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의 함정 영화

1974년작 한국영화 "삼각의 함정"은 이야기가 시작되면 여자 주인공 배역을 맡은 문숙이 쓸쓸한 한 장례식에 참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왜 장례식인데 조문객은 한 명 밖에 없는 것입니까? 문숙의 정체는 무엇이고, 유산 상속 운운하면서 입회한 변호사는 왜이렇게 걱정스러운 분위기인 것입니까? 쓸쓸한 장례식이 끝나고 고요하게 안개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문숙의 과거 이야기가 하나 밝혀 집니다. 문숙은 대학시절, 오지명에게 몇 달 동안 지하실에 납치, 감금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흘러흘러, 문숙은 과거를 잊고 한 남자와 결혼을 하려 하는데, 이 앞에 과거의 납치감금변태악당 오지명이 감옥에서 출소 한 후에 나타나 협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조화를 강물에 뿌리는 주인공 문숙)

이 영화에서 무척 훌륭해 보이는 부분은 수수께끼의 여자 주인공의 과거를 소개하는 초장의 회상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을 좀 더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오지명에게 납치 당해서 7개월간 감금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사연인즉슨 원치 않는 오지명의 아이를 임신을 한 여자 주인공이 반드시 출산을 하기를 오지명이 바랬기 때문에, 붙잡아 놓았다는 과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지명이 여자 주인공에게 끝없이 집착하는 정신나간 미치광이 범죄자인 것입니다.

오지명이 젊은 시절에는 비열하고 더러운 악당 역할을 잘 해내는 솜씨가 좋기는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장면을 표현해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변태 범죄자의 이상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 놓인 피해자, 여자 주인공과 범죄자의 대사를 사실적으로 쓰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여자 주인공이 거기서 탈출 해 나가는지, 감금된 장소의 세부 묘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일상적으로 쉽게 궁리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할 지 잘 보여주기란 꼼꼼하게 궁리하지 않으면 그럴듯하게 해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의 회상 장면 속에서 짧고 간결한 한 부분의 대화, 한 자락의 기억만 짧게 잘라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는 해설과 영화의 장면이 어울려 들고, 인상적인 장면 위주로 짤막짤막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어색한 부분은 최대한 눈에 덜 뜨이고, 미술적으로 효과도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오지명의 변태스러운 눈빛이나, 불행한 일을 당한 여자 주인공의 악몽 같은 사연은, 빠르게 바뀌는 현재와 과거의 화면전환 사이에서 몽환과 같이 망망히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숙을 감금한 오지명)

이런 여자 주인공 앞에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는 사투리 쓰는 추잡한 잡범, 백일섭이 나타나 급습하는 일이 벌어지는 데, 우연히 길을 가다가 구해준 남자와 친해지는 일을 겪게 됩니다. 그 덕에 이 남자와 점점 친해져서 결국 이 여자 주인공은 이 남자와 결혼을 앞두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주인공 앞에 과거의 악몽이라 할 수 있는 오지명이 돌아옵니다. 오지명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과거의 엄청난 사연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합니다. 결혼 상대인 남자는 좋은 가문의 쾌활한 귀공자 - 라고 하지만 70년대 구식 느끼남 대사의 결정체로 뭉쳐 있는 굉장한 용사 - 이기에, 여자 주인공은 무시무시한 과거에 얽힌 것이 밝혀지기를 싫어 합니다. 하지만, 오지명은 우연을 가장해서 데이트 중인 두사람 앞에 자꾸 불쑥불쑥 나타나는 등 언제라도 폭로할 수 있다고, 협박의 강도를 계속 높여 갑니다. 여자 주인공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이런 상황이 어떻게 터져 나갈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호기심도 점점 더 커집니다.

결국 이 상황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살인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무엇인고 하니, 결국 협박을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여자 주인공이 오지명을 급습해서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죽이는 방식은 열차를 타고 가는 오지명이 객실과 객실 사이를 이동할 때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마법의 흡입식 마취제를 이용해서 기절시킨 후에, 달리는 열차에서 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온통 까만 가죽 코트로 차려 입고 있으며, 얼굴을 숨기기 위해 둥글둥글 커다랗고 빨간 테가 큼지막한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끼고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살인을 저지르리라 결심하고, 변태 악당과 대결하려 하는 무서운 순간인데,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이와 같이 기묘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괴상한 정신나간 분위기를 더 키워 주기도 합니다. 열차가 흔들리는 것을 과장하여, 화면은 비틀비틀 움직여서 더욱 왜곡된 각도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정적으로 화면에 함께 펼쳐지는 소리라고는 오직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재즈 풍의 빠른 블루스 음악 하나 뿐입니다. 꿈속의 장면처럼 말소리도 없고, 효과음도 없습니다.

열차 속에서 사실적으로 살인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어려우니까 쓴 편법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장면의 느낌은 확실히 남습니다. 어지럽게 흐르는 블루스 음악은 꿈 같은 장면의 느낌을 강조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며 괴롭게 흘러가는 이 처절한 사연을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여자 주인공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웃긴 선글라스만 보이는 얼굴이 화면에 차는 순간의 향취는, 비슷한 방식으로 인상적인 범죄 장면을 그려냈던 몇몇 60년대말 70년대초 걸작 일본 영화들의 화려한 심상을 연상케하는 면도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 살인 결행!)

여기까지 흘러간 영화는 범죄물, 추리물 답게 반전을 하나 터뜨리면서 전환점을 맞습니다. 반전을 이야기 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실, 주인공과 결혼하려는 남자와 오지명, 그리고 잠시 주인공을 급습하는 추잡한 잡범 백일섭은 모두 한 패거리 였던 것입니다. 주인공이 유산을 상속 받는 것을 알고 돈을 뜯어 내는 협박을 하기 위해, 남자는 여자 주인공에게 제비족 처럼 접근하고, 둘이 가까워 지기 좋도록 잠범 백일섭이 망가져 주고, 적당히 관계가 무르익은 시점에서 오지명이 나타나서 협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 주인공이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오지명을 잡아 죽이는 바람에 이야기가 확 꼬여 버린 것입니다.

사실 앞뒤 사연을 보면, 주인공이 그저 오지명을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남자에게 사실대로 고백하자, 남자가 사주해서 남자와 함께 짜고 오지명을 죽인 것인듯 보이는 정황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뜯어낸 유산을 독차지 하기 위해서 오지명을 배신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편집이 기술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부분이 많기에, 정말 사연이 이런 것인지 잘 알아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 혼자서 그냥 오지명을 죽였다고 해도 대강 그럭저럭 말은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자 주인공을 왜 굳이 남자가 따라 오면서 지켜 보았는지는 그냥 좀 우연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고. 하여간, 편집이 잘못되어 알아 보기 어렵게 된 까닭으로 이런 대목에 대해 짜놓은 것은 꽤 부실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반전"이 나타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부실해지기 시작합니다. 시도 자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일단 반전을 중간에 빨리 터뜨리고, 그 뒤부터는 반전이 품고 있는 극단적인 사연을 이용해서, 화끈하게 대립하는 인물들의 힘을 써먹는 영화로 되어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던 걸작 "현기증"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었던 그 구도 말입니다. 이 영화도 밑천은 괜찮았습니다. 얍삽하고 지적이고 사기 잘치는 악당인 남자, 정신나간 미치광이 변태인 오지명, 투박하고 추잡하며 서민적이고 끈질긴 백일섭. 세 명의 성격이 극히 대조적인 악당이 여자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구도가 이렇게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야기 거리를 꾸밀만은 하지 않겠습니까.


(여자 주인공에게 엉겨 붙는 추잡하고 끈질긴 서민적 악당 백일섭(오른쪽))

그렇습니다만, 이후로 영화는 실패합니다. 일단, 이 반전을 보여주는 수법 부터가,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갑자기 일장 연설로 자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주절주절 다 읊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하하하하" 하는 악당스러운 웃음을 웃어 보인 다음에, 친절하게 자신의 계획을 줄줄 다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제임스 본드 영화의 한심한 악당 두목이 영화 끝날 때 쯤 되어서, 제임스 본드에게 이제 그만 나를 없애 버리고 내 기지를 다 작살 낸 다음 여자 주인공과 명랑한 나날을 보내 보시게 하는 뜻으로 보내는 사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영화도 아니고, 아직 영화가 끝날 때도 아닌데, 어찌 영화가 쉽게 풀리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장면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을 장식하는 것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 없는 장면입니다. 이 악당의 악행과 헛짓을 보여 준 다음에 갑자기 왠 시골에서 상여가 가면서 사람들이 장송곡을 부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한참 보여줍니다. 왜 이런지 관객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기 마련인데,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1"이 문제의 악당 남자에게, 뜬금 없이 어딜 갔다 이제 오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네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자 악당 남자는 눈물을 쏟으면서 그 상여를 그대로 지고 갑니다. 그리고 나서, 이 악당 남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너무 슬퍼서, 갑자기 자신의 죄를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듯한 괴이한 표정을 짓습니다.

앞뒤 아무 연결고리도 없이 이게 무슷 짓인가 싶은데, 이제 이 영화 속의 이야기는 한술 더 뜹니다. 악당 남자는 여자 주인공에게 애틋함을 느껴서 다시 나타나자, 여자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며, 왜 또 나타났느냐, 또 돈 뜯으려고 나타났느냐라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그냥 한 번 와본거라고 비통한 눈물을 짓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가려고 하자, 여자 주인공은 갑자기 남자와 데이트 하던 장면을 떠올리더니 문득 또 가지 말라고 하면서 또 웁니다. 이야기가 마구 내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앞뒤가 없는 가망 없는 이야기는 아니기는 합니다. 악당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미련을 느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나왔던, "내기나 속임수로 여자를 한 번 꼬셔 보려고 했지만, 그러다가 진정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와 같은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꾸며 볼 수 있을만 합니다. 여자 주인공이 악당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좀 변태적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아주 단초가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은 아무리 속임수 였다고 해도, 팍팍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과의 아름다웠던 데이트 시절의 추억은 너무나 달콤한 환상처럼 매력적으로 남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것은 것이 있다는 식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개판 악당들이 주변에서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이 사기꾼 남자는 이 악마 같은 놈들 사이에서 그나마 여자 주인공이 믿을만한 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얼굴에 상처만 생기고 다리만 절게 되었을 뿐 살아 있는 오지명은 정신병자 변태이고, 백일섭은 양심 없고 추잡하기만한 쓰레기 악당입니다. 주인공과 결혼한 악당 남자라고 해서 뭐 쓰레기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남자는 돈 노리고 사기 친, 그나마 정상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대화가 통할만한 인간의 형상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쳐 돌아가는 사연 사이에서, 여자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괴상한 자폭적인 사랑에 빠져서 이 남자에게 다시 매달리는 장면을 극적으로 끌어낼 보는 것도 꽤 할만하기는 했을 거라는 것이 제 상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괴상한 심리와 이상한 사연을 잘 풀어내는 게 쉬울 리가 없는데, 이 영화는 고작 갑자기 난데 없이 "때마침 그 때 또 사기꾼 남자가 나타나서 구해주었다" 따위로 어찌저찌 때워 버리려고 하니, 영 어색하고 엉뚱하기만 합니다. 결국에, 이야기는 더욱더 무리수를 두어서 억지로 억지로 사연을 조립합니다. 멋있게 끝을 내려면, 세 명의 악당들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이전투구의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결투를 벌이다가 자멸하는 것이 어울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의 편이 된 사기꾼 남자와 백일섭은 더 이상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협상을 하고, 이 협상을 속임수로 응용해서 백일섭과 오지명이 짜고 사기꾼 남자를 죽여 버리려고 하는데, 사실은 오지명이 백일섭을 죽이고 뭐 그럽니다. 뭐 구구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서로 칼 들이내며 눈도 부라리고 하는데, 한참 이리저리 따져봐도 맞아 들어가는 내용은 아닙니다.


(과거의 즐거운 한 때)

결국 그렇게 해서, 세 명의 악당들이 모두 다 서로 싸우다가 죽고, 여자 주인공만 겨우 살아 남아서, 여자 주인공은 또 영화 시작 장면처럼 상복을 입고 쓸쓸하게 혼자 조화를 드리우는 것이 결말입니다. 여자 주인공과 개과천선한 남자 사기꾼의 애뜻한 사랑 같은 것이, 피를 흘리는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훗날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속에서 표현해보자 어쩌자, 하는 듯 해 보이기도 합니다. 뭐 순간적으로 오토바이가 멋있어 보일 때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악당이 무시무시하게 쫓아오게 하는 장면을 보여 주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은 차를 타고 가다말고 이유 없이 갑자기 차에서 내려서 발로 뛰어 가지를 않나, 누가 영화 찍는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경찰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결코 없는 등의 억지도 여전합니다.

흠결이야 군데군데 많은 영화입니다. 찍어 놓고 막판에 겨우 수습하듯이 해 놓은 편집 기술의 문제는 이 영화에서도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지명이 출소해서 처음 여자 주인공 앞에 나타나 따질 때, 오지명은 나는 이제 감옥 살이를 해서 죄값을 갚았지만 너는 임신한 내 아이를 없앤 죄를 어떻게 갚을 거냐는 따위의 정신나간 소리를 하면서 윽박지르고 난폭하게 굽니다. 그 모습은 아주 격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는 오지명이 주인공과 마주 앉아서 차근차근히 앞뒤 사연을 설명해 가면서 주인공에게 협박을 하면서 돈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 난리치면서 미친소리 하는 장면과 이 차분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어떻게 이어 붙일 것입니까? 모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냥 마구잡이로 확 이어 붙였습니다. 그리고 후시 녹음 더빙으로, 오지명이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윽박지르다 말고, 놀랍게도 "그 이야기는 잠깐 나중에 다시 하고" 라고 말하고 고요하게 마주 앉아서 조용히 대화하는 장면으로 팍 건너 뛰어 버리는 겁니다. 아주 우스꽝스럽습니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들을 덜어내 놓고 보면, 오지명의 인물이 좀 제대로 활용 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오지명은 모든 일의 단초가 되는 인물이며, 마지막 결전을 장식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자 주인공을 갑자기 납치 감금한 인간이니, 보통 미치광이가 아닌 인물인 것입니다. 이런 놈은 사악한 악마와 같이 그려내거나, 아니면 종잡을 수 없는 괴물과 같은 느낌으로 그 이상심리를 잘 뽑아내어 화면에 펼쳐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오지명은 그냥 잡스러운 돈 좋아하는 협박범 정도로만 계속 움직일 뿐입니다. 이 정도 대사, 이 정도 행동만 한다면, 그런 미치광이 범죄자의 과거로 만들어 놓을 필요도 없었고, 막판에 다 잡아 죽이는 악착 같은 싸움을 벌이게 연결해 놓기도 안좋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극장 간판 사진인것 처럼 보이는데 하여간 포스터라고 여러 DB에 올라와 있는 사진입니다. 여기에는 "정통무술영화의 총결산" 어쩌고 라고 적혀 있는데, 이 영화는 정통무술영화는 커녕 전혀 무술영화가 아닙니다.)

부족한 면면이 있는 가운데 범죄물의 흥미거리를 몇몇 드러내는 것이 이 영화라고 할만합니다. 다른 배우들이 별 재미가 없는 데에 비해서, 여자 주인공 문숙은 썩 잘 어울립니다. 마른 몸집과 작은 체구는 악당들 사이에서 유약하게 당하는 그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매우 잘 어울리며, 기술적으로 연기도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영화의 각본에서 몇몇 부분이 정교하지 못했던 까닭으로, 뜬금없이 소리지르고 울부짖거나 갑자기 이상한 대사를 되뇌이며 악쓰는 장면이 난데 없이 튀어 나와 버리는데, 이런 장면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싶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쓸쓸한 표정하며, 울적하면서도 몽환적인 감상은, 어처구니 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미로같은 범죄극을, 호숫가에 뜬 안개처럼 한 번 풀고 지나가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 아주 잘 맞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봄 꿈의 추억 같은 괴상한 이야기를 한 번 애잔하게 들려준다는 독특한 심상을 꽤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밖에...

이 영화 "삼각의 함정"은 이만희가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이만희는 스스로 이 영화 이전에 비슷한 줄거리로 이미 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이 영화는 이만희가 감독을 맡은 "다이얼 112를 돌려라"와 이것을 다시 만든 "여섯개의 그림자"에 이어서, 세 번째로 다시 만든 영화로 치기도 합니다. 김기영은 스스로 감독을 맡은 흥행작, "하녀"가 나온 뒤에, "화녀", "충녀" 등과 같이 끝없이 울궈먹으며 다시 만들어 왔으니, 김기영에게 "하녀" 시리즈가 있다면, 이만희에게는 "다이얼 112를 돌려라" 시리즈가 있다고 해도 얼추 들어 맞을 것입니다. 황당한 것은 비참하게도, 당시 나왔던 이 영화 "삼각의 함정" 포스터를 보면, 이 영화를 꼭 권격물, 격투 영화 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권격물이 아니라 한맺힌 사연의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한, 범죄물, 추리물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에 워낙에 이소룡 영화와 같은 부류의 홍콩 무술 영화들이 득세했으니, 얼토당토 않게 이 영화에 싸움 장면이 1, 2분 나온다는 빌미로, 이 영화 포스터를 꼭 권격물 처럼 꾸민 것입니다. 최근작으로 치면,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 포스터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이얼 112를 돌려라" 시리즈 두번째 영화인 "여섯개의 그림자"가 거의 제일 널리 이야기되는 편인 듯 합니다. "여섯개의 그림자"는 "삼각의 함정" 보다 5년 정도 먼저 나온 60년대말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여자 주인공 윤정희를 중심으로, 신성일, 남궁원, 허장강과 같은 한국 영화 황금기의 대배우들인데, 그래서, 그 연기와 모습은 이 영화 "삼각의 함정"보다 월등히 낫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윤정희의 모습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때를 비롯해서, "삼각의 함정"의 문숙 보다 더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다른 "삼각의 함정" 배우들이 "여섯개의 그림자" 배우들 보다 절대적으로 확 모자란 것에 비하면, 문숙의 모습과 연기는 윤정희에게 뒤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각의 함정"에 나온 문숙의 모습은 윤정희와는 또다른 힘이 분명이 있기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문숙은 이만희 감독에게 발탁 되어 70년대 전반에 활약한 배우입니다. 이만희 감독과 20여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연인 관계 였다고 하는데, 문숙이 이만희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이미 이만희 감독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이만희가 감독을 맡은 영화 중에 말기작에 속하는 영화 입니다. 이만희 감독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숙은 은퇴하여 미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지금은 요가, 명상 등에 대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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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5/25 10: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0/05/27 01:16 #

    윤정희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정말 개성도 충분히 있으면서 기본 바탕도 엄청 아름답습니다.
  • 2010/05/25 11: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0/05/27 01:16 #

    한국영상자료원에 많은 자료들이 있고, 세계에 내어 놓아도 자랑스러운 공공 서비스라 할 수 있는, 고전 영화 인터넷 VOD 서비스인 www.kmdb.or.kr 의 VOD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약 200편에 가까운 한국고전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합법적으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삼각의 함정은 이번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되었습니다.
  • oIHLo 2010/05/25 15:10 # 답글

    여배우 분 정말 예쁘시네요;;;
  • 게렉터 2010/05/27 01:16 #

    이만희 감독이 문숙의 자태와 연기를 그렇게 칭송했다는 말이 여기저기 잡지에 남아 돌고 있습니다.
  • 김삼서 2012/04/07 22:08 # 삭제 답글

    그저께 저는 이영화를 한국영장자료원에서 즐감했네요 저는 요즘 김기영. 배창호.이장호. 이만희 감독등의 영화를 계속해서 보고있는데요 이영화는 머 취약한 부분도 있지만 이만희 감독의 후기 작품을 볼수 있고 한마디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능력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2/04/09 22:28 #

    헐렁한 장면도 워낙 많은 영화인 것이 이 무렵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는 했습니다만, 저 역시 살해 장면의 과감한 연출이나, 마지막 장면의 쓸쓸한 분위기 연출은 시대를 뛰어 넘는 훌륭함이 번뜩이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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