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퍼씨네 펭귄 (2011) 영화

포스터만 보면 대충 어떤 영화인지 끝까지 짐작해 볼 수도 있을만한 영화로 보이는 "파퍼씨네 펭귄"은 대략 이런 이야기 입니다. 뉴욕에서 부동산 사업체의 유능한 직원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는 주인공 파퍼씨, 짐 캐리는 어느 날 아버지가 유품이랍시고 보내 준 살아 있는 펭귄 한 마리를 받게 됩니다. 짐 캐리는 당황하지만 펭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한 며칠 버티게 됩니다. 맨하탄 고급 아파트에서 펭귄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은데, 펭귄의 숫자는 여러마리로 곧 늘어나서 꽤 큰 소동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일만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짐작한 바 대로의 영화입니다.


(짐 캐리)

그런데 살짝 어긋나는 지점은 이 영화는 "낭만적인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동물 영화" 이긴 합니다만, "동물 영화" 부분에 모든 것을 거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물 영화 맞긴 맞습니다. 영화사에서 기념품으로 펭귄 인형 장사라도 해 보려고 하는 지, 아니면 뉴욕 동물원에서 지원을 받았는 지, 펭귄들을 호감가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또 똘똘한 개가 나와서 재롱을 부린다거나, 동물들이 사람을 따라하며 앙증맞은 재주를 보여주며 "감동 실화"로 나아가려는 영화와는 방향이 살짝 다르기도 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강조하는 영화들의 전형적인 줄거리와 연출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히 혁신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 영화 역시 동물 영화의 닳고 닳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써먹습니다. 동물이 나타나 난장판이 되는 파티 장면이라든가, 동물 "보호"하는 기관의 사람들이 왜인지 영화 속에서는 항상 동물을 가두고 괴롭히는 적으로 나오곤 한다는 것들은 케케묵은 형식대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가 다른 부분은 동물 이야기에 새로운 뭔가를 짚어 냈다기 보다는, 그것 말고 같이 어울려 있는 다른 이야기 거리를 연출하는 데 비중을 꽤 깊게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영화)

이 영화는 펭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전체 내용의 틀은 말을 해보자면, "매디슨 스퀘어의 아라비안 나이트"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할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온갖 사람이 복작거리며 사는 거대한 도시가 있는데, 그렇기에 그 도시 한 켠에서 도시만의 별별 사연, 갖가지 희한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모양은 이미 한 세기 이상전에 O. 헨리가 단편 소설에서 멋드러지게 뽑아 냈거니와, "낭만적인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이 비슷비슷하게 꾸며 내는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살벌한 도시, 일터에 뛰어든 패기 넘치는 청년은 먼 바다로 장삿배를 몰고 바소라 항구를 출발하는 신밧드와 같은 선원일 것이고, 괴짜 백만장자는 아라비안 나이트 속, 신기한 버릇을 가진 수수께끼의 술탄에 견줄만할 것입니다. 각계각층의 좀 극적으로 꾸며진 여러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고 부딪기며 이리저리 도시를 휘젓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되어 있는 것들은 뉴욕 이곳저곳의 풍경들을 모범적으로 잘 잡아낸 솜씨라고 생각 합니다. 이 역시 뉴욕의 새로운 이면을 잡아낸 것도 아니고, 넘볼 수 없는 아주 창조적인 화면을 꾸며낸 것도 아닙니다. 관광 홍보 영상이나 엽서 같은 곳에 흔히 실릴만한 풍경을 매끈한 솜씨로 보여주는 정도 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내용들을 쓸데 없이 그냥 몇 번 대충 뿌리고 지나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와 어울어지게 잘 꾸며 넣었습니다. 뉴욕의 정경이 줄거리 속에서 보여주고 싶은 내용과 엮이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러쉬모어 산 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세세한 부분들을 요리조리 짜놓았습니다. 유서 깊은 빌딩을 팔고 사는 것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비춰 주고, 사람보다 훨씬 작지만 꼭 사람의 팔자걸음처럼 걷는 펭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브룩클린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구조를 활용해서 소동을 꾸며 놓은 부분 같은 것들도 이런 내용들의 하나로 꼭 맞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해 놓고 있으니, 호텔식 레지던스에서 혼자 사는 고액연봉자,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지혜로운 하녀와 같이 충성스럽고도 초인적으로 주인공을 따르는 기막힌 여자 비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유서 깊은 식당 건물 하나를 절대 팔지 않는다고 버티는 괴팍한 백만장자 등등이 얽히는 대도시의 이야기들이 썩 보기 좋게 살았다고 생각 합니다.

펭귄에만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기는 했는데, 그렇기는 해도, 펭귄 역시 아주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만화나 영화에서 펭귄을 다룰 때 으레 그렇듯이 지나치게 인형처럼 표현한 모양이 많긴 합니다만, 펭귄이 울음소리를 내는 부분이나 난리를 치는 부분 등에서는 또 머나먼 지역에 사는 괴상한 야생동물 다운 사실감을 뿜어내도록 꾸며 놓은 면도 있었습니다. 움직임은 모두 활기차고, 화면과 어색함이 없이 모두 잘 어울렸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펭귄에 대해 딱히 무슨 고정 관념을 깨는 신비한 뭘 보여주는 영화는 못됩니다만, 동물 자체 말고, 다른 이야기에 갈등 구조가 더 깊은 이야기 답게 그저 펭귄을 멋지게 좋게 보여주기 보다, 지금처럼 표현한 것은 오히려 이 영화에 걸맞았다고 생각 합니다. 두 가지 관점의 연출이 어울리는 모양을 보자면,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에서 기러기의 모습과 비행이라는 소재, 주인공의 성장간의 비중이 떠오릅니다.


(뉴욕, 창문 바깥 풍경만 봐도 집값이 짐작될만한 곳)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야기의 진지한 모양은 "아름다운 비행"과는 갖다 댈 바가 아닙니다. 저 머나먼 뉴질랜드에서 캐나다로 와서 적응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충분한 힘을 다하여 다룬 "아름다운 비행"에 비하면, 이 영화 속의 이야기들은 그저 "영화 속 세상에서만 나오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버무린 정도 입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도 넘쳐나고, 저런 이야기는 너무 입에 물리고 눈에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온다 싶어서 오히려 이제는 부작용이 너무 크지 않나 싶은 것들까지 있습니다.

꼽아 보자면 이런 것입니다. 아이를 두고 이혼한 부부들은 다시 재결합 하는 쪽으로 흘러 가야하고, 거대 기업과 자영업자가 맞부딛히면 거대 기업이 사악한 자들이고 자영업자가 이기는 것이 행복한 결말 입니다. 동물은 전문가라는 자들에게 주면 안되고 집에서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고, 10대가 된 딸은 파티에 어느 남자와 같이 가는 것 때문에 울고 불고 하는 데, 그 남자라는 놈은 알고 보면 바람둥이인 별볼일 없는 놈이라는 것들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 영화 속에서는 마치 "원래 이 바닥이 다 이런 것이다"라는 투로 별 대책도 없이 달라 붙어 있습니다. 낭만적인 분위기로 설렁설렁 놀며 흘러가는 영화 분위기를 감안한다고 해도, 그래도 좀 더 진짜 같이, 조금은 더 다채로운 갈등과 성격을 갖고 있는 모양으로 장식해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쓸데 없는 걱정 입니다만, 이런 생각도 잠깐 해 봅니다. 부부 나름대로 고민 많이 해서 이혼했을 텐데, 그걸 꼭 펭귄 나오는 영화에서까지 이렇게 인생의 흠결이라는 식으로 짚어야 겠습니까? 영화 본 아이들 중에 공교로운 몇몇에게는 괜히 열등감에 빠지는 일은 안 생기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부모가 이혼한 친구를 보는 아이들의 시각에 이유 없는 동정을 심어 주지는 않을지? 이 영화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끝까지 집 안팔고 버티는 센트럴 파크의 식당 주인이 고결하게 나옵니다만, 만약 배경이 맨하탄이 아니라 여의도 어디 쯤이었다면 단번에 알박기 수법 욕하는 말부터 나오기 십상이지 않겠습니까?


(기본 대형 - 선두 아버지, 중간에 아이들 둘, 후미에는 어머니)

정말로 이 영화에서 이런 점들이 그런 식으로 단점이 된다기 보다는, 그런 식으로까지 몰아가 볼 수도 있을만큼 이 영화 줄거리의 몇몇 굽이굽이가 단조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그런 대목일 수록 주인공 짐 캐리가 개인기로 때워 버티면서 가다듬어 보려고 하고 있기는 했습니다. 좀 나아 질 때도 있고, 너무 닳고 닳은 수법을 써서 그저 좀 덜 지겹게 해준다 뿐이지 별 효험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체를 보면 짐 캐리 개인기로 때워 넘기면 좋아질 대목을 골라서 도움 될 수 있도록 집어 넣은 편이라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맨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연설도 뭣도 아닌 이상한 등장 때문에 갑자기 주인공편이 확 모든 것을 다 얻는 결말이 나옵니다. 이 부분은 결정적인 전환이면서도 동시에 도무지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여기서 짐 캐리는 그야 말로 요즘 우리나라 TV 코미디 쇼에서 보일법한 개인기로 상황을 때워 보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유쾌함이 웃음을 더하는 면이 있기도 하거니와, 보기에 따라서는, "좀 황당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아파트에서 펭귄 키우는 이야기인데 그냥 대충 쌈싸먹고 넘어 가자"고 무마하는 재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뉴욕도, 펭귄도, 보기 좋게 잘 담아낸 화면이 재미를 더하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중심 줄거리와 인물의 구성이 이렇게 뻔한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래도 각본의 세부를 보면, 소재를 많이 활용해 보려고 힘쓴 부분, 그래서 조금이라도 재미를 더 건진 부분들은 조목조목 잘 자리를 잡고 있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펭귄이 추운 곳에서 사는 동물이라는 점, 펭귄이 날지 못하는 새라는 점과 같은 몇몇 특징을 장면 장면 써먹으려고 힘썼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일 수록, 각본의 복선과 암시 수법을 앞뒤로 잘 살려서 이야기 내용에 좀 더 빨려들도록 짜두기도 했는데, 느긋하게 보는 가운데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밖에...

영화 번역 평균에 비해서 번역이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짐 캐리가 하는 대사의 많은 부분이 다른 무엇인가를 인용하면서 농담을 만들어 내는 부분이라 한계를 보이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짐 캐리가 센트럴 파크의 식당 주인에게 은퇴 후의 꿈 같은 생활을 묘사해서 현혹하면서, "귤나무가 있고 하늘은 마멀레이드 색깔이고..." 말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짐 캐리는 "Strawberry Fields 로 나갈 걸 그랬다"고 하는 데, 이걸 "비틀즈 노래 가사로 밀어 볼 걸 그랬어"라고 합니다.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비틀즈 노래가 유명하기 때문인데, 이게 농담이 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귤나무 어쩌고 하는 대사 역시,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노래 가사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센트럴 파크가 있는 곳에 "Strawberry Fields"가 있기도 하니, 어느 방향이건 잘 골라서 번역 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덧글

  • 치즈 2011/11/01 09:33 # 삭제 답글

    짐 캐리의 개인기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영화는 그리 재밌지 않았습니다. 펭귄과의 에피소드보다 짐캐리가 악랄한 기업가로 등장할 때의 에피소드들이 더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만을 따로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 게렉터 2011/11/08 15:04 #

    지나치게 평범한 이야기인 맛이 있었습니다. 뉴욕 정경 담아낸 촬영 수법이 제일 남는 영화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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