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974 - 포스터 자료 추가) 영화

"왜?"라는 정체 불명의 제목이 붙어 있는 이 1974년작 한국영화는 시작하면 일본에 막 도착한 여객선에서 박노식이 갑자기 어딘가로 긴박하게 뛰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놀란 박노식의 일행은 모두 박노식을 따라 가봅니다. 이게 뭡니까? 왜? 왜? 여기 부터가 말하자면 스포일러 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악당 조직의 음모에 휘말린 일행이 맞서 싸우는 일종의 첩보물 형식 활극 입니다. 그런데 그 질이 영화 줄거리를 알아 보기 조차 힘든 트래쉬 무비에 가까이 다가가는 부분들이 있고, 멀쩡한 부분만 봐도 모양이 무척 괴상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이 문제의 첫 장면을 밝혀 보면 이렇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튀어 나왔던 긴박하게 뛰어가는 장면은 한참 나오는데, 그러고 나면 이게 박노식이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찾았던 것이라는 맥이 탁 풀리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포스터: 신문에 실린 포스터를 따왔습니다; 신문 자료만 따오는 바람에 자료는 흑백 입니다만, 당연히 컬러 영화입니다.)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는 일본에 도착한 박노식 일행에게 아주 눈에 뻔히 들어오는 수법으로 접근해서 소매치기 형식으로 가방을 바꿔치기하는 악당들 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권까지 털린 덕분에 박노식은 일본 경찰에 잡혀 가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가 확 건너 뛰어서 이상하게 알록달록 재미나게 옷을 차려 입고 있는 남녀 야쿠자 조직 같은 것이 나옵니다. (포스터 하단) 야쿠자 조직 두목은 장황하고도 길게 여러 사람 이름을 읊어 대면서 무슨 유산상속이 어쩌고, "이야기가 재밌게 돌아가는군" 운운하면서 도저히 뭐가 재밌는 건지 알 수 없는 설명을 주구장창 계속 읊어 댑니다.

다시 이야기가 바뀌면 무슨 가방에 둔 서류를 빼앗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납치하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다시 내용이 바뀌면 이번에는 이 야쿠자들은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 아류작 첩보물에 나오던 악당들 처럼 재미난 현대적인 밝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고 보기에 재밌어 보이는 모양의 비밀기지 같은 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게 다 뭐하자는 겁니까? 이야기가 뭐 어떻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그리고 왜 악당 두목역도 똑같이 박노식이 맡고 있어서 두 사람이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것입니까? (포스터 중앙)


(일본에 도착하여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기 직전; 1974년 8월 23일 매일경제신문 기사 중 발췌)

이 영화가 이렇게 엉키고 알아 보기 힘든 면이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60년대에 태동하여 70, 80년대에 우리나라 영화계에 꽤나 유행했던 "무슨 내용이건 결말은 반공 선전물로 흘러 갈 것" 을 따라간 영화라는 것 입니다.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반공물로 영화를 만들면 정부 정책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렵 한국 영화들을 보면 그냥 멀쩡하게 그냥저냥 흘러가다가 "사실은 이 모든 나쁜 일의 배후에는 공산당이 있었다"라면서 난데 없이 반공물로 돌변해 버리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가장 악명 높은 예로 유명한 영화를 꼽아보자면, 이만희가 감독을 맡고 오지명, 남궁원이 나오는 "암살자" 입니다. 이 영화는 암살자의 냉혹하고 울적한 이야기를 다루다가 끝나기 한 몇십초 남기고 갑자기 공산당에서 보낸 암살자가 주인공을 죽인 다음에 끝나면서 "보아라, 공산당들은 얼마나 잔인하고 야비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해설이 튀어 나와서 반공물로 확 변신해 버립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야쿠자 비슷한 놈들이 나와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온 박노식과 다투는 영화라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반공물과 엮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당시 가장 흔히 사용되던 방책이 있습니다. 이 영화도 그걸 씁니다. 바로 "조총련"을 끌어 들여서 국제첩보극으로 꾸미는 것입니다. 6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풍부한 유행을 엮어 낸 후에, 세계 각지에서는 그 모방작들이 나왔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도 비슷한 것들이 나왔습니다. 한국 영화는 국제 첩보극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홍콩 아니면 일본 밖에 안 가기 때문에 악당들도 그 중에서 뽑아 와야 합니다. 이때, 국제 첩보극을 만드는 김에 반공물로도 엮어 보자 싶어서 써먹는 것이 바로 "조총련"입니다. "조총련" 산하에 이상한 특수 조직이 있다고 해서 이 특수 조직이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어둠의 비밀 조직 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기 한국 영화에서 반공물과 엮은 국제 첩보물에서는 제임스 본드 영화의 "스펙터" 역할을 조총련이 맡곤 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바로 이 영화, "왜?"도 그 전형적인 사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처음에 나왔던 야쿠자 같은 놈들은 사실은 야쿠자가 아니라 조총련이 거느린 비밀 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야쿠자 영화에서 나오는 기괴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국제 첩보물의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과 뒤엉키게 되었습니다. 초반 장면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일본도 들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부하들에게 두목이 낄낄거리며 돈뭉치를 뿌리면, 서로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중에 제일 선배인 조직원이 갑자기 자해를 해서 겁주면서 자기가 먼저 돈 챙기겠다고 호령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런 건 분명히 야쿠자 영화 풍 입니다. 그러다 좀 지나가다 보면 무슨 첩보물 속 악의 군단 같은 알록달록 재미난 유니폼과 비밀 지하 기지도 같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엉켜 있는데, 여기에다 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걸어 엮었습니다. 바로 다름 아닌 이 영화가 박노식 출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용팔이 시리즈"라는 것 입니다. 용팔이 시리즈는 전라도 사투리를 무척이 촐싹 맞게 읊조려대는 우리의 순박한 주인공 박노식이 서울과 같은 도회지에 와서 이런저런 야박한 무리들과 좌충우돌하며 소동을 빚고 싸우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당연히 사투리 쓰면서 웃기는 내용의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바로 야쿠자 처럼 자극적이고 끈끈한 일을 벌이는 범죄인들이 사실은 조총련 비밀조직이라서 첩보물 흉내를 내는 데, 거기에 사투리 쓰며 촐싹거리는 용팔이도 끼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렇게 아주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 같지는 않습니다. "미스터 빈"이나 "F학점 첩보원"처럼 무시무시한 첩보극의 한 가운데에 평범한 웃긴 사람이 나와서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는 재미난 희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60년대에 최고의 첩보물 시리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겟 스마트"는 이렇게 첩보물 코미디를 한껏 뽑아낸 선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용팔이가 출연하게 된 것일 뿐, 알맹이는 꽤 진지한 범죄물, 첩보극의 길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입니다. 출생의 비밀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이 등장해서 어머니를 오랫만에 몰래 만나 눈물을 흘리는 신파극 장면까지 엮여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영화 시작할 때 제목 보여주는 장면.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영구 모습이 된 용팔이와 용칠이(좌우 차례)의 등짝에 제목인 "왜?"가 새겨져 있습니다; 1974년 7월 19일 매일경제신문 기사 중 발췌)

그렇게해서, 이 영화는 이런저런 서로 다른 영화의 이야기들이 막 뒤섞여 엉켜 있는 듯한 몰골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열심히 봐도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 먹기도 쉽지 않습니다. 영화를 가만히 구경하다보면 심지어 영화 제작진도 무슨 이야기로 찍은 것인 지 모르고 찍었다 싶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일단 재미날 것 같은 장면, 눈을 끌 수 있을 것 같은 장면들을 먼저 찍어 놓고, 나중에 대강대강 어떻게 서로 장면들을 이어 붙여 보자고 막아 보듯이 영화를 만든 모양이 눈에 보인다는 말입니다.

엉킨 이야기가 어쩌다 그렇게 된 건 지 때운답시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전에 잽싸게 편집을 해서 잘라 낸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자리에 있었던 것이 다른 사람인 것 처럼 후시녹음으로 다른 목소리를 입혀서 어떻게 이야기를 연결해 보려고 시도 한 겁니다. 또는, 갑자기 자동차가 산 길을 가는 장면을 멀리서 잡은 장면을 한참 보여주면서, 자동차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후시녹음 더빙으로 대화하는 내용을 입혀 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대화 속에서 억지로 억지로 이 이상한 상황을 설명을 해 보려고 했던 겁니다.

물론 어느 하나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없어서, 아무리 이걸 봐도 영화 전체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나마 이 영화가 더도 덜도 아닌 가장 밑바닥의 트래쉬 무비들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은 그래도 얼토당토 않게 연결되는 엉킨 이야기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버텨 보려고 좀 구구해 보이지만 이렇게 노력은 하고 있다는 점 아닌가 싶습니다. 60년대, 70년대 한국영화들 중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좀 꼬인다 싶을 때 그냥 자비심 없이 "에라 모르겠다"하고 확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 지 안따지고 그냥 휙 넘어 간 뒤에 모른척 하고 진행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엉키는 면이 있다고 했는데, 이 영화의 바탕으로 가장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중에서 일본 야쿠자 영화 쪽 입니다. 그 부분에서 유래한 내용들이 눈에 뜨이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따라하는 일본 범죄물이라는 것이 활극 위주의 영화나 추리물이 아니라, 7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중저예산 "완전성인용" 영화들입니다. 자극적인 연출과 선정적인 화면에 공격적인 연출, 폭발하는 감상, 괴기스러운 내용들로 충격을 주었던 그 영화들에서 이 영화는 배워 온 부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영화에는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는 갑부의 자식이 나오는 데, 갑부가 이 자식에게 "노리개감"으로 쓸 "처녀"를 지하실에 넣어 주면, 이 갑부 자식은 사람을 묶어 놓고 붓에다가 먹을 칠해서 먹칠을 하여 괴롭히면서 아주 즐거워 합니다. 그 기괴한 미치광이 같은 분위기는 당시 일본 중저예산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선명 합니다. 이 부분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하게 눈에 뜨이는 장면일텐데, 이 맛이 간 갑부 자식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양이 진짜 좀 맛이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니와, 붉은 조명이 감도는 악몽화된 연출의 지하실에 온통 방안에 붙은 낙서들하며, 지켜보고 있는 갑부가 마치 악마처럼 뜬금없이 극히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서 있는 채로 썩어 빠진 대사를 주워 삼기기도 합니다. 정말 음험함이 넘쳐나는 광란의 절규가 피어나는 썩 빼어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힘이 강한 장면들이 있어도 이게 엉망으로 엮인 이야기 속에 휙 한 번 이상하게 꼬여 들었다가 별 의미 없이 휙 튀어 나오고 말아 버린다는 겁니다. 꼭 잠시 다른 영화 보다가 만 것 처럼 아주 엉뚱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공포 영화 장면 같은 부분을 예로 들면, 이 지하실에 여자 주인공이 끌려 온 이유는 그냥 해변가에서 길 잃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노인이 나와서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어떤 노인"은 갑자기 여자 주인공에게 지하 통로로 들어 가라고 하는데, 여자 주인공이 지하 통로로 안들어가려고 하자 "어떤 노인"은 여자 주인공 스타킹에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해 봤자 소용 없고 무조건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영화의 앞서 사연 때문에 여자 주인공 스타킹에 피가 튄 적이 있는 것이 맞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왜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는지, 스타킹이 뭔 철가면이라서 벗을 수는 없는 것인지, 경찰에 신고를 못하면 못하지 그렇다고 해서 왜 노인의 말을 따라 지하 통로로 들어가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통로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통로 위에서 뱀이 떨어지는 바람에 여자 주인공이 괴로워하는 무의미한 장면이 한참 나오기도 합니다. 이 지하실에서 곤혹을 치르던 여자 주인공이 탈출하는 것은 더욱 가관 입니다. 그 깊숙한 지하 통로를 통과해서 들어온 이 지옥 같은 지하실에서 탈출하는 것은, 갑자기 어디선가 휙 하고 이 여자 주인공의 배다른 남동생이 나타나 권총으로 악당들을 다 쏘아 죽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알고, 무슨 수로 들어 왔는지는 보여 주지도 않고 이후에도 안 알려 줍니다. 이 배다른 남동생은 "학창시절 별명이 물개"라서 물 속에서 "한 시간" 쯤은 있어도 끄덕 없다고 하는 인간이기는 한데, 그게 이 장면에서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그림이 도대체 왜? 왜? 왜?)

이런 것이 쓸데 없이 복잡하고 미술이 아름다운 당시의 유쾌한 첩보물 소재와도 섞이면 점점 더 내용은 괴상해 지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악당 조직은 사람을 괴롭혀서 고문할 때, 사람을 묶어 놓고 그냥 구타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조직원들이 좌우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발로 뺨을 때리는 일을 반복하게 합니다. 보고 있으면 묘하게 예술적으로 느껴질 지경이기도 합니다. 동작 자체가 체조 동작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막 엉킨 이상한 내용이 어떤 극치로 치닫는 부분은 도무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우주 저편의 꿈 속에서도 찾을 생각조차 못했던 "그네타기" 장면 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께서는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게, 뇌리를 넘어 척수에 사무칠만큼 놀라운 장면 아닌가 합니다.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악당은 드디어 용팔이 일행과 여자 주인공을 모두 사로 잡았습니다. 악당은 중요한 서류를 빼앗아야 하는데, 서류가 있는 곳을 용팔이가 말하지 않습니다. 악당은 고문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대원들을 어느 야산 풀밭에 집결시켜 두고 용팔이 일행과 여자 주인공을 데려 옵니다. 여기서 용팔이와 악당 두목을 둘 다 박노식이 연기하기 때문에 얼굴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걸 보고 웃기다고 모든 대원이 껄껄껄 웃는 장면을 아주 오랫동안 보여 줍니다.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소재는 이후에 탈출과 싸움에 전혀 활용되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고문할 것을 지시하자, 악당들은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십자가 같은 것을 가져 옵니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주인공을 묶습니다. 묶어서 때리려고 하는 것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묶어서 세워 놓지 않고 묶어서 풀밭 위에 눕혀 놓습니다. 그리고 그 양 옆에는 높다란 나무 장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다음 장면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악당은 무를 가져 와서 묶인 채 풀밭에 누워 있는 여자 주인공의 가슴팍 위에 올려 놓습니다. 무 말입니다. 무. 요리에 쓰이는, 어묵 요리나 고등어 조림 같은 것 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바로 그 무 말입니다. 그걸 지금 고문하는데 어디서 준비해서 들고 와서 묶인 여자 주인공 위에 올려 놓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자고 이러는 것입니까?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는 갑자기 악당 대원 중에 여자 대원 두 명이 그네 위에 올라 섭니다. 그네 말입니다. 그네. 놀이터에 가면 어린이들이 전후로 오락가락하며 노는 그것 말입니다. 단오에 즐기기도 하고, 춘향이가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몽룡이가 반했다던 그 그네 말입니다. 갑자기 그 그네에 여자 대원 두 명이 타는 겁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경이로운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 그네 아래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달려 있고, 여자 주인공이 묶인 채로 누워 있는 곳은 이 그네의 아래 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네를 타면 그 칼날이 여자 주인공을 벨 듯이 점점 내려오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무서워하고 이게 고문이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내려오는 정도는 조춘(삭발한 후 입니다.)이 끈을 하나 붙잡고 있어서 조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에게 충분히 가까이 왔을 때에 아슬아슬하게 무섭게 무가 "썰리는" 모습을 보여줘서 겁주기 위해 문제의 무를 올려 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율의 "그네타기" 장면 입니다.


(바로 이런 장면 입니다. 최근에 테크니스코프 필름에서 추출되어 볼 수 있게된 영화이기에 별도의 자료 사진이나 포스터는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에드가 앨런 포의 기념비적인 단편소설 "함정과 진자"에 나온 고문 장치 이후로, 이런식으로 칼날이 점점 다가 오는 고문 장치는 모험물, 첩보물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매우 여러가지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007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의 다리 사이로 점점 다가오는 레이저 빔 절단기는 유명한 변형판의 사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왜?" 속의 이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그네타기"는 야쿠자 영화, 선정적인 당시 일본 영화 유행, 첩보물이 막섞인 결과 아주 어마어마하게 괴상한 분위기로 변형되어 등장 합니다. 이걸 보고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뭐 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고 있으면 정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느낍니다.

이걸로 부족한 지, 이 영화에는 이 "그네타기"의 복선이랍시고 영화 초반부에 악당을 배반한 여자 대원에게 악당이 그네타기를 시키라고 하니까, 여자 대원이, "앗! 제발 그네 타기 만은...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라고 하는 날로 먹는 날계란 같은 교과서 속 장면도 나와 있었습니다. 정말 그걸로도 부족한 지, 이 그네타기 장면을 집행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배다른 남동생은 그네를 묶어 놓은 장대 위에 누워서(!) 자고 있다가 표표히 내려오는 얼토당토 않게 멋부리는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 놓고 한다는 말이, 이 마당에 "높은 자리에 올라 갈 수 없으니 자는 자리라도 높은 자리에 있어 보려고 그런다" 어쩌고 하는 소리를 멋있는 대사라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중얼 거립니다.

일본 영화 유행을 모방한 자극적인 소재들이 상당히 잘 꾸며져 있고, 평범한 사람이 암흑 조직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대모험을 겪는다는 틀도 쓸만한 것이기는 했던 영화 이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보면 허망하기는 하면서도 보게 되기는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엉킨 덕분에 내용 전반이 무너져 내린 영화라 할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용팔이가 악당 두목과 똑같이 생겨서 1인 2역을 하는 것은 재미난 요소가 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냥 한 번 웃고 말 뿐입니다. 그냥 소재가 있어서 찍기는 했지만 전체 이야기에 끼워 넣을 대목을 찾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고 덮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앞뒤 안가리고 짜넣다보니, 악당이던 여자 주인공의 배다른 동생은 아무 이유 없이 막판에 개과천선해서 달려 나와서 효도하겠다고도 합니다. 이 광기어린 영화에서 맨 마지막에는 갑자기 하하하 다 같이 웃으며 끝나기도 합니다.

한 번 이런 것을 생각 해 봅니다. 용팔이나, 코미디, 반공물은 포기하고 아주 작정하고 어두운 범죄물, 기괴한 미치광이가 마수를 뻗치는 공포물로만 꾸며 봤으면 어땠나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을 구경할 수는 없게 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자극적인 장면, 피가 철철 흐르며 튀기는 모양, 칼을 맞은 상처를 보여주는 장면 등등은 충분히 무서운 맛이 있고 당시 비슷한 일본 영화의 경지에 가까이 가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꽤나 사실적으로 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 파괴적으로 다투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런 장면들은 의외로 색채가 선명하여 위력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군데군데 이야기 전환점에서 터져나오는 록큰롤에 70년대식 금관악기 소리가 섞인 배경 음악이 신나는 대목이 있는 걸 보면, 또 아예 뒤집어서 이런 걸 포기하고 좀 멀쩡한 코미디 첩보물로 갔으면 어땠나 싶기도 합니다.


그 밖에...

영화 시작할 때 제목을 보여줄 때, "왜?"라는 영화 제목이 나와야 할 대목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영구 모양이 된 용팔이와 용팔이 부하 용칠이의 찢어진 옷의 등짝이 묘하게 옷이 찢어져서 "왜?"라는 말이 새겨져 있게 된 것을 보여 줍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악당 졸개들 중에 엑스트라급 역할로 박동룡 http://gerecter.egloos.com/3825648 이 나옵니다.

그나마 최대한 수습해서 정리해 보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본의 어느 "회장"이 유산을 상속해 줄 잃어 버린 딸을 찾고 있습니다. 박노식은 문제의 딸을 데리고 이 회장을 만나러 가는 데, 딸이 진짜 딸이라는 것을 증명할 서류를 갖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령님"의 생신 선물로 바쳐야할 할당금액을 맞추기 위해 조총련 비밀 조직은 이 회장의 유산을 가로채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짜 딸 (포스터 좌하단) 을 내세우고 진짜 딸의 서류를 뺏으려고 합니다. 조총련은 도움을 얻기 위해 사회에 불만이 많고 회장의 친자식으로 인정도 제대로 못받는 배다른 남동생도 끌어 들입니다.

그러나 회장이 가짜 딸인지 의심스러워 파놓은 유도심문, 함정수사에 걸려서 악당들은 가짜 딸이라는 게 들통나고, 박노식 일행은 어디선가 나타난 숙청 당한 전 조총련 비밀조직원에게 구출 되어 진짜 딸을 회장에게 선 보입니다. 이 때 문득 난데 없이 배다른 남동생도 나타나서 죄송하다고 하고 앞으로 효도하겠다고 합니다. 진짜 딸은 상속 받은 유산으로 일본에 한인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하고, 날건달 같기만한 용팔이에게 교장을 맡길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같이 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끝납니다.

영화가 맨 마지막에 끝날 때, 교장이된 용팔이를 그린 캐리커쳐 삽화가 하나 나오면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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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창으니즘 2011/06/07 23:33 # 삭제 답글

    ...저도 보고싶군요.

    지금껏 제 나름대로 괴작에 대한 리뷰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글 만큼 충격적인 내용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 게렉터 2011/06/08 18:36 #

    이 정도면 60, 70년대 이상한 한국영화 중에서도 좀 강한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더한 영화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80년대에 나온 "아라한" 같은 영화는 엄청나게 이상해서 보고 있으면 꼭 이런 영화 보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가 봐도 그 이상한 맛이 재밌을 지경이라고 생각 합니다.
  • 역사관심 2011/06/08 03:54 # 답글

    어찌보면 진짜 보고 싶은 영화들이로군요. 지금은 절대 나올수 없는 괴작들...하나의 장르가 될수 있을지도 ^^;
    마사루를 뛰어넘는 (이런 장르를 일컫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네요) 비논리적 스토리. 컬트로 볼수도;;
    (반공이란게 그런 매력을 반감시키지만, 반공부분만 빼면 정말 한 장르화되도 될듯하네요).
  • 게렉터 2011/06/08 18:37 #

    한 부류로 몰아 볼 수 있을만한 무더기는 충분히 될만한다고 생각 합니다. 사실, 80, 90년대 영화들을 돌아보다보면 아주 가까이 있었던 같은 영화인데 비슷한 감흥이 느껴지는 부분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1/06/09 00:09 #

    그렇군요. 만약 장르화한다면 이름을 뭐라고 붙일지 궁금합니다 ^^ '부조리' 장르정도 되려나요.
  • 게렉터 2011/06/11 23:10 #

    요즘 유행에 맞춘다면 "막장 방화" 정도가 와닿는 이름이겠습니다만, 좀 괜찮은 단어를 써서 말을 만들면 더 좋을 겁니다.
  • 불별 2011/06/08 11:14 # 답글

    아니 도대체 이런 영화는 어디서 구하시는 겁니까 OTL
  • 게렉터 2011/06/08 18:37 #

    한국영상자료원 상영작이었습니다.
  • 2011/06/13 11: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1/06/13 22:52 #

    그 전후로 분위기가 아주 악몽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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