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Chronicle, 2012) 영화

"크로니클"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자기 주변의 일상사를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하기 시작한 어느 고등학생입니다. 이 고등학생은 좀 울적하게 사는 외톨이이고, 가정 환경 역시 울적한 편 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화면이라고 보여 주는 내용을 화면에 비추면서 하나하나 주인공 주변의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초반부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이야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뜸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재미인 영화 입니다. 예고편도 그걸 노린 듯해 보입니다. 대체로 요약하자면, 결코 밝지만은 않은 고등학생의 삶을 칙칙하고 마른 사실주의 화면으로 보여 주고, 영화내내 이야기가 그런 분위기이지만, 중반부터 대뜸 장풍을 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자가 되는 소재로 넘어가면서 영화 내용은 더욱 흥미를 더하고, 이야기는 환상적인 맛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포스터)

좀 더 세세한 면을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 현실을 밝혀 보여 준다는 느낌을 영화를 꾸미는 요소로 무척 많이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화면에 보이는 장면들이 모두 등장인물들이 어찌저찌해서 찍은 캠코더 화면이나 기타 CCTV같이 "현재를 찍은 화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또 그렇게 가기는 하지만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 같은 영화하고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 영화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부분도 없고, 초반을 제외하면 이 영화 화면들이 등장인물들이 직접 찍은 캠코더 영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덕분에 중간에 끊임 없이 이어지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비교적 긴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끊길 때는 끊기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 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영화처럼 구성 되어 있기는 한데, 모든 장면 장면들이 따지고 보면 자료 영상을 엮은 듯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이 영화의 개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울적한 외톨이로 살고 있는 한 고등학생의 현실을 담아 내는 사실주의 요소를 드러내는데, 그런데 이 외톨이 고등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초능력자가 되어 날아 다니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환상적인 소재를 중심에 두고 계속 다루어 나아가는 이야기면서도, 이렇게 자료 영상을 엮인 듯한 화면 구성을 쓰는 것이 무척 재미났습니다.

이런 점은 얼마전의 "디스트릭트 9"에서 재밌었던 부분과도 비슷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술 더떠서 줄기차게 영화 내내 계속해서 영화 화면은 자료 화면 같이 생긴 화면만 계속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면은 안정감 있는 구도로 잘 카메라를 세워 두고 찍은 화면이 적은 편이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배경 음악이 깔리는 경우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극적인 대사, 각본 스럽게 씌여 있는 대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네 날건달, 재미 없게 비슷한 단어만 반복해서 쓰는 청소년 같은 말투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되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이렇게 꾸민 덕택에 이 영화는 양면에 걸쳐 이야기 거리가 풍부해 졌다고 느꼈습니다. 우선은 초능력자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치고 특이한 이야기를 보여 준다는 것 그 자체에 일단 성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초능력을,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무슨 엄청난 활약을 하거나, 사회의 위기를 구하는 유명인이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 도리어 그렇게 성공하는 것도 허망한 환상일 뿐이라는 내용이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 그냥 그런 초능력을 가진 실제 세계의 소소한 이야기 거리들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해보는 사소한 장난이나, 놀라움을 표현하거나, 초능력이 생긴 상황에서 일상생활을 마주할 때 생기는 달라진 시각, 관계 같은 것들을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자체도, 어떤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해결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을 하는 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시종일관 가라앉은 모양으로 번뇌하는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울적하고 메마른 느낌으로 밀어 붙인다는 것입니다. "슈퍼맨" 부류와 같은 흥겨운 무용담과는 정반대이고, 어두운 이야기라고는 해도 느와르의 낭만과 극적인 주인공 다움이 선명한 "배트맨"과도 한참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사연이 다르거니와, 풀어 나가는 방향이나 결말도 전혀 다르게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가지 재미난 점은 이렇게 어두운 현실을 냉랭하게 비춰보는 어조로 이야기를 꾸민 덕택에 초능력의 신비로움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같은 초능력 화면이라도 꼭 취재 영상이나 자료 화면, 우연히 찍은 녹화 동영상처럼 꾸민 화면에 담기니까 꼭 진짜로 그 초능력 장면을 포착한 신기한 영상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진짜 같고, 더 놀라워 보였습니다.

물론 캠코더 촬영 영상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돌아가며 움직이는 와중에도 말끔하게 사람이 떠오르고 물건이 날아다니는 생생한 특수효과를 딱 들어맞게 잘 쓴 것도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의 빛, 바람, 구름을 담아낸 장면 구성은 어느 초능력 영화의 비행 장면보다 월등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초능력을 쓸 때 놀라는 사람들의 태도나 신기해하는 반응도 영화 속 장면이나 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뉴스 속의 영상이나 실제 기록 비디오처럼 담겨 있어서 더 감정을 돋구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거리들이 교묘하게 얽히면서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는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장면은 초능력으로 혼자 하늘을 떠다니는 카메라입니다. 이 영화는 화면이 항상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게 나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카메라에 담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초능력으로 카메라를 공중에 붕 뜨게 해서, 마치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처럼 장면을 찍고 있다는 식으로 꾸며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이렇게 카메라가 스스로 날아 다니고 있다는 점을 일부러 재미난 구경거리로 해 놓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항상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은 있어야 하기에 자연스러운 영화 같은 화면은 못 만들어 내는 "자료 화면만으로 되어 있는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영화 같은 화면을 담아내는 잔재주가 되기도 합니다.

영상을 촬영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이고, 영상을 꾸미는 방식을 독특하게 한 점이 눈에 뜨이는 영화라는 면에서, 이렇게 카메라가 스스로 날아다니며 화면을 담는 방향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그것만으로도 초능력적인 흥미를 돋구는 면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 영화에서, 사람이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방향에서 영상을 담아내면 얼마나 멋진 화면이 될까 하고 탐내는 것은 예로부터 자주 관심을 받던 소재였습니다. 카메라를 든채로 비행기에 앉아 날아 다녔던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나, 지금도 자주 이야기 되는 "시민 케인"에서 화면이 점차 확대되면서 울타리를 자연스럽게 연기처럼 투과해서 화면이 이어지는 장면 같은 것들이 쉽게 이야기 거리로 달라 붙을만 합니다. 줄에 매달린 카메라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영화를 찍게 하는 스파이더캠 기술도 한동안 자주 회자되던 이야기 거리였고, 카메라가 스스로 날아다니며 찍지 않는 한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역동적인 구도를 담아서 보여주는 것이 애니매이션의 매력이라면서, 수백개 수천개의 미사일을 피하며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우주선의 모습을 왠갖 방향에서 엄청난 속도로 돌아다니며 잡아내는 우주 전쟁 화면 연출이 언급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영화에서는 정말로 아예 대놓고 "초능력"이라면서 카메라가 허공에 붕 떠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여러 가지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성격의 이야기 거리를 꾸려 놓은 모양도 상당히 실력이 뛰어난 편인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한 울적한 고등학생의 삶을 비춘다는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느라 느릿하고 가라앉은 화면을 많이 써먹는 이야기 였습니다. 게다가 각 장면들도 자료 화면을 따온 형식이라서 재치있고 흥겹게 진행되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비추는 느낌을 더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내용을 항상 호기심이 생기게 유지하고, 곧 무슨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갈등을 줄곧 끌고 가고 있어서 영화가 지루할 새 없이 술렁술렁 잘 넘어 가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공포 영화 연출법을 여기 저기 자주 활용한 것도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어두운 굴 속에서 모퉁이를 돌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면서 조마조마하게 걷는 장면이라든가, 정신이 확 돌아 버릴 것 같은 사람의 불안한 모습을 비추는 장면 등등은 공포 영화에서 흔히쓰는 수법을 따라서 꾸민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피 튀기는 장면이 그다지 뚜렷한 영화도 아니고, 크게 놀래키거나 겁주려는 장면도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도, 연출의 면면이나 불길한 기색을 담아내는 모양을 보면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 데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런 면들이 잘 활용되어서, 영화를 관심 갖고 더 지켜 보게 하고, 더 빠르게 이야기를 넘어 가게 해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돌아보자면 개성적인 관점을 제시한 초반부, 초능력 장면들의 신기한 맛을 충실히 보여 주는 중반부에 비해서 어쩔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야기로 흐르고 마는 결말부가 조금 약한 편 아니었나 싶습니다. 공포 영화 이야기를 한 김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공포 영화 "캐리"와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대조가 된다고 생각 합니다. 주인공이 겪는 갈등이나 그래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자면, 모든것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일이 터지는 "캐리"에 비해서 이 영화는 결정적인 문제는 사실 성격 더러운 인간 한 놈의 문제 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만사 결코 간단할 수가 없는 현실 세계를 가까이 다루는 태도의 영화치고, 결말의 사건이 조금 모자라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결말을 내는 방법 역시, 결정적인 전환이나 감탄할만한 영감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가고, "결말 같아 보이는 장면"을 하나 그냥 짜넣어 때우는 느낌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내는 결말 역시, 이 막판 대파국 장면의 위력은 충분 합니다. 실제 뉴스 화면처럼 꾸민 장면이나, CCTV 영상 등을 이용해서, 정말로 초능력 때문에 큰 난리가 일어난 그 충격감이 포착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초능력자 악당이 세계 정복한다고 설치는 영화 못지 않게 공황의 감정이 살고, 자동차가 하늘로 떠오르고 유리창이 박살나는 장면의 충격이 생생하게 와닿게 꾸며져 있습니다. 저예산 영화처럼 나오는 도입부를 생각하면, 원 없이 예산을 쓰면서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원없이 다 보여준다는 후련한 느낌마저 있었습니다. 경찰 촬영 화면, TV 화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찍은 화면 등등의 온갖 자료 화면들이 바뀌어 가면서 보통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블록이 버스트하는 화면이 만들어지는 그 숨가쁜 기세는 출중했다고 느꼈습니다. 감정 표현이나 연기 면에서도, 울적한 이야기가 대파국으로 치닫는 것에 어울리게, 비극적인 사연도 또렷하게 잘 드러났다고 생각 합니다.

청소년은 꿈, 희망, 가능성, 도전 이런 것들에 어울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고 가기에는 암담한 면, 좌절스러운 부분도 사회에는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불우한 고등학생이 초능력을 얻어서 환상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런 꿈과 비극적인 현실이 어떻게 좌절을 빚어내는 지, 거의 우화와 같이 상징적으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도, 명대사랍시고 그야말로 상징적인 커다란 헛말을 주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상의 일을 담아내는 듯한 사실성을 찾아 보기 힘든 뚜렷한 색조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줄거리의 흥미, 장면의 재미를 지켜나가는 점은 훌륭했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영화의 끝까지 봐야 내릴 수 있는 결론 입니다만, 끝까지 보면, 도대체 초능력이 왜 생긴건지, 정확히 한계나 부작용은 뭔지 안 가르쳐 주는 영화 입니다. 그런면에서 보다보면 속편을 만들려면 만들 수 있는 영화로 보이기도 합니다. 속편이라면 형식은 비슷하게 꾸며도 재미난 구경거리일 지 싶기는 한데, 내용은 이번 영화가 워낙 개성이 뚜렷했던 터라 비슷한 주제를 또 다루는 것은 안좋은 선택이다 싶습니다.

중간의 마술쇼 장면은 모든 이 영화 연출의 개성과 영화 속 인물들의 개성까지 최고로 드러나는 부분이라는 면에서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울적한 분위기인 이야기 속에서 잠깐 나오는 아늑하게 아주 잠깐 쉬어가는 내용이라는 면에서, 그 보기 좋은 감상이 더 남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미국 시애틀이 배경으로 나옵니다만,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타운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찍은 장면이 많다고 합니다.

중간에 잠깐 "캐리" 이야기를 했는데, 소설판 "캐리"가 가상의 자료를 모아 놓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영화와 또 닮은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덧글

  • rumic71 2012/03/18 16:47 # 답글

    찌질한 중2병 초능력자를 라노베가 아니라 헐리웃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었지요. 환마대전과 아키라에서 이미 다 보여준 것이고, 소재랄까 아이디어도 절대가련 칠드런 같은 데에서 이미 짚고 넘어간 거라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만...
  • 게렉터 2012/03/27 21:35 #

    역시 사회고발 영화에서 주로 많이 쓰이던 사실주의 풍으로 영화를 꾸민 것이 특색을 살린 듯해 보입니다. 말씀하신 "아키라"만 해도 주인공들을 비추는 모양이 어떤 대단한 존재를 비춰내는 듯한 분위기에 서사시적인 거창한 느낌으로 배경을 묘사하는 기색이 강했고, 이 영화에 비하면 대사나 연출 부분부분도 철학적인 문제에 더 집중한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 잠본이 2012/03/27 21:45 #

    아키라는 아무래도 세기말 사이버펑크 분위기라든가 일본과 미국의 뿌리깊은 정치적 은원관계라든가 그런게 막 얽혀 있어서 SF에 관심없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법한데 이 영화는 아주 친근하게 미국의 평범한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터라 어찌보면 아키라보다 소구력은 더 높은 것 같기도 하고요(...)
  • 잠본이 2012/03/18 16:56 # 답글

    부작용이 쌍코피라는 점이 참 고딩스러워서 웃겼지요. 뒤로 갈수록 웃을 일이 적어지지만 OTL
  • 게렉터 2012/03/27 21:36 #

    본격적으로 초능력을 써서 사람을 해칠 때 처음하는 게 "강냉이" 날리기라는 것도 그러고보면 고딩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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