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허리(須須許理) 기타


(신라 술잔)

신라 유례 이사금 때, 한 신라 뱃사람이 왜국에 갔는데, 그곳의 한 여자가 그를 좋아하게 되어 하룻밤 머물며 술잔을 나누게 되었다. 이때, 그 여자를 좋아하던 이웃의 다른 남자가 질투하여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하여 신라 사람과 여자를 찾아왔다.

"어찌, 그대는 내 정을 모르고 오늘 처음 본 저따위 신라사람에게 마음을 주는가? 내 반드시 저 신라사람을 죽여 없애리라."

남자는 술에 심하게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계속 욕을 퍼부었다. 신라 사람이 괘씸히 여겨 맞서 싸우려 하니, 여자가 말리면서 말하였다.

"길가의 돌멩이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한다 하지 않습니까. 그냥 피하십시오."

그리하여, 여자가 신라 사람을 이끌었으니, 그는 여자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와 산속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자는 숨겨온 표주박을 옷섶에서 꺼내며 말하기를,

"제가 빚은 대어주(大御酒)를 드십시오."

하였다. 신라사람이 표주박을 받아 들고, 거기에 난 구멍에 입술을 대고 빨았더니 술이 나왔다. 술을 한 모금 마신 그는 웃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아까 들었던 길가의 돌멩이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한다는 말도 이상하였는데, 이와 같은 평범한 술에 '대어주'와 같은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대는 혹 어찌하여 이러한 말이 있는지 아십니까?"

여자는 표주박을 건네 받아 한 모금 술을 빨아 먹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백제 서울에 인번(仁番)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맛 좋은 술을 잘 빚기로 이름이 드높았다. 한 성주가 인번의 재주를 시험하고자 황무지에서 잡초와 함께 난 수수 몇 대를 꺾어다가 주며 술을 빚어 보라하였다. 그런데 인번은 그 수수로도 매우 맛이 좋은 술을 만들었다.

성주가 감탄하여 인번에게,

"이 따위 소 먹이로도 쓸 수 없는 풀 몇 줌으로도 달고 마시기 좋은 술을 만들다니, 너는 어찌한 것이냐?"

하고 물었더니, 인번이 즐겁게 웃고는, 입고 있는 옷의 허리춤 즈음을 가리키며 답하기를,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본시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것이나, 그 동안 허구헌날 술을 마시며 몇 십년 동안 살이 찌고 피가 돌았으니 이제는 이 몸이 술항아리와 안주접시에게 물려 받은 몸이라하여도 다름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후로, 사람들이 인번을 별명으로 불러서, 모두들 수수허리(須須許理)라고 불렀다. 혹은 이 별명은 왜국의 말로 "후루룩후루룩 잘도 마신다"라고 하는 말이 변해서 된 말이라고도 한다.

수수허리는 점점 더 그 술빚는 솜씨가 이름이 퍼졌고, 한번은 조정의 명을 받아 백제에서 왜국에 보내는 사신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다. 왜국으로 먼 길을 떠나는 배를 타기를 앞두고 전날밤에 배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한 데 모여 술을 마시며 놀게 되었으므로, 수수허리는 걸쭉하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요례(醪醴)를 준비하여 항아리를 가져다 놓았다.

이때 그 자리에 한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는데, 사신을 따라가는 어떤 극우(剋虞)의 부인이었다. 뱃사람들이 웃으며 그 부인에게 술을 권하였다.

술 권하는 사람 중에 한 높은 관리가 있었는데, 그 관리가 말하기를,

"부인이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중항(中巷)사람들 사이에 이미 이름이 높소. 긴 칼을 휘두르고 굵은 활 시위를 당기는 장수들도 부인과 함께 술잔을 나누다보면 당해내지를 못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 보았소. 그러니, 어찌 그대에게 술을 권하지 않겠소."

하며, 부인의 술잔에 요례를 콸콸 쏟아 부었다. 그러자, 부인이 교태스럽게 웃으며 손사레를 치더니,

"아, 이런 요례는 시원한 맛에 꿀꺽꿀꺽 많이 마시는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 저는 요례는 배가 불러서 싫습니다. 저는 지주(旨酒)를 좋아합니다."

하며 술잔을 받아 들고, 입술 끝을 살짝 술에 적셨다. 그리고 혀끝으로 입술끝에 묻은 술을 한번 핥으니 같이 술을 마시는 남자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앞다 투어 술을 따르려 하였다.

부인의 그런 모습을 보던 남편 극우가 자리에서 벗어나서 수심에 가득한 얼굴로 망망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수허리가 그 모습을 보고 옆에 가서 물었다.

"즐거운 자리에서 공께서는 어찌 이리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가?"

극우가 답하기를,

"요즘 세간에 고구려의 풍속이 많이 퍼져서,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고, 서로 술을 더 많이 마시는 것을 겨루고, 술을 겨루어 이기고 지는 것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다섯 항아리의 지주를 들이켜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아내가 술먹는 것을 놀랍게 여기는 자들이 많으니, 이와 같이 같이 술잔을 나누게 되면 매양 높은 벼슬아치들과 부유한 장사치들이 앞다투어 제 아내의 손을 부여 잡고 제 아내의 입안에 술을 부어 넣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수수허리가 놀라서 되물었다.

"공의 부인께서는 몸이 크지 않고 또한 호리호리하니, 어찌 한 동이가 아니라 반 동이 술인들 제대로 들이킬 곳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어찌하여 다섯 항아리의 지주를 들이키고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다면서 술잔을 받아 든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때, 술을 마시던 자들이 주사위 놀음을 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중에 어느 한 사람이 "벌주를 마시시오."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이윽고, 부인은 일어나서 술잔을 들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서 술을 마시려 하였다. 마침, 배를 타고 같이 떠나게 되어 있던 악공이 있어서 비파를 꺼내어 음악을 연주했더니, 흥이 일기가 더할나위 없었다. 부인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술잔을 들이키니, 그 모습이 자뭇 사람을 혹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극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탄식하기를,

"허구헌날 밤마다 길거리에 나가서, 긴밤이 지새도록 웃고 마시다 들어오니, 다섯 항아리의 술을 마시는지, 고깃배에 술을 담아 고래를 안주로 씹으며 먹는지 알게 무엇이오?"

하였다.

수수허리가 그 모습을 보고 측은하다 생각하였다.

이후 배는 바다를 건너 왜국으로 떠났다. 왜국의 임금은 대판(大坂)으로 찾아와 백제의 사신과 따라온 사람들을 맞았다. 왜국 임금은 백제 사신을 대접하기를 후하게 하였으므로, 백제의 사신은 수수허리에게 많은 재물을 주며, 왜국 임금의 대접에 어울리는 답례를 하라하였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등불을 환하게 밝혀 두고 왜국 임금에게 수수허리가 술을 올리게 되었다.

수수허리가 왜국 임금 앞에 앉아 말하였다.

"첫번째 술을 올립니다."

그러자, 두 명의 여인이 술동이와 술잔을 들고 나타났다. 두 여인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머리를 위로 당겨 상투처럼 틀어올리고 팔에는 아름다운 꽃의 그림을 그리고 왜국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대나무와 같은 모양의 다리가 있는 회색의 매끈한 잔에 술을 따라서, 좌중이 그 술을 마시게 하였다.

왜국 임금이 술을 마시고 묻기를,

"이것은 무슨 술이오?"

하니, 수수허리가 답하기를,

"술의 맛을 보고 그 맛에 대해 말하며 어떻게 나온 술인지 맞추어 보는 것은 즐거운 놀이입니다. 한번 맞혀 보도록 같이 맛을 보며 즐겨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왜국 임금이 그 말을 듣고 즐거워하였다.

"그것은 재미있는 일이오."

그리고 왜국 임금이 어떤 술인지 알아 맞히기 위하여 연거푸 술을 더 들이켰다.

그때, 자리의 끝에 같이 와 앉아 있던 극우의 부인이 말하였다.

"이 술은 대화(大和)의 요례(醪醴)인가 합니다. 저희 백제의 요례는 걸쭉하여 텁텁한 맛이 많이 나고, 벌컥벌컥 들이킨다하여도 술다운 술맛이 나지 않으므로 많이 마시다보면 배가 불러서 싫어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의 요례는 맛이 깔끔하고 상쾌하여 매우 맛이 좋으니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 여느 요례 보다 뛰어납니다."

부인이 그렇게 말하자, 과연 좌중의 여러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술맛을 보았다. 수수허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인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부인은 짐짓 뿌듯한 표정으로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띄우고 술잔을 혀끝으로 핥았다.

수수허리가 다시 눈짓을 하니, 이번에는 키가 크고 몸집이 큰 남자 두명이 나타났다. 두 남자는 머리에는 뿔모양의 장식이 있는 철로된 관을 쓰고, 꼬불꼬불한 수염을 길게 기른 모습이었다. 이들이 앉은 사람들에게 모두 커다란 소의 뿔을 잘라 만든 길다란 잔을 가져 오더니, 거기에 술을 따랐다.

왜국의 임금이 신기해 하며, 잔속의 술을 들이켰다.

"이 술은 또 무엇인가?"

왜국의 임금은 술맛을 느껴 보면서 그 맛에 대해 생각하면서 여러 잔의 술을 마셨다. 그러고 있는데, 부인이 이전에 마셨던 다리 있는 술잔 속의 술을 바닥에 버리고 나서, 새로 받은 뿔로 만든 잔 속의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는, 또 말하였다.

"이 술은 이른바 서역(西域)이라는 곳에서 곡식으로 빚은 술입니다. 그런데 서역의 남쪽 사람들은 과일로 술을 빚는 것을 좋아한다 하였는데, 이 술은 곡식으로 빚은 맛이 나므로, 이것은 서역 중에서도 그 북쪽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인가 합니다.

맛을 보니, 술을 빚던 재료가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 몹시 구수하고 또한 쌉쌀한 맛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그래서 억지로 달고 시게 만든 요사스러운 술수가 없는 깊은 곡식의 맛이 두텁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것은 결코 백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으로 기이하고도 훌륭하기가 놀랍습니다."

부인이 말을 마치니, 다시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다. 수수허리는 다시 부인을 보고 놀라워 하는 표정을 지었고, 왜국 임금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술을 맛 보았다.

곧 수수허리가 다시 손짓하자 이번에는 다시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이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길러서 까만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보기 좋게 하여 오른쪽 어깨위로 넘기고 소매가 넓은 붉은 옷을 입었으며, 긴 치마에는 주름이 잡혀있는데 두가지 색깔의 천을 번갈아 사용하여 알록달록하였다. 두 여자는 사람들에게 호리병을 하나씩 바쳤다.

왜국 임금은 뿔로 만든 잔에 있던 술을 다 비우고, 다시 새로 받은 호리병 속의 술을 마시더니 또 말했다.

"이것은 또 어떤 술인가. 알기가 쉽지 않도다."

부인은 빠른 동작으로 뿔로 만든 잔에 있던 술을 바닥에 버리고는 호리병 속의 술을 맛보았다. 그러더니 혹여 먼저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재빠르게 말하였다.

"이 술은 고구려의 미온(美醞)입니다. 귀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직접 기술이 좋은 재주꾼들이 술을 빚어 병에 담고는, 바람이 잘 들고 햇빛이 약하게 비치며 술을 담은 병과 술이 오랜 시간 동안 습기를 서서히 머금도록 하는 높은 창고를 집안 깊숙한 곳에 만들어서 거기에 술을 깊이 숨겨 둔다고 합니다. 이렇게 술을 숨겨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술이 맛있어 진다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높게 지어 놓은 묘한 창고에 술을 숨겨 두기를 10여년을 거치면 귀한 값진 술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 술은 삼켰을 때 목이 살짝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즐거우며 또한 기이하게도 술을 마시고 나서 뒤에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일이 없으니 과연 귀한 값을 하는 술이라 할만합니다. 또한, 조금만 마셔도 취기가 오르니, 배불리 퍼마셔서 속이 더부룩해질 뿐인 흔한 술과 어찌 비할 바가 있겠습니까."

부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도 다들 감탄하며 새로운 술을 다시 마셔 보았다. 왜국 임금도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고 감탄하며 여러 잔의 술을 계속 들이켰다. 수수허리는 부인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부인은 기뻐서 입을 가리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수수허리가 마지막으로 손짓을 하자, 이번에는 열살, 열한살쯤 되는 여자 아이들 둘이 나타났는데 머리 위에 빙글빙글 화려하게 장식한 가발을 얹고 금빛으로 빛나는 귀고리로 장식했으며, 치마 저고리가 하나로 되어 있는 황토빛이 나는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술잔을 사람들에게 돌리고는 술을 부었다.

왜국 임금이 술을 맛보더니, 술이 취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미 많은 술을 마셨으므로, 나는 너무 취하여 술맛을 따지지 못하겠소."

수수허리는 빙그레 웃었다. 수수허리는 웃는 표정으로 부인을 보고 물었다.

"부인께서는 이 술도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부인이 다시 혀끝으로 핥아 술맛을 보더니 답하였다.

"이것은 탐라(耽羅)의 지주(旨酒)입니다. 탐라는 남쪽의 먼바다에 바다에 외따로 떨어진 섬으로 온갖 향기로운 과일이 많은 곳입니다. 그리하여, 그 과일 중에 묘한 것들을 골라서, 과일의 달고 향기 좋은 즙과 맑은 지주를 섞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한 지주에 달콤한 과일 즙을 섞으면, 술의 쓴맛은 모두 사라지고, 달콤하고 새콤한 향기만 가득하면서도, 술의 취하는 기운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도리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쓴 맛도 없고, 취하기도 좋으며, 달콤하여 마시기 즐거우니, 이처럼 즐거운 술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부인은 이번에는 즐겁게 술을 들이켜 술잔을 모두 비웠다.

사람들이 모두 다 다시 감탄하니, 왜국 임금이 취하여, 임금의 고귀한 자리를 나타내는 보배로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몸을 기대고 앉아서는 말했다.

"나는 네 번 술을 먹어 보아도, 도무지 맛을 분별할 수가 없는데, 부인은 참으로 대단하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술을 모두 마셔 없앴다.

그러자, 수수허리가 왜국 임금 앞으로 걸어나가서, 다리가 달린 회색잔에 담긴 술과, 뿔로 만든 잔에 담긴 술과, 호리병에 담긴 술과, 금빛으로 빛나는 잔에 담긴 술을, 모두 다 술 항아리 하나에 같이 부었다. 술을 부으면서 수수허리가 말하였다.

"맛을 분별하실 수 없다고 하신 전하의 말씀에 틀린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올린 네 잔의 술은 모두가 같은 술로, 넷 모두가 제가 백제에서 떠나기 전에 뱃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요례(醪醴)입니다.

대화의 요례라 생각했던 것은, 다만 이것을 흐르는 찬물에 담가 두어 찬 게 한 것이고,
서역의 곡주라 생각했던 것은, 다만 이것을 미지근하게 조금 덥힌 것이었으며,
고구려의 미온이라 생각했던 것은, 다만 이것의 걸쭉한 알갱이를 남겨 놓고 맑은 부분만을 따라낸 것이고,
탐라의 지주라 생각했던 것은, 다만 이것의 걸쭉한 알갱이들을 많이 담아낸 것일 뿐입니다.

오직 같은 하나의 술일 뿐인데, 다만 요란하게 옷을 입힌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꾸미고 나타나 서로 다른 화려한 잔에다가 술을 따라 올렸을 뿐입니다. 그것을 두고 서로 맛이 다르고, 이것은 이래서 귀하다, 저것은 저래서 귀하다 하는 말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수군거렸다. 술맛을 보고 길게 말을 늘어 놓았던, 부인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수허리를 바라보았다.

수수허리는 부인의 얼굴을 흘깃보더니, 왜국 임금에게 말을 계속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저자거리에서 술잔을 나누며 떠들 때 말하기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술 중에서 가장 귀하게 꼽는 술이란 이른바, 상권음주(相勸飮酒)라고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옛 부여에서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이라 하는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 세 여인과 한 자리에서 즐길 때에 술 마셨던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때 마시던 술은 늘어 놓은 술자리에서 같이 한 잔 두 잔 나누는 사이에, 하백의 세 딸들이 저마다 세상을 모두 잊고 한 곳에서 해모수 한 사람과 밤새 즐겼다고 하며, 하백이 찾아와 그 딸들의 모양을 보고 극히 놀라 크게 노할 때까지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합니다. 그만한 술이라면야, 어찌 탐내어 맛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그 술보다 더욱 맛있는 술이 결코 세상에 드물지 않습니다.

신라에서는 임진년에 그 임금이 이(李)씨, 최(崔)씨, 손(孫)씨, 정(鄭)씨, 배(裴)씨, 설(薛)씨, 여섯 성씨, 큰 가문의 귀한 딸들을 편을 갈라 가을 8월 보름 밤에 길쌈을 서로 겨루게 했는데,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하였습니다.

진편에서는 져서 슬프다는 가사로 노래를 부를 망정, 그 곡조가 우아하여, 이기는 쪽에서는 춤을 추어 장단을 맞출 때에, 진편과 이긴편이 같이 술잔을 기울이기가 다같이 유쾌할 뿐이니, 이것은 오직 일년에 하룻밤 맛볼 수 있는 진귀한 맛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고구려 병사들이 무자년에 위나암성에서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 당하여 먹을 것이 떨어지고 물이 떨어져 목이 말라 괴로워 할 때에, 한나라 군사들에게 아직도 식량과 물이 넉넉한 것으로 속이기 위해, 한 병졸을 보내어, 한나라 군사들에게 선물로 잉어를 구워 쌈싼 것을 안주로 하고, 한잔 시원한 술을 같이 마시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그 병졸이, 비록 만명의 적군에게 둘러 쌓여서, 목숨을 걸고 속임수를 쓰고 있을 망정, 오래동안 성에 갇혀 목이 타고 배를 곯다가, 한잔 들이 붓는 그 시원한 술의 맛이 어찌 한번 취하여 마시면 7일이 지나야 깬다는 하백지주(河伯之酒) 보다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오니, 궁중의 미녀 천 명이 한 방울 한 방울에 정성을 기울여 모은 훌륭한 술로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한들, 좋은 손님이 없고, 반가운 벗이 없으면, 그 저 한 마리 피라미도 살 수 없는 독액일 뿐입니다. 그러나, 배에 달린 노를 젓는 노꾼이 노를 젓다가 잠깐 쉴 때에 아픈 팔을 두드리며 마시는 질박한 술이라할지언정,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가에 부는 바람을 안주 삼아 마실 때의 흥취는, 귀한 집안의 자제라 하면서 겨우 술 마시는 것으로 서로 겨루며 토하고 쏟으며 술잔을 깨는 한량들이 감히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제 조정의 선대에도 곡식이 부족한 해에는 술을 빚는 것을 금하라하는 엄한 법이 있을 뿐이지, 술 맛을 아는 것이 자랑이라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위엄을 내세우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정해 놓은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처럼 맛 좋은 술을 네 차례나 다르게 맛 본 것은, 오직 전하의 두터운 대접에 깊이 감사하는 은혜 때문에 다같이 기뻐하였기 때문이지, 결코 세상 먼 곳의 귀한 술을 실어 왔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감히 말씀 올리기로, 비록 오늘의 술은 백제의 요례이나,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전하 앞에서 마셔 보았으니 이름을 새로 붙여, '대어주'(大御酒)라 하고자 합니다. 어찌, 이러한 자리를 베푸신 전하의 공덕을 갚기고 쉽다고 할 것이며, 네 가지 술 한 가지 맛, 한 가지 술 네 가지 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시는 전하께서 총명한 분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수수허리가 말을 하는 동안 부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힌 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수수허리의 말을 들은 왜국 임금은 대단히 기뻐하며 크게 웃고는 나머지 술을 모두 마셨다.

술을 다 마신 왜국의 임금은 크게 취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왜국의 임금이 노래하기를,

"대어주! 대어주! 수수허리가가 빚은 술에 나는 완전히 취했구나!"

하였다.

임금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자, 왜국의 신하들은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왜국 임금은 춤을 추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재앙을 물리치는 술! 웃음이 나오는 술!"

마침내 왜국 임금은 기분이 좋다고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 나가기에 이르렀다.

왜국 임금이 뛰쳐 나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크게 놀라서 왜국 임금을 따라 뛰어 나갔다. 나가보니, 왜국 임금은 대판에서 왜국 서울로 가는 길로 뛰어 가다가 말고, 흙바닥 길가에 널려 있는 돌멩이들을 쳐다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 한달음에 다시 왕비의 곁으로 뛰어가려 하거늘, 어찌 너희 돌멩이 따위가 내 앞길을 막고 있느냐. 어서 길을 비키도록 하라!"

왜국 임금을 따라 나온 사람들은 말리려고 주위에 늘어서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부인의 옷차림이 황색 옷에 푸른색으로 점점이 무늬가 있어서, 마치 흙바닥에 놓인 돌멩이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자 왜국 임금은 들고 있는 임금의 지팡이를 사방으로 마구 휘둘러 때리려 하면서 소리쳤다.

"임금의 행차시다. 돌멩이들은 길을 비켜라."

그러자, 부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으며, 길 위의 돌멩이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리하여, 왜국에서는 "길가의 돌멩이도 술취한 사람은 피한다"라는 말이 생겨나 퍼졌다고 한다. 또한 이후, 극우의 부인은 누가 술을 마시자고 하면, 왜국에 갔을 때 술을 마시고 크게 속병이 나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면서 술자리를 거절했다고 한다.

- 소재 출전 고사기(古事記)


*16. 수수허리(須須許理)
수수허리라는 사람이 술을 잘 빚었다는 이야기와 그가 빚은 술을 마시고 왜국의 임금이 취하여 돌을 때리려고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해서 "길가의 돌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한다"라는 속담이 생겼다는 내용까지가 고사기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나머지 사연들은 삼국시대의 여러 술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서 적절히 내용을 채워 꾸며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기이 외국편" http://gerecter.egloos.com/3660215 에 포함된 16회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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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4/18 01: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4/18 01: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참지네 2010/04/18 01:59 # 답글

    오! 대단한 여인이네요. 정말 참 멋진 이야기이었습니다.
  • 게렉터 2010/04/18 22:41 #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rumic71 2010/04/18 02:14 # 답글

    일본에서는 須須許理를 뭐라고 읽을 지 궁금해졌습니다.
  • 게렉터 2010/04/18 22:43 #

    일본에서는 "すすこり" 정도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발음, 이름을 이용한 전통주도 나와 있는 듯 합니다.
  • 2010/04/18 12: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CtheMad 2010/04/18 16:26 # 답글

    와아.. 재밌었습니다!
    그보다 수수허리씨 윗사람 비위 맞추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요!
  • 게렉터 2010/04/18 22:41 #

    워낙에 천재적인 인물인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꾸며 보았습니다.
  • 네비아찌 2010/04/29 13:35 # 답글

    서역의 곡식술이라 하심은 위스키를 말하시온지요^^
  • 게렉터 2010/05/23 11:15 #

    딱히 맞춰서 짜 놓은 것은 아닙니다. 적절히 상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blue303 2010/05/01 08:36 # 답글

    정말 재미있는 얘기네요. 그리고 시사하는 바도 꽤 보입니다. 예를 들어 극우의 부인은 마치 현대에서 음식에 대한 기본을 잊고 화려한 언변만으로 살아가는 음식평론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수수허리는 외길을 걷는 장인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나름 액자구성을 하고 있어서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아라비안 나이트하니 극우의 푸념, '다섯 항아리의 술을 마시는지, 고깃배에 술을 담아 고래를 안주로 씹으며 먹는지'도 의미심장하게 보이기도 하네요.

  • 검투사 2010/05/21 22:03 #

    극우 부인 얘기에 공감이요~ -ㅅ-/
  • 게렉터 2010/05/23 11:16 #

    액자 구성이 재밌어 보여서 이 시리즈들은 대부분 액자 구성으로 꾸며 보고 있습니다.
  • 8비트 소년 2010/05/20 17:38 # 삭제 답글

    신의 물방울 분위기가.... ㅋㅋㅋㅋ
  • 게렉터 2010/05/23 11:14 #

    "신의 물방울"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귀한 음식, 좋은 술을 지나치게 과하게 따지는 것을 조롱거리로 삼는 이야기는 고전 중에 종종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들러 주셔서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검투사 2010/05/23 18:00 #

    중국의 어느 학자 선생(이름 까먹음...) 관련 일화들 중에도 그런 게 있었지요.
    돼지고기가 맛있기로 유명한 지역에 선생이 하인을 보내 돼지를 사오라 했는데,
    하인이 돼지를 사오다가 집 근처 주막에서 한 잔 한 뒤 깜빡하고 그 돼지를 잃어버렸지요.
    급한 마음에 그 동네 시장에서 다른 돼지를 사서 선생에게 드렸더니, 선생이 그 돼지를 잡아 요리하여 지인들을 불러 함께 먹었더랬지요.
    지인들이 모두 함께 술을 마시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역시 그 지역 돼지가 최고입니다"라고 하던 판에
    마을의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왈 "이 특이한 돼지가 선생님 댁 돼지가 아닌가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했고,
    그 이웃 사람이 데리고 온 돼지가 바로 그 잃어버린 돼지더라는... -ㅅ-; 문제는 선생과 손님들 모두 그 돼지가 그 특수 돼지라는 것을 알아봤더라는... -ㅅ-;
  • 검투사 2010/05/21 22:03 # 답글

    요례가 막걸리, 지주가 "약주"인 거지요? ^^;
  • 게렉터 2010/05/23 11:15 #

    대충 이렇게 저렇게 대응시켜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딱 맞아 떨어지게 짜 놓은 것은 아닙니다.
  • 으홋으홋 2011/10/31 22:42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지금 술에 대한 발표 자료를 찾고 있는데 이 소재를 한번 정리해서 소개해 봐야겠네요 ^^
  • 게렉터 2011/11/08 15:08 #

    이 글은 지어낸 이야기이니, "지주", "대어주" 같은 각각의 소재에 대해서 별도로 자료 찾아 보시고 정리 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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