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크레이지 Gun Crazy 영화

1950년작, "건 크레이지"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제작된 영화이고, 주로 중저예산 영화를 많이 찍었던 제작진들이 참여한 영화 입니다만, 느와르 영화의 뚜렷한 고전으로 잘 남아 있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총"을 왜인지 아주 좋아하는 어린이를 보여주면서 출발합니다. 착하고, 성실한 멀쩡한 보통 아이 입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으니 왜인지 권총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이 어린이가 최고의 사격솜씨를 가진 남자가 되고, 서커스에서 사격 묘기를 펼치는 한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영화가 느와르 영화인고로, 이 남자는 범죄의 나락으로 서서히 빨려드는 것입니다.


(유명한 포스터)

우선 이 영화는 개성적인 주인공을 튼튼하게 잡아 놓고, "도대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흥미진진함을 끝없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 솜씨가 아주 훌륭합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바로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가장 궁금해할만한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살짝살짝 보여 주면서 다른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시 또 자연스럽게 궁금해할만한 일을 떠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총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총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궁금합니다. 결국 훔칩니다. 잡히겠습니까 말겠습니까? 잡혀서 교정 목적의 군사학교로 가게 됩니다. 바로 다음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러면 커서 뭐가 되겠습니까? 군사학교에서 자라나 사격 교관이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궁금증이 생깁니다. 군대에 말뚝 박겠습니까? 아닙니다. 제대하고 나왔습니다. 바로 다음 궁금증이 생깁니다. 군대에서 나와서 뭐해먹고 살겠습니까? 일단 친구들과 놀러가서 서커스를 구경하는데, 그러다가 서커스의 사격 묘기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주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 그 다음 사연, 다음 운명, 다음 인생 역정이 궁금해 지도록 계속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솜씨가 선명하게 잘 잡혀 있는 영화 입니다. 그리고 이런 계속해서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을 배우들이 잘 보여 줄 수 있도록 연출도 또렷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동작을 보여주는 화면과 표정을 보여주는 화면을 자연스럽게 잘 배치해 놓은 구성은 튼튼하며, 자연스러운 대사 속에서 사건에 필요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짚어서 던져주는 각본도 튼실합니다.


(서커스 묘기 중인 여자주인공)

중반부 이후로 영화는 정통파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가 됩니다. 남녀 쌍 강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구도도 비슷합니다. 매력적이고 자유분방하면서 살짝 퇴폐적인 여자 주인공이 있고, 남자 주인공은 거기에 반해서 여자 주인공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의 일탈적이고 자유 분방한 흐름에 같이 어울리기 위해서, 악의 세계로 뛰어 듭니다. 그리고 "남자 답게" 더 나서고, 더 설치고, 더 악행을 벌이며 날뛰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때 멀쩡했던 이 사람들은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막나가는 인생이 되고, 자신감과 과격한 만용에 가득찹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점점 사회에서 갈 곳 없는 도망자가 되고, 점차 비참하고 초라한 신세 속에서 "마지막 한 탕"을 하려는 부질 없는 꿈에 집착합니다.

영화의 충직한 흐름대로, 이렇게 서서히 망해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참 흥미진진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악행에 안타까워 하게 하기도 하고,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 탕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관객들이 악행을 응원하게 만드는 그 역설적인 극적인 재주도 제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할 때마다 관객들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고, 그런 파멸의 순간으로 치달아갈 때, 주인공들이 잠시 천국처럼 즐기는 멕시코 휴양촌의 풍경은 대조적으로 더욱더 아름답고 황홀하게 잘 잡혀 있습니다.


(도망자가된 연인)

과연 느와르 영화 고전의 반열에 들만한 훌륭한 영화 입니다만, 아쉬운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우선은 "총에 미친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치고, 총솜씨를 강조하는 소재나, 멋진 총격전 장면은 적다는 것입니다. 남녀주인공이 만나는 첫장면 정도와 마지막 결말 장면 정도만, "총"과 관계 있을 뿐, 영화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남녀 쌍 강도의 행각은 별로 총과 관계도 없고, 총솜씨를 잘 보여주는 그럴듯한 화면 연출도 없습니다.

정말 "총"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데스페라도"나 "슛 뎀 업"과 같은 영화와는 거리가 아주아주 멉니다. 이런 점은, "건 크레이지"라는 제목의 영화 치고는 확실히 기대에 못미치는 점이 있습니다. 더우기 도망자 신세가 된 비참한 모습을 절절한 연기 속에서 잘 보여주는 영화면서, 총격전 장면 연출은 그냥 상황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부실하지는 않지만, 그저 덤덤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정도라는 점은 조금만 더 제작비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러니, 굉장히 개성적인 인물을 잘 잡아 놓고도, 충분히 개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 표준만 따라간 듯하다는 아쉬움도 생깁니다.


(보니와 클라이드라면 은행강도)

그렇습니다만, 그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가장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로 제 몫을 잘 하는 영화라는 점은 흔들림이 없지 싶습니다. "카르멘"에서부터, "내일을 향해 쏴라"까지, 남녀가 쌍으로 다니며 강도질하며 막나가다가 패가망신하는 이야기의 고전적인 감상이 잘 살아 있는 영화 였습니다. 허망감, 극단적인 상황을 오가는 감상, 왜곡되고 굴절되어 더 강렬해지는 남녀의 애정, 현실의 답답한 벽에 좌절하는 혈기 넘치는 젊은 몽상가들을 동정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다 들어가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을 처음 보는 남자 주인공)

명배우, 최고의 인기 스타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 배우들이지만, 두 남녀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을 맡은 존 돌의 솜씨는 두고두고 볼만합니다. 사람 좋고 꼬임에 잘 넘어 갈 것 같은 순박함, 원래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건실함을 든든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지나치게 잦은 웃음 속에서 묘하게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모습은 기억에 남습니다. 눈으로 바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나 음악이라면 쉽게 전달해주기 어려운 면모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존 돌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로프"의 범인 배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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