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전사 (義膽群英, 의담군영, Just Heroes, 1987) 영화

1987년작 홍콩 느와르 영화, "흑전사"는 홍콩 느와르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고 작정을 하고 만든 홍콩 느와르 영화 입니다. 영화 내용을 보다보면, 조직폭력배가 되고 싶어하는 똘마니 중에 "영웅본색"에 나온 장면이 멋지다고 그 대사를 따라하면서 깝죽거리는 녀석까지 나옵니다. 이 영화는 한 조직이 꽤 커다란 세를 거느리고 있어서 대단한 규모의 총격전을 벌이는 것이 영화 시작이고, 이 조직의 두목이 의문의 암살 사건으로 죽으면서, 도대체 누가 두목을 죽였는지, 누가 두목자리를 물려 받을 것인지, 두목자리를 물려 받을만한 부두목들은 과거에 어떻게 살아온 자들인지 보여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벌집처럼 죽더라도 너와 함께 가리라!)

이 영화를 처음 보면 좀 이상한 점은 영화가 다소 난잡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반은 1/3 정도는 영화가 좀 오락가락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정도 입니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것처럼 영화가 흘러가다가 바로 꼭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것처럼 영화가 슬쩍 변해 버리고, 또 조금 보다보면 또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것처럼 영화가 바뀌어 버립니다. 중반을 넘어서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굳어지고 영화 내용도 자리를 잡으면서, 이 영화는 주인공이 따로 한 명이 있는 것이 아니고, 부두목급인 세 명이 모두 주인공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반에는 본 이야기 진행과 회상장면이 오락가락하는 데다가, 꼭 진짜주인공과 조연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문득문득 바뀌는 등, 편집 해 놓은 모양도 이런 이야기의 골격에 맞아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엉성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옛날 트래쉬 무비들 중에는 여러 영화들의 장면들을 조금씩 잘라 붙여 조합해서 다른 제3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뭐 그런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영화가 불안해 보이는 순간이 잠깐씩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모인 조직의 두목, 부두목들 - 적룡의 모습도 보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모양을 보면서 짚어 볼 것은 바로,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 입니다. 이 영화도 바로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제작진의 이야기로 얽혀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 관한 소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무술 영화 중에 걸출한 명작들을 감독했던 장철이 전성기가 지난 80년대가 되자, "복수", "쌍협", "금비동", "오독", "오둔인술" 같은 영화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장철은 말년에 파산을 해서 먹고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장철과 친한 홍콩의 영화인들이 모여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그 영화를 만들어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 장철에게 줘서 장철의 살림살이에 보태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영화의 세 주인공 중에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진짜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하고 많은 장철 감독작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강대위이고, 중간중간에 잠깐씩 적룡 같은 배우들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는 후다닥 빠르게 찍을 수 밖에 없었고, 잘 다듬거나 세밀하게 준비하거나 하는 것보다도 일단 모양을 갖추게 끝내고 일단 개봉해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되었던 듯 보입니다. 이 영화는 개봉후에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익이 나왔고, 이걸 약속대로 장철에게 줬는데, 장철이 거절해서 다른 목적으로 기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소문으로는 장철이 돈을 받고 그 돈으로 곱게 은퇴해서 살림살이 산 것이 아니라, 말년에 제 버릇 개못준다고 또 영화를 찍는다고 돈을 퍼부었다나 뭐라나.


(강대위)

그리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새는 구멍은 좀 보이는 영화 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내용 면면을 본다면 상당히 볼만한 재미가 있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나 인물 묘사를 살펴 보기 위해 이 영화가 잡고 있는 방향을 보자면, 이 영화는 "강호" 대신에 뒷골목을 택한 영화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 무협 영화처럼 문파들끼리 막 싸우고 죽이고 하는 내용을 만들고 싶습니다. 혹은 옛날 사무라이 영화처럼 사무라이들끼리 칼싸움 하는 영화나, 서부 영화처럼 총잡이들기리 총싸움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배경은 현대로 해 보고 싶습니다. 멀쩡하게 경찰이 치안을 맡고 있는 현대를 배경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기란 마땅치 않으니, 일반적인 현대가 아니라, 현대의 범죄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겁니다. 현대의 앞골목이 아니라, 현대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해서, 조직폭력배들이 꼭 사무라이 처럼 행동하고, 조직이 무협물의 문파처럼 행동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옛날 고전적인 이야기 속의 배신, 복수, 의리, 보답, 결투 같은 내용을 그대로 담아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는 80년대에 그토록 유행했던 "폭력을 부추기는 홍콩 영화"라는 이야기에 과연 걸맞을 정도로 조직폭력배가 의리를 아는 멋쟁이들로 나오고, 조직폭력배들간에 알력다툼 때문에 사람 죽이고 총질 칼질 하는 것이 뭐 대단한 영웅적인 행동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옛날 무술 영화 속 협객들의 낭만적인 대결을 조직폭력배들에게 옮겨오다보니까 생긴 일인데, 이 영화에서는 마약밀매범 조직폭력배 두목이 모두가 존경할만한 소림사 주지스님과 비슷한 형식으로 나오는 지경 입니다.

한 가지 짚어볼만한 점은, 이 영화는 세 사람의 주인공을 내세워서 여러 측면, 여러 다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범죄계의 비정한 상황이나 범죄계에서 손을 씻고 조용히 살려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다양하게 다루는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의미가 있을만큼 갈등 속에 잘 자리잡지는 않았습니다. 또, 진지하지도 않고 사실적으로 홍콩 사회의 문제나 범죄계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도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입체적인 방향의 내용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보다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긴 합니다.

흔히, 무술 영화나 무협물을 보다보면 굉장한 고수인데 어떤 이유로 자기 실력을 숨기고 살고 있어서 동네 한량에게도 구박 받고 사는 모양이 나오는데, 그런 장면이 나오면 관객은 안타까운 마음에 주인공이 확 정체를 밝히고 다 엎어버리기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기 마련 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무협물의 내용을 이용해서, 범죄계의 거물이었는데 과거를 숨기고 손씻고 사는 이야기를 표현해 내고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진관태, 이수현)

화려하게 탄환이 빗발치고 핏방울이 튀기는 홍콩 느와르 영화 특유의 연출은 넉넉하니 들어가 있고, 처음 두목의 암살 장면을 비롯해서 어두운 밤거리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가운데 검은 그림자의 사나이들이 나타나 기관총을 갈겨댄다는, 고전 느와르 영화의 심상이 살아나는 밤풍경의 신비로운 운치가 낭만적으로 싸움 장면의 힘을 더하는 대목도 잘 자리잡고 있습니다. 두목을 누가 죽였는지 밝혀진 뒤에 벌어지는, 마지막 대결전의 경우에는 2층으로 되어 있는 집을 온통 박살 내면서 정말 끝도 없이 총을 쏘아대고 온갖 기물을 다 부수면서 싸우는데, 이렇게 많은 총을 쏘면서 싸우는 영화 연출 중에서도 썩 잘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탄환의 파괴력과 집안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조준하며 싸우는 긴장감도 표현되어 있고, 주인공이 밀어 붙일 때와 밀릴 때라는 세력도 인물들의 표정과 부상 표현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을 빼면, 초반에 이야기가 좀 흩어졌던 것은 중반 이후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흘러가고 이야기 내용에 빨려들어가게 되면서 꽤 잘 잡혀 있습니다. 범인이 누굴까 하는 점이 꽤 궁금했던 이야기치고, 범인의 정체가 딱히 이야기에 좋은 위치는 아닌 사람인 듯 보입니다만, 그래도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에 섞여 있는 또하나의 반전과 범인의 정체를 깨닫는 부분의 연결된 복선 같은 것이 재밌어서 결말까지도 꽤 부드러웠습니다. 다만, 그러고 나서, 악당이 나쁜 놈 티를 내면서 빨리 서로 죽여보자고 설치는 대목은 급격히 대사도 가짜 같이 보이고, 영화를 위해 꾸민 것이 너무 드러 났습니다. 심지어, 전세계 영화 속 악당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악당들 특유의 "우하하하"하는 웃음도 한 번 웃어줄 지경이니 말입니다.


(마지막 결전)

그래도 이야기의 끝트머리 맺음이 모자랐던 정도 입니다. 줄거리 자체는 풀어 놓고 보면 그럭저럭 재미 납니다. 누가 과연 두목을 죽였을까 하는 궁금증은 끝까지 따라가고, 예전에는 둘도 없는 동료 였던 세 명의 부두목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하며, 이런 것들을 과거 회상을 섞어서 보여주는 모양도 재미났습니다. 이수현이 범인으로 의심 받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이수현이 범인임을 입증하는 듯한 증거가 나옵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보기에는 이건 가짜 증거 같습니다. 우리의 이수현은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것입니까? 긴장이 팽팽한 순간에 한번 더 당겨주는 수법은 잘 먹혔다고 생각합니다. 부두목들간에 유쾌하고 여유로운 성격, 의롭고 성실한 성격, 꼼꼼하고 우직하고 이지적인 성격으로 나뉘어진 성격 배분도 적절하고, 이런 성격의 남자들이 여자를 두고 질투를 하게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엮여 있는 부분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에게 애인이 떠나간 것을 보지만, 자신은 폭력배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 행복을 빌어주면서 떠나가는 그 쓸쓸한 표정도 강대위의 연기와 어울리면 꽤 볼만합니다. 이런 이야기 사이에 총소리가 빠른 기타 아르페지오처럼 울리는 싸움장면이 틈틈히 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 영화에서 이것만은 좀 큰 문제다 싶게 아까웠던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급히 만들다보니 그랬겠습니다만, 음악은 좋은 음악을 잘 짜넣지 못하고, 그냥 흔히 쓰는 영화사 음악 창고에 쌓여 있는 잡전자음악 아무거나 툭툭 끼워 넣은 형식으로 영화 내내 울려퍼지고 있어서 감흥을 돋구는 대목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밖에...

주성치가 진지한 조직폭력배 하부 조직원으로 나옵니다. 초반에는 거의 주인공급으로 나오고 끝까지 봐도 출연량으로 따지면 거의 주인공만합니다. 하지만 역할로 보면 조연 이라고 봐야 합니다. 거의 가장 중요한 조연으로,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지만, 혈기가 넘쳐서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앞서는 젊은 조직폭력배로 나옵니다.


(주성치)

여러 사람이 감독을 맡은 영화 입니다만, 오우삼이 가장 많은 부분을 감독을 맡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80년대에 유행했던 은하 저편까지 보골보골거리는 파마 머리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1980년대 후반 홍콩 느와르 영화 11편 2011-02-11 20:13:21 #

    ... 웅호한 (英雄好漢, Tragic Hero, 1987) http://gerecter.egloos.com/4913507 6. 흑전사 (義膽群英, 의담군영, Just Heroes, 1987) http://gerecter.egloos.com/4921624 7. 대행동 (城市特警, 성시특경, The Big Heat, 1988) http://gerecter.egloos. ... more

  • 게렉터블로그 : 홍콩 느와르 영화 목록 2014-10-05 00:21:02 #

    ... 호풍운 (龍虎風雲, City on Fire, 1987, 미스터 갱) 첩혈쌍웅 (牒血雙雄) 타이거 맨 (伴我闖天涯, Wild Search, 반아틈천애) 흑전사 (義膽群英, 의담군영, Just Heroes, 1987)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