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호접몽 (殺手蝴蝶夢, My Heart Is that Eternal Rose, 1989) 영화

1989년작 "살수호접몽"은 여자 주인공 왕조현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출연하고 있고, 왕조현이 총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 정형에서 어긋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에 푹 젖어 있는 영화 입니다. 그런즉 이 영화의 이야기는 왕조현이 나름대로 알콩달콩 살고 있는데, 부패경찰과 잘못 엮인 일종의 사고 덕분에 아버지가 조폭두목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놓인다는 것이 출발입니다. 왕조현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다른 조폭에게 도움을 구하고, 덕분에 "암흑가의 미녀"가 됩니다. 이 영화가 홍콩 느와르 영화인 까닭에, 왕조현은 영화 후반부에 여기서 손 털고 나오려고 하지만 쉽지 않고, 결국 막판에는 권총에서 쏟아지는 탄환이 영원히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대결전이 벌어집니다.


(쌍권총 난사: 이 바닥 영화들이 권총에서 총알 많이 나가는 것으로 악명 높다지만, 이 영화의 막판 결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도가 심한 축에 속합니다. 권총 두 자루가 마치 대공 벌컨포처럼 불을 영원히 뿜어 댑니다. 이 영화보다 더 한 경우 기억나시는 분, 덧글 부탁드립니다.)

"살수호접몽"는 대체로 꽤 흥미진진한 영화입니다만, 제대로 힘을 쓴다고하기에는 좀 가다가 꺾이는 구석이 있는 영화 입니다. 몇가지 이유를 꼽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모든 이유들의 핵심에는 원인이 되는 한 인물이 있다고 해야 될 겁니다.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왕조현 입니다.

이 영화는 왕조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나오는 분량도 가장 많고, 관객들이 그 마음속을 속속들이 따라가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절정으로 이끄는 전환점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제니퍼 코넬리 책받침을 왕조현 책받침으로 일제히 교체하고 있는 동아시아 어느 나라의 남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중간에는 심지어 왕조현이 클럽에서 노래부르는 장면을 장시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전문 가수들에 비해 노래 부르는 솜씨가 썩 좋지 않은 왕조현이 낸 앨범을 갖고 있는 그런 남학생이 한국에도 꽤 많았는데, 그 앨범에 나오는 목소리와 비교해 보면, 이 노래는 왕조현의 육성이 맞기도 합니다. 즉, 이 영화는 팬들의 마음을 부채질해서 표값을 울궈 보려는, 왕조현 쇼의 성격을 아주 보란 듯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왕조현 쇼라는 것은 별 큰 문제가 아닙니다. 80년대 후반에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서, 꼭 남자 주인공 둘이 범죄 세계에서 구질구질하게 헤메다가 막판에 총질하면서 끝나야만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전성기 왕조현에게는 하늘거리는 몸짓과 슬픈 표정이 잘 어울리는 얼굴로 위력을 발휘하면 무슨 영화건 세 배는 볼만해지는 묘미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인즉, 출연 비중으로만 따지면 "왕조현 쇼"로 짜놓고는 막상 내용은 남자 주인공 둘이 범죄 세계에서 구질구질하게 헤메다가 막판에 총질하면서 끝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왕조현은 이렇게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인 동작을 하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영화 내용이 범죄 세계에서 헤메다가 총질하면서 끝나는 것인데, 왕조현이 마약밀매나 사채업에 가담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고, 왕조현이 총질하면서 싸우는 부분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의 총질 장면은 최고 수준은 아닙니다만, 홍콩 느와르 영화의 총격장면의 장점을 잘 살리는 정도는 되어 있습니다. 과하게 많이 날아드는 총알은 타격감과 파괴감이 감정을 고조시키고, 적절한 장면에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들을 담아내서 처절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런 영화인데, 왕조현인 이런 내용들과 별 상관이 없다니, 일단 아귀가 안맞습니다.


(왕조현은 총을 안듭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의 앞부분 절반은 왕조현 아버지와 왕조현 애인이 모든 사건과 난리를 벌이고, 뒷부분 절반은 왕조현 경호원과 왕조현 애인이 모든 사건과 난리를 벌입니다. 왕조현은 영화 앞부분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채로 설거지나 하고 있고 - 정말로 컵을 닦고 맥주집 상치우는 일을 합니다 - 뒷부분에서는 "구경"을 하면서 두 인물이 다칠때 마다 비명을 한 번씩 지릅니다. 이게 뭡니까? 심지어 영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막판 대결전에서는 "우두커니 가만히 서 있기"라는 일을 합니다. 가장 긴 시건 얼굴을 들이미는 배우에게 이게 역할의 다라니, 왠만큼 제대로 꾸미지 않으면 영화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왕조현이 유일하게 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은 왕조현 아버지와 왕조현 애인 중심의 전반부와 왕조현 경호원과 왕조현 애인 중심의 후반부를 연결하는 중간 부분 십몇분 정도 입니다. 이 부분에서 왕조현은 클럽의 무대에서 끈적한 목소리로 모든 남자 관객들을 사로잡는 노래를 부르는 정통파 느와르 영화 여자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왕조현은 어느새 조직폭력배 두목의 여자가 되었고, 위험한 매력으로 자신의 경호원을 - 경호원이라고는 하지만 두목이 붙여준 순박하고 어린 날건달 입니다. - 소동에 휘말리게 하는 줄거리를 이끌어 갑니다. 이건 그나마 꽤 재미난 이야기 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대사와 연출이 무척 단조롭습니다. 왕조현에게 주어진 대사라는 것이, 술먹으며 신세한탄하는 듯 이상한 자세를 취하면서 - 실제로 술먹으며 신세한탄한다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 대사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 연속극 예고편에서 자막으로 나오는 줄거리 요약 문구 같은 것을 주절주절 읊조리는 것입니다. 헤어진 옛 애인과 감격의 재회를 하는 대목에서는 둘 다 쓸데 없이 대사의 전환점마다 우향좌 좌향좌 하면서 대사하기, 고개 돌려서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외면하며 고개를 "떨구기" 따위를 남발하면서, 닳고 닳은 정말 진정으로 가짜 같은 감정 표출 장면을 연기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영화가 아주 재미없고, 어색하기만한 영화냐 하면 그게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왕조현 비중 조절이 어긋난바람 때문인지, 어색한 장면을 많이 구경해야 하고, 억지로 구겨 넣은 이상한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 덜어 내 놓고 보면, 또 전체 줄거리하며, 인물들이 처한 정황 자체는 꽤나 그럴싸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영화에서 정말로 가장 대단한 배역은 조연으로 나오는 왕조현 경호원 입니다. 젊은 시절의 양조위가 맡아서 연기하고 있는데, 중심에 있는 왕조현이나 왕조현 애인을 연기한 종진도, 악역등에 비해서 월등이 주어진 상황과 대사가 흥미진진 합니다.


(왕조현의 경호원, 왕조현을 괴롭히는 잡악당, 두목의 뒷모습)

우선은 양조위가 연기 자체를 참 잘합니다. 초반부에서는 멋모르는 날건달 역할을 맡았는데, 그래서 좀 밝고 순박한 인물 입니다.

우울한 인간과 우중충한 인간만 가득한 영화에서 관심을 끌기도 하고, 기구한 운명 소용돌이에 휩싸인 비극적 주인공 같은 어마어마한 인물을 맡아서 헤멜 수 밖에 없는 왕조현에 비하면, "별생각 없이 살아온 멋모르는 날건달"이라는 훨씬 현실적인 인간을 맡아서 연기하기도 좋았기도 할 겁니다. 후반부로 흘러가면 양조위에게도 기구한 사연이 주어지는 데, 그 부드러운 연결 자체가 자연스러워서 인물 연기에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몇몇 감정 폭발 장면에서는 양조위 특유의 "매우 쓸쓸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그다지 비굴하고 구구해보이지는 않는" 절표하게 찡그린 슬픈 표정 연기가 괴력을 발휘 합니다. 이 아직 떼 덜묻은 청소년 범죄자 같은 역할을 하는 젊은 시절의 양조위의 연기 솜씨가 제대로 보인다는 겁니다.

양조위가 처한 상황 자체도 가장 극적인 갈등의 맛이 사는 상황 입니다. 양조위는 자기가 충심으로 모시는 두목의 여자인 왕조현을 항상 따라다니며 경호하고 잔일거리 돕는 매우 자리 낮은 똘마니 조직폭력배입니다. 그러다보니, 별처럼 높은 곳에 있다고 우러러보아야 하는 두목과 두목의 애인인 왕조현은 무슨 환영과도 같은 동경의 대상일겁니다. 구구하게 길게 이런 점은 묘사하지 않아도,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점 입니다. 양조위는 이 왕조현에게 짝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감히 왕조현은 범접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리감에, 두목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이건 무슨 사랑이라기보다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 비슷한 묘한 마음이 됩니다. 어찌보면 이런게 순수의 극을 치는 짝사랑이기도 할 겁니다.

이런 상황은 끝없이 쏟아진 중세 로망스에서 왕의 공주나, 공작 집안의 아씨(Lady)를 동경하는 기사의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했던 제대로 된 소재 입니다. 백조의 성 대신에 홍콩 느와르의 폭력배 세계로 위치를 옮겼고, 기사 대신에 사실적이고 소시민적인 "똘마니 날건달"이 나와서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감상과 사실감을 갖게 되었지만, 재미나 원초적인 흥미는 여전한 주제라는 겁니다.


(포스터 - 양조위가 삼각관계의 한 축인 제3주인공 처럼 나옵니다만 비중은 왕조현만 큰 둔각삼각형 입니다.)

게다가 양조위의 사연은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엮어질 수 있는 다른 소재로 한 번 더 휘몰아 칩니다. 왕조현은 오랫만에 옛날 애인을 만나서, 이제 두목을 떠나 야반도주 하려고 합니다. 왕조현은 양조위에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왕조현 부탁이니까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도와줘야 하는 일이라는게 그토록 짝사랑하던 왕조현을 다른 날건달과 맺어주는 일이라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 일은 두목을 배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무슨 갈등의 표본과도 같은 갈등상황이란 말입니까? 왕조현이 두목의 애인일 때는, 범접할 수 없는 "두목의 애인"이니까 감히 짝사랑을 하고 있어도 내가 짝사랑을 하고 있는건지 뭔지도 안따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목을 배반한다면, 나의 사랑은 어찌되는 겁니까?

더군다나, 양조위에게 이 위험한 부탁을 하는 왕조현은 클럽에서 붉은 옷을 입고 쓸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농염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느와르 영화의 여자 주인공입니다. 거절 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처한 양조위는 제대로 주인공 자리를 잡고 있는 겁니다. 이만큼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다운 상황이 또 있겠습니까? 영원한 명작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에 맞먹을 지경이지 않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에는 "카사블랑카"의 명장면인 "비행장 장면"과 같은 상황이 "부둣가 장면"으로 나옵니다. 이 대목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고, 양조위의 연기 개인기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장면입니다. 건들거리는 노련한 술집 주인인 험프리 보가트 대신에 철없고 어린 양조위가 대신 나와서 더 "보통 사람 같은"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멋진 목소리로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고 명대사를 읊는 대신에, 차마 떨려서 말은 잘 못하고 80년대 아시아 영화다운 낭만주의가 극에 달한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아, 이 애절함을 홍콩 느와르 영화가 아니고 또 어디서 찾아 보겠습니까?

그런즉, 이 영화 속에서 양조위의 배역은 정말 주인공 다운, 가장 비중이 커야 마땅할만큼 좋은 이야기 거리를 갖고 있는 자리 였습니다. 실제로 몇년 후에 나온 한국 연속국 "모레시계"에서 이정재가 맡은 인물은 거의 양조위와 비슷한 갈등을 겪는 인물로 적당히 비중을 갖고 나와서 제대로 멋을 부렸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양조위의 인물이 보다 사실적이고, "모레시계"에서 이정재의 모습도 좋은 모습이었기는 하지만, 양조위의 연기력이 그야말로 막강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양조위의 비중이 적다는 것은 뭔가 잘못 꼬인 패착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게 우리의 우정의 시작이 될...까?)

이 영화 속에서 양조위가 참여하고 있는 줄거리는,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 부드럽게 연결되었던 복선도 잘 활용되고 있고, 목숨을 건 싸움 직전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조마조마하면서도 실감나게 보여주는 등 구석구석 괜찮은 데가 많습니다. 그런데 비중을 꾹꾹 눌러담고 줄이고 줄여서 그 비중이 너무나 작습니다. 영화의 앞부분 절반이 지날 때까지는 아예 존재자체를 하지 않는 인물이고, 후반부의 중요한 싸움 장면 하나 동안에는 "총 가지러 갔다"라는 핑계로 끝트머리까지 등장을 하지 않고 빠져 버립니다.

물론, 영화의 중심 줄거리가 따로 있고, "왕조현 쇼"가 핵심이라면 조연에 머무르게 하는 편이 좋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웅본색" 같은 영화는 주윤발을 조연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충분히 비중을 크게하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요소요소에 잘 활용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이 영화도 그렇게 해야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결말에 가면 "역시 양조위 이야기가 건질만하네"라고 제작진이 자포자기를 해버린 건지 뭔지, 양조위가 주인공인 영화처럼 슬며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결말 장면도 다소간 어색합니다. 원래 그길로 가려고 했는데 왕조현 쇼를 만들라고 누가 압력을 넣어서 통째로 꼬이고 끝트머리만 남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난 부분이 충분한 영화입니다만, 모자란 부분도 그만큼 선명한 영화 입니다. 이 시절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이렇게 내용이 좀 잘 안풀린다 싶으면, 사실주의로 홍콩 정경을 담아내는 수법으로 연출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영화를 버텨내는 경우가 많았다 싶은데, 이 영화는 그런 대목도 없어서 단점들이 좀 더 드러나 보입니다.

연출이 단조로워서 어긋나는 부분도 눈에 잘 들어오고, 인물들이 이해할 수 없게 갑자기 성격 돌변하는 부분들도 독버섯처럼 퍼져 있습니다. 슬픈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지 좋은 대사도 없고, 좋은 행동을 묘사할 내용도 없으니까 그냥 면상만 단조롭게 보여주면서 배경음악 한참 깔아주는 걸로 때워버리는 연출 같은 것은 그 사례 입니다. 현대 TV극이나 영화에서 갑자기 난데 없이 인물이 죽었다고 할 때 아무렇게나 갖다쓰는 핑계의 단골메뉴로 자리잡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도 제대로 노골적으로 등장해 줍니다. 단골메뉴라지만 이건 짜장면도 아니고 짬뽕도 아니고.


(양조위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등장할지 말지 암시조차도 없는 전반부의 즐거운 연인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한 가지를 더 꼽아본다면, 이 모든 것이 뒤엉킨 이유가 "왕조현 쇼" 때문인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왕조현이 정말로 가장 아름답게 나오는 영화의 경지에 달하는 데에도 실패한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왕조현 영화의 영원한 주옥편으로 군림하고 있는 "천녀유혼"과 비교하면 말 할 수 없이 부족해 보이고, "느와르 영화 여자 주인공"이 되어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모습도 왕조현에게 잘 어울리는 치장으로 꾸며지지 못해서 조금씩 모자라 보였습니다.


그 밖에...

웃긴 연기로 유명한 오맹달이 진지하게 부패 형사 역할을 초반부에 잠깐 연기합니다. 멀쩡한 연기를 깨끗하게 잘 합니다.

오맹달이 나오는 장면은 멋모르고 깝죽거려서 사람 짜증나게 하는 어느 부잣집 아들을 자동차 뒷자리에 태우고 데리고 가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대사, 연기, 화면 구성은 두고두고 참고할만큼 기가 막힙니다. 이 멋모르는 부잣집 아들은 억지로 "짜증나게 하는 놈" 이라고 지어내서 꾸민 인물 같지가 않고, 정말 진짜처럼 짜증나는 인물을 잘도 묘사해 놓았습니다. 말하는 내용 자체는 그렇게 도가 지나치게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데, 오묘하게 목소리며 말투가 어울려서, 정말 확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짜증스러운 인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 놈의 자식 확 누가 패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기묘한 감상을 두근두근 키우게 하면서 뭔가 일이 터질것 같은 긴장감을 돋구는 연출은 기막힙니다.

이 영화에서 악당 똘마니들 중에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놈을 맡은 배우가 누구인지 알아 맞히는 것은 어려운 영화 퀴즈라 할 만 합니다. 보고 있어도 이 배우가 그 배우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평소 연기하던 인물과 전혀 다른 야비한 악당 연기를 무진장 실감나게 잘도 합니다. 누구인고 하니,

바로 유가휘 입니다. 소림사 영화들에 나와서 그토록 의롭고 용맹하게 싸웠던 용사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사한 놈 연기를 생생하게 잘 합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 자료 찾아볼 때까지 그 놈이 유가휘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연기 변신도 큰 이유이겠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무려 "가발"을 쓰고 나와서, 소림사 영화에서 항상 삭발하고 나오던 모습을 금방 떠올릴 수 없었던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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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1/01/24 22:00 # 답글

    유가휘가 똘마니로나 나오다니 세월이 야속하군요~
  • 게렉터 2011/01/25 21:42 #

    찾아보니 80년대에 유가휘가 가발쓰고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가 또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유가휘가 워낙 잘해서 이 분이 원래 악역체질 아니었나... 하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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