스 (Labyrinth)" 같은 영화는 80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할만한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는 80년대 유행을 작렬시키는 데이빗 보위 마왕과 제니퍼 코넬리 주인공이 대활약하고 있고 당시 영화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로봇으로 만든 영화속 괴물들이 우글우글 나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물명"은 21세기 일본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할만한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는 폭발하는 색채 감각과 애니매이션 특유의 회화적으로 인상적인 장면, 과감하게 공간감을 과시하는 장면을 마음껏 보여주는 맛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류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 영화만의 성격을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좀 나쁘게 말하자면, 이 영화 속에 펼쳐지는 것은 그저 고전에 나오는 소재를 요즘 유행하는 컴퓨터 그래픽 화면을 꾸미는 심심한 평균 정도로 도시해 주는 수준 정도 입니다.


(파이널 퀘스트 85탄 SE판 R 대쉬 제로 어드밴스 시즌2 스페셜 파워업 키트에 나오는 장면인가?)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고전을 정통적으로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꾸 재배열 하고 있는 통에, 정작 정말 재미난 옛 구경거리들은 그대로 또 놓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은 줄거리나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적, 수학적인 재미거리와 언어 유희의 맛에 집중하는 내용인 탓으로 영화로 옮기기가 무척 어려워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속의 내용에는 선명한 시각적 심상을 강렬하게 주기에 화면으로 펼쳐 보임직한 내용도 가득가득합니다. 진짜 트럼프 카드처럼 생긴 트럼프 카드 병사가 움직이는 모양이나, 앨리스가 자기 눈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 시각적인 연출이 흥미를 끌만한 내용입니다. 영화로 만들면 재미나게 보일 장면입니다. 실제로 1951작 애니매이션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1972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는 이런 장면이 다채로운 색깔로 흥미롭게 펼쳐져서 처음 구경하는 관객의 이목을 붙잡아 끌었습니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책 내용대로 이야기를 꾸역꾸역 펼친다는 태도만 취해도 그 중에서 멋지게 꾸밀 건수들을 잡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머리만 공중에 붕 뜬 채 나타나는 고양이를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어떤 모양이겠습니까? 목의 단면이 보이겠습니까? 고양이 목뼈와 목의 동맥, 정맥의 단면이 드러나 보이는 겁니까?


(이렇게 그럴듯해 보이는 상관 없는 장면은 잠깐 나오고 말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재미거리들이 줄거리와 인물 갈등이라기보다는, 논리와 개념, 언어유희의 맛이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영화로 꾸미기 어렵다면, 그런만큼 몇몇 강렬한 시각적인 요소가 있는 부분들은 아쉽지 않게 듬뿍듬뿍 살려야 재미난 영화를 꾸미기에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살릴 요소를 살리는 대신에, 이 영화의 단점을 보강해 본답시고, 대강 줄거리와 인물 갈등 구도를 어떻게든 다른데서 가져와서 그걸 장황하게 늘어 놓느라 미술적인 부분을 갉아먹어가며 때워보려는 듯 보였습니다. 우유는 고소하기는 한데 비릿해서 못 먹겠다면서 우유를 따라 놓은 잔을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고소한 맛을 살린 요구르트나 치즈를 대신 주는게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릿한 맛을 가시게 하려면 이런 걸 넣어야지"라면서 우유잔 속에 김치를 몇 개 집어넣어서 섞어 놓고 그걸 마시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를 대폭 참조하는 마녀와 대결하는 용사의 이야기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몰고 갔습니다. 용사가 싸우는 환상 세계의 이야기라니, "또 지긋지긋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아류작이란 말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 정도로 부질 없이 모방한 수준은 아닙니다. 동화적인 분위기와 공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심상은 최대한 살리되 나름대로 대결하고 싸우고 결투도 하는 갈등의 이야기를 꾸미는 방편으로 찾아 본 것이 "오즈의 마법사" 풍 줄거리라는 정도였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화면을 꾸미는 표현력은 한계가 역력했는지 결국에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장면들과 매우 흡사한 구도의 화면들을 결정적인 대목마다 활용하는 느낌이 났습니다.


("But no living man am I!")

끝없는 언어 유희들과 재미난 논리와 개념들이 넘실거리는 소재들은 대충 모습만 한 번 비추고 넘어갑니다. 시각적인 충격들을 줄만한 소재들도 대부분 통과합니다. 그렇게 생긴 큰 빈자리를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로 매워 넣자니 무리하게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이 영화 속의 모자 장수나 주인공 앨리스는 그 행색과 배우가 "오즈의 마법사" 계열 분위기가 흠뻑 나는 인물입니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어린애처럼 움직이는 앨리스의 행동 역시 그런 분위기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걸 좋아한다면야 다른 게 다 부족해도 그만으로도 즐기겠습니다만.

심지어 기술적인 면도 "오즈의 마법사"와 비슷한 행색이면서 그 수준에는 못 쫓아가는 한계가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1939년판 "오즈의 마법사"는 편안한 흑백 화면으로 펼쳐지던 현실 세계의 이야기가, "오즈"로 넘어가면서 일부러 화려한 색깔로 꾸며 놓은 배경의 총천연색 화면으로 바뀝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세계로 넘어가는 느낌을 당시 영화 기술의 극치였던 색채 기술을 이용해서 관객들에게 경이감을 준 것입니다.

그 기술적인 경이가 영화 속에서 환상의 세계인 "오즈"로 들어간다는 극적인 내용과 맞아 떨어지면서 화려한 쇼의 흥을 더하도록 꾸며 놓은 것입니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에는 황금색으로 칠한 길과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성과 같이 색채가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되기에 이런 기술적인 묘기가 줄거리와 엮이고 흡인력을 더합니다. 이야기에서 에메랄드로 빛나는 성은 사실 색안경을 이용한 속임수로 색안경을 벗으면 그냥 성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에메랄드로 빛나는 색깔이던 화면이 색안경을 벗으면서 정체가 드러날 때는 정말로 에메랄드 빛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신기한 색깔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색깔을 이용한 이야기가 절정 장면에서 펼쳐지는 겁니다.

이 영화는 3차원 입체 영화 기술을 이용해서 비슷한 종류의 신기한 기술을 보여준다고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묘한 극적인 활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술자체도 그렇게 빼어난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가상현실에 대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바타" 같은 영화는 이런면에서 훨씬 더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장면 구성을 보다보면, 3차원 연출에 그 기술적풍부함이 없다 싶기도 합니다.


(여기가 록키 호러 픽쳐쇼 인가?)

이렇게 이야기를 엮다 보니, 함정 처럼 큰 구멍을 드러내는 부분도 꽤 있어 보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앤 해서웨이의 연기도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른이 된 앨리스가 주인공이고, 환상적인 소재 중심의 동화가 아니라 용사가 마녀와 싸우는 이야기이니, 그렇다면 그 싸움의 한 축에 있는 앤 해서웨이의 역할은 진지하고 전설적으로 거창한 맛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순간들은 애벌레가 파이프 담배 피우면서 농담 따먹기하는 공상적인 것들이니까, 도무지 심각하게만 연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앤 해서웨이의 모습은 꼭 일부러 이상한 모습으로 연기를 못해서 웃기려는 듯 보이기도 하고, 그냥 맛이 간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종잡을 수 없이 그저 어느 하나 재미난 것이 없었습니다.

위치가 좀 이상한 영화속의 인물이다 보니까 처음 나올 때는 독특하고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표현한 "전설속의 여왕" 일 듯한 기대를 던져주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실은, 이 줄거리 전개를 위한 배경 설명 대사 몇 마디 던져주는 줄거리 쳇바퀴를 돌리는 일꾼 정도 입니다. 차라리 작심하고 맛간 쪽으로 확 밀어 붙여서 "비틀쥬스" 등장인물들처럼 황당한 맛이 재밌게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앤 해서웨이)

그나마 앨리스 어린이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이상한 나라" 밖에서 재미난 주인공 역할도 잘 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건실한 편입니다. 또, 차근차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책에 나오던 것들이 우수수 쏟아지며 많이 나오기는 하니까, 이런 것들이 잠깐씩이라도 자연스러운 최신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또박또박 등장하는 모양이 지켜 볼만은 합니다. 종잡을 수 없이 겨우겨우 끼워 맞춘 내용에다가 장황하게 벌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집과 화면전환들은 별 걸림돌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점은 화면을 이어가는 기본 기술이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충실하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가득한 이야기로서 갖추어야하는 조명과 색조 조절 같은 기술상의 자연스러움도 충분히 확보한 편입니다. 음악도 건실한 편에 속한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볼만한 일부 부분 조차도 아주 편안하게 지켜보게 해 주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여전히 남습니다. 이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책에서 재미난 소재를 강조해서 보여준답시고 "저 자의 목을 당장 쳐라!"는 나쁜 여왕 대사를 십억번에서 일조번 정도 들려주는데, 그냥 많이 들려줄 뿐으로 아무 감동이 없었습니다.

지구의 각급 학교들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팬이라고 자랑하며 다니면 자기가 참신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자의 목을 당장 쳐라"라는 대사를 웃는 얼굴로 읊으면서 '날 특이한 아이라고 우러러봐달라'고 암시하는 아이들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성공한 국회의원"들 만큼 널려 있습니다. 이런 걸 "앨리스" 영화 속에서 끝없이 길게 보여주면서 좋아하는 것은, 가상현실을 다룬답시고 망해 먹는 영화에서 나비를 보여주면서 뿌듯해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혹은, 웃기는 것이라고는 욕뿐인 조직폭력배 코미디면서 막판에 누가 비리인사와 싸우다가 죽기만하면 감동과 웃음이 함께 있는 보람찬 영화가 된다고 좋아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영화는 볼 것이 없는 영화는 아니겠지만, 이 보다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나름대로 성의를 기울였던 몇몇 부분부분의 모양을 보자면 모자란 부분은 더욱 와닿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명대사가 되어야 마땅한, 앨리스가 끝내기 칼질을 하면서 읊는 "몇 가지 이상한 사항"을 줄줄 읊어대는 대사는 그 운율도 잘 안맞습니다. "좋맙다" 같은 언어 유희 표현은 좀 더 경쾌하고 시적으로 활용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 밖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제목 입니다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온 소재들이 절반 정도 되는 수준으로 나오고, 결정적으로 활용되는 것들의 숫자는 더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재버워키는 그 시가 멋이었던 만큼, 그냥 삽화 모습 그대로의 용으로만 설치기 보다는 뭔가 대사가 많거나, 모양이 용이라도 좀 수다스럽게 언어유희를 정신없이 많이 떠들게 했거나 아니면 가사가 요란한 노래를 불러대면서 뮤지컬 쇼라도 한 판 해버린다거나 했으면 어땠겠는가 싶었습니다.

덧글

  • rumic71 2010/03/11 22:46 # 답글

    디즈니 거라 최소한 자기네가 만든 것에는 충실할 줄 알았더니만...
  • 게렉터 2010/03/13 22:58 #

    전혀 아니었습니다!
  • 을파소 2010/03/11 22:49 # 답글

    전 나니아 연대기 생가기 나던걸요? 이계로 넘어간 주인공이 나쁜 독재자를 타도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보이더군요. 나니아 연대기도 디즈니 제작이었죠.
  • 게렉터 2010/03/13 22:58 #

    마녀와 옷장은 있는데 사자에 해당하는 것이 없어서, 나니아 연대기는 언뜻언뜻 조금씩만 생각났습니다.
  • 정호찬 2010/03/11 23:41 # 답글

    이상한 나라 다녀오더니 뽕장사 하러 중국가는 엘리스;;;
  • 게렉터 2010/03/13 22:59 #

    제국주의에 무게를 깊게 실으면 그렇게 보이고도 남을 것입니다.
  • 펠로우 2010/03/12 01:11 # 답글

    기대만 부풀려놓고 좀 허전한 영화더군요... 영화 보는 순간엔 차라리 '퍼시 잭슨~'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 게렉터 2010/03/13 22:59 #

    저 역시 보는 순간에는 차라리 퍼시 잭슨이 더 재밌었습니다.
  • 풍신 2010/03/12 03:19 # 답글

    상상력이 많은 아버지를 잃고 귀족 근처의 권태로운 생활 속에서 주위사람이 하라는 것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성인 앨리스의 정신 상태를 이상한 나라에 제대로 표출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이 관료주의적이 되어있다던가...), "하트의 여왕이 이전보다 좀 더 독재자"가 되어 있었던 것뿐으로 끝나고...10보 양보해서 앨리스가 이전의(이전에도 그리 대단한 아이였다곤 보긴 힘들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용기를 되찾은" 존재로 되돌아 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바워크 사냥을 하는 용자"란 것은 좋다고 쳐도, 그 모든 것을 <"예언서의 용자"니까 해야돼!!!>라는 식으로 몰아넣어 고민하고 각성하게 만든게 안좋았다고 봅니다. (괜히 매드해터를 부각시킨 것도 있고...)

    좋은 소재, 좋은 배우, 좋은 원작을 갖고...방향성을 잘못 택한 작품이랄까...
  • 게렉터 2010/03/13 23:00 #

    어찌 보면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원작은 조금만 사용하고 아예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짜릿한 모험담"을 만들자고 좀 더 과감하게 이야기를 새로 짰으면 어땠겠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 FAZZ 2010/03/12 14:48 # 삭제 답글

    리뷰 잘 봤습니다. 대충 매니아들의 평은 게렉터님과 비슷하더군요. 뭔가 모자란다는 평...
    그래도 한번 극장에서 봐줘야 팀버튼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서(팬이라..) 극장에서 보려고 준비중입니다.
  • 게렉터 2010/03/13 23:00 #

    그래도 보신다면야 역시 극장에서 보시는 게 좋을 영화이기는 하겠습니다.
  • mmkisa 2010/03/18 05:12 # 삭제 답글

    역시 디즈니는 안된다는....그냥 아동용 애니나 꾸준히 만들길...-_-
    오스카에서 디즈니에 애니부분 퍼주는 거 보면 오스카는 역시 세계의 영화제가 아닌, 미국 헐리웃영화제라는 걸 문득 깨닫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
  • 게렉터 2010/08/30 08:34 #

    디즈니 영화 중에도 "캐리비안의 해적" 같이 멋진 영화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저 디즈니는 안된다고 하기에는 더 아쉽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3/21 19:54 # 답글

    적이 실망했습니다. 팀 버튼도 이제 결국은 세파를 이기지 못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 게렉터 2010/08/30 08:34 #

    저는 졸음과의 결투가 정말 처절했던 영화였습니다.
  • ifulook 2010/08/22 01:12 # 삭제 답글

    재가 좀 삐딱하게 본 건지도, 확대해석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앨리스가 중국(?)에 진출한다는 에필로그 내용이 좀 그렇더군요...

    영국-중국 수교는 아편전쟁과 난징 조약으로 이어지는 차이나의 굴욕의 역사인데
    장성한 앨리스가 중국 교류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결말이라니...

    원더랜드에서 앨리스가 경험한 것은 어찌 보면 자기의 상상이거나 환각인데...
    어릴때 부터 아편의 위력을 실감했던 앨리스가
    그것을 이용해서 동양의 문호를 개방하고 무역역조를 해결한다!

    마지막 결투에서 용의 머리를 자른 것이 앨리스이고
    용이 중국의 상징이라 본다면... 결국 근세에 들어 서양이 동양을 짓누른다는
    그런 역사관이 드러나는 듯 해서 좀 찜찜한 면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의 엄청난 확대해석이었겠지요... ^^
  • 게렉터 2010/08/30 08:35 #

    확대해석을 떠나서 "꿈과 미래"를 표현하려는 장면치고 확실히 좀 뜬금없고 어색하기는 했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나아갔어도 말씀하신 데까지 바로 이어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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