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Snow White and the Huntsman, 2012)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무슨 "반지의 제왕" 아류작 같은 포스터에 비해서는 의외로 "백설공주" 줄거리를 충실히 따라 가는 영화입니다. 막판에 전쟁 장면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의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은 어린이들의 공상적인 동화로 유명한 이 "백설공주"를 새 마음 새 뜻을 품고 어둡고 지저분한 옛 중세 시대의 사극으로 꾸미고 진지하고 사실적인 맛을 살리되 엄숙한 비극 분위기를 넣어서 무슨 셰익스피어극처럼 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따라서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 부류의 거대한 전쟁 장면이 웅장함을 자아 내는 서사시적인 활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영화는 "맥베스"나 "오델로"와 같이 왕족, 귀족들의 배신, 음모에 심심하면 칼부림하는 중세 시대의 어두운 정서를 써먹는 사극 분위기 입니다. 여기다가 70년대 이후에 주로 유행한 사실적인 것처럼 꾸민 중세 분위기도 곳곳에 가미 되어 있었습니다. 기사 전설에 나오는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만한 중세 시대는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거리는 더럽고 귀족들은 잔인하고 사람들은 무식하고 사상은 울적한 그냥 언뜻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시대처럼 그려낸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이 방향을 따라 가되, 이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자 고트족 스러운 옷과 장식을 더욱 살려 놓은 분위기 였습니다.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 삭막하게 높게 솟은 성당 첨탑에 검은 가죽과 뾰족한 금속 장신구로 된 날카로운 옷차림들로 차가워 보이는 사람들이 싸돌아 다니게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막판 전쟁 장면에서 해변의 길을 따라 기사들의 기마부대가 돌격하는 장면은 "엘 시드" 같은 좀 더 전통적인 기사 무용담의 같은 장면과 닮아 보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중세하면, 기사고 기사 하면 말타고 돌격이니까 이런 장면이 하나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체를 돌아 본다면, 어느 작은 영지와 성을 가진 중세 어느 작은 나라에서 권력 다툼과 추악한 배신 속에 기사들이 피를 흘리는 진지하고 사실적인 사극으로 꾸민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는 주인공 백설공주가 잠깐 주기도문을 읊조리는 장면도 나오는 데, 이런 장면도 은근히 중세 시대를 지배했던 카톨릭 교회 문화를 나타낸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였습니다.


(엘 시드?)

이 영화를 이렇게 꾸며 놓은 것은 영화의 기본 줄거리나 다른 내용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우선 20세기 들어 와서는 "그림 동화" 속의 이야기가 보면 볼 수록 잔인하고 살벌한 무서운 옛날 시대상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만큼, 대표적인 그림 동화의 "작은 왕국" 이야기를 전형적인 중세 시대의 아귀 다툼 이야기로 끌어 다가 댄 것이 자연스러운 면이 많았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재해석을 한다거나, "놀라운 상상력으로 뒤집었다"는 따위로 괴상하게 엉뚱한 짓을 하지 않고, 진지한 이야기와 맞는 부분을 살리고 덜 맞는 부분은 간결하게 줄이는 식으로 충실하게 백설공주 원래 이야기를 잘 따라 가면서 영화가 꾸려져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악명 높은 "백설공주" 원작의 마지막 장면은: "여왕은 백설공주를 알아 보고 분노와 공포에 놀라 멈춰 서서 꼼짝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벌써 불에 달궈진 쇠구두가 준비 되어 있어서 집게로 집어 와서 여왕 앞에 들이 댔지요. 여왕은 그 뜨거운 빨간 구두를 강제로 신고, 쓰러져 죽을 때까지 춤을 추어야 했답니다." 인데, 이런 것은 고문이 워낙 널리 퍼져 있던 중세 시대상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등급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는 정작 그런 장면은 전혀 없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이 영화는 "햄릿"처럼 한쪽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고 새롭게 왕좌를 차지한 음모자에 대한 복수라는 면을 살리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맥베스"처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배반을 했지만 끊임 없이 죄책감과 신경질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악인을 묘사하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고 느꼈습니다. 중간 중간에 등장 인물들이 내지르는 대사도 과하지 않게 조절된 셰익스피어 희곡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거창하게 어휘를 고르고 있었고, 감정을 퍼부어 대사 연기를 하는 연극적인 순간도 군데 군데 끼워 둔 느낌이었습니다. 진창 길이 질척질척하고 잔뜩 흐린 하늘 아래에 외로운 성을 무대로 어두운 중세극을 담은 모습은 진짜 중세 같은 "맥베스" 영회로 유명한 1971년작 "맥베스"와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진중하고 칙칙한 옛 비극 풍의 이야기로 끌고 나가다 보니, 중간 부분쯤 가면 좀 단조롭고 너무 칙칙하기만 하니 지루한 맛이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적막한 느낌을 살려서 아슬아슬함, 불안감, 쓸쓸함을 나타내는 연출은 운치가 있을 때는 기막히게 보기 좋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계속 되다 보면 역시 중반 쯤 가서 좀 졸리울 때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트 족 다운 복장과 내면 갈등으로 넘치는 인물에 미모까지 전력을 다해 폭발시키는 여왕이 나올 때는 눈으로 보기에 진기하고, 말투나 행동이 놀라워서 재미난 장면이 많아지는 반면에, 정작 주인공인 백설공주가 나오는 장면이 주로 나른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백설공주 계모 여왕의 무섭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개성은 언제나 재미거리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백설공주가 못미친다 싶었습니다. 나이만 젊다 뿐이지, 외모 자체도 거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해 줄 모습치고는 비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데다가, 행동이나 모습이 특별히 계모 여왕과 대조를 자아내서 선명하게 즐거워 보이는 구석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싸움 장면, 전투 장면의 담당자라고 할 만한 "헌츠맨"의 역할이 지나치게 적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목까지도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인데, 그에 비하면 "헌츠맨"은 대사는 극히 적고 중요한 전환점을 스스로 만드는 부분도 적었다고 생각 합니다. 아무래도 정통 백설공주 이야기를 잘 살려 가면서 그걸 재미로 이야기를 끌어다 삼아 나가는 영화다 보니, 끼어들 자리가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고트족 출신 같아 보이는 계모 왕비, 여왕)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사극의 표본과 같은 모습의 영화이고, 여기에 지금 그 시대를 돌아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옛 고전 속의 표현, 대사, 옛 관습의 멋 등등을 살려 놓은 것이 재미인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 속에서 괜히 환상적인 괴물들이 나오는 특수 효과 장면들은 큰 도움이 못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잠깐 요정이 나오는 장면 정도야 몽환적인 것이 기괴한 맛도 있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좋았지 싶습니다만, 트롤이나 조각조각으로 부서지는 마법 병사 같은 것들은 진지한 실감 나는 분위기에 오히려 방해 되는 편 아니었나 싶습니다. 중간에 사슴 나오는 부분은 "원령공주" 같은 옛날 애니매이션에 쉽게 보일법한 상투적인 모습 정도에 그치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대로 일곱 난쟁이는 환상적인 마법 생물이 아니라 그냥 키 작고 서로 친한 동지들로 나와서 훨씬 재미나게 보였으니 말입니다.


그 밖에...

친척 공작 집안에서 도와 줘서 싸운다는 것도 "맥베스" 류의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다른 중세 시대 실제 다툼 이야기와 닮게 보이는 부분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감동적인 연설"로 기사들을 규합해서 사기백배하여 나아 가는 장면이 나오는 데, 백설공주가 이 연설을 합니다. 성실히 연기하고 있고 분위기가 무거워서 나름대로 진지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별 설득력이 있어 보이거나 멋있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보다보면, 당시에는 한심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대통령 연설 장면 정도만 해도, 그래도 앞뒤 꾸며 놓은 연출하며 정말 막판 딱 한 번 남은 싸움이라는 절절함하며, 그만하면 잘 만든 장면에 속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덧글

  • 鷄르베로스 2012/06/07 13:56 # 답글

    인디펜던스 데이;;;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그장면이 더 낫다고 하시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오는군요 ....
  • 게렉터 2012/06/08 00:05 #

    이 영화 장면은 연설 자체의 오글 정도는 낮은데 정작 그러고 나서 그냥 조리있고 이성적인 말에 갑자기 기사들이 미칠듯이 열광하니까 그게 또 이상했습니다. 차라리 오글거리면 저런거 좋아하는 애들은 좋아하겠다 싶기도 할텐데.
  • 키아 2012/06/10 17:26 # 삭제 답글

    저도 솔직히 다 본다음에 스노우화이트와 헌츠맨을 본게 아니라 이블퀸을 본 기분이 들더라구요. 백설공주가 너무 무기력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거울이 백설공주가 성장해서 더 아름다워 졌다. 라고 했을때 저도 모르게 야, 임마. 너 거짓말 하는거 아니다. 라고 말했을정도로요 ㅎㅎㅎ
  • 게렉터 2012/06/10 20:08 #

    인생 꼬이고 음모 꾸미고 도전하고 파멸하는 이야기 자체도 여왕쪽이 훨씬 극적이었습니다. 백설공주는 탈출장면 빼면 그냥 설렁설렁 굴곡없이 흘러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기억될 정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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