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Steve Jobs, 2011년판 책) 기타

"스티브 잡스"라는 제목으로 나온 스티브 잡스 전기는 "공식 전기" 대접을 받고 있는 꽤 두터운 책입니다. 내용은 스티브 잡스가 태어나서 성격 뒤틀린 놈으로 자라나서 히피스러운 삶을 살다가 "동네 아는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서 그 대단한 기술을 보고 회사를 차려 보자는 생각에 애플사를 창립하고, 백만장자가 되고 실패도 했다가 다시 재기도 했다가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입니다.


(리사의 GUI 화면 - toastytech.com 게재판)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서 볼 부분은 이야기가 스티브 잡스의 단점도 상당히 솔직히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 정도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저지른 범죄에 가까운 일들(내지는 진짜 범죄) 까지 큰 가감 없이 드러내어 펼쳐 놓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스티브 잡스를 세계사를 바꾼 영웅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만큼 장점이나 멋진 모습, 흐뭇한 순간에 좀 더 조명을 비추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대단한 사람의 "전기"치고는 굉장히 멋드러진다 싶을 정도로 사람의 양면을 같이 밝히는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정주영에서 이명박까지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기업인들의 전기들이 그 사람의 잘한점만을 묘사해서, 용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한편으로 "맥아더"나 "존 F. 케네디" 처럼 이미 신화화가 된 인물의 "참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의 잘못이나 악영향에 관한 면만 뭔 안티팬 사이트처럼 파헤치는 책들과도 아주 다릅니다. 이 책은 그간 신문이나 방송의 아부꾼들이 "이래서 애플은 다르고, 천재는 남다르다"며 떠들던 스티브 잡스의 장점들을 꼬박꼬박 기록하면서도, 자잘한 스티브 잡스의 단점들도 다 늘어 놓고 있습니다. 전체를 놓고 보면 스티브 잡스를 불세출의 인걸로 보는 책이면서도, 따지고 보면 가지수로만 보면 단점에 관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런 점은 인물의 입체적인 묘사에 대단한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고 생각 합니다. 위대한 인물의 압도적인 인상이 남아 있으면서도, 어쩐지 인간이 불쌍해 보이는 느낌, 어쩐지 사람이 무서워 보이는 느낌을 같이 잡아 가면서 그런 사람이 정말로 있을 법하다는 생생한 느낌을 키워줬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더러운" 성격을 묘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 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티브 잡스가 열받으면 폭언을 마구 하고, 마음에 안드는 결과에 대해서 부하직원에게 가혹하게 인간적인 모독을 퍼붓는 이야기 거리가 쏟아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젊은 시절 정말로 "더러운" 인간이었다는 이야기도 꽤 장황하게 늘어 놓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게 히피 스럽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신발을 안신고 돌아다니는 인간이었고, 몸을 안 씻어서 냄새가 나기로 유명했다는 겁니다. 하기야 배철수 같은 양반도 록 밴드 하던 시절에 뭔가 히피스러운 자유의 상징인것 같아서 안씻고 다니기로 소문 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스티브 잡스는 좀 더 막나가서, 자신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몸에 독한 악의 기운이 안쌓이고 그래서 체취가 남들 보다 안날거라고 생각해서 안씻고 다녔다는 해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외에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와 같이, 스물몇살 무렵 장사를 시작했던 사업 초기에 스티브 잡스가 투자 받으려고 얼마나 허풍쟁이에 사기꾼을 연상시킬 정도로 날뛰고 다녔는지, 그러면서도 성미는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마음에 안들면 다투다가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는지, 하는 이야기들도 빠뜨림 없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고교시절에 스티브 잡스가 환각제에 취해서 살던 시절이 있었고 - 외곽지역에 있는 밭 한 가운데로 숨어 들어가서 환각제를 했다고 합니다. - 나이가 들어서도 거기에 대해서 후회나 반성은 커녕 오히려 좋은 경험으로 여기고 있는 모습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이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스티브 잡스의 멋진 성공담에 비해 특별히 과하게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억지스럽게 핑계를 대며 변호해 주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로 사연을 덕지덕지 붙여 꾸미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독자가 보다보면 "이 놈도 어찌 보면 그냥 그런 쓰레기일 수도 있었네" 하는 감상이 드는 것을 말리지 않도록 그대로 놓아두고 펼쳐 놓는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부하직원들 가혹하게 대하기로 악명 높은 아시아권 기업의 경영자들이,

"그래 맞아, 역시 부하 직원들에게는 성질내고 내 스트레스 풀릴 때까지 욕을 팍팍해야 일이 잘 되는거야."

하는 생각을 불어 넣어 줄 정도라는 상상마저 생길 정도입니다.

약간 반전이라면 반전을 드러내기도 하는 이야기인데, 이 책에 실린 스티브 잡스가 직접 하고 싶은 말로 써놓은 부분을 보면 스티브 잡스 스스로도 자기가 말을 막하는 인간임을 자인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게 모든 인간이 본받아야 할 행동은 아니지만, 회사에서는 자기가 해야하는 역할이었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는 겁니다. 이런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다 보면,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인간이 IT 혁명의 여명에서부터, 최근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지냈을까, 어디가 도대체 핵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일 겁니다. 과연 우리 회사도 임원이상은 1개월 동안 목욕을 금지시키고, 법을 어길 순 없으니 다같이 터키식 물담배라도 머리가 몽롱할 때까지 흡입시켜야 하는건가 하는 의문이 생길법도 합니다. 그만큼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들을 이것저것 담고 있는 책이니 말입니다.


(매킨토시 OS 초기판 GUI - toastytech.com 게재판)

그러고보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정작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애플 사를 창립하고, 초창기에 PC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그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에 빠진 점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회로도의 형태로 애플I 이 처음으로 생겨나서 주변 컴퓨터 광들에게 인기를 얻고, 스티브 잡스가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 돈을 구하고 사람을 만나던 이야기들은 꼬박꼬박 다 잘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야기들은 이미 그 전설 속의 나날을 다룬 다른 멋진 책들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는 편입니다.

특히 이런 혁신이 나타나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10년전에 나왔던 빌 게이츠가 주저자로 참여한 "미래로 가는 길"과 같은 책에 비해서도 크게 대단한 이야기나 자료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맥 출시 시기를 전후해서 빌 게이츠의 독점에 대한 반발로, 컴퓨터광들에게 반사 효과로 인한 인기를 얻던 이야기라든가, 새로운 맥OS가 넥스트스텝 - 유닉스를 계승해서 나오던 시기의 변화에 대해서는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대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생각 합니다. 대중적인 관심이 적었고 당장 눈에 뜨이고 말할 거리가 많은 "디자인" 운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렇게 되었지 싶습니다만, 아이팟과 함께 애플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부각될 필요는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이 스티브 잡스 개인의 인생사를 다룬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찰에 대한 비중이 적다는 점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Mac OS 7 GUI 모습 - toastytech.com 게재판)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허풍 떨며 투자자 잡으로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동안 유난히 눈에 뜨이는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는 같은 이야기를 다룬 다른 책들처럼, 스티브 잡스가 동네에서 만난 전자부품광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고안한 것을 제품으로 만들면 떼돈을 벌 거라고 허풍을 떨고 다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대뜸 산업계의 엄청난 거물을 만나러 가서 사기꾼 약장수 비슷하게 돈을 대달라고 졸라대는 이야기가 묘사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퇴짜를 맞고 다니는데, 여기서 스티브 잡스는 한 사람에게 거절을 당할 때 마다, 돈은 못 얻어도 혹시 관심을 보일만한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 수완을 보여 줍니다. 이런 점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식으로 버텨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묘한 문제를 암시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당시 미국 실리콘 밸리 일대가 과연 새롭게 태어난 아이디어가 산업으로 이어지기 까지 주변에서 사람들이 엮이고 만나기 좋은 환경이 참 잘 갖춰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 책에는 워즈니악이 개발한 도면을 대학부설 연구소에서 모이는 클럽에서 공유하는데, 당시 아타리 야간 비정규직원으로 일하던 스티브 잡스가 그걸 상품화 하기 위해서 아타리 사장 놀런 부쉬놀에게 말을 붙여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는 상상해 보자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구미에 있는 게임 클라이언트 CD 찍어내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사람이, 포항에 있는 포항공대 가속기 연구소에서 동호회 모임을 갖다가 혁명적인 휴대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테헤란로에 있는 엔씨소프트 사장을 찾아가 돈을 대 달라고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사실 21세기 초부터 창의적인 기업을 쉽게 시작하게 하고 혁신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상이한 분야의 여러 사람, 업체가 모일 수 있는 기술 융합 단지를 만든다, "혁신 클러스터"를 만든다 하면서 여러가지 인위적인 지원 사업을 다양하게 많이도 해오긴 한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어떤 모습으로 실리콘 밸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인지 생생한 경험담의 느낌으로 책에서 읽다 보면, 놓치고 있는 게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ac OS 8 GUI 모습 - toastytech.com 게재판)

또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독단적이고 부하직원에게 욕잘하는 것으로 따지면 미치광이 같은 인간이 스티브 잡스였습니다만, 애플사의 많은 성공은 스티브 잡스 성질을 죽이고 그런 스티브 잡스를 살살 구슬리는 재주까지 겸비한 또다른 천재들의 공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이 책이 어느 정도 잡아내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책에는 스티브 잡스에 비해서 훨씬 사람 답고, 온화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설득시키는 장면들이 짧지만 여러번 등장 합니다.

한번 결심하면 못말리는 스티브 잡스를 위해서, 스티브 잡스에게 어떤 제안을 보여줄 때, 일부러 스티브 잡스가 싫어할만한 안을 같이 보여줘서 반대편을 고르게하는 술수를 부리는 장난 같은 모양도 몇 번 언급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하드디스크 기반의 대용량 MP3 플레이어를 만들자는 계획이나, 아이폰의 앱을 개인이 만든 뒤에 유통할 수 있도록 앱스토어를 열어줘야 한다는 발상, 현재의 애플을 있게한 결정적인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이런 일들은 다른 직원들이 스티브 잡스를 요리조리 구슬리고 성질 불같은 아저씨를 잘 달래서 겨우겨우 해치운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막나가는 대신에 추진력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와 온화하고 사려깊은 사람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 회사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위력 아니었나 하는 생각 들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아이팟 탄생의 배경으로, 일본 도시바에 출장간 사람이 값싸고 작은 HDD를 보고 대단해 보인다며 이걸로 뭘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가 출발해서 결국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승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협력 업체에 출장 간 대기업의 중역이라면야, 현지에서 갈만한 좋은 술집이나 안내 받으며 시간 보내고 외유성 유람을 하는데 시간을 때우는 대신에 - 물론 애플 직원이 딱히 유난스러워서 이 분야에 굳이 거리를 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 신제품에 대한 새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이 회사에서 그대로 신제품으로 연결 되어 회사 창립자의 결단과 지원으로까지 이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은 톡톡히 흥미를 끄잡아 내는 부분이었습니다.


(Mac OS X GUI 모습 - toastytech.com 게재판)

"스티브 잡스"는 거물을 칭송하는 태도를 줄곧 견지하면서도 그 잘못과 어두운 면까지 놓치고 지나가지 않고 집대성해 놓은 힘이 과연 위력적이었던 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산업계에 여러 차례에 걸쳐 큰 파란을 몰고 온 중심에 있는 인물을 다루는 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설적인 몇몇 일화를 제외하고는 "디자인에 뛰어나다" "돈보다 혁신을 중시한다" "백만장자가 되고나서도 제품 자체에 신경을 쓴다" 등등의 흔히 퍼진 생각을 다시 돌아보는 데 비중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은 약간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세밀하게 산업계의 속성이나 경영의 핵심을 파헤치는 통찰력이 눈에 뜨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인물의 여러 면을 다 잡아내고, 사건의 다양한 사연을 충분히 담아내려는 성실한 태도는 또다른 방향으로 가치를 갖는 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보다 많이 파헤치려는 과정에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다른 시각"을 가져 볼 수 있는 재료를 꽤나 마련해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책에서 정말로 감개무량했던 점, 우리나라 업계가 바로 배워야 하는 점은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를 따라해서 우리나라의 회장님들도 부하직원들에게 좀 더 상스럽고 더 무례하게 문책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생산성이 더 오르고 더 혁신이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저는 이 책의 맨마지막 참고자료 일람 부분이야 말로 당장 주목할 필요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말미에는 책에 나오는 여러 "설"들과 "무용담"들을 누구에게 들었는 지, 어느 자료에서 보고 따온 것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자료, 인용서목이 착실히 정리되어 충직한 의무로 덧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대충 주워들은 소리를 대단한 세상의 진리인냥 아무렇게나 인용하는 논설이나 기사가 넘쳐 나고,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에도 한심한 표절스러운 것들이 넘쳐나는 우리 업계의 입장에서는 몇 차례고 살펴보아야할 쪽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저는 "성능 좋은 컴퓨터 같은 전화를 쓸 때마다 사소한 귀찮은 부분을 해결할 프로그램을 사용자가 만들어서 넣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속터지는 지 모르는데,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의 성격상 더더욱 사용자 프로그램을 짜 넣을 수 없는 폐쇄된 구조로 만들 것이므로, 아이폰은 실패할 것이다." 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회사와 산업이 돌아가는 것을 그저 주말연속극 줄거리 같이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폰 때문에 "앱 스토어"라는 그야말로 기막힌 것이 나타나면서 모든 상황이 변했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화 소프트웨어 개발 진흥을 위해서 WIPI를 만드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그 많은 나랏돈을 써놓고도 어떻게 저 길로는 못갔는지, 돌이킬 때마다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사람이 말년이 되면, 다 용서하고 심경도 많이 변하고 한다는데, 이 책에 실린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을 보면, 스티브 잡스는 끝까지 싫어하던 사람은 비난하고 원래 대던 핑계는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산업 초기에 제대로된 프로그램 입문서라는 것 조차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에 자기 손으로 직접 프로그램을 짜면서, 말그대로 천재적인 열정으로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산업화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두고 함부로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라고 폄하하는 수준은 아닙니다만, 그 업계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 한계 안에서 있는 힘껏 "몹쓸 놈"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컴퓨터를 실질적으로 고안한 천재적인 개발자이면서도, 겸손한 언행과 의리있는 일화, 아직까지도 소박하게 살고 있는 모습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기는 합니다. 원래가 그렇게 알려진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이 책에서는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멋진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된 적이 있는데, 결코 번역자나 출판사가 떳떳해 할만한 것이 못되는 오역이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게 우리나라 번역 바닥에서 특별히 이상한 일이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오히려 이 책의 번역 정도면 대충 준수한 수준에 속한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게 '번역'이라고 정의하는 일의 말뜻에 맞아든다는 것인가?"하는 의심까지 하게 될 법한 상상불허의 쓰레기 번역도 결코 우리나라 책 중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유명한 잘 팔린 책, 이름 난 번역자가 번역한 책 중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말끔하고 보기 좋은 번역도 있기는 한데, 이야기 들어보면 그렇게 번역 잘 했다고 해서 딱히 누가 알아 주고 돈 더 받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싼 맛에 번역 맡기는 데 쩔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번역판 아니겠습니까? 이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아마 오래동안 업계에서 화제가 될 만한 "예약된 베스트셀러"라서 아닌가 합니다.

덧글

  • d 2011/10/30 22:52 # 삭제 답글

    이건희라고 한국에도 비슷한 새끼 하나 있는데 모름?

    자기는 회사 출근 안 하면서 직원들은 1시간 일찍 출근하라고 하고, 불량품 만들었다고 휴대폰 몇십만대를 소각해버리고, 그러면서도 반도체 제조업이야말로 IT 산업의 꽃이란 것을 예측한 인간.
  • Ya펭귄 2011/10/30 23:04 #

    잡스훃은 IOC위원으로 뛰어봤자 부정적인 의미의 업계전설들을 양산하기 딱 알맞지만 거늬훃은 평창올림픽을 따옵니다... 둘을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하기도 좀 어려운 이유...

  • d 2011/10/30 23:26 # 삭제

    아따 평창을 유나킴이 따왔지 언제 건희가 따왔냥께.
  • Ya펭귄 2011/10/30 23:40 #

    잡스훃이었으면 유나킴의 발목쟁이를 잡는 결과가.....
  • d 2011/10/30 23:47 # 삭제

    암 그라제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인 잡스가 10대 소녀 유나킴의 발목을 잡는당께.

    대통령이 사면해준 건희는 스포츠 외교에 도움만 된당께.
  • Ya펭귄 2011/10/31 00:44 #

    프리젠테이션에서 딴 점수를 맨투맨로비 마당에서 마이너스로 대반전을 시키는 참사가 날 확률이 높았을 듯도........

  • 게렉터 2011/10/31 17:56 #

    이야기가 좀 샙니다만, 스티브 잡스는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회사 창업주에 비해 사회 활동이나 정치 등등에는 별 관심 없었던 사람으로도 흔히 분류되고는 하니까, IOC 활동이라든가, 이건희 회장과는 아무래도 다른 각도로 보입니다.
  • d 2011/10/30 22:53 # 삭제 답글

    한국에서는 잡스 같은 이상한 인간이 CEO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괴물이 굉장히 희귀한 확률로 오너의 아들일 경우 가능해진다.
  • 게렉터 2011/10/31 17:58 #

    사실 안철수 교수 같은 분은 훨씬 더 자식들에게 "닮아라"라고 하기 좋은 분 아닌가 합니다. 우등생에 명문대 의대 가서 의사 자리는 잘 맡아 놓은 상태에서 취미로 하던 것이 벤처 기업으로 이어진 안교수는 약에 쩔고 히피 문화에 빠진 고졸 아르바이트 연명생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멀쩡하니 말입니다. 지금의 안철수 ...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많이 빠져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만, V3 등장 순간만 해도, V3는 세계 최고급의 제품이었으니, 비교 대상으로 그렇게 빠져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Ya펭귄 2011/10/30 23:00 # 답글

    2000년대의 잡스훃은 확실히 부하복은 있는 듯 싶더군요. 보통 그렇게 성질 더러운 상사 아래에 남는 참모들의 경우 대체로 나름 성깔 있는 양반들이 버티는 경우가 많은데...
  • d 2011/10/30 23:26 # 삭제

    오미 부하복이 있어서 자기가 창립한 회사에서 쫓겨났당께
  • Ya펭귄 2011/10/30 23:40 #

    85년 쫓겨날 때는 부하조차도 못챙길 정도였던 거고...
  • 게렉터 2011/10/31 18:00 #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스티브 잡스 개인의 위세에만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막나가는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게 하면서도 심하게 나갈 때는 구슬릴 수도 있게 하는 조직을 갖춘 원인이야말로 좀 더 탐구할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정확히 저도 집어 보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교묘한 이사회 구조라든가, 투자자와 지배구조, 인재 선발/개발 체계 등등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theadadv 2011/10/31 01:20 # 답글

    전세계 동시 발매 덕에 그나마 이리저리 원고 왔다갔다 하면서 번역중에 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 그나마 밀리던게 거의 시간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겠군 했죠. 솔직히 저건 발매를 동시에 하겠다는 잡스측을 깔 일이었는데, 어째 번역자가 당하는 상황이 와서 좀 이해가 안가더라는...
  • 게렉터 2011/10/31 18:03 #

    사실 우리나라 번역판이 워낙 개판이니 절대적인 기준을 갖다댄다면 그다지 부당한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다만 번역회사 입장에서는 이정도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판에서는 꽤 잘한 편인데, 괜히 조명을 받다 보니 욕을 들어 먹는 다소 억울한 모양새가 되었지 싶습니다. 결코 "원고가 넘어온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가 안통할 법한 100년 넘은 고전들의 번역 조차도, 참으로 멀쩡한 출판사, 높은 이름 가진 번역자 조차도 번역이 얼마나 이상할 때가 많은 지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확실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판이다 보니, 성의있게 열심히 일하는 번역자도 도매금으로 인정 못 받으니, 그냥 계속 싼 값에 양산형 저질 번역을 하는 게 오히려 먹고 살기에 나아진다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 우슬 2011/10/31 12:33 # 답글

    뭐 애플이 도둑질 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라 사실 숨길 껀덕지도 아니죠. 그리고 애플은 전체적인 대세와 반대로 가서 망하기 직전까지 간 대표적인 회사인데 왜 과대평가 받는지 모르겠네요 쩝. 아이팟이 HDD를 도입하긴 했지만 실제로 아이팟이 성공한 이유는 삼성과 협력해서 싼 가격에 메모리를 공급받아서 공략한 점이죠. 그래서 아이팟 가격이 쌌던 거에요. 삼성은 애플의 요구에 맞춰 메모리를 생산하는 대신에 기존에 다른 MP3 업체에게 공급하던 메모리 라인의 생산을 중단 시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MP3 업체들이 대량으로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했죠. 애플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평가 받을 만 하지만 그 이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그냥 똑같은 회사와 경영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아요
  • 게렉터 2011/10/31 18:06 #

    아이팟은 HDD 기반에, 저가였다는 점 외에, 갖고 있는 모든 노래들을 백곡이건 천곡이건 다 MP3P에 몽땅 집어 넣고 집에 있는 CD장을 몽땅 주머니에 담고 다니면서 생각나는 노래는 뭐든 골라듣는 다는 개념을 잡고 그걸 쉽게 하는 방편으로 모두 밀고 나간 것이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 MP3P는 당시에도 카세트 테이프 믹스 테입 만들듯이, 그냥 최신가요 열몇곡, 듣고 싶은 노래 몇곡 컴퓨터에서 그때그때 골라 담아서 다니도록 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오고 있었고, 심지어 아직도 그런 방향 위주로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아이팟과 근본적으로 앞뒤를 잘못 본 대목이라고 생각 합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 어쩌고 하는 제품을 안써보고 기자들이 쓰윽 보고 몇 마디 하기 좋은 장점 이외에 다른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던 점도 분명히 강했다고 생각 합니다.
  • Ya펭귄 2011/10/31 18:53 #

    1. 애플이 과대평가를 받아줘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90년대말/2천년대 부터는 과거의 삽질에서 결별하여 대박행진을 이어오고 있으니까요. 그것도 단순한 일개 기업의 성공스토리 수준이 아니라 IT산업을 뒤흔들 정도로...

    2. 시장을 처음 평정한 아이팟은 1.8인치 HDD와 대형디스플레이와 조그셔틀 터치와 파스텔톤 무광백색이 조합된 물건이었지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편의성 그리고 뭣보다도 개념() 면에서 기존 MP3과 비교되기는 힘듭니다... 낸드플래시의 VIP였고 그래서 할인가격으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부분은.. 옵션 정도의 비중일 듯 합니다. 그리고 저가에 공급받는 낸드가 시장가격 할인으로 이어졌다기 보다는 순익상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졌지요...

    3. 2천년대 이후로 애플의 똥고집은 많이 줄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맥의 CPU를 X86계열로 교체한 것인데... 퍼포먼스 측면에서의 선택이었다고는 해도 맥에서도 윈도를 쓸 수 있는 발판이 되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똥고집 잡스가 성질 많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소비심리 측면에서 중요한 것이. 설령 맥을 사서 맥OS가 맘에 안들더라도 윈도우로 전향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결 부담을 덜면서 구매할 수 있게 된거죠.
  • 치즈 2011/11/01 09:1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와서 애플의 역사와 아이팟에 대해 말씀하시는분들을 보니, 잡스의 전기를 우리나라 분들이 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나 그리 잘들 아시는지, 미국에 가보지도 못하고, 7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저는 그저 겸손해질 따름입니다.
  • 게렉터 2011/11/08 15:01 #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워낙에 관심 갖기 좋게 재밌기도 하면서도 교양 있는 듯한 소재여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 심오한 소재는 알려는 사람이 별로 없고, 너무 가벼운 이야기는 또 많이들 무시하는 편이니까 말입니다. 블로그 한 켠에서 이루어질만한 인기있는 토론 소재로 잘 걸릴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만큼, 또 너무 진절머리 내시기보다는 이런저런말 자유롭게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 플레어 2011/11/05 15:30 # 삭제 답글

    좋은 분석 잘 읽었습니다.
    잡스 전기를 보고 나서 룸메이트 선배가 해 줬던 말이 새삼 생각나네요.
    '잡스는 자기 밑의 몇 사람을 괴롭혀서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 사람이다.' 라고요.
  • 게렉터 2011/11/08 15:02 #

    감사합니다.
  • 채소야 2011/11/06 20:55 # 답글

    게렉터님 사소한 질문 하나... 이 글들은 다 구상 없이 타이핑해서 치시는건가요 아님 미리 글로 적은 것을 옮기시는 건가요??
  • 게렉터 2011/11/08 15:02 #

    메모장 프로그램 같은 곳에 점심 시간이나 저녁 때마다 틈날 때 조금씩 썼다가 다 쓰게 되면 한 번 정리해서 이곳에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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