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온 마담 장 (1970) 영화

1970년작 한국 영화, "홍콩에서 온 마담 장"은 일제 시대 일본 헌병 한 사람이 자기 애인을 한 부자의 후처로 잠입 시킨 뒤에 그 애인을 조종해서 그 부자 집안의 재산을 몽땅 가로채는 이야기로 출발하니다. 이 일본 헌병은 그 과정에서 그 부자를 칼로 죽이기도 합니다. 이 부자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던 까닭에, 제목 "홍콩에서 온 마담 장"의 본론은 이 딸이 장성한 뒤에 부하들을 고용하고 팀을 만들어서 아버지의 원수를 습격해서 쓰러뜨리려는 활극으로 이어집니다.


(포스터)

마담 장은 암흑 조직과 관련이 되어 있었던 남편이 죽은 후에, 그 남편이 남긴 꽤 많은 재산으로 암흑 조직들과 가까이 있는 사업가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본론으로 흘러 들어 가면, 마담 장은 서울 시내 각지를 돌아 다니며 자신과 같이 일을 치를 부하들을 기용하려고 다닙니다. 첫번째 부하는 소매치기로 마담 장의 가방을 훔치려고 한 여자의 뒤를 밟아서 "기왕이면 크게 한 건 하자"며 기용합니다. 두번째 부하는 일종의 꽃뱀으로 남자를 유혹한 다음에 슬쩍 마취약으로 남자를 기절시킨 뒤에 금품을 털어가는 사람이었는데, 꽃뱀에게 당한 남자가 따지고 들면서 덤벼들자 그 남자를 마당 장이 제압해 준 뒤 꽃뱀을 설득해서 기용합니다. 세번째 부하는 빌딩 옥상에서 뛰어 내리려고 하는 여자인데 남자에게 버림 받았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자, 주인공 마담 장이 "기왕에 버리려는 목숨 내가 맡아서 쓰게 해 달라"고 설득해서 기용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마담 장과 세 명의 부하들은 세상의 남자들에게 당하면서 살아온 원한을 갚고 크게 한 건 하기 위해서 서로 힘을 합치자고 합니다. 이 네 사람들은 술에 새끼 손가락에서 뽑은 피를 섞어서 마시며 서로 항상 같이 하자며 결의를 하고, 이렇게 해서 마담 장과 세 여자들은 조직을 이루어, 지금은 암흑 조직의 두목이 되어 있는 원수를 습격하기 위한 결투를 벌이려고 하는 겁니다. 바로 뒤이어, 지하실에 마련해 둔 공간에서 이 조직원들이 칼을 던지는 연습을 하고, 유도와 같은 격투를 연마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보여 주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재미난 부분이자,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 만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라는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목표에다가, 약간 나이가 든 "마담 장"이 젊은 여배우들이 연기하는 뒷골목의 여자들을 모아서 스파이 특공대 조직 같은 조직을 만든다는 부분까지, 다소 장난 같기는 해도 흥미를 끌고 진기해 보이는 대목이 많았다고 생각 합니다. 더군다나 이 "마담 장"을 연기하는 배우가 최근에는 TV극 시어머니 역할의 그랑프리로 자리잡은 정혜선 선생이라서, 묘하게 지켜보게 되는 맛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의 젊은 시절 모습이지만 "시어머니" 다운 근엄함은 묘하게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안어울리는 듯 조직의 여두목 모습에 어울리는 듯 하기도 하고, 그 배우가 발차기를 하고 칼부림을 하는 것이 진기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정혜선)

물론 비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부자연스러운 문어체 대사와 대충 영화사 창고에서 꺼내와서 재미없게 박아 넣는 별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은 싱겁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에서 유행이 시작되었던 여자 싸움 영화들, 여자 깡패 영화들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온 영화치고 배우들의 격투 장면이 무척 재미 없었습니다. 가짜로 싸우는 기색이 역력한 느릿느릿한 동작에, 그나마 상당수 싸움 장면들은 전혀 구경거리가 못되는 대역 싸움으로 어색하게 때워 두었습니다. 최악의 트래쉬 무비들처럼 도대체 뭘 하는 지 알아 볼 수도 없는 경지까지는 아닙니다만, 그걸 겨우 벗어나서 "누가 누굴 때렸는지는 알겠다"는 정도에 멈춰 있는 수준입니다.

이런 점은 아름다운 여배우들을 기용한 뒤에 이 배우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싸우는 내용으로 나온다는 것을 중심에 둔 영화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내용의 일본 영화들이 내용은 다 접어 두고라도 몇몇 싸움 장면 만으로도 아직도 팬들에게 회자되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생각 마저 듭니다. 따져보자면야, 그 일본 영화의 명장면들이라는 것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그런 일본 영화들의 전통을 살려서 "킬 빌"등에서 작업한 이후로 국내에서는 쓸데 없이 왜곡된 감상이나 과대평가가 잘못 엮인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의 부실하기 그지 없는 간신히 때렸다는 것을 표현만 하는 정도의 싸움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떤게 더 좋은 기술로 만든 영화인지는 확연히 드러나지 싶습니다.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회의 버려진 사람들을 기용해서 조직을 꾸린다는 출발은 꽤 개성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바탕으로 출발해서 열심히 싸우고, 갖가지 방법으로 정혜선이 장 마담으로서 조직을 최대한 이용해서 결전을 벌이는 내용으로 영화를 펼쳐 낸다면 요란한 구경거리, 신기한 싸움 장면을 많이 보여 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싸움 장면이 워낙 초라해서 실망이 점차 커져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싸움 장면 뿐만 아니라, 대사나 감정 표현도 대충 만든 기색이 심했습니다.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장마담이 설득하는 대목 같은 것을 보면, 장 마담이 뛰어내리려던 사람에게 대뜸 나타나서, -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 왔는 지,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잘 다가왔는지도 안 보여 줍니다. - 말하기를,

"그 목숨 나에게 맡기지 않겠나?"

라고 한 마디 하면, 그 사람이 뛰어내리려다가 말고 갑자기 그 즉시,

"정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보람찬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정도의 대사를 하면서 마구 굽신굽신 합니다. 이런 모양은 그런 장면을 패러디해서 웃기려고 만든 장난을 방불케 할 정도로 허탈하게 실감나지 않고 간략하고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출발은 묘사가 좀 안좋아도 이야기 소재와 엮어 나아가는 구성은 재미난 데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주 어린 세월 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준비해온 여자 두목과 그 여자 두목이 거느린 각자 주특기가 다른 비밀 조직 대원들이 모이고 활약을 펼칠 것 같은 배경을 깔아 주니 말입니다. 뭐 멋진 장면은 별로 없어도 이렇게 판을 벌여 두고 희한한 이야기와 진기한 재미거리만 좀 보여 준다면야 한 바탕 신나는 즐길 거리로 어느 정도 위력은 해낼만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주먹과 발차기로 싸우는 정혜선)

그러나 이 영화는 거기서 한 번 더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진행 되면서 대뜸 멋있는 남자 주인공, 수수께끼의 사나이랍시고 갑자기 박노식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아무 쓸데 없이 박노식으로 빠지는 겁니다. 혼자서만 싸우는 떠돌이 싸움꾼이라면서 갖은 "표표히 떠도는 멋진 사나이"들이 하는 왠갖 잡대사는 다 주워 섬기는 멋있는 사람으로 박노식이 나타나서 장동휘가 연기하는 악당 총두목의 고용된 싸움꾼이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동안 박노식 이야기를 한참 보여 줍니다.

박노식 이야기라는 것은 별개 아니라, 일본 영화 "요짐보"의 고용된 칼잡이 이야기를 잠깐 성의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고용된 떠돌이 칼잡이가 이쪽 조직에 붙었다가 저쪽 조직에 붙었다가 하면서 이야기의 갈등을 벌인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떠돌이 주먹으로 나온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야, "요짐보" 이후로, 유명한 서부 영화 "석양의 무법자"는 물론이요, 한국 영화에도 몇 차례 보이니 그냥 단골 손님 또 찾아 왔구나 싶게 치더라도, 이 영화에서는 성격 묘사와 갈등 표현, 대사가 현격히 더 나쁘고 대충한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는 영화의 중심 소재이자 진짜 특징적인 재미거리인 "마담 장과 일당들"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저 혼자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중반을 지나면 대충 흐지부지 되면서 끝납니다.

수수께끼의 사나이, 박노식의 정체란 것도 별볼일 없습니다. 당시 한국영화의 공식 그대로, "동경특파원", "그 여자를 쫓아라" 같은 영화에도 그대로 나오듯이 박노식은 또 잠복한 형사/정부요원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되면서 영화는 점점 더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해 나갑니다. 박노식이 멋있는 사나이를 연기하면서 중얼거리는 "재치 있어 보이는 느물거리는 농담" 역시 그냥 "오오-" "유후-" "으음-" 따위의 영어에서 많이 쓰는 감탄사를 중간중간 많이 해서 괜히 대사 하는데 시간만 더 끈다는 느낌이 날 뿐이지 정말 재미난 것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상한 소리를 해서 신기해 보이는 헛소리를 하는 대목도 별로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기에다 한 술 더떠서 이야기가 후반이 되면, 출생의 비밀과 우연한 인연을 마구 투입하고, 마침내 이런 이야기를 신파극 형식의 울고 불고 하는 이야기로 묘사해 버리기에 이릅니다. 이쯤 되면, 이런 부류의 출생의 비밀 신파극은 한국 영상물의 유서 깊은 전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 풀어 놓고 끝까지 이야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마담 장은 헤어진 남동생이 있습니다. 이 헤어진 남동생은 알고 보니 마담 장이 무척 아끼고 있는 이 집 가정교사의 애인입니다. 그런데 이 헤어진 남동생은 알고보니 직업이 형사로 마담 장과 마담 장의 원수를 비롯한 많은 암흑계 사람들을 몰래 추적해 오고 있었습니다. 마담 장에게도 접근했고 악당 총두목 장동휘에게도 접근했던 수수께끼의 사나이 박노식은 헤어진 남동생의 선배이자 지휘관인 형사였습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가정교사, 즉 남동생의 애인은 마담 장의 원수인 악당 총두목 장동휘의 가출한 딸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리저리 출생의 비밀과 우연한 만남을 깔아 놓고, "네가 내 원수의 딸이라니 흑흑흑" "아니 이럴 수가 니가 내 동생이었다니 흑흑흑" "아니 이럴 수가 제 누님이셨다니 흑흑흑" "아버지 저를 봐서라도 풀어 주세요 흑흑흑" "넌 내 딸이 아니다 흑흑흑" "당신 딸이 맞아요 흑흑흑" 이런 대사를 끝도 없이 기나길게 두 번 이상씩 반복하면서 지루하게 끌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번쩍이는 은색 옷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분홍색 선글라스를 끼고 암흑조직의 여두목이라고 나타나서 복면을 쓰고 보석 터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던 영화가 이런 분위기로 시간을 때우면 그냥 시간 끌기라는 생각만 들법 했습니다.

영화 중반부를 보면 배우가 직접 하는 대사와 후시 녹음으로 더빙해 넣은 대사가 다른 부분이 많고, 이 영화에는 각본을 쓴 사람 이외에 "윤색"을 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영화가 원래는 이런 방향이 이 정도로 강조된 것은 아니었는데 한 70, 80% 쯤 만들다 말고 "야, 안되겠다. 영화사 사장님이 신파극도 좀 넣으랜다" 하면서 억지로 조합해서 막판에 짜 넣어 구겨 넣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는 비슷한 다른 영화를 모방해서 만들어 나가다가 나름대로 차이점이랍시고 이런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아 보일 지경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의 정혜선)

이런 식으로 재미 없어 지는 부분 중의 압권은 이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최후의 결전에서 강가의 야적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자갈돌이 굴러 내리는 황량한 곳을 배경으로 마담 장과 악당 총두목이 드디어 1:1로 마주합니다. 마담 장은 드디어 필생의 숙업이었던 대로 악당 총두목을 권총으로 사살 합니다. 악당 총두목은 발악하지만 굴러내리는 자갈돌과 함께 뒹굴며 먼지 날리는 바닥으로 미끌어 집니다. 흩날리는 강변의 흙먼지, 산처럼 끝없이 펼쳐진 돌더미들, 쏟아지는 눈부신 정오의 태양. 서부 영화 다운 흥취마저 작렬하는 영화 전체에서 몇 안되는 운치 있는 화면이 아주 잠깐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고 나서, 갑자기 주인공 마담 장이 흐느끼며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반복하여 주절거리면서 이렇게 모든 싸움을 다 마치고 다 끝난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시간을 끌어 대는 겁니다. 이 부분의 대사라는 것도 고작 "내 딸에게 엄마가 이렇게 범죄자로 잡혀 가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어." "그래도 마지막으로 딸아이에게 인사는 하시죠." "안돼. 이런 못난 에미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어." "그래도 마지막으로 딸에게 인사나 하시죠." "안돼" 뭐 이런 이야기나,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렇게 오랫만에 만난 제 누님의 손에 제가 직접 수갑을 채우겠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안돼. 넌 네 할 일을 해야 한다. 자 어서 수갑을 채워라." "안됩니다. 제가 어떻게 누님에게 직접 수갑을 채웁니까." "아니야. 어서 수갑을 채워라." "안됩니다. 제가 어떻게 누님에게 제 손으로..." 따위의 아무 쓸 모도 없고 비료값도 나오지 않는 말들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차례씩 반복해서 이런 이야기로 시간을 끕니다.

이게 악당 총두목이랑 1:1 결투하는 것 보다 몇 배 이상 길게 끝이 안날 것 처럼 계속해서 이어 집니다. 벌써 다 끝났는데. 악당을 쓰러 뜨렸고 이제 그냥 끝내면 되는데 계속 이러면서 시간을 끕니다. 더욱이 이에 앞서서는 주인공과 끝까지 함께 싸우기로 했던 세 부하들이 싸우다가 죽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죽는 장면은 극히 사소하게 나왔던 주제에 이제 부하들이 죽은 것은 뭐 어떤 뒷이야기가 있는 지 신경도 안씁니다. 그런데, 그런 마당에 동생이 수갑 채운다거나, 수갑 채운 모습을 딸에게 보인다거나 하는 정도의 문제로 실랑이 하는 것을 무한정 보여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니, 처음에는 소매치기, 마취 전문, 비련의 여주인공 등등으로 자기 주특기를 보여 주면서 나왔던 주인공의 부하들은 꼭 무슨 특기를 보여 주면서 싸워 나갈 것 처럼 해 놓고, 하나도 활약을 안해버립니다. 이렇게 김이 빠질 수가 없는데, 그나마 마담 장이 싸울 때 쓰는 수법이란 것도 대부분 남자에게 뭔가를 묻히고 닦아 주는 척 하면서 닦아 주는 천에 묻힌 마취약으로 코와 입을 막아 마취 시킨다는 수법만 자꾸 똑같이 반복합니다. 꼭 일부러 웃기려고 마임 쇼를 하는 것처럼 이런 똑같은 수법만 세네번 반복해서 나오면, 이게 무슨 자비심 없는 각본인가 싶습니다. 재미난 출발점과, 어떻게든 악당은 망하고 주인공이 이기는 이런저런 결말로 나와야 한다는 결말점만 정해 놓고, 가운데 이야기는 그냥 아무렇게나 쉽게 생각나는대로 10초 이상 고민 안하고 재미 없으면 재미 없는대로,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그냥 죽죽 써서 매워 버린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꽤 재미난 이야기 거리가 있는 영화였습니다만, 이렇게 저렇게 마른 모래처럼 흩어져 버리고, 그나마 활극이다 싶은 뼈대만 남아 있는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정혜선은 온통 은빛으로 번쩍이는 차림에 거대한 선글라스를 쓴 모양에 거대한 지구라트 탑과 같이 높게 틀어올린 머리 모양을 선 보이는 등 지구 저편으로 날아 오르는 패션으로 등장해서 그 괴이감으로 이목을 사로 잡는데, 그렇게 이목을 사로 잡은 것 치고는 싸움 장면이 너무 적고, 그 적은 싸움 장면 조차도 대역과 편집으로 가리기만 가득한 텅 빈 것들이라서 무척 아쉽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정혜선이 나오는 영화인데,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저 잃어 버린 동생이 어쩌고, 딸 아이의 생명은 곧 내 생명이니 어쩌고 하면서 시간을 내다버린다니. 이 영화에서 그런 옷차림에 어울릴만한 유일한 재미난 장면이라면, 정혜선이 옥상으로 쫓겼을 때 멀리 건물 아래에서 도망치고 있는 장동휘를 발견하는 대목, 딱 하나 뿐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정혜선은 도망칠 곳 없는 옥상에서 금새라도 붙잡힐 것 같아서 위기에 몰리고, 정혜선이 꼭 잡아야 하는 장동휘는 건물 저 아래에서 도망치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정혜선이 하늘에 띄워 놓은 애드벌룬을 잡아 채서 그 애드벌룬을 붙잡고 단숨에 옥상에서 땅으로 내려와 장동휘를 따라잡는데, 그야말로 "영화" 같기는 해도, 이런 장면 정도가 이 영화의 놀라운 정혜선 패션에 걸맞는 괴상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이장면조차도 모 일본영화에서 모방해온 장면 아닌가 싶습니다.


(애드벌룬을 타고 내려온 정혜선)


그 밖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는 한국 옛 영화에 바탕을 둔 대사, 사람 이름이 무척 많이 나옵니다. 마담 장, 혹은 장마담이라는 인물도 나오는 데, 바로 이 "홍콩에서 온 마담 장"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생각 합니다.

70년대 영화에서 추잡한 악당 전문으로 나왔던 오지명이 이 영화에서 악당 총두목 장동휘와 손 잡으려고 했다가 배신하는 악당으로 나옵니다.

박노식이 등장할 때 나오는 "재치 있으려고 하는 대사" 중에 건질만 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기억에 나는 대사라고 해 봐야, 정혜선이 자신은 한번 결혼했다면서 박노식을 유혹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중고품 가격"에 비유하는 이야기 정도 입니다. 정혜선이 "그럼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나죠. 중고품 시세는 쉽사리 변하지는 않으니까." 정도라는 겁니다. 여기에 굳이 하나 더 꼽는 다면야 영화 맨 마지막에 정혜선이 검거 될 때 박노식이 "이럴 줄 알았으면 중고품을 미리 사두는 건데" 운운하니까, 정혜선이 "저는 이제 비매품이 되었군요." 라는 농담인지 뭔지 모를 대사를 한 마디 읊조리는 정도가 생각 납니다.

중간에 장동휘의 부하들과 정혜선의 부하들이 길에서 만나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정혜선이 "피차 깊은 야밤에 총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 정정 당당하게 칼로 싸우자." 라고 합니다. "정정당당하게 주먹으로..."가 보통인데 "칼로..." 싸우자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싶습니다만, 이렇게 해서 칼로 싸운 다는 것이 조직원들이 저마다 주머니 칼을 하나씩 빼들고 지극히 깡패답게 싸운다는 것도 괴상하게 이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괴상하게 이야기가 이어져서 웃기는 대목도 이거 하나 정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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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도리 2012/04/23 00:02 # 답글

    저희 외할머니가 정혜선씨랑 외모가 많이 닮으셨어서,, TV 에서 정혜선 씨 나오면 외할머니 생각이 부쩍 난다는 ... [ 뭔소리래? ]
  • 게렉터 2012/04/24 21:51 #

    이 영화에서도 "액션스타"스럽기 보다는 어째 이상하게 외할머니 스러운 모습이 더 잘 맞아 드는 모습입니다.
  • 동사서독 2012/04/23 08:45 # 답글

    젊었을 때의 정혜선 씨는 프랑스 여배우 같은 느낌마저도 나네요.

    김수미씨도 그렇고 정혜선씨도 그렇고 노인 역할, 시어머니 역할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여배우들의 젊은 시절 도도하고 섹시한 모습을 보는 것은 색다른 임팩트를 주네요.

  • 게렉터 2012/04/24 21:52 #

    머릿결이 무척 곱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정혜선이 영화에 어울리는 모습보다는 지금 정혜선 다운 모습이 더 눈에 뜨이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김수미와는 꽤 다릅니다.
  • 지나가다 2012/04/23 22:38 # 삭제 답글

    디테일은 엉망진창이지만 설정은 꽤나 요즘 막장드라마 뺨 치게 자극적인 맛이 일품이군요.
    만듦새 좋은 유능한 감독, 또는 연출자가 설정만 잘 살려서 영화, 또는 24부작 드라마 같은 걸로 리메이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 게렉터 2012/04/24 21:53 #

    확실히 그렇습니다. 무시 받으며 흘러 갔던 영화들 중에는 일본 영화를 모방해서 만들되 재밌는 점은 살리고 그걸 제작사정에 맞게 더 괴상하게 막 밀어붙여서 지금 보면 아이디어 참 신기하다 싶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것이 소위 "못만든 영화를 찾아 보는 재미"의 일종으로 다가올 때도 많고 말입니다.
  • 2012/04/25 00: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2/05/06 00:20 #

    죄송합니다만, 저도 쉽게 찾지는 못하겠습니다. 혹시 파악된다면 알게 되는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2012/05/03 19: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2/05/06 00:21 #

    언제나 재미난 정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혜선이 권위 있고 연륜 있어 보이는 역할에 젊은 시절부터 주욱 계속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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