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 민즈 워 (This Means War, 2012) 영화

벌써 10년이나 지났나 싶습니다만, 2000년대초까지만 해도, MBC에는 "논스톱" 시리즈가 꽤 굳건했다고 기억합니다. 돌이켜 보자면 그런대로 그때는 한국 시트콤의 한 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생각 합니다. 어린이물을 보면 유치해 보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주로 볼만한 모양새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논스톱"이었는데, 내용은 대학생들이 살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시트콤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보는 사람들도 누구나 다 알았듯이 "논스톱" 속의 대학생이라는 것은 다만 부모 없이 젊은 애들끼리만 살면서 이상하게 자유 시간이 많은 삶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대학 생활이나 20대초반의 인생을 보여 주는 것과는 조금도 상관 없이 그냥 팬들이 찾아 볼만한 배우나 가수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배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 "디스 민즈 워"에서 소재를 다루는 모양이 대충 "논스톱" 엇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스터)

"디스 민즈 워"의 내용은 단짝 CIA 요원 두 명이 있는데, 어찌 저찌 하다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겨루게 되면서, 여러 소동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각도는 다릅니다만, 애정문제로 투닥투닥한 것이 일이 커져서 대판 크게 싸우는 이야기로는 "장미의 전쟁" 같은 이 바닥의 이정표 같은 영화가 있고, 애정 문제로 겨루는 것이 일상과는 동떨어진 소재와 결합해서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로는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수작도 있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애정 문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교묘하게 뒤틀리는 사람의 심리를 잡아 채고, 꾸미고 과장하고 풍자하는 재미가 절묘하기 잘 꾸며졌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다시 "논스톱"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디스 민즈 워"는 "장미의 전쟁"이나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영화들 보다는 "논스톱" 시리즈에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부터가 그렇습니다. 이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은 새로 차린 것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회사를 꾸려 나가고 있는 30대 사장인 것으로 나옵니다. 그냥 똘똘하고 그럴싸해 보이고 리즈 위더스푼 같아 보이는 직장일 뿐이지, 새로 사업을 시장한 중소기업인의 열정이나 고민 같은 소재는 끌어 들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여자 주인공의 매력을 살리거나 폼을 잡는 데에도 "스스로 회사를 세운 인물"이거나, "30대이지만 CEO"라는 느낌이 사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훨씬 조용한 영화인,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같은 영화만 해도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사람이 겪는 상황과 감정으로 다양한 웃긴 장면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나 위치는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굳이 시간들이고 세트 꾸며서 보여 주는 보람도 없이 웃기는 데도 갈등에도 아무 소용 없이 넘어 갑니다.

남자 주인공들은 그래도 자기네들이 CIA 요원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웃기는 것이 그나마 가짓 수는 꽤 나옵니다. 이 영화 속의 CIA 요원들은 옷차림만 바꾸면 오스틴 파워즈로도 바로 둔갑할 수 있을 만큼 아무 현실감 없이 장난스러운 모양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자 주인공쪽 보다는 좀 더 이 영화의 특징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CIA 요원으로 지내면서 생긴 독특한 성격이 인물의 성격으로 재미나게 살아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생긴 묘한 직업상의 버릇을 집어 내어 보여 준다거나, 직업정신을 재미 거리로 살리는 재치 있는 부분을 찾아 보기도 어려 웠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2, 30대 남자 1, 남자 2가 나오는 삼각관계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째 공교롭게도 이 등장인물들이 첨단 CIA 장비와 대원들을 활용하기도 한다는 정도 입니다. "밋 더 패어런츠"의 전직 CIA 요원을 보여 주는 모양이나, "트루 라이즈"의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의 모습과 비교해 봐도 영 살아 있는 모양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예고편에 비해서 이런 분위기의 비중은 훨씬 적다는 이야기 입니다.)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만, 그러면 영화가 지겹고 재미 없느냐 하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대충 대충 때워 나가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정석코스를 밟아 나가면서 처지지 않게 이야기를 한 가닥 한 가닥 쪼개 내는 것이 지루함은 없애 줍니다.

여자, 남자1, 남자2가 각각 데이트를 결심하고, 남자1과 여자의 관계가 생기고, 남자2와 여자의 관계가 생기고, 삼각관계를 알게되고, 경쟁하고, 경쟁하다 싸우고, 여자도 삼각관계의 정체를 알게 되고, 좀 더 큰 소동이 생기도, 그러다가 정리된다는 각각의 단계를 잘 밟아 나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단계들을 한 단계 한 단계 그런데로 무리 없이 엮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의 "이 결혼 안됩니다" 장면 같은 충격적으로 한심한 장면이나, 21세기 영화 비평의 전설로 남아 있는 "비천무"의 "이 사람 죽으면 나도 죽어요" 장면과 같이 견디기 어렵게 이야기가 못 버텨 나가는 부분이 없이, 스물스물 잘 넘어 가고, 그러면서 새로운 국면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리는 영화가 되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 영화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개인기이고,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밀어 붙이는 추잡한 수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잡 농담들을 사이사이에 끼워 놓았습니다. 이것도 영화에 폐가 되기보다는 득이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별로 썩 재미난 농담들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작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처럼 시시껄렁한 헛 농담들도 그 나름대로 반짝반짝한다는 그런 재미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등장 인물들이 애교와 재롱을 부리는 흥을 깨트리지도 않으면서 별별 소리를 다 하면서 하여간 웃겨 보려고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화장실이 결코 나오지 않는 화장실 유머라고나 할까 싶게, 아주 막나간다는 느낌 없이 로맨틱 코미디 스러운 발랄한 느낌은 견지하면서도 별소리 다하고 있었습니다.

배우들도 장점이 많은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리즈 위더스푼은 리즈 위더스푼에게 기대할만한 솜씨를 제대로 보여 주거니와, 남자 주인공들은 더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는 리즈 위더스푼을 두고 서로 다투는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들이 서로 대립되는 성격을 뚜렷이 내세우면서 다투는 것이 정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생긴 모습만 보면, 별로 대조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둘 다 영화배우처럼 생긴 터프가이들입니다. 그런데 두 배우들은 열심히 각본에 나오는 몇 안되는 대립되는 점들을 열심히 살려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후반즈음에 이르면,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뚜렷한 인물의 성격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이야기거리가 될만큼 특징을 갖고 달라 보이게 자리를 잡아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점은, 표준약관에 동의 체크박스 표시하는 느낌으로 슥슥 풀어 나가는 이 영화의 뻔한 이야기가 그 흐름이 부드럽다고 느껴지게 하는데 크게 득이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하다못해, 얼싸안으며 "넌 내 최고의 친구야, 이 녀석아" 따위의 말을 할 때 그나마 덜 낯뜨겁게 느껴지게 하는 솜씨만해도 꽤 괜찮았다고 느꼈습니다.


(삼각관계)

여기에 더 하여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CIA 요원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총 쏘고 자동차 부수는 싸움 장면이 몇 군데 끼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연출이 썩 좋은 편이었습니다. 80년대 홍콩 영화 같은 느낌으로 무한히 탄환을 날려대고 신나게 붕붕 날아 다니면서 흥겨운 음악에 맞춰서 무슨 엑스트라베간자 쇼 같은 느낌으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있는 싸움이 아니라, 통쾌하고 장단이 신명나는 싸움 장면 말입니다. 음악은 개성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장면을 연출할 때 쓰이는 요즘 유행에 맞게 성실히 잘 나왔습니다. 고층빌딩에서 매달리고 자동차가 뒹구는 가운데 총을 쏘는 장면들 역시 와닿게 화면에 화려하게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눈에 잘 보이고, 박자감각을 흩뜨리지 않게는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장난스럽고 한바탕 웃음거리 같은 느낌의 영화에 총으로 사람 쏴 죽이는 장면이 이런 느낌으로 나오는 것이 좀 어색하다 싶을 때가 있긴 합니다만, 금방 가려 주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분량이 매우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게 이야기 했습니다만, 막말로 짧게 이야기해 보자면, 이 영화는 역시 "논스톱"인 것입니다. 가수들이 맨날 히트곡을 낼 수는 없는데, 그래도 팬들에게 여러가지로 많이 모습을 보여주고는 싶으니까 헐렁한 시트콤에 나와서 이 모습 저 모습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리즈 위더스푼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노처녀 리즈 위더스푼에게 잘보이려고 애쓰면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리는 젊은 미남 배우 두 명을 요리조리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여자 관객만 올 것이고, 그러면 쉽게 시들테니까 남자 관객도 끌어 들이기 위해서, 거기에 더하여 두 남자 배우가 CIA 특수요원으로 나와서 총질도 하게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초장에는 홍콩 시내를 다 박살낼 듯이 굴 던 이 남자 배우 두 사람이 특수요원이랍시고 하는 일이 정말 조금 밖에 안나온다는 겁니다. 기껏해야 CCTV 감시 정도 입니다. 좋아하는 여자 몰래 CCTV 보는 것은 제임스 본드 같다기 보다는 동네 변태 아저씨 같은 일 아닙니까? 시작 장면에서 잠깐, 중간에 독침 쏘는 장면 잠깐 정도 외에는 정말 특수요원다운 쇼가 없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특수 요원의 고유한 기술들을 써먹는다는가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고 기억 됩니다.

특히 영화 내내 주인공을 쫓아 다니는 지옥의 사자처럼 나오는 악역 하인리히는 아주 선명한 증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악당이라는 하인리히가 막판 대결전에서 얼마나 별볼일 없고 아무 짓도 안하다가 허망하게 당하는 지, 거의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하기야, 이 영화에서 하인리히는 "테러리스트"라고 하기는 하는데, 뭘 무슨 나쁜 짓을 하려고 하기에 악당이라는 건 지 별로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무슨 폭탄을 장치하려는 인간인지 암살자인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맥거핀도 맥거핀 다와야 맥거핀이지.

"디스 민즈 워"는 고만고만하게 짜 넣은 즐길거리를 가지고, 적당히 건사할만큼 이야기를 뽑아낸 정도이지 싶습니다. 특징적인 점이 어느 한 구석이라도 조금 더 확실히 먹혀서 좀 더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대목, 조금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하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지금은 중간에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가지고 시트콤 같은 대사를 주고 받는 부분 정도가 쓸데 없이 기억에 남는데, 이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대사였습니다. 그냥 감독이나 각본가가 영화팬이라서 자기들 재미로 넣은 대사인 듯 싶은데, 이런 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재미 없지는 않은 영화라고 쳐도, 기대할만한 선은 뚜렷이 보이는 영화지 싶습니다. 물론 여전히 술렁술렁 넘어가는 구성에 웃길거리를 성심을 다해 심어 둔 모양은 즐거운 영화를 두고 얕볼 것은 아니긴 합니다.


그 밖에...

부질 없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영화 중간에 "패트리어트 액트" 이야기도 한 번 나오고 하니까, 아예 남자 주인공 두 사람을 한 사람은 전통적인 애국주의 과격파 요원으로, 한 사람은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온건파 요원으로 놓고 티격태격하는 영화를 만들면 어떤가 싶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입장이라든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미국 정보 요원이 진정으로 신경써야할 문제에 대한 견해라든가 하는 면이 뚜렷이 달라서, 이런 점을 두고 뚜렷이 대조가 되는 인물로 꾸며서 갖가지 이야기를 꾸며 갔다면 어땠겠나 싶다는 생각도 잠깐 해봤습니다.

옛날에는 노래 제목도 번역을 해서 "사랑은 비를 타고" 라는 식으로 제목을 붙였는데, 굳이 "디스 민즈 워"라고까지 번역 없는 영어 제목을 달아야 했나 싶습니다. 하다 못해 누구 말대로 "한 판 붙자" 같은 제목이라도 어떻겠습니까.

덧글

  • 漁夫 2012/03/03 23:36 # 답글

    차라리 '이건 전쟁이야!' 같이 나갔어도 되는데 말입니다.........
  • 게렉터 2012/03/03 23:48 #

    포스터에는 그 비슷하게 씌여 있었던 듯도 합니다.
  • 잠본이 2012/03/03 23:46 # 답글

    'CIA 연애클리닉 사랑과 전쟁' 어떻습니까(...)
  • 게렉터 2012/03/03 23:49 #

    "슛뎀업"에 "거침없이 쏴라 슛데업"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나, "초민망한 능력자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느낌이라면, 뭐 "사랑과 진짜 전쟁" 같은 제목을 붙였을 법도 하다 싶습니다. 저는 그래도 "디스 민즈 워"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 2012/03/04 01:01 # 삭제 답글

    연애물로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한 영화죠. 맥지에게 많은 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_-;;
  • 게렉터 2012/03/04 14:28 #

    뭔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훨씬 더 즐겁게 봤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아쉬웠습니다.
  • 2012/03/04 13:25 # 삭제 답글

    제목오타났어요 MEANS
  • 게렉터 2012/03/04 14:27 #

    요즘 오타 때문에 고민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자갤러 2012/03/04 15:46 # 답글

    CIA를 표방한 코믹 연애물 영화 이군요.. 이런영화는 너무 진지하게 보면 안되겠어요.
  • 게렉터 2012/03/10 22:09 #

    시작부터 진지와는 담 쌓고 출발한 영화였지 싶습니다. 대체로 여자 관객을 위한 힘 좋은 남자 배우들의 재롱잔치 느낌도 많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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