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밴드 (Contraband, 2012) 영화

2011년작 "콘트라밴드"는 밀매범의 전설이라며 주인공을 칭송하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이제 손털고 보안 장치 사업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이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가족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해서 마지막으로 한 건 하기 위해서 밀수의 길에 나서는 이야기로 진행 됩니다. 이리하여 주인공은 파나마에 갔다 오는 화물선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끼어서 밀수를 하게 되어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다니며 활약하고, 애초에 주인공이 휘말린 위협 뒤에 있는 또다른 사연도 점차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내용 입니다.


(포스터: 이 포스터만 보면 복잡한 업치락뒤치락하는 음모와 물고물리는 대립이 중요한 범죄극인 듯 하지만, 별로 거기에 재미가 실려 있는 편은 아닌 영화였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재미거리가 되는 밀수 작전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대강대강 이었습니다. 재미 없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 어디에어디에 물건을 숨겨 들어 오던 일당들이 잡혔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그냥 기사만 줄줄 읽어도 흥미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밀수꾼들이 어떻게 짜고 어떻게 엮어서 어떤 식으로 물건을 숨기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속여서 밀수를 하는 지 하는 이야기들이 화면에 잘 나타났습니다. 숨기는 수법과 속임수는 시선을 끌 정도는 되는 편이고, 이런 내용들은 지루하지 않은 속도로 슥슥 이야기 속에 나타나 줬습니다. 이 영화속의 밀수꾼은 거의 제임스 본드를 방불케할만큼 자신감 넘치고 솜씨 좋은 사람으로 "밀수"하면 생각나는 음침한 분위기와 별 상관 없이 무슨 의적 로빈훗처럼 신나게 뛰어 다닙니다.

좀 엉성하다 싶은 것은 그냥 그 정도에서 멈춘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밀수 아이디어가 나온다고는 했지만, 신기해 보이고 감탄스러울 정도의 밀수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들의 활약이 독특하거나, 웃기고 재미난 다른 즐길만한 건더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보자면야, 주인공이 세운 작전이 조금 어긋나서 파나마에서 일이 꼬이고, 그 덕분에 주인공의 위기가 점점 커지고, 점점 더 큰 소동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치달으면서 이야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다채로워 졌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단조롭다고 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무슨 "다이하드"처럼 정말 큰 난리가 나는 걸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온갖 일이 다 꼬이는 긴 하루를 보여주는 영화 같이 기막힌 사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이 안 심심할 정도로 조금 꼬이고 시간 되면 그냥 슥 풀리면서 넘어 가주는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이야기가 좀 사는 부분은 항만 노동자와 입항하고 출항하는 화물선의 이곳저곳을 화면에 틈틈히 담아낸 대목들이었습니다. 항구에서 벌어질만한 일들, 항구와 컨테이너 화물선의 여러 사정에 대해서 해박하게 알고 있으면 찾아 낼 수 있는 재미난 틈새 같은 것들을 잡아내려고 하는 면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배우들이 저마다 자기 색에 어울리는 배역으로 한 자리씩 차지한 상태에서 커다란 배와 배가 지나는 파나마의 항만을 시원시원하게 잘 잡은 구도로 담고 있어서 눈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서 보여 주는 화물선과 화물선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실감나고 재밌어 보이는 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또 썩 그렇게 영화를 지탱할만한 대단한 구경거리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이런 내용 자체가 썩 많이 나오지 않는 데다가 영화 전체에 이런 이야기거리가 밀착 되어 진지하게 그려진다기보다는, 그나마 한 가지 개성으로 끌어서 양념으로 뿌려 놨다는 정도 였습니다.

게다가 항만 노동자들의 삶이 영화에 중요한 부분으로 끌려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부분들도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이야기는 현장감이나 사실감이 꽤 중요한 부분일텐데, 이 영화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즈나 파나마의 면모나 특징을 드러낸다는 느낌이 매우 적었습니다. 뉴올리언즈는 중요한 관광지로 꼽히는 도시이고, 파나마 역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명인데, 어느 소재 하나 눈에 뜨이게 표현된 부분이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 속의 뉴올리언즈 풍경은 세계 어느 항구 도시의 여느 표준 컨테이너 야적장 인근과 다를 바 없이 보이고, 파나마 역시 할리우드 영화 속에 막연히 등장하는 "마약 범죄자가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남미의 위험한 도시"로만 그냥 또 나올 뿐이었습니다.

항구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가깝게 잡아 내는 이야기가 이 정도에서 멈춘 것이 아까운 까닭은 이 영화에서 중간에 튀어나오는 "그림" 소재와 잘만하면 꽤 재밌게 얽힐 수 있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무척 비싼 그림인데 난해한 추상화라서 보통 사람이 보면 그냥 낙서 같이 보이는 그림이 나옵니다. 이런 그림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20세기초부터, 여러가지로 농담거리가 된 소재인데, 사람들의 막연한 허영을 묘사하거나, 부유층, 지식층, 사회지도층 등등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기에도 많이 쓰였던 소재였지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그림이 나오니만큼, 이 영화 속에서 보여 주는 여러 계층의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면면에 견주어 소재를 엮으면 좀 더 재미난 이야기로 끌고 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화물선을 움직이는 대기업의 입장에서부터, 해운 회사 직원, 선장과 항해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항구에 배를 대고 배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능숙한 기술자, 막일을 하는 잡역부, 세관 담당자 등등, 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밑바닥 까지 피라미드로 흔히 묘사되는 사회 각계각층의 삶과 관점을 훑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한 건의 밀수 한 탕 속에서 재미나게 엮고 섞어 빠른 이야기로 뽑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부자와 빈자, 지식인과 무지렁이들이 함께 사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운데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하여간 예술적이라고 하는 그림"이 소재로 끼어 들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영화는 그렇게 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 덕택에 이 영화 속에 나오는 문제의 "그림"은 그냥 지루함을 잠깐 때워주는 가벼운 농담거리 하나로 머물고 맙니다.

"경찰청 사람들" 방영분 중에 잠깐 보고 나면 적당할만한 밀수 수법 몇 가지를 다루는 것 정도에 머무는 덤덤한 이야기를 조금 이나마 아슬아슬하게 당겨 보기 위해, 이 영화는 마약 밀매 건 뒤에 숨겨진 사연 하나를 같이 풀어 나가는 이야기로 집어 넣어 두었습니다. 갈등 자체는 무척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냥 밀수 한 번 하고, 들킬까 말까 한다는 이야기 정도인 주인공의 이야기에 비해서, 악당이 주인공이 되는 숨겨진 사연 쪽의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고 훨씬 생동감 있기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건수로 출발했는데, 일이 꼬이고, 일이 꼬여서 거짓말을 하다보니 일이 계속 더 꼬여 가고, 그러다보니 그 꼬인 일의 틈바구니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미쳐가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갈등의 중심인 악당의 질투, 열등감, 두려움을 생생하게 갖다 들이미는 감정 표현의 이야기로도 괜찮았고, 꼬인 이야기를 하나씩 드러내면서 진상을 궁금하게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될 지 기대하게 하는 구조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배우의 모습과 연기도 싱겁게 "멋진 사나이"만 연기하는 주인공 보다 더 재미났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것은 주인공과는 상관 없이 곁다리로 반대 방향에서 조금 보여 주고 마는 악당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도리어 이 영화의 악당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 악당의 꼬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따로 영화를 하나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습니다만, 그런만큼 이 영화에서는 이게 썩 큰 도움은 안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더욱더 결정적인 문제는, 이 부분이 다루는 이야기가 어린 아이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평화롭게 사는 아녀자를 야밤에 습격하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암담하고 우울한 소재이고 영화 속에서도 암담하고 우울하게 나옵니다. 같이 진행되는 줄거리이자 중심인 밀수 이야기가 능글맞게 속여 먹고 속도감있게 헤쳐 나가는 흥겨운 분위기로 되어 있다는 점과 비추어 보면, 이 어두운 이야기가 분위기를 좀 망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좋게 보자면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더하고 진지한 맛을 드리우는 면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애초에 항구의 풍경을 다루면서 사실성을 살리는 소재를 좀 포기하고 가는 영화아니었습니까? 그렇다보니 영화를 굴러가게 만드는 관심 가는 소재를 주는 부분이 되기는 하되, 좋은 면 보다는 전체적인 흥겨운 맛을 망치는 뒷덜미를 잡는 느낌이 더 컸지 싶었습니다.

훨씬 더 재미난 소재로 나아갈 가능성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기는 했고, 나름대로 개성이 있기는 했지만, 정작 남아 나는 것은 밀수 한 판 보여 주는 것 정도를 적당한 솜씨, 볼만한 정도로 만들어낸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돌아보면 중간에 총격전 장면이 "히트" 이후로 주목을 받은 사실적인 도시 속 총격전 장면 형식으로 잘 잡혀 있는 편이라는 것도 기억 납니다. 총격전을 벌이는 양쪽의 시선과 총소리, 긴박감, 빠른 화면 전화이 잘 얽혀 있는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의 다른 "좋기는 좋지만..." 했던 부분들처럼 이 역시 영화의 재미거리에 직접 떨어지는 이야기는 못되었습니다. 총격전이나, 총, 주인공의 총솜씨, 총에 관한 주인공의 성격 같은 것이 전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이슬란드 영화의 리메이크판 영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나 파나마의 지역색이 확 묻혀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이하게도 아이슬란드판 원작의 주연이 이 영화에서는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덧글

  • 베이글 2012/03/28 22:31 # 답글

    리메이크작인지 몰랐네요.
  • 게렉터 2012/04/04 20:44 #

    돌아볼 수록 그래서 미국 남부의 지역색이 안드러났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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