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온 렛지 (Man on a Ledge, 2012) 영화

"맨 온 렛지"는 제목 그대로 호텔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창문 밖으로 나와서 곧 뛰어내릴 것처럼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 서면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영화는 온갖 소동이 벌어지는 "긴 하루"를 다루는 모양으로, 그러니까 "다이 하드"에서 "사랑의 블랙홀"까지 여러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던 "하루 동안의 대소동"을 보여 주는 형식으로 흘러 갑니다. 이 사나이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일을 저지려는 것입니까? 무슨 사건들이 이날 하루 동안 벌어지겠습니까? 과연 영화의 마지막에 이 사나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포스터)

이 모든 것을 하나둘 지켜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맛이니, 도대체 뭔 사연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화를 지켜 보는 것이 제대로 구경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극히 매력적이라거나, 혁신적인 기술과 재주를 보여준다거나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벌어질만한 사건, 사고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하나 둘 과연 영화에서 나올만하게 짚어 가면서 중요한 굽이굽이마다 다루어 나가는 흥미진진함이 충실한 영화였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고 즐길만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한 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 합니다. 구체적으로 영화 면면을 좀 더 밝혀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고층빌딩 난간에 나타나서 곧 뛰어내릴 것 같은 동작을 취한 상황에서 다루어 마땅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짚어 나갑니다. 곧 떨어지는 위태로운 상황, 경찰과의 대화, 소방관들이 출동해서 구조 장비를 갖다 대는 것들, 몰려드는 구경꾼들, 다들 소재로 잘 끌고 왔다고 생각 합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 거리들을 끌어 와놓고 대충 형식적으로 잠깐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영화니까 이런 장면도 한 번은 있어야지"하는 식으로 그냥 한 번 보여 주고 넘어가곤 하는 요즘 영화들이 꽤 많았다는 기억이 드는데,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 거리들을 전환점 마다 제대로 중요해 보이게 써먹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볼만한 가장 결정적인 상황이야말로, 맨 마지막 최후의 절정 장면에서 시원하게 써먹는 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꾸민 것은 잘못 굴러가면 진부한 이야기만 하고 마는 위험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살짝살짝 반전을 집어 넣어서 이야기의 재미를 계속 살렸습니다. 뒷통수를 때리는 엄청난 반전은 아닙니다. 그냥 살짝살짝 앞통수를 어루만지는 정도의 반전 몇 가지가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보던 대로 나오는 정도 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제는 어떤 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란 말인가,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하면서 계속 지켜보고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꾸민 덕택에, 제목 대로, 영화의 중심 소재 그대로 잘 살려서 풀어 가는 이야기 다운 기대대로의 박진감, 통쾌함을 뚜렷하게 살려서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다시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것이야 말로, 영화 같은 장면을 보여 주는 영화 다운 재미였습니다.

그럴듯한 제목만 붙이고 "상징적으로 보자면 이렇다는 이야기다" 라든가, 흥미로운 제목으로 사람을 끌어 놓고는 영화 내내 제목이 왜 그런 제목인지 모르는 이야기만 하다가 "이런데서 따온 저런 의미이다" 라고 무슨 "감독과의 대화"를 찾아 봐야 사연이 있는 그런 영화들의 잡다한 모양에 비해서, 이 영화의 뚜렷하고 성실한 구조와 진행은 유난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아차차)

하지만 역시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꾸미기만 하면 생기는 진부한 맛 때문에 생기는 빈틈은 있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진부하다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야기 구성에는 참신한 면, 계속해서 재미를 끌어 나가고, 항상 긴박감과 호기심을 유지해 나가는 성의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나가려는 노력들이 완벽하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지경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을 상황으로 하는 영화라서, 뛰어다니고 도망다니고 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추격하고 꾀를 써서 작전을 벌이고 총으로 위협하고 굴러 떨어지고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워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주인공 이외에 "한편 그 때 다른 곳에서는..." 하면서 다른 쪽에서 일을 벌이는 주인공의 동료들이 나와서 또 한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확실히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더 많이 가져 오기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반면에 영화의 중간 부분에서 정작 주인공은 별 대단한 활약 없이 그냥 난간에 위태롭게 가만히 있는 것이 역할이 되어 버린다는 엉성한 모양도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에서나 볼법한 정교한 작전이 나옵니다. 그런데그런 영화에 흔히 나오는 냉철한 천재 전문 요원들이 아니라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신 나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실패할 까봐 두려워 하고 긴장하면서 벌이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것도 확실히 새로운 점이 눈에 많이 뜨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서 더 재미있어 졌다거나, "미션 임파서블"류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보여 주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인물들의 대사와 동작에서 다른 모습이 조금 더 있다 뿐이지, 이 영화에서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은 역시 그냥 "미션 임파서블"류에서도 재밌었던 것들이니 말입니다.

등장인물과 배우들의 면면도 그 정도 수준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대화를 하는 경찰 요원은 "다이 하드" 1편에서 존 맥클레인과 무전기로 통화하는 경관과 "다이 하드 3"편의 술 덜 깬 존 맥클레인을 합쳐 놓은 인물입니다. 비슷한 대사나 행동도 무척 많이 합니다. 술이 덜깬 모양으로 갤갤 거리며 일어나는 동작은 그야말로 "다이 하드 3"의 브루스 윌리스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역할을 여자 배우에게 맡긴 것입니다. 존 맥클레인 같으니 재미있고, 그런데 그게 여자 경찰이니 참신하긴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중간중간 진지한 감정을 읊어 대는 장면이 급격하게 어색해져 보일 때가 있다거나, 진지하게 사실감이 느껴지는 와닿는 느낌은 별로 안 보인다는 비는 부분도 있었다는 겁니다. 활극 영화의 주인공 답게 생긴 주인공 부터, 냉혈한 악당 같은 악당에, 비겁한 놈들까지, 모두들 그만그만하고 보던 이야기들 답게 그저 성실히 펼쳐 나갑니다.

돌아 보자면, 필요한 이야기들을 튼실하게 잡고 있고, 이것을 계속해서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배열해 나가서 달려 나가는 각본에 이 각본을 잘 띄워낸 연출이 재미를 만들어낸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배우들도 연기의 특색이나 인기 넘치는 대배우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맡아서 대본대로 잘 풀어나갈만한 배우들이 자기 역할을 받아서 잘 해낸 모양이었습니다.


(빨간색 선을 자르기)

화면 구성과 편집 내용 역시 영화 다운 맛의 정도를 잘 걷고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이 뛰어내릴 것 같은 높은 고층 빌딩 숲이 있는 뉴욕 거리의 공간감과 빌딩들이 서 있는 모습을 어느 정도 와닿게 여러 모양으로 잘 보여 주고 있고, 까마득히 거리 아래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보이는데, 횡한 빌딩 창문 밖으로 하늘 밖을 보면 느껴지는 그 정적의 묘하게 평화로운 허망감도 빠르게 흘러가는 활극 사이에 담겨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간 부분에서 한쪽 이야기는 주인공이 중심인 넓게 트인 고층 빌딩 난간과 밝은 대낮 햇빛 아래의 이야기이고, 다른쪽 이야기는 주인공의 동료들이 모험을 벌이는 좁은 통로와 어두운 방의 이야기로 나옵니다. 그래서 번갈아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어, 화면이 바뀔 때 마다 바로바로 분위기와 내용이 넘어가는 흥취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2012년 신작 답게 세태를 반영하는 부분도 조금씩 눈에 띄어 양념처럼 맛을 더했습니다. 빌딩 위의 위태로운 사람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매정한 모습과, 반면에 "바로 저 사람이 우리들의 모습이다"라고 외치며 뛰어다니는 사람도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인터넷 동영상과 잡다한 연예인 가십이 별별 재미거리가 되는 요즘 상황에, 경제 침체를 헤쳐 나가면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한동안 화제였던 세상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이 대활약을 벌이는 대소동 영화이면서도, 막연히 텅빈 환상이나 억지로 지어낸 가짜 폼잡기라기 보다는, 우여곡절과 조마조마한 소동이 있는 손에 잡힐 듯한 이야기 다운 맛이 좀 더 산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그래도 음악은 지나치게 평범했지 싶습니다. 끝없이 많은 영화에서 나오던 "빨간색 전선을 끊어라"는 장면이 또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무한히 많이 들어본 듯한 음악이 정말로 무한히 많이 들어 본 것처럼 녹음 되어서 나옵니다.

부하들 시켜서 그냥 즉시 바로 처리하면 뒷탈 없을 것을 굳이 몸소 주인공 앞에 나타나서 비웃는 대사 하면서 설치다가 결국 피보는 악당 두목이 또 나옵니다. 이 역시 영화 같다면 영화 같습니다.

덧글

  • 게렉터 2012/02/27 09:12 # 답글

    욕설이 있는 덧글 및 광고 덧글은 삭제하고 있습니다. 위 덧글도 곧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2012/03/01 12: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