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앤 에일리언 Cowboys & Aliens 영화

"카우보이 앤 에일리언"은 기억을 상실한 채로 땅바닥에 떨어져 어디로 가고 있었는 지 뭘하는 지도 모르는 "카우보이" 주인공 다니엘 크래이그가 깨어 나는 것으로 출발 합니다. 이 주인공은 싸움을 잘하고 총솜씨가 좋고 과묵하지만 거친 서부 사나이 입니다. 주인공은 터덜터덜 걸어서 한 마을에 당도합니다. 이리하여 이 영화는 "새로운 사나이가 마을에 나타난 이야기"로 흘러 갑니다. 물론 제목이 영화의 절반을 설명하는 이야기인만큼 마을의 소동과 주인공의 기억상실에는 외계인이 서부 사람들을 납치해간다는 사건이 엮이게 됩니다.


(포스터)

서부 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의 극초기 부터 나온 이야기인 만큼, 가끔 영화나 TV극 중에 "서부 영화의 정수만 모아보자"는 시도가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저런 서부 영화의 전통적인 내용들만 그저 뽑아서 한 데 엮으면 잘 내용들이 안 이어질 때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형적인 서부극 소재"들을 뽑아볼 핑계를 하나 굵직하게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 합니다. 시간 여행을 통해 현대의 주인공이 서부개척시대로 돌아 가서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요소들을 맛 본다는 식으로 구성하는 것은 가장 깨끗한 수법일 겁니다. "빽 투 더 퓨처 3" 같은 영화에서는 그래서 그 맛이 제대로 살기도 했다고 돌이켜 봅니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보통 서부 영화에는 잘 안나오던 아주 색다른 주인공을 들이 밀어서 이 색다른 주인공의 시점을 중심에 놓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소재들을 주욱 끌어다 대면서 이 희한한 주인공과 서부 영화 소재들이 부딛기면서 무슨 일이 벌어 지는 지를 펼쳐 놓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참신한 이야기도 하면서, 과거의 명작 서부극에서 나왔던 멋진 장면, 그럴싸한 인물들을 줄줄 엮어 부려 놓을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예로 꼽을 만한 것은 "샹하이 눈"에서 중국 무술을 사용하는 성룡이 서부로 간다는 이야기 일 겁니다. 소극적인 사례로는 "싸움 잘하는 여자"를 주인공을 해서 내용을 펼쳤던 몇몇 90년대 서부 영화들도 같이 묶어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 해 봅니다.


(서부에 온 외계인 우주선)

이 영화는 제목이 워낙에 선명한 영화인 것과 같이, 이번에는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를 중심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이상한 사건을 두고 서부 영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인물들이 차례로 나타나게 하면서 내용을 풀어 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내용들이 무척 잘 되어 있습니다. 서부 영화에서 항상 나타나기 마련인 깝죽 대다가 주인공에게 신나게 당하는 조무래기 악당이나, 술집에서 술집을 부수며 싸우는 싸움 장면 같은 것들이 지난 여러 명작 서부 영화에서 잘 보던 것처럼 잘 모여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도대체 외계인은 뭔 영문인가" 싶어서 숨겨진 이야기의 비밀이나,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싶어서 계속 지켜 보게 하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서부 영화의 재미난 맛을 다시 구경하는 것이 즐거운 영화 입니다. 황야의 풍경도 근사한 편이고, 서부의 거친 사나이들을 지켜보는 관객과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 등장 인물이나 싸움 잘 할 줄 모르는 술집 주인 등등과 같은 인물들도 연기며 표현이며 모두 훌륭했다고 생각 합니다. 총 쏘는 연습을 하는 술집 주인은 보고 있으면 언젠가 어떻게 활약하겠거니 뻔한 느낌이 듭니다만, 그래도 그런 정석을 지키는 대로 술집 주인이 한 번 활약하는 대목이 나오면 그대로 재밌었습니다. 옛날 서부 영화에 나오던 율 브리너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 인상이 굳다 못해 부러질 듯한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의 모습도 꽤 재미난 편입니다.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서부 영화의 재미를 끝까지 끌고 가는 최고의 주인공과는 좀 다르지만, 그 바로 다음 수준의 독특한 맛이 있는 주인공으로는 개성이 똑똑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저런 서부영화에 주인공의 라이벌이나 조력자로 나오는 "성격 나쁜 인간이지만 나름대로의 흥취가 있는 고집불통 농장주 영감님"도 나오고 이 역시 그 연기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이 영화에서 조무래기 악당이 깝죽 대면서 약은 짓을 해서 보는 관객을 짜증나게 하다가 주인공에게 통쾌하게 얻어 터지는 장면만 봐도 영화의 진가가 보인다고 생각 합니다. 이 대목의 연출을 보면, 크게 대단한 폭파, 화려한 군중 장면이 아니면서대로 정석대로 꾸며진 촬영, 편집, 좋은 세트, 노련한 조연 연기자들이 어울려서 서부 영화의 맛을 얼마나 재미나게 살리는 지 잘 알아 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술집 부수며 싸우기 직전)

그래도 이것저것 모아서 버무려 놓은 잡탕 같은 면 때문인지 이야기 전체 모인 모양에 흠이 드러나기도 하는 듯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특별히 환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편이 못된다고 생각 합니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 쪽에 대한 이야기 거리들이 별특출날 것이 없이 약한 느낌도 듭니다. 외계인들이 흉칙한 모습으로 갑자기 깜짝 놀래키며 튀어 나오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다소간 안이한 수법으로만 비칠 때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영화의 재미를 그런 놀래키는 장면 몇몇에 걸고 있는 영화는 전혀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대충 멀끔한 모양의 외계인이 서부의 눈부신 태양 아래 걸어 다니는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이렇게 뻐빠지게 한 영화라면 조금 더 특색있는 싸움을 펼쳐 주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 합니다.

남북전쟁 직후, 19세기 말엽의 인종주의에 대한 소재들도 어색해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 각본의 관점은 19세기때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종주의에 쩔어 있었는 지 그대로 보여 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인종주의를 극복하려는 몇몇 단초 요소들을 조금 깔아 줍니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를 보는 현대의 관객은 비판적으로 당시 시대상을 보게 되고, 현대의 많이 개선된 점을 더욱 긍정적으로 믿고 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남북전쟁의 피해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멕시코 전쟁,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싸움 등등을 짚어 나가면서 이런 방향을 견지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결코 잘 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해리슨 포드의 인물 같은 경우에는 출연료 비싼 배우라서 그랬는지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멋있게만 꾸미고 "알고보면 좋은 사람" 같은 내용을 무리하게 밀어 붙인 구색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서부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이런 구석이 있는 인물이 유난히 보일 때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는 비약이 심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나쁜 점과 좋은 점을 복합적으로 드러내서 입체적인 인물상을 만드는 데 성공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러다가 삐끗해서 억지로 꾸며 댄다 싶게 엉성하고 어림없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 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 굉장히 진지한 갈등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소재 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풍습을 가진 괴짜들"로 나와서 농담거리로 대충 짚고 넘어가는 "샹하이 눈"의 모습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습니다.


(서부의 사나이들)

말타고 황야를 달리는 총잡이들이 벌이는 모험의 면면을 보기에 좋은 영화 입니다. 요즘에는 웃음거리 속에서 나오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말 없는 정체 불명의 떠돌이 사나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꽤나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주워 담습니다. 동시에 서부 영화 답게 소위 "미국식 농담"은 풍부합니다. 게다가 "카우보이와 에일리언이 싸운다"라는 소재는 듣기만 해도 황당한 장난질 같다는 점도 아주 져버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 온 목적을 말하는 대목 같은 부분을 보면, 진지한 면모가 있기는 해도 이 모든 것이 영화 속 세상의 쇼라는 쾌활함으로 슬쩍 웃고 지나가는 맛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그럴듯하게 한 두 마디를 던지며 분위기를 잡아 주는 것은 해리슨 포드 같은 명배우의 훌륭한 재주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헨리 폰다가 등장하는 유명한 한 옛 서부 영화를 두고 작업했던 감독이 "이 영화는 헨리 폰다가 무슨 역할로 나오는 지 자체가 반전"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도 해리슨 포드가 영화 시작한 지 좀 있다가 등장하기 때문에 비슷하게 도대체 해리슨 포드가 무슨 역할로 나오는 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재미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봅니다. 해리슨 포드는 과거 자신이 연기하던 상징적인 인물들의 그림자를 다 털어 보이고 - 그래도 말타고 먼지 휘날리며 다닐 때는 인디아나 존스의 멋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만 - 극중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보여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해리슨 포드가 "I am your father."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기도 했던 스타워즈 2편의 장면을 꽤 떠올리면서 재밌어 했으리라 생각 합니다.

영화관의 한글 자막이 다른 영화에 비해서도 모자란 면이 더 눈에 보인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등장인물들이 한 말을 자막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번역하는 사람이 느낀 바를 자막으로 옮겨 놓은 말들이 특히 보이는 편이었습니다. 술집 주인 인물을 극중에서 박사, 의사를 부르는 말인 "Doc"이라고 부르는 데, 이걸 박사나 의사 선생 정도로 번역하지 않고 자막에 그냥 "도크"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것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 이름이 원래 이런 건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덧글

  • 잠본이 2011/08/15 20:54 # 답글

    크레이그횽은 사실 총솜씨보다는 주먹질 솜씨가 더 돋보이더군요. (역시 007...어라?)

    번역은 TF3이나 미국대장과 마찬가지로 치킨런씨던데 의역이 좀 뒤틀린 부분도 보였던 듯
  • 게렉터 2011/08/17 08:29 #

    우주선에 매달린 채 날아다닌 부분은 그야말로 요즘 007 영화 같았습니다.
  • feox 2011/08/15 22:55 # 삭제 답글

    ㄷㄷㄷ
    이름이 도크가 아니었나요?;;;

    영화좀 밍숭맹숭하기는 했지만,
    번역이좀 이상하다 했는데,
    이런 짓이 있었군요.
  • 게렉터 2011/08/17 08:31 #

    영화 보면서는 저는 당연히 "의사 선생" 내지는 "박사 선생"의 애칭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막에 뻔히 "도크"라고 씌여 있으니 보고난 지금은 혹시 또 무슨 뜻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디옥시코르테손"을 줄여서 쓰는 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설마 이름이 디옥시코르테손이었는지 뭔지...
  • 잠본이 2011/08/17 10:17 #

    벅스바니가 늘 쓰는 doc처럼 그냥 '형씨'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좀 미묘하긴 하네요. '닥'도 아니고 '도크'라니
  • BlackGear 2011/08/16 00:08 # 답글

    뭐 생각없이 보기엔 더없이 재밌던 영화긴 했습니다;
  • 게렉터 2011/08/17 08:31 #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 鷄르베로스 2011/08/16 10:23 # 답글

    영화 분위기는 딱 제 스타일인데 이거 막상 보려니 웰케 망설여지는걸까요? ;;;;
  • 게렉터 2011/08/17 08:32 #

    저는 딱히 딱 제 스타일이 아닌데도 약간 망설여졌었는데 보니까 재밌었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분위기에 잘 안맞고 즐겁고 신나는 느낌을 좀 죽이지 않겠나 싶어서 꺼려졌는데, 보고 나니까 그런데로 재미났습니다.
  • 치즈 2011/08/17 05:12 # 삭제 답글

    도입부는 참 좋았는데 마지막 부분이 너무 엉성해서 아쉬웠습니다.
    저는 성룡의 열렬한 팬인데,
    다니엘 크레이그는 서양배우 치고는 나름 흡족한 액션을 보여주는 배우인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1/08/17 08:32 #

    저 역시 결말보다는 초반이 훨씬 재미났다고 생각 합니다. "에일리언" 쪽 보다는 "카우보이"쪽이 재미났습니다.
  • deepthroat 2011/08/22 09:57 # 답글

    왠지 이 영화는 게임 레드데드리뎀션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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