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2011) 영화

주인공이 모험에 뛰어들게 되는 동기가 다소 독특하니 만큼, "카운트다운"은 어떻게 출발하는 지 모르고 구경할 때 좀 더 재미난 영화 아닌가 합니다. 대강 밝혀 보자면 이렇습니다. 채권추심원인 주인공 정재영은 어쩌다 보니 죽을 판이 되고, 목숨을 구해 줄 유일한 사람은 이제 막 출소한 전문사기꾼 전도연입니다. 전도연이 사기꾼인 까닭에 쉽게 협조를 얻기가 어려워서, 정재영은 각종 모험을 하며 쫓아 다닌다는 겁니다. 대체로 이야기 흐름은 박진감 넘치는 흥미 끄는 이야기로 출발했다가 막판에는 돌연 신파 눈물 흘리기로 돌변하는 21세기 한국영화의 틀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비슷한 모양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넘어가는 전환을 그래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훨씬 더 열심히 꾸며 놓은 편이라고 생각 합니다.


(포스터도 할리우드 액션)

이 영화에서 초장부터 재미를 뽑아낸 이야기는, 고전 범죄물, 명작 활극에서 쌓아두었던 이야기 거리를 펼쳐 보이되, 요즘 세태를 잘 들어 맞게 연결해 놓은 것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장난스러운 사기꾼 범죄자라든가,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부하를 꾸짖는 폭력조직 두목, 울적하고 과묵하여 말 없는 사나이지만 악착 같이 의지를 불태우는 주인공 등등은 많은 옛 영화에서 보던 대로 입니다.

자동차 추격전 장면이나 사람 많은 백화점에서 사기꾼을 찾느라 뒤지는 장면 같은 것들은 90년대 활극에서 비슷하게 자주 보이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을 끌고 오는 방법에서부터 연출까지 이 영화는 그런 선례를 잘 따라는 모양으로 꾸며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통에서 난장판을 만들며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자면, 뭔가 굴러가는 것을 타기만 하면 꼭꼭 시장통으로 가서 과일 쌓인 것을 엎어버리곤 하던 성룡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요즘 세태가 반영된 현실감 나는 소재들을 곳곳에 끼워 놓았습니다. "이런 참신한 소재를 사용했다! 예리하지?" 하고 그저 자랑하려는 용도로 소재를 세워 놓은 몇몇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가 끌어 모으고 있는 소재들은 각본에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소재들은 그렇게해서 이야기 구조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합법화된 채권추심 전문가나, 호신 무기로 사용하는 전기충격기, 신종 다단계 업체의 수법, 부동산 투자 사기 수법, 휴대폰 명의 불법 복제 등등의 시사적인 이야기 거리들이 잘 따라가며 영화 속에 어울려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이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기도 하고, 개성 있고 호기심 불러 오는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생각 합니다. 중국 청나라 때 즈음에 유행해서 우리나라에도 퍼졌던 일지매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해 범죄 현장에 자신을 상징하는 매화나무 한 가지를 놓고 떠나는 도둑이 나왔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범죄자가 추적자를 비웃기 위해 휴대전화로 찍은 자기 사진을 보내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흥미를 끌고 긴장감을 높이는 빠르고 팽팽한 이야기로 몰고 나가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 울적한 느와르 화면, 파랗게 쌀쌀한 느낌의 사회비판적인 배경이 잘 어울리게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정재영이 위기에 빠졌다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삭막하게 벌여진 도시의 빌딩들과 도로를 화면에 담아 보여 주다가 자동차가 멈추는 대목 같은 곳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잘 섞인 맛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농구 선수를 찾아 가는 부분 같은 것은 기교가 뛰어난 부분이었습니다. 궁금증을 크게 만들고 뒷 이야기를 보고 싶게 하면서 짧은 몇 화면 바뀌는 사이에, 숨겨진 사연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 속에 담아서 풀어 놓되, 그 와중에 기-승-전-결을 다 담아 내는 좋은 기술이 볼만했다고 생각 합니다.


(좋은 투자할 땅이 있다는 사기꾼)

재미난 소재로 배치 되어 있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중국계 폭력 조직이었습니다. 국적이나 인종을 끈으로 해서 여기저기에 넓게 퍼져 있는 2류, 3류 폭력 조직입니다. 폭력 조직 두목이 쓰는 독특한 말투나 "내가 이 나라에 와서..."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읊조리는 대사를 하는 등등의 모습을 보면, 묘사한 수법은 할리우드 범죄물에서 흑인 갱단이나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을 묘사해 오던 것과 아주 비슷 했습니다. 악당 두목이 부하들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하고 주인공들과 날선 대화를 나눌 때 꾸며 놓은 모양은 할리우드 영화 속 소수민족 갱단들의 표본 그대로 같았다고 생각 합니다. 옷차림은 또 어떻습니가?

그런데, 그렇게 하되, 중국계 폭력조직에 대해 매체에서 보도된 특징이나, 특이한 말투 같은 것은 나름대로 담아 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사실감 있는 묘사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하는 수준은 아니 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야기의 갈등 속에 쉽게 쉽게 어울어지면서 동시에 독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고 관심도 생기게 하는 목적은 무척 잘 달성하고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여러번 시도된 인물들인 만큼 그만큼 이야기를 짜기 좋아지는 인물 구성에, 나름대로 독특한 주인공의 동기가 엮인 것이 이야기를 잘 밀고 나갔다고 생각 합니다. 사기꾼 전도연이 얼마나 뛰어난 사기꾼인지 분위기를 깔기 위해서, "전설을 들려주는 태도"로 형사의 설명을 배경에 깔고 가벼운 요약으로 전도연의 실적을 보여 주는 대목에서 이런 특징은 잘 드러난다고 생각 합니다. 옛날 괴도 뤼팽 소설의 "밀짚 빨대" 이야기를 할 때 부터, "데스페라도" 같은 영화의 시작 장면까지 즐겨 쓰이는 연출 구성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심심한 모양새입니다만, 그래도 그래서 매끈하게 보기가 좋고 틈틈히 잘 잡혀 있는 인물의 세부 사연과 잔이야기 거리들이 재미를 더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중국계 폭력조직 두목)

역시나 이런 재미 거리들이 무너지고 어딘가 힘을 잃는 대목은 막판 눈물의 신파극부터 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 가고 싶은 것은, "막판 눈물의 신파극"치고는 상당히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웃기고 놀래키고 지나가다가 괴상하게 눈물의 신파극으로 돌변하는 한국영화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만은, 난데 없는 돌변이다 싶은 그 많은 영화들에 비하면 적어도 이 영화는 "난데 없는 돌변"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막판 눈물의 신파극을 위해서 복선을 깔아 주는 이야기가 영화 맨 처음 부분부터 꾸준히 잘 깔려 있고, 모든 이야기가 파국을 맞는 장중한 결말로서 역할을 맞출 수 있도록 완급이 잘 조절되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과묵하고 울적한 주인공이 점차 속내와 사연을 드러내는 것이 전체 이야기인 까닭에 그 주인공의 과거와 연결된 막판 눈물 신파극이 이야기 속에 꽤 잘 들어오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점은, 그래도 이야기를 재밌게 잘 보던 중심과는 내용이 어긋나면서 재미가 홱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양이고 결말을 마무리 짓는 색다른 전환으로 역할도 좋기는 했습니다. 좋게 보자면, "막판에 갑자기 신파극으로 돌변하는 한국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연결이 뛰어난 축에 속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어쨌거나 "갑자기 신파극으로 돌변"하기는 한다는 겁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악착 같이 쫓아다니던 주인공, 주인공을 살려줄 열쇠를 쥐고 있는 전도연, 전도연을 둘러싼 폭력 조직들, 많은 것이 엉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슬아슬한 싸움 이야기를 다 져버리고 그저 답답하고 평범한 신파극으로 날아 가버리고 마는 겁니다.

이 영화를 지켜 보면서 재미가 있었던 부분은 과연 주인공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전도연을 두고 싸우고 있는 폭력조직의 승패는 어떻게 맺어질까 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 군데에 모여 엉겨 싸우기 시작하고,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뛰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호기심과 긴장감은 잘 맞춰 따라갔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신파극으로 돌변하고 나면, 이 모든 것이 다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중국계 폭력조직들은 방향 없이 싸우게 되고, 전도연의 원수인 악당은 아주 얍삽하게 탈출했다가 시간 되니까 그냥 나자빠질 뿐입니다. 믿을 수 없고 미운 사람이지만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살려야 한다는 전도연과 주인공의 갈등 넘치는 상황도 사라집니다. 주인공은 그런 갈등과 관계 없이 움직입니다. 최고의 사기꾼으로 등장해서 갈등을 계속 이리저리 부쳐 먹었던 전도연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묶여 있기만 합니다. 그 대신에 영화를 채우는 것은, 갑자기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아이가 "아빠, 하늘은 왜 파래?" 같은 금세기 이후로는 동요 작사가들도 감히 사용하기를 두려워한 수위로 씌인 "어린이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대사들이 관객들의 얼굴이 얼마나 붉어지는지 아랑곳 않고 쏟아져 내리는 겁니다.

과거를 알기 어려운 과묵한 주인공을 갖다 놓은 만큼, 영화 결말에 주인공의 과거를 드러내면서 대단원으로 가는 것까지는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거기로 모든 걸 몰두하기 보다는, 적당히 늘어 놓고 넘어 간 뒤에, 영화 내내 끌어 왔던 소재와 재미거리들을 더 폭발시키는 쪽으로 몰아 보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다른 영화의 예를 들자면, "슛 뎀 업" 같은 영화는 결말 즈음으로 가서 정체 불명의 과묵한 주인공이 어떤 과거를 살았는지 털어 놓는 시간을 갖기는 합니다만, 그건 그냥 짧게 소개만 하고 넘어 가고, 정작 중요한 마지막 결투는 그대로 꾸준히 엮어 나간다는 겁니다. "슛 뎀 업"에서 결말은 영화 내내 웃음을 주었던 "당근"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마땅했던 것처럼, 이 영화 "카운트다운" 역시 전도연의 기막힌 사기 수법 정도로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느와르 영화)

어찌보면, 그럴듯한 재료는 잘 풀어 놓고 연출의 모범을 따라 술술 따라 갔지만, 결판 무렵에는 좋은 마무리를 떠올리지 못해서 상투적인 눈물의 신파극으로 틀어 막은 모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기울인 노력들이 그래도 힘을 쓰기는 하니까, 보다보면 또 다른 생각도 듭니다. 원래 영화를 만들고 각본을 쓰던 때에 초점을 맞춘 소재들과, 투자자나 제작진의 다른 사람이 관객을 끌기 위해서 집어 넣으라고 한 장면이 충돌을 빚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눈물의 신파극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긴장감 넘치는 활극으로 나아가야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고 만들어서 이렇게 어울려 버렸다든가, 혹은 그 반대였다든가 싶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깔끔하게 손질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미 없는 뻔한 모양으로 빠지는 구석이 있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는 맨 마지막 장면 즈음에 서로 서먹서먹했던 두 사람이 이제 좀 친해졌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따로 떨어져서 나란히 걸어 가다가 한 사람이 손을 수줍게 서서히 내밀어 손을 잡고 걸어 가는 것을 걸어 가는 뒷모습 쪽에서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시장 바구니 속의 대파나, 카메라가 있는 쪽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 TV속 식탁만큼 자주 보던 장면 입니까.


(전도연)

정재영은 과묵하고 사연 많은 듯한 과거를 갖고, 고달픈 상황에서 분투하는 주인공으로 제격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싸움 장면이 눈에 뜨이게 연출된 영화는 아닌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싸움 장면에서의 연기도 자연스럽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양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영화 대사가 어렵게 갈 때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구석은 있었습니다. 눈물의 신파극으로 넘어 가기 위해 조금 억지스럽게 꾸려 놓은 실감 없는 대사들이 나오면 그때마다 헤메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에 비해 전도연은 모든 부분에서 매끄러웠다고 느꼈습니다. 전도연의 간드러진 콧소리는 호들갑스럽게 꾸며 대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연기에 절묘하게 들어 맞았다고 생각 합니다. 우락부락하고 덩치큰 범죄와 엮인 남자들이 싸돌아다니는 이야기 구조에서, 혼자 조그마한 체구의 여자를 연기해서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홀로 눈에 뜨이게 빼어난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을 표출하는 모양도 썩 잘 잡히고 있었습니다. 정재영과는 달리 대사가 상투적으로 빠져서 어색해질 때도, 꽤 그럴듯하게 들리게 전도연은 잘 꾸며서 보여준 편이었습니다.


그 밖에...

"삼국사기"에 김춘추가 연개소문에 붙잡혔을 때 듣고 꾀를 얻는 이야기로 소개 되어 있는 그 이야기가 이 영화 속에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만, 보통 이 이야기는 "토끼전" 이야기나 "별주부전" 이야기, "수궁가" 이야기 정도로 불리우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라고 하면 대개 이솝 우화에 나오는 경주하는 이야기의 제목이 더 어울리지 싶습니다. 별 상관 없는 이야기 입니다만, 이미 삼국시대에 정착된 이야기니 충분히 한국화된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이 이야기 자체는 불교 설화에서 건너온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덧글

  • 곰아저씨 2011/10/04 16:09 # 답글

    좋은 평 잘 봤습니다. 그 밖에 5번째 단락 '배구선수'는 '농구선수'의 오타가 아니신가하여 덧글 남겨봅니다.
  • 게렉터 2011/10/04 20:55 #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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