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청부업 Murder by Contract 영화

1958년작 "살인청부업" (Murder by Contract)은 자극적이고 호기심 생기는 제목과 함께, 정체 불명의 주인공이 정체 불명의 사나이를 찾아가서, 대뜸 "돈 벌고 싶은 데 일거리 없습니까?"라고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러는 겁니까? 음악은 놀리는 듯이 풍자적이고 냉소를 자아내는 장면에 어울릴 법한 발빠른 음악이 흐릅니다. 제목을 보아하니, 살인청부업을 하려고 저러는 겁니까? 이렇게 시작해서 도대체 누가 뭘 어떻게 저지르는 것으로 영화가 결론이 나겠습니까? 이 영화는 이 모든 호기심을 살살 돋구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서, 한 살인청부업자의 한 사건을 보여주는 짤막한 느와르 영화입니다. 코미디 요소가 넉넉한 영화인데, 그러고보면 느와르 영화에 대한 패러디 성격도 살짝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포스터)

이야기를 좀 더 밝혀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대목은 시대를 확 앞서가는 단촐하고 경제적이며, 앤 드멀미스터의 모델과 같은 식으로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의 터치"가 재기발랄한 구성 입니다. 운율과 리듬감 풍부하게 짜놓은 내용과, 짤막한 줄거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도 마찬가지여서, 전체적으로 무척 도전적이고 90년대, 21세기에 유행할 법한 꾸밈새가 듬뿍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단연 독특한 장면은 영화 도입부 입니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어느 날 갑자기 회사 때려치운 청년1이었던 주인공이 어떻게해서 살인청부업계의 거목이 되었는 지 소개 합니다. 짧게 요약해서 핵심 장면만 겅중겅중 자른 뒤에 느긋한 음악과 함께 경쾌하게 보여 줍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잘 쓰는 수법인 장면의 반복, 구도의 반복이 있는데다가, - 복수1: 아버지의 원수, 10년을 기다렸다 칼을 받아라! 사실은 내가 니 애비 다스베이더다., 복수2: 아버지의 원수, 10년을 기다렸다 칼을 받아라! 나는 KAL대신 아시아나를 받겠네, 복수3: 아버지의 원수, 10년을 기다렸다 내칼을 받아라... - 적당한 생략, 암시가 잘 어울려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치 행과 연을 구분해서 잘 짜 놓은 시를 읽는 듯한 운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도입부 장면에서 주인공이 살인청부업계의 거목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 영화의 본론은 주인공이 중요한 증인 살해를 청부 받아, 증인을 암살하려고 노력한다는 한 사건을 다룹니다. 증인보호프로그램 때문에 경찰과 당국으로부터 철저히 보호 받고 있는 증인을 주인공은 어떻게 암살하려 할 것인가.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목표물에 근접중)

본론이 되면, 주인공은 정상인과는 다른 경지에 오른 기이한 인물로 묘사 됩니다. 주인공은 과묵하며, 도무지 생각을 알 수 없고, 항상 과하게 침착하고 냉정하며, 언제나 여유를 부립니다. 이런 감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명의 관찰자 역할을 집어 넣었습니다. 관객의 시선이 되어주는 비교적 평범한 잡 범죄자 두 명이 주인공의 동료 내지는 보조로 등장하게 됩니다. 수다스럽고 좀 경박스러운 이 두 사람이,

"뭐 저 인간은 이런가?"
"이 인간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는 태도로 주인공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고 놀라게 여기는 장면이 영화 속에 들어차게 됩니다. 자연히, 관객들은 이 두 사람의 심정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을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고, 이 특이한 사람이 과연 어떻게 암살을 성공시킬 지, 관심을 갖고 구경하게 되도록 꾸며 놓은 것입니다.

즉 압축되어 있는 시적인 도입부에서는 주인공을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주인공이 생경한 살인청부업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을 간결하게 보여 주고, 본론부터는 관찰자들로 하여금 이미 살인청부업의 이상한 세계에 푹 쩔어 있는 주인공을 감탄하며 구경하는 시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별 커다란 내용이 없이 조그마한 이야기를 꽤나 즐길만하게 꾸려나가고 있고, 살인청부업을 "살인"이라는 대죄가 아니라,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고, 어떠한 심리적인 긴장도 없이, 그저 사업으로서, 아무 감정 없는 작업으로서 수행하는 모양을 주제로 삼습니다. 그래서 그 냉랭한 태도를 기이한 볼거리로, 또 어긋난 웃음으로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인 것입니다.


(주인공과 웃기는 동료 조연들)

흥미진진하고 우습고 재미난 이야기 구성이 볼만한데 비해서, 워낙에 작고 가벼운 짧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영화가 전체적으로 너무 짧고 내용이 적다 싶은 맛이 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제약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주인공의 특이한 개성을 영화 전체의 이야기 거리로 이렇게 풍부하게 써먹어 놓고는, 정작 대미, 대단원에서 주인공이 겪는 사건은 그다지 충격적일 것도 없고, 강렬할 것도 없이 만들어 놓은 것도 좀 심심하기는 합니다.


(필름 느와르 분위기)

하지만 그 일견 심심한 결말 덕분에, 살인을 소재로 어두컴컴한 농담을 주워 섬겼던, 영화 전체의 냉소적인 분위기와 허무적인 감상이 더 살아나는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극히 어두운 사건과 냉정한 인물을 주제로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비웃듯이 영화를 짜놓아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역시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 격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냉랭한 감정에 어울려서 풍자적인 느낌을 돋구는 현대적인 재즈 음악 등등, 정말로 최근의 소위 "블랙 코미디"에서 무척 많이 쓰는 방식을 월등히 앞서서 보여주었다 싶었습니다.


그 밖에...

IMDB Trivia를 보면, 단 7일만에 촬영된 영화라고 합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고전 흑백 느와르 영화 목록 2014-10-05 00:18:15 #

    ... 로라 Laura 백주의 탈출 This Gun For Hire 빅 스틸 (The Big Steal, 1949) 살인자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살인청부업 Murder by Contract 선셋 대로 Sunset Blvd.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 앤젤 페이스 Angel Face 이중배상 Double Indemnit ... more

덧글

  • 뚱띠이 2011/03/23 15:36 # 답글

    7일....남기남 감독인가요..............
  • 게렉터 2011/03/29 21:56 # 답글

    그런 분위기라기 보다는, 정말 7일 정도만에 간촐하게 찍으면 될 정도로 영화가 간결하고 단편 영화 분위기로 큰 꾸밈 없이 핵심만 뭉쳐서 되어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