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Real Steel, 2011) 영화

"리얼 스틸"은 허구헌날 맥주만 퍼마시는 망해가는 업자가 로봇 권투용으로 개발된 로봇을 트럭에 싣고 시골 마을에 나타나,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지방 소싸움 잔치에 흥을 돋구는 일을 해 보려는 것으로 시작 합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의 내용은 가까운 미래, 로봇끼리 권투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된 시대에 망나니 같은 철 없는 주인공이 로봇을 조종하며 로봇 권투판을 돌아 다니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내용은 이 망나니 주인공이 자기 아들을 만나서 같이 지내면서 조금은 철이 든다는 상당히 아늑하고 교훈적인 투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포스터)

이 영화에서 눈에 뜨인 점은 영화 배경의 대부분을 텍사스와 그 일원의 미국 농촌 동네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 대단한 풍경 없이 들판만 펼쳐진 정경을 잡아내기도 하고, 농업이 번성하던 시기에 반짝 도시로 커졌다가 지금은 퇴락한 도시의 구석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습니다. 구성진 텍사스 사투리나 남부 억양을 쓰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딱 그런 시골 사람들 처럼 대사를 읊는 부분도 있습니다. 시장 장면을 소싸움 잔치로 출발하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굳히면서 출발하는 상징적인 맛까지 띄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출발하는 것은 격투 로봇 이야기에 결코 정확하게 들어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격투 로봇이라면 네온 사인이 번쩍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오른 도시라든가, 우주 식민지 같은 곳이 쉽게 배경에 들어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런 전형적인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어느 정도 포기한 대신에 이 텍사스 시골 배경으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운치를 잡아 내는데 성공 했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적어도 소싸움 판에 격투 로봇이 들어서면서 출발하는 영화라는 진기한 장면 자체가 개성을 갖는 맛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절정 장면의 결투는 시골과 대조 되는 뉴욕 같은 대도시에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줄곧 활동하던 배경과 전혀 다른 곳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그런 배경의 대조가, "주인공이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성취감, "정말 대단한 결전장에 왔다"하는 두근 거리는 느낌을 주변 배경을 설정하는 것으로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렇게 시골 배경으로 이야기를 잡아 나가면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망나니 주인공의 희망 없는 망한 처지를 잘 살리는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이 덜 된 농촌, 무너져 가는 지방 도시의 정경이 자연스럽게 빚에 쪼들리고 술에 쩔고, 미래에 대한 별 희망도 없는 썩은 주인공의 모습에 걸맞아 들어 갔다고 생각 합니다. 따분하게 내려 쪼이는 텍사스의 햇살이나, 일감을 찾아서 이 도시 저 도시 트럭을 타고 밤새도록 지긋지긋하게 펼쳐진 도로를 달려야 하는 그 팍팍한 삶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잡아 채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격투하는 미래 로봇이라는 세련되고 맹렬한 소재를 끌고 가면서도 그 주변 인물을 묘사하는 모양에는 슬쩍 현대 사회의 한 모습을 찍어내는 것을 어울리게 섞어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배경을 선정한 것이 절묘해지는 대목은 이런 배경과 로봇 격투라는 중심 소재를 연결시키는 좋은 끈을 잡아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첨단 기술, SF 시각의 상징인 격투하는 로봇을 고달픈 시골 장돌뱅이 퇴물의 삶과 연결 시키기 위해서 프로레슬링을 끌어다 붙인 겁니다. 프로레슬링 대신, 미국에서 짭짤한 인기가 있었던 괴물 트럭 경주를 갖다 대도 비슷할 겁니다. 바로, 그런 시골 사람들이 특히 좋아할만한 적당히 신나고 적당히 난잡스러운 그런 흥행 스포츠를 갖다 댄겁니다. 우아하게 스윙을 하고 백만달러를 상금으로 집어 가는 골프나 테니스가 아니라, 치고 받고 소리지르고 인기 끌수만 있다면 나자빠지고 뒹굴어서 웃기기도 하면서 진땀을 빼고 피를 튀기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열광시켜서 몸값을 벌어 보려는 프로레슬링 이야기들 말입니다.

미키 루크가 주연을 맡은 영화 같은 경우에는 바로 이 프로레슬링 선수의 고달픈 이야기를 그대로 핵심으로 밀어 붙이면서 울적하고 끈끈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감정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나가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도 그런 식으로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격투하는 로봇을 이런 프로레슬링 이야기처럼 다루면서, 격투하는 로봇이라는 소재와 망한 주인공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시골 풍경을 꽤 깔끔하게 연결해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재를 묶어 나가는 것은 이야기를 신선하게 풀어 나가기도 좋았거니와, "춤추는 로봇은 인기가 있다"는 장면과 같이 프로레슬링의 재미난 이야기 거리들을 SF 상상으로 풀어서 경기 자체를 더 재미나게 보이는 술수를 부려 보기에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무엇 보다도, 이 덕택에 꽤 틀에 박힌 듯 이야기를 진행 할 때에도 인물들이 복잡한 감정과 인생사에 얽혀 있다는 실감이 두터워졌다고 생각 합니다. 펼쳐 놓고 보자면야, 망나니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고 나서 망나니에서 2cm 정도는 벗어나간다는 이야기는 할리우드에 내리는 빗방울 같이 많은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이런 실감 나는 입체감 때문에, 그 망나니 아버지가 철없이 "큰 거 한 건"만을 노리고 빌린 돈을 퍼부으면 관객은 또다시 진심으로 답답해 할 수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잘 연구해서 재미나게 뽑아낸 촬영 수법들이 힘을 발휘해서 훨씬 볼만해 졌습니다. 텍사스와 시골 고속도로의 풍경을 화면에 담는 풍경은 튼실하거니와, 불꽃튀는 경기 장면에서 열광하는 관중들을 보여주고 거기에 아나운서의 해설을 담아내고 군중 장면을 구성해낸 모양도 깨끗했습니다. 특히 몇몇 장면들은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재밌게 보이는 장면들 중에 최고만 잘 따와서 멋드러지게 꾸며서 진짜 "경기" 같이 보이게 하면서도, 감정을 돋구는 맛이 출중한 것이 대단한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막판 대결전을 위해 매우 강력한 로봇과 주인공이 경기를 벌이는 데, 상대방 로봇이 등장할 때의 그 둔중한 느낌과 위압감을 드러내는 방법은 최고의 솜씨였다고 생각 합니다. 프로레슬링 중계 같은 연출, 방송 느낌은 분명히 남아 있으면서, 그대로 주인공이 겪는 부담감, 공포심까지 생생히 관객에게 전해줄 만큼 중후함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열광의 링)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로봇 역시 그 표현은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에일리언 시리즈의 외계인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전투기 처럼, 그 모양 자체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대단히 멋진 것들은 아닙니다. 그냥 사람 덩치 두 배쯤 되는 격투게임용 로봇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릴만한 모습 정도로 나타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부드럽고 빠른 동작의 로봇 격투를 보여 주면서도, 강철로 된 로봇의 무거운 느낌, 막강한 공격이 쇳덩어리를 때리고 부순다는 힘은 생생하게 드러내 주도록 꾸며져 있었습니다. 움직임이 빠르고 느린 것이 잘 짜여져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로봇이 움직이면서 땅에 떨어지고 주변의 물건들에 부딛치는 충격을 육중하게 묘사하는 게 좋아서였기도 했을 겁니다. 이 영화 속 로봇의 움직임은 별로 거대한 로봇 같은 느낌이 없이 그저 현란하게 날뛰기만 했던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로봇보다 훨씬 더 쇠붙이 느낌이 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로봇이 백주 대낮에 뛰어다니고 사람이나 풍경과 함께 어울려 움직이는 묘사가 별 어색함 없이 깨끗하게 펼쳐져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로봇이 두들겨 맞거나 부서질 때 조금씩 찌그러지거나 망가지는 모습도 정교하게 되어 있어서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되니, 사람의 격투기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로봇 격투만의 특징도 충실히 살아 났습니다. 더 크고 더 힘센 싸움이라는 크기가 살기도 하고, 제우스의 니트로 펀치와 같은 인간 관절과는 다른 형태의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격투 수법이 눈에 뜨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속에서 설명되는 대로, 기계가 쪼개지고 부서지도록 싸우는 파괴의 충격이 거칠 것 없이 살아 납니다. 만약에 사람이 그 꼴이 되게 싸우는 걸 보여준다면, 너무 잔혹하고 무서운 장면이 되어서 공포 영화처럼 보이기 십상일 겁니다. 실제로 애들이 구경하면서 즐기는 이야기에 부드럽게 맞아 돌아가는 등급에 맞추기도 어렵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로봇끼리 패고 두들기기 때문에, 중심 골격이 부서지고 팔다리 부분이 걸레가 되도록 처절하게 싸우지만 무서운 느낌 대신에 활달하고 신나는 기분이 더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록키"에서 록키가 얻어 맞는 장면 보다 훨씬 더 주인공 로봇이 심하게 얻어 맞습니다. 그런데 실베스타 스탤론의 얼굴이 떡이 된 모습을 보면 섬뜩하게 안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들 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좀 덜하고 신나는 느낌을 덜 죽이면서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은 초반에 격렬한 로봇 격투 장면을 화면에 담아서 화려한 장면들을 많이 보이려고 할 때에 특히 득이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로봇의 세부 묘사에는 80, 90년대 일본 애니매이션에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던 점들에서 참고 해 온 점이라든가, 이 부분에 대한 존경을 바치는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주인공 로봇의 이름부터가 "아톰"인데다가, "노이지 보이" 로봇을 비롯하여 로봇의 겉모습이 일본 사무라이 갑옷에서 따온 옛날 일본 애니매이션에서 유행한 로봇 모양을 따라한 것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세계 최고의 로봇 기술자 역시 일본인으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장군" 시리즈라는 해적판으로 유행했던 일본 만화 "프라레스 산시로(プラレス3四郎)"에서는 꼭 이 영화처럼, 로봇 주인, 조종사들의 애환과 조종되는 로봇의 불꽃튀는 격투를 다루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는 것도 기억 납니다. 아마 그런 저런 만화의 몇몇 소재와 장면들을 조합해 보면 이 영화에서 로봇과 관련한 소재들은 다 끄집어 내서 견주어 볼수도 있지 싶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 로봇의 독특한 특징이 처음 나올 때, 바로 일본 애니매이션에 영향을 받아 나온 유명한 한국 로봇 애니매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시는 분 꽤 많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프라레슬러 초악남자? - 주인공 로봇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 거리인 망한 업자 이야기와 로봇 이야기를 섞기 위해 프로레슬링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이어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것만으로 부족한 면은 있었습니다. 로봇 격투 이야기를 신나게 보여 주는 기분과 망한 업자의 처절하고 울적한 이야기가 잘 안맞아 들 때가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 속의 로봇은 그 원리나 기술적인 면이 치밀하게 나타나는 편이 아니고, 이 영화가 미래 사회상을 보여주는 면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로봇에 관한 이야기는 막연한 꿈이나 공상 같은 이야기 같은 맛이 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이 겪는 시련 빚쟁이에게 도망 다니고, 쓸쓸히 저물어 가는 인생에 좌절하는 이야기이니, 내용을 붙잡아 놓는데 프로레슬링 바닥의 이런저런 소재 한 가지로는 아무래도 힘이 부족한 면이 있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기에 대해서도 방책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닌 제2의 주인공으로 주인공의 아들인 어린이를 투입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어린이의 귀여운 모습과 절절한 심정을 이용해서, 어린이를 보여 주면 꽤 잘 맞아들만한 공상적인 면을 살렸습니다. 한편으로 그 어린이를 아버지가 겪는 험한 세상으로 끌어 들일 때는 역으로 애틋한 감상을 키워 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가 로봇에 대해 갖고 있는 동경이나, 처음으로 생긴 "자기 로봇"에 대해 마음에 품은 애착 같은 면면을 이야기 속에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아버지의 세상과 아들의 세상을 같이 섞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 이야기를 도입해서 써먹는 방법은 앞서 이야기한 프로레슬링 소재나, 미국 시골 풍경을 써먹은 수법이 기교적인데 비하면 평이하게 도식적인 편입니다. 아버지를 무시하는 꼬마, 그러나 애정을 서서히 깨닫는 부자를 묘사하는 모양과 보여 주는 박자는 약간은 따분할만큼 보던대로 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속에서도 세부 묘사에는 재치와 성의가 살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흙구덩이에서 로봇을 끌어낸 아들이 아버지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때리는 장면을 효과음, 대사 없이 화면에 담는 연출은 간결하면서도 강조 효과도 잘 살렸다고 느꼈습니다. 보던대로 하는 장단이지만 그 중에서도 매끈하게 잘 재현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 붙일 때 없는 아들이 로봇을 친한 친구를 대하듯이 말하는 장면에서 로봇의 눈 부분을 보여주는 부분은 "E.T." 같은 이 바닥의 선구자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듯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역 배우의 연기에서부터, 로봇을 보여주는 수법까지 잘 따라가고 있어서, 주인공의 의지에서부터 측은함,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동경까지 모든 점을 잘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터나 홍보용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오른쪽의 어린이가 거의 주인공급인 영화 입니다.)

이 영화에서 약간 재미 없게 가는 점을 꼽아 보자면, 도식적인 이야기 틀을 따라 가다 보니 이야기 속 악당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재미 없어지는 구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 악당 두목처럼 간간히 묘사되는 상대편의 로봇 기술자의 경우, 사교성이 좀 부족할 뿐이지 아무 잘못 없는 성실하고 일 잘하는 일본계 기술자인데 이상하게 면면을 꼭 "악당"처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사실만 놓고보면, 최고의 로봇을 만들어서 성실히 잘 일하고 있고, 별 주목 못 받는 주인공 로봇의 가치까지 누구보다 미리 알아 보고 값을 잘 쳐주어 인정해 주려고 했던 훌륭한 기술자였습니다. 게다가 어찌보면 언론과 선동으로 꾸민 억지 경기의 희생자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저 주인공과 다툰다는 이유만으로 악당처럼 나옵니다.

다른 악당으로, 텍사스 소몰이꾼도 역시 어긋나 보였습니다. 이 양반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돈 꿔주는 그저 소몰이꾼 다운 소몰이꾼 정도로 별 나쁜 면 없이 나온 인간이었습니다. 반대로 이 사람의 실상을 살피자면 망나니 주인공에게 돈 떼인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쓸 데 없이 주먹질을 하고 비열한 표정을 지어대면서 "날 악역으로 만들어 주쇼"라고 사정하듯이 화면에 나왔다 들어가더니 줄창 나쁜놈 취급을 받습니다. 악당이라고 나오는 자들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이야기가 좀 재미 없어 지기 쉬울 겁니다.

악당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이런 식으로 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의 인물성격을 잡아 나가자면 주인공 꼬마의 어머니 역시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해야 마땅할 겁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 이야기의 도식에 포함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 주인공 꼬마의 어머니는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아무도 거의 언급 안하면서 줄곧 이야기가 흘러 갑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기해야할 부분이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좀 더 그럴듯하게 처리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허망하게 망가져 내리는 구석 없이 이야기가 기둥이 튼튼한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상대쪽의 기술자가 악당 행세를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정말 악인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은 선에서 머물고 있고, 주인공 인물들이 이 기술자를 우러러 보며 존경하는 시각이 계속 묘사되고 있어서 터무니 없이 가짜 같은 구도로 망가져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속 세상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듯한 터무니 없는 인생 역전 이야기의 끝에 찾아온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아버지와 아들은 "우리가 지기는 지겠지만 어디까지 해 볼 수 있을까?"라고 말을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을 짜 넣은 것은, 로봇이 싸움질 하는 영화 속에서도 인생을 꿋꿋이 버텨나가는 의지에, 스포츠 정신까지 짚어 보면서도 동시에 극적인 긴장감도 높이는 경제적인 각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정도라면, 로봇이 날뛰며 싸우는 것을 눈 앞에 들이대고 보여주는 신나는 영화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직하게 해 나가면서, 개성의 진지한 일면도 또렷하게 갖고 있는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원작은 "나는 전설이다"의 작가로 국내에서는 유명한 리처드 매서슨의 단편 소설이고, 이 단편 소설은 60년대판 "환상특급"에서 TV극화 된 적도 있습니다. "환상특급"판 소개는 여기 http://kr.blog.yahoo.com/gerecter/11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원판 이야기와는 "로봇 격투"라는 중심 소재와 주인공이 망해 가고 있다는 점을 빼면 거의 닮은 점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주인공이나 로봇들의 이름들도 다 다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두고 굳이 원작으로 판권을 산 것을 보면 할리우드의 원작 집착은 괴상한 면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보다 훨씬 더 닮은 이야기를 두고 판권을 안 사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 결말을 밝히면서 이야기 해보면 다른 이야기 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로봇의 최종 작전으로 주인공의 권투를 그대로 실시간으로 따라하게 해서 아주 유연하고 빠르게 싸운다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국내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흥행적 "로보트 태권V"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최종기술로 나오는 것이어서, 아마 국내 관객들중 다수는 "따라하는 기능"이라는 말을 보자 마자 이 작전을 생각했을 겁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조종 동작은 그저 섀도우 복싱으로 되어 있어서 화면은 살짝 공허한 면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로보트 태권V" 시리즈에서 훈이가 자신의 태권도 동작을 그대로 태권V가 따라하게 해서 싸우는 장면은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서 화면을 꾸미고, 특유의 명곡 주제가를 전력을 다해 깔아 넣어서 아주 극적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덧글

  • 게렉터 2011/10/19 09:22 # 답글

    블로그 찾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번주에 두 건 글을 올리게 되어 다음 주는 블로그 글을 쉬도록 하겠습니다.
  • 존다리안 2011/10/19 10:31 # 답글

    은근히 텍사스 시골 촌동네 분위기와 로봇 격투가 잘 어울리더라구요. 컨셉 디자인,연출의 승리라고 봐야 할까요?
  • 게렉터 2011/10/19 18:54 #

    아마 프로레슬링 선수나 권투 선수를 애잔하게 다룬 영화들의 장점들을 잘 배워 와서 재미나게 접목시켰기 때문 아니었나 짐작해 봅니다.
  • 鷄르베로스 2011/10/19 10:31 # 답글

    로봇이 권투한다는 영화가 나온다는 얘길듣고 처음 떠올랐던 이미지는 매트릭스의 APU같은 탑승형(?) 로봇이었습니다.
    조종사가 탑승해서 조종간을 통해 로봇을 조작하는게 아니아 자신의 신체와 연결해서는 그 능력을 기반으로 로봇끼리 격투기 시합하는 만화를 어릴적 무척이나 재밌게 봤었던 까닭
  • 게렉터 2011/10/19 18:56 #

    저는 반대로 좀 더 로봇의 인공지능이 있는 쪽을 상상했습니다. 사람이 동작을 일일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대체적인 전략이나 전술만 주고 거기에 따라서 로봇의 자체 지능 판단으로 격투를 하는 쪽 말입니다. 별 영향관계는 사실 없지만 원작도 이런 쪽이었습니다.
  • FAZZ 2011/10/19 10:42 # 답글

    안 그래도 보려고 생각중이었는데 리뷰글을 보고 나니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 게렉터 2011/10/19 18:56 #

    항상 들러주시고 잘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영화 보시고 나서 FAZZ님 블로그든 여기든 한 두 말씀 감상 남겨 주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 동사서독 2011/10/19 11:04 # 답글

    "훈아, 어서 3번 키를 눌러!" 장면이 나오는군요. ^^
  • 게렉터 2011/10/19 18:57 #

    바로 그런 장면 입니다. 대사가 정확히 "3번 키"였나는 약간 헷갈립니다.
  • 데니스 2011/10/19 11:16 # 답글

    젤 좋아했던 그리고 결국 일본 갈때마다 뒤져 전집을 다시 구했던 프라레스 산시로...
    TV 방영 영상을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있는 유일한 소스에서 장장 3달 가까이 걸려 토렌트로 받은 프라레스 산시로...

    다시 리메이크로 나와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 ^
  • 게렉터 2011/10/19 18:57 #

    저는 한국 해적판 "대장군"을 한권 몇 달 전에 헌책으로 구했드랬습니다.
  • 꿈꾸는소 2011/10/19 11:18 # 삭제 답글

    팜플렛보고 뿜을 뻔한것.
    '실은 로봇복싱장면이 시쥐가 아닌 실사란다~'
    .......어?
  • 게렉터 2011/10/19 18:58 #

    모형과 CG를 적절히 잘 조합한 것 아닌가 합니다. 사실 CG 바닥에서 가장 경이로운 이야기 거리였던 "쥬라기 공원"만 해도 모형의 비중이 꽤 컸던 것으로 압니다.
  • Kris 2011/10/19 23:50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것처럼 얘기하시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이 영화는 로봇 '복싱'에 관한 영화이며, 영화에서 나온 카메라 워크라든가 로봇들의 액션 장면 대부분은
    복싱 경기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따온 것이지 프로레슬링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거 같습니다.

    특히 춤추는 로봇은 인기가 있다 라는 대사는 그 대사보다 그 직전에 나온 복싱이야말로 '쇼'라는 그 멘트에 무게감이 실린다고 생각합니다
    아, 춤추는 로봇이라는 컨셉은 입장할 때 춤추며 등장하는 프로 복서들에서 따온 이야기고요
  • 게렉터 2011/10/20 07:13 #

    말씀하신대로 "프로레슬링" 이야기는 그저 제 감상에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나름대로 느낀 이유는 중계방송 화면을 꾸민 모양이 프로레슬링 중계와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라든가, 주인공이 최고 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중반부 내내 싸우는 막싸움들의 규칙이 무규칙 격투기로 되어 있어서 그래 보였나 봅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경기 직후에 소감 주고 받을 때 난입해서 도전을 신청하는 모습 역시 프로레슬링의 단골 연출처럼 보여서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 치즈 2011/11/01 09:16 # 삭제 답글

    눈높이를 낮추어서 보면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런데 노이지보이는 아무리 봐도 철인28호처럼 보입니다.
  • 게렉터 2011/11/08 15:07 #

    아톰 도 그렇고, 말씀하신대로 철인28호 닮은 노이지보이도 그렇고 50, 60년대 고전 일본 로봇 만화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영화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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