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 (任那) 기타

-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가야 갑옷)

1.
구야중(仇耶仲)은 가야 사람으로, 가야의 바닷가 임나(任那) 지역 중에 종발성(從拔城)의 명문에서 났다. 구야중은 제 아버지의 차남이었는데, 재주를 잘 갈고 닦아 아버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그래서 구야중은 종발성을 다스리는 작위인 가량공(加良公)을 받드는 아홉명의 높은 신하인 구간(九干) 중 한 명이 되었다.

영락(永樂) 10년(서기 400년), 갑자기 가야 몇 나라의 물건값이 갑자기 크게 오르는 일이 벌어 졌다. 이무렵 가야의 뱃사람들이 쉽게 재물을 벌어들이는 가장 좋은 수법은 왜국섬에서 전쟁을 할 사람들을 실어 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해에 신라 계림(鷄林)의 도성이 포위 되는 큰 전쟁이 일어 나면서, 왜국섬, 가야, 백제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싸우는 병졸이 되기 위해 배를 타고 몰려 들게 되었다. 이 덕분에 이 해에 가야 뱃사람들은 어느 때 보다 막대한 재물을 벌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갑자기 재물이 풍족해진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건을 마구 사들이게 되면서 물건값이 혼란스럽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물건의 값이 갑자기 바뀌면서 꼭 사야만 하는 중요한 물건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물건 사는 것이 매우 힘들어지게 되었다. 구야중의 벗 중에도 힘겹게 된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이 사람은 안라국(安羅國)에서 낮은 벼슬을 살고 있었으므로, 관복과 그 장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그 값이 갑자기 높아져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 벗은 구야중을 찾아 와,

"갑자기 모시와 구슬의 값이 크게 높아져서 살림이 어렵게 되었네. 안라국의 사정이 모두 이와 같으니 옛 고향 벗을 찾아와 이렇게 몇 푼이나마 빌려 줄 것을 부탁하네."

하고 재물을 꾸어 가기를 빌었다.

구야중은 꾸준히 집안을 키워 와서 그만한 재물은 갖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기꺼이 친구에게 꾸어 주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구야중 또한 벼슬 자리에 오르기전에 안라국에서 자신의 나라에 와서 벼슬을 살면 더 좋은 대접을 해 주겠다는 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구야중은 대대로 내려오는 자리나 다름없던 임나의 벼슬을 살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안라국으로 넘어 가서 자리를 잡아 볼 것인지 무척 고심 한 바 있었다.

처음에 구야중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구야중이 안라국으로 건너 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지레 짐작한 어느 어부가,

"이제 안라국으로 가시면 좋아하시던 생선 요리를 드시기 어렵겠습니다."

하고 한 마디 하였다. 그 말을 듣자 구야중은 문득 마음이 깨어나는 듯 하더니, 안라국으로 가지 않고 임나의 종발성에 머물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생선 요리가 더 먹기 좋기 때문에 두 곳 중에 종발성을 택한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구야중은,

"대대로 가량공을 모시고 지내온 곳을 어찌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그런데 높은 벼슬과 귀한 자리를 노리고 고향을 떠나 안라국으로 건너 갔던 벗이, 다만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안라국의 물건 값이 요동치는 바람에 재물을 꾸어 와야 먹고 살수 있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구야중은 벗을 측은히 여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라국으로 건너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에 대해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한 번 들고 나니, 안라국으로 건너간 벗에게 재물을 빌려주는 것이 묘하게 통쾌하고 즐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벗이 운이 없어 힘든 일을 당한 것을 두고, 혹여라도 기뻐하는 마음이 들어서야 되겠소?"

그러나 곧 구야중은 도리를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여, 비슷한 말을 하는 아내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구야중은 마음을 바로 잡고 바른 마음으로 벗을 도우려고 하였다.

정말로 묘한 말은 그 다음에 나왔다. 구야중의 벗이 구야중에게 고맙다고 몇 번 씩 거듭 인사를 하고 돌아간 다음에, 구야중의 형이 찾아 왔다. 구야중의 형은 구야중 보다 재주가 모자라, 가문을 이어 벼슬을 하는 것은 구야중이 하도록 양보한 사람이었다. 구야중의 형은 그 대신 물려 받은 가문의 재물을 조금씩 팔아 주로 노름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내 재주는 오직 하나 이니, 노름판에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도, 가끔 조금 잃고 가끔 조금 딸 뿐, 크게 재산을 날리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세상 보내는 것도 한가한 날이 많고 근심은 적으니 해 볼만하지 않은가?"

구야중의 형은 스스로 이와 같이 말하며, 향기로운 음식과 듣기 좋은 노래를 조금씩 즐기기도 하였다. 구야중의 형은 특히 백제의 장사꾼 몇몇을 사귀어 그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임나에 들어 오면 주사위 놀이로 노름을 하는 것을 좋아 했다. 이 때에도 며칠 백제 사람이 노름을 벌이는 배를 타고 있다가 한참만에 돌아왔을 때, 구야중에게 소식을 들었다.

"안라국으로 간 제 벗은 망했고, 오히려 종발성에 남아 있던 저는 그 동안 재물을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자, 비록 술에 취해 있었다고는 하나 구야중의 형이 답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는 아우가 운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름에서 가장 나쁜 것이 갑자기 뜻 없이 운이 좋은 것이다. 운이 한 번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까닭도 없이 갑자기 판에 걸어 놓은 것을 모두 딸 것 처럼 여기게 되니, 자기 운이 좋다는 마음이 들 수록, 허황하게 재물을 걸고 노름을 하다가 밑천을 몽땅 날리고 망하는 날이 도리어 더 빨리 오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름을 할 때는 쓸데 없이 갑자기 운이 좋아진 것을 가장 싫어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구야중은 노름 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신의 형이, 스스로 신세가 답답하여 아무 말이나 괴로운 것을 토해 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구야중은 이러한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2.
가야 지역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대부분은 영락 10년 여름까지만 해도, 신라가 곧 전쟁에서 질 것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고구려군이 신라를 도우려 왔다. 그 숫자 또한 매우 많았다. 그러자 왜국섬에서 온 무리들을 비롯하여 싸움에 참가한 백제군, 가야군 등은 극히 놀라고 당황하였다. 이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물러나 아무렇게나 도망치게 되었다.

그런데 고구려군도 마찬가지로 당황하게 되었다. 담덕(談德: 광개토왕을 말함)이 신라 땅 안에 고구려군을 항상 머무르게 하고, 싸움이 일어나자 바로 많은 군사를 급히 빠르게 보내도록 한 것이 맞아 들어서, 극히 빠르게 군사를 보낼 수 있었고, 때문에 별 싸움도 없이 신라군을 구출 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술수가 너무 잘 맞은 것이 근심이 되었다. 적에게 둘러 쌓여 있는 계림을 구출하는 데 열흘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하자 마자 이겨 버린 것이었다. 원래는 계림을 구할 때 즈음하여 조정에서 다시 내려오는 명령을 받아 앞으로 싸울 길을 찾으려 했는데, 갑자기 하는 일 없이 멈추게 된 것이었다.

이는 적들 중에 고구려군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신라의 갈문왕(葛文王) 실성(實聖)이 계림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잘 안내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실성은 이때 참으로 오랫만에 고향인 신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신라를 구하고 수없이 많은 고구려군과 함께 당당히 성문으로 들어 오니, 그 위세가 신라의 임금 보다도 더 대단해 보였다. 실성의 얼굴을 알던 궁전의 늙은 신하와 궁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실성을 반겼다. 실성은 지혜로우면서도 근엄하여 그리워하던 신라에 돌아 왔으나, 몸가짐을 흩트리지 않고 오직 가끔 미소를 지을 뿐 이었다.

실성이 궁전에 도착해 신라 이사금(尼師今)에게 인사를 올리고 머물러 있으니, 어머니인 이리부인(伊利夫人)이 뜯어 먹는 떡을 들고 찾아 와 실성에게 주었다. 실성이 보니 고구려에 머물던 몇 년 동안 어머니 이리부인이 한참이나 더 늙어 보였다. 그 사이에 나이가 든 실성을 만나자 이리부인은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어 보이고는 부끄러워 하며 말하기를,

"나는 우리 갈문왕께서 아직도 떡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인줄로만 알고, 고작 반긴다면서 마련해 온 것이 이 떡 뿐이니 어찌 우습지 않겠소?"

하였다. 그러니, 실성이 그 떡을 먹어 보더니,

"아직 떡을 좋아하는 아이인 것이 옳습니다."

하고 말하고, 그제서야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기뻐서 크게 웃기도 하였다.

이후 실성은 신라의 신하들과 고구려 장군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아가,

"애초에 고구려 조정에서 이번에 크게 군사를 일으킨 까닭은 가야의 바다 끝까지 단단히 정벌하여, 백제의 잔악한 무리와 왜국섬에서 온 도적들이 도망칠 구멍과 드나들 길을 영영 끊어 놓자는 데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놓칠 수 없는 때이니, 늦기 전에 바로 남쪽으로 군사를 보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구려 장군들은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함부로 적들 사이에 깊숙히 들어가다가는 자칫 함정에 빠질 것을 걱정해야 하기도 했고, 신라에 들어오는 것은 신라 사람들이 항상 도와 주어 쉬웠으나 가야로 넘어 가는 것은 또 다른 낯선 땅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므로 또다른 일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고구려 조정에서부터 이것은 근심 거리였다. 담덕의 뜻에 반대하는 조정의 신하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담덕은 자기 말을 잘 따르는 군사들을 모으고 훌륭한 장군들을 급히 모으기 위해, 나이 어린 장수들에게 갑작스럽게 높은 벼슬을 주고 장군으로 삼은 경우가 꽤 많았다. 생긴 인물이 훌륭하여 무릇 아녀자들에게 특히 이름을 드날렸던 갈로(葛盧), 맹광(孟光) 같은 장군들이 그 대표였다. 그렇다보니, 원래 장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늙은 장군들은 담덕이 군사를 다루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신라를 구하고 가야를 치는 이번 일에서는 함부로 싸움을 크게 벌이면 안된다는 뜻을 굳게 세우는 자들이 꽤많았다.

5부의 대가(大加)들이 뜻을 모아 담덕에게 말했던 것이 이러 하였다.

"지금 우리는 서쪽의 연국(燕國)과 싸우는 것이 바쁘고 괴롭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남쪽으로 큰 군사를 내었으니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 싸움을 한꺼번에 같이 벌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성상(聖上)께서 조정을 받들어 모시는 신라와 의리를 중하게 여겨 힘든 것을 무릅쓰고 신라를 구하기 위한 군사를 내었으니,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높은 뜻을 칭송해야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라를 구한 후에 다시 싸움을 더 벌여 가야까지 내려 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는 백제의 잔악한 무리들과 왜국섬에서 온 도적 떼들을 물리쳐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가야와는 큰 원한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야는 그 배를 움직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모이는 일에 능숙하며, 그 사람들은 천하사방 온갖 나라의 여러 인물과 갖가지 사람을 실어 오는 재주가 뛰어난 곳이니 싸우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신라를 구하고 나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른 싸움이 급한 때에 일부러 괴로운 일을 더 크게 벌일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에 담덕이 이렇게 답했다.

"백제의 잔악한 무리들이 끊임 없이 왜국섬에서 사람과 재물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은 가야의 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가 계속 바다에서 몰려드는 적에게 시달리는 것을 막고, 백제의 잔악한 무리들이 힘을 꺾이게 하려면 가야까지 쳐들어가서 그 포구와 배를 불태워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다만 경들이 싸움을 두 곳에서 한 꺼번에 벌이는 것을 이와 같이 근심거리로 여기니, 먼저 빨리 신라를 구하는 것까지만 이루고 나서, 그 다음 일은 기회를 보아 다시 분명히 정하기로 하겠다."

이러한 까닭으로, 고구려군은 원래 생각했던 대로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 도중에, 신라의 도성 근처에서 머뭇거리며 머물러 있게 된 것이었다.

이에 실성의 부하로 고구려에 따라갔다가 같이 돌아온 김무알(金武謁)은 실성에게,

"이번에 갈문왕께서 큰 공을 세우시고 힘을 모으셔야만, 나중에 신라의 옥좌를 도모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고구려군에게 싸움을 계속하라고 부추기시고, 더 싸우기 위해 군사를 나누어 달라고 청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실성은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고구려의 왠갖 장수들과 장군들을 돌아가며 불러 모아 음식과 선물을 베풀며,

"성상께서 세우신 뜻은 남쪽으로 더 싸워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형세가 이와 같이 좋은데 머뭇거릴 까닭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니, 신라에 머무르는 고구려군 중에서도 더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적을 쫓아 가야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쪽과 신중히 머물러 기다려야 한다는 쪽이 나뉘게 되었다. 신중히 머물자는 쪽을 따르는 장군들은 몰래 말하기를,

"저 갈문왕은 교활하여, 우리 고구려군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싸우게 하여 오직 신라를 이롭게 하고, 또한 자기가 신라 이사금의 자리를 뒤이어 차지할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저런 자가 이사금 자리를 탐내는 길을 위해 우리 군사의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하고 화를 냈다.

결국 몇 차례 장군들이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고구려군은, 먼저 기병대를 보내어 가야의 사정을 살펴 보고, 그 후에 다시 따져서 일을 벌여 나가도록 서로 뜻을 모았다.

그런데 이 사정을 살피기 위해 보내는 기병대를 맹광이 맡아 이끌게 되었다. 맹광은 그 말을 듣자 마자 말을 전한 부하에게 제대로 답도하기 전에 바로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진군을 준비하라."

고 대답 대신 말하고는, 그 길로 말을 몰아 막사와 진지를 돌며 부하들을 말에 올라 타게 했다. 그렇게 병사들을 모으더니 맹광은 그대로 바로 남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맹광은 조정의 늙은 신하들이 생각한 것과 고구려 장군들이 근심하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출발하면서, 가야의 사정이 어떠하 건 간에 급작스럽게 일이 벌어져 어쩔 수 없는 일처럼 꾸미고 가야와 싸움을 벌이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맹광은 말에 올라 타면서 무심코 시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필 것 없이 일단 먼저 넘어가서 부수고 오면, 그 다음에는 천하사방이 어쩔 수 없게 될 것이다."


3.
고구려군에게 왜국섬, 백제, 가야에서 온 병사들이 대패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는 소식은 가야의 임나 지역에도 곧 전해 졌다. 특히 신라에서 가야로 통하는 길에 있는 종발성에는 허겁지겁 도망쳐 다니느라 온몸에서 더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패한 병졸들의 떼가 지나가는 것이 자주 눈에 뜨였으므로,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지나는 사람들 중에 백제에서 온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장군이라고 하면서 새 옷과 좋은 음식을 내어 줄 것을 청하였다. 종발성의 신하들은 이 사람을 잘 대접해 주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사실은 별로 높지 않은 부장(副長)이면서 잘 얻어 먹으려고 높은 장군인것처럼 거짓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하는 말 중에,

"내가 내 스스로 장군이라고 속인 것은 거짓이나, 고구려군이 가야까지 쳐들어온다는 것은 옳은 이야기요. 이번에 고구려군은 가야도 함께 쳐부수는 것이 목표인데, 고구려군의 말은 몹시 빠르니 종발성도 당장 위험하오. 고구려군이 성을 차지하면 사람은 모두 죽이고, 물건은 모두 불태운다고 하니, 어서 살 길을 찾아야 하오."

라고 했으므로, 종발성의 신하들은 크게 놀랐다.

종발성을 다스리는 가량공은 높은 신하들인 구간을 모두 모아 놓고 물었다.

"고구려군이 이미 하루 이틀 거리에 와 있다고 하니, 이제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때 종발성의 모든 일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도령아간(道寧阿干)이라는 자였다. 도령아간은 사람을 사귀는 재주가 좋고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사람을 이끌고 다니며 높임을 받는 솜씨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도령아간은 어릴 적부터 말하기를,

"사람을 다스릴 줄 아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세상에 높이 오르게 되는 것이라는 말은 가장 흔한 이야기가 아닌가?"

라고 말하고 다녔다. 도령아간은 자라나면서 점차 가야 여러 곳에서 이름을 얻어, 이 무렵에는 가야 여러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가락국(駕洛國)의 이시품왕(伊尸品王)이 가장 믿고 있는 신하가 되어 있었다. 이시품왕은 이때 이미 나이가 80이 훌쩍 넘었고, 몸이 병약하여 말을 하고 듣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시품왕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는 것 조차 오래 하지 못하고 힘겨워 하였다. 그러므로, 도령아간은 이시품왕의 바로 옆 자리에서,

"이런 뜻이 있으니, 이대로 하시겠습니까?"

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이시품왕에게 전하고, 이시품왕이 뭐라고 대답하면, 자기가 그 말을 듣고 옮겨서,

"임금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니, 제가 전하고 싶은 말만 뜻대로 바꾸어 임금에게 전하여, 가락국의 조정을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라의 일이 급박하다고 하므로, 도령아간은 신라와 통하는 길에 있는 종발성에 와있었는데, 일이 이렇다보니, 도령아간이 종발성에 와서도 어떤 신하들보다 그 힘이 세었고, 도령아간에게 아부하는 신하들도 매우 많았다. 이들은 가야 여러 곳곳을 다니며,

"도령아간께서 일을 하시니 나라가 버티어지고, 도령아간께서 세우신 뜻으로 나라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아첨했으니, 정말로 도령아간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고 믿는 자들 또한 가야 여러곳에 무척 많았다. 더군다나 도령아간을 실지로 만나보면, 사람을 잘 대접해 주고 즐겁게 웃으며 사귀어 제 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으므로 도령아간을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 수록 늘어 났다.

괴이한 것은 일이 이와 같이 이상하게 되어가는 데도 한탄하는 무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본시 가야에서 세력이 높은 자들은 이 나라 저 나라에 배를 띄워 재물을 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조정과 군사의 일은 사소하게 여겨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었던 것이다.

도령아간은 종발성의 구간들 사이에서 가량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산을 두고 적을 막아서고 있으므로 적이 오기가 쉽지 않고, 우리는 남쪽의 바다로 빠져서 먹을 것과 무기와 원병을 불러오기에 편합니다. 또한 우리 가야의 갑사(甲士)들은 그 갑옷이 튼튼하니 화살을 뚫고 적진 깊은 곳에 뛰어 들어와 그 장군을 잡아 죽이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므로, 제가 이들을 이끌고 나아가 힘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나라가 큰 싸움을 맞게 되었다고 하니, 평소에 가장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굴던 도령아간이 그 군대를 이끄는 것은 당연 하였다. 도령아간 스스로도,

"나라가 크지 않고, 이웃 여러 나라에 군사를 빌리는 데만 익숙해져 있으니, 큰 싸움을 맡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라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도령아간은 정말로 자신이 군사를 이끄는 것이 가장 낫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구간들은 별 말이 없었고 오직 도령아간을 칭찬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오직 그 중에 구야중이 한 가지 생각을 품어 이야기 하였다.

"도령아간께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막는다는 것은 참으로 우러러 볼 만한 덕이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는데, 그 길목에 우리 종발성이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기다려서 군사들을 받아들인 후 한 데 모아서 싸우면 군사 숫자를 늘리고 힘을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도령아간이 반대하였다.

"백제에서 온 자들은 백제 조정이 가야를 신하처럼 거느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왜국섬에서 온 자들은 이번에 제 무리가 많음만 믿고 제멋대로 날 뛸 지 모릅니다. 이들을 다시 한 데 뭉쳐 놓으면 어찌 제 명령을 곧이 곧대로 따르려고만 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적과 싸우기도 전에 우리끼리 다투게 되는 형국이 될 것이니 차라리 없음만 못합니다."

도령아간은 종발성의 일은 자신이 가량왕 보다도 더 철저히 다스리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으므로, 종발성에서 남이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서 따지고 드는 것은 결코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백제의 장군들을 받아 들여 모실 생각은 없었다. 그러므로 도령아간은 병졸들을 모두 모아서 싸우자는 구야중의 뜻에 반대 하였다.

도령아간이 한 말도 얼토당토 않은 말은 아니었으므로, 구야중은 도령아간의 말을 받아 들였다. 뿐만 아니라, 이때 종발성으로 흘러드는 백제군이나 왜국섬에서 온 군사들은 거의가 도망칠 생각만 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싸우고자 하는 자들도 몇 없었다.

이에, 도령아간을 모시는 군사들은 고구려군과 싸우기 위해 북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구야중 또한 그 중에 한 부대를 맡아 이끌게 되었다.


4.
군대가 종발성을 나가기 전에 그 전날 밤에 몰래 여러 보물을 실은 가마 몇이 성을 빠져 나갔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를 고구려군이 쳐들어와서 종발성은 곧 망할 것이므로, 이 소식을 미리 짐작하고 있는 도령아간이 보물을 빼돌리고 자기 가족들을 도망치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소문을 믿는 사람이 하나 둘 많아 졌으니, 소문을 듣고 도망칠 곳이 있고 가마와 배를 부를만큼 재물이 있는 부자들과 대신들 중에는 하나 둘 종발성을 빠져 나가서 도망치는 무리들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구야중의 아내 또한 이 소식을 듣고,

"그대는 직접 가량왕 앞에 나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사실을 아실 것이오. 이미 고구려군 소식을 전해 들은 높은 벼슬아치들은 몰래 몸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오? 그럼 나도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 가는 것이 옳겠소?"

라고 구야중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야중은 껄껄 웃으며,

"백번 천번 옳지 않소. 그와 같이 허황된 소문을 믿고 괜히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도리어 고구려군을 돕는 것이오. 가량공께서 성을 지키겠다는 뜻이 뚜렷하시니, 어찌 쉽게 성이 무너지고 도망치는 궁리부터 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오?"

라고 했다. 기실 떠도는 소문에는 틀린 점이 많았으니, 애초에 도령아간의 가족과 친지들은 종발성에 머무르고 있지도 않았다. 이들은 원래 가락국의 왕궁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구야중의 아내는 구야중의 말을 믿고 몰래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그저 흉흉한 이야기 거리로만 여기고, 남편인 구야중의 말을 믿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식을 달래며 종발성에 머물렀다.

한편 군사를 이끌고 나온 도령아간은 재빠른 말을 타고 부하 몇몇 만을 데리고는 가야를 벗어나 멀리 고구려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까지 나아가 보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수없이 많은 병사들의 무리가 몇 백, 몇 천 개씩이나 뭉쳐져 여기저기 계속 벌여져 있고, 깃발들이 가득 늘어서서 눈에 보이는 땅 마다 온통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풍경이 매우 대단해 보였다. 도령아간은 겁을 먹었으나,

"보고나서 곧 죽을까봐 무서워지는 마음과 광대한 광경을 보는 흥취가 서로 섞이니, 그 광경이 대단하여 아름다워 보이는 느낌이 더욱 기묘하다. 이와 같은 풍경을 언제 또 보겠는가?"

하면서, 몇 번씩이나 봉우리에 다시 올라가서 고구려군이 진을 치고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

도령아간은 전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또한 사람이 죽고 사는 데 대해서도 마음이 약했다. 그러므로, 고구려군의 많은 군사들과 피를 튀기면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옛날 고구려의 고노자(高奴子)는 싸움을 하지 않고 오직 그 기세를 보이는 것 만으로 서로 다치지도 않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없이 선비족들을 몰아 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때와 같은 공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세워 보리라."

도령아간은 주위에 그렇게 말하고, 짐짓 위세 좋게 모양을 꾸며 싸우러 나가려 하였다. 가야 장수들은 여러 장의 빛나는 철판으로 되어 있는 갑옷을 입고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치장한 무기를 들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 가야 군사를 이끄는 장수들은 저마다 네 다섯 사람의 심부름꾼들을 불러서 자기에게 달라 붙어 분주히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집는 것을 돕도록 했다. 이 심부름꾼들이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장수들이 근엄히 노려보니, 심부름꾼들은 저마다 겁을 먹고 바닥에 업드려 떨면서 죄를 세 번 빌고, 다시 재빠른 동작으로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서 전쟁터를 향해 성문을 나가 북쪽으로 나서니, 지켜 보는 사람들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를 보는 듯이 여겨 저마다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전송하였다.

그런데 막상 고구려군과 싸우게 될 것으로 짐작한 곳에 나아가자,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고구려군이 가야로 넘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이때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상 싸움터에 도착했는데 싸울 고구려군이 보이지 않자, 죽을 것을 생각하며 바짝 움츠려 있던 가야군도 우왕좌왕하였다. 이 모양을 보고 구야중이 무심코 우스워 자신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마다 대단한 용사이며, 높다란 산봉우리와 같이 고귀한 것 처럼 굴던 무리들이 모여 있건만, 여기서 멈추어 허둥대는 모양을 보니 시골의 개 키우는 중늙은이들과 도대체 달라 보일 것이 무엇이냐?"

그런데, 이 때 도령아간이,

"고구려군이 너무 멀리까지 군사를 보내는 것을 꺼리고 있었는데 우리의 위세에 겁을 먹고 도망간 것이 틀림 없소."

하고 말했다. 그러므로, 서로 이야기를 한참 나눈 끝에, 가야군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만세를 부르고 노래를 하고 술과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 한 뒤에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도령아간이 싸우기가 싫어서 꾸민 일이 었다. 도령아간은 몰래 용녀(傭女)를 만났다. 용녀는 이곳저곳에 배를 보내 병졸들을 실어 보내면서 큰 재물을 벌어들인 사람이었다. 도령아간은 용녀에게 평소 친했던 신라의 대신에게 뇌물을 보내고 싸우지 말고 그냥 군사를 돌려 달라고 빌게 해달라고 청했다. 도령아간에게는 가야 조정에서 내려준 병장기를 만들 철과 병사들이 먹을 쌀이 넉넉히 있었는데, 바로 이 재물을 이용해서 신라 대신에게 많은 뇌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령아간은 배 두 척에 여러 뇌물을 실어서 용녀에게 넘겨 주면서 신라 대신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용녀는 용모가 아름다웠으므로, 이러한 장군이나 대신들이 무심코 보기 좋게 여겨 말을 나누기에 유리했고, 또한 이러한 뇌물을 주고 받는 일에 약속을 잘 지켰으므로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령아간도 용녀를 믿고 용녀를 통해 신라에 뇌물을 보냈던 것이다.

용녀는 뇌물을 잘 전했으므로, 신라의 대신은 갈문왕 실성의 반대파가 되었다. 이 신라의 대신은 고구려군이 가야로 즉시 내려 가는 것을 반대하게 된 것이다.

"가야와 신라는 이웃이며, 포상팔국의 난 때에 가락국 수로왕의 공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와 같이 원한을 질 수 있겠는가?"

이런 때문에, 고구려군이 가야까지 내려가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는 더 길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고구려군이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자, 도령아간은 무릇 종발성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돌아 왔다. 종발성의 여인 중에는 도령아간을 사모하는 무리들도 많아져서 도령아간이 성 안으로 들어와 가는 길마다 꽃을 뿌리며 큰 절을 올리는 여인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가량왕과 그 신하들 또한 도령아간의 공을 높게 사서 크게 떠 받들어 연회를 베풀었다. 가량왕은 각별히 여겨 도령아간을 도령대아간(道寧大阿干)으로 작위를 높여 주었다. 또한 나라나 성을 다스리는 자들이 쓸 수 있는 금동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용녀가 도령아간을 긴히 찾아 와서,

"지금 신라에서는 고구려에서 들어온 속민론을 따르는 파들이 조정에 많고, 또한 고구려에서 인질로 있다가 온 갈문왕의 힘이 세므로, 우리가 뇌물을 준 신하들이 그 뜻을 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얼마지 않아 가야로 고구려군이 오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령아간은 크게 놀라며 고심하다가,

"그렇다면, 갈문왕이나 고구려 장군 중에 뇌물을 줄 만한자가 없겠는가? 뇌물로 줄 것들을 더 많이 준비해 보겠네."

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보물들을 용녀에게 맡겼다.

이후로, 도령아간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축하할 때는 짐짓 기뻐하는 척 하였으나, 곧 자신의 꾀가 힘이 떨어져 고구려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생각하니 두려워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괴로워하였다. 이에 도령아간은 근심이 깊어져 술과 여러 약과 갖가지 사치스러운 잔치로 괴로움을 잊고 기뻐해보고자 하였다. 간혹 이를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도령대아간께서는 온갖 나랏일을 홀로 짊어지고 고민을 하고 계시니, 그 힘든 것을 어찌 짐작하기 쉽겠는가?"

라고 말하며, 도리어 두둔하였다.

이때 구야중은 고구려군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너무도 해괴하여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진지를 지키며 머물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내 맹광이 이끄는 고구려군의 기병대가 구야중 앞에 나타났다.


5.
맹광은 산길로 도망치는 왜국섬에서 온 무리들을 좇아 다니며 계속해서 싸우다가 이들을 따라 깊이 들어온 것이었다. 맹광의 기병대는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구야중이 이끄는 조금 남아 있는 가야군 보다는 훨씬 더 많았다. 맹광은 겁에 질려 허둥대는 구야중의 군사들을 가볍게 무너 뜨렸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혔으나, 구야중은 끝까지 깃발 주위를 지키며 버티다가 고구려 병사가 휘두른 창에 두 손 손가락을 잘리고, 허벅지에 화살을 한 대 맞았다. 구야중은 허벅지에 화살을 맞으며 쓰러졌다. 곧 구야중은 굴러 떨어져 몸 이곳저곳이 부러진 채로 산 깊은 곳에 처박혀 있게 되었다.

맹광이 가야의 포로를 잡고 보니, 가야 병졸이라는 자가 하는 말 중에,

"고구려군은 이미 도령대아간의 위세를 보고 겁을 먹고 모두 도망치지 않았느냐? 너희는 아직 도령대아간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말갈족이나 숙신족에서 병졸 중에 뒤늦게 온 놈들이냐? 이제 도령대아간께서 다시 정병을 이끌고 나타나면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맹광과 그 부하들은 도령아간이라는 자는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했다. 맹광이 가야의 사정을 잘 아는 신라사람으로 따라온 병졸에게 물어 보니, 도령아간이 늙은 이시품왕 아래에서 힘을 얻은 사연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제사야 맹광은 깨달아,

"도령아간이라는 자가 공을 세우고 위험한 것을 피하기 위해 제 임금을 속였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자, 부하 병사들은 도령대아간을 대단한 장군으로 믿고 있는 가야 병졸을 비웃으며 놀리고 욕하려 하였다. 그러자 맹광이 부하들을 말렸다.

"측은하니 참도록 하라. 이끄는 장수를 잘못 만나 왜 지는 줄도 모르고 패한 뒤에 원통하여 엉뚱한 곳을 욕만하는 병졸만큼 불쌍한 것이 있느냐?"

맹광은 평소에 장난을 좋아하고 농담을 잘하는 편이었으므로, 맹광이 이렇게 일부러 차분히 말을 하자 병졸들은 자뭇 숙연해져서 가야 병졸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었다.

한편 멀리 물러 간 줄로만 알았던 고구려군이 나타나서 진에 머물고 있는 병졸들을 모두 무너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량공과 종발성의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이때까지도 이것이 다만 도령아간의 속임수라고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구간들은 답답히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천간(天干)이라는 신하가 있어, 제가 짐작하는 바를 말했다.

"본래 우리 군사들이 하려 한 것은 위세를 보여 싸워 죽고 죽이지 않고도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괜히 까닭없이 구야중이 병사들 조금을 거느리고 싸움터에 앞 서 나가 있는 바람에 괜히 적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겁먹고 도망친 고구려군이 제발로 다시 찾아올 리는 없으니, 이는 분명히 구야중이 도령대아간이 세운 이름을 부러워하여 자신도 작은 공을 세워 보고자 일부러 고구려군과 싸우려고 찾아가서 벌인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다가 괜히 고구려군에게 대패하여 이제 고구려군이 더이상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원래 도령대아간께서 세운 계책 마저 이제 잃게 된 것입니다. 이는 모두 구야중의 죄가 아니겠습니까?"

처음에 이 말에 따르는 신하들은 별로 없었으나, 아무 할 말이 없었으므로 저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이에 대해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구야중이 큰 죄를 지었다는 말이 굳어지게 되었다. 구야중은 싸우다가 다치고 산 중에 버려져 그 자리에 없었으니, 구야중을 위해 한 마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있는 신하들은 하나 둘 구야중을 욕하는 말만 많이 하게 되니, 어느새 천간 등은,

"구야중의 죄가 매우 크니, 구야중을 역적으로 정하시고 그 처자식을 잡아다가 죄를 묻도록 하십시오."


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도령아간은 자신의 속임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처자식을 잡아 죄를 묻는다는 말이 나오자, 이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여,

"그래도 아직 죄인을 잡아 죄를 제대로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처자식을 잡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가량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고구려군에 사신을 보내어 그 동태를 살펴서 일어난 일의 정황을 물어 본 뒤에 일을 처결하는 것이 어떠하겠소? 용녀라는 여자가 배를 많이 거느리고 장사를 크게 하는데, 그 여자가 신라와 고구려를 오가는 이들의 소식을 많이 알아 줄 수 있다고 하니, 용녀에게 사실을 밝혀 보도록 하면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듣자, 도령아간은 면밀히 밝혀 보게 되면 자신의 속임수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 하였다. 도령아간은 힘을 짜내어 태연한 척 하였다. 그런데 마침 천간이,

"그와 같은 일을 하며 시일을 지체하면 지금 곧 고구려군이 닥쳐 올 텐데 시간이 늦게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령아간도 안심하여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군사들을 철저히 다스리기 위해 죄를 물어 보여야 한다고 하여, 구야중에게 싸움을 잘못한 죄를 물어, 그 처자식을 잡아 들였다.

구야중의 아내는 이때 영문도 제대로 모르고 남편이 고구려군에게 당했다는 소식만을 듣고 통곡을 하다가 처형되었다. 구야중의 아내는 다른 사람 때문에 죽게 된 죄인들의 위로 한다고 모아서 순장(殉葬)시키는 곳에서 죽게 되었다. 그래서 구야중의 아내를 먼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독한 술을 먹도록하여 울면서 술을 마신 뒤 쓰러지게 되었다. 이후 산채로 무덤 흙 속에 깊이 묻어 버렸다. 한편, 구야중의 두 딸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곧 병이 걸렸다. 딸들이 어렸으므로 죽이지는 않고 노비로 만들기로 벌이 내려졌는데, 두 딸들은 노비로 팔려가기 전에 서로 껴안고 떨다가 추운 날씨를 버티지 못하고 이틀만에 감옥에서 죽었다.


6.
이때 산골짜기에 떨어져서 쓰러져 있던 구야중은 그때껏 죽지 않고 있었다. 구야중이 쓰러져 있으니, 곧 고구려군이 종발성으로 닥쳐와서 난리가 날 것이 선하게 떠올랐다. 곧 구야중은 자신의 아내가,

"소식을 아는 자들은 짐을 싸서 피난을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관청(官廳)에서 하는 말만 그대로 믿고 남아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하고 몇 차례 불안해 하며 물었을 때, 자신이 몇 번씩이나 헛소문을 믿지 말라고 힘 주어 말한 것이 기억 났다. 그러자, 구야중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걱정스러워 지기도 하였다.

이에 구야중은 반드시 처자식을 찾아 돌아가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내어 산비탈을 몰래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야중은 부목을 대어 다리가 다친 곳을 버티도록 하고 절뚝거리며 움직였다.

고구려군이 군데군데 있으면 죽이고 지나가야 했으므로 구야중은 무기가 필요 했다. 그런데 구야중은 손가락이 잘려 나갔으므로, 창칼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손에 칼이 붙어 있도록 헝겊을 찢어 꽁꽁 묶어 두었다. 칼을 심하게 휘두를 때 마다, 손의 상처가 다시 터져서 헝겊으로 피가 새어나오고 칼은 휘두르기도 전에 피가 튀곤 하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를 두고 병사들은, "휘두르기도 전에 피가 튀는 칼"이라거나, "피 흘리는 칼"이라고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하였다.

부목을 대고, 손에 칼을 묶고, 그 밖에도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가득한 몰골로 구야중은 산길을 걸어, 종발성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미 맹광은 기병대를 빠른 속도로 움직여 종발성의 뒤쪽까지 달려 나가 있었다. 맹광은 종발성을 빙 둘러 싸고 막고 있었으므로, 구야중은 종발성으로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틈에서 살아 남고자 구야중은 고구려 병졸 몇을 붙잡아 위협하여 먹을 것을 빼앗기도 하고, 상처에 다시 감을 헝겊 등을 구하기도 하면서 숨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구야중은 애초에 고구려군이 도령아간을 두려워 해서 도망쳤다느니 하는 것은 뇌물을 이용해서 벌인 속임수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구야중은 자신이 이와 같이 다친 것이 억울하였으나, 그래도 도령아간도 종발성을 지키려고 일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종발성으로 돌아 가는 것에 힘을 다하려 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가야 병졸들이 성 밖으로 나와 싸움을 벌였다. 고구려 병졸들 보다 숫자도 작고 모두 싸운 경험도 적었으며, 화살이 들이치고 창칼이 움직일 때 마다 움찔움찔 겁을 먹어 잘 움직이지 못했으므로 모조리 패하였다. 이들은 도령아간이 다시 한 번 위세로 고구려군을 몰아낸다고 하면서 이끌고 나온 병졸들이었다. 가야군은 이번에도 요란하게 모습을 뽐내며, 성안에 있는 아낙들에게 무수히 절을 받으며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게 져버린 것이다.

도령아간도 아무 뜻한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령아간은 나름대로,

"지금 고구려군은 맹광이라는 자가 이끌고 있는데, 이 자는 기병대를 몰고 여기까지 들어온 자로 성질이 급하고 빠르게 군사를 몰아대는 것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말을 몰기에 나쁜 산과 언덕 배기에서 싸우면 우리가 극히 유리하므로, 이곳으로 들어가서 적을 끌어들이며 싸우면 이길만하다."

라고 말하고 싸움을 벌였다. 그래서 병사들을 끌고 산쪽으로 갔는데, 처음에는 과연 적이 별로 없고 싸우기에 수월한 듯 보였으므로 힘차게 움직였다.

그러나, 맹광이 이끄는 기병대에는 과하마(果下馬)가 있었다. 과하마는 고구려 동예 지역에 있던 특별한 말로, 자그마한 키 작은 말로 산을 매우 잘 올라다니는 습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과하마를 타고 있는 병사들이 산 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면서 싸우면, 기병대이면서도 산을 썩 잘 돌아다니는 절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었다. 맹광은 산골짜기가 있는 곳에는 과하마들을 자리잡게 하였는데, 마침 가야군이 그쪽으로 몰려 드는 듯 하자, 재빨리 말을 움직여 숨게 했다가 급히 튀어나오게 하여 습격한 것이었다.

가야군이 싸우다가 패할 때, 산에 있던 구야중은 함께 힘을 합하여 싸웠다. 병졸들은 처음에는 온통 상처 투성이에 잘 걷지도 못하여 계속 넘어지면서 싸우고 손에 칼을 묶어 놓은 장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저 같이 잘 싸웠으므로 도망치면서 함께 데리고 다시 성안으로 돌아 왔다.

구야중은 성안에 들어오자 마자, 우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보려 했다. 구야중은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러 잘 걷지 못하여 넘어지고, 넘어질 때 마다 다시 상처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뛰어 갔다. 그런데, 가 보니, 집은 불태워져 있고 집이 있는 자리에는, 역적이라는 글자가 씌인 나무 말뚝만 하나 박혀 있었다.


7.
구야중은 곧 자신이 역적으로 몰렸고 그 때문에 처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야중은 그러자 그 길로 도령아간의 집을 찾아 가서 도령아간을 죽이려 하였다. 도령아간은 구야중이 칼을 들고 뛰어 들자 처음에는 놀랐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자 다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지은 죄는 나 또한 용서를 구하기 어려운 큰 죄라고 여기고 있네. 그러나, 그 때 큰 적을 만나 싸우는 것을 앞두고 우리가 이와 같이 크게 패했는데, 그리고나서 그 까닭을 돌리고 탓할 곳을 찾지 못하면, 뜻을 잃고 겁을 먹어 싸우기도 전에 흩어져 지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자네가 죽어 없어졌다고 생각했으니, 어차피 죽은 자네에게 탓을 하고자 하여 그 말을 말리지 않은 것이네. 다만 자네의 처 자식까지 죽게 된 것은 부당하여, 내가 힘을 써 말려 보고자 하였으나 일이 잘못되어 어쩔 수 없었네.

지금 자네가 나를 죽인다면 나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죽을 것이네. 그러네 자네가 지금 나를 죽이면 나를 위해 분풀이를 할 뿐이고 내일이면 고구려군에게 종발성은 불 타서 없어 질 것이네. 그러나 만약 자네가 나를 살려준다면 나는 내 이름으로 자네를 구명하여 다시 가량공을 위해 싸우게 해 주겠네. 그리고 다시 병졸들을 다스려 싸울 수 있게 자네 앞에 모이도록 하겠네.

또한 지금 고구려군 사이로 목숨을 걸고 뚫고 나아가, 가락국 이시품왕께 찾아가겠네. 그리하여 옛날 수로왕 때 부터 내려온 보물인 황금알 상자를 내어 보이며, 가야 여러 나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싸울 것을 청하여 우리를 구해 줄 군사를 데려 오겠네. 또한 다른 길로는 가까운 안라국에 우리를 구해줄 병사를 청해 보겠네. 이렇게 한다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겨 볼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면서, 구야중은 몇 번이나 도령아간을 죽이려고 마음을 굳히려 하였다. 그러나, 도령아간이 말하기를,

"우선은 가량공과 종발성을 구하고 고구려군을 몰아낸 뒤에, 그 다음 나중에 나를 죽여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듣자, 결국 구야중은 도령아간을 풀어 주기로 했다.

도령아간이 풀려 나면서,

"나를 지금 살려 주는 것이라면 그 칼은 버리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고 묻자, 구야중은,

"이 칼은 손에 묶여 있어서 버릴 수가 없다."

라고 대답했다.


8.
도령아간은 적당히 말을 꾸며서 구야중이 다시 작위를 얻고 병사를 모아 다시 싸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곧 구야중은 같이 싸웠던 병졸들 중에 가장 용맹한 자 열명씩을 뽑아 같이 적진으로 쳐들어 가 고구려군이 애워싼 길을 잠깐 열게 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구해달라고 청하는 사람을 보내도록 했다. 안라국으로는 천간을 보냈고, 가락국 이시품왕에게는 도령아간을 보냈다. 열심히 싸웠으므로 두 사람은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이 싸웠던 용맹한 병졸들은 대부분 죽었다.

그러나 그리고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구하러 오는 가락국이나 안라국의 병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 놈들이 자기들만 살기 위해 그냥 도망친 것 아닌가?"

하고 원망했다.

사실 도령아간은 정말로 이시품왕을 찾아 가서 군사를 청해 보려고 했다. 이시품왕은 제대로 말을 주고 받기도 어려운 노인이었으므로 도령아간이 찾아가기만 한다면 마음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락국에 도착해 보니, 가락국 궁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고구려군을 두려워하여 궁전의 온갖 보물들을 여러 척의 호사스러운 배에 나누어 싣고 바다에 나와 있었다. 바다에 나와서 고구려군이 물러날 때 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는데, 만약 고구려군이 물러 나지 않고 가야가 영영 망하면, 그대로 백제가 되었건 탐라가 되었건 배를 타고 멀리 도망친다는 것이었다. 궁전의 사람들이 많고 보물이 많았기에 배가 부족했으므로, 용녀가 많은 배를 갖고 와서 궁전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지금 가야의 여러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모든 나라들이 힘을 합쳐 함께 싸우는 것을 이끌어야할 가락국에서 이와 같이 바다로 도망칠 궁리만 하는 것이 옳은가?"

도령아간이 한탄 했으나, 도령아간이 이시품왕의 명령을 마음대로 꾸며냈던 것과 꼭 같은 수법으로 태자와 태자비 등이 이미 한통속이 되어 일을 꾸미고 있었다. 특히 용녀가 가락국을 손아귀에 넣고 가야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 갖가지로 힘을 써 돕고 있었다. 그러므로, 뒤늦게 도망친 무리들 틈에 끼어 들어 다시 싸우자는 말로 설득하기는 이미 너무 어려웠다. 도령아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용녀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있는 가락국 이시품왕 일행에 끼었다.

외로이 종발성에 남아 있던 구야중은 고심 끝에 고구려군의 맹광에게 사신을 보내기로 했다. 선물을 바치고, 종발성의 주인인 가량공이, 담덕 앞에, 혹은 심지어 맹광 앞에라도 무릎을 꿇고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빌겠으니, 그대로 종발성을 다스리게 해 주고 물러 가 달라고 빌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신을 만난 맹광은,

"모든 것은 성상께서 내리신 뜻을 따르는 것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번에 성상께서 가야의 끝까지 내려가, 남쪽 땅끝 바다가 닿는 곳까지 차지하라 하셨으니 적어도 종발성 한 곳 만큼은 우리가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 가량공은 자리를 지킬 수 없다.

다만, 고구려군이 가야사람을 모두 죽인다는 것은 헛소문이다. 항복한 병졸들은 살려 줄 것이며, 지금 우리 고구려군은 물자가 넉넉하므로 종발성을 얻은 후에도 함부로 재물을 빼앗거나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사신으로 온 병졸은 곰곰히 고민을 하더니, 그 자리에서 고구려군에게 항복하였다. 그러자 맹광은 그 병졸에게 그대로 명령을 내려 이번에는 고구려의 사신이 되어, 그대로 종발성으로 가서 항복하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하였다.

사신으로 간 병졸이 옷과 깃발을 바꾸어 적의 사신이 되어 돌아오자, 구야중은 기가 막혔다. 화가 난 다른 병졸들이 사신을 죽이려고 하자, 구야중은 말려서 그대로 돌아가게 하였다.

"사신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싸울 수 밖에 없다."

구야중은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싸워 보기로 하고, 갑옷을 단단히 준비하고, 성안에 있는 말갈족에서 흘러 들어온 말 잘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말 타는 군사를 더 좋게 고쳐 보려고 했다. 말갑옷을 급히 만들었으며, 철판으로 된 갑옷을 모양만 번쩍이고 멋진 것이 아니라, 고구려군 기병의 모습을 잘 보고 따라하여 말을 타고 싸우기에 더 편리하고 튼튼하도록 고치도록 했다.

"지금 고구려군은 그 기병이 강한 것이니, 우리도 좋은 기병을 갖추어 놓고 맞서 싸워 본다면 한 번 그 기세를 떨쳐서 살 길을 찾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구야중은 병졸들이 보는 앞에, 신령에게 제사를 올리는 소도(蘇塗)라는 곳에 나아갔다. 돌로 쌓은 탑과 높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구야중의 좌우에 제사를 지내는 천군(天君)이 모든 옷을 갖추어 입고 서서 엄숙히 빌게 하는 가운데에 말했다.

"저희들이 내일 가량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보려고 합니다. 하늘은 만약 우리의 의로움을 높게 사서 우리 뜻을 이어가게 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기게 해 주시고, 아니면 내일 모두 죽게 해 주십시오."

그날 밤,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던 구야중의 형이 구야중에게 몰래 나타났다. 구야중의 형은 온몸에 상처가 난 구야중을 보고 불쌍히 여겨 한참 슬피 울었다. 그리고 구야중의 형이 말했다.

"노름을 하는 배를 몰고 다니는 무리들은 몰래 물길을 따라 빠져나가는 솜씨가 귀신 같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지금 고구려군이 지키고 있어도 너와 나 두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지금 백제의 노름하는 이들이 마련해 준 배를 가지고 나타났으니, 지금 나와 함께 도망치도록 하자."

이에 구야중이 답하기를,

"몇몇 신하들이 가량공께 몰래 길을 뚫고 도망쳐서 나중에 다시 힘을 얻어 종발성을 찾으러 돌아오자고 하는 말을 아뢴 적이 있었습니다. 가량공께서는 백성들과 병졸들이 지키고 있는 가량공의 성을 버리고 어디에 또 갈 곳은 없다고 하시며 이곳에 남아 죽으려고 하십니다. 제가 역적으로 몰려 버려진 때 같으면 그저 도망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신하가 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도리가 있겠습니까?"

하면서, 형을 따라 도망치는 것을 거절 하였다.

이튿날 급히 모은 갑옷과 말을 앞에 세우고 구야중은 맹렬히 싸웠다. 매우 위태로운 형국이었는데도, 바다의 밀물과 썰물 때를 잘 이용해서 바다 쪽에서 놀란 고구려군을 먼저 몰아가며 싸운 것이 잘 맞아 들어서 구야중은 잘 싸웠다. 맹광은 군사를 꽤나 뒤로 물렸다. 급히 만든 갑옷이었지만, 힘차게 적진으로 말을 몰아 뛰어 들 때, 적의 화살을 잘 막아낼 수도 있었다.

저녁에 성문으로 돌아오니, 모든 병사들이 땀과 피로 온통 더러워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같이 소리질러 크게 웃으면서,

"하늘이 우리를 도우시니, 이기는 운이 함께 따르노라."

하고 소리쳤다. 같이 모여 있던 병졸들은 밤이 깊어지도록 흩어지지 않고 웃으며 같이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병졸들은 웃고 소리지르면서도 서로 서로 모두가 하루 종일 두려워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맹광이 군사를 물린 것은 이제 고구려군이 가야로 들어오는 말다툼이 모두 끝나서, 고구려의 군사들이 몰려 오고 있었기에 맹광이 애써 힘겹게 버티지 않은 것에 불과 했다. 가야군의 갑옷이 화살을 막은 것 또한, 고구려군이 갖고 있던 큰 화살을 발사하는 신라에서 준 노포 기계가 숫자가 부족해졌기에 맹광이 갖고 오지 않아서 강한 화살을 못 쏘았기에 갑옷이 잘 막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구야중과 가야군이 나타나자, 도착한 고구려의 대군은 가야군과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가야군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신라에서 가져온 노포 기계가 도착하자 화살을 쏘는 대로 가야군의 갑옷에 퍽퍽 구멍이 뚫렸다. 고구려의 대군이 도착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종발성의 문이 열리고 가량공은 항복하였다. 구야중도 이날 죽었는데, 시체가 되어서도 칼을 놓고 있지 않는 장군이라하여, 고구려 병졸들이 모두 신기하게 그 손에 칼을 묶어 놓은 것을 구경하며 돌아 보았다. 맹광이 그것을 보더니,

"이런 것을 귀하게 여기면 안된다."

라고 말하고, 바로 자기 칼을 뽑아 시체의 손에 칼을 휘둘러, 칼을 떨어 뜨리도록 하였다.

가량공은 귀한 대접을 받고 그대로 모셔져서 신라 계림에 가 있다가, 얼마 후 다시 고향인 종발성으로 돌아 와서 여생을 지냈다. 얼마지나지 않아 가락국 궁전 사람들도 다시 다 돌아 왔다. 도령아간은 나중에 용녀가 가락국과 가야 곳곳을 함부로 다스리려고 하자, 다시 꾀를 꾸며 용녀를 몰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도령아간은 용녀를 몰아 내고 자신이 힘을 다시 얻은 뒤에 종발성 구야중의 집이 있던 자리에 구야중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워 주었다.

그런데 그 비석이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무너져 쓰러졌다. 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구야중의 형이 원통하여 비석을 깨 부순 것이라고 했다.


* "구야중"은 가락국 지역을 일컫는 말인 구야국 사람으로 둘째 아들 이라는 뜻으로 쓴 말입니다. "가량공"은 임나 지역을 일컬어 임나가량이라고 했던 기록에 따라 임나 지역의 높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쓴 말입니다. 현재 종발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한 가지 설이 없으나,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는 점에 대부분 뜻이 일치하고 있으므로 그에 맞춘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통설에 따라 가야 지역은 왕이 모든 지역에서 군림하는 나라가 되지 못하고, 성읍과 지역끼리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꾸몄으며, 소도, 순장 등의 풍습은 삼국시대 초기 혹은 그 전의 한반도 남부에서 있었던 일에 따른 것입니다. 보통 순장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부 비자발적인 발견 사례가 있기에 이야기 속에서는 애매한 죄인의 처리 방법으로 묘사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광개토왕릉비 만록편 http://gerecter.egloos.com/4983524"에 포함된 6회 이야기로 지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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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원한의 거리 2014/02/04 21:13 # 삭제 답글

    손에 칼을 묶고 싸운 장수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비장하고 불쌍하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 게렉터 2014/02/04 22:14 #

    불쌍한 느낌, 억울한 느낌을 강조하려고 한 번 꾸며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항거 2018/09/26 17:01 # 답글

    간단한 감상문을 써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https://lovemewithoutall.github.io/art/imna/
  • 게렉터 2018/10/01 21:45 #

    잘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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