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Shanghai, 2011) 영화

2011년작 "상하이"는 1940, 50년대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에 나온 정통 느와르 영화를 다시 한 번 거의 그대로 재현하는 형태의 영화 입니다. 제목부터도 그렇습니다. 옛 느와르 영화 중에는 이렇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국적인 지명이 제목인 경우가 꽤 있었으니, 1947년작 "캘커타", 1952년작 "마카오", 1942년작 "카사블랑카" 같은 것들인데, 바로 이 영화 "상하이" 역시 이런 옛 영화들과 같이, 샹하이를 배경으로 1941년에 남자 주인공이 독백 나래이션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니, 우연히 만난 수수께끼의 위험한 여자와 사건과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드는 내용 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좀 아니고)


(딱 이런 분위기의 영화)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당연히 옛날 느와르 영화에 바로 밑천을 대어 주던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가 나오던 탐정 소설들이 떠오르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런 소설과 그런 영화들에 나오는 재미거리들을 차근차근 딛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굳이 복고풍으로 풍자하지도 않고, 패러디하거나 비꼬는 것 없이, 다시 한 번 옛 재미거리 그대로, 그 맛 그대로 그냥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어두운 밤거리의 전등 불빛, 끈적한 40년대 재즈 음악, 바람난 부자들, 경찰대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는 장면, 어두운 밤 얼굴에 그늘이 지는 화면,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석에 갱단 두목이 앉아 있는 클럽,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벌어지는 의문의 총격전, 스스로를 비아냥 거리는 냉소적인 주인공의 독백, 비뚤어진 농담을 주고 받는 사람들,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위험한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망할 것 같지만 그래도 휘말려 들게 되는 상황. 등등 모두 나와야할 순서대로 나와야하는 모양대로 그대로 착착 맞춰가며 나와 줍니다.

이렇게 옛날 유행했던 느와르 영화를 따라했는데, 그 질이 좋았느냐 어땠느냐를 생각해 본다면, 매끄러운 편에 속합니다. 줄거리 구성 면에서 이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꾸려 놓은 모양은, 필립 말로 소설 중에서 하나 뽑아 보자면, "안녕, 내 사랑아 (Farewell, My Lovely)"나 "기나긴 이별(Long Goodbye)"와 비슷한 형국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옛 친구 즈음에 해당하는 사람이 갑자기 의문의 살해를 당한 것을 보고, 왜 살해를 당했는지 낯선 세계에 뛰어 들어 조사를 합니다. "안녕, 내 사랑아"에서는 할리우드였고, 여기서는 샹하이 입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울적하지만 농담을 섞어 사회를 비웃는 대사를 나눕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 중에 수수께끼의 매력적인 여자를 알게 되고, 주인공은 이 위험한 여자의 매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누구 하나 죽어 나가면서 끝이 나는 법인데, 그러면서 비밀도 밝혀 진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이런 줄거리 진행의 박자를 또박또박 잘 따라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옛날 느와르 영화에서 다시 찾아 보고 싶은 재료들을 잘 썰어 놓은 이야기가, 고루고루 잘 익을 수 있도록 불판도 잘 달궈지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적어도 이런 흘러간 옛 느와르 영화를 다시 한 번 구경하는 맛을 되찾아 보기에는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더우기, 이 영화의 연출 방법이나 편집, 촬영은 21세기의 발달한 기본기가 충분히 적용되어 있는 것이라서, 어지간한 40년대 느와르 영화보다 더 날렵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면은 더 다채롭고, 상영속도는 지루함 없이 더 알차 보였습니다.


(하드보일드!)

문제는 거기까지가 이 영화가 끌고가는 전부라는 것입니다. 40년대 느와르 영화의 여러 분위기 좋은 그럴싸한 내용들이 이것저것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엉켜서 무슨 큰 놀라움이나, 묵직한 감흥을 가져올 결론으로 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이사이를 잇는 색다른 재미거리나 더 신나는 기발한 다른 시도가 보이는 부분도 별로 없습니다. 이런 점은 40년대 느와르 영화를 따라하면서도 더 선명하게 이야기를 꾸며 놓은 "블랙 달리아"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같은 특색이 강한 영화와 매우 다른 대목입니다.

제목이 "상하이"인데, 1930년대, 40년대 샹하이 특유의 왠갖 문화가 막 섞인 분위기도 충분히 살지도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안보이는 지경은 아닙니다. 적당히 분위기는 잡아 줍니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의 비중 자체가 적게 영화가 꾸며져 있는데다가, 아시아계가 아닌 외국인들은 영미인들 뿐이라서, 그다지 온갖 나라 사람들이 다 섞인 느낌은 안 납니다. 20세기 초인데도 세기말적인 당시 중국 최대 도시의 향취가 강하지 않았습니다. 샹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홍콩 같지도 않은 그냥 미국의 어느 차이나타운 같아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보이는 글자들만 해도 한자 보다는 영문자가 훨씬 더 많이 눈에 뜨입니다. 30, 40년대 샹하이의 색채를 무척이나 재미나게 담아낸 "인디아나 존스 2: 운명의 사원"이나, "태양의 제국"에 비하면, 이 영화의 배경은 샹하이라는 공간 배경 보다는, 어디가 되었건 그냥 1940년대 라는 시대 배경이 훨씬 더 잘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 영화는 이런 구식 느와르 영화의 폼잡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관객이 얼마나 애정을 재밌게 지켜보느냐에 영화보는 재미도 따라가는 영화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런 이야기, 그런 중절모 쓴 사나이와 권총 든 악당, 위험한 여인의 분위기를 좋아할 수록 한 껏 즐길 수 있는 내용이라고 느꼈습니다.


(위험한 여인)

특히나 이 영화는 꽤나 어지럽게 이야기 거리를 몰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연이 밝혀지는 수수께끼의 풀이에 거의 아무런 내용이 없는 희미한 모양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밀이 밝혀지는 연출이 그렇게 장렬하게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영화 전체에 진행된 수수께끼와 별상관 없이 벌어지는 그냥 대파국 장면을 하나 벌여 놓아서 겨우겨우 결말 장면스러운 다날려보내는 느낌만 어떻게든 넣어서 영화를 망치지 않도록 매무새만 잡아 놓은 정도 입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나온 옛날 느와르 영화 명작 "빅 슬립"도 이야기가 어지럽고 수수께끼 풀이가 대충 때워지는 것으로 악명이 높긴 합니다만, 이 영화 "상하이"는 그런면에서도 정말 그냥 "옛날 식 느와르 영화 재현"에 그쳤다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 줄거리를 따로 놓고 보면 나름대로 "안녕, 내 사랑아"스러운 반전이라면 반전스러운 맛도 있는 내용인데, 영화 안에서는 그다지 부각하지 않고 적적하게 따라가고 그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옛 느와르 영화를 1940년대 배경에서 1940년대식으로 다시 한 번 더 돌리는 내용이라는 정도로 짧게 말할 만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 옛날 느와르 영화 재연하는 것만은 어찌되었건 잘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식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앞에서)

그 재연이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이유 중에는 배우들이 잘 연기한 공로도 짚어 줘야 할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인 공리는 할리우드 영화 속에 이국적인 여인으로 등장할만한 모습 그대로의 모양으로 나옵니다. 첫 등장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속 위험한 여인의 모습 교본이 되어야할만한 모습입니다. 중국계 도박장에서 어지럽게 위에서 내려오는 바구니에 물건을 올려다 놓는 모습은 옛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처음 공리가 등장하는 장면과 도박장에서 여유롭게 도박을 하는 장면은 여느 제임스 본드 영화의 비슷한 도박 장면들을 모두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몸매를 잘 드러내 주는 여러 옷차림을 공리는 느와르 영화 여자 주인공 답게 제대로 살리는 데다가, 가끔 미소를 지을 때에는 성숙한 얼굴 속에서도 동양 여자 특유의 묘하게 어려 보이는 밝은 표정이 떠올라서, 과연 확 사람을 끌어들일만 했다고 느꼈습니다. "마카오"의 제인 러셀과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리)

존 쿠삭 역시 이 정도면 개성도 잘 살아 있고 역할도 충실히 잘 해낸 호연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존 쿠삭이야, 나래이션의 연기로 모두에게 "제4의 벽(the forth wall)을 초월하기"가 무엇인지 좋은 예를 보여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로 든든한 배경이 있어 보이는 배우이기도 하고, "아이덴티티" 같은 여러 영화에서는 느와르물 스러운 연기도 경험을 잘 쌓아 보인 만큼, 자기만의 안정된 호흡으로 실감나면서도 단정하게 연기해 냈습니다. 이 영화의 이 꾸며낸 듯한 옛 영화의 형식미를 좇아가는 묘미를 잘 알고 살려 준 공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두 배우에 비하면 와타나베 켄이나 주윤발은 갈등의 다른 축들을 차지하고 있는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분량이 좀 작아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켄의 배역은 아무 특성이 없는 다소간 싱거운 인물로 그냥 "총든 센 적" 역할이 많은 편입니다. 이에 비하면, 주윤발은 명망 높은 거물 폭력배 두목이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끔찍한 인물이라는 무시무시하면서도 묘한 멋이 있을 수 있는 역을 맡았습니다.


(존 쿠삭)

주윤발이야 폼잡는 범죄자 역할 하나로 노후준비할 연금까지 꽉꽉 채워 놓은 사람이니, 그럴싸하게 배역이 어울리는 데야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양이 어울리는데도 불구하고, 독특한 개성, 치밀한 갈등을 보여줄 시간은 아주 조금밖에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주윤발에게는 심지어 막판 절정장면에서 옛날 주윤발 특기대로 결정적인 활극을 벌이는 대목마저 있는데, 중간이 이렇게 텅비어버리니 난데 없이 별 역할도 없었던 인물에게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인물 비중 조정에 아쉬움이 보였습니다.



그 밖에...

음악이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녹음은 나쁜 편은 아니고 곡들도 거북한 곡은 없는데, 최근 각종 활극형 범죄물에 너무나 많이 남용된 그냥 유행 그대로의 뻔하디 뻔한 곡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말을 들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이나 강점을 생각한다면 좀 더 1940년대풍을 살릴 수 있는 곡들이 마땅히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70년대 TV극 주제곡풍으로 꾸며서 복고풍을 살렸던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보다도 음악이 훨씬 나쁩니다.

얼마전 잠깐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경성"물 영화들이 노렸던 진짜 목표도 이 영화와 비슷하게 40년대 할리우드 고전 영화 전성기 분위기를 내 보는 것이었을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 경성물 영화들 중 상당수가 선전적인 주제의식 때문에 주저 앉았던 한계를 어느 정도 돌파해 나가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일전쟁 시기의 무정부주의적으로 왠갖 나라 사람들이 엉켜사는 중국을 첩보물 무대로 다루고 있는 영화는 한국영화 중에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60, 70년대에 유행한 "만주물"중에 많은 편인데, 옛날 영화로는 "상하이"의 공리 같은 역할을 김혜정이 맡은 1964년작 "쏘만국경"이 있고, 근작으로는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도 있습니다.

60, 70년대에는 "007 두 번 산다"처럼 일본이 그냥 이상한 신비의 동양 나라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았는데, 80년대로 넘어 오면서, "일본의 독특한 문화의 저력이 무섭다", "일본의 위력에 대비하라" 부류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중국이 청나라 중엽 이후로 간만에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보면, 지금 이 영화 "상하이"처럼 그저 중국이 미국, 영국등의 나라보다는 한 급 아래로 멀리 쳐진 다른 세계로 나와서는, 중국을 앞에서 선생님처럼 이끌어 주는 미국과 친구가 되어, 일본, 독일과 같은 공공의 적과 맞서 싸운다는 줄거리의 영화가 또 어떻게 점차 모습을 달리해 갈 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덧글

  • 진성당거사 2011/01/31 11:59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전혀 쓸모 없는 사소한 거긴 하지만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올리신 스틸 사진 중에 '40년대식 유성기'라고 하신 건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나팔형 축음기는 대개 1910년대까지나 생산되던 물건이니까요. (최후의 나팔형 축음기는 1931년에 영국 HMV사의 인도 공장에서 제작되었습니다만, 그마저도 '복고풍 취향'을 위한 거였습니다.) 축음기-레코드에 원체 미쳐 살다보니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것들이 나오는 영화가 나올때마다 항상 지적을 하게 됩니다.
  • 게렉터 2011/01/31 12:01 #

    바로 고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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